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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레니 _ Drowning 본문

기타/DOOMSDAY CITY

알렉스레니 _ Drowning

rabbitvaseline 2016. 8. 8. 00:25









꽤나 어린 시절, 기숙학교에 있었을 무렵 물에 빠진 적이 있었다. 기숙학교가 있던 곳은 겨울이 길었고 그만큼 여름이 짧았다. 울창한 침엽수림 사이에 위치했고 도시로 가려면 차로 너댓시간은 달려야 할 정도의 외딴 곳이었다. 우리는 스스로 감옥이라 부르며 거대한 숲에 갇힌 자신들을 비웃곤 하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학기에 한두명씩은 탈주하는 시민이 나오곤 하였다. 그들은 자유를 찾아 도시로 떠났지만 몇몇은 거대한 숲이라는 마물에 가로막혀 곧바로 교사들에게 발견되었고, 몇몇은 눈앞도 보이지 않을 눈보라를 헤치다가 시체가 되었으며, 아주 극소수만이 탈주에 성공하였지만 곧 그들의 부모에게 사로잡혔다. 휴대전화도 가지지 못할 정도로 보수적이고 엄격했기에 우리들이 가질 수 있는 여가거리라고는 스포츠와 낚시, 책을 읽는 것이 전부였다. 진흙탕에서 럭비를 하다가 지겨워지면 근처에 있던 호수에서 단체로 수영시합을 하였고, 가끔은 숲지기로부터 300년은 되었다는 낡은 배를 빌려 낚시를 하곤 했다. 겨울에는 호수 표면이 얼어붙었기 때문에 사감으로부터 드릴을 빌려 빙판낚시를 하거나 스케이트를 탔고, 눈이 녹는 봄이 되면 몇몇 뜻맞는 친구들과 함께 낚싯대를 들고는 호수로 향했다. 그 날은 봄이기는 하나 이제 막 빙판이 녹은, 초봄의 어느 날이었다. 숲지기가 빌려준 배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그날따라 더 낡아보였다. 하지만 언제나 낡은 배였기에 우리는 끼긱거리는, 낡은 나뭇배의 비명소리를 평소처럼 무시하고는 배에 올라탔다. 배에는 나와 악마친구 두명이 탔다. 그다지 넓지 않은 호수 중앙까지 노를 저어가면, 아직까지도 차갑고 건조하지만 햇빛을 담은 바람이 스쳐지나가곤 했다. 하늘은 파랬고 구름 몇점만이 떠다니고 있었다. 아직까지도 녹지 않은 눈이 몇몇 나무들 위로 보였지만, 저것들도 곧 녹을 것이라 생각하며 유난히 힘이 셌던 친구는 노를 저었다. 빠직, 하는 소리와 함께 갑작스레 배가 침몰한 것은 한순간이었다. 나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도 못한채 배의 난간을 붙잡다가 이내 물에 빠져들었다. 시야에서 친구들이 갑작스레 사라지고 동시에 잿빛속으로 그렇게 빠져들었다. 겨울이 막 지난터라 물은 매우 차가웠고 덕분에 팔다리는 굳어져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몇번을 허우적대며 물을 마셨다. 얼굴은 계속해서 수면을 넘나들었다. 수면위로 친구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욱 자신을 무섭게 하였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팔과 다리를 움직이다 도저히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지치고나서야 내 몸은 저항을 그만두었다. 그 다음은 간단명료했다. 차가운 호수의 여신은 내 발을 계속해서 아래로 아래로 끌어당겼다. 이미 폐에까지 물이 가득찼던 터라 내 입가에서는 거품 한점마저 나오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눈을 뜬 채로, 수면에 어른거리는 햇빛을 하나하나 세면서 그렇게 천천히 가라앉았다.


마치 그런 느낌이었다. 레너드 헬하우스가 가까스로 숨을 토해낸 것은 알렉산드로 토레스의 생사가 확인되었던 순간이었다. 가까스로 3개의 목숨이 남았다는 기쁜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제서야 그는 젖은 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떨굴 수 있었다. 총성이 울리고나서 알렉스가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한 그 십몇분의 시간동안 그는 제대로 숨도 쉬지 못했었다. 안전벨트는 맬 새가 없었다. 그는 차에 시동을 켜자마자 곧바로 알렉스가 있을 클럽으로 달려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과속까지 해가며 운전했을 그 동안, 그의 심장은 미친듯이 요동쳤으며 머릿속은 하얗게 질려가고 있었다. 그는 그런 느낌을 잘 알고 있었다. 그건 마치 어린시절 물에 빠졌던, 그 순간과 매우 비슷했다. 무전기 너머로 들리던 총성이 계속해서 그의 머릿속을 채웠다. 

