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ANDALIEN

비전완다 _ 죽은 왕자를 위한 파반느 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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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완다 _ 죽은 왕자를 위한 파반느 2.

rabbitvaseline 2016. 5. 8. 14:08




비전이 그런 이상한 말을 내뱉자마자 브루스 배너는 제 손에 들려있던 잔을 떨어뜨릴 뻔 했다. 그는 가까스로 머그잔을 들어올리고서는 행여나 비전이 자신의 행동을 눈치챘는지를 반신반의하며 커피를 잔에 따랐다. 다행히도 비전은 자신에게 일어난 이 말도 안되는 일들에 집중이 팔려서인지, 배너가 얼마나 당황했는지를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그는 조심스레 한숨을 내쉬고 양손에 머그잔을 든 채로 비전이 앉아있을 테이블로 향했다. 비전은 손가락을 맞대고는 깊은 생각에 빠져있었다. 하지만 그도 인기척을 느꼈는지 배너가 테이블에 잔을 내려놓자 고맙다는 인사를 하였다.

"갑작스레 찾아뵙게 되어서 죄송합니다, 박사님."

"조금 놀라긴 했지만 네 일이라니 어쩔 수 없었지."

10여분전, 한창 연구에 몰두하고 있던 배너는 비전으로부터 이상한 전화를 받았었다. 어딘지 모르게 다급해보이는 목소리에 배너는 저도 모르게 심장이 내려앉는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여야했다. 상담할 일이 있습니다, 라는 말은 그에게 불안감을 심어주었고, 예의 그 일이라는 말에 그는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키며 제 심장박동을 진정시킬 수 밖에 없었다. 그 둘이 말하는 예의 그 일이란, 비전의 머릿속에서 울트론 입자들을 제거하는 그 일들을 뜻하는 말이었다. 그는 비전이 그 '예의 일'의 진상을 눈치챈 것이 아닌지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곧 도착한다는 말을 듣자마자 배너가 한 일은, 2달전 있었던 일의 데이터가 확실히 삭제되었는지와 혹시나 몰라 백업해두었던 데이터가 온전히 존재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다행히도 2달 전의 비전이 일처리는 깔끔하게 했는지, 그 일에 관해서는 아무 자료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만약 그가 눈치를 챘다면, 2달 전에 있었던 일들을 알아차렸다면 그것도 문제였다. 아무리 그 때의 비전이 다 정리하였다고는 하나, 지금와서 찾아본다면 실마리 하나 정도는 나오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비전은 커피의 향을 즐기고는 입을 열었다. 다행히도 브루스 배너가 매우 긴장하고 있어서,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하는 상황이란걸 아는 것 같지는 않았다.

"..어제 완다양을 다시 보았습니다. 몸이 살짝 야윈것 말고는 괜찮아보이더군요, 정말로 다행이었습니다."

배너는 침을 삼켰다. 완다 막시모프가 본부에 귀환한 것은 알고는 있었으나, 비전이 그녀를 다시 만났으리라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며칠전, 완다양이 돌아왔을 때부터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네, 박사님도 아시는대로 저는 그동안 꿈을 꾼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제 머릿속에서, 도저히 일어나지 않았던 일들이 재생되니 그걸 꿈이라고 볼 수 밖에요. 그 꿈속에서, 이건 프라이버시지만 그래도 말한다면 저는 완다에게 이별을 고한 뒤에 눈물을 흘리고 슬퍼했습니다. 그리고 어제 완다를 보기 전에도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저는 어째서인지 머릿속에서 울트론 입자를 '제거'하는 일에 매우 큰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물론 박사님도 그때의 상황을 아시겠죠, 우리들의 일은 매우 수월하게 끝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어째서 그 때의 일이, 그것도 그런 방식으로 제 꿈속에서 나타나는지를 모르겠습니다."

온 몸의 피가 거꾸로 솟는듯한 기분에 배너는 차마 잔에 손을 댈 수 없었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가 자신의 귀에까지 울릴 정도로 박동은 거셌다. 배너는 애써 쉼호흡을 내뱉었다. 플래시백, 이라는 단어가 그의 머릿속을 떠다녔다. 분명 그 때, 비전의 몸에 주입된 기억은 어느정도 조작된 기억임이 분명했다. 그가 다시 생명을 얻어 깨어났을 때에도, 배너는 새로 태어난 비전이 그 일만큼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몇번이고 다시 확인했었다. 이전의 비전이 자살을 택하고, 아무 영혼도 정신도 없는 몸뚱아리에 조작된 기억이 담긴 인격을 불어넣었다는 그 사실을 '지금'의 그가 알고 있어서는 안되었다. 어째서, 냐는 질문의 답은 이미 비전이 꺼냈었다. 완다 막시모프, 죽기 전의 비전이 너무나도 사랑했었던 그 여자가 그에게 죽기 전의 기억을 불러 일으키는 인자였다.

"그래? 그것 참 걱정이네."

