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ANDALIEN
알렉스레니 _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본문
아동학대 및 비속살해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어폰 너머에서 들리는 목소리에는 불안함과 분노가 동시에 담겨있었다. 목소리는 무어라 중얼대다 이내 문열리는 소리와 함께 짜증을 터뜨렸다. 그러자 아이가 깜짝 놀라는 소리를 내뱉었고, 이내 울음으로 이어졌다.
레널드는 울음소리에 짜증을 내면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길 맞은편에 위치한 쇠락한 아파트의 3층, 제일 왼쪽 창문의 불빛은 노란색이었다. 창문 너머로 목소리의 주인공의 그림자가 길게 비추었다. 젠장! 남자는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레널드는 어서 남자가 자식이 우는 소리에 더욱 더 짜증을 내길, 그래서 알렉스를 차로 치었을 때처럼 어서 아이에게 위해를 가하기를 빌고 또 빌었다. 아이는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었는지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울음소리는 잦아들긴 했지만 멈추지는 않았다. 이윽고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이어폰 너머로 들려왔다. 그는 행여나 웨이터에게 들킬까, 조심스럽게 어플을 켜고선 화면을 확인했다. 좁고 낡은 거실 안이 부감으로 비춰져 있었다. 아이는 역시나 낡고 냄새가 나는 소파에 웅크려 앉아있었다. 남자는 매우 짜증이 났는지 조용히 하라고 아이를 향해 소리치고는, 아마 실수로 떨어뜨렸을 유리컵 조각을 줍기 시작했다.
‘...젠장.’
이제 곧 선고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2년 동안의 긴 재판을 어떻게든 끌고 또 끌고왔건만, 레널드는 초조함에 물도 제대로 마실 수 없었다. 그의 목은 마치 낙인을 집어삼킨 것처럼 뜨거웠지만 물이나 술같은 것들로는 식힐 수 없었다. 그의 목을 식힐 수 있는 건, 이 달아오른 머리를 진정시킬 수 있는 건 오로지 남자의 행동뿐이었다.
‘어서 목을 졸라. 어서...!’
그러라고 그는 남자의 변호를 맡았다. 그러라고 그는 결정적인 증거를 제 손으로 숨겼다. 레널드 헬하우스는 이 남자가 법의 심판보다는 더한 심판을 받기를 원했다. 그도 자신의 소중한 것을 잃기를 바랐다. 그래야 연인을 잃어버린 제 심장의 빈구석이 채워질 것만 같았다.
아이는 결국 지쳤는지 울음을 멈추고는 아빠를 향해 무어라 말하기 시작했다. 눈물섞인 목소리는 제대로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대략 뜻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아빠가 이러는게 싫다고, 변호사 아저씨를 만날때마다 항상 화를 낸다고 말이다. 당연했다. 레널드는 변호사로서 그를 만날때마다 계속해서 남자를 압박했었다. 증거에 대한 이야기를 흘리거나 아이에 대해 어떻게 할거냐고 계속해서 질책하고, 남자의 주변에서 의지할만한 시민을 쳐냈다. 남자가 행여나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할 기미가 보이기만 하면 사건을 핑계로 그를 만났다. 직장까지 포기하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레널드는 아주 훌륭한 멍석을 깔아둔 셈이었다. 만약에 이번 사건이 잘 풀리지 않는다면 당신은 장기형을 받을텐데 아이는 어떻게 할겁니까? 아버지가 수감자가 되면 사회에서 외면을 받을 가능성이 많죠. 그는 은연히 남자의 앞에서 다른 동반자살 이야기를 꺼내기도 하면서 그를 내몰았다. 다행히도 남자는 그다지 교육을 받은 시민은 아니었기에 레널드의 계책을 알아채지 못했다.
‘빨리 해, 빨리.’
그 아저씨 안 만나면 안돼?
빨리 너의 소중한 것을 네 손으로 없애버려, 그는 계속해서 빌고 또 빌었다.
아빠는 나보다 그 아저씨가 더 좋아?
시끄러워! 남자가 크게 신경질을 내다 이내 흐느끼기 시작했다. 아이의 말에 흔들린건 남자뿐만이 아니었다. 레널드는 경악에 어린 표정으로 화면의 검은 악마에 시선을 집중했다. 아저씨는- 알렉스의 목소리가 다시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아저씨는 나보다 일이 더 좋지? 전화속의 너는 투정을 부리며 그렇게 말했었다. 레널드는 그가 마지막으로 들었던 목소리가 튀어나오자 더 이상 화면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는 액정을 끄고는 다시 아파트 창문에 시선을 집중했다.
네가 뭘 안다고 그래!
