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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완다 _ 죽은 왕자를 위한 파반느 4.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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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완다 _ 죽은 왕자를 위한 파반느 4.

rabbitvaseline 2016. 5. 11. 21:18




비전에게도 심장이라 부를만한 부분은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마인드잼에서 흘러나오는 전기신호들을 몸 전체로 퍼뜨리는 역할을 하는 부분이었다. 그가 만들어졌을 당시, 울트론과 헬렌은 악취미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비전을 사람과 유사하게 만들었는데, 그 중에는 왼쪽 가슴에 위치하는 이 심장처럼 보이는 아크 리액터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크 리액터는 혹시나 모를 사태에 대비한 유사동력원이자 전기신호의 중개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심장이라는 부분이 사람과 마찬가지로 박동을 한다던가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귀를 갖다대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고요하게 그의 심장은 제 역할을 하고 있었다.

배너는 그런 심장의 홀로그램을 바라보며 착잡해하고 있었다. 크레이들에서 깨어난 비전을 애써 안정시켜 타워내에 있는 방으로 보내면서, 그는 아직 원인을 찾지 못했다는 거짓말을 하였다. 다행히도 비전 또한 그 말을 믿어주었는지 아무 의심도 없이 손님방으로 돌아갔다. 곧 알려주겠다고 말하였지만, 배너 자신도 이 원인을 과연 쉽사리 말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이었다.

아마도 자살하기 전의 비전은 정말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기억들을 심장이라 부를 수 있는 장기에 저장한 모양이었다. 검사 도중 비전이 패닉을 일으켰을때는 아마도 그가 전에도 말한 '꿈'이란 것을 꾸고 있을 때였고, 그 때 심장이 활성화된 모습을 보면 분명했다. 아주 적은 모터음을 내며 파랗게 빛나는 홀로그램 속의 아크 리액터는 너무나도 아름다웠지만 동시에 골치아픈 존재였다. 비전은 계속해서 과거의 꿈을 꾸고 있었다. 그리고 그 꿈중에는 그가 기억해서는 안될 기억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심장을...'

만약 그의 몸에서 심장을 빼낸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마저 들자 배너는 더더욱 골치가 아파졌다. 아직 비전의 몸은 제대로 구명된 구석이 적었고, 그런 그의 몸에서 장기 하나를 뺀다면 어떤 영향이 일지는 그로서도 알 수 없는 분야였다. 그는 생체공학에 관해서는 나름 많이 알고는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살아있는 사람의 몸에 한정된 사항이었고, 이렇게 비브라늄 세포를 가진 안드로이드에 대해서는 어떤 확신도 가질 수 없었다. 헬렌 조, 토니 스타크. 그의 머릿속에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두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크레이들을 이용한다면 심장을 대체할 아크 리액터를 만들 수도 있을 터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 눈치빠른 둘이, 심장에 바이러스가 아닌 비전의 기억조각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알아챌 가능성이었다. 그는 현재 진퇴양난에 빠져있었다. 모든 사실을 둘에게만 털어놓을까, 하는 유혹에도 잠시 시달렸지만, 자살하기 전 비전이 말했던 '완다 막시모프가 진상을 알 수 없도록' 하는 말이 떠올려 고개를 저을 수 밖에 없었다. 진실에 약간의 거짓말을, 어느날 연인이 해주었던 말을 떠올리며 그는 재빨리 그들에게 할 수 있는 핑계란 핑계들을 다 떠올렸다.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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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눈을 뜬건 정확히 자정이 되어서였다. 비전은 잠시 눈을 뜨고는 누워있는 상태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장식하나 없는 삭막한 방이 마치 자신의 방을 연상시켰으나, 이곳이 타워 내에 위치한 손님방이란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조심스레 일어서 창가에 비친 맨하탄의 야경을 바라보았다. 자정이 되었는데도 불빛은 여전히 맨하탄 시내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가로등불빛, 야근을 하느라 아직까지도 켜져있는 작은 불빛들이 저마다의 생명을 반짝이며 뽐내고 있었다. 아직도 심장은 약한 통증을 호소하고 있었다. 그는 이상하게도 이 반짝거리는 야경이, 이 광대한 생명력이 부럽다고 생각했다.

