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ANDALIEN
알렉스레니 _ 너의 어린, 12 본문
따사로운 햇빛을 맞닥뜨리자 검은 고양이의 입에서 절로 하품이 터져나왔다. 그 모습에 맥켄지는 커피가 든 종이컵을 내밀었다. 커피머신에서 내린 싸구려 커피맛에 질색하면서도 알렉스는 커피를 들이키고는 다시 블라인드를 펼쳤다. 방안에 위치한 커다란 모니터에는 은행의 전경이 담겨져 있었다. 맥은 다시 영상을 앞으로 돌렸다. 복면을 쓴 남자들이 헐레벌떡 뒷걸음질을 치며 은행으로 들어갔다.
알렉스는 정지버튼을 누르고는 입을 열었다.
“나 서류심사 합격했대.”
“어, 거기서 좀 더 뒤로... 뭐라고? 네가? 그 알렉산드로 토레스가?!”
맥은 시선은 화면에 집중한 채 소리쳤다. 혹시나 했지만 정말로 통과가 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 말이 생각보다는 불쾌했는지 알렉스는 입을 삐죽이 내민 채로 되감기 버튼을 눌렀다. 오른편 상단에 있는 숫자가 점점 줄어든다. 방금 전 은행으로 들어갔던 남자들이 이제는 뒷걸음을 치며 은행에서 나왔다.
“무슨 뜻인지는 알지만 너무 섭섭하잖아. 나한테 결격사유가 어딨다고.”
“뭐, 아직 서류 단계니까 못잡아 낸 것 같지만... 응, 거기서 정지해. 이번 것도 차량 종류가 달라졌네. 레널드씨도 알아?”
“응? 아... 응, 알고 있어. 받았을 때 같이 있었거든.”
“반응은? 맞아, 거기서 좀 더 클로즈업해봐.... 차량번호좀 찾아볼게...”
맥은 급히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그는 역시나 도난차량이라고 말하며, 자동차의 이동경로를 따지기 시작했다.
“그냥 그랬어. 그 전에 어떤 이상한 놈이 아저씨에게 시비를 걸었거든. 왠 미친 놈이었는지 계속 달라붙다가 결국은 욕하더라고. 그래서 그거 진정시킨다고 밥도 못먹고.. 그냥 집에 있었지.”
“집에?”
알렉스는 미지근한 커피를 다시 들이켰다. 맥에게라면 말해도 상관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레널드와 연인이 된 이후로 아무에게도 관계를 털어놓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애당초 둘의 미묘한, 즉 친구 이상 연인 미만의 관계를 알고 있던 이들이라면 괜찮을 것 같았다. 게다가 맥과는 이런저런 일로 상담까지 하는 관계가 아닌가. 하지만 아저씨는 그다지 달갑게 여기지 않을게 뻔하니 대놓고 커밍아웃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응, 요즘 우리집에서 살고 있거든. 계속 집으로 안돌아가네.”
그 말에 맥의 손가락이 멈췄다. 그는 의아한 눈으로 알렉스를 바라보다 얕게 웃음을 터뜨리고는 영상을 다시 재생하며 아직도 실마리가 나오지 않았다고 투덜거렸다. 알렉스는 화면 안에서 급하게 뛰어나오는 범인들에 시선을 집중했다. 얼핏 옷자락에 피가 묻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이번 사건에선 다행히 사망자는 나오진 않았지만, 대신 아들을 감싸려던 검은 고양이가 크게 다치고 말았다. 아마 저 피도 그 고양이의 것이겠지, 그는 피가 낭자하던 현장을 떠오르곤 고개를 내저었다.
“목격자가 있어. 손목을 봤다는데 빨간색 피부였대.”
알렉스를 혀를 찼다. 고작 나온 단서가 빨간색 악마라니, 이 도시에 붉은색 악마가 얼마나 많던가. 그는 그가 알고 있던 붉은 악마를 떠올렸다. 물론 그 허당 변호사라면 이런 일은 절대로 하지 않았을테지만.
