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ANDALIEN

비전완다 _ 후유증 본문

AVGS/HL

비전완다 _ 후유증

rabbitvaseline 2016. 4. 28. 20:36



시빌워 스포있어요









바깥에는 바람이 많이 불고 있었다. 그녀가 문을 열자 서늘하면서도 습한 공기가 방안으로 밀려들어와, 어젯밤에 비가 한층 쏟아졌다는 것을 다시 확신할 수 있었다. 그녀는 몇번 바깥의 냄새를 느끼다 창문을 닫았다. 창문의 이음새가 맞지 않아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창밖으로 보이는 정글과 그녀의 사이에 옅은 안개가 자리잡고 있었다.

"완다."

몇번 흐린 윤곽을 훑다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그녀는 뒤돌아섰다. 아침밥이 올려진 쟁반을 들고서 샘은 완다에게 처연한듯 눈꼬리를 내리며 웃어보였다. 그 미소에 완다의 입가에도 저절로 흐릿한 미소가 지어지다가 입이 열렸다. 하지만 그 벌려진 입에서는 몇번이고 힘차게 숨을 내뱉는 소리만이 튀어나올 뿐, 흔히 목소리라고 불리우는 것은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몇번이고 제 입에서 음성이라는 것을 발하려고 하였으나, 성대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괜찮아,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돼."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급히 테이블 위에 올려있던 수첩을 들어올렸다. 필담이 상당히 많았는지 벌써 두꺼운 수첩의 절반을 썼다. 그녀는 재빨리 수첩에 무언가를 휘갈겼다.

-노크하지 그랬어요-

괜찮다는 말이 아니라 훈계하는 투의 말이라 샘은 쓴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미안, 아침 식사때도 안내려오니까 급해서. 뭐하고 있었어?"

-밖을 보고 있었어요.-

그녀는 다시 창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햇살은 안개에 가려 그 빛을 은은하게 완다의 방에 비춰주고 있었다. 낯설은 환경, 낯설은 공기에 잠시 눈을 빼앗겼던 것도 며칠, 그녀는 곧 이 습하고도 더운 와칸다의 환경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샘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갖고 온 쟁반을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쟁반 위에는 간단하지만 호화롭다고도 말할 수 있는 식사가 차려져있었다. 그들이 현재 머물고 있는 궁전의 주인은 관대함을 베풀어 그들을 성심성의껏 대접했다.

-고마워요.-

"알았으면 빨리 먹어, 저번처럼 남기지 말고. 아, 캡틴이 오늘은 상담 2시라고 전해달래, 꼭 늦지마."

완다는 샘의 당부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최근 자신의 치료를 맡은 의사선생을 떠올렸다. 자그마한 키에 순진한 얼굴과는 달리 상당히 전문적으로 완다를 챙기고 있었다. 그녀는 완다 막시모프가 교도소에 갇혀있었을 때 받은 정신적인 충격과 함묵증에 대해 꽤나 고심하고 있었다. 완다는 아무 말도 내뱉지 못했고,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다. 교도소에서 빠져나왔을 때 이후로 그녀는 능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몇번이고 노력은 해보았다. 몇번이고 손가락을 구부리고, 자신의 몸속에서 흘러다니는 에너지를 집중시키려고 노력하였다. 하지만 그럴때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나이지리아에서 있었던 참상들과 소코비아의 절규들, 공항에서의 전투, 수중감옥에서의 일들이 떠다녀, 결국 그 에너지는 마치 바깥의 안개처럼 옅게 흐려지다 사라졌다. 구속복은 거친 면으로 되어있었으며 자신의 몸을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도록 죄어맸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그녀를 더욱 절망하게 만든 것은 목에 채워진 기계였다. 붉은 빛이 그녀의 턱 아래로 점멸하며, 목걸이가 채워진 상대를 끊임없이 압박했다. 유리벽 너머로 장관은 원래는 헐크를 위한 것이라고 야심찬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다. 능력 하나만 나와도 폭발시켜버리겠다는 협박의 뒤에는 그녀 뿐만이 아닌 다른 멤버들도 가리키고 있었다. 그 뒤로 그녀는 스티브 로저스가 자신을 구하러 와줄때까지, 다른 이와는 아무 이야기도 나눌 수 없었다. 

옛날이었으면 간단히 쟁반을 들어올리는 것도 가능하련만, 아무리 정신을 집중하여도 능력은 발휘되지 않았다. 그녀는 그것을 벌로 보아야 할지, 아니면 차라리 축복으로 여겨야 할지 간단히 판단할 수 없었다.


