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냇배너+토니 _ 두글자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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냇배너+토니 _ 두글자

rabbitvaseline 2016. 4. 18. 00:23
냇배너 의 연성문장은 '만약이라는 두 글자가 오늘 내 맘을 무너뜨렸어.'입니다.









그녀가 그의 부재를 처음으로 실감하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소코비아 사태가 터지고 두어달이 지나서였다. 그 두어달의 시간동안 그녀는 일련의 사태에 대한 책임공방으로 매우 바쁜 나날들을 지냈었다. 컴퓨터상의 오류라는, 누가 들어봐도 믿어주지 않을법한 변명같은 토니 스타크의 해명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쉽게 수용되지 않았다. 덕분에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 완다와 울트론의 생산물인 비전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은 지옥같은 청문회에 시달릴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쉴드 사태로 이미 청문회에 익숙해있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자신들을 둘러싼 상황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하루같은 바쁜 생활과 그에 대한 언급이 너무나도 자주 터져나오는지라, 자연스레 브루스 배너라는 이름이 튀어나와도 추상적으로 들릴 정도였다. 사람들은 어떤 것에 너무나도 자주 노출되면, 오히려 그것에 무감각해지는 면이 있다고들 한다는데, 나타샤에게는 브루스 배너가 그런 존재였다. 더군다나 훈련소가 완공되어 숙소까지 옮겨야했다. 그녀는 청문회에 짐정리, 새로 개편되는 어벤져스의 수립관련일까지 더해지니 도저히 정신을 차리기도 힘들 정도였다. 게다가 바튼의 아내인 로라가 출산을 앞두고 있었다. 그녀는 곧 태어날 아들의 대모로서도 움직여야했다.

그런 와중에 간신히 가지는 휴일이란. 그녀는 행여 누군가가 자신을 알아볼까 철저한 변장을 하고서는 뉴욕 시내를 돌아다녔다. 간단한 쇼핑과 점심거리를 사들고 타워로 돌아왔을 때엔 이미 시간이 3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누군가가 살짝 배고파 간식을 찾곤 하던 시간이었다. 그녀는빅맥과 치즈버거 세트가 들어있는 맥도날드 봉지를 흔들며,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게 불이 켜져있는 연구실로 향했다. 프라이데이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말한 뒤, 그녀는 정말로 아무 생각없이 연구실에 앉아있는 누군가를 향해 입을 열었다.

"브-"

그녀가 단 한글자만을 내뱉고 입을 다문 것은 단순히 연구실 한편에 타워의 주인이 서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연구실 안에 위치해있는 온갖 첨단기기가 맹렬히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만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토니 스타크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어서는 더더욱 아니었다. 순간 수치심에 얼굴이 달아오르려다가 토니의 앞이라는 것을 자기 자신에게 주지시키고는 평온을 되찾았다. 그녀는 심히 놀랐다. 그건 그녀가 부르려던 사람이 이 곳에 없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그녀가 매우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정말로 언제나처럼 그의 존재를 이 연구실에서 찾으려 했다.

"...바쁘신거 아닌가요, 스타크?"

"나보다도 그쪽이 더 바쁜거라고 알고 있었는데요, 로마노프? 아, 그 손에 들린건 햄버건가? 마침 잘 됐군, 프라이데이에게 심부름이라도 시킬 참이었는데 잘 됐어. 괜찮다면 나도 같이 들어도 될까?"

"..맥도날드라도 괜찮다면."

"왜 하필 맥도날드인지는 모르겠지만, 뭐라도 되겠지."

토니는 나타샤가 들고 있던 비닐봉지에서 치즈버거와 콜라를 꺼내서는 작업대 위에 올려놓았다. 햄버거과 감자튀김의 기름진 냄새가 그들의 후각을 자극시켰지만 아무도 포장에 손을 대려고 하지 않았다. 토니는 근처에서 접이식 의자 두개를 가지고 와서는 하나를 나타샤에게 건네주었다. 그녀는 순순히 의자를 접어 그 위에 앉았다. 토니는 의자를 접기까지는 했으나 차마 앉지 못하고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 무언가 중요한 것이 갑작스레 사라진 기분이었다. 나타샤도 그런 토니의 마음을 읽었는지 평소 배너가 자주 위치하던 장소를 바라보았다. 그가 차트를 들고 플라스크를 흔들던 곳에는 빈 실험기구들만이 가득했다.