하지만 분명 뇌에 담겨져있던 데이터들은 모조리 삭제하여 백치상태로 만들었었다. 이제와서 어디에 그때의 기억이 담겨져있는지는 배너도 도저히 짐작할 수 없었다.

"그리고 박사님, 예의 그 일이 일어나기 전, 분명히 저는 완다에 대한 사랑이 없어졌다고 느꼈습니다. 그녀에 대한 모든 감정들이 갑자기 '삭제'된 것 같은 기분이었죠. 하지만 어제 그녀를 다시 만나고나서, 저는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녀를 사랑합니다, 제 감정이 사라지기 전과 마찬가지로, 저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사랑한다, 라는 말에까지 이르자 배너는 정말로 평안해보이려 애를 써야 했다. 간신히 씁쓰레한 커피로 입안을 적시고는 내려놓는, 그 동작 하나하나가 힘들었다. 비전이 자신의 기억을 조작하고, 배너를 찾아갔던 이유는 전부 다 그놈의 '사랑' 때문이었다.

"저는 이제서야 의문점을 갖게 되었습니다. 과연 이 감정이 그토록 쉽게 '삭제'될 수 있는 감정인겁니까? 누군가를 향한 애정이 이토록 쉽게 사라지고 쉽게 생길 수 있는 감정이냐는 말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과거 완다에 대한 사랑이 갑자기 사라져버린 것이, 그 때 울트론입자때문이 아닌가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비전이 진상에 더 가까이 간다면- 그런 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되었다.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렇게나 죽음까지 불사하며 제 몸속의 울트론을 없애고, 완다를 지키려던 제 첫번째 아이에게는 너무나도 불쌍한 일이었다. 배너는 혀로 입술을 축이고는 담담히, 애써 진정을 가장하며 입을 열었다.

"그 일은 심각하다고 생각해. 그... 막시모프양이 귀환하고나서부터면, 확실히 그 애가 어떤 인자로 작용했다는거니까. 꿈에 대해서라면 나도 계속 연구를 해야 하는 일이야, 여태껏 이런 일은 없었잖아?"

"네, 저도 처음 겪는 일입니다."

"...더 조사나 검사를 해봐야겠어, 그때 울트론 입자를 다 제거했다고 하더라도 혹시 모르는 변수가 있을 수도 있고.."

"네, 그래야겠죠."

비전이 고개를 끄덕이자 배너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장에라도 냉수를 마시지 않으면 진정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정수기에서 차가운 물을 받는 도중, 다시금 그의 입이 열렸다.

"...이 이야기,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

"네, 지금 프라이데이의 기능도 꺼놓았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람은 우리들 뿐입니다."

그러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정수기에서 잔을 떼어놓았다. 아무도 이 사실을 알아서는 안되었다, 그 누구도 비전에게 일어난 일들을 알고 있어서는 안되었다. 완다가 머릿속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 그 누구도 비전과 자신과의 사이에서 있었던 수많은 일들을 알고 있어서는 안되었다. 그는 애써 미소를 짓고는 다시 테이블로 향했다. 시간이 되는대로 빨리 그의 몸을 검사해야 했다.




▒ ▒ ▒




타워에서 대략 검사일정을 잡고 돌아오니, 어느새 태양이 붉은 기운을 품고 가라앉으려 하고 있었다. 그는 행여나 완다를 만날까, 하는 덧없는 기대감을 애써 묻고는 나타샤가 있을 사무실 문 앞에 섰다. 노크를 하고 문을 여니 한창 서류에 머리를 박고 있던 나타샤 로마노프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서류에 시선을 떼지 않고 자신을 반겨주었다.

"그래서 어때?"

"제 몸 말입니까, 아니면 브루스 배너 박사님 말입니까?"

"기왕이면 후자까지 말해주면 더 좋아."

그녀는 쓰고 있던 안경을 한번 올린 뒤, 서류에 사인을 하였다. 캡틴이 대외행사를 하거나 훈련을 할 때면, 언제나 서류는 나타샤의 몫이 되었다. 사각거리며 만년필이 굴러다니는 소리가 적막한 사무실을 채웠다. 비전은 방금 전 타워에서 자신의 몸을 살펴주던 그녀의 연인을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우선 배너박사님은 예전과 크게 달라진게 없어보였습니다. 다행히도 몸무게는 줄어들지도 늘어나지도 않은 모양이었습니다. 이번에 새로운 연구를 시작하게 되어서, 꽤나 기뻐하고 계셨는데, 조만간 나타샤에게도 연락할 것 같습니다."

"듣던중 반가운 소리네, 그리고?"

그는 주위를 살펴보고는 자리잡고 있을 모든 종류의 녹음시설을 무력화시켰다. 이 이야기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들키고싶지 않은, 어찌보면 기밀사항일수도 있는 이야기였다. 갑작스레 스마트폰과 무전이 먹통이 된 것을 알아차리고는 나타샤도 고개를 들고 비전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의 심각한 표정을 보고는 자세를 고쳐잡았다.

"저는 2달전 일에 의구심을 가졌습니다."