▒ ▒ ▒ 


바깥에는 바람이 많이 불고 있었다. 그가 창문을 열자 서늘하면서도 습한 공기가 방안으로 밀려들어와, 어젯밤에 비가 한층 쏟아졌다는 것을 다시 확신할 수 있었다. 그는 몇번이고 주인이 찾아오지 않을 방문을 바라보았다. 방 안에는 주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겨져있어서, 그저 먼지를 치우는 정도로밖에 청소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방안에 깃들여있는 주인의 향취를 느끼다 한쪽 벽에 걸려져있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곧 로디의 오후 재활훈련을 할 시간이었다. 

어벤져스는 당분간 휴업 상태였다. 공항에서의 난투극 이후로 UN은 국방부장관인 로스를 앞세워 캡틴 아메리카와 윈터솔져의 도주를 도왔던 어벤져스 멤버들을 체포하여 곧바로 수중감옥으로 집어넣었다. 변호사의 선임은 허용되지 않는, 그야말로 인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상황에서 토니는 어떻게든 변호인단을 내세워 그들을 빼내려고 노력하였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그가 보게 되는 것은 좁은 방안에 갇혀있는 멤버들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곳에서 온 몸이 결박되고 폭탄 목걸이를 차고 있는 완다의 모습이었다. 로스는 자신의 심기를 건드리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 무언의 협박을 하고 있었다.

처음 그 사진을 로디와 비전에게 보여주고나서 토니가 한 일은 비전의 손목을 붙잡는 것이었다. 심각한 눈으로 당장에라도 하늘로 날아오를듯 공중에 떠 있던 비전에게 안된다고, 합법적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네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토니 스타크는 끊임없이, 거의 매일이고 설득했다. 비전도 토니의 생각하는 바는 잘 알고 있었다. 그도 합법적으로 완다를 빼내는 일이 그녀에게 유리하다는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하루 이틀, 일주일 이주일을 넘어가도 협상은 진전이 되지 않았다. 로스 장관은 다른 멤버들은 몰라도 완다 막시모프만은 엄중히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전의 인내심도 서서히 사라져갔다. 그래서 그들의 탈옥소식을 들었을 때엔 솔직히 그동안의 노력이 허송세월이 된 것을 안타까워했지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토니는 바빴다. 그는 어벤져스의 새로운 인력을 충원해야 했으며, 비록 멤버들이 탈옥은 하였으나 모든 죄를 스티브 로저스에게 뒤집어쓰고-그건 그도 동의한 바였다- 사면령을 받으려고 전세계를 돌아다녔다. 로스장관이 자신에게 주었던 사진들은 반대로 여론의 동정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덕분에 그 넓다란 어벤져스 저택에는 로디와 비전, 나머지 직원 몇몇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비전은 새로운 인원이 충원될때까지는 휴식을 취하며, 자신의 잘못으로 장애를 입게 된 로디의 재활을 도우게 되었다.

"들었어? 토니가 곧 돌아온다던데."

로디는 자신을 그렇게 만든 장본인에게 오히려 더 친절하고 살갑게 대하였다. 그건 그가 이번 부상과 난리통 사이에서 충분히 성장하기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그것보다는 비전을 토니에게만 맡길 수 없다는 생각이 컸기 때문이었다. 비전은 완다의 부재와 로디의 부재로부터 방황하고 있었다. 그는 도저히 자신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토니는 그런 비전을 붙잡아줄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네, 요즘 와칸다와의 협의로 많이 바쁘다고 들었습니다. 다행히도 전하가 꽤나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군요."

비전은 휠체어를 끌며 곧 다가올 수정안 협의와 사면요구에 대해 생각하였다. 로스 장관은 여전히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었고, 와칸다의 티찰라는 태도를 바꿔 토니의 의견을 지지해주고 있었다.

"어떻게든 좋게 풀렸으면 좋겠지만- 어, 토니?"

재활장의 유리문이 열리자 보인 것은 한창 의수를 수리중인 토니였다. 그는 수건에 손에 묻은 기름을 개끗이 닦고는 둘을 환영하였다. 오랜만이야, 연일 이어진 강행군에 눈밑에는 다크서클이 끼어있었고, 살도 벌써 많이 빠진 것 같았다. 전과 다르게 수척한 모습에 로디는 한숨을 내쉬며 진심으로 걱정스러운 눈빛을 비추었다.

"많이 지쳐보이네."

"...이것저것 일이 많았거든, 도대체 로스 국장 성미를 어떻게 맞추어야 할지 모르겠어."

