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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키바튼 _ 서리를 부르는 목소리 _ 요툰헤임연작 03 본문

AVGS/요툰헤임 연작

로키바튼 _ 서리를 부르는 목소리 _ 요툰헤임연작 03

rabbitvaseline 2015. 8. 20. 04:14




금은 여름이어서 괜찮지만 겨울에는 헬도 두려워한다지요, 반백의 택시기사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뒷좌석에 앉아있는 손님에게 말했다. 아스가르드는 무역업으로 먹고 사는 동네였고, 여름의 이미르산은 관광명소로 유명한 곳이어서 외국인은 나름 많이 보았지만, 그래도 타국의 관광객을 태우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었다. 기차역에서 택시에 오른 손님의 표정은 어딘지 후련하면서도 슬퍼져 있어서, 그는 나름대로 손님의 기분을 들뜨게 하기 위해 이런저런 수다를 하였다.


"그래서 지금의 오딘폐하께서 반역자들을 직접 처단하신 겁니다. 16살밖에 안되었었는데 말이죠. 그리고 그때 프리가전하를 만나서 결혼을 한거구요."


아마도 손님이 띄엄띄엄 서툰 말로 아스가르드어를 한 것으로 보면, 이렇게 빠르게 말하면 못알아들을 것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사는 계속해서 아스가르드어로 시끄러울 정도로 떠들어댔다.



그에겐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벌써 10시가 되었는데도 어스름하게 밝아져있었다. 로키가 가끔씩 내뱉곤 하던 백야였다. 아스가르드의 여름에는 한달정도 백야가 찾아온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여름의 백야 아래에도 끊임없이 눈은 내리고 있었다. 스노우체인을 감은 택시가 움직일때마다 눈을 밟는듯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눈이 쌓인 목조주택들이 지나갔다. 숲의 나무들은 검었다. 클린트 바튼은 제 눈앞에 스치는 것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로키가 보았던 마지막 풍경들은 아무리 다시 봐도 제 가슴을, 심장을 찌르고 있었다. 그는 1년전, 이 곳을 처음으로 방문했을 때를 떠올렸다. 방문, 이라는 온건한 표현을 프리가가 썼지만, 사실은 미친듯이 달려왔다는 것이 더 맞을 터였다.

토르가 연락을 했다. 토니가 비행기를 빌려주었다. 기상상황이 좋지 않아 기차로 이동해야 했다. 역에서 택시로 요툰헤임 성까지 이동했다. 처음으로 로키의 부모님을 뵈었다. 수색을 지켜본다. 지켜본다. 지켜본다. 지켜본다. 지켜본다. 지켜본다. 지켜본다. 지켜본다. 지켜본다. 지켜본다. 지켜본다. 지켜본다. 지켜본다. 지켜본다. 한달이 지났다. 오딘으로부터 떠나달라는 요청이 왔다. 프리가가 그만 보면 가슴이 아파서 견디기 힘들다고 했다. 그제서야, 그제서야 그는 거울을 볼 수 있었다. 거울속의 남자는 너무나도 마르고 연약해져 있었다. 그제서야 그는 자신이 한달동안 제대로 무언가를 먹은 기억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결국 병실에서 토르의 제안을 받아, 다시 뉴욕으로 돌아왔다.



네가 없는 뉴욕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더욱 비참했다.



1년만의 아스가르드도 변한 것이 없어서, 그는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왕이면 같은 날은 아니더라도 1년후에 만나러 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기사가 곧 이미르산에 도착한다고 언질을 주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제 앞에서 위풍당당 위세를 떨치는 거대한 산을 보았다. 산의 꼭대기에는 구름이 둘러쳐져있어서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아직도 전하를 찾는 수색은 멈추지 않았다지요. 아무리봐도 나올 것은 시체밖에 없는데도 말이에요."


기사가 이미르산 입구에 자리잡은 마을 입구에 차를 대자, 그는 잔돈을 되었다고 서투른 아스가르드어로 말하며 문을 열었다. 과연, 1년만의 이미르산은 너무나도 추워서 입김이 새어나왔다. 로키, 그는 조그맣게 연인의 이름을 내뱉었다.

10시가 넘은 마을에는 문이 연 곳이 작은 펍과 여관밖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근처에 커다란 관광호텔이 있다고 들었지만 바튼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의 목표는 오로지 한군데뿐이었다. 제 눈앞에서 꼿꼿이 서 있는 저 산. 설산에 오르기에는 가벼운 복장이지만 그는 저 산에 오를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가 산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를 몇발자국이었을까, 익숙한 저음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자신을 붙잡았다. 그는 애써 고개를 돌리거나 몸을 돌려 상대를 보지 않았다. 그동안 지겹도록 들었던 상대다. 목소리를 잊을리가 없었다.


"거기 서시게, 클린트 바튼."

"...오랜만입니다, 왕자전하."