남자는 폭력전과가 있었다. 그리고 그는 아이를 끔찍이도 사랑했다. 레널드는 그의 변호를 맡은 순간, 그가 궁지에 몰린다면 모든 것을 놓아버릴 타입이란걸 알아챘다. 그는 아이를 과보호했다. 자신의 시선에서 아이가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할 정도였다.
옛날처럼 같이 놀러가자. 같이 쿠키도 굽고, 옛날에는 자주 놀아줬잖아.
아이의 목소리가 점점 잠겨갔고, 남자의 신음소리도 점점 더 커졌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레널드도 눈꺼풀에 힘을 주었다. 그는 차마 빛 아래에서 그 광경을 상상할 수 없었다.
그 아저씨 이젠 싫어.
아이의 검은 눈동자가 눈앞에 떠올랐다. 눈 속에서 진득하게 무언가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심장이 마구 자맥질을 하며 그 열기를 더했다.
‘어서, 어서!!’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는지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는 결국 모든걸 포기했는지 힘이 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미안해, 정말로 미안해. 아빠가 곧 먼 곳으로 가야할 것 같아. 클라우스는 아빠랑 떨어지는게 싫지?
아이가 울음을 터뜨린다.
싫어! 가지마, 아빠! 가지마!
레널드의 이가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머릿속에서 대화가 영상으로 그려졌다. 미안하다는 듯 아이를 껴안는 아버지, 아이는 아버지를 품에 안고는 떨어지기 싫다고 울며 고개를 마구 젓는다.
클라우스, 우리 사랑하는 아들... 아빠와 함께 좋은 곳으로 갈까?
드디어, 레널드는 급히 눈을 떴다.
좋은 곳 어디?
그는 급히 아파트 창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침내,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순간 그가 느낀 것은 환호라던가 기대에 찬 희열이 아니었다. 분명 하루종일 커피말고는 아무 것도 먹은 것이 없건만 속에서 구역질이 올라왔다. 심장은 다시 미친 듯이 그의 몸속에서 뛰기 시작했다.
거기는 아빠랑 클라우스랑 헤어질 일이 없는 곳이야.
아직은 안된다. 그는 당장에라도 일어나려고 하는 몸을 간신히 억눌렀다. 남자가 아이를 죽이고 자살을 시도하려고 할 때가 아니면 의미가 없었다. 그때 그를 살려야, 남은 평생동안의 삶을 괴로워하며 지내게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정말로? 거기라면 아빠랑 같이 있을 수 있어?
아이는 아빠를 껴안고 있었는지 목소리가 뭉개져서 들려왔다.
그래, 아빠와 평생 같이 있을 수 있어.
남자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와 더불어 레널드의 몸도 떨리고 있었다. 곧,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다. 그렇게되면 샌디, 너도-
아빠랑 같이 있을 수 있다면 좋아. 정말 사랑해, 아빠.
그래, 나도 사랑-
레널드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동안 긴 시간을 괴로워했건만, 그동안 긴 시간을 이 순간을 위해 견뎠건만, 그는 이유도 모른 채 급히 아파트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로, 나가는 길에 커피를 쏟아 옷에 묻었지만 그것도 개의치 않은 채로 급히 3층까지 올라가 문을 두드렸다. 마치 살려달라는 양 그는 맹렬히 문을 두드렸다. 제발 늦지 않았길, 부디 제 눈앞에 아이의 시신이 보이지 않기를 바라며 그는 주먹으로 문을 두드렸다.
“제발 여세요, 슈발츠씨! 슈발츠씨, 레널드 헬하우스입니다! 제발... 제발 열어주세요. 부탁입니다! 슈발츠씨!!”
급박한 발걸음이 들리더니 이내 문이 열렸다. 무슨 일입니까, 이 시간에. 꽤나 울었는지 눈 주위가 붉게 부어있었다. 하지만 레널드는 그런 것도 신경쓰지 않고는 남자를 옆으로 밀치고 급히 거실로 들어갔다. 아이는 역시나 아빠와 마찬가지로 퉁퉁 부은 눈으로 레널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아...하....하하....하하하....”
아이가 무사한 모습을 확인하니 먼저 터져나온건 웃음이었다. 그는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과 잘못을 저지를뻔 헀다는 것을 인정했다. 조금만 더 있었으면 남자가 아이를 죽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조금만 더 있었다면 아이는 죽었을 것이다. 아저씨? 아이가 의아한 눈으로 레널드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입에서 계속해서 안도감 섞인 허탈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오다 이내 흐느낌으로 변하고 말았다. 악문 이 사이로 애써 참았던 울분이 터져나왔다. 무리야, 무리야 샌디. 난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어.
아이가 무슨 일이냐며 레널드의 바짓자락을 붙잡았을 때, 그는 그대로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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