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ANDALIEN
알렉스레니 _ HAEDM 본문
아무리 얼음을 깨물어도 뜨거운 공기를 식힐 수는 없었다. 시끄러운 전자음과 화려한 미러볼 아래에서 몸을 흔들고 있는 이들이 있는 한, 클럽의 공기가 한낱 에어컨 바람에 식을 일은 없을 터였다. 깔끔하게 셔츠차림을 한 남자는 클럽 한편에 위치한 바에 앉아 도수가 낮은 칵테일을 시키고는 열심히 춤을 추고 있는 무리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무대 맨 윗편에 앉아있는 DJ는 마치 왕좌에 앉은 군주처럼 근엄한 모습으로 기계를 만지고 있었다.
“맞아, 그래서 말이야, 어머, 안녕하세요.”
꽤나 짧은 옷을 입은 여자 두 명이 클럽에서는 보기 힘든 점잖은 남자를 발견하고는 옆에 앉았다. 둘은 바텐더에게 요즘 잘 나간다는 칵테일을 시키고는 살풋이 미소를 지으며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남자가 가볍게 목례만 하자 여자들은 서로 무어라 이야기하고는 꺄르르 웃었다. 둘은 그럼 그렇지, 라고 이야기하면서 그들이 있는 이 클럽의 전통을 주제로 이야기하다 다시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혼자 오셨어요? 친구랑? 아니면 누굴 만나러? 이런 곳에 올만한 분은 아닌 것 같아서요.”
“아.. 네, 친구와 같이 왔습니다. 클럽은 사적으로 오는건 처음이네요.”
남자는 제법 말이 없었고 과묵했기에 여자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화술과 칵테일 한잔으로, 남자가 외국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으며 휴가를 맞아 이 고장에 오게 되었다는 것까지 알아냈다. 남자는 여자들이 사준 칵테일-제법 도수가 높았지만 달달했기에 알아채기는 어려웠다.-을 마시며 그녀들이 방학을 맞아 이 근처 연구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러 온 대학생이란걸 알 수 있었다.
“이 클럽 상당히 유명하다고요. 오늘은 그나마 평일이라 이렇지, 주말에는 사람들로 미어터진다니깐요.”
“맞아, 우리가 일하는 연구실 선생님도 가끔씩 보인다니깐요. 그래도 그 뚱뚱한 배로 춤추는건 좀 웃기지만.”
“그것 참 재밌는 이야기군요.”
어느새 노래는 살짝 잠잠하게 바뀌었고, 그에 따라 신나게 몸을 흔들어대던 사람들의 몸짓도 조금은 차분해졌다. 잠깐 숨을 돌리려 몇몇이 바로 몰려들었고, 그 중에는 남자가 친구라고 부르던 청년도 있었다. 여자들은 금발의 구릿빛 피부의 청년을 보고는 작게나마 아우성을 질렀다.
“아저씨, 지겹지 않아?”
“당신 그 알렉스 맞죠? 이 변호사님과 친구란거 사실이에요? 말도 안돼, 당신 애인이 이렇게 당신과 정반대일 줄이야!”
“앤디가 실망하겠네!”
둘은 이야기를 나누며 웃어대다 알렉스라고 불린 청년에게 칵테일을 샀다. 알렉스는 기꺼이 칵테일을 부르며 아저씨라 부른 남자에게 환하게 웃어보였다. 남자는 친구가 꽤나 땀에 젖어있다는 사실보다는 옆에 앉아있는 여자들이 둘의 관계를 너무 쉽사리 알아챘다는 것에 더 놀라며 그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래봤자 그는 클럽에서는 유명인이 되어버린 이 연인과의 관계를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애당초 그러지 않으려고 지상에 발을 얹은 것이다.
“..어떻게 알게 되신거죠? 저는 말한 적이 없는데요.”
“어머, 아무것도 모르셨어요? 아저씨라 불릴만 하네, 여기가 얼마나 유명한 곳인데. 여긴 사실 게이들이 자주 드나들던 클럽이었어요. 그런데 하도 주인장이 DJ 영업을 잘해서, 어쩌다보니 근처에 사는 시민들도 잘 오게 되었죠. 봐요, 잘 보면 그런 쪽이 많잖아요.”
그러고보니 친구라기에는 조금 진한 스킨쉽을 하는 남자들이 간간이 주위에 보였다. 그는 으슥한 구석에서 입을 맞추는 커플을 알아채고는 한숨을 내쉬려는걸 간신히 참았다.
“그나저나 진짜에요, 알렉스? 당신은 그런 말 한적 없잖아요!”
