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ANDAL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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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DOOMSDAY CITY

애덤바니애덤 _ 렌즈 속에 반짝

rabbitvaseline 2016. 12. 2. 10:29



핸드폰 알람소리는 언제나 아침을 짜증나게 만든다. 흐트러진 빨간 머리를 간신히 일으키며 애덤 애플은 제대로 뜨이지도 않는 눈들을 부비었다. 머리맡에 있던 안경을 쓰고, 바닥에 떨어져있던 인형을 조심히 베개에 뉘였다. 그는 과연 오늘은 카메라 렌즈를 사겠다는 시민이 나타날까, 두근거리며 스마트폰을 켰지만 역시나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아침 7시 12분, 렌즈를 팔겠다고 인터넷에 올린건 어제 저녁이었다.

"흐아아암-"

그는 하품을 하며 뉴스라도 보려고 텔레비전의 전원을 켰다. 때마침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아침뉴스답게 집안에 침투한 좀비퇴치법같은 생활의 팁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는 그렇게 텔레비전을 켠 채로 욕실로 들어갔다. 과연 오늘은 수염이 자랐는가를 확인하며 세수를 하려던 찰나였다. 침실 너머로 스포츠뉴스를 알리는 익숙한 시그널이 들려왔다. 그는 한창 비누칠을 하며, 곧 끝나는 지옥축구 시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중학교시절부터 팬이었던 그에게 아주 익숙한 이름들이 들려왔고, 곧 어떤 팀과 어떤 팀이 맞붙는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그 팀의 그 선수는 유리야, 유난히 부상을 잘 당하곤 하던 스켈레톤선수를 떠올리며 그는 손바닥에 차가운 물을 받았다.

"-네, 그리고 고교지옥축구의 영웅, 버나드 블루의 팬들이라면 아주 기뻐할만한 소식이군요. 날개사고 이후 잠정적으로 은퇴한 버나드 선수가 다시 복귀한다는 소식입니다, 물론 정규경기는 아니고 자선경기에 출전하는거지만, 이거 거의 130여년만의 출전 아닌가요?"

뭐?!! 애덤은 그 말에 힘써 감았던 네 눈을 전부 다 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손에 받아졌던 차가운 물이 그의 안면을 강타했고, 집안에 비눗물이 눈에 들어가버린 악마의 비명소리가 크게 울렸다.




케르베로스의 정문 앞에는 매스컴들이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고 서 있었다. 그들은 단 한명이라도 제대로 보내주지 않겠나는 식으로 건물로 들어가는 시민들을 붙잡고 있었다. 결국 릭 레몬트리는 기자들에게 붙잡혀 그의 친우 버나드 블루의 활동과 인성, 최근의 경향에 대해 애매하나마 답하고나서야 회사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등에 업혀있던 아들이 꺄우거리며 팔을 흔들어댔다. 릭은 아이를 루카스에게 건네주고나서야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앉을 수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래."

"아, 릭 왔냐? 바니가 운동 복귀한다는거 사실이야?"

그와 마찬가지로 매스컴을 뚫고 출근한 CB에게 어떻게든 쫓아내달라고 부탁하던 레오가 다가왔다. 그도 친구이자 사원인 바니가 운동에 복귀한다는 사실을 방금전에서야 전해들었다. 그는 자신의 노후대비가 사라졌다고 울부짖음과 동시에 여태껏 한마디도 해주지 않은 바니에게 섭섭함을 느꼈다. 반년전부터 다른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더니 이것때문인가, 의심한 것은 덤이었다.

"바니가 말 안해줬구나, 미안, 바니가 너에게 말하면 방해할거라고 해서."

"어쩐지 요즘 일을 안나오더라니, 그래도 나에게도 말해줬음 좋을걸. CB도 알고 있던 것 같던데."

EMP를 손보고 있던 CB가 기계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나도 바니에게 부탁받았어. 확정이 날때까지는 알려주지 말라고 했어. 물론 난 서류떼려고 고등학교에 갔다가 안거지만."