"샌디."

엑셀을 밟으면서 그는 무심코 검은 고양이의 애칭을 불렀다. 검은 고양이는 호쾌하게 웃음을 터뜨리며 제 목숨이 7개가 남았다고, 다른 고양이들보다도 많다며 자랑을 하곤 했었다. 그 말을 듣고 잠자코 넘어가서는 안되었는데, 고양이가 한순간에 한번만 죽는다는 보장도 없는데. 그는 알렉스가 가겠다고 말한 순간, 그를 믿으며 말리지 않은 저를 탓하였다. 그대로 보내서는 안되었다, 절대로 그대로 보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어떻게 주차하였는지는 기억에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반쯤 정신이 나간 채로 경찰들을 뚫고 지나갔다가 상황을 살폈다. 다행히도 건물 내부에서 총소리는 울리지 않았고, 밖으로 나오는 악마들도 없는걸 보면 그들은 이미 대피를 한 모양이었다. 그러면 샌디는 어디에 있는걸까, 경찰들이 분주히 움직이다가 시체상태의 알렉산드로 토레스를 찾았다. 그 찾았다고 말한 순간 머릿속의 모든 것이 휘발되는 것만 같았다. 오로지 검은색, 알렉스의 검은색만이 머릿속을 가득채우다 사그라들었다. 차마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다시금 심장은 산소를 요구하며 격렬하게 뛰었고 레너드 자신은 오로지 무전에 신경을 집중하며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의료팀이 시체의 상황을 확인하려 내려갔을 때에는 순간 다리의 힘이라도 빠질 뻔 했다. 그는 오로지 무전에 온 몸을 맡긴 채로, 그렇게 알렉산드로 페토스에게 숨이 막힌 채로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니 아직 검은 고양이의 목숨이 남아있다는 말에 숨을 터뜨린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안도감에 간신히 숨을 고르다 고개를 떨구었다. 그리고 고개를 떨군 순간, 갑작스레 어렸을 때 익사할뻔 했던 일을 떠올렸다. 자신을 구해준 것은 검은 고양이 숲지기였다. 그는 물을 싫어함에도 레너드 헬하우스를 구해주었다. 아쉽게도 그와 함께 있던 친구 둘은 루시퍼의 품으로 돌아가 시체가 되어 나타났다. 결국 그 숲지기는 아이들에게 잘못된 배를 빌려준 댓가로 3번을 부모들에게 죽고 숲에서 쫓겨났다. 마치 그 때처럼, 주마등마저 떠오르지 않았던 그 때처럼 숨이 막혀 질식할뻔 했다는 것을, 알렉산드로 토레스라는 검은 고양이가 자신을 죽일뻔 했다는 것을 그는 그제야 깨달았다.




알렉스는 총 17발을 피격당했다. 주로 두부에 가해졌기 때문에, 발견되었을 당시의 모습은 상당히 처참하여 그는 시체백에 담겨 옮겨져야 했다. 뇌수와 피가 뒤엉킨 사건현장사진을 본 것은 나중에 변호사로서 자료를 확인할 때였다. 머리의 절반이 무참히 날아갔기에 회복에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의사의 진단이 이어졌다. 회복이라기보다는 재생에 가까운 과정이었다. 날아간 부분들이 제자리를 찾고 피와 뼈, 뇌수와 두개골, 피부를 형성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었다. 의사는 그가 다시 되살아날 예상시간과 진단서를 레너드에게 건네주었고, 그 자료들은 알렉스가 확보한 자료들과 같이 라진스키 사건을 맡은 경찰과 검사들에게 넘어갔다. 명백한 증거들은 범인들과 종족차별주의자들의 목을 옭아매었다.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 차례차례 검검되는 범인들의 모습이 텔레비전에 비춰질때마다, 이유모를 슬픔과 환희가 안에서 솟구쳤다. 

