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ANDALIEN

알렉스레니 _ 어슴푸레 짙은 下 본문

기타/DOOMSDAY CITY

알렉스레니 _ 어슴푸레 짙은 下

rabbitvaseline 2017. 8. 1. 19:35



 


잠시 자리를 비운 새 차안에는 냉기가 돌았다. 환영은 춥다고 투덜거리면서 뒷좌석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는 시동이 걸리자 차창에 몸을 기대고 게슴츠레 앞에 앉아있는 지옥개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이제부터 만나러 갈 시민은 누구야? 아까 말했던 그 선생님? 정말로 내가 진짜 나라는걸 믿지 않으려는거야?”

환영의 목소리는 비꼬는 듯 하면서도 침울했다. 레널드는 브레이크를 풀면서도 이런 어둡고 가라앉는 목소리를 언제 마지막으로 들었던가를 떠올렸다. 아마 알렉스의 프러포즈를 거절하고나서였던가. 자신은 농담으로 넘기려고 했었지만 검은 고양이는 진심이었던 그 고백을. 나중에 가서야 뼈저리게 느꼈던 후회가 그의 심장을 꾹 눌러댔지만, 그는 백미러로 뒤를 확인하려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히터에서 더운 바람이 나오자 환영은 알렉스가 그랬던 것처럼 스트레칭을 했다.

나도 궁금하네, 그 선생님 맞지? 아저씨에게 환각에 대해선 아무 반응도 하지 말라고 한게. 어느 카운슬러가 상담인에게 그런 말을 해? 그런 경우는 보통 약을 먹으면서 치료해야되는 경우 아냐?”

그는 환영의 말에 제법 솔깃했지만 카운슬러의 당부를 다시금 머리에 되새겼다. 어찌되었건 그의 뒤에 있는 것은 뇌가 만들어낸 환영이며, 그에게 말을 건다는건 다시 미친 시민 취급을 받는다는걸 그는 잊으면 안되었다. 자신을 무시한다는걸 뼈저리게 느끼면서도 검은 고양이의 입은 멈추지 않았다.

아저씨, 내가 진짜 환각이고 그런거라면 날 느낄 수 있었겠어? 내가 움직이면 모든 것이 다 날 따라서 움직이던걸?”

레널드는 조심스레 엑셀에 발을 올렸다.

결국 레니는 아무 것도 믿지 않겠구나.”

그 순간 끼익 거리는 소리와 함께 천천히 움직이려던 세단이 갑작스레 멈추었다. 환영은 안전벨트도 하고 있지 않았던터라 앞좌석에 부딪혔는데, 그 흔한 신음소리도 하나 내지 않았다. 대신 무슨 일이냐고 물으려는 찰나,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차 안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지루하지만 시끄러운, 일렉기타가 반복적으로 자아내는 찬송가 소리는 환영의 목소리를 완벽하게 덮어버렸다. 알렉스는 이게 무슨 짓이냐며 레널드의 손을 잡으려다 이내 곧바로 뗄 수 밖에 없었다. 기어를 잡은 검은 손은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간신히 기어를 맞추고나서야 그는 차를 움직일 수 있었다. 찬송가는 계속해서 루시퍼를 칭송하고 있었는데, 베이스 소리가 웅웅 거리며 차를 계속해서 울릴 때마다 레널드의 심장도 똑같은 박자로 울렸다.

온 지옥이 루시퍼의 은혜로 죽은 이들이-

장례식에서 단골로 나오던 찬송가는 다시금 그 날을 떠올리게 했다. 안면창 너머로 보이는 편안해보이던 얼굴과 백미러에 간간히 비치는 시무룩한 얼굴이 계속해서 겹친다. 결국 환영은 자신의 말이 레널드에게는 끝내 닿지 않을거란걸 깨달았는지, 심각한 얼굴로 인상을 쓰며 고개를 창밖으로 돌렸다.

루시퍼께서 임하실 위대한 시간이 곧 올지어니, 그대의 위대한 날개를 타고 지옥의 넝쿨이-

 

시내의 빌딩숲 한편, 꽤나 고즈넉한 붉은 벽돌건물 옆에 레널드는 차를 세웠다. 뮐러 정신상담센터, 라는 고풍스런 간판을 보면서 환영은 아침에 레널드가 그렇게나 급히 전화를 걸었던 상대의 이름을 확인했다.