꿈을 꾸다 발작을 일으킨 것은 그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그동안 꾸었던 꿈과 달리 완다 대신 토니 스타크가 주인공이었다. 비전과 토니가 처음으로 옷을 사러 갔을 때, 마치 토니는 아버지처럼 꼼꼼히 비전이 입을 옷을 골라주었다. 토니는 비전의 몸에 이식되었던 자비스에게 입혀주고싶었던 옷들을 주로 골랐다. 인공지능집사 자비스의 전임인 에드윈 자비스가 젊을적 입었을 스타일을 골라 입혀주자, 정말로 비전도 토니도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어울려서 놀랐었다. 

'그리고 완다도 기뻐했지.'

그런 아주 조그맣지만 소중한 기억들이 그의 머릿속에서 통통거리며 시선을 빼앗고 있었다. 비전은 왜 이제와서 이런 기억마저 떠올리게 되었는지 궁금증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완다와의 기억들만이라면 그녀와 헤어진 후유증이라던지 하는 이유로 설명할 수 있었지만, 크레이들에서 꾸었던 꿈은 그런 것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다음날 배너는 비전에게 심장에 이상이 생긴 것 같다는 검사결과를 말하였다. 비전도 자신의 심장에 이상이 있고, 그로 인해 기억들이 갑자기 터져나온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으나 그것을 확인당하니 놀란 눈치였다. 다시금 그의 왼쪽 가슴이 저릿거리며 아파왔다. 그는 그 통증을 애써 무시하며 배너의 말을 들었다.

"아마 네 심장을 교체하는게 가장 좋을 것 같아, 검사는 그 이후에 해도 늦지 않으니까. 하지만... 울트론 입자가 그 곳에 있을 가능성이 커, 아니 확신해도 좋아."

"하지만 완벽하게 규명된 건 아니잖습니까?"

"완벽하게 알아내려면 우선 네 심장을 빼내야돼.... 맞아, 그러려면 네 심장을 갈아끼워야겠지, 새걸로 말이야. 걱정마, 그 일은 토니와 헬렌에게 도움을 구하면 되니까. 네 몸속의 장기에 대한 부분들은 이미 헬렌이 자료를 갖고 있고, 아크리액터에 관해서는 토니에게 해달라고 하면 돼. 걱정마, 비전. 어떻게든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을거야."

물론 배너로서도 이 작전이 완벽하게 성공할지는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그는 또다른 가능성에 직면하고 있었다. 이 심장에 비전의 자살전 데이터들이 있는 것은 확신할 수 있다, 그러면 그가 완다 막시모프를 사랑하게 된 것은? 애초에 비전이 완다에게 이별을 고했던 것은, 완다에 대한 사랑의 이유가 그의 몸속에 내재되어있던 울트론때문이라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즉, 그의 몸 안에는 여전히 울트론 입자가 존재하고, 그것이 완다에 대한 애정을 비전에게 일깨워준다고 봐도 될 것이었다. 제일 의심가는 위치는 역시나 심장이었다. 그가 비전에게 내뱉은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저도 그렇기를 빌 뿐입니다만... 이건 상당히 급박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 당장에라도 연락을 취하심이.."

"응, 곧 그러려고 생각하고 있어. 하지만 두달 전에도 그랬지만 그렇게 급하게 할 필요는 없어.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예전처럼 울트론이 네 정신을 헤집어놓는다던가 그런 일은 없었잖아? 단지 그 여자애를 사랑하게 된 것 뿐이지. 아마 심장이 무슨 작용을 하는지는 모르나, 울트론 입자가 네 뇌에까지 도달하는걸 막고 있는건지도 몰라."

물론 가설의 영역이었다. 

"네. 그렇군요."

"그리고 생각보다 심장을 교체하는건 빨리 끝날지도 몰라, 일단은 크레이들이 있으니까. 그러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어."

