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ANDALIEN

복날기념 냇배너 _ 당신에게 엎드리는 날 본문

AVGS/HL

복날기념 냇배너 _ 당신에게 엎드리는 날

rabbitvaseline 2016. 7. 27. 18:30



구름 한점 보이지 않는 푸른 하늘에서는 연신 따가운 햇볕이 내려쬐고 있었다. 주변 빌딩가의 바닥에는 열기로 인해 아지랑이가 피어올라왔고, 뺨을 스치는 바람마저도 상당한 열기와 습기를 띄고 있어 부채질도 괴로웠다. 온 몸에서는 땀이 스며나오고 있었고 덕분에 얇은 원피스에 닿는 살갗마저도 불쾌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식당이 밀집한 거리 곳곳에는 점심시간을 마친 직장인들이 너나할것 없이 부채를 부치거나 차가운 음료를 마시며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었다. 식당 문이 열리면 차가운 에어컨 공기가 잠시 그녀를 더위를 식혀주다가 문이 닫힘과 동시에 이내 사그라들었다.

그녀는 나름 괜찮다는 표정으로 편의점 얼음컵에 담긴 음료수를 빨아들었다. 분명 이 더위는 그녀가 원래 사는 곳에 비하면 정상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녀가 쏘다녔던 나라들을 생각하면 그나마 괜찮은 편이었다. 빨래마저도 제대로 말리지 않는 습한 곳에서 고장난 제습기와 싸웠던 어느 곳에 비하자면 건물 안에 들어가면 에어컨이 반겨주는 이 나라는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인공착향료를 넣었을 것이 분명한 텁텁한 단맛에 위로하며 그녀는 어느 고풍스러운 식당 앞에 서 있는 줄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양산을 쓰거나 부채로 얼굴을 가리는 등, 어떻게든 햇빛과 싸우면서도 그 식당을 포기하지 않았다. 식당 문이 열리면 어김없이 닭육수 냄새가 흘러나왔다. 한국사람들이 흔히들 더울때 먹는다는 보양식이다.

-"여긴 캡틴, 나타샤 식당앞은 어떻지?"

"사람들이 아주 많아. 헬렌이 말하기론 오늘은 고기음식을 먹는 날이라던데 그것때문인가봐."

전직 하이드라 요원이 한식당에서 주방장을 맡고 있다니, 누군가가 들었으면-특히 토니 스타크- 말도 안된다고 웃어넘길만한 일이다. 하지만 그 말은 사실이었다. 어제 회의시간에 캡틴이 그 말을 하자, 모두들 벙찐 표정으로 사진속의 중년의 아랍계 남자를 바라보았다. 제법 신문에도 실린-스파이인 그녀에게는 상당히 경악할만한 일이다- 유명한 주방장으로 주변에도 평판이 좋지만, 예전에 윈터솔져, 즉 버키 반즈를 담당했던 자 중 하나라고 했다. 어찌저찌하여 다시 재결성한 어벤져스는 유엔의 감시 아래 전세계를 쏘다니며 지구의 평화를 지키고 있었다. 이번 일도 언제 다시 시한폭탄처럼 터질지 모르는 버키 반즈를 위해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오늘을 정한거야. 오늘은 아주 바쁜 날이니 정황이 없겠지."

"그리고 우린 식사를 망친 손님들에게 호텔급 요리를 제공하면 되고 말이야."

목표는 대상의 생포, 겉으로는 민간인 신분이니만큼 사살은 불가. 가능하면 회유해서 데려가는게 제일 좋지만 안된다면 기절이라도 시켜서 데려갈 생각이었다. 음료수를 다 마셨는지 공기를 빠는 소리가 빨대에서 울려나왔다. 이미 식당 내 동선은 확인했고, 계획도 어느정도 짜 놓았다. 중요한 것은 과연 행운의 여신이 그들을 따라줄 것인가, 였다. 행운의 신이라면 호텔에서 자고 있겠지, 감기에 걸려 감금당한 남자친구를 생각하며 그녀는 파란색 플라스틱 테이블에 플라스틱컵을 내려놓았다. 그와 동시에 편의점 문이 열리더니 연녹색 아이스크림을 든 여성이 밖으로 나왔다. 여자는 그녀와 마찬가지로 얇은 원피스를 입고 있었으며 머리는 높게 묶어서 정수리에다 동그랗게 고정시킨 상태였다. 그녀는 여성에게서 페트병을 건네받았다. 뚜껑을 열고 물을 들이마시자, 그제야 그녀는 갈증이 풀리는 것 같았다.

