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ANDALIEN

알렉스레니 _ 너의 어린, 본문

기타/DOOMSDAY CITY

알렉스레니 _ 너의 어린,

rabbitvaseline 2016. 11. 6. 00:20



오늘 하루도 힘들었다고 자축하며 검은 고양이는 손잡이에 열쇠를 꽂아넣었다. 직장동료는 제 자식자랑에 여념이 없었고 그는 그것에 시달리며 지겹게 자판만 두드려댔었다.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열쇠를 돌려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면 곧바로 주홍빛이 섞인 석양이 그를 반기리라 믿었지만, 애석하게도 그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그야말로 어둠 뿐이었다. 물론 그는 검은 고양이이니 어둠속에서도 자유자재로 돌아다니고 고요한 방에서 들려오는 소리도 파악할 수 있었지만,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다. 검은 고양이, 알렉산드로 토레스의 집에 허락없이 들어와도 되는 시민은 오직 한명뿐이었고, 그 시민은 가끔 이렇게 거실을 어둡게 하고는 소파 위에 널부러져 토막잠을 자곤 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더운공기와 함께 거실에서 풍겨오는 향기는 그 시민이 일을 할때마다 뿌렸던 짙은 시트러스향 향수였다. 그는 행여나 소리가 날까 조심스레 문을 닫고선 신발을 벗었다. 그리곤 향기가 머물러있을 소파를 향해 조용히 걸어갔다. 새근거리는 일정한 호흡소리를 보건대, 역시나 거실을 이렇게나 어둡게 해놓고 침입자는 자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저씨, 알렉스는 조심스레 머리까지 담요를 뒤집어쓰고 셔츠차림을 자고 있는 검은 지옥개를 향해 속삭였다. 옷이 구겨지지 않도록 베스트와 자켓, 넥타이는 맞은편에 위치한 상자 위에 가지런히 개어져있다. 담요 밖으로 길다란 코만이 불쑥 튀어나온 모습이 은근히 웃겼기에, 이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야 하나 하고 생각했다가 빛이 없다는걸 알고는 포기하기로 했다. 아저씨, 조금 더 목소리를 높이자 지옥개의 입가에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저씨, 침대가서 자도 된댔잖아.”

담요속에서 무언가가 꼼지락거리더니 갑작스럽게 빛이 그 안에서 뿜어져나왔다. 지옥개는 담요속에서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한 다음에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조금 더... 샌디 5분만 있다 깨워줘.”

지옥개는 평소에는 부리지도 않을 투정을 부리고서는 머리끝까지 담요를 끌어올렸다. 알렉스는 이 상황을 핸드폰으로 녹화하지 않은 것을 크게 후회하고는 소파 머리맡 바닥에 앉았다. 그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레널드 헬하우스가 자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요즘들어 이 지옥개가 자신의 집에서 아주 짧게, 3시간여정도의 낮잠을 자고 가는 경우가 잦아졌다. 스스로도 보기 힘들어주겠다고 잔소리를 내뱉곤하던 엉망진창인 방에서 굳이 잠을 자는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었으나, 그가 요즘들어 두 형들 사이에 치여 여러 법적인 일들을 처리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대충 짐작은 갔다. 또 휘말린거겠지, 검은 고양이는 양손으로 턱을 받치고는 중간에 끼인 가련한 셋째를 바라보았다. 헬하우스 인더스트리의 권력싸움은 세간에서도 꽤나 유명했다. 권력싸움을 벌이는 첫째와 둘째, 망나니지만 태어나자마자 후계자로 결정된 막내, 그리고 가족에서 유리된 그. 레널드는 요즘들어 더욱 더 자신의 집을 불편해했다. 그리고 그건 잠자리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라도 쉬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이, 비록 검은 고양이인 자신의 개인영역을 침범하는 일일지라도 썩 보기 좋았다. 그만큼 자신을 믿어주고 있다는 반증일테니. 가끔씩 집에서 같이 식사를 하다가 그가 하품을 하기라도 하면, 침대에서 자라고 침실로 떠밀 때도 있었다. 물론 그 말에 레너드는 굳이 소파로 찾아가 잠을 청하곤 하였다. 그는 그런 배려도 꽤나 좋아했다. 알렉스의 아저씨는 과묵하지만 상당히 배려있고 착한 지옥개였다. 그가 여태껏 만났던 지옥개들 중, 이렇게나 이타적인 존재는 본 적이 없었다.

정확히 5분이 지나자마자 알렉스는 방안의 불을 켜고서는 크게 레널드를 불러댔다. 특별히 그를 위해 주문한 차광커튼을 걷고 그의 몸에 덮여있던 담요를 벗겨낸다. 지옥개는 눈이 부신지 몇 번 끙끙대다가 간신히 눈을 떴다. 알렉스보다도 명도가 낮은 검은색 털에 목 아래로 보이는 하얀 털, 축 처져 평소에도 피곤해보이는 처진 눈, 하얀털이 간간히 나 있는 눈썹이 보기좋게 석양 아래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적당히 경제적으로 관리한 몸이 소파에서 일어날 때엔, 이 말많은 검은 고양이도 하려던 말이 목 아래에서 막히곤 했다. 마치 예술품을 보는 눈으로, 경애를 담은 눈길로 바라보다 레널드가 입을 열면 그제야 표정을 풀고는 평소처럼 말많은 검은 고양이로 돌아갔다.

