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ANDALIEN
비전완다피에트로 _ Barbershop Requiem 上 본문
썩은 계란내가 연단에서 풍겨왔다. 남매는 저마다 품에서 계란을 꺼내 던지는 사람들 틈사이에서 그 광경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었다. 던지다 떨어진 계란이 바닥에 비린내를 풍기며 깨졌다. 모두들 미리 얘기라도 꺼냈는지 모두가 무언가를 던지고 있었다. 썩은 작물, 계란, 신발, 심지어 돌까지. 단상 위에 올라와있는 남자의 관자머리에 돌이 스치고, 성난 시민들이 무어라 소리치자 그는 급히 로봇들의 경호를 받고 자리에서 내려왔다. 애써 마련한 자리가 파토가 났지만, 사람들은 모두 추도사를 읽으려던 남자를 비웃으며 깔깔대었다. 몇몇은 조용히 눈물을 흘렸고, 몇몇은 성난 고함소리와 함께 울부짖었다.
"너무 어리석었어."
남자를 욕하는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있었고, 아예 구호로까지 발전되어가고 있었다. 후드티를 깊숙히 눌러쓴 여자는 제 남자형제를 보고 그렇게 말하였다. 이런 상황도 예측을 못하고 있었으니 너무 어리석었다고. 하지만 그녀의 말 뒤편에 있을 뜻을 그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건 비단 단상위의 남자만을 향한 말은 아니었다. 이 곳에서 태어나 다시 돌아온, 자신들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였다.
곧 6월로 접어드려는 5월 말의 어느날, 이제 곧 다가올 여름을 준비하려는지 훈련소 주변의 나무에는 나뭇잎이 울창하게 초록을 뽐내고 있었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와 함께 벌레들도 구애의 목소리를 한껏 내지르고 있었다. 햇빛은 따가웠지만 공기는 아직 서늘했기에 점심시간만 되면 사람들은 밖으로 나가 점심을 즐기곤 하였다. 그런 점심을 나란히 보낸 두 사람은 창가에 있던 그물침대 두개에 나란히 몸을 누이고는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둘의 얼굴에는 하얀 마스크팩이 씌워져 있었는데 며칠전 헬렌의 도움으로 구한 물품이었다. 피에트로 막시모프와 완다 막시모프, 동유럽의 소코비아에서 온 이 쌍둥이는 오랜만의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5월 초에 소코비아에 몰래 다녀왔다. 이후 훈련이 끝나고 쉬려고하면 임무가 왔고, 그 임무가 끝나고 쉬려고하면 또다시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가 테러를 획책했다. 덕분에 지난 1달간 둘은 휴식도 없이, 그야말로 쳇바퀴를 돌듯 퀸젯에 실려 테러를 막고 사람들을 구했다. 이 일을 택한 것은 후회하지 않았다. 하지만 1달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하는 생활은 하이드라의 끔찍한 실험들을 견뎌낸 그들에게도 상당히 힘든 일이었다.
그러니 오랜만에 얻은 이 휴가를 마음껏 즐겨야지, 다른 이들은 데이트다 뭐다 하면서 바깥의 풍경과 따뜻한 바람을 즐기건만 둘은 정말 느긋하게 낮잠을 즐기고 푸짐한 점심을 먹고 춘곤증에 시달리며 해먹에 몸을 싣는, 살짝은 게으른 나날을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완다는 자신의 눈이 점점 감기는 것을 느꼈다. 햇볕은 따뜻했고 얼굴은 차갑고, 배에는 점심때 먹은 햄버거가 천천히 소화되어가고 있었다. 그야말로 잠이 오기 딱 좋은 상황이었기에, 그녀는 점점 꾸벅꾸벅 졸며 다시금 꿈나라로 향하려고 하였다.
"야, 있잖아."