그 말에 나타샤는 안경을 벗었다. 비전이 말하는 2달 전의 일이라면 분명 그의 머릿속에서 두통을 일으키던 바이러스를 제거했을 때였다. 물론 그녀도 그 바이러스가 평범한 물건이 아니라고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비전과 배너는 그 정체를 모두에게 알리려고 하지 않고 숨기고 있었다. 몇번이고 정체를 알아내려고 했지만 그녀가 알아낸 것은 그 둘이 어떻게든 그것과 관련된 일들을 삭제시켰다는 것 뿐이었다. 물론 토니와 헬렌의 검사에서 비전은 이상무 판정을 받았기에, 반쯤은 넘어가고 있던 사항이기도 했다. 그걸 이제와서 다시 언급하다니, 그녀는 주의깊게 비전의 말을 경청했다.

"현재 제 몸에서는 특정한 감정이 다시 되살아났습니다. 특정 인물에 대한 감정인데,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갑자기 사라졌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지금와서 다시 되살아났습니다."

"잠깐만, 그거 설마-"

나타샤의 얼굴에 경악이 서렸다.

"혹시 그 때의 바이러스때문이 아닌지 검사를 받으려고 합니다."

그는 굳이 악몽이라던지 심장통증에 관해서는 입을 열지 않았다. 이미 완다에 대한 사랑이 되살아났다는 말 만으로도 나타샤에게는 큰 충격을 안겨주기에는 충분했다. 나타샤는 갑자기 두통이 이는 것 같아 제 이마를 부여잡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말도 안되고, 일어나서도 안될 일이었다. 비전과 헤어지고나서 완다의 상태가 어땠는지를 눈앞에서 확인한건 바로 자신이었다. 완다는 제 반쪽으로 여기던 연인의 마음속에서 자신이 사라진 것을 느끼고는 큰 절망에 빠졌다. 피에트로를 잃었을 그때처럼 한동안 정신을 차리기도 힘들 정도였다. 그런 완다에게 억지로 휴가를 안겨주고 마이애미로 보냈던 것도 바로 자신이었다. 그녀는 그때의 악몽이 다시 반복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런 비참한 이별을 했기에, 더더욱 완다는 연인인 비전을 완전히 보낼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와서 다시 사랑하게 되었다고? 황당하다못해 이 감정이 오락가락하는 안드로이드에게 화가 날 지경이었다.

"...완다에게 말한건 아니지?"

"네, 그녀에게도 말할 생각은 없습니다. 나타샤의 걱정대로 그녀와 다시 예전의 관계로 돌아갈 생각도 없습니다. 그점은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물론 나타샤의 입장에서는 비전이 완다를 사랑한다는 사실, 그 자체가 걱정거리였다. 비전은 생각보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데 서툴렀다. 그녀와 어벤져스 모두들 비전이 완다에게 빠졌을 때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완다의 주위를 서성거리다가 그녀를 도와주었고, 가끔씩 기분을 풀어준답시고 서툴게 요리를 해서 바칠 때도 있었다. 과연 그런 일들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친절 하나하나가 완다에게는 비수로 꽂힐텐데. 나타샤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이다, 아직도 완다와 비전은 만나서는 안된다.

"알았어, 하지만 당분간 훈련은 보류하도록 해. 임무도 계속 완다는 백업으로 돌릴게. 무슨 뜻인지 알지? 네 감정 완전히 진정될 때까지는 절대로 완다와 만나서는 안돼. 너는 너 스스로 제어할 수 있다고 하지만, 우리들이 봐서는 그러지 못한다는거 잘 알고 있으니까."

"그건 너무 심한 처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 너에겐 심한 처사야. 하지만 명심해 비전, 그렇게 갑자기 완다를 찬것도 너고 갑자기 마음이 돌아선 것도 너야. 지금 완다의 상태는 전혀 신경쓰고 있지 않잖아."

완다의 상태, 그 말에 순간 비전의 왼쪽 가슴이 아릿해졌다. 그는 가슴으로 올라가려는 손을 참고는 나타샤의 말에 집중했다. 나타샤는 살짝 짜증이 섞인, 하지만 어디까지나 어벤져스의 리더로서 말하고 있었다.

"..조만간 완다에게 네 이야기를 할거야. 물론 네가 다시 완다를 사랑하게 되었다느니 하는 이야기는 아냐. 완다가 좋다고 할때까지는 당분간 상황을 지켜보면서 피해다녀. 그동안 잘 해왔잖아."

인원이 적은 사내에서 일어나는 연애의 후유증이 이렇게 클줄은 짐작도 못하고 있었다. 나타샤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은 채, 보고가 끝났다면 어서 나가보라고 말하였다. 갑작스레 다시 사랑에 빠진 안드로이드라니, 날을 잡아 배너에게 항의라도 할 것을 다짐하며 다시 안경을 쓰자, 비전은 인사를 하며 문을 열고 사무실에서 나갔다. 사무실에 적막만이 남자 그녀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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