"언니, 캡틴이 뭐라고 하던가요?"

"자기 몫도 사오래, 이 땡볕에 세워놓는거 치곤 너무 염치없는거 아냐?"

-"냇."

가게는 3시까지 주문을 받고 5시에 장사를 재개한다. 손님이 끊기는 그 두시간안에 목표를 생포해야 했다. 나타샤 로마노프는 이어셋 너머로 살짝은 화를 내듯 투정을 부리는 스티브 로저스이 말을 대충 받아주었다. 그리고 메론만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완다 막시모프와 함께, 처마밑 얼굴을 반밖에 못가리는 그늘아래 서 있는 사람들의 무리에 합류하려 발걸음을 옮겼다.


"행복하네요."

삼계탕을 반쯤 먹었을 즈음 완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대상을 앞두고 태평하게 식사라니, 콜슨이 본다면 혀를 찰 일일테지만 이것도 내부환경을 잘 보기 위한 방편중 하나였다. 물론 제 맞은편 앞에서 열심히 서투르게 젓가락질을 하고 있는 완다는 진심이었지만. 나타샤는 천천히 뚝배기 안에 담겨있던 국물을 입에 넣었다. 뚝배기에는 반쯤 해체된 닭이 배안을 드러내고 있었다. 국물은 진했고 닭냄새도 거의 나지 않았다. 특유의 한약냄새가 났기는 했지만 거슬리지는 않았다. 확실히 이 근방에 유명한 집 답게, 삼계탕은 그녀가 보기에도 상당히 맛있었다. 젓가락으로 조심스레 가슴부위를 결대로 찢어 소금에 찍어먹는다. 깊은 풍미와 함께 짠맛이 입에서 어우러졌다. 

'브루스한테도 먹이고 싶네.'

"배너박사님에게 먹이고 싶다고 생각했죠?"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번에는 닭 뱃속에 있던 찹쌀밥을 먹었다. 쫀득한 찹쌀에 진한 국물이 베어들어, 살코기는 한조각도 안넣었음에도 충분히 닭요리를 즐길 수 있었다. 

"아쉽네, 브루스에게도 사줄 수 있었을텐데."

애석하게도 임무가 끝나면 곧바로 미국으로 복귀해야 한다. 그러면 배너는 열이 펄펄 끓는채로 퀸젯에 올라타서 또 링겔이나 맞아야 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녀의 연인은 한국에 오자마자 감기에 곯아떨어졌다. 신분이 신분인터라 한국에는 반공식으로 온 터라, 결국 그는 호텔 침대에서 룸서비스나 받으며 지내야 했다.

"미국에도 팔까요?"

"글쎄."

나타샤의 시선은 어느새 스마트폰 액정을 향해 가고 있다. 시간은 벌써 3시 20분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고, 들어오는 손님이 없던 탓인지 식당내는 살짝 여유가 생길 정도였다. 식당재료는 오전에 받아올테고, 여유가 생긴 지금은 식당직원들이 그나마 휴식을 취할 것이다. 슬슬 그때쯤이라는 판단이 들고, 주방에 사람이 하나둘 사라지는 모습을 보자 나타샤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목표도 슬슬 재료를 준비하는지 아니면 화장실에 가려는건지는 몰라도 화장실이 있을 뒷문으로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같이 화장실갈래?"

"....네."

작전을 실행하겠다, 라는 의미로 알아들었는지 완다도 자리에서 일어나 나타샤와 함께 목표의 뒤를 따랐다. 많은 손님들에 제법 진이 빠졌는지 주방모를 벗고는 연신 수건으로 땀을 닦아댔다. 뒷문을 열고는 화장실이 있는 건물로 향하는 것과 뒷마당에 직원 몇명만이 있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나타샤는 입을 열었다.

"완다."

"네."

완다의 손가락이 기묘하게 구부러지자 손 끝에서 붉은 기운이 더운 공기너머 퍼져나갔다. 붉은 기운에 휩싸인 직원들의 눈이 붉어지더니 이내 저마다 할일을 멈추고는 모두들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한창 야채준비로 널부러진 뒷마당을 건너 화장실 건물까지 가니, 세수라도 했던지 얼굴에 물기가 그대로 남아있는 목표가 문 밖으로 나왔다.

"형님들, 누님들. 오늘 손님- 어라?"

그는 화장실을 얌전히 기다리던 외국인 손님 두명은 시선에도 두지 않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열심히 재료를 나르고 있었을터인데 갑작스레 사라져버렸다. 그는 몇번 더 두리번거리다가 뭔가 이상한 기운을 깨달았다. 자신이 화장실에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저 두 손님은 안으로 들어갈 생각을 안하고 있었다.

