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ANDALIEN
비전완다 _ 언젠가 나의 네가 올거야 본문
완다 막시모프의 방에는 기타가 하나 있다. 그녀가 막 어벤져스에서 훈련을 받기로 결정하고나서 방을 꾸밀 때, 음악이라도 배워보는게 어떠냐는 카운슬러의 말에 일단 들여놓은 것이었다. 그녀의 나이대가 갖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운 가격대였으나 어찌저찌하여 토니 스타크의 후원 아래에 갖게 되었다. 기타와 하드케이스, 받침대와 피크까지 해서 들여놓았지만, 그 이후로는 여러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았기에, 결국 그 이후 일이 진정될 때까지는 케이스안에서 간신히 먼지나 피해야 할 상황이었다. 케이스에서 기타를 꺼내 상황을 점검하고 조율하는건 어벤져스 내에서 나름 악기를 만져본 경험이 있는 토니가 해주었다. 그는 역시나 상류층의 자제로 자라난 덕인지 피아노도 어느정도 연주가 가능했고, 대학시절의 추억탓인지 기타도 제법 코드를 잡을 줄 알았다. 그는 스마트폰에서 어플을 켜고는 조심스레 나일론줄을 조였다가 풀었다. 애석하게도 바쁜 몸이라 가르쳐주지는 못한다고 말하였지만, 그 기타에 그의 손이 닿은 것들을 생각하면-자본이라던가- 그녀는 그에게 고마워할 수 밖에 없었다.
손가락 놀림이 좋아서인지는 몰라도 완다는 제법 기타를 빨리 배웠다. 그녀는 노래에는 큰 흥미가 없었기 때문에 처음 기타를 고를 때부터 나일론줄을 쓰는 클래식기타를 샀다. 기초를 어벤져스 외부 대원 중에서 기타를 제법 친다는 사람에게 과외를 받고, 그 이후부터는 동영상강의로 배워나갔다. 결국 공부를 시작한지 반년이 지나자, 왠만하게 쉬운 곡들은 떠듬떠듬이나마 음을 놀릴 수 있는 경지에 이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멤버들 중 그 누구도 그 떠듬떠듬하나마 놀릴 수 있는 곡을 들은 사람이 없었다. 그녀는 단 한번도 남에게 자신의 기타연주를 들려주지 않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건, 사귄지 얼마 안된 남자친구인 비전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네?"
그러니 처음에 그녀로부터 그 말을 들었을 때, 그는 순간 진심이냐며 반문할 수 밖에 없었다. 완다는 비전답지 않은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다시 그에게 물었다.
"기타칠건데 들어달라고, 안돼?"
기타라니, 그건 그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물론 그녀가 기타를 연습하고 있는 것은 다들 알고 있는 바였지만, 그녀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절대로 남들 앞에서는 자신의 연주를 보여주지 않았다. 심지어 캡틴이 부탁하는데도 말이다. 그런 그녀가 자신에게 기타 치는걸 들어달라니, 그로서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싫어?"
"아닙니다, 완다. 그저 조금 놀랐을 뿐입니다. 네, 듣고싶네요."
사실 듣고 싶다는 말은 반쯤 거짓말로, 그는 음악에는 흥미를 갖지 않았다. 자연에서 풍겨오는 바람소리,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들은 생명이 내뿜는 기운이라고 좋아하였지만 유독 인간이 만드는 '음악'이라는 것에는 큰 관심이 생기지는 않았다. 그저 어떤 것이 클래식, 어떤 것이 락음악 같이 음악의 종류와 악기의 소리, 유명한 가수들을 구분하는 정도였다. 그에게 음악이란 단순히 음들이 나열되어있는, 그런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는 그녀의 음악이 듣고 싶었다. 그건 여태껏 아무에게도 들려주지 않은 연주를 처음 듣는다는 자부심과 그녀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그는 완다의 손가락이 자아내는 선율이 매우 궁금했던 것이다.
비전의 대답에 완다는 10분 후에 방으로 오라는 말을 남기고는 방으로 사라졌다. 그는 그녀가 준비할 10여분이라는 시간동안, 완다가 좋아할만한 다과와 음료를 챙기기로 하였다. 대략 과자 몇개와 우유가 들어있는 컵이 담긴 쟁반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니, 과연 그녀는 전보다는 능숙한 솜씨로 기타를 조율하고 있었다. 그녀는 쟁반을 바닥에 내려놓도록 한 뒤, 비전도 바닥에 앉도록 요구했다. 그녀의 무대는 침대였기에 그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는 능숙하게 기타를 안았다. 그러자 비전도 카페트 위에 몸을 앉혔다.
