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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둠데 전력 _ 애덤바니애덤 _ 87번 본문

기타/DOOMSDAY CITY

#둠데 전력 _ 애덤바니애덤 _ 87번

rabbitvaseline 2016. 12. 10. 22:28

첫번째



자신의 뒤통수를 아주 살포시 후려치는 모양새에 버나드 블루는 고개를 돌렸다. 오랜만의 경기여서인지 아드레날린이 미친듯이 솟구쳐올랐기에, 그는 자신을 건드린 상대방이 누군지도 못알아보는 모양이었다. 머리카락은 땀에 자꾸 얼굴에 붙어댔고, 붉게 상기된 얼굴에서는 열이 홧홧하게 올라오고 있었다. 그는 몇번 초점을 맞추려다가 상대방이 방금전까지 적으로 싸웠던 팀의 에이스란걸 알아챘다.

"야, 너 정말 최고였어!"

그는 순간 그게 무슨 말인지 못알아듣다가, 몇초가 지나서야 입가에 웃음을 지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자, 그제야 시민들의 함성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 와아, 하는 커다란 함성과 응원도구에서 나오는 뿌뿌대는 소리, 응원곡들이 이리저리 뒤섞여서 난장판을 만들어대고 있었지만, 오히려 그의 심장소리와 어우러져 하모니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는 크게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터져나올 것 같은 눈물을 간신히 참아내며, 자신에게 달려드는 동료들에게 몸을 내맡겼다.


할로윈기념 자선경기는 스포츠신문의 일면을 장식했다. 고교지옥축구에서 톱을 다투는 블루 퍼스와 오렌지 헬라의 경기라는 점에서도 주목할만 했지만, 무엇보다도 비극의 에이스 버나드 블루의 컴백이라는 점에서 큰 화제를 낳을 수 밖에 없었다. 날개를 잃고 추락해버린 비극의 에이스는, 다시 새로운 포지션을 얻어 경기에 임했고,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며 그의 성공적인 복귀를 세상에 알렸다는게 기사들의 주된 내용이었다. 매스컴들은 그를 향해 새로운 포화를 쏘아붙였고, 언제 복학할거냐, 그동안 무엇을 했느냐는 질문에 시달려야 했다. 게다가 경기가 너무나도 성공적이었기에, 그를 코치로 고용했던 감독조차도 언제 복귀할거냐고 쏘아대곤 하였다.

그러니 그가 케르베로스에 가는게 드물어진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릭은 가끔씩 학교에서 보았지만, 레오나 애덤, CB같은 직원들은 문자와 전화만으로 친구를 못보는 외로움을 달래야했다. 특히 그의 팬을 자처하는 애덤은 더더욱 착잡한 심경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바니만 보면 왜 이렇게 얼굴을 못보냐고 들들 볶아댈 작정이었지만, 동시에 그의 성공적인 복귀에 기뻐하며 팬의 대표로서 선물도 할 작정이었다.


"그러니까 언제 오냐고?!"

-"나라고 언제인지 알겠냐? 하지만 이번주 안에는 꼭 갈거야."

"내가 보낸 톡은 봤냐? 너 홈페이지 다시 만들어서 올렸거든."

-"아, 그거 프로필 잘못된 부분 있어. 그리고 제발 그 상반신 탈의사진좀 내려."

"미안, 네 사진중에서는 그나마 잘나온게 그것밖에 없어."

-"애덤!"

애덤은 급히 통화를 마쳤다. 그의 손은 다시 홈페이지를 향해 있었다. 자랑하는 아빠백통을 이용하여 찍은 초고화질 경기사진들을 업로드하고 게시판에서 헛된 소리를 하는 시민들을 차단했다. 120여년전의 경기영상도 다시 업로드를 하니 모두들 팬클럽 회장님 만세라고 외치며 애덤을 칭송해댔다. 그는 살짝 으쓱해져서는, 이번 경기에서 버나드 블루의 활약상과 한계, 고쳐야할 점들을 샅샅히 정리하여 글을 썼다.





바니는 지금 자신앞에 무엇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오랜만에 케르베로스에 출근하자마자 사장의 매달림에 시달려야 했으며-덧붙여 배신자 소리도-, 자신의 앞에 쌓여있는 거대한 상자들의 산에 경악해야만 했다. 모두들 너의 오랜 팬들의 선물이다, 하면서 애덤이 말하자 도대체 어떻게 옮겨가냐고 한탄을 해야 할 정도였다. 상자 몇개를 뜯어보니 바니의 모습을 본딴 초콜릿과 과자, 선수복을 입은 인형과 피규어들이 튀어나왔다.

