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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ANDALIEN
크리스 돈-루치아노는 지금 헬코코아를 끓이고 있다. 그는 주방에서 무언가 마실 것을 찾아 헤매다, 멸균포장된 우유와 아직 뜯지도 않아서 상자채로 있는 코코아를 발견했다. 다행히도 유통기한은 넉넉하게 남아있었다. 그는 밀크팬에 우유를 붓다가 조심스레 거실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고성이 오갔지만 이제는 모두 진정했는지 자그맣게 대화하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다행이라고, 다시 연거푸 한숨을 내쉬며 그는 이 별장에 들어오던 순간을 떠올렸다. 아버지들은 소리가 나는 곳으로 뛰어 올라갔고, 그도 급히 그 뒤를 따랐다. 방은 그야말로 먼지투성이였고, 똑같이 그 방에 있던 시민들도 먼지와 소음에 잠식당하고 있었다. 늑대인간 아이 둘은 서로를 껴안고 울고 있었으며, 레널드 헬하우스는 검은 고양이를 ..
심장소리는 꽤나 규칙적으로, 하지만 빠르게 뛰고 있다. 지옥개는 조심스레 검은 고양이의 가슴팍에 제 얼굴을 부비었다. 하얗지만 풍성한 털은 닿는 감촉이 부드러워서 몇 번이고 볼과 입술을 그곳에 갖다댄다. 그러다 심장소리는 이제 규칙적인 다른 소리로 변하고 만다. 레널드는 그 소리를 알람삼으며 잠에서 깨어났다. 고작 3시간여의 수면이었지만, 긴장은 한층 풀린 것 같았다. 소파아래에서 알렉스가 양반다리를 하고는 열심히 무언가를 찾고 있다. 화면에는 지도가 커다랗게 펼쳐져 있었고, 꽤나 힘들었는지 평소에는 쓰지도 않을 안경까지 쓰고 있었다. 그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는 검은 고양이가 무언가를 찾는 모습을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알렉스가 저렇게 안경까지 쓰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은 어딘가 그를 흥분시키는 면이 있었다..
질식사 이건 그렇게 괴롭지는 않아요, 약을 먹고 잠에 들면 천천히 죽어갈겁니다, 그저 잠을 자는거라 생각하면 될거에요. 할로윈에서 만난 검은 고양이는 바퀴모양의 검은 덩어리를 보고 그렇게 말했다. 고양이는 어두워서 그로서는 눈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매대 안으로 들어가더니 다시 이것저것을 꺼내어왔다. 먼지쌓인 약들이 그와 검은 고양이 사이에 펼쳐졌다. 이건 꿈을 꾸게 해주는 환약이죠, 원하는 시민을 볼 수 있게 도와줄겁니다, 이건 엄청 괴롭게 죽는 숯입니다, 다들 마법적인 처리를 한 것들이죠. 그러자 그는 정말로 지친 목소리로 물었다. 이 환약이랑 이 숯을 동시에 쓰면 어떻게 되죠. 검은 고양이는 살짝 야살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의 멀어버린 한쪽 눈가가 기묘하게 씰룩거린다. 악몽을 꿀겁니다, 여..
* 퀴어혐오워딩 有 로날드 캐머런은 아침부터 짜증나는 일만 생긴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다니는 아들들은 새벽부터 싸워댔고, 해골개는 뭔 일이 있었는지 아침에 신문을 다 물어뜯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상태가 안 좋아보이던 토스트기는 결국 고장이 나버렸고, 화가 나서 발로 찼더니 엄한 새끼발가락만 아파왔다. 그것뿐이겠는가, 자동차는 시동이 잘 걸리지 않았고 학교에 도착하니 짜증자는 스켈레톤 수위가 자신을 향해 인사를 했다. 물론 그는 그 가증스러운 꼬리없는 종족과는 말할 생각이 없었으므로 평소대로 무시하고 지나갔다. 그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도시 외곽, 높은 언덕에 위치하고 있었고, 대다수는 악마와 지옥개였지만 간혹 부모를 잘 만난 할로윈 아이들이 있기도 했다. 물론 그는 지옥개였고 철저한 종족주의자였기 때문..
Side A. 직사각형 화면 안에서는 다양한 시민들이 저녁 길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일부러 뭉그러뜨린 것 같은 얼굴들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할로윈을 앞두고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일 터였다. 빵봉투를 들고 악마아이 두 명이 골목으로 뛰어들어가다 한 남자와 부딪혔다. 재빨리 장면을 멈추고 스크린 속을 들여다보니 얼룩덜룩한 검은 고양이가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동료에게 보여주니 드디어 잡았다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증거를 잡았어, 며칠 동안 밤을 새워가며 CCTV영상을 뒤진 보람이 있는 셈이었다. 하지만 그는 옆에서 동료가 잘했다고 칭찬하는 소리도 무시한 채, 스크린 너머로 뒷모습밖에 보이지 않는 한 남자에 시선을 집중했다. 그는 동료의 말..
