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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모님 리퀘 _ 알렉스레니 _ 나의 끔찍한 본문

기타/DOOMSDAY CITY

카모님 리퀘 _ 알렉스레니 _ 나의 끔찍한

rabbitvaseline 2018. 8. 11. 21:52


 

감사를 앞두고 오늘도 헬하우스 인더스트리는 분주했다. 평소처럼 잘 지나가기를 빌며 아침 점심 저녁 야참까지 먹는 법무팀이었지만, 특히 그 중에서도 분쟁전담인 레널드 헬하우스만큼 바쁜 이도 없었을 것이다. 그는 툭하면 수면실과 집과 사무실을 드나들며 일했는데, 전에 맡았던 노사소송건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간신히 야참을 피하고 퇴근하는 동료가 사무실 문을 두드리며 얼굴을 내비쳤다. 수고하세요, 자신도 지쳤건만 일부러 인사를 해주는 친절함에 레널드도 쓴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문이 닫히자 그는 일단 스트레칭을 하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오른쪽에도 서류, 왼쪽에도 서류가 쌓여있었고 앞에 있는 노트북에는 여전히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하아...”

그는 깊게 한숨을 내쉬고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군청빛 하늘위로 이빨모양으로 만월이 떠 있었다. 5년전이었던가, 한달동안 제대로 집에 드나들지도 못한 채 일하는건 꽤나 오랜만이었다. 그는 연인의 유혹에 넘어가 디즈니랜드로 놀러갔던 두달전의 자신을 탓하며 안경을 썼다. 부디 오늘은 수면실에서 안 자길 바라며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을까, 익숙한 알람소리가 핸드폰에서 울렸다. 알렉산드로 토레스가 사진을 무슨 파일을 보낸 모양이었다.

도대체...”

그렇게 바쁘다고 얘기했건만 알렉스는 틈틈이 레널드에게 문자나 사진, 영상을 보내곤 했다. 익살스러워 웃음이 지어지는 것들도 있었지만, 왜 이런것들을 보내나 싶은 것들도 있었다. 특히 저번에 보냈던 공중에서 계단걷기는 왜 하는지 도저히 이해를 못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손가락은 핸드폰으로 향하고 있었다. 알렉스가 그렇게나 많이 연락을 했던만큼 그 또한 연인을 매우 그리워하고 있었다. 일주일전에 같이 급하게 점심먹은 것 말고는 얼굴을 볼 틈도 없었으니 그가 아무 고민도 없이 문자를 확인한건 당연했다.

그리고 그 커다란 화면에 사진 하나가 뜨자 그는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고는 다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히며 이런 사진이나 보낸 알렉스에게 화를 냈다.

그의 사랑스러운 검은 고양이가 보낸 사진은 남이 보면 그냥 일반적인 전신사진이었다. 하얀 셔츠과 검은 정장바지를 입은 검은 고양이, 다만 일반인과 다른 점이 있다면 가슴밑과 양쪽 어깨에 걸려있는 검은 가죽끈이었다. 어깨 밑에는 평소에는 잘 쓰지 않는다는 총이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런 벨트는 왼쪽 허벅지에도 채워져 있었다. 검은 하네스 위로 알렉스의 봉긋한 가슴과 넓은 어깨가 더욱 부각되는 것 같았다. 무심코 시선이 가슴으로 향했단걸 알아챈 레널드는 그제야 스크롤을 내려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한번 빌려봤어. 아저씨, 이런거 좋지?

그는 차마 그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 잡지들을 들켰던 건 사진을 확인하기 약 1년 전이었다. 둘은 이미 오래된 연인이었고 서로를 사랑하고 있었지만 그 방법이 조금 달랐다. 레널드도 그걸 잘 알고 있었기에, 일부러 연인이 오는 날에는 더욱 더 잡지들을 서재에서도 가장 깊은 곳에 숨기곤 했다. 문제라고 한다면 이 장난꾸러기 검은 고양이는 비밀장소를 알아내는 법을 훈련받았단 것이고, 이미 사전에 서재의 이용을 허락받았다는 점이었다.

레널드는 소파에 누워서는 알렉스가 갖고 왔던 게임을 하고 있었다. 단순한 레이싱 게임이지만 그의 손에는 아직도 게임패드가 낯설었는지 차는 계속해서 코스 내에서 빙빙 돌기만 했다. 알렉스는 오랜만에 책을 읽어보겠노라고 서재에서 책을 찾고 있었다. 아니, 그랬어야 할 터였다. 하지만 그 장난꾸러기가 서재에서 들고나온 것은 흔히 즐겨읽곤 하던 스릴러나 범죄소설이 아니었다. A4사이즈에 얇은 잡지 몇권을 자랑스레 들고 나와서는 이제 막 1바퀴를 다 돌려던 레널드의 앞에 다짜고짜 펼쳤다.

물론 평소였다면 무슨 일이냐고 화를 냈겠지만 레널드는 제 눈앞에 비친 광경에 차마 숨조차 내뱉을 수 없었다.

아저씨가 숨기고 있던게 이런거였어? 진작에 말하지!”

밧줄에 팔과 다리가 묶이고 입에는 재갈까지 물린 헐벗은 인간남자가 침대위에서 눈물을 글썽거리며 누워있는 사진에 순간 그의 뇌가 정지했다. 서랍의 자물쇠를 어떻게 풀었냐고 물을 새도 없었다. 레널드는 급히 게임기 패드를 내려놓은 다음에 연인으로부터 잡지들을 빼앗고는 안방으로 들어가 아예 금고안에다 넣어버렸다. 물론 그새 나머지 권들을 또 빼내어 알렉스가 준비해놓고 있었지만 말이다.

