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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레니 _ Mistletoe?? Mistletoe!! 본문

기타/DOOMSDAY CITY

알렉스레니 _ Mistletoe?? Mistletoe!!

rabbitvaseline 2016. 12. 25. 14:58












뉴욕의 크리스마스란 축제는 꽤나 화려하고 활기찼다. 거리 곳곳에는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캐롤이 매우 시끄럽게-그들의 기준에서는- 울렸고, 간간이 빨간 옷과 하얀 가짜수염을 붙인 사내가 호호호, 하고 웃으며 돌아다니는 걸 볼 수 있었다. 가게란 가게마다 창문에 화려한 장식을 붙였고, 가로수들에게는 꼬마전구가 달려, 마치 불이 난 것처럼 반짝거렸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지옥의 시민 둘의 눈을 사로잡을만한걸 고르자면, 아무래도 홀리데이 마켓과 록펠러센터의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였다. 비록 점등식을 보지는 못했지만, 한눈에 담기도 어려울 정도로 커다란 삼나무에 여러 장식들을 화려하게 단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인간들의 분위기 또한 화려하게 빛나는 트리처럼 매우 들떠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크리스마스라고는 책에서나 보았을 인간으로 보이는 악마 둘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둘은 악마는 아니었고 지옥개와 검은 고양이라는 종족명을 따로 갖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은 지옥의 시민들이니, 인간들 기준으로 악마라 불러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이 시민 둘은 여권의 마법으로 인간의 모습을 한 채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한명은 시끄럽다고 얼굴을 찌푸리며 홀리데이 마켓의 지도를 보고 있었고, 나머지 한명은 이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는 듯이 어느새 머리에는 사슴뿔 머리띠까지 쓰고는 돌아다니고 있었다.

샌디-!”

지옥개, 그러니 레널드 헬하우스는 산타요정 인형을 보고 눈을 반짝이는 검은 고양이였던 이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크리스마스를 막 앞둔 지금에선 홀리데이 마켓은 사람들로 매우 붐비고 있었다. 그는 이런 곳에서 검은 고양이가 미아가 되어, 자신을 방송으로 찾는 그런 부끄러운 꼴은 보고 싶지 않았다. 한편 목덜미를 붙잡힌, 다시 보면 화려하고 추한 크리스마스 스웨터를 입은 알렉산드로 토레스는 입술을 삐쭉 내밀고는 제 목덜미를 붙잡은 이에게 불만을 토했다.

아저씨도 참-! 여행을 왔으면 당연히 즐겨야지! 게다가 축제라고, 봐 노래도 엄청 신나잖아!”

스피커에서는 소년합창단이 부르는 캐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야말로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곡이었으나, 이 지옥의 시민들에게는 매우 신나는 노래로 들리고 있었다. 알렉스는 몇 번 몸을 흔들다가 다시 레널드의 제지를 받았다.

빨리 선물 고르고 집으로 돌아가야지.”

선물이라면 여기 오기 전에 벌써 정했어. 왜 아저씨도 알잖아, ‘로드리게스의 불행한 나날’, 누가 그걸 영어로 번역한게 있어서 그걸-”

샌디, 그걸 선물하는건 불법이야. 그냥 여기서 사는 걸로 참아.”

로드리게스의 불행한 나날은 한창 지옥에서는 베스트셀러에 올라와있는 책이었다. 로드리게스라는 검은 고양이가 결국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는, 그런 내용이었던 걸로 레널드는 기억하고 있었다. 애석하게도 지옥의 물품, 특히 서적류를 인간에게 공개하는 것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그는 지옥에서 나름 잘 나가는 변호사로서, 이 검은 고양이의 변호를 맡는 걸 원하지 않았다. 전에도 그가 오토바이 사고를 내서 자다 깨서 경찰서에 가지를 않았던가.

그 책 재미있는 책이란 말야...”

만약 여기가 지옥이었다면 그의 귀가 내려갔겠지, 알렉스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어깨를 늘어뜨리고는, 이번에는 나름 침착하게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이제 막 저녁이 되어서일까, 홀리데이 마켓에 모여드는 인간들은 점점 더 많아지고 있었다.