“...정말 미안해, 아저씨.”

환영은 계단을 올라가는 레널드의 팔을 갑작스레 붙잡고는 뒤로 당겼다. 간신히 넘어지지 않은 레널드는 저도 모르게 날카로운 눈초리로 환영을 노려보았다. 무어라 화를 내기도 전에 그는 암말의 당부를 다시 떠올리고는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에서 쳇, 하며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리자 더욱 더 화가 났지만, 그는 뒤의 이 환영에게 무어라 말할 생각이 없었다.

건물 내의 공기는 가라앉아있었지만 그렇게 불편한 정도는 아니었고, 은은한 커피향이 그의 식욕을 자극했다. 점심시간이었는지 데스크에는 젊은 악마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지금 점심시간이라. 혹시 예약하셨나요?”

, 헬하우스입니다.”

악마는 명부를 확인하고는 조금만 기다리라고 말하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알렉스는 건물을 둘러보며 이곳저곳을 확인하다 어느 액자 밑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벽난로 위에 걸려있는 커다란 초상화엔 은색 갈기를 정성스레 땋아내린 말이 그려져 있었다.

“....말도 안돼, 이건... 그렇지만 그럴 수가.. 만약 그런거라면 이건...”

그가 무어라 레널드에게 말을 꺼내기도 전에 지옥에서는 흔하게 들을 수 없는 높은 목소리가 대기실에 울렸다. 그 말의 주인공을 찾아가자 알렉스의 눈은 금세 경악으로 물들어갔다. 검은색 투피스 차림의 암말이 상담실의 문을 열고 레널드를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안녕하세요, 헬하우스씨. 정말 오랜만이군요.”

잠깐, 아저씨. 수상해, 가지 않는게 좋겠어. 너무 수상하잖아! 지옥에 이런 종족이 없는건 아저씨도 아는거잖아. 게다가 여자라니!”

알렉스는 급히 레널드의 어깨를 붙잡았다. 하지만 그는 마치 파리라도 붙었다는 양 자신의 어깨를 터는 것처럼 검은 고양이의 손을 쳐냈다. 간신히 보인 반응이 거절이라니 그는 크게 낙담했지만 절망할 틈은 없었다. 그는 문이 닫히기 직전에 간신히 상담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문 너머로 그들을 맞이한 건 커다란 서재와 책상, 그 앞에 나란히 자리한 소파였다. 이상한 향이 책상 위 향초에서 풍겨나오고 있었는데 알렉스는 그것마저도 수상하게 보였다. 레널드는 아주 익숙하게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점심은 드시고 오셨나요? 꽤나 일찍 오셨군요.”

아뇨, 끝나고 먹어도 될 것 같아서요. 선생님도 많이 바쁘실텐데 시간을 내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알렉스는 이 수상한 암말의 어깨를 붙잡았다. 하지만 잡았다는 느낌만 날뿐, 다른 시민들과 달리 이 암말은 아무리 힘을 줘도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바닥에 고정되어 있는것처럼 서 있는 뮐러를 움직이려 힘을 써봤지만 돌아오는 것은 레널드를 향한 그녀의 얕은 미소뿐이었다.

아저씨, 이 시민은-”

아침에 소식을 들었을 때엔 정말로 놀랐어요. 다시 환영이 보이다니, 그것 참 커다란 문제로군요.”

레널드는 애써 환영이 그녀를 움직이려 애를 쓰는걸 무시하는, 쿠션을 베개삼아 편안히 자리에 누웠다. 뮐러의 신뢰감가는 낮은 음성에 귀를 기울였지만 동시에 알렉스의 발악하는 소리도 같이 들려왔다.

이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페터랑 제이슨에게 말하면 아주 좋아할거야, 이렇게 진화하다니....!”

아마 이유는 있겠죠. 사실 10년 전 그 사건에 대해서 새로운 정보가 들어왔거든요. 물론 자세한건 이야기해드릴 수는 없지만, 친구로부터 어쩌면 알렉스를 죽인 범인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알렉스는 자신도 몰랐던 이야기에 순간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는 악을 쓰며 그녀를 움직이려던걸 멈추고, 그녀의 옆에 서서 조용히 눈을 감고 말하고 있는 레널드를 바라보았다.

