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ANDALIEN
알렉스레니 _ 검은 냄새 본문
검은 고양이의 뒷목에선 미미하게 화약내가 일었다. 레널드는 뽀뽀하려고 주둥이를 들이대는 고양이의 옷자락을 붙잡고는 다시 한번 그의 목덜미에 코를 묻었다. 현관에서 하기에는 생각보다 격한 애정표현이라 알렉스는 정말로 기뻐하는 마음으로 레널드의 등에 손을 뻗었지만, 물론 연인이 떨어지는 것도 순식간의 일이었다.
“아저씨, 꼬맹이도 없잖아.”
“너 일하고 안 씻고 왔니?”
“응?”
알렉스는 정곡이 찔렀는지 아무런 대답도 못했다. 물론 그는 방금 전까지 인질극이 벌어진 현장에 있었고, 무사히 사건이 수습되고 정리까지 끝내자마자 시말서와 보고서를 제출해야한다는 페터의 연락을 상큼하게 무시하고는 곧장 연인의 집으로 달려왔다. 드디어 그 하얀 꼬맹이가 집으로 돌아갔다. 물론 알렉스는 나름 레오의 아들을 좋아하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동물원에서 신기한 동물을 보는 시점에서였다.-그래서 더더욱 레니는 알렉스가 조카를 건드리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리고 조카가 집에 있음으로서, 알렉스는 레널드에게 대놓고 애정행각을 할 수 없었다. 손을 잡는 것도, 간단하게 코로 뽀뽀를 하는 것도, 혀를 섞고 그 이상의 과정까지 나아가는 것 전부 다. 그러니 그 꼬맹이가 집으로 돌아갔다는 소식에 당장에라도 연인의 집으로 달려올 수 밖에. 그는 할로윈홀을 사용하려는 유혹도 간신히 뿌리쳐야 했다.
레널드는 킁킁대며 알렉스의 몸 이곳저곳의 냄새를 맡았다.
“네 몸에서 화약냄새가 나. 오늘은 무슨 일을 한거니? 거짓말할 생각 하지마, 당장에라도 페터에게 전화걸어서 널 데려가라고 할수도 있으니까.”
애인이 제 몸 이곳저곳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는 상황은 상당히 묘했다. 하지만 과연 지옥개, 알렉스는 제 연인에게만은 거짓말을 해도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으음... 인질극? 괜찮아! 총도 위협사격이었고 나는 손도 대지 않았어. 난 그냥 옆에서 서포트만 했을 뿐이야.”
레널드의 얼굴이 미약하게 일그러진다. 그는 알렉스가 집에 쳐들어오기 전까지 금은방에서 난 인질극을 경찰이 진압하는걸 생중계로 보고 있었다. 페터의 모습이 보이길래 혹시나 했건만. 다행히도 범인은 팔 한쪽을 총알로 꿰뚫린 채로 검거되었고, 진압반도 무사하다고는 했지만-
“...괜찮다니까. 봐, 난 정보원이라 대놓고 활동하는것도 아냐. 그냥 급한 일이 생겼다길래 도우러간거 뿐이고, 아저씨도 뉴스 봤지만 대원들이 다쳤다는 얘기도 없잖아. 인질도 무사히 구출했고! 응? 난 잘했다고.... 물론 페터가 또 시말서 쓰라고는 하는데, 그래도 이번에는 나름 잘했어.”
활기차게 말하면서도 알렉스의 귀는 내려가 있었다. 그는 연인이 매우 시무룩해하며 힘들어하고 있단걸 느끼고는 조심스레 연인을 품에 안았다. 레널드도 결국은 알렉스의 포옹을 받아들였다. 이 지옥개는 연인이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결국 알렉스가 선택한 일이라는 데에서 크나큰 고뇌를 느끼고 있었다. 자신은 검은 고양이의 선택에 관여할 자격이 없었다. 연인을 몇 번이나 죽게 만들었던 자기로서는.
“봐, 결국은 살아돌아왔잖아. 응? 나 잘했다고 칭찬해줘.”