수사는 진척을 보이지 않았다. 범인들은 경찰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수사망을 빠져나갔고 웬만한 증거도 남기지 않았다. 알렉스도 며칠동안 종족주의자들을 조사해봤지만, 역시나 잠입이 힘들어서인지-페터는 잠입만은 허락하지 않았다.- 증거를 찾을 수는 없었다. 그나마 용의자 리스트에서 붉은 악마만을 추려서 조사할 수 있단게 다행이긴 했지만. 그는 이번에야말로 잠입을 허락받겠다는 심정으로 모니터가 뚫어져라 영상에 집중했다. 벌써 세 번째였다. 네 번째는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레널드는 통화를 끊고서는 한숨을 내쉬었다. 증권가에 있는 친구 중 한명이 이상한 찌라시를 보았다고 메일을 보낸지 여섯시간만이었다. 그는 이미 차갑게 식어버린 커피를 마시고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는 얕게 웃음을 터뜨렸다. 솔직히 알렉스에게 감정을 가졌을때부터 각오한 일이 아니었던가. 게다가 이미 그와 검은 고양이의 친분을 알고 있는 시민들이라면 한두번은 의혹을 가졌을테다. 그건 자신의 형들도, 그리고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아버지는 이미 알고 있는걸지도 모른다. 그는 아들이 지난 일주일동안 거의 검은 고양이의 집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테니까.
그는 소파 아래에 앉아서는 뉴스사이트를 뒤졌다. 다행히 그가 부린 시민이 잘 처리했는지 찌라시는 찌라시로 사라진 모양이었다. 그 어느 곳에서도 헬하우스 인더스트리의 삼남이 실은 유성애자이며 검은 고양이를 애인으로 두고 있다는 기사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요즘 화제거리로 떠오른 뉴스는 단언코 초등학교에서 일어난 학교폭력에 관한 것이었다. 종족혐오와 성소수자혐오로 인해 일어난 늑대인간에 대한 학교폭력은 연일 매스컴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피해자들의 아버지는 계속해서 혐의를 부인했다. 초등학교는 할로윈협회와 유성애자단체의 시위 때문에 잠정 휴교했다. 그는 스콧의 담임교사였던 로날드 캐머런에 관한 기사를 보았다. 몰락한 지옥개 가문, 피를 깎는 노력, 대학 입학에서 좌절한 경험... 기자가 지옥개인지 아니면 종족주의자인지는 몰라도 제법 론에 대해서 동정적인 시각을 내비치고 있었다. 레널드는 허튼 소리라고 생각하며 창을 닫았다. 그의 성장배경이 아무리 불우하다 하더라도, 그게 선생으로서 학교폭력을 방치하는 정당한 이유가 될 수는 없었다.
‘아마...’
그는 다시 차가운 커피를 마시며 찌라시를 유포한 범인을 추측했다. 애당초 둘 사이에 그런 소문이 돌지 않은 것도 아니었지만, 이제야 본격적으로 돌기에는 뒤에서 등을 떠민 무언가가 있을게 뻔했다. 레널드는 자신을 둘러싼 악의에 쓴미소를 지으며 생각에 잠겼다. 자신이 아웃팅당하는 것은 생각보다는 견딜만했다. 회사에 큰 타격이 간다고 해도 그건 회사의 일일뿐, 오히려 아버지는 그것마저 이용하여 다시 재기할 시민이었다. 오히려 그가 걱정스러운 것은 자신과 같은 옷장에 있는 이였다. 유성애자, 하물며 지옥개와 관계를 가지는 검은 고양이. 모든 화살은 자신과 더불어 알렉스에게 향할 터였다. 그리고 그 강도는 자신에게 향하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될 것이다. 그는 자신이 헬하우스란걸 다행으로 여겼으면서도 그나큰 저주로 여겼다.
그나마 자신의 힘으로 어느정도 막는 것은 가능했다. 하지만 만약에 이 일이 공론화가 된다면- 레널드의 머릿속을 도망이란 단어가 어지럽게 떠다니며 헤집어댔다. 그는 실제로 인간계로 도망간 수많은 유성애자들을 떠올리며 고개를 숙였다.
