CATANDALIEN
[나타샤+스티브] 겨울새가 잠드는 곳 본문
어벤져스 엔드게임 스포
My tears are always frozen
I can see the air I breathe
Got my fingers painting pictures
On the glass in front of me
Lay me by the frozen river
Where the boats have passed me by
All I need is to remeber
How it was to feel alive
손가락을 튕겼을 때 나타샤를 봤어.
바위밖에 없는 황량한 설산을 오르면서 그는 친구의 그 말을 떠올렸다. 주홍빛 노을진 하늘 아래에서, 처음 만났었던 인도의 그 집 안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노라고. 성공했다고, 모두를 되돌리겠다고, 그리고 널 데려가겠노라는 말에 그녀는 그저 쓴웃음을 지으며 바라보았다고 했었다. 이윽고 빛이 사그라들면서 그는 그녀가 나지막히 꺼내는 말을 간신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고 했다.
나에게 미안하다고 했어.
배너는 그 말을 꺼내고는 마른 세수를 하다가 결국은 얼굴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흐느끼는 소리가 잇새로 흘러나왔고, 그는 애써 친구의 등을 두드리며 도닥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 만약 토니가 살아있었다면 더 잘 달래줄 수 있었을텐데, 라는 생각을 하다가 자신도 침울해졌다.
바튼과 나타샤가 같이 올랐다는 설산의 정상에는 대형 석조물 두개가 세워져 있었다. 그는 그 제단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내딛다가 이윽고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검은 연기에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 연기는 이윽고 망토를 두른 인간의 형상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는 순간 자신의 숨이 턱 하고 막히는 것을 느꼈다.
무너져가는 붉은색 얼굴은 사람의 얼굴이라기보다는 두개골에 진흙을 덕지덕지 붙여넣은 형상이었다. 너무나도 뇌리에 깊게 박혔기에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얼굴이었다. 그는 반사적으로 묠니르를 들어올리며 입을 열었다. 경악에 찬 목소리였다.
"....레드 스컬...."
하지만 정작 상대방은 담담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레드 스컬은 코웃음을 쳤지만 거기에는 숙적이라기보다는 친구를 오랫만에 만났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상대군, 캡틴 아메리카, 스티브 로저스."
그는 바튼이 말한 붉은 얼굴이란 말을 다시 떠올렸다. 소울 스톤의 수호자는 이상한 붉은 얼굴을 하고 있었어.
"너는 여기 왔던 다른 이들과는 다르군. 그래, 너는 다시 되돌리려 온거야. 아깝지 않나? 그건 너에게 생각도 못할 힘을 가져다줄텐데?"
"이제 내게 필요한건 힘이 아냐."
"그건 안타깝군. 알잖나? 소울 스톤을 얻기 위해서 어떤 것이 필요한지. 그런데 그게 아깝지 않아? 자네도 그 여자를 많이 사랑했잖아."
그 말에 그는 계속해서 주먹에 쥐고 있던 주홍빛 보석을 쳐다보았다. 마치 나타샤의 머리카락같이 선명하게 붉은, 그녀가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 얻어낸 보물이었다. 하지만 다른 보석들이 모여도 그녀만큼은 되살릴 수 없었다. 그는 나지막히 고개를 저었다.
"...이것과 뒤바뀐 영혼을 되살릴 수는 없나?"
그는 입술을 꽉 물었다. 바튼이 만났다는 그 붉은 얼굴에게 꼭 하고 싶은 질문이었다. 비록 그 상대방이 옛날에 대적했던 상대였지만 말이다. 레드 스컬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이미 한번 희생된 영혼은 돌아오지 않아. 그녀의 몸도 영혼도 모두 그 스톤으로 변해버렸어. 천하의 캡틴 아메리카를 고개숙이게 하다니, 정말로 대단한 인간이었던 모양이군."
그 말에 그는 제 앞에 서있던 수호자의 멱살을 붙잡았다. 하지만 레드 스컬은 전과는 달리 측은하다는 표정까지 지어가며 그에게 말했다.
"네가 목숨을 바친다해도 이미 한번 만들어진 스톤을 돌릴 수는 없어. 그렇게까지 그녀를 사랑했나?"
멱살을 잡은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스티브의 눈가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우리 모두."
그는 내팽겨치듯 레드스컬을 놓아주었다. 그러자 수호자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제단으로 인도했다. 마치 문처럼 열려있는 조형물 사이에 놓인 절벽 아래를 손가락으로 가리켜 나타샤가 죽은 곳을 알려주었다.
"저 곳이 스톤이 탄생한 곳이야. 네가 그 돌을 되돌리고 싶다면 탄생한 곳으로 돌아가는게 순리겠지."
토니의 장례식이 끝나고 그들은 나타샤의 유품을 정리했다. 누군가의 입에서 나타샤가 꽤나 마당발이었다는 소리가 나왔다. 그러고보니 누가 먼저 나타샤와 만났지? 토니란 퓨리의 말에 순간 정적에 휩싸이다 바튼의 말에 간신히 웃음을 내뱉었다. 붉은 꽃과 함께 유품을 태워 연기를 하늘로 날려보냈다. 마치 장례식같아, 불꽃에 나타샤에게 주었던 선물을 태우며 완다가 말했다. 난 이제 장례식이라면 지긋지긋해. 그녀는 눈물을 참지 않은 채 올라가는 연기를 보았다.
