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ANDALIEN

Lullaby of Birdland 08. 본문

AVGS/Lullaby of Birdland(完)

Lullaby of Birdland 08.

rabbitvaseline 2016. 3. 18. 23:26




당신이 내쉬는 한숨은 언제나 나에겐 새들이 노니는 정원에서 불려지는 자장가로 들려요. 내 언어의 세계에선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 한마디로는 표현할 수 없네요.

아이가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 그는 심연속에서, 눈을 감고 어둠에 몸을 흘러보내며 그 흥얼거리는 아주 익숙한 노래를 듣고 있었다. 그 노래는 한동안 그가 자장가로 여겼던 노래였다. 음정은 맞지 않았고, 박자도 틀린 구석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못 들어줄 정도는 아니었다. 진짜로 자장가를 부르듯 아이의 자장가소리는 나지막하게,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와 함께 그의 체내에 조용히 퍼져갔다.

당신은 멧비둘기인 빌과 쿠가 사랑할 때 나누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나요? 그건 우리가 키스할 때, 두 입술이 만드는 마법과도 같은 음악이랍니다.

아이의 목소리는 어느새 허스키한 여자의 목소리로 변했다. 그는 그녀가 그 노래를 속삭이는 것을 단 한번 들은 적이 있었다. 캡틴과의 전화도중 그녀의 노랫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그에게 전해졌다. 그때와도 같은, 그 자그맣고도 소중한 노랫소리가 그의 귓가에 울렸다가 이내 사라졌다. , 나타샤. 그의 기억이 어느 순간으로 점프된다. 어느새 노래에는 반주가 곁들어진다.

그의 손에는 커피잔이 들려져 있었다. 시선은 져가는 태양을 향해 가 있다. 이미 빌딩 숲속에 절반쯤 제 몸을 숨긴 태양은 하루의 마지막까지 제 불꽃을 자랑하듯 주위를 붉게 밝히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나타샤는 커피보다 홍차랬던가, 연하게 탄 커피를 마시며 그는 마치 석양을 연상시키는 사람을 떠올렸다. 마지막까지도 자신의 위대함과 강함을 자랑하는 태양처럼 그녀는 강했고, 넘어져도 다시금 일어나 주위를 밝혔다. 그런 그녀와 비교하자면 자신은 언제나 사람들과 떨어져 지내야 하는, 마치 명왕성 같은 사람일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저도 모르게 쓴웃음이 지어졌다. 명왕성이라니, 마치 어벤져스에서 쫓겨난 사람같지 않은가. 그는 다시금 커피향을 즐겼다. 귀에는 헬렌과 같이 하는 연구를 위해 가동하는 기계의 모터음과 함께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녀가 부르는 노랫소리. 그리고 슬퍼하는 늙은 버드나무가 있었죠, 그는 자신이 어떻게 울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어요. 그리고 나도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는 그를 따라하며 울겠죠, 만약 당신이 내게 이별을 말한다면 말예요. 노랫소리는 점차 아이의 울음소리처럼 높아졌다. 차마 다 부르기도 전에 노래가 끊기자, 그의 의식도 천천히 수면 위로 올라왔다.

 



배너가 눈을 떴을때 맨 먼저 보인 것은 아이의 덥수룩한 머리카락이었다.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이 아주 잘게 위아래로 움직인다. 아이는 의자에 앉고서 상체를 침대에 기댄채 잠의 호수에 빠져있었다. 당분간은 바깥으로 나올 생각이 없던지 너무나도 깊게 자고 있는 모습에, 배너는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협탁위에 있는 스탠드는 약한 오렌지색 빛을 방안에 드리우고 있었다. 덕분에 그는 어둠속에도 자신을 둘러싼 상황들을 파악할 수 있었다. 아마도 밤인듯, 창문 너머의 세계는 암흑으로 가득했다. 방 안에는 수많은 기도서와 신앙관련 서적, 성물, 십자가들로 채워져있었다. 방 한켠에 붙여져있는 헤비메탈 밴드의 포스터가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이렇게나 신앙심깊은 사람도 섬에서 찾아보긴 힘들 것이다. 습기에 눅눅한 침대보는 보기보단 고급이었고, 꽤나 정결하게 자신의 순백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렇게나 관리된 침구류, 수많은 가톨릭 관련 물품들과 혀를 내밀고 있는 헤비메탈밴드의 포스터를 가지고 있을 사람은, 그가 알기로는 이 섬에서 단 한명뿐이었다. 그는 방의 주인공을 몇번 마주치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주로 축제나 마을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서였다. 요셉 도나르, 섬에 단 하나 있는 성당의 신부. 만약 토르가 지성과 신앙심을 가졌다면 이렇게 변하지 않았을까 할 정도로 호쾌하고 당당한 남자였다. 둘은 주로 아이들의 교육에 관련된 이야기를 짧게 나누다가 헤어졌다. 배너는 종교에 호감을 갖지 않았고, 요셉 또한 응급조치는 할 줄 알았으므로, 굳이 서로를 일부러 만날 필요는 없었기에 그렇게 얼굴이나 익히는 수준의 관계가 되었다.