"..소코비아에서 돌아오고 여기 온건 처음이지?"

"그 쪽은?"

"나야 가끔씩 드나들었지, 정리할 일들이 많았으니까. 이 천하의 토니 스타크도 연구실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들도 많았고 말이야. 증거물준비한다고 얼마나 고생했던지, 그새 흰머리가 늘었어."

토니는 어느새 자라나있는 새치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말했다. 살짝 웃음을 짓다가 마치 바람이 빠져나가는 풍선처럼 부드럽게 표정을 굳혔다. 

"아까 브루스를 불렀던거지?"

"...맞아. 젠장, 그냥 넘어가려고 했더니. 점심을 걸러서 같이 간식이나 먹을까 해서 찾아온거야. 하지만 당사자가 어디론가 사라졌다는걸 까맣게 잊고 있었지."

"그럼 이 치즈버거는 사실은 그쪽의 물건이었단 말이군."

그는 온기를 잃어가는 치즈버거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배너는 토니와 함께 연구를 진행해나가며, 그의 친구로 지내면서 저절로 입맛까지 닮아갔다. 덕분에 토니는 마음껏 치즈버거와 함께하는 패스트푸드 생활을 페퍼 눈치없이 즐길 수 있었다. 배너는 생각보다 패스트푸드를 즐겼으며, 딱히 가리는 음식이 없었다. 둘은 배는 고픈데 귀찮을때마다 치즈버거를 먹으며 연구를 진행해나갔었다. 하지만 이 치즈버거를 먹을 사람은 지금 여기에는 없었다, 아니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수색은 난항을 겪고 있었고 배너가 퀸젯이 어디로 향했는지조차 알 방법이 없었다.

"가끔씩 같이 먹곤 했었지, 그쪽이 없을때마다."

"그럼 그때마다 신성한 연구실에서 데이트를 즐겼다는거군, 브루스답지 않은데?"

"이미 다 알고 있었으면서 뭘 모르는 척을 해?"

"그래, 하지만 그때는 단순히 일방향이었잖아? 당사자는 전혀 몰랐고 말이야. 브루스가 전혀 눈치도 채지 못하니 나도 말해줄 수가 없었지. 연애문제는 타인이 관여하면 귀찮은 일이 생기기 마련이거든."

그는 어깨를 들썩거리며 나타샤와 배너가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즐기는 모습을 떠올렸다. 처음에 둘이 같이 영화관에 갔었다는 얘기를 듣고는 매우 놀랐었다. 실제로는 그다지 접점이 없어보이는 관계였기에, 그 이후에 이어진 데이트들도 의아한 눈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몇번이고 둘이 같이 있는 모습을 보니, 이미 연애의 고수라고 할 수 있는-페퍼가 들으면 기함하겠지만- 그의 눈에 진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타샤가 데이트 신청을 하거나 같이 밥을 먹자고 말하면 배너는 곧바로 수긍한다, 좋아하는건 나타샤고 배너는 지금 자신들의 관계가 연애직전이라는 것을 아예 모르고 있는 것 같다는, 그야말로 슬픈 진상을 말이다. 나타샤는 계속해서 배너에게 대시를 하고 있지만, 애석하게도 눈치없는 자신의 친우는 그것이 유혹이라는 것도, 자신이 하고 있는게 데이트란것도 모르고 있는 듯 했다. 하긴, 그것도 다 옛날 얘기지. 바튼의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둘의 관계는 매우 이상하게 변해버렸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도 하기 전에 배너는 지구 한복판에서 실종되었다.

"그래, 관여안해줘서 고마워."

