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ANDALIEN
알렉스레니 _ 너의 어린, 01 본문
꽤나 규모가 작지만 근처에서는 유명하다는 레스토랑에 들어서자마자 보인 것은, 레널드의 하나뿐인 동생이자 헬하우스가의 망나니이자 유일한 후계자인 레온 헬하우스가 메뉴판에 코를 박고 무언가를 열심히 고르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옆에는 레온의 크고 하얀 아들이 쭈뼛거리고 초조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가뜩이나 자신을 향한 시선들에 주눅이 들어있던, 아직 이름이 없는-물론 할아버지에게는 비밀이라 언제 이름이 생길지는 모르나- 이 하얀 지옥개는 알렉스와 제 삼촌이 온 것을 알아차리자마자 몸을 움츠렸다. 아이-아직 태어난 지 1년이 갓 넘었기 때문에-는 삼촌의 친구라는 검은 고양이를 상당히 꺼려했다. 이유는 간단했으니 알렉산드로 토레스는 평소에는 주변에서 찾아보지 못할 이 하얀 지옥개를 삼촌의 몫만큼 귀여워했기 때문이었다. 아이는 제 아비의 옷깃을 끌어당겨 손님이 왔다고 알렸고, 레널드는 한손으로는 저를 반기는 동생을 향해 손을 흔들고 나머지 손으로는 눈이 홱 돌아가 당장에라도 조카에게 달려가고자 애를 쓰는 친우를 붙잡아야 했다.
결국 알렉스는 아이와는 대각선 방향으로, 즉 레오와는 마주보고 레널드와는 옆에 붙은 채 앉게 되었다. 메뉴는 뭘 정할 거냐는 레오의 말에 레널드는 메뉴판을 슬쩍 보고는 알렉스에게 메뉴판을 건네었다. 하지만 그는 아비 뒤로 숨으려는 아이의 사진을 찍느라 메뉴판을 볼 틈이 없었다. 결국 레널드는 알렉스의 메뉴까지 같이 주문했다.
“형이 정해도 돼?”
메뉴들을 웨이터에게 불러주며 레오가 물었다. 알렉스는 여전히 옆에서 아이의 사진을 찍으며 귀엽다고 감탄하고 있었다. 레널드는 결국 그의 손에서 핸드폰을 빼앗고 나서야 질문에 대답할 수 있었다.
“대충 취향은 알고 있으니까.”
그는 능숙하게 알렉스가 좋아하는 와인까지 주문하고는 사진을 찍지 않을 것을 조건으로 검은 고양이게 핸드폰을 돌려주었다. 그러자 이제는 아예 아이의 손을 붙잡고는 발톱을 가지고 놀고 있다. 아이는 몇 번 부끄러워하다가 체념했는지 양 손을 알렉스에게 맡기고 있었다.
“알렉스씨는 정말로 아드님이 마음에 드나봐.”
“샌디, 그만 만져. 네 아들이 커서 그래, 아이들은 질색해.”
알렉스가 입을 내밀며 대답했다.
“아이를 좋아하는 건 아저씨면 충분하니까 괜찮아. 게다가 쫑알쫑알 시끄러운데다 축축하고 뜨겁고 기분도 이상하고. 그렇게 치면 얘는 이리도 조용하고 하얗고 귀엽잖아.”