 

사실 둘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려는 건, 서로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서라거나 하는 이유는 아니었다. 둘은 평소에도 선물을 자주 주고받는 편이었고, 기념일을 따질 정도로 한가로운 시민들은 아니었기에 굳이 특정한 날은 챙기지 않았다. 게다가 이계의 축제에 선물이라니, 아마 평소처럼 여행을 왔었다면 그저 축제분위기만 즐기고 말았을 것이었다. 물론 지옥에서도 크리스마스는 특별한 날이었다. 인간계의 최대축제이니만큼, 크리스마스 전후로 인간계 관광의 성수기였던 것이다.

비행기조차 잡기 힘들다는 성수기를 위해 둘은 1년 전부터 비행기를 예약해놓았으며, 휴가도 그 기간에 맞추었다. 인간계에서는 사나흘 정도되는 기간을 위해, 지옥에서 한달을 비워놓아야 했고, 덕분에 평년보다도 더욱 기밀하게 일해야 했다. 그러니 둘은 어떻게든 크리스마스를 즐기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여러 가지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이브에 열리는 파티였다.

 

좋아, 난 이걸로 할래! 아저씨는 벌써 골랐어? 뭐 골랐어?”

비밀이야.”

알렉스는 커다란 꼭두각시인형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특별히 검은고양이 머리로 해달라고 주문하고서는 제 몸통만한 상자를 들고 가게에서 나왔다. 크리스마스답게 상자는 빨간색이었으며 커다란 금빛리본이 달려있었다. 레니가 들고 있던 상자는 필통사이즈 정도로 매우 작았다. 알렉스는 선물이 너무 작다고 투덜거렸지만, 레널드의 어차피 너에게 줄 거는 아니라는 말에 다시 또 투덜거렸다.

만약에 내가 걸릴 수도 있잖아. 랜덤으로 선물을 돌리는 거래매.”

첫째, 이번 파티에는 20여명이 참가해. 둘째, 나는 네 옆자리에 있을거니까 그런 걱정은 하지마.”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그러는 너야말로 선물로서는 애매하잖아.”

도대체 어디에 쓸모가 있느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저 투덜거릴게 뻔하기에 말을 참기로 했다. 알렉스는 계속해서 레널드의 선물을 알아내려고 상자에 손을 대었다. 그러다 꿀밤까지 맞고는 곧 울 것 같은, 그러나 상당히 삐친 표정으로 레널드를 바라보았다. 레널드는 한숨을 내쉬려다 말고는 선물상자를 제 외투안에 넣었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이 검은 고양이를 달랠 수 있을지를 곰곰이 생각했다.

 

 

 

파티는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에 시작되었다. 사업상 안면을 익힌 변호사의 초대였는데, 의외로 알렉스는 그게 내심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레널드는 별장에서 나와 파티장소로 향하는 와중에도 어디까지나 동료이며 그녀에겐 이미 남자친구가 있다고, 변명처럼 보이는 말을 늘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남자친구가 꽤 유명한 배우야. 왜 너도 그 드라마 좋아했었잖아.”

그렇다고 이렇게 쉽게 초대한다고? 나처럼 엄청 친한 것도 아니잖아.”

너보다 친한 시민은 어디에도 없어. 그리고 내가 크리스마스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하니까 한번 느껴보라고 그런거야. 정말이야, 아무 관계도 아냐.”

그는 어째서 그녀와 자신이 단순한 동료사이인지를 알렉스에게 설명해야 되는지 알 수 없었다. 이 검은 고양이는 생각보다 질투심이 많았으며, 자신보다 레널드와 친한 시민은 용납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레널드도 알렉스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렇다하더라도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그의 지위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렇게 변명처럼 늘어놓아야하는 처지가 한심하기도 했다.

정말 아무 관계도 아니지? 정말이지? 시민들 중에는 인간계에서 애인을 갖는 경우도 많다던데-”

만약 가졌으면 형들이 날 고발했을테니 아니야.”

그는 그 말에 아예 정색까지 하고서는 재빨리 걸음을 옮겼다. 음식을 담은 백팩보다 자신을 바라보는 알렉스의 시선이 더 무거웠다. 아직도 의심의 시선을 거두지 않는 검은 고양이를 무시해버리자, 알렉스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커다란 선물상자를 들고는 뒤뚱거리며 그의 뒤를 따랐다.

