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냇배너 _ 미녀와 야수

rabbitvaseline 2016. 3. 11. 23:23




나타샤의 숙소 거실 한켠에 있는 책장에는 여러 종류의 책들이 꽂혀 있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소설은 주로 첩보나 범죄를 다룬 스릴러물이었는데, 시리즈를 줄지어서 세워놓았다. 그리고 일과 관련된 역사관련 서적이라던지 언어에 관련된 책들과 테이프들도 가득했다. 배너는 그녀의 책장을 눈으로 흘겨보다가 아랫줄에 자리잡은 DVD로 시선을 옮겼다. 꿇어앉아 바라보니 소설취향과 비슷하게 스릴러와 호러영화가 가득이었다. 히치콕의 고전 사이코라던지 미스트, 테이큰이나 제이슨 본 같은 시리즈도 있었다. 정말 스릴넘치는걸 좋아한다고 시선을 옮기려는 찰나, 피냄새가 나는 DVD무리속 이질적인 무엇이 그의 눈길을 빼앗았다.

"..오."

"뭐해요, 안오면 그냥 넷플릭스에서 고를거에요."

소파에 반쯤 누운 나타샤가 타박을 보내자 배너는 급히 눈길을 빼앗은 물건을 빼들고 일어섰다. 소파 앞의 테이블에는 콜라캔 두개와 커다란 팝콘볼이 놓여져 있었다. 그야말로 영화를 위한 밤이었다. 벽에 붙어있는 스크린으로 인터넷창이 영사되자 나타샤는 재빨리 자신이 좋아할만한 카테고리를 찾았다. 요즘은 유난히 서류업무가 많았던터라 꽤나 몸이 뻐근했던 참이었다. 주인공이 좀비를 화려하게 도끼나 샷건으로 날려버리는 포스터들을 보며 그녀는 무엇을 고를까 하고 고민했었다. 물론 그 고민은 연인이 눈앞에 보여준 화려한 DVD커버에 막혀버렸지만.

"...응?"

순간 그녀는 사고를 정지한 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배너의 입가에 살짝은 사악한 미소가 띄워지자 절로 긴장감마저 들었다. 그녀는 그가 그것을 어디서 찾았는지를 생각해내고는 2분전에 DVD를 고르라고 보냈던 자신의 말을 후회했다.

"..이게 뭘까요, 나타샤?"

배너의 미소는 정말로 멋졌지만 동시에 그녀를 난감하게 만들었다. 배너는 그녀의 난감한 표정을 즐긴다는 듯 더더욱 즐겁게 DVD를 흔들어댔다. 화려하게 빛나는 커버에는 갈색 머리카락을 가진 여성과 괴상한 모습을 한 야수가 그려져있었고, 그 중앙에는 너무나도 익숙하지만 가까이 하고싶지 않았던 디즈니로고가 박혀있었다. 미녀와 야수, 전체관람가 디즈니 애니메이션이라니. 옆에 꽂혀있던 붉은색 R등급 영화들이 무안하게 보일 정도였다. 젠장, 자그맣게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나타샤는 배너의 손으로부터 DVD를 뺏었다.

"..어떻게 찾은거에요?"

"그냥 꽂혀있었으니까요. 그나저나 왠거에요, 당신 영화취향과는 정반대잖아."

"선물이에요. 그쪽이랑 사귄다고하니까 릴라가 주지 뭐에요. 딱 미녀와 야수라고 말이에요."

"그 말인즉슨 내가 야수라는거군요. 릴라라면 분명히 전에 내가 따로 선물도 했었는데, 배신당했네."

배너는 씁쓸하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분명 저번에 선물한 곰인형은 그다지 싼 물건도 아니었던데다가 나타샤의 도움을 받아 정성스레 포장까지 했었다. 기뻐했으리라 생각했건만, 이렇게 '야수' 취급을 당하다니

"볼건까요?"

"선물이 궁금해져서요."

약간은 심퉁한 표정으로 케이스에서 DVD를 빼내어 나타샤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플레이어에 집어넣었다. 위잉거리며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몇초쯤 들렸을까, 디즈니 특유의 배경음과 배경화면이 화면에 떠올랐다. 나타샤는 은근히 독불장군인 애인을 향해 한숨을 내쉬며 옆자리를 가볍게 몇번 쳤다. 옆에 앉으란 신호에 그제서야 배너도 소파에 몸을 앉힐 수 있었다. 피곤했던 몸의 긴장을 풀고 소파에 앉으니 곧 나타샤의 뺨이 어깨에 닿아왔다. 이제 이정도 스킨쉽은 익숙하다는 냥 배너도 조심스레 그녀의 머리 위로 고개를 기울였다. 재생버튼을 누르자 다시 When you wish upon a star가 흘러나오다 사라졌다. 



▒ ▒ ▒ 



팝콘볼이 다 비워지자 나타샤는 다른걸 갖고 오겠노라고 부엌으로 사라졌다. 한창 벨과 야수가 둘만의 무도회를 즐기는, 흥미진진하고 아름다운 장면이 나왔건만 그녀는 지루한지 하품까지 하면서 볼을 들고 일어섰다. 이제 영화는 종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지만 부엌에서 무엇을 하는지 도통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칼이 도마를 두드리는 소리, 달가락거리며 찬장에서 접시를 찾는 소리들만이 흘러나올 뿐이었다. 사람들이 야수의 집으로 달려가는 장면에서야 나타샤는 감자튀김을 들고 나타났다. 갓 나온 뜨거운 감자튀김을 조심스레 집어먹으면서도 그녀의 시선은 화면보다는 배너의 표정을 보는게 더 잦았다.