-RRRRRRRRRR RRRRRRRRR-
집 전화가 울린 건 마침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때였다. 텔레비전 옆에 있었던 전화기 액정에는 연인의 전화번호가 아닌, 너무나도 익숙하지만 그랬기에 더더욱 경악스러운 번호가 찍혀져 있었다. 몇백년을 보았을 그 전화번호의 주인은 여전히 그에게는 불편한 영역에 위치해있었다.
Edward,
그는 당장에라도 어떻게 이 집의 번호를 알았느냐고 추궁하려던 마음을 다잡았다. 과연 전화를 받으면 형은 뭐라고 할까, 그게 무엇이든 오늘 떠돌았던 소문에 관한 것은 분명했다. 그는 자신을 향해 퍼부을, 경멸섞인 목소리를 기대하며 전화를 받았다.
테이블 위의 아버지는 매우 평온해보였다. 레널드는 저택에 발을 들일 때부터 마치 가시밭길을 걷는 기분이었지만 일부러 가족들 앞에서는 내색하지 않기로 했다. 새어나오는 비웃음을 참는 형들의 얼굴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것 같은 아버지의 얼굴을 보고 당황하기에는 상황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오랜만에 먹는 저택에서의 식사는 마치 돌이라도 씹는 듯한 기분이었다. 같이 저녁을 먹지 못해 미안하다는 문자를 보고 실망했을 연인의 모습이 떠올랐지만, 그래도 지금 알렉스가 먹고 있는 것이 자신이 먹고 있는 것보단 낫겠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적당하게 익은 스테이크도, 아쿠아파차도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긴장된 공기가 제 혀를 마비시키고 있는 기분이었다.
“입맛이 없니, 레널드?”
“아뇨, 괜찮아요.”
그는 억지로 당근을 입안에 집어넣으며 빈정거리며며 웃는 형들을 바라보았다. 에드워드가 와인을 들이키고선 큰 소리를 내며 내려놓자, 그에 맞췄는지 리바이가 입을 열었다.
“그러고보니 내가 오늘 이상한 소문을 들었는데 말이야, 아버지도 들으셨겠죠? 어느 모 회사의 지옥개 자제가 검은 고양이 애인을 두고 있다는 소문 말이에요. 그 이야길 듣고 얼마나 놀랐던지, 아무리 지금이 개방적이라고 하더라도... 그래도 검은 고양이라뇨, 차라리 지옥개였으면 나았을텐데.”
“차라리 지옥개라니, 난 지옥개여도 불편했을거야. 그렇지않니, 레니?”
에드워드의 말에 레널드는 싱긋 미소를 지어보였다. 역시 예상대로 형들이 갑자기 저녁을 먹자고 한 이유는 ‘그것‘이었던건가, 그는 똑같이 경멸어린 표정을 형들에게 돌려보냈다.
“아버지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전 딱히 애머릿이사가 불편하진 않았는데 말이죠.”
에드워드와 리바이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둘은 동생이 애머릿이사를 들고 일어설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 둘의 시선이 일제히 아버지에게로 향하자, 로날드 헬하우스는 살짝 놀랐다는 표정으로 셋째아들을 바라보다가 물을 마셨다.
“애머릿 이사는 상당히 능력이 좋은 편이지, 그가 유성애자란게 안타까울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만약 유성애자가 아니었다면 이미 다른 회사로 가 있었겠죠. 그랬기에 더더욱 그는 아버지께 충성할겁니다.”
늑대인간이자 유성애자인 애머릿을 기용한 것은 전적으로 로날드의 몫이었다. 그는 애머릿의 능력을 높게 샀기에 그 외 다른 것들은 전부 무시했다. 그랬기에 애머릿 또한 회사에 충성했다. 레널드는 가볍게 와인을 한모금 넘겼다. 그는 당황해하고 있는 형들에게 아버지의 의중을 정확히 보여주고 있었다. 능력만 있다면 어떤 단점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휘하로 끌어들인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아버지인 헬하우스 회장이 살아남은 방법이었다. 비록 그 전술이 자식들에게는 예외라는 점이 문제였지만, 레널드에게라면 충분히 적용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건 그렇지... 넌 어떻게 생각하니, 레널드?”
