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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완다 _ 죽은 왕자를 위한 파반느 3.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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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완다 _ 죽은 왕자를 위한 파반느 3.

rabbitvaseline 2016. 5. 9. 20:41




검사일자는 사흘 뒤로 정해졌다. 그리고 그 사실을 전화로 전해들은 날 밤, 비전은 다시 모르페우스에 사로잡혔다. 이번에는 앞서 꾸었던 두번의 꿈과는 달랐다. 이번에야말로 꿈이 아니라고 부를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그날 그의 머릿속에서 펼쳐진 것은 둘의 첫데이트였기 때문이었다. 이 데이트만큼은 그의 기억속에서도 사실로 존재하고 있었다. 아직 사람들의 시선을 많이 받는 비전이 택할 수 있는 데이트는 상당히 한정적일 수 밖에 없었다. 그는 타워안에 토니가 복지시설로 마련한 극장에서 완다와 단둘이 영화를 보았다. 둘이 손수 만든 팝콘을 사이에 끼고, 아무도 없는 극장안에서 단둘이 로마의 휴일을 보았었다. 발랄한 공주 앤이 돌아다니는 모습이 그들의 눈앞에 펼쳐졌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서로 맞잡은 손에 신경이 집중되어 영화를 똑바로 볼 수 없었다. 완다의 손에서는 긴장한 탓인지 식은땀이 살짝 베어나왔다. 만약 자신에게도 그런 기능이 있었다면 그랬을 것이라고, 더욱 더 손에 신경을 집중하며 비전은 생각했다. 결국 둘이 튀긴 팝콘은 절반도 넘게 남았고, 둘은 완다의 방에서 서로 아무 말도 못한채 음식을 해치워야했다. 방의 공기는 포근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날카로웠고, 둘 사이에는 긴장된 공기가 지체되어 있었다. 완다가 팝콘을 씹는 소리 하나하나가 그의 청각을 자극했다. 그는 그 긴장을 한편으로는 즐기며, 또 한편으로는 초조해하며 의자에 앉아있었다. 그런 불편하면서도 행복한 자리도 여태껏 그가 살아왔던 짧은 세월동안에는 찾아볼 수 없으리라. 결국 그날의 데이트는 그가 막 연인이 된 소녀의 길다란 머리카락을 땋아주는 것으로 끝이 났다. 그의 손가락이 두피를 건드릴때마다 완다는 움찔거리며 몸을 굳혔다. 분위기가 이상해졌다고 생각하면서도 비전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만지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눈을 뜨자 보이는 것은 완다의 방이 아닌, 무채색으로 가득한 자신의 방 풍경이었다. 그는 완다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사라지자마자, 곧바로 자신의 방에 있던 완다 막시모프의 흔적들을 모두 처리하였다. 그녀가 선물해주었던 색색깔의 물건들은 전부 다 쓰레기통으로 쳐박혀졌다. 그는 그 빈자리들을 하나하나 세어보다 손가락 끝에 남은 머리카락 감촉에 전율하였다. 어째서, 어째서 그 때 자신의 몸속에서 그녀에 대한 사랑이 그렇게나 쉽게, 아주 빠르게, 마치 파일을 '삭제'하듯 사라졌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제야 그는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이 얼마나 끔찍한 일이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는 검사를 하러 타워로 향할때까지 완다 막시모프를 만날 수 없었다. 그저 CCTV를 통해 그녀가 살아가는 모습을 훔쳐보는 정도였다. 차마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리움이 왼쪽 가슴에 머물렀다가 사라졌다. 그는 자신의 심장에서 울려오는 통증을 아직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했다. 어째서인지 그것에 대해 언급하려고하면 무언가가 자신의 머릿속을 헤집어 대화주제에서 일부러 그것만을 빼놓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사실마저 배너에게 이야기할 수 없었다.

배너는 의자에 앉아있는 자신의 아들을 보며 에스프레소를 조금씩 입안으로 넘겼다. 그는 어제에도 그때의 일이 담긴 데이터가 무사히 외장하드에 있는지와 프라이데이가 그 때의 일을 모른다는 점을 다시금 확인했다. 오늘도 비전의 동의를 받아 프라이데이의 접속을 차단했다. 그는 도대체 비전의 어디에 그때의 기억이 저장되어있는지를 짐작할 수 없었다. 그 때, 비전이 스스로 리셋시킨 두뇌는 절대로 아니었다. 사흘이라는 짧으면 짧은 시간동안 그때의 일을 떠올리며 분석했을 때, 그가 내린 결론은 아마도 두뇌의 일부분이 리셋을 피했거나 아니면 다른 장기에서 데이터를 갖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었다. 비전의 온 몸은 비브라늄과 전기회로덩어리였으니, 손, 발 같은 부위 하나에도 데이터를 저장하려면 가능은 할 것이라는게 배너의 판단이었다. 