그 말에 남자는 알렉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는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딴청을 피울때는 으레 하던 얼굴로 연인의 눈초리를 회피했다. 상황을 눈치챘는지 여자들은 알아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음악의 비트가 빨라져갔고, 잠시 숨을 고르던 사람들도 한두명씩 중앙으로 이동했다.
“...난 네가 클럽간다고 했을 때도 아무런 의심을 안했어.”
“내가 애인이 있다고 밝히든 안 밝히든 별 상관 없잖아, 에헤이, 왜 그래 아저씨.”
“아까 앤디라는 사람은 또 누군데?”
남자는 연인이 당황해하는 모습을 나름 즐기기까지 하며 칵테일을 들이켰다. 여자들이 사주었던 술은 생각보다는 독했는지 속에서부터 열이 올라오고 있었지만, 오히려 그의 머리는 차갑게 냉각되어가고 있었다.
“그... 저번에 왔을 때부터 나에게 추파걸던 사람인데, 걱정마! 나 절대로 바람 안피니까. 그다지 내 취향도 아니고 그냥 나보고 너 잘생겼다, 아주 멋있다 하는게 기분이 좋아서 얘기를 안한 것 뿐이야. 정말이야, 바람피지 않았어! 응, 짐?? 알지? 앤디가 나 계속 쫓아다녔지만 내가 안받아준거.”
그 말에 다른 손님에게 술을 건네고 있던 바텐더가 웃으며 대답했다.
“맞아요, 앤디 녀석이 얼마나 투덜거리는데요. 알렉산더 대왕이 전혀 눈길도 안준다고 말이에요.”
“흐음...”
“맞지? 아저씨도 참, 난 절대로 바람 안핀다니까?”
그 말에 남자의 입가가 아주 살짝 올라갔다. 그는 다시 술을 한모금 들이키더니 식은 땀을 흘리고 있는 연인에게 말했다.
“내가 보기엔, 넌 네가 남으로부터 작업을 받는걸 꽤나 즐기고 있는 것 같은데. 물론 그게 나쁘진 않아.”
“...그렇지? 그럼 나 춤좀 추고 올게!”
알렉스는 도망치듯 무대로 뛰어갔다. 남자의 시선은 인파 사이로 사라져가는 연인에게 집중되고 있었다. 그는 연인이 이 클럽에서 꽤나 유명하다는 사실-그건 충분히 이해갔지만-과 생각보다 인기가 많다는 사실이 기분나쁘진 않았다. 오히려 그런 남자가 연인이라는 점이 자랑스러우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남이 연인에게 작업거는 모습이 좋다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건장한 남자 몇몇이 춤추고 있는 연인에게 말을 걸었고, 탱크탑을 입고 있던 근육질의 남자는 1분여간을 같이 춤을 즐겼다. 알렉스는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환히 웃으며 딱 봐도 보이는 남자의 추파를 받아주다가 떨어졌다.
“인기가 많죠? 알렉산더 대왕은.”
바텐더는 알렉산더 대왕의 애인에 대한 서비스라면서 짙은 갈색의 칵테일을 내놓았다. 남자는 입안에서 풍기는 짙은 커피향과 보드카를 즐기며 바텐더에게 말했다.
“우리 도시에서는 저러진 않았는데요. 춤을 춰봤자 집에서 혼자서 춤추고 그랬어요.”
“그런거치고는 꽤나 춤솜씨가 좋던걸요, 원래 끼가 있어서 그런가.”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여기가 편해서일지도 모르고요.”
“알렉스에게 들었어요. 그 곳은 동성애가 불법이라면서요?”
그 말에 남자는 다시 열심히 추고 있는 연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정말이지, 저렇게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도 오랜만인 것 같았다.
“네, 그래서 좀 답답해했죠.”
그 말에 바텐더의 입가에서 얕은 웃음이 흘러나왔다. 남자는 지금 마시고 있는 술이 제법 독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달달함에 차마 입을 떼지 못했다. 연인의 이마와 목 뒤로 땀이 점점이 맺히고 있었다. 가슴이 격하게 움직이고 입으로 숨을 내쉬는걸 보면 제법 숨이 찬 모양이었다. 가끔씩 옆에 있는 사람들과 큰 소리로 무언가를 이야기했지만 음악에 가려 남자에게 들리진 않았다. 그는 갑자기 독순술을 배워들걸, 하는 생각을 했다.