매스컴과 CB의 말에 따르자면, 사실 버나드 블루는 운동을 복귀할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그는 경기 중 불행적인 사고로 날개를 잃고, 어쩔 수 없이 은퇴를 하게 되면서 그는 경기를 보는 것 자체를 괴로워했다. 게다가 수술로 인해 얻은 빚을 갚느라 운동에 돌릴 시간도 정신도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한다면 그는 몸이 무거워지는 것은 싫다면서 꾸준히 몸은 단련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결국 반년 전, 휴학에 대해 교사와 상담하러 갔다가, 은퇴한 선수가 흔히 택하곤 하는 코치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릭, 넌 이미 다 알고 있었지?"

"하하, 그렇지. 하지만 바니가 경기에 나간다는건 나도 최근에야 알았어. 선수중에 한명이 교통사고를 당했대, 그래서 대타로 나간다는거야. 마침 날개가 필요하지 않은 포지션이라 어찌저찌 그렇게 되어버렸다나봐."

선수들은 대타로 친구이자 코치인 바니를 추천했다. 솔직히 같이 훈련을 하는 자신들이 보더라도, 바니는 코치로 놔두기에는 매우 아까운 인재이기도 했다. 감독과 다른 동료들까지 그를 추켜세우고는 어떻게든 같이 뛰고 싶다고 간청했다. 결국 바니는 이번 경기만이라고 못박아놓고서는 새로 만들어진 유니폼을 받아들었다. 릭은 바니가 살짝은 부끄러워하며 그 유니폼을 보여줬을 때를 떠올렸다. 바니의 눈가는 살짝 붉어져있었다. 그도 기뻐하고 있는게 분명했다.

"그래도 진작에 말해줬더라면 좋았을텐데."

"바니도 생각 많이 했어. 조만간 말하려고 했대."

그래도 말이지, 레오는 팔짱을 끼며 시계를 쳐다보았다. 바니는 오늘 한시간 늦게 출근한다고 했었다. 그때까지 기다리라니,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역시나 매스컴들이 먼저 냄새를 맡았는지 아예 전화기가 꺼져있었다. 그리고 이윽고 이어진 매스컴들의 전화에 아예 전화선을 뽑을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바니가 출근하는대로 어떻게든 그를 추궁할 생각이었다. 어째서 미리 말하지 않았느냐, 네가 원하기만 한다면 집에서 스폰서를 넣어줄 수 도 있었다고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서 있는데, 갑자기 CB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는 몇번 알았다고 대답하더니 아침준비를 하고 있던 크리스를 불렀다.

"애덤인데 매스컴들 때문에 들어올 수 없대요. 미안하지만 옥상으로 와야할 것 같은데 도와줄래요?"


애덤은 눈가는 잔뜩 붉어져있었고, 눈은 네개 모두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렌즈마저 쓸 수 없었는지 오랜만에 안경을 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본 릭과 레오는 간신히 눈물을 참으며, 드디어 네가 보답을 받게 되었다고, 그새 기뻐서 울었냐고 말하며 기뻐했다.

"아니라고! 이건 세수하다가-, 아 젠장. 바니는? 버나드 블루 그 자식은 아직 출근 안했어?"

"바니는 오늘 한시간 늦게 출근하기로 되어있어, 뭐 이상태에서 정상적으로 출근하는 것도 힘들테지만."

"일분이라도 늦으면 월급에서 깐다고 전해줘."

그는 머리를 헝클이며 소파에 앉았다. 밖에서는 기계가 고장났다고 매스컴들이 우왕좌앙하고 있었고, 안에서는 레오가 바니가 나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릭에게 매달리다가 애덤의, 평소보다도 더 서슬퍼런 눈빛에 꼬리를 내렸다. 애덤이 노트북을 열자마자 바탕화면이 떠올랐다. 한창 선수로 뛰던 시절의 바니다. 그는 한숨을 내쉬고는 자신이 내놓았던 하얀색 망원렌즈에 댓글이 올라왔는지를 확인했다. 시민 한명이 조금만 더 가격을 싸게 해주는 조건으로 사겠다고 흥정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는 그 댓글에 대답을 할까말까 고민하다가 다시 한숨을 내쉬고는 창을 닫았다. 창을 닫자마자 다시 옛날의 바니가 경기를 치루고 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몇번 키보드를 딸깍거리며 두드리다가 결국은 노트북을 닫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속에서 얹힌 무언가가 자꾸만 내려가고 있지 않았다. 휴대폰을 열어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음성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젠장, 그는 다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릭, 너는 알고 있었지?"