"아마 울트론입자가 자신이 삭제되는걸 피해서 너의 다른 부위로 옮겨갔을 가능성이 있어."

"저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짐작가는 곳이라도 있어?"

"....아뇨,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거짓말이었다. 비전은 자신이 어째서 이 순간 거짓말을 내뱉었는지 알 수 없었다. 분명 심장이 아프다는, 그런 류의 말을 꺼냈어야 할 것이 분명했는데도.

"...네가 크레이들에 들어가면 내가 검사할테니까."

"그 때 저의 의식은 꺼지는겁니까?"

"응?"

배너는 순간 에스프레소를 들이키려던 손을 멈추고 의아한 눈으로 비전을 바라보았다. 비전은 어딘지 모르게 두려운 눈빛을 띄며 곧 자신이 눕게 될 크레이들을 바라보고있었다. 문득 막연한 두려움이 인 것이다. 배너도 그걸 알아차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할만한 일은 없을거야, 이번건 그저 검사니까."

비전은 어째서 자신이 '두려워' 하는지를 알 수 없었다. 크레이들에 몸을 눕히는 것은, 그 때 자신의 머릿속에서 울트론 입자를 제거한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는 크레이들로 향하는 발걸음이 매우 무겁고, 이상하게도 자신이 이 곳에 눕기를 싫어한다는걸 깨달았다. 심장에 마치 못을 박는것만 같은 통증이 이어지자 순간 주저할 수 밖에 없었다. 갑작스런 비전의 이상행동에 놀란 것은 배너도 마찬가지였다. 크레이들로 향하던 비전의 움직임이 멈추자, 그는 혹시나모를 사태에 대비하여 안경을 벗고서는 그에게 다가갔다. 비전? 아들의 어깨의 손을 올리자, 그제야 비전이 움직임을 재개하였다.

"죄송합니다, 박사님. 그렇군요, 이게 무섭다는 것이군요."

무엇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배너는 알아차릴 수 없었다. 다만 그의 몸에 심겨진 기억 일부분이, 자살했을 때의 기억을 불러일으켰는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하였을 뿐이었다. 비전이 크레이들에 들어가 눈을 감자, 배너는 급히 비전의 생체정보가 담긴 홀로그램에 눈을 돌렸다. 몇번이고 기억이 숨어있을만한 곳을 찾아보았지만, 일부러 그 부분이 잠에라도 든 것처럼 활성화되는 부분은 찾을 수 없었다. 크레이들 속의 둘째아들은 눈하나 깜빡이지 않고 온전히 잠들어있었다. 마치 그때와 같다는 생각이 들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시큰거렸다. 그는 이 둘째아들이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입을 열었다.

"결국 네가 바라는게 이런거였어, 비전?"

홀로그램내에서 반짝거리는 비전의 몸 구석구석을 뒤져봐도 과거의 기억의 조각은 찾을 수 없었다. 이렇게 숨바꼭질을 계속해야하냐는 생각에 그는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앉았다. 검사는 긴 시간동안 이뤄질 것이었다. 부디 그 시간동안 실마리라도 잡아야했기에, 배너의 눈은 화면에서 떠날 수 없었다.




"오, 이런. 역시 작은 모양이네."

토니 스타크는 드레스룸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품이 작은 셔츠의 단추를 채 잠그지도 못하는 비전을 안타깝다는 듯 바라보았다. 처음 비전이 옷을 입고 싶다고 나타샤에게서 연락이 왔을 때에는 도대체 왜 자신을 부르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단순히 호기심에서 옷을 입고 싶어한다면 다른 사람의 옷을 빌릴 수도 있을텐데 말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비전은 몸집이 컸고, 그 몸집에 걸맞는 옷을 입는 사람은 어벤져스 내에서는 캡틴 아메리카밖에 없었으며, 그 캡틴 아메리카의 옷도 비전에게 품은 맞을지언정 길이가 짧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야 토니는 비전을 타워로 불러내어 맞는 옷이 있는가를 찾고 있는 것이었다.