그가 다시 잔에 입을 대었을 때 바텐더가 어깨를 두드리고는 입구쪽을 가리켰다. 검은 머리를 깔끔하게 넘긴, 남자가 봐도 매우 잘 생긴 청년이 은근하지만 어딘가 부담스러워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걸어나오고 있었다. 청년은 바텐더를 향해 인사를 했는데, 목소리마저 상당히 중저음인 것이 상당히 매력적인 인간이었다. 청년은 남자를 향해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무대로 걸어들어갔다.
“앤디에요.”
그 말을 듣자마자 남자의 고개가 연인을 향해 돌아갔다. 과연 앤디는 알렉스의 어깨를 붙잡더니 한번 포옹을 하고는 같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과하긴하지만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그는 알렉스에게 무언가를 속삭이니 연인의 입술도 같이 올라갔다. 마치 웃는 소리가 귀에 들릴것만 같아 남자는 심히 불쾌해졌다.
앤디의 옆에 방금 전에 술을 샀던 여자들이 다가가더니 무어라 속삭였다. 자신을 향해 살짝은 날선 시선을 보내는걸 보면, 아마도 흠모하는 알렉산더 대왕에게 헤파이스티온이 있는걸 알아버린 모양이었다. 물론 남자는 승리와 질투가 섞인 미소를 지으며 다시 앤디에게 고개를 까닥였다. 앤디는 곧바로 고개를 돌려버리더니 다시 알렉스에게 온 몸과 마음을 집중했다.
이윽고 여성의 가느다란 목소리와 비트가 흘러나오자 다시 알렉스가 바로 다가왔다. 앤디는 알렉산더 대왕을 따라오지 않고는 잔잔한 비트에 몸을 맡겨 몸을 흔들었다. 물론 시선은 그가 계속 작업을 걸던 대왕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알렉스는 연인의 손으로부터 잔을 빼앗고서는 한모금 들이켰다가 생각보다 강한 도수에 놀랐다.
“이거 꽤 세잖아! 그러고보니 아저씨, 얼굴도 살짝 붉어진 것 같은데 너무 마신 거 아냐?”
그 말에 남자는 슬며시 미소를 짓고는 그런 것 같다고 솔직히 인정했다. 정말로 말이야, 투덜거리는 목소리 뒤로 날아드는 날카로운 시선에 그는 눈을 마주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아님 아예 춤출래? 추는 법 몰라도 돼, 그냥 흔들기만 해도 되니까. 여기까지 왔는데 안추는 것도 아깝잖아. 응?”
연인의 간청하는듯한 목소리에 남자는 승리의 미소를 앤디에게 지어보냈다. 그러자 구애자의 한쪽 얼굴이 일그러져갔다.
“응? 아저씨?”
알렉스가 남자의 뺨을 쓰다듬자 축축한 땀냄새가 그의 코를 찔렀다. 놀랍게도 체취는 지옥에서나 여기서나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그는 그게 매우 놀라웠기에, 그리고 어두운 조명아래에서 보이는 노란 눈이 너무나도 섹시했기에 대답대신 땀에 젖은 셔츠를 잡아당겼다.
“휘이-!”
바텐더는 매우 놀랐는지 동그래진 눈으로 휘파람을 불었다. 하지만 세간의 시선이 집중되길 오히려 원했는지 남자는 연인에게서 입을 떼지 않았다. 오히려 일부러 질척거리는 소리를 내며 혀를 섞고 한손으로 연인의 엉덩이를 그러잡았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반대편에서 경악하고 있는 앤디에게서 떼지 않았다. 입천장을 몇 번 건드리자 대왕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작게나마 흘러나왔다. 연인이 간신히 입을 떼었다 싶으면 다시 끌어당겨 입술을 찾았다. 비록 고개가 뒤로 젖혀 뻐근해왔지만 주변에 들려오는 함성소리에 더더욱 입을 떼지 않았다. 결국 모두의 시선을 한꺼번에 사로잡은 키스는 앤디가 고개를 돌림과 함께 끝났다.
“하아.. 아저씨, 정말 취했어?”
열락과 경악이 섞인 눈에 남자는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의 휘파람소리와 박수소리가 음악과 함께 클럽 내에 울려퍼졌다.
“집에 가자, 샌디.”
그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아슬아슬한 목소리로, 일부러 영어로 연인에게 말했다. 그리고는 잡고 있던 한쪽 엉덩이를 다시 주물렀다. 너무나도 명확하고 노골적인 행동에 알렉스의 얼굴이 절로 붉어졌다.
“왜 그래?”
그 말에 남자는 연적과 다시 눈을 마주치고는 큰 소리로 답했다.
“...여기서 섹스할 수는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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