"어서오세요, 완다 막시모프의 공연에."
살짝은 수줍고 부끄러워하면서도 완다는 자기소개를 했고, 말이 끝나자마자 비전은 가볍게 박수를 쳤다. 그녀는 고작 한곡만 연주할건데 왜 그리 성화냐면서 얼굴을 붉혔다.
"그럼 연주해볼테니까 어떤 곡인지 맞춰봐. 너도 들어본적이 있으니까."
그녀는 우선 왼손으로 기타 넥을 잡았다. 그리고 몇번 움직이더니 이내 오른손으로 천천히 현을 튕기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들어본, 하지만 비전으로서도 찾기 힘든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노래가 그녀의 기타에서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그는 몇번이고 곡의 이름이 무언지 찾아보려다, 눈까지 감고 연주에 심취한 완다의 모습을 보고는 포기하기로 했다. 그저 그녀가 식은땀까지 흘려가며, 행여 실수하지는 않을까 긴장까지 해가며 연주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나으리라 보았다. 손가락들은 천천히 어떤 때는 빠르게 현 위를 넘나들며 화음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속의 멜로디를 들을 때마다, 그는 기시감에 시달리며 그녀에 대한 애정을 더욱 더 크게 느꼈다. 어디서 들었던걸까, 다시금 음악의 출처에 대해서 떠올리려는 찰나 완다의 코에서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언젠가-
아. 그는 순간 정신을 차리고는 연주에 매진하고 있는 완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갑작스레 어느 예쁘장한 공주님의 목소리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공주님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난쟁이들에게 이 노래를 아주 정성껏, 그러나 매우 황홀하게도 불러주었었다. 그 순간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는 완다와 처음으로 보왔던 영화인데.
언젠가 나의 왕자님은 꼭 오실거에요
언젠가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되겠죠
그리고 그의 성으로 함께 갈 거에요
영원히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나는 알죠
언젠가 봄이 찾아 오면
우리는 다시금 우리의 사랑을 찾게 되겠죠
그리고 새들은 노래하겠죠
결혼식 종소리도 울릴 거에요
언젠가 나의 꿈이 현실이 될 때
창문에서 쏟아지는 빛이 그녀의 주위를 반짝이며 내려오고 있었다. 구불거리는 갈색 머리카락이 오늘따라 더 사랑스럽게 보여서, 수줍게 흥얼거리는 그 목소리, 목울대가 넘어가는게, 살짝씩 떨리는 눈꺼풀이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황홀한 광경이라 그는 그녀의 손가락이 멈췄을 때 일어설 수 밖에 없었다. 연주가 끝났다는 콧소리가 들리고 완다가 눈을 뜨려는 찰나, 비전은 아주 짧게 그러나 선명하게 그녀의 입술을 훔치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완다는 놀란듯 눈을 크게 뜨고 비전을 바라보다가 이내 씩 웃고 말았는데, 어쩐지 비전의 표정이 천연덕스럽게 평소와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쁜 관객이네, 연주나 방해하고."
"박수 대신이라고 생각해주세요, 아니면 원래 아이들은 연주 매너는 잘 모른다고 생각하시던가요."
"원래 그런 아이들은 못들어오는거야."
그 말에 비전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럼 연주가 끝나고는 괜찮지 않을까요?"
그는 다시 한번 몸을 일으켜 그녀에게 다가갔다. 이번에는 살포시 어깨를 잡고 얼굴을 갖다대자, 완다는 친절히 염력까지 써가며 그를 천천히, 아주 상냥하게 강제로 바닥에 앉혔다. 완다, 살짝은 항의하는 투로 비전이 말하자 그녀가 입을 열었다.
"아직 연주는 끝나지 않았어요, 손님. 잠자코 듣기나 해."
그녀는 한번 웃어넘기더니 다시 손가락을 놀리기 시작했다. 뮤즈의 요정들이 꺄르륵 웃어대며 방안을 포근하게 돌아다니며 비전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이번 곡은 정말로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일까, 그는 그녀의 손가락이 자아내는 화음에 귀를 기울였다. 어쩌면 이런 음악도 나름은 괜찮다는, 여태껏 해본적도 없는 생각을 하면서.
역시 기승전달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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