그것 참 다행이군요, 10년 전에도 노력하신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렇죠. 그때엔 어떻게해도 단서가 나오지 않더니 이제야 나오는걸 보면... 그러고보면 그 연락을 받고나서 꿈속에서 알렉스를 봤습니다. 비록 죽은 당시의 모습이었지만, 꿈속에서 본 것도 거의 10년만이었거든요. 죽고나서는 한번도 보지 못했죠.”

그는 알렉스의 환영이 있다는 걸 애써 무시하려 노력하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평소답지 않게 말이 많은 모습에 알렉스는 더더욱 아무 반응도 내보일 수 없었다.

죽은 후에는 보셨잖아요. 환각으로든 뭐든.”

그건 단순히 환영과 환청이었으니까요. 제 뇌가 만들어낸거라고 그런건 선생님이셨잖습니까. 그래서.... 그래서 나름 충격이 컸던 걸지도 모르죠. 그래서 더더욱 뇌가 더 고장이 난 모양입니다.”

그는 양 손을 모으고 게슴츠레 눈을 떴다. 고개를 돌리니 뮐러의 옆에서 환영이 꽤나 걱정어린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번 환영은 뭔가... 10년 전과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그 때는 그야말로 죽기 전의 모습을 반복한다고 하면.... 이번에는 조금 더 알렉스스러운 것 같아요.”

정말로 애인분을 그리워하셨던거군요. 기쁜 순간에 애인이 곁에 없어서 그런거라고 생각되지는 않나요? 격한 기쁨이 그걸 들어줄 상대를 필요로 한거죠. 물론 그렇다고 그 환영을 상대하라는 말은 아니지만요. 알다시피 환영이 먹는 것은 당신의 상상력이니까요.”

,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도 선생님 옆에서 시무룩한 표정으로 서 있어요. 난 저런 표정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아서.... 언제나 좋아할만한 행동을 해서 기를 돋워주곤 했는데... 환영을 상대로 그렇게 할 수는 없겠죠.”

알렉스는 등을 돌리고 뮐러의 책상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는 책상 위의 있던 집기들을 레널드의 맞은 편에 앉아있는 암말을 향해 던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컵이며 펜이며 모든 것들은 뮐러에게 닿기도 전에 먼지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져버렸다. 그는 모든 것을 확신했는지 이번에는 문을 열려고 애썼다. 하지만 분명 잠기지도 않았을 문은 도저히 열리지 않았다.

그래도...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은 기뻤어요. 꿈속에서는 죽은 모습이었으니까요. 처음엔 정말로 살아돌아온줄 알고 얼마나 놀랐던지... 하지만 차라리 꿈속이 더 나았단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이젠 어떻게 해야할까요? 그 때 선생님은 계속해서 무시하면 결국은 사라질거라 그랬지만... 아시잖습니까, 제가 그 때 무슨 짓을 했는지.”

다시 알렉스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그는 의아한 눈으로 레널드를 바라보았다.

그 때 헬하우스씨는 연인의 죽음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죠. 검은 고양이를 잃은 시민들 중에는 그런 경우가 있어요. 당장에라도 다시 살아돌아올 것 같다고, 그래서 사실 온전한 시신을 보고나서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죠. 그 때 당신이 한 행동은 과격하긴 했지만...”

알렉스는 레널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했다. 그가 인터넷을 찾아 얻은 정보라고는 10년 전 사건으로 자신이 레널드 헬하우스를 구하려다 죽었고, 연인은 커밍아웃을 했으며 사건의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회사를 나왔다는 점 뿐이었다.

“....지금은 뼈밖에 남아있지 않아요. 뼈를 확인해봤자 아무 실감도 나지 않을겁니다. 그 때는.... 조금 썩었긴 했지만 그게 알렉스라는 자각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없겠죠. 아마 다른 시신들을 같이 늘어놓는다면 난 그 중에 누가 알렉스인지도 모를테니까요.”

, 썩었다, 자각, 시신. 알렉스의 머릿속에서 퍼즐들이 재빠르게 맞춰지다가 끝내 하얗게 물들어갔다. 그는 경악에 찬 눈동자로 레널드를 바라보았다. 지옥개는 어느새 눈을 감고 다시 입을 열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은 아버지 눈밖에도 난 처지라... 또 잡히면 친구도 손을 써주긴 힘들 것 같네요.... 그 방법은 너무 과격하기도 하고.”

