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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ANDALIEN
구름 한점 보이지 않는 푸른 하늘에서는 연신 따가운 햇볕이 내려쬐고 있었다. 주변 빌딩가의 바닥에는 열기로 인해 아지랑이가 피어올라왔고, 뺨을 스치는 바람마저도 상당한 열기와 습기를 띄고 있어 부채질도 괴로웠다. 온 몸에서는 땀이 스며나오고 있었고 덕분에 얇은 원피스에 닿는 살갗마저도 불쾌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식당이 밀집한 거리 곳곳에는 점심시간을 마친 직장인들이 너나할것 없이 부채를 부치거나 차가운 음료를 마시며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었다. 식당 문이 열리면 차가운 에어컨 공기가 잠시 그녀를 더위를 식혀주다가 문이 닫힘과 동시에 이내 사그라들었다.그녀는 나름 괜찮다는 표정으로 편의점 얼음컵에 담긴 음료수를 빨아들었다. 분명 이 더위는 그녀가 원래 사는 곳에 비하..
유난히 찬바람이 부는 12월 초, 헬렌 조는 어벤져스 타워로 향하는 내내 입고 있던 코트의 깃을 올려세웠다. 그렇게나 강하고 무섭다는 서울의 추위로 어떻게든 이겨냈었지만 그건 한국에서의 일, 미국에서는 미국 나름대로의 추위에 기가 질려 있던 참이었다. 그녀의 한손에는 커다란, 공항에서나 쓸법한 캐리어만한 가방이 들려있었다. 한손으로 거뜬히 드는 모습을 보면 분명 무게는 가벼웠을 것이나, 그 크기때문인지 타워에 들어서서 경비원의 신분확인을 받고 짐검사를 받는 내내에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 모두들 그녀를 마치 이 타워에 살고 있는 '그' 사람처럼 엄청난 괴력의 소유자로 보는 듯 했다. 가뿐히 검사를 마치고 최상층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에 올라서자마자 그녀는 이 타워에 찾아온 목적에게 전화를 걸었..
냇배너 의 연성문장은 '만약이라는 두 글자가 오늘 내 맘을 무너뜨렸어.'입니다. 그녀가 그의 부재를 처음으로 실감하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소코비아 사태가 터지고 두어달이 지나서였다. 그 두어달의 시간동안 그녀는 일련의 사태에 대한 책임공방으로 매우 바쁜 나날들을 지냈었다. 컴퓨터상의 오류라는, 누가 들어봐도 믿어주지 않을법한 변명같은 토니 스타크의 해명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쉽게 수용되지 않았다. 덕분에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 완다와 울트론의 생산물인 비전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은 지옥같은 청문회에 시달릴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쉴드 사태로 이미 청문회에 익숙해있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자신들을 둘러싼 상황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하루같은 바쁜 생활과 그에 대한 언급이 너무나도 자주 ..
토니 스타크는 브루스 배너가 퀸젯에서 내리자마자 다짜고짜 주먹을 날렸다. 그리고 모두들 경악에 찬 표정으로 그를 말리려고 달려가자 배너의 정강이를 발로 걷어차려고 했다. 간신히 캡틴이 토니를 아예 땅에서 들어올렸고, 충격에 휩싸인 배너를 모두가 안심시키려 노력했다. 토니의 입에서는 육두문자가 쏟아져나왔다. 그리고 세시간이 지나서야 화가 풀렸는지, 언제 폭력을 가했냐는 냥 천연덕스럽게 배너에게 악수를 건네었다. 물론 배너가 그걸 단순히 악수로 되갚아주었을 리는 없었다.언론에서는 하나같이 그동안 잠적해 있었던 브루스 배너의 행적에 대해 상세하게 다루었다. 그가 2년 동안 숨어살았다던 섬마을에는-도대체 누가 정보를 흘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군 관계자와 매스컴들이 들이닥쳤다. 결국 마을의 평화가 깨진 것을 확..
푸르른 나뭇잎으로 가려져있던 햇빛이, 숲을 빠져나오자마자 그들에게 쏟아졌다. 처음에 나타샤는 앞으로 나아가면서도 눈이 부셔 제대로 눈을 뜨지 못했다. 그녀는 손으로 햇빛을 가리고는 조심스레 주위를 살펴보았다. 방금 물리쳤던 무리들이 전부였는지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혹시 몰라 조심스레 평원에 널리 자라잇는 풀에 몸을 숨기며 나무를 향해 나아갔다. 고목은 언제 숲속에서 그런 난동이 있었느냐, 시치미를 떼는 것처럼 고고하게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시끄럽게 주위에서 울렸다. 하늘은 너무나도 맑아서 구름 한점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조심스레 몸을 움직이며 나무에 도착한 것은, 성당을 나서고 2시간이 넘어서였다. 그녀는 시간을 확인하며 안정권 내에 온 것을 자축하고서는 ..
