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알렉스레니 (37)
CATANDALIEN
감사를 앞두고 오늘도 헬하우스 인더스트리는 분주했다. 평소처럼 잘 지나가기를 빌며 아침 점심 저녁 야참까지 먹는 법무팀이었지만, 특히 그 중에서도 분쟁전담인 레널드 헬하우스만큼 바쁜 이도 없었을 것이다. 그는 툭하면 수면실과 집과 사무실을 드나들며 일했는데, 전에 맡았던 노사소송건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간신히 야참을 피하고 퇴근하는 동료가 사무실 문을 두드리며 얼굴을 내비쳤다. 수고하세요, 자신도 지쳤건만 일부러 인사를 해주는 친절함에 레널드도 쓴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문이 닫히자 그는 일단 스트레칭을 하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오른쪽에도 서류, 왼쪽에도 서류가 쌓여있었고 앞에 있는 노트북에는 여전히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하아...”그는 깊게 한숨을 내쉬고는 창밖을 바라보았..
단어: 함께문장: 잘 자.분위기: 작은 소리에도 깜짝 놀랄 정도로 긴장하고 있는 레널드 헬하우스 변호사 사무소에는 작은 수면실이 딸려 있었다. 작다고 해도 제법 갖출 것은 다 갖춘 정도의 크기로 이층침대 두 개와 캐비닛, 소파 하나와 욕실까지 딸려 있는 공간이었다. 급한 일이 있을 때마다 소장과 직원들-이래봤자 두명밖에 없었지만-이 머물며 사건을 해결하곤 했지만 주 이용자는 소장이었다. 레널드는 민권변호사답게 자신의 직원들에게 공명정대하게 대했고, 웬만한 일이 아니고는 그들의 퇴근시간을 준수해주었다. 그러니 자연스레 그 공간은 거의 레널드의 별장처럼 변해버리고 말았다.알렉스가 그 공간을 알게 된 건 우연이었는데, 어느 날 먼저 퇴근한 직원을 길거리에서 만났던 것이다.“변호사님은 오늘 사무실에서 주무신댔어..
단어: 우산문장: 이곳은 동화가 아니야분위기: 파르페마냥 달콤하기 그지없는 창문에 빗방울이 달라붙었다. 텔레비전 뉴스를 틀자 기상캐스터가 우산을 들고 나와 귀중한 비가 내렸노라고 말하고 있었다. 몇 주 동안 그들을 괴롭혔던 가뭄이 해갈되었다고 기뻐하며, 현재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는 바닷가 풍경을 화면에 띄웠다. 레널드는 창밖을 바라보며 비가 내리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많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우산 없이 다니기에도 애매한 양이었다. 이래서는 알렉스가 실망할 것이 뻔했다.과연 알렉스는 침대에서 일어나 공기가 습하단 걸 알아채고는 곧장 창문가로 향했다. 그리고는 우거지상을 지으며 들리지도 않을 작은 소리로 투덜거리는 게 제법 실망한 모양이었다. 오늘은 센트럴파크의 동물원에 가기로 했고, 내일은 미술관과 박물관..
【 알렉스레니 】 단어: 사랑 문장: 우리, 친구 하자! 분위기: 독한 담배연기로 호흡하듯 짙고 지독한 그는 알렉산드로 토레스를 사랑한다. 그가 그걸 깨달은 건 페터와의 훈련으로 힘들어하던 알렉스에게 저녁을 사주고 돌아오는 길에서였다. 최근 문을 열었다는 씨푸드 레스토랑에서 검은 고양이는 매우 만족스러워하며 여러 갑각류를 즐겼다. 반면 그는 비린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레스토랑의 음식들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이 밖에서 담배를 피우며 비린내를 덮고 있었다. 환하게 웃는 알렉스의 숨에서는 바닷가재와 털게요리의 냄새가 풍겼다. 소금냄새와 갑각류 특유의 비린내, 아마도 토마토로 만들었을 소스와 향신료냄새. 그는 거기에 담배의 역한 내로 자신의 코를 보호하려고 했다. 알렉스는 그가 평소답지..
여러 약냄새가 뒤엉킨 복도의 형광등 불빛은 차갑다못해 창백해보이기까지 했다. 검은 고양이는 그 냄새와 불빛이 불편했기에, 제 앞에서 걸어가는 늑대인간의 꼬리에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푸른 빛을 띈 꼬리는 규칙적으로 주인의 걸음에 따라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러다 그 주인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자 검은 고양이는 주인의 등에 이마를 찧고 말았다.“집중해, 알렉스.”“아, 알았다고.”그는 제법 아픈 이마를 문지르며 문 옆의 명패에 고개를 돌렸다.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같이 일했던 동료의 이름이 적혀져 있었다. 그때만 해도 동료는 알렉스의 행패에 얼굴을 찌푸리고는 짜증을 냈었다. 분명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는 잔뜩 얼굴을 찌푸린 모양새였건만, 페터가 문을 열고나서 보인 얼굴은 오히려 평온에 잠겨 있었다.온 몸에 깁스..