 

어서와요, 레니!”

레니라는 별명에 알렉스의 시선이 레널드를 향해 쏘아졌다. 레널드는 매우 당황스런 상황임에도 변호사로서의 기억을 떠올려 평온함을 보이려 했다. 그는 자신을 향한 동료의 포옹에 화답했다. 알렉스의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나올 것 같아서 그녀의 손이 등에 닿자마다 곧바로 품에서 떨어졌다.

알렉스, 인사해. 이쪽이 변호사인 윤진씨, 윤씨, 이쪽이 제 친구인 알렉스 토레스입니다.”

안녕하세요, 알렉스씨. 들었던 것보다 훨씬 더 잘생기셨네요! 이렇게 커다란 선물이라니, 훨씬 더 기대돼요!”

알렉스는 가볍게 인사를 했다. 그는 여자라는 생물이 불편하기도 했었지만, 그것보다는 방금 전 레널드와 나눴던 포옹이 신경쓰여 미칠 지경이었다. 인간들은 친구간의 스킨쉽도 상당히 관대했다. 특히 여성들이 남성들보다는 더 그런 경향을 보였다.

파티가 열리는 곳은 그녀의 삼촌이 운영하는 술집이었다. 뉴욕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인테리어였지만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니 그나마 어울렸다. 동양적인 분위기와 달리 한편에는 커다란 그랜드피아노가 놓여져, 그나마 희석시켰던 이질감을 드러냈다. 내부는 난방을 틀어놓았는지, 아니면 사람들이 많아서였는지 훈훈한 온기가 넘쳤다. 신발을 벗고 올라오라는 말에 의아해하면서도 노란색 장판위에 올라가자 발바닥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둘은 일단 짐을 풀고는 가운데에 놓인 커다란 테이블에 근처 식당에서 산 닭날개요리를 올려놓았다. 테이블 위에는 다른 사람들이 사온 요리들과 진이 주문한 요리들이 널려있었다. 맛있는 냄새가 퍼졌지만 아직 파티도 시작하지 않은데다 그다지 배가 고프지는 않았기에 둘은 음식에는 손도 대지 않고 파티에 온 사람들을 관찰했다.

각기 다른 인종, 다른 연령대를 가진 사람들은 저마다 세네명씩 모여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각기 다른 크기의 선물상자를 들고 있었는데, 정작 알렉스의 것보다 작은걸 들고 있는 사람은 없어서 레널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몇몇 인간들은 가공할만한 상자의 크기를 보고는 경의와 감탄을 표했다. 파티는 시작될 시간에도 열리지 않았다. 사람들 사이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울렸고, 진은 초조한 표정으로 스마트폰과 시계를 붙들었다. 분명 꼭 필요한 사람이 오지 않은 것 같았다. 그녀는 몇 번 통화를 시도하다, 마치 귀신이 된 것처럼 얼굴에 분노를 드러냈다.

미안해요, 아직 노만이 안와-”

그녀가 말을 이으려는 찰나에 술집의 두터운 문이 열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는 세명이었다, 진은 그 중 가운데 남자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들었다.

노만-!”

그녀는 정말 한 대라도 치고싶은 심경으로 노만이라 불린 남자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하지만 그녀의 호언장담대로 폭력이 이어질 거라는 예상과 달리, 그녀는 자신의 사랑하는 연인에게 입술을 부비어댔다. 쪽쪽거리는 소리는 실내에서 흐르는 캐롤과 함께 어딘가 사랑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지만, 한편으로 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살짝 민망한 감도 있었다.

늦었잖아. 어쩌다가 그런거야?”

미안, 리차드가 악보를 계속 찾아서 그랬어.”