고마워, 샌디.”

아저씨, 내가 저번에도 침대에서 자라고 했잖아. 저번에 침대 새걸로 바꿔서 얼마나 좋아졌는지 알아? 여기서 자면 피곤할텐데, 내가 그래도 편하게 자겠다고 비싼 돈을 주고 산건데 아저씨도 거기서 자도 돼.”

레널드는 안경을 끼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친구사이라 해도 지켜야 할 도리가 있다고 말하며 능숙하게 소매를 접는 모습이란, 맙소사, 검은 고양이인 자신이 봐도 꽤나 멋있었다. 소매가 걷어질수록 결코 가늘지만은 않은 팔이 모습을 드러냈다. 레널드가 말을 이어나가기도 전에 알렉스는 즉시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그의 모습을 찍었다. 샌디, 그의 목소리가 살짝 더 높아졌지만 이 검은 고양이는 개의치 않다는 듯, 그 사진을 태연하게 자신의 컴퓨터로 전송까지 하였다.

내가 저번에도 말했지만 함부로 사진찍지마.”

하지만 이번은 꽤나 멋있게 나왔어, 꽤 괜찮게 나왔으니까 아저씨한테도 보여줄게.”

그리고 몇 번 손가락이 움직이더니 담요 밑에 있던 핸드폰으로 문자가 왔다는 소리가 울렸다. 그는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내저으며 담요 밑에 있던 핸드폰을 꺼내었다. 알렉산드로 토레스, 그와 막역지우라고까지 할 수 있을 정도로 친한 이 검은 고양이는 설사 죽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해야 직성이 풀렸다. 덕분에 그는 벌써 6번이나 목숨을 잃었다. 결국 알렉스는 레널드의 닦달에 사진을 삭제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하지만 레널드는 알렉스의 컴퓨터 클라우드에 자신의 사진이, 수백장이나 되는 동일시민의 사진이 담긴 파일에 더해질 것을 확신했다.

차라리 손님방을 만들까? 그럼 아저씨도 내 눈치보지 않고 거기서 자면 되잖아.”

굳이 나 하나 받겠다고 손님방을 만든다고?”

아저씨니까 충분해. 방이야 저기 창고방을 정리하면 될테고, 가구야 어차피 새로 사면 되지. 저번에 잠입했을 때 공로로 상금도 꽤나 많이 받았으니까. 그때 경찰서장이 날 보고 얼마나 놀랐던지, 다시는 이런 무모한 일을 하지 말라고 하더라고. 누구덕에 사건을 해결했는데-”

알렉스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지만 레널드는 몇 번 고개를 끄덕이고는 급히 욕실로 발길을 옮겼다. 대충 세수와 양치를 한 뒤에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나서야, 그는 알렉스의 말에 대답을 할 수 있었다.

네가 원한다면야, 나야 말릴 수 있겠어?”

알렉스는 능숙한 솜씨로 레널드에게 넥타이를 메어주었다. 자신은 언제나 편하게 티셔츠차림이었지만, 그를 상대하게 되면서 덩달아 솜씨가 늘어나버렸다. 레널드 또한 능숙하게 알렉스의 손길을 받아들이며 입을 열었다.

냉장고에 교자 사놓은거 있으니까 저녁은 그거 돌려먹어.”

베스트의 단추를 잠그자 이번에 알렉스는 그의 커프스단추를 매어주었다. 레널드는 진짜로 바쁜 모양인지 재킷과 가방을 한꺼번에 들고서는 급히 현관으로 걸어갔다가 알렉스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언젠가 레오가 같이 점심먹자고 하는데, 시간 괜찮아?”

그의 머릿속에선 레널드의 사고뭉치 막내동생이 떠올랐다. 형들과는 달리 상당히 경박한 성격으로 세간에서는 이단아라고까지 불리고 있던 시민이었다. 그러고보니 몇 달전쯤에 그의 회사를 도와 목숨을 바쳐가며 살인사건을 해결한 적이 있었다. 아마도 그때 일 때문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며 그는 흔쾌히 아저씨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시간을 비울 수 있다고 대답하였다. 지옥개의 입가가 살짝 올라가더니 내일 보자는 말과 함께 문이 닫혔다. 문이 닫히자마자 그는 소파 한편에 숨겨두었던 종이가방을 조심스레 테이블 위에 대충 내팽겨치고는 아저씨가 사왔다는 교자를 보러 냉장고로 향했다. 종이가방에서 서류를 비롯한 종이들이 흘러나와 테이블 위로 펼쳐졌다. 부모자격증 안내문이라는, 상당히 큰 글씨로 형형색색 적혀진 카탈로그가 밖으로 튀어나왔다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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