토니는 허심탄회하게 순순히 상황을 로디에게 털어놓았다. 이 모든 일들을 속으로 떠안기에는 이제 너무나도 많이 지쳐버렸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입니다, 토니."

"..오랜만이야, 비전. 로디는 내가 맡을테니까, 할일이나 하고 있어."

명백히 자신을 피하는 행동에 비전은 실망의 기색을 선명히 내보였으나 토니는 그것도 무시한채 로디를 휠체어에서 일으켜세웠다. 로디는 당황해하면서 쓴웃음을 내뱉었다. 미안해, 살짝은 힘이 빠진 목소리에 비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음에 보자고 인사를 나누고 복도로 돌아갔다.


"무슨 일이야?"

보조장치를 장착하고 연신 땀방울을 흘리며 걷기 연습을 하던 로디가 입을 열자, 드라이버를 돌리고 있던 토니의 손이 일순간 멈췄다.

"할 말이 있는거지? 비전이 들으면 안되는. 혹시 완다의 일이야?"

"정확하군, 역시 내 버디야."

"비전은 이상하게 그 애의 일에서만은 평소와 달라지니까. 졸지에 로미오와 줄리엣이 되어버렸지만."

토니는 잠깐 마른침을 삼키고 헛기침을 하다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꺼내더니 무언가를 조작하였다.

"이제 아무도 못들어, 일단은 너에게만은 해야할것 같아서. 와칸다에서 연락이 온건 알고 있지? 티찰라 전하에게서 말야."

"아, 그 양반, 결국 즉위식까지 다 했다고 들었는데."

"응, 이번에 협정안과 비브라늄 수입건때문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말이지, 이건 정말로 누구에게도 말하면 안되는건데 말이지."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비전이 알게되면 골치아픈 일이 벌어질 것이 분명했기 떄문이었다. 그는 프라이데이에게 비전은 현재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는 연락을 받자마자 입을 열었다.

"...스티브에게서 연락이 왔어. 완다의 처방전을 보내달래."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로디의 움직임이 일순간 멈췄다. 토니가 이야기를 꺼냈을 때부터 완다의 이야기인줄은 알고 있었으나, 설마 스티브가 먼저 연락하리라고는, 그리고 와칸다와 관련된 일인줄은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와칸다의 국왕인 티찰라는 스티브의 절친한 친구인 제임스 뷰캐넌 반즈를 죽이려고 했었다. 한때 목숨을 위협하는 자에게 의탁하다니, 그는 티찰라의 관대함과 스티브의 대범함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럼 완다는 와칸다에 있다는건가, 확실히 비전이 들으면 위험할만한 이야기이긴 했다. 요즘 비전은 부쩍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고, 그만큼 완다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훈련소에는 없었던 토니는 모르겠지만, 다른 멤버들은 이미 비전이 완다를 보는 시선이 단순히 친한 관계가 아니란걸 알아차리고 있었다.

"..다른 연락은?"

"몰라, 하지만 아마 또 힘든거겠지. 소...소코비아 일이 끝나고나서도 힘들었으니까. 하긴, 나라도 그런 일을 겪으면 힘들거야."

목에 폭탄목걸이를 찬 채로 홀로, 온 몸이 결박당한 채 갇혀있었다. 무한한 침묵과 멸시의 눈길이 그녀를 향해 내리쬐었다.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너무나도 끔찍한 경험이라, 처음 메일에서 그 구절을 확인하자마자 토니는 모든 것을 이해해버리고 말았다. 

"...확실히 비전이 들으면 위험한 얘기이긴 하네."

"그래, 당장에라도 줄리엣에게 달려갈테니 말이야."

토니는 쓴웃음을 지으며 로디를 자리에서 일으켜세웠다. 애초에 폐가 없어 숨을 내쉬지 않는 남자가 벽에서 움직인 것도 그때였다.



▒ ▒ ▒ 



주치의인 아이카가 다쳤다. 그녀는 그 소식을 스티브에게 전해듣자마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계단에서 굴렀노라고, 생명에 지장은 없지만 대신 몇주간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는 소식에, 그녀는 병문안을 가고 싶다고 모두에게 전했다. 핌 테크놀러지에서 화를 내며 데려간 스콧 랭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 즉 이 와칸다 왕성에 반쯤은 갇혀지내던 사람들은 완다의 그 말을 허투루 들을 수는 없었다. 다행히 토니 스타크는 자신들을 추격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전세계를 적으로 돌렸다. 이렇게 와칸다 내부에서 지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이었다. 클린트 바튼은 안된다고 딱잘라 말하였다. 당분간 상황이 안정되고, 토니 스타크가 스티브와의 약속대로 자신들에게 사면령을 받아내주기 전까지는 바깥에서 움직일 생각은 없었다. 다른 아프리카도시들보다도 선진화되고 기계화된 와칸다의 시스템도 그 우려에 기름을 끼얹었다. 완다가 움직이는 곳 구석구석마다 CCTV가 그녀를 찍어댈 것이었다.