하지만 그 여정은 갑작스레 입을 연 피에트로에 의해서 깨지고 말았다. 완다는 급히 눈을 뜨고는 옆의 해먹에 누워있던 쌍둥이 형제에게 고개를 돌렸다. 차가운 마스크팩을 어색해하던 피에트로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말하였다.
"나 슬슬 머리카락 자를 때가 된 것같은데 말야."
그 말에 완다는 순간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상공 30CM에서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우당탕 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입에서 가느다랗게 신음이 터져나왔다. 사랑해마지않는 제 여동생이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피에트로는 그녀를 부축했다. 그러다 갑작스럽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얼굴에 씌워져있던 마스크팩의 절반만 기묘하게 벗겨져있기 때문이었다. 완다는 폭소를 터뜨리는 피에트로의 옆구리에 주먹을 먹이려고 했지만 그는 매우 능숙하게 그녀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야! 그를 부르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주위에서 붉은 선들이 떠다녔지만, 이미 그는 웃음소리와 마스크팩을 남기고, 길다란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자리에서 사라졌다.
피에트로 막시모프의 머리카락은 길었다. 물론 그의 쌍둥이 형제처럼 허리에까지 닿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날개뼈 언저리까지는 내려앉아있어서 토르와 비교해도 될 정도였다. 그는 항상 그 길다란 머리를 뒤통수에 동그랗게 말아묶고 다녔다. 얼핏보면 짙은 갈색에 하얀색 양파가 붙어있는 것 같은 인상에 완다가 가끔씩 양파머리라고 놀리곤 했었다. 그리고 피에트로는 그 말에 화를 내다가도 양파요리는 어떻겠냐며 농을 던졌다.
그랬다, 어벤져스의 멤버들이 처음으로 봤었던 흰머리의 사내는 어느새 짙은 갈색과 흰색이 투톤으로 공존하는 사내가 되어있었다. 애당초 그의 흰머리는 하이드라에서 실시하였던 실험의 후유증때문이었고, 그 실험이 끝나자마자 그의 두피는 다시금 탐스러운 진갈색 머리카락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피에트로의 머리카락은 완다보다도 짙었기 때문에 그가 머리를 푼다면 흰색과 검정에 가까운 갈색이 서로 대비되어 사람들의 시선을 끌곤 하였다. 물론 시선은 살짝 부담되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는 그 하얀색 머리카락을 자르려고하지 않고 있었다. 미용실에 가더라도 살짝 끝만 다듬을뿐, 그 선명한 대비를 이상하게도 자르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두고 있었다. 그래서 저 머리를 어디까지 기를것인가, 하는 문제로 멤버들 사이에서는 내기까지 나오기에 이르렀다.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머리카락을 자르겠다니, 그의 곁에서 그의 반쪽으로 지내던 완다로서도 예상치 못했던 말이었다.
"그렇다고 이런 짓을 해?!"
"이리와, 피에트로. 더이상은 무리일거야."
그러니 피에트로 자신에게도 도저히 예상치 못하는 일이 펼쳐질 수 밖에. 그날 저녁, 피에트로는 저녁식사를 앞두고 완다에게 말 그대로 붙잡혔다. 그의 양쪽 손은 완다 막시모프의 염력에 의해 잡혀져있었으며 그의 시선 끝은 완다의 오른쪽 손에 잡혀진 무언가를 향해 있었다. 은색 날이 조명을 반사하며 반짝거린다. 완다의 길다란 검지와 엄지가 찰칵찰칵 소리를 내며 가위날을 벌렸다 좁혔다 하고 있었다. 그는 진심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이런 상황에서 안느끼는게 더 이상한 일일테지만- 자신의 머리카락을 노리는 형제에게 소리쳤다.
"난 싫다고!!"
"머리카락을 잘라야겠다며."
"왜 하필 넌데?"
"이왕이면 쌍둥이 여동생이 잘라주는게 좋잖아?"
"이럴때면 여동생이야! 에잇, 아, 비즈! 완다좀 말려줘, 날 죽이려고 하고 있다고."
