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알렉스레니 (37)
CATANDALIEN
뉴욕의 크리스마스란 축제는 꽤나 화려하고 활기찼다. 거리 곳곳에는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캐롤이 매우 시끄럽게-그들의 기준에서는- 울렸고, 간간이 빨간 옷과 하얀 가짜수염을 붙인 사내가 호호호, 하고 웃으며 돌아다니는 걸 볼 수 있었다. 가게란 가게마다 창문에 화려한 장식을 붙였고, 가로수들에게는 꼬마전구가 달려, 마치 불이 난 것처럼 반짝거렸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지옥의 시민 둘의 눈을 사로잡을만한걸 고르자면, 아무래도 홀리데이 마켓과 록펠러센터의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였다. 비록 점등식을 보지는 못했지만, 한눈에 담기도 어려울 정도로 커다란 삼나무에 여러 장식들을 화려하게 단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인간들의 분위기 또한 화려하게 빛나는 트리처럼 매우 들떠있었다.그리고 그 중심에 크리스마스라고는 ..
알렉산드로 토레스의 집에는 분명 계약할 당시에는 서재였지만, 지금은 잡동사니가 한가득 채워져 있는 창고같은 방이 있다. 워낙 정리에 담쌓고 지내는 주인덕분에 쓰지 않는 물건들을 쳐박아두는 용도로 전락해버렸는데, 덕분에 원래 창고보다도 더 혼잡스러운 신세를 면치 못하였다. 거미가 집을 치고, 언젠가 해골개를 기르겠다며 난리법석을 떨었다가 짐덩어리가 되어버린 개집이며 여러 잡동사니들이 방 이곳저곳에 널려 있었다. 당연히 먼지도 한가득이라, 꼬리라도 바닥에 닿을라치면 바닥에서 하얗게 일어나 재채기를 유발하곤 하였다. 처음 서재를 손님방으로 꾸미겠다는 말에 레널드는 고개를 저으며 대놓고 미련한 일이라고 말하였다. 알렉스도 그것은 인정하였지만, 그의 집에서 채광과 통풍이 잘 되는 방은 침실과 이 방이 전부였다. ..
꽤나 규모가 작지만 근처에서는 유명하다는 레스토랑에 들어서자마자 보인 것은, 레널드의 하나뿐인 동생이자 헬하우스가의 망나니이자 유일한 후계자인 레온 헬하우스가 메뉴판에 코를 박고 무언가를 열심히 고르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옆에는 레온의 크고 하얀 아들이 쭈뼛거리고 초조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가뜩이나 자신을 향한 시선들에 주눅이 들어있던, 아직 이름이 없는-물론 할아버지에게는 비밀이라 언제 이름이 생길지는 모르나- 이 하얀 지옥개는 알렉스와 제 삼촌이 온 것을 알아차리자마자 몸을 움츠렸다. 아이-아직 태어난 지 1년이 갓 넘었기 때문에-는 삼촌의 친구라는 검은 고양이를 상당히 꺼려했다. 이유는 간단했으니 알렉산드로 토레스는 평소에는 주변에서 찾아보지 못할 이 하얀 지옥개를 삼촌의 몫만큼 귀여..
부스락거리며 몰래 움직이려는 움직임이 느껴졌다. 그는 나른하게 늘어진 눈을 간신히 반쯤 뜨고는 동공을 확장하며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무언가를 포착하려고 애썼다. 셔츠를 옷걸이에서 빼려는 모습을 보아하니 '또' 집안에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었다. 하늘에서는 막 여명이 올라오고 있었다. 협탁 위에 올려있던 검은 개의 스마트폰 액정이 쉴새없이 들어오는 문자로 반짝거렸다. 집안에서, 혹은 그와 함께 일하는 변호사들이 끊임없이 자신들의 가족, 동료를 부르고 있었다. 알렉스는 몇번 눈을 뜨고 감다가, 이렇게 도둑처럼 몰래 나가려는 것이 웃기고 가찮기까지 해서 몰래 침대 밑에 떨어져있던 그의 양말벨트를 집어올려 품에 안았다. 그는 자신의 연인이 이 우스꽝스러운 물건을 하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매번 양말을 벗길..
오늘 하루도 힘들었다고 자축하며 검은 고양이는 손잡이에 열쇠를 꽂아넣었다. 직장동료는 제 자식자랑에 여념이 없었고 그는 그것에 시달리며 지겹게 자판만 두드려댔었다.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열쇠를 돌려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면 곧바로 주홍빛이 섞인 석양이 그를 반기리라 믿었지만, 애석하게도 그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그야말로 어둠 뿐이었다. 물론 그는 검은 고양이이니 어둠속에서도 자유자재로 돌아다니고 고요한 방에서 들려오는 소리도 파악할 수 있었지만,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다. 검은 고양이, 알렉산드로 토레스의 집에 허락없이 들어와도 되는 시민은 오직 한명뿐이었고, 그 시민은 가끔 이렇게 거실을 어둡게 하고는 소파 위에 널부러져 토막잠을 자곤 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더운공기와 함께 거실에서 풍겨오..
타앙, 총알이 두개골을 꿰뚫는다. 총성은 몇번이고 계속되었다. 타는 듯한 고통과 함께 눈앞이 컴컴해지다가 다시 밝아졌다. 다행히도 품안에 품고 있던 태블릿은 무사했다. 다시 탕, 날카로운 목소리들이 등 뒤로 무어라 소리를 친다. 검은 고양이는 목숨이 몇개더라? 다시 탕, 탕, 탕. 몇번이고 정신을 차리다가도 이내 꺼졌다. 숨은 터져나오지 않았다. 아니, 그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머리의 절반이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눈앞에서 흐르는 피와 뇌수마저도 그는 알아차릴 수 없었다. 그 상태에서 탕, 이번에는 간신히 뛰고 있던 심장이었다. 이제 뼛조각과 뒤섞여있던 뇌수에 다시 총질을 한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검은 고양이의 시체가 자리에 남았다. 타앙, 목재에 못을 박는 소리다. 하..
꽤나 어린 시절, 기숙학교에 있었을 무렵 물에 빠진 적이 있었다. 기숙학교가 있던 곳은 겨울이 길었고 그만큼 여름이 짧았다. 울창한 침엽수림 사이에 위치했고 도시로 가려면 차로 너댓시간은 달려야 할 정도의 외딴 곳이었다. 우리는 스스로 감옥이라 부르며 거대한 숲에 갇힌 자신들을 비웃곤 하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학기에 한두명씩은 탈주하는 시민이 나오곤 하였다. 그들은 자유를 찾아 도시로 떠났지만 몇몇은 거대한 숲이라는 마물에 가로막혀 곧바로 교사들에게 발견되었고, 몇몇은 눈앞도 보이지 않을 눈보라를 헤치다가 시체가 되었으며, 아주 극소수만이 탈주에 성공하였지만 곧 그들의 부모에게 사로잡혔다. 휴대전화도 가지지 못할 정도로 보수적이고 엄격했기에 우리들이 가질 수 있는 여가거리라고는 스포츠와 낚시, 책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