"...별로 흥미진진하지 않은 모양이네요."

"당신은 재밌나보죠?"

그녀는 감자튀김을 집으려는 배너의 손가락을 잡고서는 끌어당겼다. 혀로 살짝씩 핥는 모습이 제법 야살스러웠기 때문에 배너는 시선을 화면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그러자 더욱 오기를 부리듯 나타샤는 더욱 정성스레 손가락을 핥아냈다. 나타샤, 잠시만요. 배너는 애써 나타샤의 시선을 무시하고는 그녀의 혀로부터 손을 떼내었다.

"디즈니애니메이션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는거에요?"

"어머, 그냥 디즈니 만화잖아요. 넷플릭스를 보면서 쉬는 것도 안되나요?"

넷플릭스를 보면서 쉬자는 말의 뜻을 그제야 이해하게 되었지만 배너는 그녀의 그 말뜻을 제대로 이행할 생각은 없었다. 대신 그녀의 몸을 돌려세우고는 개스톤과 야수가 싸우는 장면을 보게 했다. 애니메이션치고는 박진감넘치는 장면에 배너도 쉽게 그 장면에 빠져들었다. 브루스, 실망스러운 목소리가 들렸지만 그는 자신의 행동을 번복하지 않았다.

"미안하지만 이건 넷플릭스가 아니라 DVD에요. 게다가 당신의 질녀가 선물해준거라면서요, 한번쯤은 집중해도 되잖아요. 설마 받아놓고 한번도 보지않은건가요?"

"난 저 만화를 질리도록 봤어요. 너무너무봐서 이제는 대사까지 다 외울 정도라고요."

"도대체 당신이 저걸 볼 일이 어딨다고요."

"...내 말이 거짓말로 들려요?"

화면속의 야수는 결국 개스톤의 칼에 찔려 쓰러졌다. 벨이 야수를 누비고 품에 안는 장면이 나오자, 그녀는 화면으로부터 등을 돌리고는 배너의 얼굴을 감싸안았다. 마치 입술과 입술이 닿을것만 같은 그런 가까운 거리, 배너는 꽤나 간지럽다고 느끼면서도 제 앞의 연인에게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그녀가 나지막히 입을 열었다.

"그래요, 돌아왔어요. 막으려고 했지만, 오 모두 제 잘못이에요. 좀더 일찍 돌아왔다면.... 그런 말 말아요. 괜찮을거에요. 다시 만났으니 모두 다 잘될거에요....."

나타샤는 아무렇지도 않게 벨이 하는 말을 똑같이 따라하고 있었다. 배너는 그녀의 예상하지 못한 모습에 당황해하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야수는 숨을 거두었고 벨은 그의 품에 쓰러졌다. 나타샤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안돼, 안돼! 제발, 제발, 죽으면 안돼요."

"...나타샤?"

"...사랑해요."

간지럽게 얕게 입술을 겹치자마자 화면에서는 희망찬 배경음악이 펼쳐졌다. 그는 무슨 장면이 나오는지 쉽사리 짐작할 수 잇었다. 벨의 진정한 사랑을 받은 야수는 저주가 풀려 왕자님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훌륭한 영어교재죠. 나도 저걸 보면서 영어를 배웠어요."

그녀가 영어를 배웠을, 즉 어린 시절. 그는 그녀가 그 어린시절을 어디서 보냈는지를 똑똑히 알고 있었다. 인간성을 박탈당하고 살인기계로 자라났던 그 시절, 다른 나라의 아이들이 미녀와 야수를 보며 꿈을 꾸었을 시절에 그녀는 영어공부로밖에 보지 않은 것이다. 그것이 너무나도 안타까워서 더더욱 배너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마치 황홀경을 꾸듯 그녀는 연인을 환상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벨, 나에요.-

"당신이군요."

서로를 확인한 벨과 왕자가 키스를 나누는 순간에 이르러서야 나타샤는 배너에게서 얼굴을 떼었다. 그리고는 떫다는 표정으로 화면에 시선을 옮겼다. 미녀와 야수의 테마가 흘러나오자 그는 그녀에게 시선을 집중할 수 있었다.

"...나타샤."

"누구는 야수가 더 좋다고 하지만, 난 역시 왕자님이 더 마음에 들어요... 난 왕자님이 더 좋아."

그리고 영화는 사람들의 합창과 함께 막이 내렸다. 크레딧롤과 함께 주제가가 나오자 그녀는 리모콘을 들어 곧바로 영화를 끊어내려고 했다. 종료버튼을 누르려는 찰나 배너의 손이 그것을 막았다. 다른 한손으로 그는 그녀의 목을 끌어잡아당겼다. 갑작스러운 왕자의 공격에 그녀도 조치를 제대로 못했는지 결국에는 리모콘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셀린 디옹과 피보 브라이슨이 불렀다는 주제가가 흘러나왔지만, 그녀는 차마 그의 손길을 떼어내지 못했다. 그저 자신도 그의 호의에 맞게 한쪽 팔을 그의 목에 두르고는 살포시 눈을 감았을 뿐, 노래가 끝나고 다시 DVD화면이 처음으로 돌아갔어도 둘중 아무도 리모콘에 손을 대지 못하였다. 먹먹한 감동과 함께 그대로 일어날 수 없었다.








참고로 미녀와 야수 주제곡 가사는 냇배너 테마송으로 써도 될 정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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