비즈란 말에 순간 완다의 염력이 약하게 풀렸다. 그녀가 뒤를 돌아보자 피에트로는 그 틈을 타 그녀의 손에서 가위를 빼앗은 다음 언제 붙잡혀있었는가 알아보기도 전에 사라지고 말았다. 완다는 자신의 뒤에 비전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나서야 제 손에서 미용가위가 사라졌고 피에트로 또한 도망쳤음을 알아차렸다. 그리고는 정말로 화가 난 목소리로 형제의 이름을 불러댔다.
▒ ▒ ▒
"ㅋㅎㅎㅎㅎㅎ!"
"웃지마요, 노땅! 아, 젠장..."
바튼은 그 말에 더욱 더 웃음을 터뜨리며 피에트로의 머리에 달려있는 양파를 화살로 쿡쿡 찔러댔다. 솔직히 이 머리카락이 거슬리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그런 이야기가 나올줄은 그도 생각하지 못했다.
"도대체 무슨 심경이길래 그런거야?"
"아니, 사람이 머리를 자르는데 심경은 무슨..."
"그래서 여기로 도망친거야? 아서라, 결국은 또 잡힐걸. 그냥 순순히 완다가 하자는대로 해, 걔 은근히 뒤끝도 쩔잖아."
"내 여동생에게 뒤끝이 쩐다는 말은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네요. 하여간 그 기집애는 왜 갑자기 그러는건지..."
완다에 대해 투덜거리면서도 그녀를 향한 욕은 허락치 않겠다는 듯 피에트로는 입을 닫고 바튼을 노려보았다. 그러고보면 이 쌍둥이는 서로에 대한 콤플렉스가 심했지, 바튼은 농장에서 열심히 투닥거리며 싸우고 있을 제 자식들을 생각하며 아빠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에 피에트로는 징그러워하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들이 있는 곳은 숙소 내에 위치한 바튼의 방이었다. 피에트로는 한창 완다의 공격을 피하고 있던 중이었다.
"하지만 잡힐거라는 말은 사실이야. 완다라면 모르겠지만, 그 애한테는 최고의 아군이 있잖아."
최고의 아군, 바튼이 누구를 겨냥하여 그런 말을 쓴건지 피에트로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항상 셔츠에 가디건차림을 하고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완다의 곁에서 그녀를 도와주는, 아니 찍접거린다는 말이 더 맞을지도 모르는 그런 로봇놈팽이 말이다. 자줏빛 피부에 민대머리인주제에 생긴 것은 말끔하게 잘 생겨서 최근 타워 내에서는 새로운 시대의 로맨스를 꿈꾸는 젊은 여성들이 늘어난다는 추문이 일기도 했다. 그만큼 비전은, 즉 이 안드로이드는 젠틀함과 친절함, 그리고 은근히 덩치있는 몸매로 멤버들 사이에서는 큰 호감을 일고 있었다.
"최고의 아군이라니-"
"그딴 고구마피부에 로봇놈팽이라고 하려고 했지? 이젠 지겹다, 그 말도."
"젠장."
문제는 그런 로봇놈팽이가 완다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는 점이었다. 단순히 어미새에게 각인을 한 아기새 정도가 아니었다. 그는 명백히 완다 막시모프에게 이성적인 관심을 갖고 있었다. 둘은 몇번 데이트라 할 수 있을 만남을 가졌고, 그때마다 비전이 향수를 뿌리고 간다는 사실에 피에트로는 정말로 창백한 낯빛으로 둘을 미행하려고까지 하였다. 그러니 바튼이 비전의 이야기를 꺼내자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질수밖에.
하지만 그럼에도 바튼이 보기에 아이러니한 점이라면, 그렇게나 비전에 대해 경계심과 질투를 느끼면서도 피에트로도 나름 비전을 좋아한다는 데에 있었다. 애초에 비전을 애칭으로 부르는 사람이 이곳에 몇이나 있겠냐 말이다. 그래서 더더욱 피에트로가 속으로 짜증이 이는 것이지만.