"하지만 스티브도 결국은 그렇게 움직였잖아, 요즘은 돌아다니기도 하고."

"그건 캡, 아니 스티브 로저스니까 그런거고."

"너무 완다를 과잉보호하는거 아냐?"

"과잉보호라니, 맞는 얘기잖아. 쟤는 지금... 미안, 완다. 쟤는 지금 평범한 일반인이라고,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떻게해?"

정확히 말하면 일반인보다는 더 나을것도 없는 상황이었다. 능력을 못쓰는 것은 둘째치고, 그녀의 입에서는 아무런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으니까. 행여나 티찰라와 스티브의 관계를 의심하는 CIA가 그녀를 발견하기나 한다면 커다란 문제일 수밖에 없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언쟁에 완다의 표정이 급격히 심울해졌다. 그녀는 노트에 무언가를 쓰려고 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틀림없이 이 상황에서 단념한 것이리라, 하지만 그녀가 알았다고 미안하다고 쓰려는 찰나, 스티브가 둘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방법이 없는건 아냐, 난 괜찮다고 보고. 무엇보다 완다가 원한 것이니까."

"...진심이야?"

"클린트, 자네가 얼마나 갑갑하게 여기고 아이들을 보고 싶어하는지 알아. 샘, 미안해, 날 따라와서 이런 꼴이나 보이고. 물론 우리가 추격을 받고 있고 지금은 티찰라 전하의 보호아래에서 숨어지내는 것도 알아. 하지만 우리도 사람이야, 사람은 자신이 원하여 하였던 일을 하고 그 일에 책임을 져야 해. 완다, 난 네가 원하는 선택이 괜찮다고 보면 지지할거야.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고. 오히려 지금이 네가 마음껏 움직일 수 있을 때일지도 몰라."

"스티브."

"여기도 얼굴을 변장할 수 있는 필름이 있어. 그걸 쓰면 어떻게든 될테지."

지모가 버키로 변장했을 때, 그리고 쉴드 본부에서 나타샤가 사용했던 물건이었다.

"그거라면 어떻게든 될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완다. 명심해, 방심하면 안돼."

스티브가 내놓은, 어떻게보면 치트키같은 물품에 바튼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완다의 눈은 이미 희망에 반짝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이 왕성에서의 답답한 생활에 점차 질려가고 있던 참이었다.

-고마워요-

그 말에 스티브는 미소를 지었다.



▒ ▒ ▒ 



그는 와칸다의 온도와 습기가 생각보다 높은 것에 놀랬다. 일부러 토니가 맞춰준 스리피스 수트를 입기에는 온도가 너무 높았기에,  일반인들처럼 보이려 베스트와 모자까지 벗을 수 밖에 없었다. 넥타이를 살짝 헐렁하게 푸는 것도 그 방법중 하나였다. 그는 자신들을 스쳐 지나가고, 잘 보이지 않는 백인을 곁눈질로 훔쳐보는 사람들 틈 사이에 서 있었다. 행여나 인간으로 변장한 것이 풀릴까, 살짝은 걱정을 하며 와칸다 왕성이 있을 북부로 향해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완다의 행방을 아는 것은 간단한 일이었다. 우선 와칸다에서 보호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나서 비전이 한 일은 완다가 처방받았던 약의 정보가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파악하는 일이었다. 정보의 바다에서 몸을 눕혀 떠다니며 토니의 메일이 들어가는 곳으로, 그리고 그 메일에서 약이 담긴 정보가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파악했다. 최종적으로 도착한 곳은 아이카라는 의사의 메일이었다.  CCTV와 스마트폰으로 그녀의 행방을 찾자, 그녀가 주 3회 와칸다 왕성으로 출퇴근을 한다는 사실을 알아내었다. 왕성 내부에는 자체적으로 락을 걸었는지, 아니면 자체적인 네트워크를 사용하는지 감시영상을 확인할 수 없었다. 심지어 왕성에 드나드는 사람들은 스마트폰의 소지마저 금지되어, 카메라를 통한 확인도 불가능했다.