"그래서 궁금했던건데, 도대체 어디까지 나갔던거야? 바튼의 집에서 뭔 일이 있었던 분명한데. 그 이후로 물어볼 시간도 여유도 없었고 말이야."

갑작스런 토니의 질문에 나타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로서는 상당히 민감한 내용을 다루는 질문이었고, 어떻게 보면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둘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말할까, 하지 말까 고민하던 참에 그녀는 토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똑같이 브루스 배너를 '브루스'라고 부르는 사람. 그것만으로도 그와 그녀 사이에는 이상한 유대감이 형성된 것 같았다. 괜찮겠지, 그녀는 토니 스타크가 어떤 인간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절대로 입이 가벼운 사람은 아니었고 누구보다도 친구와 동료를 위하는 사람이었다. 딱히 말해준다고해서 무슨 큰 위해가 닥쳐오는 것도 아니었고 말이다. 무엇보다도 그는 브루스 배너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그녀답지 않게 긴장에 헛기침을 몇번 내뱉다가 입을 열었다.

"...그쪽도 마찬가지였겠지만, 나도 완다의 공격에 제정신이 아니었어. 그냥 모든 걸 다 놓아버리고 싶었어. 그리고 그는 이미 전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었지."

"그래서?"

"도망가자고 했어, 내가."

그 말에 토니는 정말로 놀랐는지 순간 뒤로 넘어갈뻔 했다. 넘어지려는 몸을 간신히 추스르고는 눈에서 반쯤 벗어난 선글라스를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정말로 놀랐다는 표정에 나타샤는 한숨을 내쉬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는 안된다고 했지. 난 상관없다고 했어, 정말로 그 때는 모든걸 던져버리고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었으니까. 맞아, 브루스를 도피처로 보고 있었어. 정작 그와 비교하면 난 그다지 괴로운것도 아니었는데 말이야."

"그래서?"

"그리고는 끝."

토니는 고개를 저었다. 나타샤가 천연덕스럽게 끝이라고 말하였지만 그는 거기서 무언가가 더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나타샤는 아직도 배너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건 단순히 그녀가 도망가자고 말했던 것을 배너가 거절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소코비아에서 배너가 그녀를 구하러 갔을때의 일인지도 모른다. 바튼의 농장에서 헤어지고 난 뒤, 둘이 만난 것은 소코비아에서였다. 그리고 그 이후로 배너는 자취를 감췄다. 토니는 순간 그 이유가 그녀와의 만남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헐크가 교신을 끊기 전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은 나타샤였다. 나타샤는 그런 토니의 추궁이 못내 부담스러웠다. 도대체 무엇을 더 원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콜라컵에 빨대를 꽂았다. 이미 탄산이 상당부분 사라진데다 얼음마저 녹아 미지근하고 밍밍한 콜라를 한모금 들이키자 그나마 무언가 차가운 것이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끝?"

"젠장, 이래서 내가 그쪽을 싫어하는거라니까."

그녀는 반쯤 신경질을 내며-다른 사람이었다면 절대로 보이지 않을 태도였지만 이상하게도 토니 앞에서는 절로 나오고 말았다.- 다시 입을 열려다 다물었다. 그런 나타샤의 반응에 신경줄이 곧두세워지는 것은 토니도 마찬가지였다.

"저번 청문회에서나 얘기를 나눴을때나, 소코비아에서 브루스를 헐크로 만들었다고 했지. 구덩이에 빠뜨렸다고 말이야. 하지만 정말로 그것뿐이야? 그것만으로 디아더가이가 도망간다고?"

"이미 브루스도 자신이 쫓기는 입장이란걸 알고 있었어."

"혹시 뭐가 더 있는거 아냐? 당신이 브루스를 배신했다던가."

"이미 구덩이에 빠뜨린것만으로도 충분한 배신이야."

"그런것 말고 조금 더 내밀한."