"으응?!"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던 릭이 순간 놀라서 애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애덤이 오고나서부터는 분위기가 묘하게 무거워지고 있던 터였다.

"버나드 블루, 그 자식이 운동 다시 시작했단거."

"정확히 말하자면 운동이 아니야, 원래는 코치로 알바뛰고 있었는데 어쩌다보니 대타로 나가게 된거래. 게다가 정식경기도 아니고 자선경기잖아? 아직 휴학 푼것도 아니라서 학교이름으로는 나가지도 못해."

"어쨌거나 나가는건 맞잖아."

"그야 그렇지."

릭의 어깨가 쳐졌다. 애덤은 눈가를 꾹꾹 누르며 묘한 패배감을 느끼며, 모두 당연한 일이라고 합리화하려 노력했다. 릭은 고등학교에 다니니 학교 내 상황에 밝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 바니는 부끄럽고 데면쩍어서라도 모두에게 비밀로 하라고 부탁했을 가능성이 크다. 분명 바니는 대타라도 뛸 수 있다는 것에 매우 기뻐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확정될때까지는 아무에게도 알리려고 하지 않았겠지. 그러니 자신에게 정보가 들어오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평상시 버나드 블루의 모습을 상상하니 배신감이 들 수 밖에 없었다. 요즘 일나오는 것도 드물어졌다 싶었더니, 아니 그 전부터 묘하게 근육이나 움직임이 달라졌었는데. 그러고보니 최근에는 상당히 밝아졌었다. 무슨 일을 하던 짜증도 덜 내고, 레오는 바니가 착해졌다고 좋아했었다. 사실은 거의 반년 전부터 바니는 계속해서 변하고 있었다. 그걸, 애덤은 이제서야 알아채버렸다. 그걸 이제서야 알아채버린 자신에게도 배신감이 들었다. 그렇게나 바니가 선수로 뛰는 모습을 좋아했건만, 그렇게나 열렬히 팬으로 살았었는데, 그자식이 운동을 한다는걸 왜 눈치채지 못했을까.

"...그래도 회사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말라고 했었어."

그건 저기 앉아있는 바보사장때문일까, 아니면 한때에 열렬한 팬을 자청하던 자신때문일까. 그는 둘중 아무것도 고를 자신이 없었다.




의외로 바니는 정공법을 선택한 모양이었다. 점퍼의 이곳저곳이 뜯겨진 모양이며, 방금전까지 뛰어왔다는 듯 급하게 숨을 몰아쉬는 모습을 보면 어지간히 매스컴에 시달렸다는 것을 직원들 모두가 알아챌 수 있었다. 그는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지각하지 않았다고 안심을 하며 소파에 몸을 뉘였다. 이렇게 매스컴들이 달라붙는건 거의 120여년, 그러니 그가 은퇴하고나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죽겠다-!"

그리고 소파에 눕는 그 순간까지도 레오가 그의 발목을 붙잡고는 버리지 말아달라고 애원과 간청을 하고 있었다. 그는 발길질로 이 시끄러운 지옥개를 내쫓고나서야 숨을 고르며 오늘 있었던 일들을 반추해 볼 수 있었다. 매스컴에 정보를 흘린 것은 예상외로 감독이었다. 술자리에서 너무 기뻤던 나머지 시민들 앞에서 그걸 발표해버렸던 것이다.

"수고했어, 바니."

CB가 찬물을 건네주자마자 그는 단숨에 그것을 들이켰다. 차가운 물이 몸속을 훑어내려가는 감각에 살짝 몸서리를 치고나서야, 그는 사무실에 있어야 할 '누군가'가 없단 것을 알아챘다. 그는 몇번 주위를 둘러보고는 사장, 릭, CB, 가브리엘까지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하지만 평소라면 자신에게 무어라 잔소리를 퍼부어댔을 하얀 악마가 보이지 않았다.

"어라, 애덤은?"

"애덤이라면 옆방에 있어. 뭐 처리할게 있다면서 그러던데."