메리켈의 말로는 성당에서 접선지인 성녀의 나무까지는 빠른 루트를 통해 걸어서 약 1시간 반정도가 걸린다고 했다. 접선은 3시간 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배너는 급히 간소하게 짐을 꾸리고는 사제관의 문을 열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아가니 새소리가 시끄럽게 그의 귓가에 울리고 있었다. 나타샤와 메리켈은 벌써 출발할 준비를 하고 있었고, 요셉은 그들을 담담히 바라볼 뿐이었다.“브루스, 이제 가요. 고마웠어요, 신부님. 부디 신부님에게 행운이 가득하기를 빌게요.”“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당신들의 행복을 빌어야겠지요. 부디 주님의 은총이 내려주시길 기원하고 있겠습니다. 무엇 도와줄 것은 없는지요?”“아뇨, 이젠 괜찮은것같아요.”나타샤는 흐뭇해하며 미소를 짓다가 배너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작은 가방..
메리켈을 진정시킨 뒤에 내보내서야 그도 간신히 침대에 몸을 누일 수 있었다. 그동안 있었던 일들이 꽤나 몸에 쌓였는지 온 몸이 뻐근하고 피곤했다. 아이는 아마도 타고 왔을 자전거를 타고 마을로, 가족이 기다리고 있을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는 돌아갈 장소를 생각해보았다. 대학시절에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팔아버린 유년시절에 살던 집? 대학에 다닐 때 살았던 자취집? 아니면 칼버에서 근무할 때 살았던 아파트? 정확히 말하자면 그때엔 자신의 집은 서재로, 베티의 집에서 주로 살았으니 베티의 집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엔... 그는 옆으로 돌아누워 팔을 베개 삼아 베고는 여러 상념에 허우적댔다. 밖에서는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지 토독거리며 빗방울이 지붕과 차양, 창문을 ..
막 수건으로 닦은 머리카락은 물기가 어려 있었다. 브루스 배너는 피곤함에 몰려오는 잠과 사투를 벌이며 침대에 제 몸을 않혔다. 샤워를 막 끝내고와서인지 한기와 온기가 뒤섞여 그는 당장에라도 이불속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헤어 드라이어를 든 연인이 그것을 막았다."머리 안말리고 자면 더 안좋아진다니까요. 요즘 머리카락 많이 빠지는거 같지 않아요?""급성 탈모는 피폭의 전형적인 증상 중 하나에요, 굳이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나름 농담이라고 던진 말이었지만 나타샤로부터 대답이 나오지 않는걸 보고나서야 그는 자신이 말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성급히 해명을 하려고 했으나 연인은 그 해명도 기다리지 않고 기계의 버튼을 올렸다. 따뜻한 바람이 나오는 시끄러운 소리는 방안에 울리던 모든 소리들을 지워버렸다..
당신이 내쉬는 한숨은 언제나 나에겐 새들이 노니는 정원에서 불려지는 자장가로 들려요. 내 언어의 세계에선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 한마디로는 표현할 수 없네요.아이가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 그는 심연속에서, 눈을 감고 어둠에 몸을 흘러보내며 그 흥얼거리는 아주 익숙한 노래를 듣고 있었다. 그 노래는 한동안 그가 자장가로 여겼던 노래였다. 음정은 맞지 않았고, 박자도 틀린 구석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못 들어줄 정도는 아니었다. 진짜로 자장가를 부르듯 아이의 자장가소리는 나지막하게,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와 함께 그의 체내에 조용히 퍼져갔다. 당신은 멧비둘기인 빌과 쿠가 사랑할 때 나누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나요? 그건 우리가 키스할 때, 두 입술이 만드는 마법과도 같은 음악이랍니다.아이의 목소리는 어느새 허스..
수술실 바깥의 복도에는 냉기와 함께 병원 특유의 냄새로 가득했다. 간헐적으로 켜져있는 형광등 덕택에 복도는 사뭇 어둑어둑했다. 공기또한 침체되어 있는데다 밤이니만큼 돌아다니는 사람도, 소리가 날만한 일도 없었다. 그 덕분에 나타샤는 자신의 5살배기 딸을 보호자소파에 눕히고 무사히 잠을 재울 수 있었다. 아이는 수술대에 올라가 있는것이 누구인지, 왜 자신이 이곳에 가만히 기다리고 있어야할지도 모른채 소파위에서 새근새근 잠들고 있었다. 아이의 자그마한 몸 위로 덮힌 유치한 애니메이션담요가 조그맣게 오르내리는걸 보고 있는 나타샤의 기분은 초조하고 불안했다. 브루스 배너가 격심한 두통을 호소하고 입원한 것이 닷새 전, 뇌에 박혀있던 파편이 문제를 일으킨 것을 확인한게 이틀 전이었다. 갑작스레 정해진 수술에 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