순간 레널드의 혀가 얼어붙었다. 아마 루머에 대한 소문은 아버지도 알고 있을 것이고, 그 소문이 사실이란 것도 알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사실대로 말하기엔 그 다음에 이어질 아버지의 반응이 무서운 것도 사실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커밍아웃을 재촉하는건지, 아니면 다른 답을 기대하는건지 파악하려고 애쓰다 다시 와인을 넘겼다. 어차피 아버지가 다 알고 있다면, 굳이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은 좋은 수가 아닌 것 같았다.
“어차피 곧 폐지될 법이에요. 조만간은 아니더라도 100년 안에는 없어질 법이라는데에 법조인들이 동의하고 있고요. 이미 유명무실한 법이니, 폐지되고나면 시민들의 시선도 조금은 변하겠죠. 이미 인간계에서는 그런 사례들도 있고요.”
“너무 자세히 아는 것 같은데.”
“이 정도는 상식선에서 알고 있어야 할 내용이야, 형. 그리고 유성애자 문제는 회사 차원에서도 상당히 현실적인 문제지. 전 아버지의 선택이 정치적으로도 옳았다고 생각해요. 애머릿이사를 기용한 것은 회사 이미지 차원에서도 큰 도움이 되었으니까요.”
자신을 추켜올리는 말에 로날드의 입에 미소가 어리다 급기야 웃음이 터져나왔다. 너무나도 오랜만에 보는 모습에 에드워드와 리바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하지만 아버지, 중장년층에선 아직도 반발이 심한 이야기에요. 그때도 주가가 내려가서 고생하셨잖아요.”
“결과적으로는 젊은 층의 신임을 얻게 되었잖아? 회사 이미지 차원에서 미래를 보는건 좋은 일이야, 리바이형.”
레널드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어렸다. 그는 승리를 확신하며 아버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로날드는 평온한 얼굴로 야채를 입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동생으로부터 무시받았기 때문일까, 리바이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그는 아버지가 있다는 것도 잊은 채, 당장에라도 내던지려는 양 컵을 잡았다. 레널드는 만약 리바이가 자신을 향해 잔을 던졌을 때 일어날 일을 생각했다. 식사자리는 엉망이 될 것이고, 자신은 피를 좀 보겠지만 그와 더불어 리바이에 대한 아버지의 평판도 수직낙하할 것이다. 레널드의 희미한 미소를 알지는 못했던지, 리바이는 분노어린 얼굴로 입을 열었다.
“레널드-”
“슬슬 이 이야기는 그만하자꾸나.”
리바이의 손목을 잡은 것은 로날드의 한마디였다. 그는 아버지의 살짝은 완고한 말투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이빨을 그득그득 갈며 접시로 시선을 집중했다. 그렇게나 미친 듯이 들떠있던 분위기가 저절로 가라앉는 모습을 보며 레널드는 다시 한번 로날드 헬하우스에 감탄했다. 헬하우스 인더스트리의 회장은 말 한마디, 손짓 하나만으로도 분위기를 바꾸는 재주가 있었다. 그건 선천적인걸수도 있고 아니면 피나는 훈련으로 말미암은 것인지도 몰랐다. 그는 아버지가 천천히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며 역시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두 형은 어떻게든 자신이 컨트롤할 자신이 있었다. 특히 리바이는 감정적이었기에 얼마든지 약점을 잡고 있었다.