그러면서도 대답하는 릭의 목소리는 살짝 떨려있었다. 마치 당분간은 애덤에 가지 말라는 듯이, 애처로운 눈빛으로 바니를 바라보았고 그걸 눈치챈 바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자리에 앉았다. 미묘하게 가라앉은 분위기, 평상시라면 레오의 멱살을 쥐었을 애덤의 부재, 그리고 오늘 뉴스. 아마 애덤도 그 뉴스를 봤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뉴스를 확인하고 직장 동료들의 반응을 상상하다, 만약 애덤이 뉴스를 보았더라면 어떤 행동을 보였을까 머릿속에서 그려봤었다. 화를 내며 멱살을 잡거나 미친듯이 기뻐하는 장면이 펼쳐졌다. 그리고 출근하는 와중에도 애덤이 부디 예상할 수 있는 반응을 보여주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바니."

누군가가 무릎을 꾹꾹 찌르며 그에게 말을 걸었다. 작은 하얀 돼지가 제 몸만한 커다란 쟁반을 들고 서 있었다. 쟁반위에는 가지런히 조각난 사과와 음료수컵이 올려있었다. 가브리엘은 그 쟁반을 바니에게 내밀었다.

"애플의 아버지께서 보내셨는데 당사자인 아들이 못받았소. 둘이 할 이야기가 많아보이는데 대신 전해주겠소?"

"아..... 응."

그 말에 바니는 혼이 반쯤 나간 표정으로 쟁반을 들고선 자리에서 일어났다. 릭은 가브리엘답지 않은 행동이라고 놀라며, 바니의 뒤를 따를까 하던 레오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노크소리가 끝나자마자 대답도 들을 새 없이 문이 열렸다. 하지만 굳이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애덤은 누가 들어왔는지 알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나 민첩하고 큰 보폭으로 걸을만한 시민이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그는 그 시민의 얼굴을 마주보고 싶지 않았기에 책상에 놓인 노트북에 시선을 집중할 뿐이었다. 테이블위에 플라스틱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시민은 테이블 위에 무언가를 올려놓고는 계속해서 소파주위를 맴돌았다. 아마 초조한 것 같다, 라고 그는 생각했지만 정작 자신이 초조하다는 것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목이 타서 몇번 마른침을 삼키고 나서야 애덤은 의자를 돌려 방에 들어온 시민을 확인할 수 있었다. 버나드 블루는 소파에 제 몸을 기대 서서는 애덤을 바라보고 있었다.

"...왔냐?"

"..응. 그 너네집에서 사과가 왔다고 가브리엘이 깎아다줬거든? 일단 테이블에 뒀어."

바니가 말을 끝내자 이내 숨을 쉬기도 힘들 정적이 이어졌다. 둘은 테이블 위에 올려진 사과접시에 시선을 집중하고는, 서로의 숨소리만 듣고 있었다. 가브리엘이 애써 깎은 사과는 초록빛에서 점점 갈변하고 있었고, 콜라의 탄산도 점점 빠져가고 있었다. 애덤은 이 상황이 매우 어색했기 때문에 몇번 노트북으로 시선을 돌리다가 다시 테이블로 돌리곤 하였다. 그러다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듯, 먼저 말을 꺼낸 것은 바니였다.

"...그 들었냐? 뉴스에서?"

마치 처음 만나는 시민들처럼, 둘은 무엇이 그리도 쑥스러운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아, 그거 말이지? 자랑스러운 버나드 블루 선수가 복귀한다는 얘기? 응, 잘 들었지. 너무 잘 들려서 눈이 다 아프더라. 어쩐지 요즘 버나드선수가 반짝반짝 거리더니 운동을 다시 시작해서 그런거더만."

다시 아침의 일이 떠올라 애덤은 제 눈가를 눌렀다. 다시 떠오르기만해도 눈물이 어릴 것만 같았다. 한편 비아냥거리는 투로 애덤이 말하자 바니는 한쪽 눈을 찡그렸다. 그래도 자신은 애덤이 좋아해줄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렇게 평소처럼 이죽이며 말할 줄은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애써 높아지는 목소리를 무시하고 바니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선수한테도 티켓이 나오거든? 그거 나오면 일단 레오에게 맡겨놓을게. 시간나면 한번 와서 봐도 돼. 뭐, 정 시간이 없다면 안와도 되지만."

분위기가 급속도로 어색해져가는 것을 느끼며 바니는 뒤돌아섰다. 일단 해야할 말은 다 했다고 생각하며 문을 열고 다시 나가려는 순간이었다. 날선 애덤의 목소리가 그의 귀를 스쳐지나갔다.

