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ANDALIEN

Lullaby of Birdland 7. 본문

AVGS/Lullaby of Birdland(完)

Lullaby of Birdland 7.

rabbitvaseline 2016. 2. 9. 00:36



굳이 집안에 들어갈 필요도 없었다. 더운 공기를 뚫고 오두막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4WD의 바퀴자국이 젖은 땅바닥 위에 선명히 남아있었다. 에이프릴의 말로는 아마도 다시 돌아간 모양이라고 하였지만, 깊게 파인 자국은 페달을 밟는 배너의 심장에 박차를 가한 듯 했다. 오두막 근처에 도착하여 간신히 숨을 고르자 보인 것은 우선 엉망이 된 울타리와 마당이었다. 울타리는 이미 여러 조각으로 분해된 뒤였고, 마당에는 쓰레기와 유리조각이 난무했다.

“...근처에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에이프릴은 급히 주변을 살피며 배너에게 말했다. 깨진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방안의 풍경은 더욱 살벌했다. 노트에 정리된 그의 자료들이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고 그 위로 발자국이 가득했다. 비커니 샬레니 하는 유리로 된 실험도구들은 이미 깨져버린 뒤였다. 그는 급히 문을 열어 방안을 다시금 확인하였다.

“...뭔가 손댄건 없나요?”

배너는 연구자료를 대충 눈으로 흘긴 뒤에 약을 보관하는 상자를 향해 걸어갔다. 예상대로 약의 이름도 모르던 놈들은 상자 안에 있던 모든 약을 가져갔다. 그는 진통제니 항생제까지 사라진걸 보고는 혀를 찼다. 그야말로 끝장을 내려는 생각인가, 하며 고개를 돌리자 바닥에 널부러져 있던 노트를 에이프릴이 집어올리고 있었다. 그녀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한 장한장 노트를 넘겼지만 이해하지는 못한 것 같았다.

자료들도 한번 확인해봐요, 당신의 연구라면 그깟 인슐린보다는 훨씬 더 쓸모가 있을테니까.”

그 연구자료를 가져갈 데가 어디에 있다고요.”

그는 퉁명스레 대답하였지만 빠르게 방안에 널부러진 노트들을 세아리고 있었다. 다행히도 놈들은 정말로 노트에 씌여진 연구들을 못알아보았는지 손도 대지 않았다. 그는 쪼그려앉아서는 차례차례 노트들을 챙겨서는 대충 책장에다 꽂아넣었다. 유리조각을 치우려 했지만 이미 손가락이 베여 그 이상은 치울 엄두가 나지 않아, 그저 대충 발로 한구석에 치워놓았다. 찬장의 마지막 빈 구석을 에이프릴이 채워 넣자 그는 힘없이 침대에 주저앉았다. 갑작스레 몸의 긴장이 빠져버린 듯, 깊은 한숨을 내뱉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동안 생각해왔던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뻔 했다는 생각이 들자 도저히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생각하기도 싫을 정도로 두려운 에메랄드색이 눈앞에 펼쳐지다가 사그라졌다. 그는 마른 세수를 한 뒤에 다시금 방안을 둘러보았다. 엉망진창, 그야말로 현재의 자신을 대변하는 단어였다. 더운 공기가 깨진 유리창 사이로 새들의 지저귀는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흘러들어왔다.

“...토니에게 연락할게요.”

에이프릴은 새소리가 지겹다는 듯 얼굴을 찌뿌렸다. 그녀의 말에 배너는 고개를 저었다.

“..난 돌아가지 않겠어요.”

억지쓰지말아요, 이 상황에 계속 여기에 남겠다고요?”

떠나야겠죠, 하지만 미국에는 가지 않겠어요.”

그는 체념하듯 그녀에게 시선도 맞추지 않은 채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그 기운빠진 모습에 에이프릴은 점차 짜증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어떻게든 그를 자신들의 품으로 되돌리고 싶었다. 그도 계속 거절은 하였지만 속으로는 망설이고 있는 것이 분명할 터였는데.

“...내가 알아서 할게요, 당신은 이만 돌아가줘요.”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축 처진 어깨가 그가 하룻밤새 많은 일들을 겪었음을 보여주었다.