그는 이 상황이 상당히 어색하면서도 당황스러웠다. 그의 기억은 총알을 맞고 헐크로 변하기 직전, 그녀가 자장가를 불러 진정시켜주었다는 것으로 끝나있었다. 아무래도 주사를 맞은 것 같은 기억도 있었으나 그건 너무나도 흐릿해서, 마치 자장가마저 꿈이 아니었나 착각이 들 정도였다. 상의는 어디론가 사라져있었고 그 자리를 여러겹으로 둘러싼 붕대가 차지하고 있었다. 그는 조심스레 자신이 총알을 맞았던 부위를 더듬어보았다. 예상대로 아무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똑똑-

노크소리와 함께 숨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던 적막이 깨졌다. 아이는 무슨 소리인가 싶어 소리를 내며 잠에서 깨었고 노크를 한 이유도 없이 불쑥 문이 열렸다. 여름용 얇은 검은 반팔 수단을 입은 신부는 자신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풍성한 금발머리카락을 대충 흘러내리도록 묶은 상태였다. 강독이라도 했는지 한손에는 성경이 들려있었다. 그는 배너가 자리에서 일어난 모습을 보자 환히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다행입니다, 선생님! 자리에서 일어나셨군요."

성경을 장식장 위에 아무렇지도 않게 두고서는 배너를 품에 안았다. 북유럽출신답게 커다랗고 다부진 체격은 언제나 배너로 하여금 외계의 왕자님을 떠올리게 하였다. 다행이라고 몇번이나 말하고나서야 배너의 품에서 떨어졌다. 메리켈에게 잘했다고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성녀님을 모셔오라는 배너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꺼내었다. 메리켈은 배너에게 다행이라고 말하며 빠른 걸음으로 방에서 사라졌다. 아이가 사라지자 밝은 미소만을 짓고 있던 요셉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가셨다. 배너도 분위기를 알아차렸는지 난처한 표정을 벗겨내고는 요셉을 향해 시선을 집중했다.

"...들으신대로 성녀님이 데려왔습니다. 정말로 놀랐습니다, 결국 올두르가 일을 쳤군요."

"...신세를 지게 되었군요, 정말로 죄송합니다."

"상처를 입은 곳은 괜찮습니까? 오늘 보았을때엔 상당히 피가 많이 나오고 있었습니다만,"

그는 다시금 제 어깨에 시선을 돌렸다. 붕대너머라 느껴지진 않았지만, 아마 상처자국도 감쪽같이 사라져있을 터였다. 이 자리에서 붕대를 풀어 상처자국을 확인시켜주는건 신부에게도 별로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그는 고맙다고, 언제나 그가 난처한 상황에 처할때마다 짓던 미소를 다시 얼굴에 띄었다. 그 모습에 요셉은 얼굴을 찌뿌렸지만 아무 쓴소리도 하지 않았다.

"아마 괜찮을겁니다, 그녀가 응급처치는 확실히 해주었을테니까요."

"보자마자 놀랐습니다, 너무나도 선명한 붉은색이라 정말로 성녀님이 나타난줄 알았습니다...“

"성녀라고 불리기에는 많이 폭력적이죠. 아뇨, 괜찮습니다. 저도 이젠 움직일 수 있습니다... 다만, 왜 메리켈이 여기에 있는거죠?"

배너의 질문에 요셉의 일이 열리려는 순간이었다. 다시 문이 열리며 나타샤가 방안에 들어섰다. 그녀는 평소에는 절대로 입지 않을 길다랗고 펑퍼짐한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그래도 총알은 빼내야하지 않겠어요, 박사님?"