“누가 누구보고 시끄럽다는 건지.”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레널드의 입가에는 미소가 어려있었다. 한편 아이는 결국 견딜 수 없었는지 살짝 겁에 질린 눈빛으로 아비의 옷자락을 다시 붙잡았다. 그제야 상황의 심각성을 눈치 챘는지 레오는 알렉스의 시선과 손을 자신에게로 붙잡고 열심히 말을 걸기 시작했다. 막무가내에다 철이 없어서 매일 걱정을 하게 만드는 동생이라도 자신이 아버지라는 자각은 하는 모양이었다. 레오가 ‘순수한 지옥클럽’ 사건 때 도와주었던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는 사이, 레널드는 맞은편에 앉아있던 자신의 조카에게 눈을 돌렸다. 크고 투명한 에메랄드빛 눈동자는 분명 이 아이가 헬하우스 가문의 일원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는 지나치게 하얬다. 검은 색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하얗고 또 하얘서, 오히려 이 아이가 자신의 아버지, 즉 그의 할아버지에게 알려진다면 어떤 풍파가 일지 기대가 될 정도였다. 검은색에 지나치게 집착하던 아버지, 즉 레오와 레널드의 아버지이자 헬하우스 인더스트리의 회장은 그렇게나 바라고 또 바랐던 손자가 하얗다는 사실을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 레널드는 자신의 하얀 조카를 바라보며 어렸을 때부터 받아왔던 냉담한 시선들을 떠올렸다. 3번째 자식이었던 그는 형제들 중에서는 가장 하얀색이 많았다. 그의 아버지는 그 사실에 절망하고는 아들에 대한 최소한의 의무 말고는 아무 관심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는 이후 검은 털이 흰 털을 다 잡아먹고나서야, 레널드가 대학교에 진학하기 직전에 늦둥이 자식을 가졌다. 레온 헬하우스는 그 형체가 드러나고 털의 분포가 보이자마자 가문의 후계자로 점쳐졌다. 그의 몸에서는 하얀 터럭이 보이지 않았다. 고작 그런 이유라니.
“그래서 아저씨가 사주기로 했어, 아저씨?”
알렉스가 부르는 소리에 가까스로 상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에 했던 약속을 잊지 말라고 말하자, 그제야 굳은 표정을 풀고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너에게라면 얼마든지, 자그맣게 말하자 웨이터가 애피타이저를 들고 왔다.
“잘 먹겠습니다.”
아이가 조그맣게 말하고 나서는 조심스레 샐러드를 입에 넣었다. 양손에 포크를 들고 달려들을 기세인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몸은 크다고는 하나 아직까지 행동은 서투른지 포크질은 조심스러워서, 맞은편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레널드는 조카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이란 걸 실감했다. 아이는 샐러드 위에 있던 붉은 과일이 마음에 들었는지 눈을 반짝였다. 그는 자신의 접시에 있던 그 과일을 조카에게 넘겨주었다.
“...아.”
조카는 머뭇거리며 레널드를 바라보았다. 역시 아이답게 낯을 가리는 것 같았다. 거기까진 동생을 닮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입을 열었다.
“먹어도 돼.”
“...감사합니다.”
생각보다 인사성도 있다. 단순히 시민을 가리는 것은 아니고, 행동을 보면 자신을 삼촌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이파리를 포크로 집어 올렸다. 그리고 그제야, 방금 전의 그 짧은 대화가 자신과 조카가 나눈 첫 대화임을 깨달았다.
식사는 꽤나 만족스럽게 끝났다. 결국 알렉스는 아이와 함께 셀피를 찍어 제 핸드폰에다 저장했다. 또 일이 있으면 연락하고 말을 꺼냈더니, 레널드가 그를 흘겨보며 자기 허락 아래서, 라고 단서조항을 붙였다. 그는 알렉산드로 토레스의 변호사로서 의뢰인의 안전을 보장할 책임이 있다고, 자신을 째려보는 검은 고양이에게 말하였다. 물론 그건 표면상의 이유였다. 이미 알렉스는 레오를 돕다 4번이나 목숨을 잃었었다. 간신히 목숨이 남아있다는, 무전기 너머의 그 말을 듣기 직전까지 자신을 벼랑끝으로 내몰았던 상실감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다. 그의 귓가에는 아직도 무전기 너머의 총소리를, 몇 번 죽였냐는 구역질어린 그 목소리가 선했다.
알렉스는 레오와 조카에게 손을 흔들고는 다음에 또 보자고 인사를 했다. 조카도 쑥스럽게 작게 손을 흔들고는 거리 저편으로 사라졌다. 점심을 위해 비어둔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아있다면서, 그 시간동안 알렉스의 회사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그는 레스토랑이 꽤나 괜찮았다면서, 나중에 한번 둘이서 가보자는 이야기를 꺼냈고, 레널드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그러다 갑자기 검은 고양이는 양손을 뒤통수에 대고는 입을 열었다.
“아저씨는 좀 더 어린 아이가 좋지?”
“응?”
갑작스런 질문에 그는 검은 고양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알렉스는 평소답지 않게 차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야 애는 싫지만 아저씨는 좋아하잖아. 갓난아기라던가 말이야.”