"야! 왜 나한테는 얘기 안했냐?"

순간 발걸음이 멈춰버렸다. 바니는 무슨 소린가 하며 다시 그를 향해 몸을 돌렸다. 애덤은 얼굴도 보기 싫었는지 등을 돌려 노트북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너 다시 운동한다는거. 릭이나 CB한테는 얘기했으면서 왜 나한테는 안했냐고?"

"...꼭 굳이 너한테까지 말할 필요가 있어? 그 둘이야 학교에서 알게 된거지만, 넌 이미 졸업도 했고 내가 다시 복귀한다고 해서 그다지 큰 관련-"

"관련이 없기는! 야, 버나드 블루! 네가 지옥축구 뛰는거랑 나랑 왜 관련이 없다는거야? 너도, 그... 아, 젠장. 너도 다 알고 있었잖아. 하아.. 아직도 사진들 다 남아있다고. 적어도 나한테까지는 말해줘야 하는거 아니었어?"

성이 났는지, 아니면 부끄러웠는지 애덤의 귓가는 붉어져있었다. 하지만 목소리에는 엄연히 분노가 담겨져 있었다. 믿었던 스타에 대한 배신감, 팬으로서 보냈던 몇백년의 세월을 무시하는 것만 같아서 애덤은 절로 목소리가 높아져버렸다. 분노에 찬 목소리에 성이 나는 것은 바니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속에서 무언가가 울컥하며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어째서 이렇게 섭섭한것인지는 모르나 그도 소리를 내며 그에 답했다.

"왜 너에게까지 말해야하는건데? 릭한테도 말하지 않으려고 한건데? 네가 한때 내 팬이라서? 네가 좋아하던건 하늘을 날아다니던 지옥축구 유망주 버나드 블루지, 코치로 뛰다 대타로 복귀하는 버나드 블루가 아니잖아?"

"대타로 복귀하는게 뭐가 어때서? 내가 너 복귀한다고 오늘 뉴스에서 들었을때 어땠는지 아냐? 섭섭하더라, 그래 팬이니까 당연히 섭섭하지. 그래도 솔직히 팬으로서가 아니더라도 섭섭했어. 왜 릭이나 CB가 아는 일은 나에게 얘기해주지 않은거야? 내가 단순히 날개달린 버나드 블루를 좋아했다고 그런거야? 너 날개 뗀 다음에는 섭섭하게 대해서?"

"...그래. 그것때문에 일부러 너한테까지는 얘기 못한거야. 나 날개 떼어내고 나한테 대하는게 완전히 달라졌으니까. 솔직히 엄청 배신감 느꼈다고... 나도 너무 억울하고 분통해서 견디지 못하겠는데, 다른 누구도 아니라 네가 나한테 그랬잖아? 그런데 이제와서 네가 다시 팬으로 돌아가서 나한테 대할거 생각하면, 이상하게 기분이 더럽더라."

말을 내뱉다가 순간 울분이 올라와 바니는 소파에 몸을 구겨넣었다. 그리고 그는 고개를 숙여 간신히 올라오려던 눈물을 참아내며 몇번을 한숨을 내쉬었다. 애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몇번 헛기침과 욕지거리를 내뱉었고, 어떻게해야 이 어색한 순간을 모면할 수 있을지 생각을 하다가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그냥 솔직하게 나가자, 그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바니를 향해 몸을 돌렸다. 버나드 블루가 침울해하는 모습을 보니 더더욱 입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결국 그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간다고 느꼈지만 이 어색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별 다른 수가 없었다.

"...그 일은 미안해. 맞아, 솔직히 너 날개 떼었을 때엔 나도 충격 크게 받았어, 너 대하는것도 좀 안좋게 했고. 이건 변명이겠지만, 너 그 일이 있고나서 완전 죽을상으로 살았던거 알아? 여기 들어오고나서도 정말로 죽고싶다는 표정으로 다니고, 나랑 친구들이 도와주겠다고 하는것도 다 거절하고... 그러니 당연히 좋게 보이지 않았지. 내가 좋아한건 그야말로 운동에 미쳐서, 필드를 누비던 밝은 버나드 블루였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그렇게 나락으로 떨어진것처럼 행동하니까 보는 나도 편하지 않았어, 아니 나만큼 불편한 놈이 어딨었겠냐? 아무리 그래도, 난 네 팬이었다고."