이러게 된 이상,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직접 왕성에 침투하여 완다의 소재를 확인하는 일뿐이었다. 물론 비전으로서는 그 일이 들킨다면 얼마나 큰 파장을 낳을지 잘 알고 있었다. 어벤져스 멤버가 UN과 타국의 허락없이 와칸다에 침입한다는 것은 협정에도 위반되는 일일테니까. 하지만 그는 어떻게든 완다의 상태를 확인하고 싶었다. 그는 자신의 오만함을 그녀에게 사과하고, 부디 그녀가 무사한지를 자신의 두 눈으로 보고싶었다. 그는 완다를 매우 걱정하고 있었다. 스티브가 요청하였다는 처방전은 피에트로 막시모프 사후 겪었던 거식증과 우울증 치료를 위한 것이었다. 만약 지금도 그런 상태라면, 그는 도저히 견디기 힘든 죄책감과 수치심의 바다속에서 처음으로 헤엄을 치고 있었다.


택시를 타고 약간 서툴러보이게 발음하는 와칸다어로 왕성으로 가달라고 부탁하였다. 택시기사는 기겁을 하며, 그곳은 허락된 사람이 아니면 안된다고 말하자 비전은 잘 몰랐다고, 그냥 밖에서 구경만 하겠다고 하면서 근처에라도 데려가달라고 말하였다. 가는 와중에도 CCTV들을 확인하며 그녀의 모습을 찾았지만, 역시나 왕성 밖으로는 나오지 않는 모양인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부디 하나라도, 하나의 실마리라도 찾는 심정으로 그는 계속해서 정보의 바다에 뛰어들기를 반복했다. 

"곧 왕성에 도착할텐데, 뭐 어떻게 할거요?"

앞유리 너머로 웅장한 와칸다 왕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과는 달리 비브라늄의 독점채취로 인한 막대한 부를 쌓은 이 나라의 왕성은, 다른 국가의 성들과 비교하자면 그야말로 미래에 있는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는 근처에 세워달라고 말한 뒤, 지갑에서 지폐를 꺼내었다. 그리고 택시가 멈춰서자 지폐를 건네어주려는 찰나였다.

"!!"

그는 맞은 편에서 달려오는 검은색 세단을 보고 순간 렌즈의 초점을 맞추었다. 코팅된 차량 너머로 앳된 백인 처녀가 경호원들의 경호를 받으며 뒷좌석에 앉아있었다. 살짝은 초조해하면서도 불안한 모습, 분명 그녀의 모습은 비전이 알고 있을 완다 막시모프의 모습과는 심히 달랐다. 하지만 그는 그녀가 완다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세단 안의 처녀에게 시선을 집중시킨 것은 분명 자신도 알 수 없는 어떤 힘에 의해서였다. 하지만 그 여자의 모습을 보았을 때, 비전은 그녀가 완다의 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타박하는 택시기사의 말도 무시한 채, 경호원들이 갖고 있을 스마트폰을 해킹하여 그들의 대화를 들었다.

"전하께서 주의를 단단히 하라고 하시더군."

"그래도 주치의도 어지간히 잘 대해줬나봐, 이 아가씨가 밖으로 나오려는줄은 꿈에도 몰랐는걸."

"아가씨, 괜찮아요? 아, 와칸다어는 모르나. 막시모프양, 곧 아이카선생이 있을 병원으로 갈거에요. 우리로서도 시간을 많이는 주지 못해요."