"...먹을건 샘에게 주면 되지만, 이건;;;;"

팔찌같은 액세서리, 그의 사진이나 일러스트가 그려진 물병들이 한가득이었으며 심지어는 팬티에까지 그의 얼굴이 인쇄되어 있어서 버릴까 고민까지 할 물품들도 있었다. 그는 식은 땀을 흘리며 물건들을 살펴보았지만, 정말로 눈물이 나게도 그에 대한 팬들의 사랑이 담겨져있던지라 차마 쓰레기통에다 버릴 수는 없었다. 몇번 상자를 뜯고 확인하다 바니는 입을 삐쭉 세우고는 다른 곳을 보는 척 하는 팬클럽 회장을 바라보았다. 그는 스마트폰을 만지고는 있었지만, 사실은 아무 것도 하고 있지 않았다. 일부러 시선을 피하는듯한 모습에 바니는 오기가 생겼다.

"...회장님은 뭐 없어?"

"뭐 말이야? 저번 경기에서 보인 추태? 전반전 끝날때 붙잡히면 어떻게 하냐, 그런거?"

"그런건 이미 감독님에게도 많이 들었던거야. 선물말이야, 회장님은 선물 안줘?"

애덤은 딴청을 부리며 무슨 소리냐고 물었지만, 정작 바니와는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다. 어딘지 얼굴이 살짝 붉혀지는것이 분명 선물을 준비하고 있음이 분명했지만 일부러 숨기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못한 릭은 문 옆에 있던 저 종이가방이, 사실은 애덤이 들고 온거라고 말할까 하고 간을 보았다.

"그러고보니 애덤이 종이가방을 가져왔었네."

"야!!"

가브리엘은 아무렇지도 않게, 애덤의 구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뒤뚱뒤뚱거리며 자신만한 크기의 종이가방을 들고 왔다. 결국 그것을 받아든, 이름처럼 새빨개진 버나드 블루 팬클럽 회장은 고개를 정반대로 돌리고는 바니에게 종이가방을 건네었다.

"그.. 경기 잘 봤습니다.... 아, 젠장."

종이가방은 꽤나 무거웠고, 안에는 유리가 들었는지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방 안에는 갈색 포장지로 정성스레 싸여진, 커다란 덩어리가 들어 있었다. 바니는 조심스레 포장지를 뜯었다. 그리고 자신의 얼굴과 정면으로 마주했다.

"...저번 경기때 사진이야, 가장 잘 나온거라..."

다시 애덤의 얼굴이 새빨개지며 목소리가 작아졌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바니의 얼굴도 붉게 타들어갔다. 땀을 흘리며 매우 즐거워하는 모습의 운동선수, 누군가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모습에는 찍은 사람의 애정이 크게 담겨져있어서, 애덤이 진심으로 이 사진을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고마워, 애덤."

바니의 목소리마저 작아진 것은 단순 착각은 아니리라. 그 말에 애덤은 헛기침을 해대며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갈 수 밖에 없었다. 도저히 이 상황을 견디기에는 너무나도 부끄러웠기 때문이었다. 복도의 미지근한 공기를 내마쉬며 간신히 진정하려고 했을까, 다시 문이 열리며 이번에는 바니도 부끄러워하며 밖으로 나왔다. 그의 손에는 A4 크기의 납작한 상자가 들려있었다. 

"야, 왜 나왔어? 아직 선물 많이 남았잖아."

"왜 나왔냐니... 그러니까 이거 선물이야."

"응? 선물? 누구한테..... 설마 나한테 주는거냐?"

바니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오글거리는 상황에서는 말이란 것을 꺼내기가 참으로 어려울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몇번이고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애덤을 향해 상자를 건네었다. 

"나 없을때 열어, 제발 부탁이야."

바니의 얼굴이 빨갛게 익어갔다. 하지만 애덤은 그런말은 들리지도 않았는지 다짜고짜 뚜껑을 열고서는 상자 안에 들은 것을 확인하려고 했다. 바니의 비명소리가 울리려는 찰나, 바닥에 상자가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그의 앞에서 무언가가 펼쳐졌다.