레널드의 입가에 쓴웃음이 지어진다. 그는 환영이 자신을 향해, 매우 시무룩한 표정으로 다가오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환영은 소파 밑에 앉아서는 조심스레 그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귓가에 두근거리는 심장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이 고동소리가 환영이 내는건지 아니면 자신의 심장에서 나는건지 도저히 구분할 수 없었다. 하지만 뮐러가 성냥에 불을 켠 순간, 마치 연기처럼 환영의 모습이 갑작스레 사라졌다. 그는 몇 번 주위를 둘러보다가 환영이 완전히 몸을 감춘 것을 확인하고는 절망어린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환영이 사라졌나요?”

그는 애써 나오려는 눈물을 참으며 대답했다.

“....”

 

그는 후련한 마음으로 상담실을 나섰다. 애석하게도 그리고 기쁘게도 환영은 그가 자동차에 올라서는 순간까지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제 뇌에 섭섭함까지 느끼며 다시 주변을 둘러보고 백미러를 확인했다. 그렇게나 자신이 실재한다고 주장하던 검은 고양이의 모습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그는 마치 무언가 얹힌 것처럼 속이 답답했다. 결국 환영은 제 머릿속에서 물러났건만 어딘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 그가 했던 말대로 환영은 정말로 살아있는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사라지기 직전에 울렸던 심장박동은... 세차게 뛰던 그 고동을 떠올리며 차를 시내로 돌렸다. 점심시간이 지난 시내에는 시민이라곤 아이들과 학생들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는 낡은 다이너에 들어가 대충 샌드위치를 주문하고는 메뉴판에 고개를 숙였다. 늦은 점심을 보내는 시민 몇몇이 앉아 수다를 떨고 있었고, 소스 타는 냄새가 주방에서 흘러나왔다. 늦은 시간에는 이런 식당말고는 문을 여는 곳이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레널드는 알렉스와 있을 때마다 이런 식당을 이용하곤 했었다. 물론 지금은 의뢰인을 만날 때말고는 일부러 찾지는 않았다.

“....레니!”

한참 알렉스가 좋아하던 메뉴를 훑어보다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올렸다. 회색섞인 파란색 털을 가진 늑대인간이 환하게 미소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페터? 의심섞인 목소리에 페터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맞은 편에 앉았다.

“....무슨 일이야? 너 지금 본부에 있을 시간 아냐?”

그 말에 페터는 난감해하며 대답했다.

잠깐 시간이 비길래 나왔어. 너야말로 평소에는 이런 곳 오지도 않으면서 무슨 일이야? , 나는 커피 한잔. 지나가는 길에 그쪽이 보여서 말이야.”

웨이터가 재빨리 커피를 갖다주자 페터는 커피를 들이켰다. 레널드는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페터를 바라보았다. 그가 보기에 지금 자신앞에 앉아있는 남자는 어딘가 평상시와는 많이 달랐다.

“....뉴스는 봤어. 드디어 잡았다고 했지.”

? 그래, 맞아, 얼마나 힘들었는데. 모두들 엄청 고생했어. 이번에 포상이라도 해야하나봐.”

어제의 전화와는 앞뒤가 맞지 않았다. 분명 자료를 분석한다고 포상을 이야기할 단계는 아니지 않았던가. 레널드는 급히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맞은 편에 앉아있는 늑대인간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분명히 익숙한 멜로디건만 페터는 십여초가 지나고나서야 자신의 핸드폰이란걸 알아챈 모양이었다.

레널드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자신을 부르는 페터의 부름에도 걸음을 멈추지 않고, 웨이터에게 지폐 한 장을 건네고는 빠르게 건물 밖으로 나갔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지만, 자신의 앞에 앉아있던 늑대인간이 자신이 알고 있는 친구일 리가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는 재빨리 차문을 붙잡았다.

레니, 이게 무슨 짓이야? 갑자기 왜 그래?”

레널드는 갑작스레 붙잡힌 팔을 뿌리쳤다.

“...누구야? 누가 이런 일을 시킨거지?”

그게 무슨 소리야? 누구냐니? 그게 무슨 소리야?”