"그치만 아무리 그녀석이라도-"
"여기 있었군요, 피에트로."
갑작스레 나타난 고구마빛의 로봇놈팽이의 등장에 순간 피에트로는 크게 숨이 막혔다. 바튼은 미간에 어린 주름을 손가락으로 눌러 편 뒤에, 벽을 뚫고 나타난 비전에게 말하였다.
"비전, 너 노크하라고 몇번이나 말했어?"
"미안합니다, 클린트. 하지만 완다가 피에트로를 무척이나 찾고 있습니다."
"나 없다고 그래, 아무데도."
"하지만 완다는 방금 전의 일로 매우 미안해한 것 같았습니다. 진심으로 사과를 하고 싶다는군요."
그 말에 성이 나있던 피에트로의 눈썹이 내려갔다. 비전이 저렇게까지 말하면 분명 그녀는 침울해져있을 것이 분명했다. 울지는 않을테지만 얼굴을 잔뜩 찌뿌리고는 땅이나 파고 있을거라고 생각하자, 그녀에 대한 연민과 애정이 스물스물 스며나왔다. 피에트로는 혀를 차고는 어쩔 수 없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자신을 그렇게나 찾는다면 어쩔 수 없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말 들어줘서 고마웠어요, 노땅."
"그래, 부디 몸조심하고."
어째서 그런 말이 튀어나온 것인지는 모르나, 바튼은 그런 인사를 하고는 비전과 피에트로를 제대로 문을 통해 내보냈다. 그리고 다시 활을 손질하려고 물건을 찾고 있을 때쯤에 들은 것은, XXX이라고 욕을 하며 고함과 비명을 지르는 피에트로의 목소리였다. 하하, 당분간 문은 잠궈놓고 있어야지. 바튼은 자리에서 일어나 아주 신속하게 문을 잠궜다.
"XX! 아니 저 XX는 왜 그런 말을- 젠장 거짓말이었냐!!"
간신히 완다와 비전, 어벤져스 내에서도 최고의 힘을 자랑하는 둘에게서 빠져나온 피에트로는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비전을 따라가자마자 그는 완다의 염력에 사로잡혔다. 완다는 마치 미친X처럼 상쾌하게 미소를 지으며-정말이지 욕은 쓰고 싶지 않았지만- 조심스레 형제의 머리카락을 풀었다. 완다의 관리덕인지 윤기가 흐르는 장발이 그의 어깨에 흘러내려갔다. 흑백의 대비가 강한 색을 보며 완다는 몇번이고 찰칵거리며 가위를 놀렸다.
"어 스타크! 나좀 도와줘요!"
"이제 그 수는 통하지 않아, 피에트로. 왜 그래, 예전에는 내가 해준건 다 받아줬잖아."
"그때랑 지금이랑 같다고 하지 말아줘, 완다. 게다가 난 아직 준비도 안됐다고. 봐, 난 오늘 운동한다고 땀에 쩔었는데 어떻게 하냐고."
"그건 그렇네. 그럼 어쩔 수 없네, 씻어주는 수밖에."
"네?"
자신의 옷을 벗기려드는 완다의 요란한 손놀림에 피에트로는 순간 식은땀을 흘렸다. 물론 둘은 가끔씩 같이 목욕을 하긴 하였지만 그것도 어린 시절의 이야기, 사춘기가 지나면서는 정말로 최악의 경우가 아니고서는 서로의 다 벗은 몸을 본 적도 없었다. 정말로 벗기려나, 이대로 쌍둥이에게 정조를 잃게되나 그는 아랫입술을 꽉 물고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야?"