에드워드와 리바이는 이미 둘의 관계를 알고 있다, 그리고 그걸 이용해서 레널드의 목을 죄려고 했지만 오히려 포승줄에 목이 걸린 것은 둘이었다. 둘의 동생은 교묘하게 형들의 목에 스스로는 벗어날 수 없는 밧줄을 건 상태였다. 물론 아버지도 그 사실은 알고 있으리라. 애초에 이사진들에게 자신을 소개시켜 그들의 사생활을 손에 쥐게 만든 건 다름아닌 아버지였다. 그 무수한 자료들, 약점들, 동태. 헬하우스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어떻게든 손에 쥐고 있어야 할 것들이었다.
“레너드 헬하우스!”
식사가 끝나고 개인 서재에 앉아 막 담배에 불을 붙이고나서였다. 레널드는 기껏 오랜만에 맛보는 시가를 형들이 방해한 것은 신경쓰지는 않던지, 재떨이에 시가를 올려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드워드와 리바이는 매우 성난 표정으로 서재안으로 들어오더니, 다짜고짜 레널드의 멱살을 잡아올렸다. 그는 에드워드에게 멱살이 잡히는 상황에서도 리바이가 하지 않은걸 다행으로 여겼다. 그의 둘째형은 레널드에 한해서 폭력적인 성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레널드는 에드워드의 푸른 눈을 지긋이 바라보며 담담이 말했다.
“...애초에 판을 벌린 건 형들이었어. 말을 할거면 차라리 직접적으로 말하는게 좋았잖아. 괜히 돌렸어. 아버지야 형들이 뭘 말하려고 했는지 알고 계셨겠지만.”
“너 감히-”
멱살이 더 올라간다. 그는 숨이 막히는 것을 느끼면서도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나도 내가 검은 고양이를 기르는 걸 부정하진 않아. 그렇다고 전화번호를 알아내는 건 도가 지나쳤어. 나도 나름대로 협박이란걸 했는데도 형들은 못알아들었지? 그래, 가령 모 이사가 비자금을 조성한 게 밖으로 나가려는걸 간신히 무마시켜준 것도 있고, 누구 때문에 감사자료에도 손을 댔었는데.”
재떨이에 시선을 집중하던 리바이의 표정이 하얗게 굳었다. 그 일은 언론에 터지기 전에 가까스로 레널드가 막아준 일이었다. 만약 그 일을 에드워드가 알게 된다면, 분명 그걸로 자신을 누르려할게 뻔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에드워드는 그 이사의 정체가 동생인지는 알지 못한 듯 했다. 오히려 감사자료를 조작했다는 내용에 멱살에서 손을 내려놓았다. 레널드는 셔츠의 칼라가 늘어나지는 않았는지 확인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러니까 나와 알렉스를 건드리지 말라는 소리야. 그리고 이사들 뒷꽁무니 따라다니며 뒤를 빨아준건 형들만이 아니란 뜻이기도 해.”
저속한 단어에 에드워드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하지만 레널드는 그런 사실은 괘념치도 않은 채 목소리를 높인채 답했다.
“레너드!”
“만약 나와 알렉스, 단 한 터럭이라도 건드린다면 누구의 귀에 어떤 정보가 들어갈지 기대해도 좋아! 누구의 귀에 들어가든 난 아무 상관없으니까. 알았으면 이만 돌아가줘.”
레널드는 다시 자리에 앉고서는 아예 둘을 신경도 쓰지 않겠다는 양 안경까지 썼다. 그리고는 정말로 형들을 무시하려고 했던지 아예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었다. 자신을 무시하려는 행태가 상당히 마음에 안 들었는지 리바이의 목소리가 심히 올라갔다. 그는 레널드가 쓰고 있던 안경을 바닥에 던지고는 소리쳤다.
“이 더러운 호모새끼가! 네가 그러는 거 매스컴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는 있는거지? 너뿐만 아니라 그 더러운 검은 고양이한테도-”
리바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레널드는 첫째형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는 경멸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에드워드 형, 혹시 리바이 형이 전년도에 비자금을 조성한 것 알고 있었어?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었는데 차명으로 만든거라- 우읍..!”
“그만해 리바이! 뭐하는 짓이야, 이게?!!”