그 말에 레널드는 차마 고개를 끄덕일 수도, 그렇다고 부정하는 말을 꺼낼 수도 없었다. 알렉스가 하는 말은 반쯤은 사실이었다. 그는 갓난아기를 좋아하였다. 분내와 시큼한 향이 섞인 체취를 맡고 부드러우면서도 높은 체온을 띠는 살결을 조심스레 만지는 것도 좋아했다. 하지만 굳이 그런 걸 따지지 않더라도, 아이를 가지고 싶어 하는 시민으로서 아기에 대한 호감이 있는 건 당연할 터였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그게 자신의 조카를 더 좋아하고 덜 좋아할만한 요소를 제공해주는건 아니었다.
“아니, 그 애라면 괜찮아.”
두려움에 떨며 제 아버지를 품에 안았던 커다란 조카를 떠올렸다. 헬하우스가에서는 정말로 오랜만에 보는 ‘아이’였고, 그에게는 그렇게나 바라던 조카였다. 물론 몸집이 너무나도 커서 태어난 지 얼마 안되었다는 걸 인지하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그 ‘아이’는 그에게는 너무나도 사랑스러워할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였다. 적어도 자신이 가질 수 없는 어린 헬하우스, 형들은 모르겠지만 자신은 그것만으로도 그 아이를 충분히 사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지금은 충분히 지금 상황을 체념할 수 있었다.
“의외네.”
알렉스는 그 말만 꺼내고서는 잠시 말을 멈추고는 계속 앞으로 걸어나갔다. 무언가를 생각하듯 꼬리가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이 레널드의 눈에 비쳤다.
▒ ▒ ▒
“잘 다녀왔냐? 이자식, 맛있는거 얻어먹었지?”
“사장님이 쏴주시는건데 당연하지. 자, 여기 말했던거 맞지?”
검은 고양이는 자신의 자리에 앉으며 옆자리에 앉아있던 파란 2안마에게 케이크상자를 건네었다. 고맙다는 대답과 함께 상자를 뜯자, 정상에서 빨간색 초콜릿이 흘러나오는 모양으로 굳어진 화산모양의 케이크가 펼쳐졌다. 그는 요즘 제법 배가 많이 나왔다고 투덜거리면서도 포크를 들어 케이크 한조각을 크게 자신의 입안으로 넣었다. 쌉싸름하면서도 달콤하고 부드러운 시트와 함께 진한 초콜릿의 풍미가 입안에서 가득 퍼졌다. 맥켄지 우드먼, 줄여서 맥이라고 흔히들 부르는 이 악마는 오두방정을 떨며 맛있다고 주위에 알리다가 눈치를 샀다. 그는 케이크를 먹다말고는 모니터 옆에 놓여져 있던 가족사진-자신과 아이 둘의 모습이 찍혀져 있는-에 시선을 돌렸다. 유치원에 다니는 자식과 최근에 나무에게서 얻은 아이, 그는 두 아이의 아빠였다.
“도대체 뭔 케이크가게에 사람이 많았던지. 게다가 1인 1상자라니.”
알렉스는 레널드와 함께 헬스크림에 줄을 섰던 일을 떠올리며 투덜거렸다. 그나마 레널드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더라면 오는 길에 심통이 나서 떨어뜨렸을지도 몰랐다. 지금쯤 도착했으려나, 제 옆에 앉아있는 동료처럼 행복한 표정으로 케이크를 먹고 있을 레널드의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알려준 것들만으로도 이정도 보상은 충분해.”
“도대체 네가 얻어준 서류는 이해가 안 돼. 왜 그렇게 준비해야 할게 많은거야?”
“그야 당연하지, 애 돌보는게 그렇게 쉬운 일인 줄 알아? 너같이 애 싫어하는 시민에게 아이를 못 맡기니까 이런 법이 생기는거야. 알레르기? 난생처음 그런 병은 또 처음 듣는다.”
“조금 더 간단한 절차같은건 없어? 더 간단한-”
알렉스의 말은 맥이 세차게 빨대로 아이스티를 빨아먹는 소리에 묻혔다. 그는 순식간에 케이크를 해치우고는 상자를 정리하고 있었다.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타박하는 것은 덤이었다.