그는 재빨리 차문을 열었다. 하지만 늑대인간은 차로 들어가려는 그를 막아서고는 무슨 말이냐고 소리칠 뿐이었다. 분위기가 험악해지고 있다는걸 깨닫자 레널드는 그를 강하게 밀쳤다. 그러자 페터는 레널드의 팔을 붙잡았다.

그러니까 무슨 소리-”

아저씨에게 무슨 짓이야!!”

검은 주먹은 곧바로 페터의 얼굴에 직격했다. 무어라 소리가 나기도 전에 그의 몸이 무너졌고, 그 틈을 타 레널드는 급히 차에 올라탔다. 그러자 주먹을 날린 주인공도 재빨리 뒷좌석에 몸을 실었다.

, 알렉스!!!”

페터의 분노섞인 목소리가 울리자마자 그들은 재빨리 차를 출발시켰다.

 

쿵쾅거리던 심장이 간신히 진정된건 출발하고도 십여분이 지나고나서였다. 그제야 레널드는 페터로 가장한 인물이 자신을 붙잡으려 했다는 것을, 그리고 그걸 환영이 나타나 구해주었다는 것을, 그 환영이 지금 자신의 차량 뒷좌석에 앉아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아...”

그는 심호흡을 하고는 백미러로 뒤를 확인하였다. 알렉스 토레스의 모습을 한 환영은 상담실에서 사라지기 전의 모습으로 다시 나타나 있었다. 그는 레널드가 드디어 안정을 되찾았단걸 깨닫고서야 입을 열었다.

다행이야, 아저씨. 어디 다친덴 없어? 페터도 그렇게 난폭하게 대하면 안되지! 그러니까 내가-”

누구야?”

?”

레널드의 시선은 정면을 향하고 있었지만 귀는 뒤를 향해 있었다. 알렉스는 드디어 레널드가 자신에게 대답했다는 것에 기뻐하며 대답했다.

“...드디어 알아챘구나! 맞아, 아저씨. 난 환영이 아니라니까. 내가 환영이면 어떻게 페터를 그렇게 칠 수가 있었겠어? ? 게다가 아저씨도 들었잖아.”

넘어지고나서 페터의 모습을 한 시민은 분명히 알렉스라고 소리쳤다. 그의 시선은 환영을 향해 돌아가 있었다. 레널드는 웨이터가 그 시민의 주문을 받아 커피를 가져다준 것도 똑똑히 기억했다. 페터의 모습을 한 시민은 환영이 아니라면, 자신이 여태껏 환영이라 생각했던 뒤에 앉아있던 검은 고양이는 뭐란 말인가. 그는 지금 제 앞에 나타난 상황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다.

“....알렉스는 죽었어. 내가 시신마저 다 확인했어! 너도 들었겠지, 시신이 썩은 것까지 똑똑히 다 봤어. 넌 누구지? 누군데 알렉스의 행세를 하고 있는거야?”

그 말에 검은 고양이의 귀가 살짝 내려간다. 레널드는 그 모습에 적잖이 상처를 입으면서도 계속해서 환영에게 물었다.

도대체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거야? 만약 네가 진짜로 실재하는 시민이라면, 다른 시민들은 그걸 모른척하고 있었다는거야? 짐도, 켈러씨도, 뮐러선생님-”

머릿속에서 자신을 향해 환하게 미소짓는 암말이 떠올랐다. 단정한 투피스차림으로 환영에 괴로워하던 자신을 반겨주던- 그는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타이어가 밀리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그의 몸이 급히 앞으로 튀어나갔다. 급하게 출발한지라 안전벨트도 하지 않았던 몸이 급히 앞으로 튀어나간다. 다행히도 그의 몸은 차창에 부딪히는 정도에 끝났고, 뒤에 앉아있던 환영도 앞좌석에 부딪혔지만 통증을 호소하진 않았다.

괜찮아, 아저씨?! 괜찮아??? 아프지 않아? 아저씨!”

레널드는 차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는 도저히 지옥에서는 존재할 리 없는 종족이 제 앞에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은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에 놀람을 금치 못했다. 여태껏 쌓아왔던 10년의 세월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느낌에 그의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저씨!!”

알렉스는 급히 차에게서 나가더니 앞문을 열고선 레널드를 끌어 자리에 앉혔다. 괜찮냐고 연거푸 묻는 목소리에 그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곤 자신을 걱정어린 눈으로 쳐다보는 검은 고양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괜찮아? 아프지 않아?”