그러자 진은 노만의 옆에 서 있던 투블럭 헤어스타일을 한 남자를 가볍게 때렸다. 남자는 얕게 웃음소리를 내뱉고는 미안하다고 사과하였는데, 알렉스와 레널드의 눈에 그 남자의 모습이 상당히 익숙했다. 아니, 익숙한 정도가 아니었다. 둘은 그 남자를 아주 정확히 잘 알고 있었다. 헤어스타일이 바뀌고, 겉에 무언가를 더 껴입었다 하더라도 저 장난기어린 표정을 그들은 잊지 못한다. 10여개월 전, 모든 빚을 다 갚고 무사히 인간계로 돌아가 버린 철없는 영혼을-

노만, 리치 인사해. 이쪽은 헬하우스 인더스트리의 레널드 헬하우스씨, 이쪽은 친구인 알렉스 토레스씨야. 여기는 내 남자친구 노만, 요즘 드라마에도 자주 나와요. 그리고 이쪽은 리차드 힉슨, 생긴건 이래봬도 일단 피아니스트에요. 사실 피아노를 쳐달라고 불렀는데, 네가 늦으면 어떻게해.”

미안해, . 정말로 악보가 안보이더라니까. 정말 회심으로 지은 곡이었어.”

리차드는 정말로 미안했던지 시무룩한 표정을 진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둘을 보고는 악수를 건네었는데,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눈치였다. 둘의 얼굴을 골몰히 쳐다보고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 우리 전에 어디서 만난 적이 없던가요? 왜 이렇게 이름이 낯익지?”

“...저도 리차드씨에 대해서는 많이 들었습니다.”

역시 리차드는 둘에 대해서 아무것도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그저 어디서 본 것같다는 기시감만 남아있을 뿐, 그가 지옥에서 보냈던 나날들은 이미 머릿속에서 깨끗하게 사라져 있었다. 알렉스는 악수를 나누면서도 그것이 상당히 아쉽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그렇게나 유쾌한 영혼을 마음에 들어했었다.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리차드는 곧바로 피아노를 향해 걸어갔다. 몇 번 음을 확인해보더니 이내 감미로운 캐롤이 그의 손끝에서 흘러나왔다. 모두들 웅성거리던 것도 멈추고, 이제는 언더컷 피아니스트가 되어버린 리차드 힉슨의 연주를 귀기울여 들었다.

 

리차드의 캐롤이 울려퍼짐과 동시에 시작된 파티는 생각보다는 조용했다. 모두들 손에 손마다 잔과 접시를 들고는 음식을 즐기며 근처에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레널드는 진과 같이 변호사 동료들과 법에 관련한 말들을 늘어놓고 있었다. 모두들 레널드가 있는 나라-라고 일단은 속였다-에서만 통용되는 법에 흥미를 가졌고, 레널드 또한 인간계에서나 있을 법한 법에 관심을 쏟았다. 덕분에 알렉스는 멀찍이 서서 입안에 음식들을 우겨넣고만 있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모두들 심드렁한 표정으로 변호사집단을 째려보는 이 남자에게 관심을 가지기는 했으나, 분위기가 워낙 심각했기 때문에 차마 다가갈 생각은 하지 못했다.

언젠가 한번 가보고싶네요. 아직 미수교국이라니.”

.”

레널드는 진의 말에 미소로 화답하면서도 곁눈질로 자신을 매섭게 바라보는 알렉스를 쳐다보았다. 입에는 음식물들을 잔뜩 우겨넣은 채로 보는 표정이 제법 불쌍해보이기도 했다. 그는 가볍게 손을 흔들어댔다. 하지만 알렉스는 오히려 더 표정을 썩히더니 아예 등을 돌려버리기까지 하는게 아닌가.

친구분이 속이 많이 상했나봐요.”

... 평소에 그러지는 않는데 말이죠. 모르는 사람들과도 쉽게 친해지는데, 오늘따라 왜 이러는지...”

 

물론 그 썩은 표정을 보고 다가갈 사람이 있을 리가. 마치 썩은 표정을 짓는다는 고양이처럼 그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두들 사람들을 붙잡고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자신은 다른 사람들이 다가오지 않는건 상관없었다. 그저 자신을 내버려둔채 동료들하고만 이야기를 나누는 저 지옥개 때문에 속이 상했을 뿐이었다. 그는 커다란 메뚜기가 꽂혀져있는 꼬치를 들어올려 입안에 넣었다. 메뚜기는 그의 입속에서 짭쪼롬하면서도 바삭하게 부서졌다.

마음에 드시나요?”