에드워드는 셋째의 목을 조르려는 둘째를 간신히 떼어냈다. 날 말리지 말라고 그가 손사레를 쳤고, 덕분에 책상위에 있던 액자며 재떨이까지 바닥에 떨어졌다. 사기로 만들어진 재떨이가 산산조각이 났지만 리바이는 화가 풀리지 않은 것 같았다. 레널드는 갑작스레 들어온 공기에 맹렬히 기침을 하면서도 둘째형을 쏘아보았다.
“켁... 내 입을 막으려 해도 소용없어. 나라고 대비를 안한것도 아냐... 난 경고했어.”
레널드는 손가락으로 문을 가리켰다. 여태껏 보지 못했던 건방진 태도에 다시금 리바이의 머리에 열이 올랐다. 그는 레터나이프를 잡으려다가 형의 제지를 받으며 방 밖으로 끌려나갔다. 끌려나가면서도 그는 거친 말을 쏟아냈다.
“..가만 안둘거야, 너 이새끼!”
“리바이! 젠장!”
이윽고 문이 닫히고나서도 실랑이는 이어졌는지 둘이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레널드도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는 몸에서 힘을 풀 수 있었다. 그는 맹렬히 뛰는 심장을 간신히 진정시키며 한숨을 연거푸 내쉬고선 자리에서 일어났다. 리바이가 엉망으로 만들어버린 책상 위며 재떨이가 떨어진 자리며 정리할게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물론 이 곳에서는 자신이 치우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저 사용인을 불러서 처리하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그는 굳이 자리에서 일어나 액자와 재떨이가 떨어진 자리로 갔다. 꽤나 마음에 들어하던 재떨이는 이미 산산조각이 나 있었고, 액자는 거꾸로 뒤집혀서는 바닥에 지지하는 부분이 헐거워져 있었다. 그는 조심스레 액자를 들어올렸다. 액자의 유리는 깨지진 않았지만 산산히 금이 가 있었다. 몇 년 전에 찍었던 가족사진에는, 방금 전 소동이 말해주듯 하얀 실선들이 5명의 사이를 가르고 있었다.
레널드가 액자를 책상에 올려놓을 때에서야 에드워드가 한숨을 내쉬며 다시 서재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일련의 사태에 매우 지쳐보였고, 그랬기에 레널드도 그가 알렉스의 전화번호를 알아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방금 전보다는 차분한 표정으로 형제를 맞이할 수 있었다.
“리바이형은?”
“방에 집어넣고 감시하게 시켰어. 안 그럼 널 쏴죽일지도 모르잖아, 그놈이면 그것도 충분히 가능하겠지.”
레널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가 리바이 헬하우스의 피해자가 된게 어디 한두번 일이었던가. 하지만 그렇다고 제 앞에 서 있는 에드워드가 낫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그의 목을 죄이는 것은 어느쪽이든 똑같았다.
“리바이형 일 때문에 온거라면 그냥 가. 무슨 일이 터지기 전에는 아무것도 밖에 내놓을 생각이 없으니까.”
액자는 제대로 서지 않았다. 결국 레널드는 그걸 포기하고나서는 재떨이 조각을 집어 테이블에 올려놓을 수 있었다. 조각의 단면에는 날카롭게 날이 서 있었다. 그는 커다란 조각만을 올려놓고선 작은 조각을 포기하기로 하고는, 피지도 못하고 꺼져버린 시가를 마지막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차분하게 서류들을 가방에 넣기 시작했다.
“...또 그 검은 고양이한테 갈거냐? 요즘따라 집에 붙어있는 모습을 못봤는데?”
그 말에 레널드의 고개가 돌아간다. 그는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에드워드를 바라보고선 한숨을 내쉬었다.
“형. 우리 나이에 아버지네 집에서 살고 있다는게 더 말이 안되는거잖아.”
물론 그럴싸한 이유는 있었다. 그들은 자식을 갖지 않았기에 한 집안의 가장은 아니었고, 셋다 어떻게든 아버지의 눈에 들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이런 기묘한 행태가 이해가는 것은 아니었다. 에드워드도 이미 애저녁에 알고있었는지 지친 목소리로 답했다.