알렉스의 머리에 총알을 내리꽂았던 악마가 검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나서는 그에게 하루빨리 전하고 싶어 병실로 달려가기도 했었다. 어느정도 두개골의 형태가 잡히자 알렉스는 일반병동으로 옮겨졌다. 특별히 레너드가 자신의 인맥을 이용하여 확보한 1인실이었다. 소독약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병실 내에서 알렉스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누워있었다. 평소 많이 뛰어서 고생이라던 심장이 뛰지 않는 시체인 채로, 다시 살아날 날만을 기다리며 그는 그 곳에 누워있었다. 레너드는 조심스레 자신이 사랑해마지 않던 검은 고양이의 볼을 살짝 쓰다듬다가 놀라고 말았다. 열이 많아서 감기에 걸린 것도 알아채기 힘들었던 알렉스의 피부는 마치 자신이 어렸을때 빠졌던 호수의 물처럼 너무나도 차가웠다. 생명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는 살갗에, 그제야 그는 제 앞에 누워있는 것이 시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온 몸이 뻣뻣하게 굳어있었고 얼굴에는 핏기가 돌지 않았다. 모든 부위가 재생되고 다시 루시퍼가 영혼을 불러들이고, 심장이 뛰어 피가 돌기 전까지는 이 검은 고양이는 계속해서 시체로 남아야 했다.

"샌디."

만약 이대로 영영 네가 깨어나지 않는다면, 영영 이대로 시체로 지내야 한다면. 검은 고양이의 차가운 살갗이 저를 짓누르며 질식하고 있다는 느낌에 그는 크게 쉼호흡을 해야 했다. 몇번이고 숨을 들이키고 내쉬고를 반복하고나서야 그에게 할 말을 전할 수 있었다.

"널 죽였던 그놈들을 찾았어."

그답지 않은 과격한 표현이었지만 상관없었다. 만약 알렉스가 살아있었다면 아저씨답지 않은 표현이라고 말했을테지만, 그는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시체로 제 앞에 누워있었다. 이건 레너드가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이미 자료들은 다 넘겨주었어, 널 죽였던거랑 라진스키를 죽인 걸로 그 클럽도 와해될거야. 샌디, 덕분에 모든게 다 끝났어."

유연하게 움직이곤 하던 손가락은 사후경직으로 뻣뻣해져있었다. 피가 돌지 않아 얼음장같이 차가운 그 손가락에 몇번이고 얼굴을 부빈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알렉스는 아마 시간이 지나면 깨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어째서 이렇게 숨이 막히는건지, 어째서 그때의 온기가 어렸던 손가락이 그립던건지 그는 알 수 없었다.

"사형까지는 못가더라도 몇백년은 안에서 썩게 할 수 있어, 아니 아예 못나오게 할거야. 그 자식들은 쓰레기니까 상관없어."

왜 이리 대답도 못하는 시체에게 말을 많이 하는지. 아마 알렉스가 살아있었더라면 평소와 다르다며 스마트폰이라도 들이댔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는 차마 주체할 수 없었다. 이 시체에게 무엇이라도 말을 꺼내야 했다. 그건 마치 물에 빠졌을때 허우적대던 몸짓과 닮아있었다.

"....도대체 언제 깰거니?"

제발 당장에라도 일어나서 왜 그렇게 시무룩한 표정이라고 말해줘, 그날 있었던 일들을 평소처럼 쫑알쫑알거리며 말해서 날 짜증나게 해줘, 그러다 귀를 축 늘어뜨려서 보다못한 내가 그 이야기를 더 듣게 해줘. 알렉스와 같이 하던 평온한 일상이 계속해서 그의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네가 좋아하던 음식들, 어지럽혀진 방들, 사무실에 쳐들어와 벌이곤 했던 도넛파티, 속상해할때마다 심장소리를 들려주며 안심시켜주었던 밤들, 그 모든 순간들이 그의 폐와 목과 심장을 마구 짓눌렀다. 그는 숨이 막혔다. 알렉산드로 토레스와 함께 했던 추억들 속에 빠져, 그는 차가운 시체의 손을 잡고 순간들 속에서 계속해서 말없이 허우적댔다.










처음으로 써본 알렉스레니. 라진스키 사건이 끝나고나서 알렉스가 깨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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