알렉스를 향해 고수머리를 한 사내가 다가왔다. 그는 한손에는 샴페인을 들고 한손에는 거미꼬치를 들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 곤충요리를 갖고 온 사람 같았다. 그는 알렉스가 꽤나 만족스러워하며 요리를 먹는 모습을 보고는 다가왔다. 사실 그 말고 이 요리에 손을 댄 사람은 알렉스가 처음이었다.

..그럭저럭요.”

살짝 처진 눈에 뿔테안경을 쓰고, 단정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있다. 재킷의 색이 검정이라서 그런건가, 알렉스의 눈에는 이 사내가 자신을 버린 지옥개와 닮아보였다. 사내는 자신을 제임스라고 소개하고서는 친절히 짐이라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저는 육식으로 인한 환경오염에 충식에 관심을 갖게 되었죠.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런 모임에서는 통하지 않네요.”

“...그런가요, 맛만 좋은데요. , 그 거미는 조금 그렇긴 하지만요.”

사실 이 거미에게는 매우 슬픈 사연이 있습니다만, 한번 들어보실래요?”

그는 거미와 돼지의 우정이 담긴 이야기를 알렉스에게 늘어놓았다. 이 거미는 그 돼지와 우정을 나눈 거미의 몇몇대손이라느니, 하는 살짝 허풍섞인 이야기였지만 알렉스는 꽤나 흥미롭게 받아들였다. 그는 그게 진실이니 거짓이느니 하는 것도 생각하지 않은 채, 그저 사내가 떠드는 이야기에 몇 번 추임새를 주면서 대화를 이었다. 짐이 사실은 자신도 변호사라는 말에 더더욱 알렉스는 놀랄 수 밖에 없었는데, 그러니 절로 지옥개모습의 레널드와 겹쳐보이기까지 했다.

레널드씨와 함께 오셨다고요?”

짐은 아주 상큼하게 웃으며-레널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미소였다.- 샌디의 접시 위에 귀뚜라미 꼬치를 올려놓았다. 둘은 생각보다는 말이 잘 통하는 편이었기 때문인지, 어느새 즐겁게 단둘만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알렉스의 입에서는 맞장구를 치며 쾌활한 웃음이 터져나왔으며, 짐은 간간히 알렉스의 옷에 묻은 먼지나 음식물을 털어내주며 은근슬쩍 스킨쉽을 시도했다.

반면 그 광경을 보는 레널드의 표정은 한없이 썩어가고 있었다. 만약 지옥에서의 모습이었다면 더욱 더 분노를 참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친구분이 짐과 같이 있네요. 어머나, 어쩌지. 저 분 괜찮으실까.”

특히 마지막구절은 일부러 책을 읽는 톤으로 또박또박 말하며 레널드의 눈치를 살핀다. 진이 보기에는-스스로 게이다가 있다고 자부하는 그녀로서는- 아무리봐도 레널드와 알렉스의 관계는 꽤나 수상했다. 예전 레널드가 친구들 사이에서는 전혀 하지 않을 스킨쉽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던 모습을 떠오르니, 지금 이 상황이 이해가 갈만 했다. 레널드는 알렉스가 짐을 상대로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보니 속이 탈 것만 같았다. 게다가 짐은 정말 남들이 보면 플러팅을 한다고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알렉스의 몸에 은근슬쩍 터치를 가했다. 그는 속으로 한심한 고양이같으니라고, 하고 속상해했지만 그걸 이 동료 변호사 앞에서 내놓을 수는 없었다.

짐이 회사에서는 마성의 게이라고 불리거든요.”

마성의 게이요?”

. 짐은 마음만 먹으면 꼬시지 못하는 남자가 없어요.”

진은 샴페인을 한모금 마시며 알렉스와 짐이 있는 쪽을 흘겨보고서는 다시 레널드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아무리봐도 이 둘의 관계는 매우 지지부진한 것처럼 보인다. 레널드는 끝까지 알렉스를 친구라고 소개했으며, 알렉스도 그런 취급을 당연하게 여겼다. 하지만 어떤 친구들이 상대에게 그런 의도를 가지고 다가오는 사람을 질투한단 말인가. 게다가 가끔씩 상대방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분노와 함께 명백한 애정이 담겨있었다. 그녀는 그런 둘의 애정에 살짝 알코올을 뿌려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짐은, 진이 말한 대로 헤테로가 자기 스스로 바이란걸 깨닫게 하는 마법의 힘이 있었지만, 그게 100퍼센트 다 적중한 것은 아니었다. 그 사실을 옆에서 사인을 해주는 자신의 남자친구가 증명시켜준 적이 있었다.