"مرحبا؟"

붉은색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는 씨익 웃으며 아랍어로 인삿말을 내뱉자마자 그의 몸이 얼어붙었다. 그는 뒤돌아서 자신에게 인사를 건넨 묘령의 여성을 바라보았다. 분명 어디선가 많이 보았던 얼굴들, 붉은 머리카락, 수상한 기운....

"!!"

위생모가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그는 황급히 대문이 있는 곳으로 달려나갔다, 아니 달려나가려고 했다. 다리에 무언가 이상한 힘이 걸려 몸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공포에 질린 눈으로 다리에 걸려진 붉은 기운들을 보다가 다시 여자들을 바라보았다.

"이런 곳에 숨어있을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굳이 소개는 필요없을테고 우리가 누군지는 알지?"

"...어벤져스... 난 하이드라는 그만둔지 오래야! 이제 거기서 손 뗐다고! 도대체 내게서 뭘 원하는거야?"

"우린 버키 반즈의 세뇌를 풀 방법을 찾고 있어요. 당신은 20여년전에 그의 담당이었죠."

버키 반즈, 라는 말에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던건 냉혹한 겨울의 군인이었다. 분명 그는 하이드라에 있었을 당시, 윈터솔져를 관리하는 부서에 속해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다 옛날 이야기라고 여겼는데.

"하이드라의 정보는 이미 널리 퍼졌어, 네가 다 퍼뜨렸으면서 그런 말을 하는건 뭐지?"

"맞아, 내가 퍼뜨렸지. 하지만 상당수의 정보는 암호화가 되어있어 지금도 해독중이고, 아예 쉴드에 없던 정보들도 있었어. 지모가 일깨워주지 않았다면 모두들 몰랐을 그런 정보들 말야...... 당신, 레드북을 알고 있지?"

레드북이란 말에 점점 더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나왔다. 윈터솔져 세뇌키워드, 그도 지겹도록 외우고 다녔던 10개의 단어들. 하지만 그가 간신히 하이드라를 나오고나서 신분을 세척하면서 머릿속에서 지우려 노력했던 것들이기도 했다. 

"완다가 말했듯이 우린 버키 반즈의 세뇌를 풀 방법을 찾고 있어. 그래서 전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찾고 있지만... 모두 지모가 찾아서 죽여버렸어. 당신은 정말로 운이 좋았어."

모두 죽여버렸다, 라는 말에 순간 소름이 돋았다. 그러면서 집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아내와 자식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운이 좋았다, 라는 말을 여기서 확인하기는 처음이었다. 

"...그 군인이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는건가."

"신분보장을 약속하지. 일만 끝나면 직장으로 돌아와도 돼, 휴가라고 생각해도 되고."

"이 일은 여름이 성수기야, 휴가라니 말도 안되는군."

"부재에 따른 합당한 보수는 준비하고 있어, 우리도 공짜로 착취하는 단체는 아니거든."

결코 거절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말투에 그는 침을 삼켰다. 완다가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모르나 직원들은 식당에서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만약 여기서 거절을 말한다면 아예 기절을 시켜서 자신을 데려갈 것이 뻔했다.

"난 이 일에 있어서 프로야, 그리고 오늘은 제일 바쁜 날중 하나지. 오후에 단체손님이 몇테이블이나 있는데..... 좋아, 도와주지. 단 조건이 있어. 오늘 일 다 끝나고야. 지금은 안돼."

그는 고개를 거세게 가로저으며 지금 당장은 안된다고 몇번이나 나타샤에게 말했다. 스스로 프로, 라고 말하는 것에서 요리사로서 쌓아왔던 세월들이 눈에 보이는 것같았다. 그녀는 그의 뭉툭하면서도 굳은살이 박힌 손을 바라보았다. 갑작스레 연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렇다는데 어떻게 할래?"

-"진심인가?"

"진심이냐는데?"

"당연히 진심이지! 오늘은 최고로 잘나가는 날이라고! 한사람이라도 빠지면 난리나."

"난 괜찮다고 봐."

-"하지만 만약 탈주한다면..."

"걱정마, 캡틴."

그녀는 바지 뒷주머니에서 가느다란 은색 팔찌를 꺼내고서는 목표의 왼쪽손목에 채웠다.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남자를 뒤덮고 있던 구속이 풀렸다. 그는 갑작스런 안도감에 자리에 주저앉아 나타샤와 완다를 바라보았다. 나타샤는 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도망가도 소용없어. 추적장치 다 달아놨으니까."