“검은 고양이한테 간단한 절차가 있겠냐. 우리야 나무에다 신청하면 되는거지만, 너네는 더 골치아프잖아. 너, 털은 확실히 모으고 있지? 귀찮다고 자를 생각하지 말고, 차분히 빗질해서 모아야 돼.”
“그건 알아서 할 일이야. 옛날에는 어떻게 가진거야?”
“그래서 옛날에는 검은 고양이들이 많이 죽었대.”
역사책속에서 간간이 보이는 검은 고양이들의 출생 장면에는 꼭 죽은 아버지의 모습에 대한 묘사가 뒤따랐다. 온 몸의 정기를 빼앗겨 결국은 말라 비틀어져버린 검은 고양이의 시신 옆에서 한없이 울고 있는 새끼 고양이, 마법을 시전해준 당사자는 그런 일이 발생하면 법의 심판을 받아야했기에, 검은 고양이의 출생은 모두가 상당히 꺼리는 일이 되었다. 다른 종족들보다도 마법을 쓰는게 편하기 때문이었을까, 그들은 자식을 가지는 데에도 큰 패널티가 존재했다.
“너 레널드씨에겐 말하고 있는거냐?”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아이가 놀고 있는 동영상을 보자마자 엄청 초조한 표정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렸던 검은 고양이가 갑작스레 아이를 가지겠다는 말을 꺼내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이유에는 검은 고양이가 사랑하는 지옥개가 연루되어 있을 터였다. 그러니 적어도 당사자에게는 이유를 알려줘야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알렉스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꼬리가 아래로 축 처진걸 보면, 분명 지금까지 말도 못꺼내고 있는게 분명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난 페터같은 대접은 받기 싫다. 헬하우스의 도련님을 적으로 삼기에는 아직 애들이 어리고. 그리고 사실 상담할거면 내가 아니라 레널드씨랑 하는게 맞지 않냐? 법적으로는 그쪽이 더 잘 알잖아.”
알렉스는 고개를 저었다.
“아저씨는 자격증이 없거든.”
그 말에 맥은 헛기침을 내뱉었다. 세간에 떠도는 말로는 헬하우스 집안에서는 망나니지만 하얀 털이 없는 막내아들 말고 나머지 세 아들들은 자식을 가지는 걸 금지당했다고 하더니, 진짜로 그런 줄은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아예 자격마저 박탈이냐, 그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옆에 앉아있는 검은 고양이의 두상에 눈길을 돌렸다. 몇 달 전, 알렉스 토레스는 종족차별주의자들의 클럽에 잠입하다가 심한 부상을 입고 4번이나 죽은 적이 있었다. 모두 다 회복되어 괜찮아졌다고는 하지만, 이제 그의 목숨은 3개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도 어서 상담해. 너 이제 목숨 3개밖에 없어, 7개 남았을 때 하나 까는거랑 3개 남았을 때 하나 까는건, 질적으로 완전히 달라. 그리고 그거 은근히 심사에도 반영된다? 저 총무부의 잭 알지? 그 양반은 목숨 2개 남았다고 둘째가지는걸 거절당했어.”
그 말에 알렉스의 길다란 꼬리가 뾰죽 서버렸다. 확실히 근처에서 정보를 얻었을 때에도 그런 소리를 듣긴 했었다. 남은 목숨이 얼마 없으면 심사에서 거절당하기 쉽다고. 그것 때문에 투덜거리는 검은 고양이들이 많다는 것까지 말이다.
“그정도로 빡센건가.”
“당연하지, 애를 남겨놓고 죽어버리면 애는 어떻게 하라고. 넌? 아이 가지면 반은 레널드씨랑 기를거 아냐? 그러니까 더더욱 미리 말은 해둬야지.”