아무리 얼음을 깨물어도 뜨거운 공기를 식힐 수는 없었다. 시끄러운 전자음과 화려한 미러볼 아래에서 몸을 흔들고 있는 이들이 있는 한, 클럽의 공기가 한낱 에어컨 바람에 식을 일은 없을 터였다. 깔끔하게 셔츠차림을 한 남자는 클럽 한편에 위치한 바에 앉아 도수가 낮은 칵테일을 시키고는 열심히 춤을 추고 있는 무리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무대 맨 윗편에 앉아있는 DJ는 마치 왕좌에 앉은 군주처럼 근엄한 모습으로 기계를 만지고 있었다.“맞아, 그래서 말이야, 어머, 안녕하세요.”꽤나 짧은 옷을 입은 여자 두 명이 클럽에서는 보기 힘든 점잖은 남자를 발견하고는 옆에 앉았다. 둘은 바텐더에게 요즘 잘 나간다는 칵테일을 시키고는 살풋이 미소를 지으며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안녕하세요.”“...네, 안녕하세요.”남자..
귓가에 와닿는 숨소리가 거칠었다. 레널드는 커텐사이로 흐릿하게 비치는 햇빛에 의지하며 연인의 셔츠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새 알렉스는 흥분을 제대로 이기지 못했던지 그의 귀를 살짝 깨물었다. 샌디, 단호하지만 거절의 뜻은 보이지 않는다. 그는 연인이 제 귀를 깨물고 희롱하는것을 허락하고는 털없는 피부를 더듬어나갔다. 인간이 되면 이런 점은 좋았다. 피가 흐르는 살갗에 곧바로 닿을 수 있는 것, 손가락으로 매끈한 허리와 살짝 튀어나온 복근과 자잘한 상처들을 만질 수 있다는 것. 털속에 가려졌던 연인의 몸을 즐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곳에 올만한 보람이 있었다.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단순히 섹스만을 위해 이 곳에 온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우연이라고 하는게 더 맞을 것이다. 의뢰인의 친척이 인간계에 살고 있..
아동학대 및 비속살해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어폰 너머에서 들리는 목소리에는 불안함과 분노가 동시에 담겨있었다. 목소리는 무어라 중얼대다 이내 문열리는 소리와 함께 짜증을 터뜨렸다. 그러자 아이가 깜짝 놀라는 소리를 내뱉었고, 이내 울음으로 이어졌다.레널드는 울음소리에 짜증을 내면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길 맞은편에 위치한 쇠락한 아파트의 3층, 제일 왼쪽 창문의 불빛은 노란색이었다. 창문 너머로 목소리의 주인공의 그림자가 길게 비추었다. 젠장! 남자는 욕지거리를 내뱉었다.‘조금만 더, 조금만 더.’레널드는 어서 남자가 자식이 우는 소리에 더욱 더 짜증을 내길, 그래서 알렉스를 차로 치었을 때처럼 어서 아이에게 위해를 가하기를 빌고 또 빌었다. 아이는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었는지 ..
동생이 전화로 도움을 요청한건 이제 막 휴가가 끝나 출근을 하려던 참이었다. 레널드는 커프스단추를 매다말고 동생의 전화를 받았는데, 꽤나 이른 시간이라 놀라면서도 차분하게 동생의 말을 들어주었다.-“그래서 그... 아드님은 할아버지가 궁금하다고는 하는데...”“그럼 된거 아니겠니? 무엇보다도 당사자의 의견이 제일 중요하니까.”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의 조카는 호기심이 많았기에, 자연스레 그 호기심은 자신의 가족관계로 옮겨갔을 것이다. 텔레비전으로나마 보았던 삼촌들과 할아버지는 더더욱 궁금했을 것이다. 아쉽게도 정식으로 호칭을 부를 수는 없었지만.레널드는 아버지에게 스케쥴을 물어보겠노라고 말했다. 그가 알고 있는 대강의 일정을 따지자면 아마도 생일 전후에 약속이 잡힐 것이었다. 레오는 알겠다고, 다시..
잠시 자리를 비운 새 차안에는 냉기가 돌았다. 환영은 춥다고 투덜거리면서 뒷좌석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는 시동이 걸리자 차창에 몸을 기대고 게슴츠레 앞에 앉아있는 지옥개를 바라보았다.“그래서 이제부터 만나러 갈 시민은 누구야? 아까 말했던 그 선생님? 정말로 내가 진짜 나라는걸 믿지 않으려는거야?”환영의 목소리는 비꼬는 듯 하면서도 침울했다. 레널드는 브레이크를 풀면서도 이런 어둡고 가라앉는 목소리를 언제 마지막으로 들었던가를 떠올렸다. 아마 알렉스의 프러포즈를 거절하고나서였던가. 자신은 농담으로 넘기려고 했었지만 검은 고양이는 진심이었던 그 고백을. 나중에 가서야 뼈저리게 느꼈던 후회가 그의 심장을 꾹 눌러댔지만, 그는 백미러로 뒤를 확인하려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히터에서 더운 바람이 나오자 환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