토르 오딘슨은 제 곁의 신하들을 물리치고 천천히 바튼에게 걸어갔다. 클린트가 이상하다는 나타샤의 말에 토니가 전세계의 CCTV를 돌린 결과였다. 바튼의 모습이 아스가르드공항에 찍힌 것을 확인하자마자 토니는 토르에게 연락했다. 토르는 바튼이 아무 연락도 없이 아스가르드에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는 가슴이 내려 앉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혹시나 했었던, 그가 생각하기로는 최악의 상황이 온 것이다.


"미리 연락을 하고 오지 그랬나? 그럼 숙소까지 다 알아봤을텐데."

"왕자전하는 지금 바쁘지 않습니까."

"산으로 갈 생각이었나?"

"맞아, 제인양은 잘 지냅니까? 이번에 박사학위만 통과되면 곧 결혼이라면서요."

"수색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네. 자네가 도와줄만한 일은 없어."

"결혼식은 상당히 성대하게 치뤄지겠군요."

"바튼."

"냇도 무척이나 기대하고 있습니다."

"클린트 바튼."


바튼은 그제서야 몸을 돌렸다. 정장에 코트까지 차려입은 토르 오딘슨은 어딘지 모르게 안타까워하면서도 슬퍼하는 것 같았다. 곁에는 보디가드로 보이는 사람들 4명이 곁에 서 있었다. 이 상황에서는 도망치는 것이 매우 힘든 것 같아보였다.


"오늘 밤은 나와 함께 회포를 풀게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


토르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거 좋군요."


대답을 하는 바튼의 목소리도 어딘가 떨리고 있었다. 그들의 귓가를 스치는 바람보다 더 차가운 긴장감이 둘 사이를 넘나들었다.




▒ ▒ ▒




성안에는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추워. 라고 로키가 전에 말한 적이 있었다. 바튼네 집의 난방시스템이 고장이 나서, 서로 벌거벗은채로 껴안고 있었던 11월의 밤이었다. 하지만 바튼이 현재 머물고 있는 방은 너무나도 따뜻해서, 밖에서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것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창문은 너무 작고 높아서, 의자위에 올라서야 밖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시간은 새벽 2시, 비록 예정일보다 하루가 지나가버렸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토르와의 술자리는 머리가 아프다고 핑계를 대고 일찍 끝내버렸다. 물론 그도 핑계란 것을 알고 있을 터였지만, 이대로 바튼을 붙잡아두었다는 것에 만족했던지 자신도 침실로 들어가버렸다. 대신 바튼이 머물고 있는 방문앞에 부하들을 세워놓았다. 여자 한명과 몸집이 있는 백인남자 한명. 제압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로키.



바튼은 일부러 큰 소리를 내며 의자를 넘어뜨렸다. 무슨 일 있습니까? 하며 여자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도와달라고 소리치고는 손에 전선을 두르고는 문 바로 앞에서 기다렸다. 열쇠소리와 함께 손잡이가 열렸다. 몸집이 큰 사내가 방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그를 넘어뜨리고 전선으로 손목을 묶었다. 남자는 아스가르드어로 무언가 소리쳤다. 이내 자신을 노리려는 여자도 넘어뜨리고는 다른 전선으로 손목을 묶었다. 소란을 듣고 병사들이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미안해요, 바튼은 작게 읊조리고는 복도에 있던 커다란 창문을 향해 뛰어갔다. 창문을 열자 눈보라가 복도 안으로 휘몰아쳤다. 그는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병사들을 확인하고는 창문 너머로 몸을 날렸다.



로키.



그의 눈가는 심하게 찡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입가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 ▒ ▒




왼쪽 팔을 움직일때마다 격통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아무래도 착지할때 잘못 내딛은 모양이었다. 궁수에게는 생명과도 같은 팔이건만, 예전같았으면 무척이나 당황해하고 절망하고 있었을 터였지만 그에게는 아무 상관도 없었다. 어차피 그에게는 자신의 몸조차도 쓸모가 없어져버렸다.



로키, 너에 비하자면.



차가운 공기가 폐안으로 스며들어 끝끝내 기침이 났다. 그는 영하의 설산을 오르는데도 매우 가벼운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셔츠와 그 위에 얇은 점퍼뿐, 신발도 평범한 운동화였다. 아마 다른 사람들이 보았다면 그를 붙잡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무 상관도 없었다. 어차피 그는 자신의 몸이 동상에 걸려도 괜찮았다.



로키, 너를 볼 수 있다면.



사박사박, 두터운 눈을 밟는 발소리가 일었다. 눈이 너무나도 두텁게 쌓여서 발이 푹푹 빠졌다. 그는 간신히 천천히 한걸음, 한걸음씩 발을 내딛었다. 산사태가 일어난 곳은 어디지? 이미 방향감각도 잃어버린채 그저 위로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입김이 나오자마자 얼어버렸고, 이미 손과 얼굴에는 아무 감각도 없었다.


"로키."