“...그건 어쩔 수 없지만... 그러면 어떻게 할건데? 아예 나갈거야? 네가 나가서 제대로 살 수 있을 것 같아?”
“적어도 아버지가 날 필요로 한다면 가능은 하겠지... 고마워, 아예 독립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딸각, 하는 소리와 함께 가방이 닫힌다. 레널드의 입가에 서글픈 미소가 어렸고, 반대로 에드워드의 눈은 경악으로 물들어갔다. 에드워드가 무슨 소리냐며 동생의 어깨를 붙잡으려 했지만, 그 전에 레널드의 동공이 먼저 떨려왔다. 그는 검은 고양이가 자신을 향해 보낸 문자를 확인하고 있었는데, 방금 전에 보낸 문자는 다른 것들과는 사뭇 내용이 달랐다.
-아저씨, 누가 날 때려서 나 지금 파출소에 있거든. 아마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으니까 집에서 기다려. Σ(´д`;)
알렉스가 살고 있는 곳은 그렇게 우범지역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완벽하게 안전한 곳도 아니었다. 지옥이 원래 그렇듯 몇몇의 폭력사건과 상해사건은 일어났고, 그때마다 경찰들이 나타나 그들을 경찰서든 파출소로든 데려갔다. 파출소는 알렉스의 집에서 걸어서 5분거리도 안되는 짧은 거리에 위치해있었는데, 레널드는 택시 속에서도 파출소가 어디있는지를 알아볼 수 있었다. 스포트라이트 등은 아주 화려하게 파출소 간판을 비추고 있었다.
심야의 파출소에는 술주정뱅이 몇이 뒹굴고 있었고, 순경들 또한 피곤함을 애써 숨기지 않은 채 일하고 있었다. 레널드가 그곳으로 달려갔을 때엔 역시나 익숙한 인영이 수갑을 찬 채 악마 순경의 옆에 앉아있었다.
“알렉스.”
그는 데스크에 몸을 기대고 서 있던 검은 고양이를 향해 달려갔다. 크게 다친 곳은 없는지 한쪽 뺨에 반창고를 붙인 것 말고는 크게 달라진 것도 없어보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레널드는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을 맛봐야 했다. 알렉스는 연인을 발견하자마자 손을 흔들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어떻게 된거야?”
“콜라나 사려고 편의점에 가는데 저 치가 갑자기 날 향해서 주먹질을 하더라고. 그래서 가볍게 업어치기했어. 아, 이건 그냥 올라가다가 넘어져서 그런거야, 걱정하지마.”
레널드는 알렉스를 공격했다는 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입가에서 술냄새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익숙한 얼굴의 지옥개, 그는 속에서 흘러나오는 분을 간신히 참은 채 코 부근이 하얀 지옥개를 향해 걸어갔다.
“안녕하세요, 캐머런씨.”
그득, 론은 이빨을 갈면서도 대답하지 않았다. 이렇게 붙잡힌 것이 상당히 큰 모멸감을 들게하는 모양이라 판단하며 레널드는 말을 이었다.
“보험회사로부터 전화는 받았을거라 생각합니다. 거기에 관해서는 제가 어떻게든 경감시킬수는 있지만 이렇게 나오신다면 저도 무리입니다. 증권가에 소문을 흘린 것도 캐머론씨였죠?”
“...이 더러운-”
“상황을 보아하니 현행범인 것 같은데요... 교육청에서 감사가 나온 상황에서 폭력사건까지 터지면 다시는 학교로 돌아가지 못할겁니다.”
론은 고개를 바짝 치켜들고는 레널드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도 몇 번이고 법정에 서봤던터라, 오히려 그런 날카로운 시선마저도 송뭉치로 때리는 것처럼 느꼈다.
“좋게좋게 가셔야죠, 가뜩이나 경제적으로도 어려우신 상황 아닙니까?”