아무리봐도... 어머나, 아예 겨우살이 밑으로 가잖아. 뭐해요, 레니? 어서 막아요, 크리스마스엔 겨우살이 밑에서 키스를 한단 말이에요.”

마지막 구절이 또 국어책을 읽는것처럼 또박또박하며 어색했지만 레널드는 굳이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읽은 가이드북에서도 그런 구절이 있었다. 그저 짧게 겨우살이 밑에서 키스를 하는 연인들은 영원히 행복해진댔던가, 그런 말과 함께 빨간 열매가 달린 가지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 영원히 행복해진다는, 연인들은, 키스를, 키스를, 자신도 아직 해보지도 못한-

 

샌디!”

부엌과 맞닿아있는 통로 위에 걸려있던 겨우살이를 향해 걸어가던 둘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여태껏 둘의 질투어린 시선에 부담을 느끼던 사람들의 시선도 자연스레 알렉스를 향해 걸어가는 지옥개를 향하였다. 그러고보니 레널드가 이 장소에서 알렉스를 샌디라 부른 것도 처음이었다. 그만큼 그는 자신이 지금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눈치채지도 못했다. 그저 동료들과의 잡담과 알코올, 알렉스를 향한 명백한 짐의 행동들이 그를 그 곳으로 이끌고 있었다. 알렉스는 처음엔 레널드를 무시하려다 다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레널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레널드는 인간으로 변하면 얼굴이 꽤나 창백하고 색소가 옅어진다. 그 창백한 얼굴이 약간의 홍조를 띠고서는 자신을 향해 성난 걸음으로 오고 있다.

“..?”

레널드가 알렉스를 향해 무언가 말하려던 참이었다.

안녕하세요, 레널드씨. 전 윤진의 직장동료인-”

짐의 인사도 상큼히 무시하고는 레널드는 알렉스의 손목을 붙잡았다. 유리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알렉스가 들고 있던 샴페인잔도 떨어졌지만 그는 전혀 그런 걸 신경쓰지 않았다. 모두의 시선이 그들을 향해 집중되었다는 것도, 분위기를 눈치 챈 리차드가 일부러 긴장감 넘치는 노래를 골라서 연주하고 있다는 것도 그는 몰랐다. 그저 털이 없어 미끈미끈한 피부의 감촉을 느끼며 서 있었다. 알렉스는 도대체 레널드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화가 난 얼굴로 있는지를 몰랐다. 그저 평소보다는 부루퉁한 표정으로 레널드의 얼굴을 쏘아보았다. 점점 짜증이 일었다. 도대체 이 아저씨는 왜.

할 말이 있으면 어서 해. 난 짐이랑 바쁘니까?”

?”

“..아저씨가 알 바는 아니지, . 그렇죠, ? 짐은 나한테 여기 있으면 겨우살이 밑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준댔어. 엄청 재밌는 일이 많이 일어난다고 했거든.”

상황을 눈치챈 짐의 이마에서 식은 땀이 흘러나왔다. 그는 자신을 째려보는 레널드의 시선을 애써 피하고는 그저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다시 레널드가 날선 시선으로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는듯한 검은 고양이를 바라보았다. 턱에 힘을 주니 으득, 하고 이빨리 갈리는 소리가 났다. 그는 위의 겨우살이 가지를 한번 올려다보았다. 연인에게는 영원을 가져다준다는, 한낱 나뭇가지 일뿐인 물건. 게다가 위에 걸려있는 것도 플라스틱으로 만든 조잡한 모조품이었다. 저딴게 뭐라고, 뭐라고 자신을 여기로- 알렉스의 황금빛 눈이 번득거렸다. 잡은 손목 아래로 맥박이 심하게 뛰었다. 자신의 목에서는 심장이 마치 튀어나올 것처럼 뛰고 있었다.