그는 팬이라고 언급한 부분에서 얼굴을 붉혔다. 몇번 고개를 돌리려고 애를 썼지만 이내 다시 바니를 향해 시선을 집중했다. 듣는 바니도 갑작스런 애덤의 고백에 부끄러웠는지 얼굴에 홍조가 가득해서는 고개를 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솔직히 너 다시 복귀한다고 했을때엔 섭섭한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기뻤어. 그런데 이상하게 엄청 섭섭하기도 하고... 네 팬으로서도 섭섭했지만 그냥 너랑 알고 지내던 사람으로서도 섭섭하더라. 그래, 너랑 알고지내면서부터 그렇게 죽을상을 짓는 너도 그다지 나쁘진 않다는걸 알았어. 너 좋은 놈이야, 너무 착해서 걱정이 될 정도로. 그래서 더 섭섭했어. 난.... 난 그래도 네 친구로, 아 젠장, 그런 얘기를 들어도 되지 않나 싶어서."

친구라는 말을 꺼냈을 때엔 둘다 얼굴이 온통 새빨개져서는 한동안 말도 못꺼낼 지경이었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기분에 몇번 마른 침을 삼키다가 애덤은 말을 이었다. 이이상 말을 하면 온 몸이 터질것만 같다고 생각하면서.

"...그러니까 너 다시 선수로 복귀해도, 그다지 지금과는 달라지지 않는다는거야. 물론 팬으로서 서포트는 해주겠지만, 그렇다고 갑자기 잘해주지는 않을거니까 그건 안심해도 돼. 그리고 솔직히 너 지금이 훨씬 좋아보여, 역시 다시 운동하고 싶어한거 맞았잖아? 넌 역시 운동하는게 제일 기분이 좋아보이니까, 그걸 좋아하는건 감안해줘."

정말이지 머리에서 열이 오르고 있었다. 방안에 기묘하게 새빨개진 얼굴들을 한 악마 둘만 덜렁 있는 것이 어색했고, 당장에라도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게다가 그 낯간지러운 말들이라니, 친구라느니 팬이라느니 하는 말들은 애덤이 바니에게 절대로 직접 하지 않을 말들이었다. 둘은 당장에라도 릭이 나타나서 이 모든 사태를 어떻게든 수습해주길, 우리 모두 친구라며 웃어넘기기를 바랬지만 그 릭은 옆방에서 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애덤은 그게 전부라고 말한 다음에 다시 노트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이 어색한 상황을 넘기기 일부러 큰 소리로, 마치 국어책을 읽듯이 소리쳤다.

"아, 젠장! 렌즈 팔려고 했는데 취소해야하잖아! 이번에 돈좀 들어오나 싶었는데!"

"풋."

바니의 입가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제야 이 말도 안되는 긴장상태가 풀렸는지 애덤의 입가에도 미소가 어렸다. 애덤은 급히 중고장터에 냈던 렌즈판매글을 내렸다. 꽤나 좋은 가격이었는데도 어쩐지 아쉽지는 않았다.

"갑자기 렌즈는 왜?"

"..그야 당연히 널 찍기 위해서지!"

애덤은 다시 얼굴을 붉히며-이번에는 바니를 향해 고개를 돌리지도 못하고- 대답했다. 그 모습이 어쩐지 귀엽기까지 해서 바니는 계속해서 웃음을 터뜨리다가 호통소리에 멈추었다.

"그러니까 렌즈값은 꼭 해야돼. 최고로 반짝이는 모습을 보여주라고, 러닝백."

"미안, 나 이제 라인맨으로 바꿨어. 그래도... 저기, 고마워, 그리고 말 안해서 미안해."

"알면 됐어."

애덤은 퉁명스럽게 대답하고는 다시 귀를 붉혔다. 그리고 이제 곧 열린다는 친선경기의 자료를 찾으러 검색사이트에 접속하다가 바니의 복귀기사를 클릭했다. 사진너머 공을 들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버나드 블루의 모습이 반짝거렸다. 이제 다른 사진이 더해지겠지, 그는 복귀경기를 기대하며 사진폴더에 올해의 폴더를 추가했다.










기승전부끄러워하는 두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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