나타샤는 그 말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 눈치빠른 토니 스타크는 정말로 나타샤가 자신이 원하는 답을 내놓을때까지 포기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어쩌다 이런 승냥이에게 걸렸냐며 속으로 한탄을 하면서, 다시금 배너가 없을 연구실을 둘러보았다. 그 일에 관해서 이야기를 할 때가 온 것일까, 그것도 그의 친우였던 사람에게. 어쩌면 토니는 맹렬히 화를 낼지도 모른다, 아님 체념할지도 모르고. 하긴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이던 그녀에게는 아무 상관도 없었다. 이미 브루스 배너라는 사람은 자신들을 떠나가버렸으니까.

"....그가."

"응."

"..같이 가자고 했어."

"어?"

"같이 도망치자고. 하지만 알잖아, 그 사태에서 빅가이가 없으면 얼마나 전력이 차이가 날 것이며, 만약의 사태에 어떻게 대처할지 확신할 수 없다는걸. 그래서 그를 속이는 척 하면서 밀었던거야. 같이 갈것처럼."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그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던 이야기를 내뱉자 온 몸에서 진이 다 빠져버렸다. 토니는 나타샤의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걸 토니도 인정했다. 하지만 브루스 배너가, 그렇게나 믿었던 친우가 모든 것을 다 놓아버리고 도망칠 생각을 했었다니, 그것도 자신이 아닌 나타샤를 택했다는 사실이 생각보다는 큰 충격이었다. 역시나 브루스 배너에게 자신은 그런 존재였던가,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화나지 않아?"

"누구한테? 너한테? 아님 브루스한테? 솔직히 좀 황당하긴 하군, 그쪽에게 도망가자고 했다니. 나에게는 진짜 일언반구도 없이. 아냐, 브루스라면 가능해, 그땐 정말 극한까지 내몰렸으니까. 하지만... 오, 젠장 솔직히 기분이 좀 더럽긴 하군.... 왜 나에게는 그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은거지?"

그는 원망섞인 눈으로 빈 공간을 바라보았다. 지금에라도 배너가 자신을 향해 무어라도 말할 것만 같았다. 그러면 자신은 또 배너에게 왜 이야기해주지 않았냐고 물을 것이다. 토니는 여태껏 배너가 도망친 것이 충동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타샤의 말이 사실이라면, 소코비아에 도착할때부터 미리 계획한 일이라는게 되어버린다. 어쩐지 소코비아에 도착하기 전부터 초조한 모습을 보이긴 했었지만 그런 속내를 지니고 있었을 줄이야, 절로 배신감이 들면서 혀를 찼다. 

"...어머, 질투나?"

"누가 누구한테? 하지만 그런것도 이제는 다 소용없는게 아닌가? 그래도... 그래, 만약에 그때 그쪽이 브루스를 따라갔었더라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궁금하지 않아? 브루스는 생각보다 외로움을 잘 타지, 그런 그가 혼자가 아니라 동반자를 데리고 갔었더라면."

"내 선택은 옳았어. 다시 그 순간이 온대도 난 그를 떨어뜨렸을거야."

"그래도."

"도대체 뭘 원하는건지 모르겠어. 하지만 이건 분명해, 더 많은 시민들이 죽었을거고 절대로 좋게 끝나지도 않았을거야."

그 말을 끝으로 나타샤는 빅맥의 포장을 풀었다. 다시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식의 행동에 토니도 더이상의 대답을 포기하고는 치즈버거의 포장을 뜯었다. 이미 식어버린 치즈버거에서는 비린내마저 풍겼다. 그는 축축해진 햄버거를 한입 베어물고는 얼굴을 찌푸렸다. 역시나 맥도날드가 아니라 버거킹이라고 중얼거리자, 나타샤가 일부러 크게 빨대소리를 냈다. 그렇게 둘만이 연구실에 앉아 추억을 씹어삼켰다.







개인적으로 나타샤와 토니는 닮은 꼴이라고 생각해서, 서로에 대해서 인정도 하고 호감도 있지만 쉽사리 인정할 수 없다고 생각함. 그래서 호칭도 다른 사람들이 나타샤, 토니라고 부를때 서로에게만 성으로 불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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