그 말을 끝으로 비전의 정신은 다시 돌아왔다. 그는 화가 터지기 일보직전인 택시기사에게 지폐를 건네준 뒤, 근처에 있을 병원에 데려가달라고 말하였다. 갑자기 무슨소리냐며 화를 내던 기사에게 다시 돈이 주어지자, 그는 언제 화를 냈느냐며 퉁명스럽게 브레이크를 풀고 악셀을 밟기 시작했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비가 내리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옷이 비에 젖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뒷문을 닫으며 빠른 걸음으로 병원 안으로 들어섰다. 병원 특유의 소독약섞인 훈훈한 공기가 그의 후각세포를 자극했지만 그의 시선은 이 병원 내에 퍼져있는 CCTV를 향해 있었다. 완다의 주치의라는 아이카라는 여자의 병실은 4층에 있었다. 그녀는 다리골절로 병원에 입원중인 모양이었는데, 완다는 그녀의 환자로서 그녀의 병문안을 온 것 같았다. 앳되어보이는 변장을 한 완다 막시모프가 병실에 들어가는 모습이 CCTV에 잡히는 것을 보았다. 10분만이라는 경호원의 당부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병실문을 열었다. 한손에는 아마도 문안선물일 무언가가 들어있을 종이가방이 들려있었다. 그는 애써 신경을 써 인간이 낼 수 있는 빠른 걸음으로 완다가 있을 4층을 향해 올라갔다. 몇달만이던가, 공항에서 그녀가 체포되는 것을 무력하게 보고나서 몇달만에 그녀를 만나는 것인가. 만약 그에게 심장이라는 것이 인간의 것처럼 기능을 한다면, 분명 그가 태어나고나서 그 어느때보다도 급하게 뛸 것이 분명했다. 곧 그녀를 볼 수 있는 기대감과 막연한 불안감이 그의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는 비상계단에서 4층으로 통하는 문을 열었다. 환자복을 입은 다양한 환자들이 병실 복도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누군가가 복도의 창을 열어놓았는지 병실의 공기는 눅눅해져있었다. 10m, 점점 그녀와의 거리가 줄어들수록 그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당장에라도, 당장에라도 저 벽을 넘어 그녀를 보고 싶었다. 애석하게도 병실 내에는 CCTV도, 스마트폰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CCTV가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없게 조작하고는 조심스럽게 경호원들 바로 뒤에 있을 복도의 벽에 숨어들었다. 경호원들은 시시껄렁한 농담을 던지거나 현재 왕성에 머물고 있는 객식구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나저나 저 아가씨는 언제쯤이나 입을 여는걸까, 무슨 인어공주도 아니고."

"주치의말로는 그냥 정신적인 문제라 약을 써도 소용이 없다던데... 와칸다에서 안되면 다른 곳도 안되겠지."

정신적인 문제, 말을 할 수 없다, 라는 말에 비전의 가슴이 처참하게 무너졌다. 그는 하마터면 그들의 앞에 나타나 완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서는 그동안 계획한 모든 일이 물거품으로 돌아갈것이었다. 그는 이토록 인내심을 시험당한 적이 없을 것이라고 느낄 정도로 시간이 길게 흘러간다고 느꼈다. 부디 당신의 모습을 내 두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기를, 몇달이나 바라고 또 바랬던 일이었다. 끼익, 문이 열리는 소리에 그의 몸이 움찔거렸다. 다행히도 몸은 많이 야윈것 같지는 않았지만, 팔둘레가 살짝 줄어든 것이 가슴이 아팠다. 머리는 가발인걸까, 아니면 정말로 그 탐스러운 머리칼들을 자른 것일까 그로서는 확신할 수 없었다. 변장필름 너머의 얼굴은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는 그녀의 어딘가 조심스러운 몸짓이 너무나도 안타까웠고 가슴아팠다. 완다는 품에서 수첩을 꺼내 무언가를 적어내려갔다. 굳이 말할 필요도 느끼지 않은건지, 아니면 정말로 말을 못하는건지 차마 입을 열려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고마워요.-

짧은 그 말이 마치 들리는 것 같아서, 그는 몇번이고 완다의 음성데이터들을 돌려보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또래 여자들보다는 살짝 허스키했고 중저음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 목소리가 너무나도 좋아서, 그녀가 몇번이고 자신에게 비즈(Viz)라는 애칭을 부르는 것을 좋아했다. 그녀가 웃을 때엔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고 목소리도 그랬다. 침울해하면 마치 목에 무언가가 막힌듯한 목소리로 말하곤 했다. 그 목소리가, 정말로 인어공주처럼 그 음색을 잃고 그녀의 폐속에서 공기로 머물렀다. 

-그래도 많이 좋아진 것 같더라구요, 이주 뒤에 보쟀어요.-

"그거 다행이군요, 볼일이 끝나셨으면 이제 그만 가도 될까요?"

완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벽속에 숨겨져 있던 그의 손가락이 순간 움찔거린 것도 그때였다. 그녀의 앞에 모습을 내보이고싶었다. 물론 그건 말도 안되는 소리로, 그는 자신과 완다 사이에 있을 경호원들을 따돌릴 방법이 딱히 없다는 것을 머릿속에 되새겼다. 하지만, 그래도 그녀에게 서툴게 웃으면서 말을 걸고, 그녀도 미소로 자신에게 화답하던 그 평범하다면 평범했을 순간들이 그와 그녀의 사이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제 다시는 그런 평범한 순간들은 올 수 없을지라도, 다시 그녀를 볼 수 없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는 어떻게든 완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그의 손가락이 다시 움찔거렸다. 몇달동안 그녀없이 외롭게 지내던 그리움이 점점이 폭발했다. 그의 마음 한구석에 있던, 비어져버린 틈이 폭발하다 이내 이성에 의해 사그라들었다. 그는 조심스레 고개를 돌렸다. 이거면 될 것이다, 그나마 입에서 말이 안나온다 하더라도 그녀의 모습이 그나마 평안해 보이는 것이 다행이었다. 그는 조심스레 완다를 향해 뻗으려했던 손을 거두었다. 그리고 그대로 벽 너머로 몸을 눕히려고 하였다.