"...나타샤?"

그녀는 한쪽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며 요셉과 배너의 사이로 끼어들었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배너의 어깨에 싸여져있던 붕대를 잘라내 풀어내었다. 배너과 요셉은 상당히 난감한 표정으로 나타샤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지막 조각하나까지 바닥에 버리고나자, 언제 총알이 박혔다는 냥 깨끗하게 아문 살갗이 보였다. 요셉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부끄럽기까지 했다.

"..역시, 6시간정도면 아물군요. 스타크에게 말하면 상당히 놀라겠어요, 당신도 이런 적은 더더욱 없었잖아요. , 신부님. 걱정마세요, 무언가 이상이 있는 건 아니니까요."

그녀는 피가 묻어있는 붕대조각들을 비닐봉투에 하나하나식 담고서는 매듭을 지었다. 방사능쓰레기라고 농담스럽게 말하며-농담이 아니었지만- 자신이 갖고 왔던 백팩에 집어넣는다. 그리고는 방 한켠에서 의자를 갖고오더니 그 위에 마치 주저앉듯 몸을 앉혔다.

"좋아요, 이제 충분하네요."

"무어가 말이죠?"

"...우린 완전히 도망자신세에요, 브루스. 메리켈에게 들어본 바로는 역시나 당신의 예상대로 쓰레기는 무사히 풀려났더군요. 도리어 나를 고소하고는 잡아오라고 경찰에 말했던 모양이에요. 정말 누나도 그딴 쓰레기를 얼마나 감싸주는지 생각지도 못했어요. 당신의 말대로예요, 정말로 강하다 못해 징그럽더군요."

"...결국..."

"증거불충분이에요, 애석하게도 나를 붙잡으러온 경찰도 그렇게 공격해버렸으니 더더욱."

"하지만 그때는-"

"맞아요, 그때엔 그냥 중요참고인이니까 빨리 와달라고 경찰이 왔던 건데 일이 꼬여버린거에요. 그리고 쓰레기는 그걸 이용한거고요. 다행히 마을 사람들은 당신일이니까 쉬쉬하고 있다지만.. 아마 이곳에 숨어있는것도 곧 들킬거에요. 잔당들이 마을을 뒤집고다니고 있다니까. 원래라면 당장에라도 퀸젯을 부를 생각이었지만, 당신은 마취제에 헤롱거리고 있어서 도저히 언제 부를지 엄두가 나야 말이죠. 하지만 이젠 괜찮겠네요."

나타샤는 싱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언제라도 퀸젯에 연락을 취하려고 하고 있었고, 배너로서는 전혀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그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난 아직 가겠다고 말하지 않았어요."

"당신 허락은 이제 필요없어요. 쓰레기 그 인간이 경찰에 당신을 꼰지르지 않았을거라 생각해요? 나뿐만이 아니에요, 놈들은 당신도 찾고 있어요. 이 상황을 어떻게 벗어날건데요? 설마 이제와서 빅가이로 변하겠다는 말을 하는건 아니겠죠?"

"나타샤, 신부님 앞에서-"

나타샤는 가만히 대화를 듣고 있던 요셉을 바라보았다. 그는 어깨를 들썩거리며 나가줄까, 라는 시늉을 하였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오히려 그가 대화를 들어주는게 나으리라고 보았다.

"신부님도 당신이 누군지 알고 있어요. 브루스 배너. 몸 속에는 헐크라는 괴물을 가지고 있으며 급격한 분노나 흥분을 하면 그 괴물로 변하는-"

"나타샤!"

배너는 신경질적으로 그녀에게 소리쳤다. 굳이 지금 처한 상황들을 그녀의 입을 빌려 듣고 싶지 않았다. 더더욱 민간인이 있는 앞에서는. 요셉은 묘한 미소를 띄고 둘의 대화를 경청하고 있었고, 무슨 일이 일어났냐고 시치미를 떼고 있었다. 배너는 턱짓으로 문을 가리키며 나타샤에게 말했다.

"나가요."

"브루스!"

"지금은 당신과 어떤 이야기도 하고 싶지 않아요. 지금 머릿속이 어지러워서 미칠 지경이에요. 미안해요, 나타샤. 잠시만 나가줘요."