맥의 말에 차마 부정할 수는 없었다. 알렉스는 괜찮을거라 말하고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지만 만약 자신이 말을 꺼낸다 해서 레널드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예상하기 힘들었다. 기뻐할까, 아니면 화를 낼까. 그의 성격을 고려하자면 후자의 가능성이 더 컸다. 최근들어 레널드는 알렉스를 과보호하고 있었다. 페터에게 따로 연락해 위험한 일을 시키지 말라고 하려다가 면박을 당한 적도 있었다. 그 전부터도 그런 적은 있었지만, 라진스키 사건 이후로 경향이 더 심해졌다. 그는 요즘 유행한다는 3인조 은행강도사건의 파일을 훑으며, 언제쯤 말할까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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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택 식당의 커다란 문을 열면 낯익으면서도 불편한, 그리고 따스한 공기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공기속에서 기름진 음식냄새가 바람을 타고 전해져온다. 이 익숙하지만 산소가 부족할 것 같은 광경에 레널드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커다란 식당에 있는 것이라고는 길다란 테이블과 의자, 약간의 화초와 역대 헬하우스가 주인들의 초상화뿐이었다. 식당자체는 넓고 트였지만 그에게는 언제나 숨막히는 공간이었다. 의자에는 벌써 형들과 아버지가 앉아있었다. 늦었다고 살짝 미소를 지으며 의자에 앉고, 약간의 기도가 끝나고나서야 식사는 시작되었다. 근 한 달만의 가족끼리 갖는 저녁식사였다.
“요즘 레오네 집에 괴상한 지옥개가 살고 있다는구나.”
레널드는 자뭇 주가가 올라갔다는 말을 하는 것처럼 평범하게 아버지가 내놓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제 앞에 놓여있던 생선살을 조심스레 포크로 집었다. 이게 이유였군, 오랜만에 가족끼리의-막내를 제외한- 식사를 마련한 데에는 바로 막내의 근황 때문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내뱉은 말을 듣고는, 곧바로 오늘 점심에 함께 하였던 새하얀 조카를 떠올렸다. 괴상하다고 표현한 것은 분명 아버지로서도 온 몸이 하얀 지옥개는 처음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몇 번 케르베로스에 드나들었던 리바이와 에드워드도 자신들은 그런 개를 보지 못했노라고 말하였다. 레널드는 어째서 ‘오늘’ 아버지가 저녁식사를 마련하고, 그 이야기를 꺼냈는지 충분히 짐작하였다. 그가 꺼낸 말은 분명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네, 하얀 지옥개 말이죠, 아버지.”
그러니 대답을 할 수 밖에. 레널드는 차분하게 입을 열며, 마침 오늘 만나보았노라고 말하였다.
“의뢰관련으로 알게 된 친구인데, 집이 없다는군요. 하얀 지옥개여서인지는 몰라도 고아로 지냈던터라.... 꽤나 푸대접도 받은데다 나이도 생각보다 어려서 취업도 힘들었다는 모양이에요. 그래서 레오가 받아들여주기로 했답니다.”
“우린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에드워드의 날선 말에 레널드의 눈가가 한층 더 내려갔다. 그는 자신이 모르는 사실을 동생이 알고 있다는 것에 상당히 언짢아하는 것 같았다. 레널드는 포크를 내려놓고는 형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리바이는 묵묵히 음식을 입에 넣고 있ᄋᅠᆻ다. 일단 사태를 더 바라볼 작정인가.
“그냥 같이 사는거고, 아까도 말했지만 나이가 어려서 정식으로 취직도 안돼. 그래도 레오와는 꽤 사이가 좋아요. 헬하우스가의 일원으로 그런 친구를 사귀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죠.”
“...마치 검은 고양이처럼 말이야?”
분명 알렉스를 겨냥하는 말이 분명했으나, 그런 도발에 쉽게 넘어갈 그가 아니었다. 레널드는 그런 식이라고 응수하며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늙은데다 건강도 안좋아졌지만, 세상일에는 밝은 노인네다. 이미 세상은 점점 평등이라는 이름 아래 종족차별을 배척해왔고, 귀족신분인 지옥개 중에서도 정점을 찍은 사내이니 그 선두에 서야 할 터다. 그것이 그가 일궜던 회사의 이미지 재고에도 좋을 것이고. 그러니 레오든 레널드든 자신의 자식들이 여러 종족들 사이에 섞이는 것을 나름 묵인했던 것이다. 그러니 분명 ‘괴상한 지옥개’라면 그냥 넘어갈 것이다.
“그런 시민도 나쁘지는 않겠지. 하지만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다니, 꽤나 섭섭하구나.”