그는 천천히 연인의 이름을 내뱉었다. 로키와 처음 키스를 하기 전, 로키는 자신을 왕자나 전하가 아닌 로키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그는 바튼에게는 언제나 로키였으며, 사랑하는 연인이었으며 세상의 전부였다. 바튼은 1년전 총격을 당했을 때 자신이 했던 약속을 잊을 수가 없었다.


'널 두고 먼저 죽지 않을거야.'



"로-키."


길게, 길게 그 이름을 다시금 내뱉었다. 목안이 차갑게 얼어버리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다시금 그 이름을 불렀다. 로키는 바튼이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을 좋아했다. 바튼의 목소리마저 사랑했다.


"널... 혼자 두지 않을게."


점점 걸음이 느려져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어느새 산중턱에 이르고 있었다.


"혼자두지 않을게, 로키."


시야가 점점 흐려져갔다. 이제 자신이 어디를 밟고 있는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끝끝내, 그의 눈앞이 마치 내리는 발밑의 눈처럼 하얗게 하얗게 번져나갔다.



"아."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얼어붙었다. 바튼은 지금 이 상황이 너무나도 기뻐서 도저히 아무 말도 내뱉을 수 없었다. 폐가 얼어붙어 아무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제 앞에 서 있는 연인을 향해 소리쳤다.


"바보같은 내 장난의 신. 널 만나러 왔어."


바튼은 연인을 향해 손을 뻗었다. 피부는 이미 붉게 변해있었고 손가락도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지만, 어째서인지 발걸음은 매우 가벼웠다. 미안해, 라며 연인이 사과하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대로 그는 눈더미속으로 쓰러졌다. 눈보라는 계속해서 휘몰아치고 있었고, 이윽고 그의 몸도 눈속으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요툰헤임에는 전설이 있단다. 이미르와 서리거인들의 후손인 요툰헤임의 주인들은 눈과 바람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는구나. 그들의 피에 깃들어있는 거인들의 피가 그것들을 도와준단다.'



순간 어머니의 말이 머릿속에 스친 것은 왜일까? 토르는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바튼이 실종되고 산에까지 갔던 것은 확인할 수 있었지만,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산은 그 누구도 들어오기를 허락치 않았다. 어떻게든 사람들을 보내고 싶었고, 그것도 안된다면 그 자신이 산으로 들어가기를 원했지만 시프가 그것을 강력하게 막았다. 어째서냐는 질문에 그녀는 더이상은 안된다고 말하였다.


"하지만, 하지만-"

"전하!"


밖에서 신하가 큰 소리로 소리쳤다. 그는 급히 코트도 걸치지 않은 채로 베이스캠프 밖으로 나왔다. 신하는 경악에 물든 표정으로 산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니 검은 무언가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 검은 무언가는 천천히, 천천히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요툰헤임의 주인들은-'


그는 급히 신하중 한명이 갖고 있던 담요를 빼앗아 검은 무언가를 향해 달려갔다. 자신을 부르는 신하의 목소리도 무시하고서는, 태어나서 그 어느때보다도 빨리 달려갔다. 요툰헤임의 주인, 그는 현재 요툰헤임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만약 그 전설이 사실이라면, 그렇다면-


"로키!!"


검은 무언가가 순간 움직임을 멈추다가 다시금 그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점점 형태가 명확해져갔다. 초록색의 스키복은 실종당시 로키가 입었던 옷이었다. 그는 확신하였다. 지금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것은-


"하악-"


로키의 입가에서는 가느다란 입김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는 토르를 발견하자마자 더욱 더 걸음을 빨리 했다. 뒤에 누군가를 업고 있는지 팔과 다리가 삐져나와있었다.


"형!"


토르는 로키를 향해 달려갔다. 로키는 실종당시에서 머리카락만이 자란 것 빼고는 변한 것이 없어보였다. 형, 토르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둘의 거리가 좁혀졌을때, 그제서야 로키가 업고 있는 것이 바튼이란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로키는 토르 앞에 도착하자마자 무릎을 꿇고는 바튼을 보여주었다. 바튼의 상태는 사뭇 심각해보여서, 그는 곧바로 바튼을 품에 안고는 담요를 덮을 수 밖에 없었다. 바튼을 업고 온 로키의 피부도 창백했지만, 그는 아랑곳않는다는 듯 눈물을 흘리며 제 형에게 간청하였다.



"이 사람을 살려줘, 형. 부탁이야, 이 사람은 살아야 돼. 살려줘, 살려줘..."



로키는 계속해서 토르에게 바튼을 살려달라고 빌었다. 알겠노라고 말하는 토르의 목소리는 울음때문에 매우 떨고 있었다. 부탁이야, 그렇게 작은 소리를 내고서 로키의 몸은 천천히 무너졌다. 뒤에 따라오고 있던 신하들이 재빨리 그와 바튼을 들것에 실었다. 토르는 이미르산을 보았다. 어느새 눈보라가 멈추어져 있었다.






원래 구상대로라면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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