텔레비전 화면에서는 BGM과 함께 경기가 끝났고 게임을 다시 시작하라는 화면이 떠올랐지만 레널드의 시선은 다른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표지였다. 목과 허리 사이로 갈래갈래로 검은 가죽끈이 엮어 인간 남자의 가슴을 부각시키고 있었다. 그 옆에는 영어로 낯뜨거운 구절들이 씌어져있었다.

레널드는 아무 말 없이 연인의 손에서 잡지를 낚아채고는 아예 라이터로 끝에 불을 지피려고 했다. 그제야 상황의 심각성을 알아챈 알렉스 덕에 스프링클러가 터지는 일은 막았지만, 그 날의 기억은 아직도 그의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버렸다.

그때 알렉스가 발견한 잡지는 흔히들 말하는 포르노 잡지였다. 인간계에서도 암암리에 구할 수 있다는, 상당히 과격한 게이 포르노잡지였는데 그걸 레널드의 서재에서 발견한 것이다. 알렉스가 성욕이 있는 유성애자라도 그는 그 잡지를 밝힐 생각이 없었다. 그건 유성애가 보편적인 인간들의 기준에서도 약간 특이한 성벽이었으니 말이다. 옭아맨 밧줄이나 하네스 사이로 튀어나온 살덩이나 그 사이로 흐르는 촉촉하게 젖은 근육같은게 페티쉬라고 어떻게 상대방에게 말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욕구를 참다가 일에 지장을 주는 것도 취향은 아니라서 일부러 서재에 숨겨놓고서는 아주 가끔씩 찾아보곤 하는 정도였다.

 

그는 알렉스가 보내온 사진을 다시 한번 흘끔 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예전 알렉스가 애인들로부터 끔찍하다, 라는 평을 들은 적이 있다고 하던게 다시 생각났다. 성욕이 없는 유성애자들은 지옥에도 많았지만 알렉스는 그 중에서도 특이한 부류에 속했다. 섹스에 별 거부감을 갖지 않았고 무엇보다 스킨쉽을 좋아해서, 상대방 입장에서는 섹스를 하고 싶게 만들었다. 그래서 레널드의 입에서도 저절로 끔찍하다, 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는 이 유성애자가 자신을 놀리려는 의도로 저런 성적인 의도를 가진 사진을 찍었다는게 끔찍했다. 그는 갤러리를 닫고는 곧바로 알렉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 일부러 보낸거지?”

-“괜찮지 않아? 이거 아예 하루 빌리기로 했거든? 아예 사무실에까지 찾아갈까?”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여긴 회사 안이라고.”

웃음기섞인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다. 자신이 그런 말을 꺼낸 의도가 들킨 것 같았다.

-“큭큭, 아저씨.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한거야? 내가 아저씨 사무실에 찾아간 게 한두번도 아니고. 아님 내가 이 차림으로 뭘 해줬으면 좋겠어? CCTV는 어떻게 손을 볼 수 있으니까... 아니면 저번에 그 소설에서처럼 책상 밑으로 들어가서-”

-“말이 되는 소리를 해!!!!”

갑작스레 터져나온 고함이 사무실 안을 울렸다. 레널드는 급히 주변을 돌아보고선 안도했다. 모두들 퇴근한 저녁인게 정말이지 천만다행이었다. 책상 밑이라니, 그는 어떻게든 그 밑을 보고싶은 충동을 참고자 눈을 감았지만 오히려 떠오른 건, 지난번 알렉스가 해주었던 서비스였다. 입에서 나지막히 욕지거리가 저절로 튀어나왔다.

-“헤에... 아저씨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알겠어. 그치만 사무실은 죽어도 안되겠지? 아버지 회사니까 들키면 또 문제고, 그럼 빨리 퇴근하면 되잖아.”

이게 의도였나, 장난기섞인 목소리는 어서 빨리 자신이 보고 싶다는걸 어필하고 있었다. 빨리 아저씨 털을 그루밍하고 싶어, 라는 뜻이 섞인 목소리에 레널드는 주변에 있던 서류들을 보았다. 만약 지금 퇴근하면 적어도 사흘은 아예 회사 밖으로 나가지 못할 것이다.

정말.... 끔찍해.”

안타깝게도 이 끔찍하다는 소리는 괴롭히기 좋아하는 알렉스에게는 칭찬이었다. 웃음소리가 터져나오더니 이제 알았어? 라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너무 끔찍해서 레널드는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그는 행여나 서류탑이 쓰러질라 자리에서 일어나고는 그중에서 중요한 목록과 노트북을 챙겼다.

가면 네 손목이랑 목을 끈으로 매달아버릴거야.”

-“히익, 아저씨 그런 것도 취향이었어? 그럼 바지 지퍼는 이로 내려야겠네?”

그 광경을 상상하자 피가 아래로 쏠리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자극적이었다. 레널드는 더더욱 급히 짐을 챙기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는 와중에도 이어폰은 귀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아저씨가 그런 말 할 줄 알고 목줄도 일단은 사왔는데-”

-“샌디, 너 정말!”

그는 곧바로 전화를 끊고는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행히도 복도 안은 어두웠고 경비원말고는 다른 시민들도 보이지 않았다. 그걸 다행으로 여기며, 결국은 튀어나와버린 앞섶을 가방으로 교묘히 가리며 그는 간신히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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