선명하고 큰 87이라는 숫자, 하얀 바탕에 소매부분만 빨간, 팀 이름과 맞지 않는다며 애덤이 몇번이고 투덜거렸던-

"....오, 망할."

블루 퍼스 87번 유니폼. 애덤은 블루 퍼스란 팀에서 87번을 어떤 취급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바니가 반쯤 은퇴한 뒤로는 영구결번 취급을 당해왔었고, 실제로 그가 돌아올때까지는 아무도 저 87번을 입지 않고 있었다. 그 87번 유니폼 하단에, 서툴게 쓴 것처럼 보이는 사인이 커다랗게 새겨져 있었다.

-나의 팬, 애덤 D. 애플에게, 버나드 블루-

"야, 나 없을 때 보라고 그랬-"

"이거 진짜야?"

애덤은 몇번이고 유니폼을 확인하면서 바니에게 되물었다. 바니의 글씨라면 회사에 들어오고나서는 지겹도록 보았으니 필체는 분명했다. 그는 이 사인을 한게 '사실'이냐고 바니에게 묻고 있었다. 바니는 다시 얼굴을 붉히며 진짜라고 답하였다. 거기에 쓰여진 구절이며 글씨, 유니폼까지도 온전히 버나드 블루의 것이라면서 말이다. 

"...그러냐..."

그는 다시 유니폼을 살펴보았다. 선수시절에 입었던 유니폼이었는지 어딘가를 헤졌고, 어딘가에는 얼룩이 남아있었다. 87번이라는 숫자도 끄트머리는 바래있었고 목의 컬러부분도 실밥이 풀려진데가 있었다. 그리고 유니폼을 뒤집자, 87번이라는 숫자 위에 커다란 두개의 가느다란 선이 보였다. 선이라기보다는 구멍이라고도 보는게 맞을 것이다. 길다란 두개의 구멍을 확인하는 순간, 애덤은 고개를 들어 바니를 바라보았다.

"...진짜야?"

바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두개의 구멍, 애덤으로서는 전혀 상상도 할 수 없을 그런 구멍이 87번 위에 새겨져있었다. 등에 달려있는 날개가 빠져나올 구멍이었다. 120여년 전에 하늘을 날아다니던 바니의 날개를 위한.

어째서 너에게 반했던걸까, 경기장속에서 버나드 블루는 그 커다란 파란 날개로 하늘을 제패하였다. 몸싸움을 벌여가면서도 공을 포기하려하지 않은 그 모습은 동경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릭을 통해 안면을 익히게 되면서부터, 더더욱 그는 버나드 블루라는 악마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는 경기에 임할때에는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게으름을 피우지도 않고, 오직 자신이 바라는 길 하나만을 걸고 달려가고 있었다.

그런 그의, 그랬던 과거가 담겨진, 그 과거를 너무나도 사랑했던, 그리고 앞으로도 사랑할 자신에게-


"...홈페이지에 올린건 봤어. 아직 정식으로 선수가 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일단 노력은 해볼-, 우냐?"

애덤은 뒤돌아서서는 팔로 눈물을 닦았다. 애써 받은 선물에 눈물을 묻힐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흘러나오는 눈물을 다 닦고서는, 어느새 벌개진 코를 모른채하며 중얼거렸다.

"...고마워."

"응, 뭐라고?"

어색한 표정을 지어대며 바니가 모른척을 하자 그의 입가가 살포시 올라갔다. 그도 부끄러워하는 것을 확신하자 애덤은 간신히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저번 경기때 태클이 너무 약했어. 아예 뼈를 부러뜨릴 각오로 했어야지."

그는 아주 조심히, 마치 보물을 다루는 것처럼 유니폼을 개었다. 그리고 정말로 단정히 개었던 유니폼을 상자에 넣고 뚜껑을 닫았다. 지난 200여년간의, 팬으로서의 짝사랑이 보답을 받은 느낌에 그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바니가 그게 무슨 소리냐며 묻자, 이번에는 살짝 장난스레 대답한다.

"고마워, 이게 첫 사인이네."

살짝 얼굴을 붉히자, 바니는 마치 당연하다는 투로, 하지만 자신도 부끄럽고 이 상황이 어색해죽겠다는 투로 대답했다.

"나도 처음이야."

두 젊은 악마는 서로 얼굴을 붉힌채 웃음을 터뜨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냐며 친구가 문을 열때까지.











트위터에 풀었던 썰을 재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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