그는 그 말만을 하고는 더 이상 할 말은 없는지 식사에 집중했다. 레널드는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며 만약 아버지에게 사실은 그 괴상한 하얀 지옥개가 당신의 손자라고 말하면, 당신의 그 강직한 얼굴이 어떻게 일그러질까를 상상했다. 순간 목이 매었다. 당장에라도 모든 사실을 밝힌다면, 저 순흑주의자인 지옥개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입가에 미소가 어렸는지 형들의 눈길이 상당히 따가웠다. 공기는 아버지를 중심으로 차갑게 가라앉았다.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이렇게 가족들이 모이는 자리에서는 언제나 숨이 턱턱 막혔고, 덕분에 심장은 미친 듯이 자맥질했다. 그는 자신을 보는 형제들의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자신의 현재 상황을 되돌아보았다. 망나니 막내를 후계자로 내세우려고, 혹은 그 실패작에서 검은 후손이라도 보려는 아버지와 그런 레오를 견제하면서 권력다툼을 벌이는 두 형, 단지 털이 검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짓이 묵인되는 동생. 그는 그 틈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고 있었다.
“제가 한번 레오에게 말해보겠습니다. 그 애라면 분명 소개시켜줄테죠.”
어느새 메인디시를 끝내었는지 리바이가 와인으로 입가심을 하며 말하였다. 물론 이 자리에 있는 모두들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저건 단순히 립서비스란걸 알고 있었지만, 아버지는 그랬으면 좋겠구나 하고 넘어갈 뿐이었다. 수긍을 가장한 무시에 목이 타, 자신도 와인을 들이켰다. 오늘따라 와인은 더욱 텁텁하기만 했다.
식사를 마치고 서재로 향하는 길목에서 그를 기다린 것은 첫째형, 에드워드 헬하우스였다. 방금전까지만 해도 테이블위에서 묘한 신경전을 벌였던 터라, 또 상대해주고 싶은 마음은 없었으나 에드워드가 일방적으로 먼저 입을 열었다. 그는 할 수 없이 자리에 서서 형이 하는 말을 그대로 들을 수밖에 없었다.
“뭔가 빠뜨린 것이 있는 것 같던데, 레니.”
“난 빠뜨린 것 없어, 에드형.”
어느새 옆에는 리바이까지 서 있었다. 이 두 명은 늘 서로를 적대시하며 살아왔지만, 이상하게도 이런 쪽으로는 죽이 잘 맞았다.
“혹시 애인이라도 기르는 거 아냐?”
애인이라는 말에 순간 헛기침을 내뱉었다. 이 둘은 촉은 좋지만 정확성이 떨어지는 것이 흠이었다. 덕분에 중간에 그르친 일도 제법 많아서, 변호사인 자신이 뒤처리를 해준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이렇게나 눈치가 없어서야 어찌 아버지의 뒤를 짓겠다고 하는걸까, 간신히 한숨을 참아야했다. 하지만 그는 그걸 내색하지는 않았다.
“만약 걔가 유성애민이었으면 진작에 애인을 만들고 가족결합을 하겠다고 나섰을거야. 게다가 그 하얀 지옥개도 아직 어리지. 걱정하지마, 형들. 걔라고 그 정도 사고는 치지 않아.”
기껏해야 세간으로부터 질타와 비난을 받을 정도지, 체포되어 수감될만한 범죄도 아니다. 그게 그나마 레온 헬하우스를 내치지 않는 이유겠지만. 에드워드의 한쪽 입꼬리가 비스듬히 올라갔다.
“네가 레오를 감싸는게 한 두번 일도 아니고, 그래도 가장 가깝다고 곤경에 처하게 하고 싶진 않겠지만... 뭐, 너도 비슷한 걸 기르잖아?”
순간 레널드의 입가가 굳어졌다. 비슷한 것, 에드워드가 그렇게 말하자 리바이의 입꼬리도 올라간다. 둘은 이죽이죽 웃으며, 마치 약점을 잡았다는 식으로 동생을 쳐다보았다. 알렉산드로 토레스, 둘은 레널드의 절친한 검은 고양이에 대해 익히 들은 바가 있었다. 레널드가 거의 매일 식사를 같이 하고, 심지어 집에도 드나드는 그 검은 고양이. 남이 보기에 절친한 친구라기에는 정도가 너무 심했다. 남의 시선을 신경쓸수밖에 없는 헬하우스가의 검은개가, 집안에서도 제일 소심한 셋째가-
“맞아, 하지만 형들이 기르는 것들보단 착해. 뉴스에 나오지도 않았고, 제 동생을 어리게 만들어달라고 사주하지도 않았지.”