배너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바닥으로 누르며 얼굴을 찌푸렸다. 명백히 상대방의 말을 듣지 않으려는 의사표현이었다. , 나타샤는 혀를 차고서는 문을 향해 걸어갔다. 커다랗게 분노를 담아 문을 닫고 나가고나서야 배너의 입에서 한숨소리가 터져나왔다. 최악의 순간들이 시시때때로 그를 겨누고 다가오고 있는 모습에, 그는 눈을 감고 이 상황들을 무시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 상황들에게서 눈을 돌릴 수 없었다. 눈을 돌리기에는 이미 낭떠러지 끝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난 당신도 말한 거였습니다, 신부님."

요셉은 능글거리게 웃으며 나타샤가 앉았던 의자에 자리잡았다. 그는 뻐근하다는 듯 목을 돌리는 배너를 향해 입을 열었다.

"과연, 영화에서나 볼법한 광경이군요."

"부탁입니다, 그 이상은 말하지 마세요."

"데이비드 선생님, 난 선생님이 이 섬에 와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솔직히 여기 아이들은 내 힘만으로는 감당하기 힘들었거든요. 당신이 와서, 그나마 숨이 편해지더군요. 물론 당신의 사정은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주님은 자비로우신 분이니 일부러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아니, 주님을 핑계삼은걸지도 모르겠군요. 하긴, 그런 일들을 겪었으니 성당 근처에도 안왔던 이유들도 알겠고요. 저번 부활절때도 왕진이나 다니셨잖습니까. 당신이 교회근처에도 얼씬거리지 않는다는건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과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그동안 기회가 있어야죠."

"...아무도 모를거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내 착각이었군요."

"생각보다 이 지구라는 세상은 좁기 마련입니다. 여기가 배도 한척 다니지 않는 그런 곳이면 몰라도 여행객들도 지나다니는 곳이니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알아차렸을 겁니다. , 그 전에 친구가 찾으러 왔잖습니까."

배너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도 자신의 정체를 모르리라는 기대감과 자만심이 순식간에 수치심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요셉은 이 섬에서는 제법 바깥을 많이 돌아다니는 사람이었다. 그가 그 남자에 대해 어떤 소문, 기사라도 보았을 가능성이 컸고 결국은 현실로 다가왔다. 배너는 오만한 자신을 비웃었으며 신부가 자비로운 사람-정말로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이란 것에 안도했다. 요셉은 능글능글한 미소를 지으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선생님의 친구분의 말로는, 뭐 굳이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선생님이 도망쳐왔다는건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마을분들도 대충 눈치채고 있었고요. 일이 터졌을 때도 올 것이 왔구나, 하던 표정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곧 돌아가실테죠, 친구분이 데리러 왔으니까 말입니다."

"아뇨, 난 돌아가지 않을겁니다. 신부님도 제 정체를 아신다면, 제가 돌아갔을 때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는 대충 예상하고 계시겠죠. 저는 그런 지옥속으로 걸어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도망친다?"

배너는 순간 경악에 찬 눈으로 요셉을 바라보았다. 바튼의 집에서 자신이 나타샤에게 했던 말을 똑같이 되돌려받았기 때문이었다. 신부는 어깨를 들썩거리며 꽤나 정곡을 찔렀군요, 라며 천연덕스럽게 말하였다.

"선생님, 당신도 잘 알겠지만 도망치는 것만으로는 끝나지 않은 일들도 있는 법입니다."

배너는 아무 말도 내놓지 않았다. 묘한 긴장상태가 두 남자 사이를 채우다가 작은 노크소리로 깨졌다. 아이는 쟁반에 물병과 알약을 얹은 채로 방안에 들어오다가 배너의 진중한 표정에 저혼자 살짝 겁을 먹었다. 요셉이 웃으며 메리켈을 받아들이자 그제야 긴장이 풀렸다는 듯 협탁 위에 쟁반을 올려놓았다.

에이프릴이 그래도 모르니까 약을 먹어두라고 하셔서요..”

배너는 조심스레 손을 뻗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서는 고맙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요셉을 향해 턱짓을 하며 방에서 나가라는 무언의 행동을 했다. 신부의 입에서는 혀를 차는 소리가 났지만, 그는 아무 변명도 하지 않고 자애로운 신부의 모습으로 방에서 나갔다. 문이 닫히자마자 배너는 걱정에 찬 목소리로 말하였다.