아주 익숙한 목소리가 홀에 울려퍼졌다. 피에트로는 가는 눈을 뜨고는 목소리의 진원지를 확인하였다. 일출처럼 선명하고도 구불거리는 붉은색 머리카락, 일단은 어벤져스의 2인자, 나타샤 로마노프였다.
"언니?"
다시금 완다가 뒤돌아보자 염력의 세기가 약해졌다. 피에트로는 맹렬히 자신의 몸을 떨면서 틈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틈이 생기자마자 그는 아까전과 마찬가지로 완다의 가위를 빼앗아들고는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피에트로! 경악에 찬 고함소리가 홀에 가득 찼다.
피에트로 막시모프는 달리고 또 달렸다. 그는 우선 완다의 방에 들어가-물론 무단으로- 서랍과 옷장 이곳저곳을 뒤졌다. 물론 들킬 것이 뻔하고 잡힌다면 옷이 벗겨지고 머리카락이 잘리는 것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 분명했으나, 어떻게든 제 머리를 자르는 날붙이를 제거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과연, 서랍을 뒤지니 아예 미용가위세트가 나왔다. 그는 그것과 책장에 꽂혀있던, 소코비아어로 되어있는 최신남성헤어스타일 잡지를 빼어들었다. 그는 옛날부터 완다가 남의 머리를 만져주길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머니의 길다란 머리카락은 항상 요상하게 꼬이거나 묶이거나 땋아지곤 하였다. 물론 그건 누가 봐도 예쁘다고 말할 수 있는 상태였다. 그랬다, 완다는 헤어스타일을 다듬는데에 서툴렀다. 심지어 자신의 머리카락도 제대로 만지기 어려웠기 때문에, 예쁘게 땋거나 묶고 싶을때에는 피에트로의 손을 빌렸다. 그런 완다에게 제 머리를 맡기다니, 나름 수염도 기르면서-토니의 조언을 토대로 삼아- 멋진 사나이가 되고싶어하던 피에트로 막시모프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다시 머리카락과 관련된 물품을 찾아보았지만 다행히도 가위와 책밖에 없는 것 같았다. 그는 다시 책을 보았다. 헌책방에서 구했는지 종이가 누렇게 변한것이 아무리봐도 10년도 더 되었을 것이다.
"맙소사, 얘는-"
"피에트로, 노크는 하고 들어온 겁니까?"
피에트로는 동물적인 본능으로 문을 향해 달려나갔다, 아니 달려나가려했다. 만약 비전이 그의 손가락을 자신의 귀에 통과시키지만 않았으면 말이다. 이건 조금이라도 도망치면 곧바로 귀에 구멍에 뚫어버릴 거라는, 왠만해서는 잘 하지 않던 협박이었다. 설마 화났나, 그는 비전의 심기를 알아채려했으나 역시 안드로이드의 얼굴표정은 알아보기 힘들었다. 피에트로는 식은땀을 흘리며 비전에게 말하였다.
"하하, 어쩐 일이야?"
"완다가 급히 찾고 있습니다."
"날 죽이려고하는걸 그렇게 순화시켜말하지 않아도 돼, 비즈."
피에트로의 입에서 쓴미소가 지어졌다. 그는 자신이 협박받고 있다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제 앞에 서 있는 이 안드로이드가 불편했다. 물론 비전은 좋은 안드로이드였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자애를 베풀었고 동료로서도 훌륭하다. 특히나 그는 완다에게는 더더욱 애정을 보였다. 덕분에 자연스레 셋은 어벤져스 내부에서 막내조라는 역할때문이 아니더라도 붙어다닐 때가 잦아졌다. 하지만 그래도 피에트로는 가끔씩 이 안드로이드가 무서워질 때가 있었다.
"확실히 여태까지 있었던 일들을 보면 분명 어느정도의 폭력이 올 것은 분명하군요, 하지만 피에트로. 어째서 그녀를 피하고 있는거죠? 그녀는 단순히 당신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싶을 뿐입니다."
"너라면 이렇게 잘리고 싶겠어?"