그도 완다의 말에 동의했다. 하지만 장례식에는 의당 망자를 보내는 의식이 있기 마련이었다. 그는 나타샤가 죽었던 절벽 밑으로 내려가면서 문득 페기가 죽었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 자신을 위로해준 것은 나타샤였다. 그럼 네가 죽었을 땐 누가 우리를 위로해줄까.
나타샤가 죽었다는 곳은 핏자국 하나 없이 돌만 있었다. 클린트의 말과는 달리 바람도 거의 불지 않는 조용한 곳이었다. 그는 어찌보면 또 다른 제단이라 할 수 있는 곳에 조심스레 주홍빛 돌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문득, 나타샤에게 말을 건네고 싶어졌다.
냇-
하얀 빛이었다. 눈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하얬지만 이상하게도 그를 감싸는 공기만은 너무나도 따뜻했다. 감은 눈을 뜨자 배너가 말했던 주홍빛 하늘이 그의 앞에 펼쳐져 있었다. 하늘 아래에는 익숙한 디자인의 탁자와 의자, 그리고 익숙한, 마지막으로 봤던 모습의 친구가 앉아있었다.
"냇."
"어서와, 캡틴. 오느라 수고했어."
그는 나타샤를 향해 헐레벌떡 뛰어가더니 그녀를 품에 안았다. 팔 안에서 느껴지는 온기는 거짓이 아니었다. 그는 나타샤의 머리카락에 이마를 비비고는 흐느끼며 말했다.
"냇, 나타샤. 냇..."
"알아, 내가 냇이고 나타샤 로마노프란걸. 그러니까 일단 좀 떨어질래? 슈퍼솔져가 안아대면 나라도 힘들어."
그 말에 그는 나타샤에게서 떨어졌다. 그리고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어느새 꼬불거리는 장발로 변해있었다. 토니와 만났을 당시의 모습이다.
"뭘 그리고 놀라. 내 헤어스타일이 바뀌는게 한두번 일도 아니잖아. 이 모습은 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
그리고 눈을 한번 깜빡이자 이번에는 버키를 찾았을 때처럼 단발에 직모였다. 그녀의 모습은 계속해서 변했다. 어린 아이로 변했을 때도 있었지만 한가지만은 분명했다. 그녀는 그가 마지막으로 보았던 모습 뒤로는 변하지 않았다. 그녀의 시간은 그 때를 기점으로 계속해서 과거만을 맴돌았다.
"...브루스를 만난건 들어서 알고 있지? 나도 브루스를 만날지 생각도 못하고 있었어."
그녀는 찻잔을 어루만지며 배너를 떠올리는 것 같았다. 그러다 이내 슬픈 표정으로 스티브를 바라보았다.
"만났구나, 토니를."
"...정말로 바보같아. 희생하는건 나 하나면 충분했을텐데, 왜. 딸도 있는데 왜 그랬을까."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몇번 느리게 눈을 깜빡이며 눈물을 삼키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안타까워서 그의 눈에서 또다시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보고 다 잘됐다고 했어. 타노스를 쓰러뜨렸다고, 모두가 돌아왔다고. 그래, 성공했다고 했지. 내 희생을 물거품으로 만들지 않았다고 했어."
그녀는 몇번 숨을 고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의 귀에는 마치 그게 우는 소리처럼 들렸다.
"정말로 바보들이야. 내가 뭐때문에 그렇게 너희들 뒤에서 고생을 했는데."
"냇."
"그나저나 넌 이대로 돌아가진 않을거지? 나도 여기 있다보면 이것저것 다 알게 돼. 돌아가는거지? 약속을 지키러. 절대로 놓치지마. 샤론이 네 뺨을 때린걸 잊지 말라고."
"갑자기 이제와서 그걸-"
나타샤의 손이 그의 뺨에 닿았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그의 눈물을 닦아내고는 억지로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
"모두에게 안부전해줘."
"냇-!"
그는 재빨리 나타샤의 팔을 붙잡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들을 둘러싼 세상이 재로 변해갔다. 그는 어떻게든 친구를 붙잡으려다 불가능하단걸 깨닫고는 크게 소리쳤다.
"사랑해! 모두 널 사랑해."
그 말에 나타샤의 입가에 호선이 그려졌다. 그리고 한마디만을 남기고 그 미소마저 재로 날아가 하늘로 흩어졌다.
눈을 뜨니 그의 몸은 차가운 물가에 뉘여져있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다가 서둘러 자신의 손을 펼쳤다. 그 안에는 물기말고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 미소가, 울면서 우는 듯한 그 얼굴이, 결국에는 마지막으로 보았던 모습으로 돌아왔던 것이 계속해서 그의 머릿속에 되뇌어졌다.
나도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