만약 그에게 폐가 있다면 그는 이 순간 놀라며 숨을 급히 들이쉬었을 것이다.


"아가씨?"

-미안해요, 나 잠깐 화장실좀 다녀와도 될까요?-

비전은 순간 깜짝 놀라 움직임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완다는 자신의 손바닥을 조심스레 벽에 댔다가 이내 떨어뜨리었다. 그리고 벽을 향해 소리도 나오지 않는 입으로 Viz라고 무언의 말을 하였다. 그도 순간 완다, 라는 말이 튀어나오려했지만 간신히 참아내었다.

"좋아요, 하지만 딱 5분이에요, 늦으면 안돼요."

그녀는 방금 전, 자신이 고맙다고 썼던 페이지를 보여주며 화장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비전은 급히 경호원들의 스마트폰 내에 내장되어있던 시간을 건드렸다. 5분이라는 시간은 이 해후에는 너무나도 짧았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화장실문을 닫자마자 비전은 재빨리 모습을 드러내고 문을 잠궜다.


"!!"


완다의 입에서 격한 숨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비전은 드디어 제 품에 그녀를 껴안았다. 완다의 손가락이 비전이 입고 있던 셔츠의 옷자락을 쥐어잡았다. 비전은 완다의 등에 팔을 두르고는 그녀의 정수리에 제 코를 들이댔다. 그는 그녀의 체취를 맡는 도중에도 자신이 이렇게나 감정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에 적잖이 놀랐다. 그녀가 화장실로 간다는 얘기를 했을 때에도, 그저 그 안에 따라들어가 단순히 이야기나 나눌 생각이었지만, 그녀가 자신을 부르려한다는 것을 알아차리자마자 그는 자신의 몸을 주체할 수 없었다. 완다의 몸이 가느다랗게 떨리자, 그는 눈을 감고 조심스레 완다의 이름을 나지막히 불렀다. 이 이름을 얼마나 부르고 싶어했던가, 이 익애하는 사람을 얼마나 부르고 싶었던가. 그리고 얼마나 그녀를 품에 안고싶었는가. 사실은 매우 충동적인데다가 태어나서 단 한번도 그녀를 품에 안은 적이 없었지만, 그는 지금 이 순간을 얼마나 바랬었는지를 계속해서 생각했다. 그녀의 체온, 체취, 움직임, 심장박동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그리웠다. 

"...보고싶었습니다, 보고싶었습니다 완다."

그의 목소리도 살짝은 떨리고 있었다. 비전은 -정말로 자신이 봐도 놀라울 정도지만- 완다의 정수리에 몇번 입을 맞추고는 그녀를 품에서 떨어놓았다. 그녀의 눈가가 살짝은 붉어져있자, 마치 자신도 눈물을 흘리는 것 같은 착각에 휩싸였다. 그녀는 몇번 입을 열다가 이내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는 다물었다. 그 다물어진 붉은 입술이 얼마나 안타깝던지 그는 고개를 돌리고만 싶었다. 

"미안합니다, 완다. 전... 단지 당신이 어떻게 지내는지를 확인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몸은 많이 괜찮으십니까? 말을 하지 못하는 겁니까? 미안합니다, 이건 변명이라는 것을 알지만 저는 당신을 구하고 싶었습니다. 몇번이라도 당신을 구하고 싶었습니다만, 내 이성이 그것을 가로막았습니다."

완다의 입가에 자그마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는 수첩에 무언가를 휘갈기기 시작했다.

-아냐, 괜찮아. 더 골치아파졌을거야. 이렇게 와줘서 고마워. 보고싶었어.-

그녀도 감정이 격해졌는지 짧은 문장들을 써내려갔다. 수첩에 쓰여진 글씨가 형편없이 망가져가는 것을 보고는 비전은 그녀의 손을 거머쥐었다. 그녀의 온기가 손을 타고 전해지자, 자연스레 마음이 진정되어지는 것을 느꼈다.

