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AVGS/요툰헤임 연작 (8)
CATANDALIEN
약혼자가 갑자기 콘서트 티켓을 던진 것은 이른 양궁수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직후였다. 대학원 준비와 새로 살 집 준비를 하느라고 몸이 여러개라도 부족할 정도로 바빴던 로키 오딘슨, 즉 클린트 바튼의 약혼자이자 아스가르드 왕국의 제 2왕자이자 요툰헤임 지방의 영주인 이 남자는 최근 바튼의 집에서 거의 반쯤 살다시피 하고 있었다. 옷을 가져다 입을 때를 빼고는 모든 생활을 그의 집에서 보내고 있었고, 최근 친구들 사이에서 돌곤 하던 기둥서방 가설을 파훼하기 위해서 집안일은 하지 않는 대신 하루 3시간동안 일해줄 가정부를 고용했다. 확실히 덕분에 바튼은 최근 쾌적한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방과후 양궁교실을 끝내면 집에 도착하는 시간은 대략 6시 쯤 되었는데, 퇴근하자마자 식탁에 차려진 화려한 음식들과 먼지..
수술실 바깥의 복도에는 냉기와 함께 병원 특유의 냄새로 가득했다. 간헐적으로 켜져있는 형광등 덕택에 복도는 사뭇 어둑어둑했다. 공기또한 침체되어 있는데다 밤이니만큼 돌아다니는 사람도, 소리가 날만한 일도 없었다. 그 덕분에 나타샤는 자신의 5살배기 딸을 보호자소파에 눕히고 무사히 잠을 재울 수 있었다. 아이는 수술대에 올라가 있는것이 누구인지, 왜 자신이 이곳에 가만히 기다리고 있어야할지도 모른채 소파위에서 새근새근 잠들고 있었다. 아이의 자그마한 몸 위로 덮힌 유치한 애니메이션담요가 조그맣게 오르내리는걸 보고 있는 나타샤의 기분은 초조하고 불안했다. 브루스 배너가 격심한 두통을 호소하고 입원한 것이 닷새 전, 뇌에 박혀있던 파편이 문제를 일으킨 것을 확인한게 이틀 전이었다. 갑작스레 정해진 수술에 놀라..
최근 클린트 바튼이 제일 불만을 가질 대상을 꼽는다고 한다면, 아마 일순위는 지금 자신의 앞에서 노트북이나 두드리고 있을 약혼자일 것이다. 바튼의 사랑스러운 약혼자, 북유럽의 작은 강국 아스가르드의 제 2왕자 로키 오딘슨은 자신을 바라보는 바튼의 따가운 시선을 무시한 채, 한창 논문작성을 하고 있었다. 닷새뒤에는 졸업논문 중간결과를 보고해야 하고 여드레 뒤 부터는 지옥을 달리는 중간고사가 펼쳐질 예정이었다. 이미 어깨 아래까지 길러진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묶고 눈에는 안경을 쓴 채, 그는 몇시간이나 노트북에 매달리고 있었다. 로키가 앉아있는 식탁주변에는 이미 로키가 자신의 저택으로부터 가져온 책들과 서류가 한가득 쌓여있었고, 식탁 위에도 그가 보고 있는 자료들이 A4에 담겨져 너저분하게 펼쳐져 있었다. 아..
그 남자는 항상 7월 5일에 라벤더 꽃을 산다. 독립기념일 파티로 꽤나 피곤한 밤을 보낸 다음날 아침, 그는 어김없이 아침에 단골꽃집으로 가서 라벤더를 한아름 사왔다. 피곤한 것은 그 꽃집의 사장도 마찬가지였지만, 벌써 5년에 접어들면서 이제는 알아서 라벤더 꽃을 미리 준비해놓았다. 다른 인사는 없다. 아침에 그가 들어서면 주인은 꽃다발을 안겨주고 돈을 받는다. 그 과정에서 나누는 말은 한마디도 없었다.내가 그것을 알게 된 것은 독립기념일 파티에서 유난히 일찍 돌아가는 모습 때문이었다. 그는 머릿속에 박힌 금속 파편때문에 술은 마시지 못했지만, 언제나 이상하게도 파티가 파할 때까지 남아있곤 했었기 때문에 일찍 돌아가는 모습은 상당히 신선했다. 파티를 개최한 토니도 그걸 알고 있었는지, 아무 대꾸도 없이 ..