에드워드와 리바이의 얼굴이 창백히 굳어졌다. 레널드는 아주 담담하게, 하지만 듣는 시민으로 하여금 몸을 사릴 수밖에 없는 말들을 내뱉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형들이 저지른 수많은 비리들과 잘못들을, 아버지와 여론 몰래 처리하는 것이 그의 일과 중 하나였다. 그는 굳이 자신이 그런 중요한 사실들을 손아귀에 쥐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았다. 만약 형들이 알렉스에 대해 언급만 하지 않았더라면 그저 웃으며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변호사로서 일해온 세월동안, 중요한 순간에 말을 아끼면 좋지 못한다는 것을 수차례 배워왔다. 이건 일종의 협박이었다. 그의 소중한 검은 고양이를 건드리지 말라는.
“그럼 난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 잘자, 에드워드형, 리바이형.”
그는 그 말만 남기고는 재빨리 서재로 숨어들었다. 육중한 나무문이 닫히고, 마치 도서관을 방불케하는 거대한 책들의 무덤속에 발길을 옮겨놓고나서야 짧은 숨을 내쉬고는 주저앉을 수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심장이 다시 자맥질을 하며 몸속의 피를 빠르게 돌리고 있었다. 홧홧하게 열이 온 몸에서 피어오른다. 에드워드와 리바이의 표정이 그렇게 변해버린 것도, 그리고 둘을 그렇게 만들 수 있는 말을 한 것도, 레널드 헬하우스로서는 태어나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는 형들에게 어떠한 공격도 가해본 적이 없었다. 육체적은 물론이고 정신적으로도, 언제나 레널드 헬하우스는 두 지옥개보다 아래인 존재였다, 아니 그런 존재로 여겨졌다. 하지만 그에게는 언제나 두 형들의 목에 걸 밧줄이 들려있었다. 그는 그 사실을, 방금전에서야 처음으로 보여준 것이다. 여태껏 없었던 일, 모든 것은 다 그가 사랑해마지 않은 검은 고양이 때문이었다.
그래서였을까, 후회는 들었지만 처음에 들던 두려움은 알렉스를 떠오르니 눈처럼 녹아서 사라져버렸다. 그는 방금 전 자신이 한 행동을, 아주 가볍게, 협박을 했다는 야심의 가책도 없이 수긍했다. 모든 것은 자신과 알렉스를 지키기 위한 행동으로, 어찌보면 자기방어라고도 볼 수 있다고 후들거리는 다리를 간신히 일으켜세우며 정당화했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도 알아차리고 있었다. 사실 둘이 그런 표정을 지었을 때, 그는 형들을 향해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비웃고 싶었다.
-띵동-
몸을 추스르며 일어서자 주머니속의 스마트폰이 진동을 울렸다. 주머니에서 꺼낼 때 다시 진동이 울렸다. 처음 울린 건 레오, 두 번째로 울린 건 알렉스의 문자였다. 그는 우선 알렉스의 문자부터 확인하였다.
짐이 처음으로 날았던 순간이래. 이번 주 주말에 시간있어? 가구보러가자.◟( ˘•ω•˘ )◞
문자에는 동영상이 첨부되어 있었다. 파란색 꼬마악마가 갓 태어난 동생-으로 보이는-을 돌보는 영상이었다. 짐-, 아이는 소리를 지르며 공을 만지고 놀던 동생에게 소리쳤다. 동생의 등에서는 날개가 파닥파닥거렸고, 이내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화면은 갑자기 암전했고, 굵은 남자목소리가 다시 짐-이라고 불리는 아이-을 불러댔다.
하, 레널드의 입가에서 잘은 웃음이 터져나왔다. 방금전까지 있었던 일들이 마치 꿈처럼 여겨져서, 그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리고는 능숙하게, 단 한번의 지체도 없이 자신이 끔찍이도 아끼는 검은 고양이를 향해 통화버튼을 눌렀다.
검은고양이의 출생방법은 순전히 오리지날입니다. 원작에서는 아직 풀지도 않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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