“...정말 언제까지 도망치는게 가능하다고 보는거죠?”

그는 그 말에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도피는 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정체를 들키거나 위협을 받으면 곧바로 그 자리에서 피한다, 는 기나긴 도피생활의 첫 번째 원칙이었다. 치타우리 사태가 터지기 전에는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었을 때에도 도피를 택했다. 하지만 뉴욕에 정착하고 사람들을 사귀기 시작하면서, 그는 자신이 항상 사람들 한가운데에 서 있기를 원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 사단이 났지,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 마을 사람들과 쌓은 관계는 결코 가볍지 않았고, 오히려 뉴욕에 있었을 때와 비교하자면 상당히 깊다고도 말할 수 있었다. 의사선생으로 시작한 거짓관계였지만, 그는 그 관계에 나름 애착과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미 올두르의 패거리들은 화풀이를 시작했고, 다음 대상은 에이프릴-로 변장한 나타샤와 자신을 향할 것이 분명했다. 나타샤는 스스로 몸을 지킬 수 있으니 괜찮았지만, 만약 자신이 공격을 당한다면-

도망치지 마요.”

만약, 이라는 상념의 바다에서 그를 건져올린 것은 그녀의 목소리였다. 그는 고개를 들었다. 에이프릴은 전에 없이 강렬한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았다.

이대로는 아무 것도 끝내지 못해요. 계속해서 도망만 치는게 가능하다고 봐요? 이대로 모든 것을 숨긴 채, 모든 것을 묻은 채 피해만 다닐 생각이에요? 모든 것을 직면해요, 당신이 했던 수많은 것들로부터 눈을 돌리지 말아요. 말했잖아요, 나는 당신을 지켜주려고 온거라고.”

그래서에요. 그래서 더더욱 난 돌아갈 수 없는거에요. 나타샤, 난 이제 지긋지긋해요. 나도 알아요, 내가 책임져야 할 일들이 너무 많다는걸. 하지만 이런 생각은 해봤나요? 내가 원해서 이런 일이 일어났나? 내가 한거라고는 잠시 분노했다가 정신을 차린 것 뿐인데, 사람들은 날 괴물취급하고 손가락질을 해대고 총부리를 겨누죠. 난 아무도 죽이지 않았어요. 난 자살도 못한다고요.”

그는 멍하니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억누르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에이프릴은 재빨리 그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는 흥분하고 있었다.

박사님-”

맞아요, 울트론도 있었군요. 맞네요, 나타샤. 내가 책임져야 할 일들이 그런 것들도 있었군요. 하지만 그 이외의 것들은? 이 씨발 것이 저지른 일들은? 사람들이 많이 죽고 다쳤어요. 난 죽을 수도 없고요. 기껏 정착하려고 했더니 상황은 이상하게 돌아갔죠, 당신 때문에. 오해하지 말아요, 원망은 하지 않아요. 나도 이런 일이 언젠가는 터질거라고 생각해왔으니까. 하지만 어째서야? 왜 나는-”

그의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진정해요, 브루스 배너.”

, 난 충분히 진정하고 있어요. 이 씨발 것을 어떻게든 잠재우고 있으니까.”

배너는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동자에는 선명한 에메랄드 빛과 갈색이 마블링처럼 섞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에이프릴의 시선을 끈 것은, 그가 그렇게나 처절하게 자신의 신세를 말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흘리고 있던 눈물이었다. 그녀가 처음으로본 눈물, 그의 목소리가 울분에 점점 잠겨갔다.

나라고, 나라고 노력을 안 한줄 알아요? 내가 도망치는 걸 즐기고 있는 걸로 보여요?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었어요. 하지만 어떻게? 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다 해봤는데?! 하지만 죽는 것도 안돼, 내가 몇 번이나 방아쇠를 당겼는지 알아?”

눈물이 떨어진 마루가 짙은 색으로 변했다. 눈동자는 점점 에메랄드가 세를 확장하고 있었다. 그동안,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하였던 울분에 그는 잠겨가고 있어서, 그는 자신이 어떤 상태도 변해가고 있는지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젠장, 마치 괴물의 울음소리와도 같은 욕지거리를 내뱉고는 고개를 숙였다. 에이프릴은 급히 안면인식필름과 가발을 벗어던지고 나타샤로서 그에게 다가갔다.