메리켈, 어째서 여기에 있는거야? 네 어머니와 뤼미에는? 다른 사람들은-”

선생님, 괜찮아요. 일단 약부터 먹으시고 이야기할게요. 누나가 선생님에게 꼭 약을 먹이라고 했거든요.”

배너는 그 말에 재빨리 약을 삼켰다. 나타샤가 가져온 약이라 믿을 수는 없었지만, 그 어떤 약도 그를 쓰러뜨릴 수는 없을 터였다. 약이 넘어간 것을 확인하자 아이는 입을 열었다.

신부님께 연락이 왔었어요. 선생님도 들으셨겠지만 지금 마을은 쓰레기 일당들이 선생님과 누나를 찾는다고 난리가 났거든요. 그런데 선생님이 너무 많이 다쳐서 약이랑 도구가 필요하다고 해서... 그래서 호텔에 가서 이스프와 선생님에게 그것들을 받아온거에요. 괜찮아요, 절 따라오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고 일부러 골목길을 돌면서 온걸요. 당분간 이곳에 있다는건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할거에요. 알아차리더라도 선생님은... 곧 이곳을 떠나실테죠? 그러니까 그때까지는 들키지 않고 여기 있어도 될거에요.”

어느새 감정이 복받쳤는지 배너가 떠난다는 구절에서는 목소리에 울음기가 어렸다. 하지만 메리켈은 매우 장하게도 눈물을 흘리거나 칭얼대지 않았다. 배너는 제 앞의 아이가 이미 많이 컸다는 것에서 기뻤지만 곧 이 모습을 영영 볼 수 없으리라는 점에 슬퍼했다. 그는 다시금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고보면 꿈속에서 흥얼거리던 목소리는 메리켈의 것이었다. 아마 자신이 깨어나기 전까지 간호까지 해주었을 것이다.

“..고마워, 정말로 고마워 메리켈. 맞아, 난 여기를 떠나야만 해. 너도 알겠지만 난 원래 도망자였어. 갈 곳이 없었지. 그래도 난 너를 만나서 정말로... 정말로 행복했고 이 곳에서 살아갈 수 있었어. 그동안 고마웠다, 그리고 미안해.”

선생님!”

결국 아이의 눈에서는 눈물이 터져나왔다. 메리켈은 급히 배너의 품에 안겨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의 뜨거운 눈물이 살갗에 닿자, 마치 뜨거운 기름이라도 맞은 것처럼 닿은 부분이 화끈거렸다. 아이는 필사적으로 가지 말라는 말을 참고 있었다. 배너도 그것을 알았기에 아무 말도 내놓지 못했다. 그의 머릿속에서 지난 2년동안 있었던 일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사랑스러운 사람들 사이에서 모든 분노와 괴로움을 잊고 잠시나마 평범한 사람처럼 지낼 수 있었던 꿈만 같던 시간들, 그것은 정말로 길고도 긴 휴가였다. 하지만 그는 언젠가 이 행복한 순간들에 종지부를 찍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아이의 등을 천천히 토닥였다. 이제 이 섬에서 그가 있을 곳은 없었다. 다시 자신의 신세는 도망자가 되어버렸고, 도망자는 그 태생에 걸맞게 다음 목적지를 찾아야 했다. 그 목적지에서 여기서처럼 행복하게 살다가 다시 들키고 다음 목적지를 찾는다. 다음, 다음, 또 그 다음. 끝없는 방황을 하며 온갖 세계를 돌아다닐 것이 분명했다. 그는 메리켈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아이 특유의 땀냄새와 달큰하고도 비린 냄새가 맡아졌다. 도망을 쳐야했다. 그는 자신이, 혹은 누군가가 저지른 죄로부터 도망을 쳐야했다. 사람들의 시선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시선속에서도. 하지만 그는 도망만으로는 모든 것이 끝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메리켈...”

그는 결국 자신의 죄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말았다. 도저히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요셉의 말이 옳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도망치는 것만으로는 이 영겁의 굴레를 끊어낼 수 없었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그치고, 그 아이의 눈가를 닦아주었을때에야 배너는 자신의 눈에서도 눈물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메리켈은 선생님도 운다면서 서글픈 미소를 지으며 옷으로 배너의 눈가를 닦아주었다.

“...누나가 그러던데, 또 도망갈거라고 하던데, 편지 보내도 되요?”

배너의 입가에 쓴미소가 지어졌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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