01.병실에서 일어난 로키는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의 기억은 눈사태에 휩쓸렸던 1년전으로 돌아가 있었다. 그가 깨어나자마자 오딘과 프리가와 토르는 울면서 그를 안아주었다. 그때 찍힌 사진은 결국 아스가르드 매체의 '올해의 사진'으로 뽑히게 된다. 02.토니, 배너와 함께 아스가르드로 날아온 나타샤는 정신을 차린 바튼을 보자마자 뺨부터 때렸다. 그리고 그를 품에 안고 흐느꼈다. 03.로키가 바튼의 병실로 갔을 때, 바튼은 로키를 붙잡고 미안하다고만 말하였다. 시간은 몇분으로 극히 짧았지만, 간호사들은 로키의 눈가가 붉어진 것을 보고 다들 수군거렸다. 일주일 후, 로키는 오딘과의 담판에서 승리하였고 아스가르드는 둘째 왕자의 약혼을 공표하였다. 전세계의 매스컴이 그들에게 달라붙었고, 바튼은 학교측에 ..
지금은 여름이어서 괜찮지만 겨울에는 헬도 두려워한다지요, 반백의 택시기사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뒷좌석에 앉아있는 손님에게 말했다. 아스가르드는 무역업으로 먹고 사는 동네였고, 여름의 이미르산은 관광명소로 유명한 곳이어서 외국인은 나름 많이 보았지만, 그래도 타국의 관광객을 태우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었다. 기차역에서 택시에 오른 손님의 표정은 어딘지 후련하면서도 슬퍼져 있어서, 그는 나름대로 손님의 기분을 들뜨게 하기 위해 이런저런 수다를 하였다. "그래서 지금의 오딘폐하께서 반역자들을 직접 처단하신 겁니다. 16살밖에 안되었었는데 말이죠. 그리고 그때 프리가전하를 만나서 결혼을 한거구요." 아마도 손님이 띄엄띄엄 서툰 말로 아스가르드어를 한 것으로 보면, 이렇게 빠르게 말하면 못알아들을 것이 분명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클린트는 사고가 일어나고 몇달정도는 상당히 침울해져있었고 악몽에 시달리곤 하였다. 행여나 로키가 돌아올까 집의 문도 잠그지 못하고 잠자리에 드는 생활이 이어졌다. 그때마다 나는 그를 내 집으로 끌고 들어와서는 강제로 수면제를 먹이고 재웠다. 브루스는 내 행동에 꽤나 많은 반감을 드러냈지만, 그도 클린트의 상태를 보고는 곧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제서야, 이제서야 클린트는 어느정도 정신을 차리고, 예전에 생활대로-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다.'출근을 하고 일을 하고 퇴근을 하고, 가끔씩 커뮤니티 칼리지에 가서 수업을 듣곤 하면서 클린트는 안정을 되찾아갔다. 그는 로키의 나라인 아스가르드의 언어를 배우고는 학생들 앞에서 몇글자 적어보기도 하였다...
"애석하게도 너랑은 결혼할 수 없어." 사귀고난지 2년만에 들은 고백은 이처럼 상당히 처참하고도 굴욕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더군다나 사랑한다는 열렬한 고백 뒤에 들은 것이라, 클린트 바튼은 주먹이라도 한대 날려야 하나 하고 고민을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도 제 연인의 생각은 쉽게 알 수 있었다. 자신도 그것때문에 연인과의 관계가 너무 깊어지는 것을 주의해왔었다.바튼의 곁에서 나신으로 책을 읽고 있는 연인, 로키 오딘슨은 북유럽의 작은 강국, 아스가르드의 제2왕자였다. 즉 왕위계승권 2위로 만약 그의 형인 토르 오딘슨이 죽거나 왕위를 포기하거나 하게된다면 다음 왕위는 그가 물려받게 되어 있다. 토르가 만약 왕위에 오른다 하더라도 자식을 낳지 않는 경우에도 그가 왕위를 물려받게 된다. 그런 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