브루스.”

그는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눈물이 흘러나오고 있는 눈과는 달리 입에는 너무나도 환한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나타샤는 손을 뻗어 그의 손을 잡아올렸다. 차갑고 상처가 어린 손가락과 손가락이 얽히자 그녀는 천천히 그의 눈을 응시했다. 마치 에메랄드를 눈 속에 박아넣은 것 같은 눈동자에 순간 넋을 잃을 뻔 했다.

“...이미 해가 졌어, 지금은 일어날 때가 아냐.”

오랜만에 불러서인지 아니면 잠에서 일어나려고 칭얼대는 아이가 무서운지, 자장가를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나타샤, 그만-”

부탁이야, 브루스. 물론 모두들 너를 원망했어. 하지만 그건 당신이 우리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겨서만은 아냐. 먼저 떠난건 너였잖아. 우리는 너를 그리워했어, 모두들 괴로워했지. 사람들은 너를 죽이겠다고 했어, 잡겠다고도 했지. 우리는 너를 걱정하며, 행여나 네가 잘 있을까 그것만을 생각했어. 왜 우리를 버렸어? 왜 떠난거야?”

그녀의 떨리는 목소리에는 두려움과 함께 애정에서 비롯된 분노가 서려있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당황스러움에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렸다.

아냐, 나타샤. 난 당신들을 버리지 않았어.”

넌 우리를 버렸어. 돌아가자, 네가 여기 있어서 좋은 일은 하나도 없을거야. 이대로 가 벌였던 짓에 눈을 돌리지 마. 그것도 결국 당신이 떠안아야 할 것들 중 하나일 뿐이야. 우리가 도와줄게.”

그는 다시금 고개를 젓고서는 나타샤의 손을 뿌리쳤다. 이미 초록빛 보석들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초조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 방안을 정신없이 돌아다니자, 나타샤는 진이 빠졌다는 듯 의자에 주저앉았다.

“...결국에는 나 혼자서 떠안아야 할 일이야.”

누가 너 혼자라고 했어? 내가 여기 온 이유를 그렇게나 말했는데도 믿지 못하겠어? 난 너를 보호하려고 온거야.”

배너는 나타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눈가에는 그가 볼 수 없었던 눈물이 어려있었다. 그녀는 결단에 찬 눈동자로, 그동안 쌓아왔던 질투와 분노를 모두 사그라뜨린 채 그를 바라보아 말하였다. 마치 의지를 다지는 외침 같았다.


내 목숨을 걸고 맹세할게, 절대로 당신 혼자서 모든 걸 떠안게 하지 않겠어!”


나타샤는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닫았다. 그녀로서는 그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브루스 배너에게 할 수 있는 말은 다 한 셈이었다. 배너는 그녀의 시선을 무시하지도 않은 채, 차마 말할 생각도 못한 채 그녀의 눈동자에 시선을 못박은 채 서 있었다. 둘 사이를 채웠던 더운 공기는 미지근하게 가라앉고 있었다. 상대방을 향하는 애정어린 안타까운 시선을 느낀 채 둘은 그대로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미묘한 긴장감이 둘 사이를 채웠다.

하아...”

긴장을 깨뜨린 건 배너의 허탈한 웃음소리였다. 한숨인지 아니면 웃음소리인지 헷갈릴 정도로 힘없는 소리가 그의 입에서 빠져나왔다. 하지만 동시에 굳어있던 그의 표정이 아주 살짝 누그라지다가 절박하게 바뀌었다. 입술이 조금씩 떨리다가 아주 조그맣게 열렸다. 마치 늪에 빠진 아이가 구원줄을 붙잡는 것 같은, 간절한 몸짓이었다. 그의 목에서 목소리가 나오려는 찰나, 까악 대며 커다란 새가 그를 방해했다. 그리고 동시에 나타샤도 시선을 바깥으로 향했다.