빨간 줄이 그이던가 합의금을 내던가. 물론 레널드로서는 어느쪽으로든 가볍게 갈 생각은 없었지만, 사실 작은 쥐라도 궁지에 몰리면 눈앞에 있는 것을 무는 법이었다. 차라리 빚을 지는게 빨간 줄이 그이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하지만, 레널드는 알렉스를 바라보았다. 론을 조용히 시키려면 알렉스의 협조가 필요했지만, 그게 그로서는 석연치 않았다.
“왜 그래, 아저씨?”
“...아냐,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자. 저희는 이만 가봐도 되겠습니까?”
순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갑작스런 폭력사건에 매우 지쳐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피의자가 지옥개가 아닌가.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리고 캐머런씨, 내일 다시 연락하죠.”
레널드는 순경을 향해 가볍게 목례한 뒤, 알렉스의 팔을 잡았다. 그리고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캐머런을 흘깃 보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알렉스는 집에 들어가자마자 껴안는 자신의 연인을 달래야했다. 등에서 느껴지는 심장고동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일단은 신발부터 벗고 이 순간을 즐기고 싶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레널드는 현관에서 벗어나자마자 언제 붙어있었다는지, 태연하게 소파에 앉아서는 알렉스를 기다렸다.
“미안, 아저씨. 많이 걱정했어? 그렇지만 정말로 안 다쳤다니까, 정말 페터가 날 굴린게 이렇게 고마운 날도 없었을거야.”
“...놀랐잖니. 정말로.”
알렉스가 미지근한 물을 가져다주고나서도 레널드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다 나때문이야, 내가 진작에 수를 더 써야 했어.”
“아저씨가 그렇게 말하면 무서워. 그나저나 누구야? 아는 시민이야? 도대체 왜 아저씨한테 저러는거야?”
레널드는 론이 자신의 차를 박살냈으며, 스콧의 담임교사로서 폭력을 방관한 인물이라 소개했다. 그 말을 다 듣고나자 알렉스의 입에서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정말 엄청난 악역이잖아.”
“...그리고 오늘 친구한테서 연락이 왔었어. 증권가에서 이상한 찌라시가 나돈다고. 너와 내 얘기였는데, 갑작스레 퍼진걸 봐서는 아마 그 시민이 했을 가능성이 높아.”
“그래서?”
알렉스는 잔을 내려놓고 레널드의 옆에 앉았다. 소문이라니, 그는 레널드가 형제들의 소문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조치는 해놨어, 그리고 너무 뭉숭그레 말한터라 우리를 모르는 시민들은 누군지도 모를거야.... 그런데 형들이 알아버렸어.”
레널드는 한숨을 내쉬고는 연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알렉스는 매우 놀란 표정으로 있었다.
“아저씨, 그건-”
“그것 때문에 잠시 집에 다녀온거야....”
레널드는 차마 다음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그는 형들을 협박했노라고, 그렇게 해서라도 너와 함께 있고 싶었다고 말할 수 없었다. 이미 금이 가버린 유리를 원래대로 돌릴 수 없는 것처럼, 그들의 관계가 그렇게 되어버렸다는걸 제 입으로 꺼내 확인사살할 수는 없었다. 그는 제 머리를 감싸고는 얕게 한숨을 내쉬었다. 간신히 행복을 손에 쥐었다고 생각했건만, 그에게는 넘어야 할 산이 너무나도 많았고 또 너무나도 높았다.
“....이대로 도망가버릴까.”
평소라면 하지도 않았을 소리에 알렉스는 조심스럽게 연인의 어깨를 토닥였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마, 레오를 두고 어딜 가겠다고.”
“그건 그러네.”
그는 등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미소지었다. 알렉스는 매우 불편한 자세로 레널드를 거의 넘어뜨리려는 것처럼 안고 있었는데, 결국 레널드는 견디다못해 허리를 펴서 연인을 쫓아내야 했다. 몇분만에 본 알렉스의 귀는 축 쳐져있었다. 그는 억지로 귀를 세우려다 결국 코를 맞추었다. 말캉하면서도 축축한 감촉을 즐기고나서야 검은 귀가 위로 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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