그 말에 그는 조심스레 몸을 움직였다. 분명 꽤나 강하게 부딪혔음에도 몸 어느 한구석도 통증을 호소하지 않았다. 뼈는 물론이고 어느 곳에서도 그는 아픔을 느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아채자마자 마치 잠들기 직전의 나른함이 통증대신 그의 온 몸을 감쌌다. 그는 자신의 손가락을 몇 번 구부리더니 황망한 표정으로 알렉스를 바라보았다.

“......샌디, 이건-”

 

머리를 잔뜩 헤집어놓던 촉수가 빠져나가는 느낌에 레널드는 순간 몸을 휘청거렸다. 옆에 앉아있던 페터가 부축하고나서야, 그는 제 옆에서 바투 숨을 내쉬는 검은 고양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익숙한 물비린내와 어두움 사이로 알렉스가 식은 땀을 흘린 채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알렉스는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자신을 향해 타박하는 페터에게 말했다.

내가 뭐랬어, 이번 녀석은 정말로 까다롭댔잖아! 설마 자기가 직접 등장인물이 되어 나타날줄은 몰랐다고.”

그렇다고 날 때려? 젠장 증거가 없으니 시말서를 쓰라고 할 수도 없잖아. 레니, 괜찮아?”

페터가 수건을 건네고나서야 그는 모든 상황을 알아챘다. 축축한 줄기가 말라 비틀어진채로 옆에 널부러져 있었다. 10년동안 있었던 모든 일들이 마치 진흙처럼 녹아내려갔다. 그의 머릿속에는 이제 단편적인 기억들만이 사이사이에 남아버리게 되었다.

하하... 정말 다행이야, 아저씨가 계속해서 날 환각으로 몰았잖아. 그래도 페터가 와줘서 다행이야, 덕분에-”

그리고 그 기억들에는 10년 동안의 그리움이 서려있었다. 레널드는 알렉스가 말을 채 다 끝내기도 전에 연인을 끌어안았다. 몰라봤다는 미안함과 속았다는 서러움, 그리고 한시간도 안되는 시간이었지만 체감상으로 10년을 넘는 세월을 괴로워했던 그리움에 그는 연인을 붙잡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행여나 지금이 꿈이 아닐까 생각하며 자신과 알렉스의 살을 꼬집고는 갑자기 코와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다시 귓가에 울리는 급박한 심장소리가, 체온이, 명정한 정신이 모든 것이 다 꿈이 아니란 것을 확신하고나서야 움직임을 멈출 수 있었다. 그는 연인의 어깨에 턱을 올려놓고 눈을 감고서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아저씨, 잠깐만... 다른 시민들이 보잖아...”

알렉스는 평소 그답지 않게 매우 당황해하며 주위를 쳐다보았다. 그나마 둘의 관계를 알고 있던 동료들이었다는 점이 다행이었지만 그래도 갑작스레 타인들 앞에서 애정표현을 받는 것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레널드는 다시는 놓지 않겠다는 양 알렉스의 옷자락을 붙잡고는 떨어질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어디있었어, 샌디.”

“...계속 옆에 있었어. 아저씨가 깨어나지 않을까봐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간신히 들어갔건만 아저씨가 날... 진짜라고 믿어주지 않아서 얼마나 무서웠는데. 깨어나지 않을까봐.”

결국 그는 포기했는지 조심스레 연인의 등을 조심스레 두드렸다. 페터는 몇 번 헛기침을 하더니 대원들을 데리고는 급히 알렉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러자 알렉스는 천천히 연인의 몸에 팔을 두르고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다행이야 아저씨. 이제 알았지, 난 환영 따위가 아니라고. 정말 어떻게 그렇게 끝까지 안믿어줄수가 있어?”

미안해, 정말로 미안해 샌디. 샌디. 알렉스. 알렉산드로.”

목소리엔 약간의 물기가 섞여있었다. 그리고 그 물기에 10년 동안의 고통이 조금씩 녹아내려가다 이내 자취를 감추었다. 모든 것은 결국 꿈일 뿐이었고 결국 꿈으로 끝났다. 레널드는 그 사실에 매우 감사해하며 애인의 이마에 코를 맞추었다. 그러자 결국 포기했다는 듯, 검은 고양이도 연인의 코에 코를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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