잠깐만,”

그녀는 급히 바닥에 있던 가발을 들어올려 머리에 뒤집어썼다. 안면인식필름을 부착할 틈도 없이 노크소리가 방안에 울리자, 그녀는 정말로 가까이서가 아니면 들리지 않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배너에게 말했다.

경찰 두명과 남자 한명이야, 쓰레기의 패거리인거 같아.”

노크소리가 격해지고 그와 동시에 거친 고함소리가 들렸다. 나타샤는 창문으로 등을 돌리고 급히 권총 한정을 장전했다. 배너는 시끄럽게 빨리 열라는 소리에 무슨 일이냐고 소리쳤다. 경찰의 다급한 목소리가 창문을 타고 들어왔다.

선생님! 진정하시고 일단 문부터 열어보세요. 어제 있었던 사건 때문에 들을 이야기가 있어요.”

갓 스무살을 넘긴 경찰관은 긴장하는 목소리로 배너에게 소리쳤다. 그가 잠시만 기다리라고 말하자, 문 너머로 욕설과 함께 빨리 여자를 넘기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경찰과 남자가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배너는 재빨리 나타샤에게 물었다. 긴박함에 그의 심장이 뛰고 있다는 것을 느끼자, 그도 점차 위험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나타샤?”

“...내가 셋을 부르면 문을 열어. 최악의 경우에는 이대로 달아나는 수밖에 없어, 그 때에는 내 뒤를 따라서 와.”

나타샤는 행여나 들릴세라 조그맣게 말하며 숫자를 셌다. 배너는 곧 열어주겠다고 말하고는 잠금장치를 풀었다. 하나, , 경찰과 남자의 실랑이는 더욱 더 격해진 듯 말싸움까지 벌여지는 것 같았다. 나타샤가 셋이라고 말하자 배너는 문 손잡이를 돌렸다.

굉음은 두 번 울렸다. 그리고 그 소리와 동시에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던 배너가 뒤로 쓰러졌다. 나타샤는 최악의 상황이라는 것을 인지하면서 문을 박차고 들어온 남자의 어깨에 똑같이 총알을 박아넣었다. 문 너머의 상황을 보니 남자는 경찰관 한명의 총을 빼앗아 그의 다리에 명중시킨 것 같았다. 다른 경찰관은 갑작스러운 여자의 공격에 어떻게 할까 제대로 판단도 내리지 못한 채 당황해하다가 떨리는 손으로 권총을 들었다. 제대로 조준도 못하고 손을 떨어대자, 그는 그 경찰의 복부에 잽을 날리고는 남자의 손에 있던 권총을 발차기로 날려버렸다. 남자는 매우 당황해하며 배너의 자전거로 달려나가려 했다. 그의 손이 손잡이로 향하자마자 나타샤는 무릎을 향해 총을 발사했다. 이윽고 커다란 신음소리와 함께 그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모든 상황을 지켜본 어린 경찰은 제대로 정신도 차리지 못한 듯 멍한 눈으로 사태를 지켜보고 있었다.

브루스!”

나타샤는 급히 방안에 쓰러져있던 배너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는 오른손으로 제 왼쪽 어깨를 누른 채, 눈을 감고 작은 신음을 내뱉고 있었다. 고통 때문에 숨은 잘게 떨리고 있었고, 어느새 오른손의 손가락 끝에서부터 초록색 기운이 올라오고 있었다.

눈떠봐, 제발 눈 떠, 브루스.”

나타샤는 방금 전과 마찬가지로 재빨리 가발을 벗어던졌다. 그녀의 몸은 죽음의 공포로 심히 떨리고 있었지만 배너를 품에 안은 팔에 힘이 빠지는 일은 없었다. 배너는 그녀의 헐크에 대한 공포가 사라지지 않았음을 깨달았지만, 그걸 말로 표현하기에는 자신의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았다.

안돼, 나타샤.”