고양이는 정성껏 레널드의 목덜미에 뺨을 부비어댔다. 털들이 쓸리는 느낌 사이사이로 화약냄새가 화악 일었다가 온기와 함께 사라졌다. 레널드는 그저 등을 몇 번 두드리고는 품에서 떨어졌다. 그는 연인을 칭찬하는데에는 상당히 박한 시민이었고, 아쉽게도 그건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그가 할 수 있는, 나름의 칭찬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같이 씻을까? 너 냄새 너무 심하게 나.”
고양이의 귀가 하늘을 찌르듯이 올라갔다. 너무나도 기뻤는지 꼬리가 빳빳하게 위로 솟아올랐다. 그리고는 당장에라도 날아오를 수 있을 것처럼 재빠른 몸짓으로 연인의 손을 잡고 욕실로 뛰어 들어갔다. 그러고보니 전에 선물로 받은 입욕제를 쓰겠다는 의욕과 함께.
목욕과 사랑행위를 마치고, 정성스레 털을 말리고 빗고 나서야 레널드는 화약냄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입욕제의 힘 덕분인지 알렉스의 털에서는 윤기가 흘렀고, 감촉마저도 매우 부드러웠다. 아마 하루만 지나면 다시 뻣뻣해질테지만, 그래도 그때까지는 이 감촉을 즐기겠노라며 그는 정성껏 연인의 털을 빗었다. 레널드의 무릎을 베고 누워있는 알렉스는 오랜만에 고롱고롱 소리를 내가며 연인의 털빗기를 즐기고 있었다. 이렇게 여유롭게 연인의 품에 있는게 얼마나 기뻤던지, 꼬리 끝이 살랑살랑 움직이는 걸 레널드가 잡을 정도였다.
“좋아?”
한참 고롱고롱거리고 있던 소리가 멈추었다. 알렉스는 나른한 눈으로 연인을 올려다보았다.
“..응. 너무 좋아.”
그는 연인의 허리를 붙잡더니 이상하게도 레널드의 배에 귀를 갖다대었다. 갑자기 무슨 짓이냐며 타박을 하기도 했지만 알렉스는 허리에서 손을 놓지 않았다.
“아저씨 배에서 꾸룩꾸룩 소리가 나.”
“...그야 당연하지.”
레널드는 매우 부끄러워하면서도 빗에서 손을 놓지 않았다. 곧 털갈이철이 오려는걸까, 저번보다 털이 빠지는 양이 생각보다는 많았다. 빗에서 골라낸 털들은 이미 작은 고양이수준으로 쌓여져있었다. 나른한 오후였다. 그는 정성껏 모은 털들을 둥그렇게 뭉치고나서야 빗을 손에서 놓을 수 있었다.
“다 했어. 이제 슬슬 손 좀 놓으시지?”
“조금만 더 이러고요, 변호사선생님. 이제 냄새도 안나니까 괜찮잖아요.”
“...너 처음 봤을 때도 나한테 반말했잖아. 선생님은 무슨, 그때부터 계속 아저씨라고 불렀으면서.”
“쳇.”
알렉스는 혀를 차자마자 몸을 일으켰다. 유난히 가슴털이 더 뽀송해진 것 같다고 기뻐하다가 제 옆에 굴러다니는 커다란 털덩어리에 경악했다. 그는 곧 다가올 털갈이 시즌을 대비해야 한다는 사실을 끔찍해했다. 그에 비하자면 레널드는 그런 종류의 이벤트에는 기계적으로 대비하는 편이었다. 아마도 2주쯤 뒤에 쇼핑몰에서 파는 털갈이 세트를 2세트 정도 구매해서 하나는 알렉스에게 보내고 하나는 자신이 갖고 있을 터였다.
검은 고양이는 제 몸에서 무슨 냄새가 나지 않나, 하고 이곳저곳의 냄새를 맡아보았지만 바디클렌져와 린스의 미약한 향기만이 풍겨져 나올 뿐이었다. 그는 아저씨와 같은 향기를 품고 있다는 것에 제법 만족해하며 미리 챙겨온 옷을 입었다. 그리고 올 때 입었던 옷의 냄새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땀냄새와 함께 짙은 화약냄새가 옷에서 풍기고 있었다. 오는 길에 제법 대중교통을 이용했건만, 어쩐지 시민들의 시선이 이상했던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정말 좀 심하게 나네. 나 어떻게 왔대.”