날씨는 겨울하늘에 걸맞게 너무나도 화창했다. 하늘은 구름한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맑았고 깊었다. 햇살은 따사로워서, 찬 바람만 불지 않는다면 밖에서 돌아다니기 알맞을 것이었다. 제랄드 애머릿과 폴 제머슨이 만나기로 한 곳은 교외에 위치한 허름한 카페였다. 둘은 가족들끼리 면담을 할때마다 이곳에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했다. 평소 오토바이를 타는 시민들말고는 찾아오는 이가 없었으며, 덕분에 세간의 눈치를 신경쓰지 않고 이야기하기 편했다고 했다. 물론 그만큼 음료의 질은 장담하지 못한다고 애머릿은 너털웃음을 지었지만 말이다. 당장에라도 바퀴벌레가 나오지 않을까, 걱정해야 할 수준이라고 말이다.과연, 그의 말대로 시 외곽에 위치한 Hell’s Kitchen,의 외양은 대단했다. 이미 간판은 형편없이 녹이 ..
알렉스는 끝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레널드는 그의 휴대폰에 몇 번이고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어느새 통화연결음은 사라지고 부재중이라는 메시지만을 앵무새처럼 내뱉을 뿐이었다. 그는 혹시라도 일을 하고 있는게 아닐까 싶어 문자를 보내었지만, 아침에 일어나 확인했을 때에도 답장은 오지 않았다. 그는 그의 사랑스러운 검은 고양이가 행여나 위험한 일을 하지는 않는가, 걱정했다. 하지만 그런 걱정도 금방 잦아들었는데, 아침식사를 마치고 갑작스레 그의 아버지가 그를 호출했기 때문이었다.아버지, 그러니 헬하우스 인더스트리의 회장의 서재는 생각보다는 조촐했다. 호화찬란한 에드워드나 리바이와는, 그렇다고 담뱃진이 책상에 어린 자신의 서재와는 달랐다. 조촐하다면 조촐하지만 책 한권, 가구 하나마저 힘이 담겨져 있었다. 그러니..
눈을 실은 바람의 악마가 창문을 세차게 흔들고 지나갔다. 창문 틈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새어들어오고 있었고, 창틀에는 조그맣게 눈이 쌓여갔다. 창문에는 성에가 낀 탓에 하얗게 바깥풍경을 가리고 있었지만, 침대에 누워있는 지옥개는 바깥 풍경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 아마 바깥은 눈의 왕국으로 변해, 자동차와 시민들 모두가 쩔쩔매며 길거리를 나다니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중에는 분명 자신처럼 눈에 바퀴가 빠져서, 몇시간을 영하의 날씨에 얇은 코트차림으로 서 있을 시민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민도 감기에 걸려서 침대 안에서 호되게 고생하고 있을 터였다. 레널드는 이불을 제 목까지 끌어달올렸다. 방안에는 눈보라가 창문을 괴롭히는 소리와, 벽난로에서 장작이 타들어가는 소리밖에 울리지 않았다. 아니, 하..
“꺄오오-!”품에 안긴 꼬마악마의 날개가 힘차게 퍼덕였다. 아이는 검은 고양이의 높은 체온이 마음에 들었던지, 더욱더 품속으로 기어 들어가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물론 당사자의 표정과 자세는 매우 불편해보였다. 그 모습이 꽤나 우스꽝스러웠는지 아이 아빠는 그 못난 표정을 사진으로 찍어, 검은 고양이의 친우에게 보내겠다고 엄포를 놓았다.“빨리 데려가, 애가 아빠한테 가고 싶다고 보채잖아.”“훈련해야 한다고 했던게 누구였더라, 토레스씨? 조금만 참아봐, 애도 좋다고 잘만 있잖아. 그래, 짐. 삼촌 품이 마음에 드니? 그거 참 다행인데?”“도대체 말이야, 아직 말도 못하는 애한테 이름이라니.”그 말에 아이의 아빠, 맥 우드먼은 아이를 향해 까꿍거리며 놀렸다. 아이가 다시 꺄르르 거리며 웃자, 이번에는 첫째인 ..
헬하우스 인더스트리의 법무팀은 20여명의 변호사들과 그보다 더 많은 사무원들로 이루어져 있다. 역시나 재계의 선두를 다루는 헬하우스답게 회사는 다양한 종족들을 차별없이 채용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팀에서 레널드와 가장 친한 동료도 미라일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게 차별없이 공정하게, 능력만 보고 채용하는 것으로 유명한 이 회사에도 낙하산이 몇 있기 마련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낙하산인사인 레널드 헬하우스는 사무원이 건네어준 찌라시잡지를 보고는 땅이 꺼질새라 한숨을 내쉬었다. 3류도 아까울 이 잡지의 표지에는 한 늑대인간의 사진이 커다랗게 실려있었다. 고급수트와 그에 어울리는 옷매무새, 사진에 찍히는 걸 즐기는 것 같은 여유로운 표정, 파란색 눈동자는 카메라 렌즈 저 너머를 바라보는 것처럼 우수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