아저씨, 뭐해? 인간들이 다 보잖아, 당장-”

 

당장 놓아달라는 말은 갑작스레 끊겼다. 처음 알렉스는 자신의 입을 틀어 막은게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평소처럼 손바닥으로 입을 막은 걸까, 하고 생각했지만 입술에 맞닿는 감촉은 인간의 손바닥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더 부드럽고 더 얇으며, 더 온기를 띠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시야엔 질끈 눈을 감고 목석처럼 굳어있는 레널드 헬하우스의 얼굴이 보였다. 그 순간에는 마치 누가 귀를 막아놓았는지, 피아노소리마저 멈추어 정적으로 가득했다. 그러다 레널드가 입술을 떼자마자 사람들의 환호성과 함께 박수소리가 장내에게 격렬히 울렸다. 그러나 알렉스는 짐이 자신의 어깨를 건드리는 그 순간까지도 자신에게 무슨 상황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제 앞에 서 있는 레널드의 얼굴이 붉다 못해 검붉게 변해버렸다는 것과, 모두가 자신의 일처럼 매우 기뻐하고 있다는 것, 어째서인지 모르지만 피아니스트가 울음을 터뜨리며 앵그리 버드 테마송을 치고서는 거리에 자주 울리던 캐롤을 치고 있다는 것만 알아챘을 뿐이었다.

짐은 매우 감격한 표정이었다. 그는 레널드를 향해 엄지를 내밀더니 천천히 둘의 곁에서 떨어졌다. 다시 사람들의 환호성과 박수소리가 울렸다. 이게 무슨 일이냐고 레널드를 흘겨보고나서야, 매우 쑥스럽고 부끄럽고 자신도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정신차리기 힘든 지옥개의 입이 열렸다.

이게 짐이 너에게 하려고 한 일이야.”

자신을 보는 눈초리에 짐은 아니라고 극렬히 고개를 내저었다. 그는 단지 보여주기위해서라고 열심히 자신을 변호했다. 하지만 그의 말은 다시 환호성에 묵살당하고 말았는데, 이번에는 모든 상황을 눈치 챈 검은 고양이가 재빨리 사랑하는 이의 목덜미를 끌어안았기 때문이었다. 휘파람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축하한다는 소리가 식당 밖까지 흘러나갔다. 그와 함께 솔로 피아니스트의 연주는 저절로 격해졌다. 밖에서는 어느새 눈이 내리고 있었다. 길가에 하얗게, 그러나 반짝거리며 눈이 쌓여갔다.

 

 

 

 

 

 

 

 

 

레널드는 품에, 오늘 아침에도 보았던 커다란 선물상자를 끌어안고 반쯤 정신이 나간 표정으로 눈이 자박하게 쌓인 길거리를 걸어갔다. 거리 곳곳에서는 화려한 네온사인과 함께 메리크리스마스, 라는 축하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졸지에 오늘 파티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둘이 지겹도록 들은 소리기도 했다. 둘은 파티가 끝나기 전에 리차드와 함께 사진을 찍고, 싸인씨디까지 받았다. 물론 그때까지도 레널드는 도저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진심으로 알렉스에게 키스를 했다는걸 깨닫고는 패닉에 빠진 모양이었다. 그저 무시하려고만 했던 감정이 순간 한꺼번에 터져나왔던 반작용이었까, 알렉스가 자신에게 다시 키스를 돌려주었을 때에는 저도 모르게 그를 품에 안고서는 숨결이며 입술의 감촉을 즐기기까지 했다. 그러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환호성에 온 몸의 피가 거꾸로 솟아오르는 기분에 그는 현실에서 도피해버리고 말았다.

아저씨, 괜찮아?”

옆에서 진이 준비했다는 선물-크리스마스색 목도리였다-을 들고 있던 알렉스가 레널드를 건드렸다. 진심으로 걱정어린 표정에 레널드는 고개를 돌리려다 말고, 정신을 되찾고는 아주 힘겹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 한마디 꺼내기도 숨이 턱턱 막혔다. 그는 입김을 내며 장난을 치는 검은 고양이를 바라보았다. 추위에 코가 붉어진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제법 싫지는 않아서 더더욱 그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크리스마스 기념 질투하는 레널드!! 하지만 퇴고가 뭘까, 전개가 뭘까, 기승전결이란 과연 존재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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