"완다,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동안 나만이 당신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해왔습니다, 당신도 그렇다고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완다의 입이 조그맣게 벌려졌다. 그는 자그맣게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완다, 그렇게 함으로서 나는 내 선택이 당신의 선택이라는 착각을 하고 말았습니다, 이 점에 관해서는 사과를 하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협정에 관한 의견은 당신과 반대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생각을 당신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도 당신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무언가 실수를 하기 마련이고, 그 실수를 딛고서 앞으로 향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실수를 반성하는 것은 타인이 아닌 개인의 몫이죠."

그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다행히도 이 짧은 머리칼은 가발인 모양이었다. 그는 완다의 머리카락이 그대로라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안도하였다. 완다는 비전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알아주는구나, 여태껏 비전이 그녀를 향해 보였던 묘한 애정과 아주 살짝의 집착이 떠올랐다. 비전은 마치 완다를 엄마새처럼 따랐었지만, 이제는 그런 일이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게 너의 생각이구나.-

"네. 난 당신의 선택을 존중하겠습니다. 이 말을 하고 싶어서, 아뇨 사실은 당신이 보고 이 말을 전하고 싶어서 온겁니다."

그 말을 끝내자마자 완다는 다시금 비전의 몸을 안았다. 평상시에는 입지도 않을 정장차림에 인간으로 변장까지 하고, 저 말을 하기 위해 인간인척 변장했을 이 안드로이드가 너무나도 고마웠고 또 사랑스러웠다. 그는 피에트로를 잃고 생겨난 그녀의 빈 틈을 엉성하기는 하나 열심히 채워주었다. 자신의 요구를 말하지도 않은 채, 오로지 그녀만을 바라보며 그녀를 위해서 움직였다. 하지만 이제 그는 자신의 길을 갈 것이다, 그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녀는 입을 열고서는 배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이 눈물겹고도 감동적인 해후에도 그녀의 성대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가 힘차게 숨을 내쉬는 것을 알아차리자 비전은 괜찮다고, 그렇게 애쓸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었다.

-고마워.-

수첩에 재빠르게 휘갈긴 글씨를 알아보기는 힘들었지만, 비전은 완다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였는지를 잘 알 수 있었다. 그는 조심스레 허리를 숙여 자신의 이마를 그녀의 이마와 맞대고서는 눈을 감았다. 비전의 서늘한 피부가 느껴지자 완다도 스스로 천천히 눈을 감았다. 둘 사이에는 그 어떠한 힘도 작용하지 않았다. 둘의 정신은 서로 공유되지 않았고 한쪽이 한쪽의 기억을 읽는, 그런 일들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의 붉은 힘은 여전히 손가락에서 조그맣게 머물다가 사라졌다. 하지만 이 순간이, 이렇게 체온을 맞대고 있는 이 순간이 그 어떤 때보다도 두근거리고 소중하였다. 똑똑, 그녀를 찾는 노크소리가 문 너머로 들려왔다. 경호원은 자신의 스마트폰 시계가 잘못된 것을 깨닫고는 완다를 찾는 모양이었다.

"아가씨?"

그 말에 완다는 무언가 말을 하려다 아직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는걸 알고서는 재빨리 문에 노크를 하였다. 어서 나오라는 타박이 들려왔다. 이제는 이별할 시간이었다.

"완다."

행여나 들릴새라 조그마한 목소리로 비전은 완다의 이름을 불렀다. 완다도 고개를 끄덕이며 비전의 귓가를 쓰다듬었다.

"부디 건강히 지내세요, 무슨 일이 있으면 저를 부르셔도 됩니다."

그 말에 완다는 싱긋이 미소를 지었다. 비전은 완다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손가락으로 닦고선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완다의 이마와 두 눈가에 조심스레 입을 맞추었다. 그건 방금전 포옹과 마찬가지로 상당히 충동적인 스킨쉽이었다. 하지만 그는 여태껏 그녀에게 그러고싶었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완다또한 그것을 알아차렸는지 수줍게 얼굴을 붉히며 미소를 짓다, 조심스럽게 비전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쪽,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언젠가 나중에 또 뵙죠."

그 말을 끝으로 비전은 벽 너머로 사라졌다. 아가씨?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완다는 급히 화장실의 문을 열었다. 상당히 많이 걱정했다는 타박에 그녀는 배탈이 난것 같다고 적어주면서 경호원들을 안심시켰다. 하지만 어째서 눈이 붉어져있느냐는 질문에는 그저 홍조어린 미소만 지을뿐, 아무런 글도 쓰지 않았다.






여러분 프롬의 후유증은 좋은 노래입니다 ㅎㅇㅎㅇㅎㅇ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