“신고라도 당하지 않은게 다행이지. 정말 위험한 일 아니었지?”
“아니라니까! 난 그냥 뒤꽁무니에 있었어.”
레널드가 정성스레 빚은 공을 쓰레기통에 넣고, 바닥에 떨어진 털들까지 청소기로 정리하는 동안 그는 얌전히 소파위에 앉아있었다. 청소는 검은 고양이의 분야가 아니었고, 덩달아 마찬가지였던 지옥개는 어느새 청소의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그는 검은 고양이가 청소하는 모습을 보고는 죽어도 저 고양이에게 빗자루를 들리지 않겠다고 다짐한 적이 있었다. 대충 청소를 마치고 돌아오니, 이제는 아예 소파에 누워서 핸드폰 액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일을 할 생각은 없어?”
“음.... 나갈 때 쓰레기는 내가 버릴게요, 선생님.... 이것 봐, 아저씨! 여기 기억나? 왜 우리 처음으로 데이트했던데.”
알렉스가 갑자기 보여준 곳은 사격장의 내부 전경이었다. 총을 쏘는 구역은 칸칸이 나뉘어져 있었고, 모델의 시선의 끝에는 뭉숭그레 시민의 형태를 한 종이가 걸려 있었는데 이미 작은 구멍이 여러군데 나 있었다. 모델인 악마는 헤드폰과 선글라스를 끼고는 권총으로 과녁을 겨누고 있었다. 그 모습은 레널드에게는 묘하게 낯설면서도 기시감이 들었었는데, 알렉스가 처음으로 데이트했던 곳이라 해서 더욱 더 혼란스러웠다. 그가 기억하기론 둘의 첫 데이트 장소는 바로 호숫가였다.
“왜, 나 처음에 총 못 쏘겠다고 징징댔을 때 아저씨가 가르쳐줬었잖아.”
마치 안개처럼 흐릿한 기억 속에서 무언가가 떠올랐다. 구속사건을 해결해준 뒤로 알렉스는 레널드의 사무소 컴퓨터를 수리해주겠노라고 간간이 사무소를 들락거렸었다. 그 날도 무료로 검사를 해준 날이었는데, 같이 점심을 먹다가 평소처럼 요즘 페터가 괴롭힌다고 털어놓았었다. 사격훈련을 하는데 총을 너무 못 쏜다고 뭐라 하지를 않나.....
“아, 그 때. 하지만 그땐 사귀지도 않았었잖아.”
“사귀어야 데이트라고 하나? 난 그때부터 아저씨를 좋아하고 있었는걸. 그래서 계속 컴퓨터 고쳐줬던 거고. 내 사건 끝나고 둘이서 무언가를 하러 갔던 건 그때가 처음이었잖아. 보통은 마이클씨랑 같이 밥먹었었고.”
마이클은 당시 사무소의 사무직원이었다. 나이가 꽤 든 중년의 악마였는데, 민권사건으로 바쁜 레널드를 충실히 보좌하던 시민이기도 했다. 그는 이미 장성한 두 악마의 아버지이기도 했는데, 그래서였을까 은근히 알렉스를 잘 다루곤 했었다.
의외로 레널드는 알렉스가 자신을 그때부터 좋아했단것에 대해서는 놀라지 않았다. 그도 당시에 검은 고양이와의 관계가 친구라기에는 애매한 관계란걸 직감하고 있었고, 실제로 호감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검은 고양이에게 같이 사격장에 가지 않겠냐고 말을 꺼내었었다. 당시 누군가와 함께 사격장에, 정확히 말하자면 직장이 아닌 다른 장소에 ‘논다는’ 이유로 간 것은 대학을 졸업한 이후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때 자신이 꽤나 부끄러워했다는 사실을 떠올리자, 다시 그 감정이 새어나오는 것만 같았다.
“그건 그랬지만... 그래서 여긴 왜 갑자기 꺼내는건데?”
“아저씨, 우리 다음에 여기로 가보지 않을래? 우리 사귀기로 한 날 기념일로.”