그는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작게 뜨여진 눈꺼풀 너머로 에메랄드빛이 그의 눈동자를 빠르게 잠식하고 있었다. 속에서 무언가가 끓는 소리가 목을 타고 전해져왔다. 애써 심호흡을 하며 고통을 진정시키려 하고 있었으나, 이미 죽음의 공포가 그의 심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아드레날린이 흥분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자 그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대로라면 이 마을에서, 이렇게나 사랑했던 마을에서 그것으로 변하는 것은 피할 수 없을 터였다. 그것은 그가 절대로 생각하고 싶지 않아했던,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격통이 그의 몸을 타고 그에게 분노를 강요하고 있었다. 그는 이빨을 꽉 아물며 짙은 피냄새에 자신을 품에 안고 있는 그녀를 걱정했다. 피폭될거라고, 어서 피하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입을 열 수도 없었다. 나타샤는 주위를 급히 둘러보다 배너의 왕진가방을 뒤졌다. 그리고 그 속에서 어째서 들어있었는지는 모를 모르핀을 발견해내고선 급히 주사기에 넣었다. 이미 그의 한쪽 손이 파랗게 변해가고 있는 급박한 상황임에도 그녀는 침착하게, 그리고 조심스레 그의 목에 주사바늘을 대었다.

괜찮아요, 내가 여기에 있어요. 아직 일어날 시간이 되지 않았어요, 아직 일어나지 말아요.”

귓가에 속삭이는 자장가는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단호하게 목에 주사바늘을 꽂았다. 배너의 신음소리가 점차 얕아지고 동공이 급격하게 축소되었다. 나타샤는 그의 눈동자에서 에메랄드빛이 사라져감을 확인했다. 심장박동은 크게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헐크로 변하는 요소인 생명의 위협판단 요소, 즉 진통을 제거하는 것만으로도 큰 성과가 있었다. 그의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변해갈 때까지 나타샤는 계속해서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손가락을 점열하던 초록색이 점차 엷어져가다 사라지자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찮을거에요.”

그녀는 자장가를 부르는 모습을 지켜본 어린 경찰관의 상처를 지혈하고서는 소독제를 바르고는 붕대를 둘러주었다. 경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가뜩이나 심약한 성격에 여러 일이 터지자 그대로 정신줄을 놓아버린 것 같았다. 그녀는 그 유약한 모습에 혀를 몇 번 찬 뒤 다시 방안으로 들어갔다. 배너는 어느새 눈을 감고 얌전히 기절해 있었다. 이제 더 이상 이 곳에 있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그녀는 실감했다. 아무래도 올두르가 또 경찰에 무슨 손을 벌린 모양이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다시금 경찰들과 패거리들이 몰려올 터, 그녀는 배너의 겨드랑이 아래에 어깨를 받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근방에서 마을까지 배너를 데리고 가기에는 발각의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 곳에 있을 수만도 없었다. 퀸젯을 부르기에는 시간이 너무나도 많이 걸렸다. 그녀는 지금 당장 몸을 숨길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그녀는 그동안 메리켈과 다니면서 들었던 정보들을 머릿속으로 되새기다가 어느 한 구절에 멈추었다. 성당은 마을의 아닌 섬 중앙의 숲 언저리에 위치해 있었다. 그녀는 재빨리 성당이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경찰의 시선은 숲 너머로 사라져가는 그녀를 향해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녀가 어디로 사라졌는지는 말하지 못할 것이다.

 








 

"이제 슬슬 해가 질 시간이에요."

햇빛에 붉은색 머리카락이 반짝였다. 차가운 바람이 괴물의 뺨을 스쳤다. 석양같이 붉은 머리카락은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여왕님을 연상시켰다. 괴물은 조심스레 손가락을 내밀어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여자의 어깨가 움찔거리며 굳어졌지만 아쉽게도 괴물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여자는 조심스레 자신의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있던 손가락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분노로 뜨거워진 손가락을 몇 번이고 조심스레 만지자, 괴물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니 마치 흐느끼는 듯한 울음소리였을지도 모른다. 괴물은 언제나 그랬듯 몸을 돌리고는 도망쳤다, 아니 치려고 했다. 무언가에 걸린 듯 몸이 무너졌고 마법이 풀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마법이 끝내 다 풀리도록 흐느끼는 울음소리만은 멈추지 않았다. 어째서 ''가 그런 소리를 내뱉었는지, 제 몸으로 돌아온 남자는 알 수 없었다.










퇴고가 뭐죠, 먹는건가요(우걱우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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