"죄송합니다, 토니. 역시 그냥 인터넷에서 구매하는게-"

"프라이데이, 토르의 옷들좀 가져와봐."

토니의 말이 끝나자마자 어디선가 나타났는지 모를 기계가 셔츠와 바지따위를 가져다 토니의 앞에 펼쳐놓았다. 애써 토니의 셔츠를 벗고있는 비전에게 그것을 건네주자 그는 재빨리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토르의 옷은 길이가 맞았으나 애석하게도 그에게는 조금 큰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살짝은 헐렁한 셔츠와 바지에 벨트까지 매고나니, 추레해보이는 인상에 토니는 혀를 찼다.

"아냐, 애초에 잘못 생각하고 있었어. 네가 '옷'을 입고 싶어한다고 옷을 빌려주어서는 안되는 문제였다고."

"하지만 토니, 이건 정말로 저의 호기-"

"프라이데이, 빨리 비전 몸 스캔해서 사이즈 알아내는대로 주문해. 나참, 남이 빌려주는 옷이 맞겠냐고."

"토니, 굳이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그 말에 귀찮다는 듯 얼굴을 찌뿌렸던 토니가 순간 정색하고서는 비전을 바라보았다. 살짝 난감해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토니는 말했다.

"네가 무얼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쫄쫄이를 입고 다니는 인간을 어른으로 인정해줄 곳은 아무데도 없어."

심퉁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이내 옷의 브랜드와 구두까지 챙기기로 하였다. 게다가 비전에게 어울릴만한 코디까지 생각해내는게, 영락없는 아이의 옷을 골라주는 아빠의 모습이었다. 그런 난감하면서도 간지러운 순간들, 비전이 처음으로 토니의 애정을 느꼈던 그런 반짝이던 나날 속의 한 페이지. 


비전의 입가에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는 다시금 자신의 왼쪽 가슴이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의 신음소리는 삐익 거리는 부저음으로 배너의 귓가에 전해졌다. 배너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홀로그램에서 붉은색으로 반짝이고 있는 그 부위에 시선을 집중했다. 비전의 왼쪽 가슴에 위치해있는, 사람들이 흔히 심장이라고 부르는 바로 그 부분이 맹렬히, 마치 심장이 뛰듯이 반짝이고 있었다. 부저음은 점차 더 거세져서 귀에는 시끄러울 정도였다. 이상징후가 발견되었다는 신호에 배너는 급히 검사를 중지하고 억지로 크레이들을 들어올렸다. 하얀 김이 틈새에서 새어나오고, 바깥공기가 자신의 피부에 닿자 마치 비전은 정말로 폐를 가진 동물처럼 급하게 숨을 들이마셨다. 

"비전, 괜찮아? 비전?"

비전이 크레이들을 이용한 것이 몇번 있었지만, 이렇게 패닉을 일으킨 적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는 자신의 가슴 한켠을 붙잡고서는 심히 고통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온 몸이 아팠다. 그가 지난 3년간 쌓아왔던 추억들이 비수처럼 모조리 그의 몸을 찔러대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알리 없는 배너는 비전의 손을 잡고 괜찮냐고, 그렇게 힘없이 물어볼 수 밖에 없었다. 

"비전!"

배너의 목소리가 그의 귓가를 스쳤다가 이내 퍼지듯 사라졌다. 비전은 주마등이 눈앞에 아른거리는걸 느끼며 다시 정신을 잃었다. 비전의 몸에서 힘이 빠지자 배너는 부저음이 사라진 것을 깨닫고 다시 홀로그램에 눈을 돌렸다. 비전의 상태는 정상으로 돌아왔으며 그의 심장에서 미친듯이 깜빡거리던 붉은 불빛도 이내 원래대로 돌아갔다. 비전이 괜찮아졌다는 판단이 컴퓨터에서 흘러나오자 배너는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대리석바닥의 냉기가 부저음과 같이 요동치던 그의 심장을 진정시켜주었다. 그는 주저앉은채로 평온히 정신을 잃은 제 두번째 아들을 바라보았다.

원인을 알아내었다. 비전이 자살을 택하기 전의 기억을 백업해놓은 곳은, 다름이 아니라 그의 심장대용을 하는 소형 아크리액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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