물론 배너는 이 거짓말을 내뱉으면서도 평온을 가장해야했다. 비전의 몸에서 심장을 갈아끼운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안봐도 뻔했다. 이 새로 태어난 비전은 영영 자살전의 기억을, 자신이 사실은 죽은 전대 비전의 몸에 기억만 불어넣은 것이란걸 모르고 지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완다 막시모프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의 감정도 정말 데이터를 삭제하듯 사라질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그로서, 죽기 전 아들의 소망이 그대로 이뤄질 것이었다. 그는 자살을 택한, 즉 지금이 아닌 이전의 비전을 떠올리며 뻔뻔하게 미소를 지으며 지금 제 앞에 걱정을 하며 서 있는 비전의 어깨를 두드렸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박사님, 제 안에 있는 완다 막시모프에 대한 사랑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순간 배너의 손이 멈추었다. 그는 안경을 벗고 마른세수를 하며 초조한 인상을 남기고는, 평소에 잘 짓는 난감한 미소를 지었다. 

"..그건 어쩔 수 없어, 그 감정이 정말로 울트론입자때문인지 아니면 네가 그저 그 여자애를 사랑하기 때문인지는 확신할 수 없는거야."

"하지만 박사님, 나는 다시 내 안에서 완다에 대한 사랑이 '삭제'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 때, 사랑이 제 안에서 삭제되고 그걸 완다에게 드러냈을 때, 그 당시에는 그 일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다시 돌아보고나서야 내가 완다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는지, 그리고 한 감정이 삭제된다는 것이 얼마나 부자연스러운 일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배너는 속으로 혀를 차며 제 앞에서 사랑에 번뇌하는 안드로이드를 비웃었다. '이' 비전은 조작된 기억을 토대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정작 '전'의 비전이 어떤 심정으로 그런 선택을 하였는지는 모르는채 말이다. 하지만 그는 지금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비전에게 그런 내색을 보일 수 없었다. 모든 것은 비밀로 돌려야했다. 그는 다시금 비전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하였다.

"어쩌면 지금이 정상인지도 몰라, 너의 사랑이 다시 돌아온걸지도 몰라. 그러니까 상황의 추이를 더 지켜보자."

이상하게도 배너의 말은 비전에게 크나큰 위안을 안겨주었고, 그는 쉽사리 그 말을 수긍하였다. 고개를 끄덕이는 비전을 올려다보며, 배너는 이렇게나 시스템을 조정하고 설정한 죽은 제 아들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과연 그는 죽기 전에 많은 일들을 하고 갔다. 비전이 자신의 이상을 쉽사리 인지하지 못하는 것도, 배너의 말에 쉽게 수긍하고 넘어가는 것도 그 중 하나였다.

"그러니 걱정하지마."

비전은 아무 의심없이 배너의 말을 믿었다. 배너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런 안드로이드를 바라보았다.


"프라이데이, 토니와 헬렌에게 메시지를 보내줘, 비전의 몸속에 있던 바이러스가 심장에 데이터를 백업해서 아마 갈아끼워야겠다고 말이야."

"네, 배너박사님."

그는 신경질적으로 안경을 벗어 책상위에 올려놓았다. 눈앞에는 비전의 심장 구조도가 홀로그램으로 띄워져있었다. 그는 그 홀로그램을 신경질적으로 돌려대다 이내 책상에 얼굴을 묻었다. 눈물이 비집어나오려는 것을 애써 막고는 고개를 들었다. 이깟짓것이 네 계획을 망치게 내버려두지 않을거야, 그는 푸른색으로 반짝이며 제 존재를 뽐내는 홀로그램을 노려보았다. 이깟짓것이 네 죽음을 헛되이하게 내버려두지 않을거야. 그는 죽기 전 애써 두려움을 감추며 지금까지의 삶이 만족스럽다고 거짓말을 하던 아들을 떠올렸다. 네 죽음은 너무나도 고귀했다. 그래서 더더욱 그는 비전의 심장에 시선을 집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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