아, 그리고 오늘 식사는 맛있었어. 완다의 최면이 풀리자마자 직원들이 다시 뒷문을 열고 뒷마당으로 들어왔다. 남자는 가까스로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무슨 일 있었냐는 동료의 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벙찐 표정으로 식당안으로 들어가는 둘을 바라보았다.



▒ ▒ ▒



공기는 건조했다. 도대체 얼마만큼이나 에어컨을 켜놓았던 것일까, 액정 너머로 보이는 30이라는 숫자와 달리 방안은 매우 서늘하고 건조했다. 그는 목이 매우 타는 것을 느끼고 냉장고안에 있던 차가운 물을 마시다가, 이내 전기주전자에다 부어버렸다. 물이 끓는 소리와 에어컨 바람소리만이 가득한 방에는 스탠드 불빛밖에 없었다. 그는 차광커텐을 열었다. 한여름, 서울의 햇빛이 그의 몸에 쏟아져내려 순간 눈이 부셨다. 협탁에서 안경을 찾아 쓰고나서야 간신히 적응할 수 있었다.

삐이익거리며 물이 끓자 그는 머그컵에 뜨거운 물을 붓고서는 인스턴트 커피 한포를 집어넣었다. 아직도 머리는 열때문에 멍했고 시선은 창밖 고가도로를 지나다니는 차들에 가 있었다. 이 도시는 헬렌이 말한대로 이 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도로위에는 햇빛때문에 아지랑이가 피어올랐고, 한강 주변에는 사람들 몇몇이 텐트를 치거나 돗자리를 펴고 그늘 아래 누워있었다. 다른 나라의 풍경을 훔쳐보는 것은 확실히 드문 경험이었기에, 그는 허기에 과자 몇점을 먹고 적당히 식은 커피를 마실때까지, 그 자리에 서서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RRRRRRRRR-

협탁 위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울어댔다. 액정 위에는 사랑해마지 않는 연인의 사진이 떠올라있었다. 만약 자신이 이렇게 감기에 걸려 골골대지만 않았어도 지금쯤 같이 식당에 있었을 터였다. 아마 3시에서 4시사이 일을 진행한다 하였고, 지금은 벌써 4시를 향해 가고 있었으니 일이 끝났다는 전화일 것이다. 그는 전화를 받아 귀에 갖다댔다. 예상대로 침착하게 말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몸은 어때요?"

"괜찮아요, 많이 나아졌어요. 일은 어떻게 되었나요?"

-"살짝 문제가 생기긴 했는데, 해결된것 같아요. 아직 끈은 놓아서는 안되지만. 퇴근할때까지만 봐달라고 그러더라고요."

퇴근이라니, 잡혀가는 주제에 상당히 핑계거리도 좋다고 생각하였지만 나타샤는 상당히 진지하게 말하고 있었다. 마침 오늘이 가장 많이 팔리는 성수기라던가 자신이 식당에서는 주요인원이라 빠지면 식당에 헬게이트가 열릴거라던가. 그런 그녀의 말들을 들으면 들을수록, 도대체 어쩌다 하이드라의 대원이 타국에서 식당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지기까지 했다. 

-"그래서 시간이 조금 비는데, 밥은 어떻게 했어요?"

그는 테이블 위에 있는 과자껍데기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보니 아침에 일어나서는 약간의 스프와 약을 먹고는 또 곯아떨어졌다. 그리고 먹은 것은 이상한 맛의 과자 두개, 다행히 커피가 제법 단편이라 허기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곧 몸에서는 이상을 알릴 것이다.

"...아직 안먹었어요, 룸서비스라도 부르-"

-"그럼 내가 그쪽으로 갈게요. 여기도 끝나려면 좀 걸릴 것 같고..."

"목표는요?"

-"다녀오라는건 완다가 한 말이에요. 걱정마요, 맛있는거 사들고 갈테니까."

곧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전화가 끊겼다. 맛있는거, 라니. 그러고보니 목표가 일하는 식당은 치킨스프를 전문으로 판다고 알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치킨스프를 먹은지도 꽤 오래되었지, 침대에 주저앉으며 마지막으로 먹었던 치킨스프에 대해 떠올렸다. 분명 캠벨표 치킨 누들 스프였을 것이다.