아차, 손에 들려진 잡지 표지를 보여준 순간 피에트로는 깜짝 놀라며 비전을 바라보았다. 비전은 잘릴 머리카락이 없다. 어쩌면 완다에게 머리카락을 잘린다는, 그런 행위를 부러워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자 오히려 비전에게 미안해지려 하였다.
"미안, 너에겐 이런 말은-"
"확실히 이 스타일은 10년 전에는 유행하였지만 현재에는 그다지 인기가 많을 스타일은 아니군요. 게다가 여기 왼쪽의 이 머리스타일은 당신의 두상에도 얼굴에도 그다지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러고보니 은근히 비전은 스타일에 신경을 쓰는 편이었다. 할 수 있는 것은 옷차림에 신경을 쓰는 것밖에 못하면서도, 항상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스타일에 집중하였다. 피에트로는 그런 놈이었지, 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게다가 걔는 머리카락도 제대로 못잘라, 지금도 머리를 펴거나 웨이브도 간신히 주는 정도인데 남의 머리를 자르겠다고? 난 못해, 미쳤다고 걔한테 어떻게."
차라리 바가지를 머리에 씌우다 자르면 또 모를까, 완다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제대로 자르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피에트로는 도저히 완다에게 자신의 머리를 맡길 수가 없었다. 비전은 그 말을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귀에 손가락을 빼내었다. 피에트로는 자신의 말을 이해해주었다는 기쁨에 눈물이 나오는 것도 간신히 참은 채 비전에게 고맙다고 말하였다.
"덕분에 살았어."
"하지만 완다에게는 이걸 설명해야 할겁니다. 이대로 도망만 칠수는 없으니까요."
"젠장."
그는 나지막히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비전의 말이 맞았다. 이대로 도망만 치다가는 완다의 화를 더 살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다가 자신의 말을 순순히 믿어줄까? 그 전에 사랑해마지않는 여동생에게 솔직히 네 가위질 솜씨는 최악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장난식으로 말한다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말한다면 더더욱 넘어가기 힘들 것 같았다. 피에트로가 고민하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비전은 차분히 입을 열었다.
"만약 괜찮다면 제가 완다에게 피에트로의 뜻을 전하겠습니다. 제가 말한다면 그녀도 화도 누그러지겠죠."
마치 샹투스가 울려퍼지는 것 같았다. 방금전 나타샤가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천사가 내려오는 것 같았다. 피에트로는 순간 저도 모르게 두손을 모으고서는 비전을 바라보았다. 고구마색 천사라니, 여느 성화에도 나올법하지 않은 괴상한 조합이었다.
"하지만 피에트로도 도망치지 마세요. 무엇보다 일의 시작은 당신이 먼저 머리카락을 자르겠다는 말에서 나온거니까요. 저는 당신의 선택을 존중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완다의 말도 들어주셔야합니다."
"그야 당연하지."
"만약 또 완다에게 도망치려 한다면, 그 때엔 제가 완다에게 정식으로 교제를 신청할겁니다."
응?
순간 피에트로는 비전의 입에서 나온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도망치지 말라는 비전의 말까지는 이해하였다. 그런데 뭐라고? 교제? 정식으로? 신청? 순간 머릿속에서 그 세단어가 폭풍을 일으키며 휘돌아다녔다. 교제? 그러고보니 비전은 완다를 좋아했었다, 피에트로가 봐도 위험할 정도로. 신청한다고? 누가 누구에게? 순간 비전이 완다를 사랑스럽다는 듯 껴안은 모습이 떠올랐다. 두달 전에 시베리아에서 추위로 고생했던 적의 일이었다.
"잠깐, 너 그거-"
"그럼 방에서 기다리세요, 먼저 가겠습니다."
경악에 가득 찬 피에트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비전은 벽으로 몸을 숨겼다. 그의 발끝마저 사라지자 엄청난 욕지거리가 완다의 방에서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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