“갑자기 생각이 왜 그쪽으로 흘러가니?”
그러면서도 시선은 계속해서 사격장으로 향해 있었다. 자동권총은 4갈래의 쇠줄로 고정이 되어있어 안전사고를 방지하고 있었다. 권총의 모습은 상당히 낯설었지만, 그의 머릿속에선 몇주동안 지겹도록 보았던 증거품이 떠올랐다.
“이번엔지지 않을거야. 그때처럼 소원걸고 내기하자.”
너의 목소리 뒤에 울리던 수십발의 총성소리. 네 시체에서 짙게 풍기던 화약냄새. 레널드는 고개를 저었다.
“아냐, 어떻게 널 이기겠어. 넌 이미 거의 프로고, 난 이제는 들고 다니지도 않는걸.”
“그치만 그 때는 들고 다녔었잖아.”
알렉스는 예전 레널드가 품속에 넣어 다녔던 리볼버를 언급했다. 소형이긴 했지만 나름 위협적이던 그 권총은 단 한발도 시민을 향해 쏘는 일 없이 그대로 책상 서랍안으로 들어가버렸다.
“그건 호신용이었지. 내가 일했던 곳들은 다 우범지역이었잖아. 지금은 그냥 회사에 다니니까 가지고 다닐 필요도 없지. 나도 그 때 이후로는 총을 쏴본 적이 없어.”
오히려 지금이라면 피하고 싶을 정도다. 알렉스는 레널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는걸, 그리고 그가 사실은 자신이 죽고난 다음에 정신적으로 힘들어했었다는걸-그것도 본인이 말해준게 아니라 페터를 통해 들은 이야기였지만- 떠올리곤 연인을 끌어안았다. 미안해, 아저씨. 풀이 죽은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이자 레널드가 다시 고개를 젓는 게 느껴졌다.
“나중에라도 가자. 네가 가고 싶다는데 어쩌겠어.”
그러자 고양이는 다시금 연인의 목덜미에 제 뺨을 부비었다. 이제는 화약냄새 대신 기분좋은 향기만이 뿜어져나왔다. 그는 그 향기를 즐기며 눈을 감았다. 연인의 손이 조심스레 머리를 쓰다듬었다.
“혹시 괜찮으시면 제가 가르쳐드릴까요?”
레널드는 자신의 목소리가 떨고 있는게 아닌지 확인해야했다. 다행히도 평상시와는 다름없어보여서 그나마 안도했다. 한층 내려가있던 검은 고양이의 귀가 다시 위로 솟아올랐다.
“응? 아저씨 총 잘 쏴?”
“적어도 그쪽보다는 쏘겠죠. 저도 나름 훈련은 받았으니까요.”
알렉스는 초록색 악마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진짜냐는 눈빛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변호사님 사격실력은 알아주죠. 저도 놀란 적이 있답니다.”
“마이클씨, 그렇게 말하시면... 혹시 다음주 주말에 쉬신다면 같이 가겠어요?”
레널드는 그 말을 내뱉고나서 찬물을 연거푸 들이켰다. 같이, 라는 단어를 말하기까지 상당히 속이 탔던 모양이었다. 알렉스는 그답지 않게 고민하는 눈치였다. 그가 마이클을 향해 흘깃거리자, 중년의 악마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난 다음주에 아들들이랑 같이 캠핑갈겁니다. 두분이서 다녀오시죠.”
“...그럼 좋아. 뭐 같이 가달라는데 가줘야지.”
대답과 함께 검은 꼬리 끝이 살랑살랑 흔들리는 모습에 레널드의 입가에도 얕게 미소가 어렸다.
'기타 > DOOMSDAY CIT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알렉스레니 _ 어슴푸레 짙은 下 (0) | 2017.08.01 |
---|---|
알렉스레니 _ 어슴푸레 짙은 上 (0) | 2017.07.29 |
알렉스레니 _ 징크스 (0) | 2017.06.20 |
알렉스레니 _ 너의 어린, 12 (0) | 2017.05.30 |
알렉스레니 _ 왕의 사진 (3) | 2017.05.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