공기는 건조했지만 피부에 와닿는 바람은 차가웠다. 얼마나 더 자고 있었을까, 그는 제 이마에 올려진 차가운 무언가에 눈을 떴다. 일어났어요? 어째서일까, 아침에도 보았던 사람이건만 이렇게나 반갑다니. 그는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타샤가 그의 이마에 댔던 것은 얼음이 담겨있는 플라스틱 컵이었다. 테이블 위에는 딱봐도 따뜻해보이는 무언가가 봉지에 쌓여있었다. 그는 그 위에서 솟아오르는 김에, 코 끝에 닿는 살짝은 비릿한 닭고기냄새에 관심을 기울였다. 

"일단 먹어보니 괜찮더라고요. 포장도 된다길래, 억지로 하나 갖고 왔어요. 목표는 걱정말아요, 일단 완다가 봐주고 있으니까. 당신이 다 먹으면 교대하면 되요."

"....그 여자에게 빚을 하나 졌군요."

그러네요, 나타샤는 신속히 비닐봉투를 벗겼다. 커다란 하얀색 플라스틱 용기의 뚜껑을 벗기자마자 뜨거운 열기와 함께 그립고도 익숙한 냄새가 터져나왔다. 그는 감탄어린 눈빛으로 연인을 돌아다보다가 자리에 앉았다. 닭한마리가 호쾌하게 다리를 벌리고 국물속에 잠겨있는 광경이라니, 웃음이 절로 터져나올만 했다. 그는 나타샤의 얼른 먹어보라는 채근에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서 먹었다. 언젠가 헬렌이 말했던 것처럼, 그리고 연인이 맛있다고 자부할 정도로 한약냄새가 살짝 나는 진한 닭고기육수는 괜찮았다. 특히 따뜻한 무언가가 식도를 지나 십이지장으로 향하는 그 느낌은 그야말로 아주 어릴적에 먹어보았던 치킨 스프에 비할 수 있었다. 

"맛있네요."

"다행이에요, 맛없다고 하면 어쩌나 했는데."

"내가 당신이 사온걸 맛없다고 할리가 없잖아요. 확실히 괜찮네요."

그리고는 능숙하게 젓가락으로 닭고기의 배를 가르니 안에서는 따끈따끈한 김을 내뿜으며 찹쌀과 대추와 밤이 마치 자신을 놀래키듯 튀어나왔다. 와우, 배너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거 엄청난데요... 확실히 보양식이긴 보양식이네요."

그는 국물에 찹쌀밥을 약간 풀어 먹어보았다. 기름지면서 푹 퍼진 밥이 식도를 따라 내려가는 감촉은 말로 설명하기는 어려울 정도였다. 그는 그렇게 조금씩 삼계탕을 해체해가며 입안에 넣었다. 따뜻한 국물이 넘어가서인지 어느새 머리도 맑아졌고, 가끔씩 터져나오던 기침도 나오지 않았다. 약간의 더운 땀이 흘러나와 나타샤가 친히 닦아주었다. 그렇게 얼마나 먹었을까, 확실히 위장이 약해져서인지는 모르나 그는 웃음을 터뜨리며 손을 들어올렸다. 안타깝게도 통 안에는 아직 반마리나 남아있었다.

"고마워요, 나타샤. 덕분에 잘 먹었어요."

아침까지만 해도 피곤해보이던 얼굴에 생기와 함께 미소가 떠올랐다. 이마를 갖다대니 아쉽게도 열은 내리지 않은 모양이지만, 이 추세라면 곧 나을 수 있을 것이다. 다행이에요, 그녀는 통을 쓰레기통에 버리면서 가방을 들어올렸다. 일단 브루스 배너를 먹이는 일이 끝났으니 다시 완다에게 돌아가야 했다. 

"약 꼭 챙겨먹고요."

"꼭 엄마처럼 말하네요."

"어머, 싫어요?"

배너는 고개를 내저었다. 나타샤가 배너에게 하는 행동 하나하나에는 무한한 애정이 담겨져 있었고, 그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애정을 매우 즐기고 있었다. 그러니 사소한 설교, 훈계, 잔소리 하나하나마저도 사랑스러울수밖에.

"나중에 다시 서울에 올래요?"

"네?"

"그땐 같이 먹어요."

나타샤의 입가에 다시 미소가 어렸다. 그녀는 다시 수건으로 배너의 이마에 있던 땀을 닦아주고서는 다시금 약을 먹으라고 잔소리를 내뱉었다. 하핫, 배너의 입에서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네, 그럴게요, 달링."













삼계탕 먹고싶다.........

삼계탕 먹고싶다........

엎드리는 날이란건 伏(엎드릴 복)날이라서 그런거임...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