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ANDALIEN

알렉스레니 _ 너의 어린, 07 본문

기타/DOOMSDAY CITY

알렉스레니 _ 너의 어린, 07

rabbitvaseline 2017. 2. 12. 19:43



 

* 퀴어혐오워딩 有

 

 




로날드 캐머런은 아침부터 짜증나는 일만 생긴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다니는 아들들은 새벽부터 싸워댔고, 해골개는 뭔 일이 있었는지 아침에 신문을 다 물어뜯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상태가 안 좋아보이던 토스트기는 결국 고장이 나버렸고, 화가 나서 발로 찼더니 엄한 새끼발가락만 아파왔다. 그것뿐이겠는가, 자동차는 시동이 잘 걸리지 않았고 학교에 도착하니 짜증자는 스켈레톤 수위가 자신을 향해 인사를 했다. 물론 그는 그 가증스러운 꼬리없는 종족과는 말할 생각이 없었으므로 평소대로 무시하고 지나갔다.

그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도시 외곽, 높은 언덕에 위치하고 있었고, 대다수는 악마와 지옥개였지만 간혹 부모를 잘 만난 할로윈 아이들이 있기도 했다. 물론 그는 지옥개였고 철저한 종족주의자였기 때문에 그 아이들을 싫어했다. 그래서 그는 아침에 출석을 확인하고 나서 환한 미소를 지을 수 밖에 없었다. 더러운 늑대냄새가 나는 검정색 목도리를 잘 하고 다니던-그래서 결국 자신이 압수해서 버려야했던- 스콧 애머릿이 자리에 없기 때문이었다. 스콧은 학교에서도 거짓말쟁이로 유명한 늑대인간이었는데, 매번 소심하게나마 자기 주장을 하는 꼴이 꽤나 같잖았는지 지옥개 학생들 사이에서는 놀림감이 되어 있었다. 게다가 그 아이의 아버지는 세간에서도 유명한 호모 늑대인간으로, 그 사실이 알려지자 더더욱 학교의 학생들은 스콧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직접적인 폭력만 없다면-물론 털이 달린 종족의 특성상 보이지 않게 폭력을 가할 수 있겠지만- 로날드도 딱히 그런 따돌림에 관여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빨리 이 더러운 늑대인간이 학교에서 나가줬으면 하는 심경이었다.

홈룸시간을 마치고 교무실에 돌아가, 그나마 의무적으로 스콧의 집에 전화를 걸었다. 그는 제발 그 더러운 늑대인간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루시퍼에게 빌었지만, 애석하게도 루시퍼는 그런 차별성 발언에는 관대한 악마는 아니었다.

안녕하십니까, 혹시 스콧 애머릿군의 집입니까? , 안녕하세요. 저는 헬타운 초등학교의 로날드 캐머런이라고 합니다. , 스콧군의 담임선생님이죠. 오늘 스콧군이 학교에 오지 않았기에 이렇게 연락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더러운 늑대인간이라 하더라도 일단은 학부모다. 그는 선생다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수화기 너머의 상대에게 말했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나 스콧이 전학왔던 날보다는 잠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랄드 애머릿은 오늘 아이가 아파서 결석을 하게 되었다고, 그래서 며칠간 학교에 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로날드의 얼굴에 화색이 피었다. 그는 형식적으로 안타깝다고 말하고서는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 더러운 늑대인간을 보지 않는다는 사실에 갑자기 온 몸에 힘이 돌았고 움직이는 게 가벼워졌다. 그는 자신을 향해 인사하는 스켈레톤 학생에게도 다정히 인사를 했다. 가끔 루시퍼는 좋은 일을 한 시민에게는 상을 주는 모양이지, 그는 스스로 자화자찬하며 교실로 들어갔다.

 

하지만 가끔씩 루시퍼는 변덕도 부리는 모양이었다. 그는 매우 들뜬 기분으로 동료들과 함께 밖에서 점심시간을 보냈다. 물론 중간에 교장에게서 자신을 보러 온 손님이 있다, 라는 이야기를 들었긴 했지만 그다지 심각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언제나처럼 언덕아래에 위치한 길가에 차를 주차시키고는 곧바로 교장실로 향했다. 혹여나 아들들이 사고라도 치지 않았나 싶었지만, 그러면 교장이 자신에게 연락을 할 일은 없었다. 교장실은 학교 로비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는 몇 번 노크를 하고나서 들어오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아주 부드럽게 문을 열었다. 바로 정면에 보이는 소파에는 두명의 지옥개가 마주보고 앉아서는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정수리에 동그랗게 하얀 털이 있는, 노쇠한 지옥개는 이 초등학교의 교장이다. 그럼 그 맞은 편에 앉아있는, 자신보다는 젊지만 꽤나 사회경력이 풍부해보이는, 순한 인상의 지옥개가 바로 자신을 찾아온 손님일 터였다. 손님은 로날드가 들어오는 것을 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섰다.

안녕하십니까, 캐머런 선생님. 저는 헬하우스 인더스트리의 레널드 헬하우스라고 합니다.”

헬하우스라는 말에 순간 그는 주눅이 들었다. 지옥 사회에서 정점을 달리는 지옥개, 그 중에서도 정점을 달리는 헬하우스가의 일원이라니. 어째서 헬하우스가의 일원이 자신을 찾아왔는지 그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교장은 둘을 모두 소파에 앉게 하고서는 레널드 헬하우스가 찾아온 경위를 설명했다.

, 자네 학급의 학생 있지 않나? 스콧 애머릿군 말이네. 오늘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고 들었네만.”

, 아버지의 말로는 감기에 걸려서 당분간은 무리라고 하더군요.”

그는 어째서 교장의 입에서 스콧의 이야기가 나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거기에 제 앞에 앉아있는 헬하우스가의 일원이 왜 그 일로 자신을 찾아왔는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설마 아이가 학교에서 따돌림을 받고 있다는 것을 들킨건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어째서 레널드 헬하우스가? 의문은 매우 쉽사리 풀렸다. 레널드는 자신의 명함을 건네고나서는 본론부터 말했다.

오늘 새벽에 스콧군이 가출을 했습니다. 현재 연락이 되지 않는 상태이고요. 애머릿씨와 저는 아직 경찰에 신고는 하지 않았습니다만 이대로 가다가는 신고를 해야하겠죠. 현재 스콧군의 소재지를 찾고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저희가 찾아보기에는 단서가 없어서 말이죠. 혹시 스콧군이 친하게 지내는 친구라면 알고 있는지 몰라서 이렇게 오게 되었습니다.”

로날드는 몇 번이고 명함속에 씌어진 이름을 확인했다. 헬하우스 인더스트리 법무팀 분쟁전담 변호사. 제랄드 애머릿은 헬하우스에서 이사로 일하고 있다. , 레널드 헬하우스는 제랄드 애머릿의, 얼핏보면 수하격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는 이상하게도 이 사실이 매우 불쾌했다. 지옥개가 고작 늑대인간의 밑이라니, 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무엇보다도 교장이 바로 옆에서 모든 상황을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스콧군이 가출이라니... 절대로 그런 학생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만..”

스콧군은 어떤 학생이었는지 말해주실 수 있습니까?”

조용하고 착한 학생이었습니다. 전학을 와서 친구를 사귀는걸 어려워했지만... 헬하우스씨도 아시다시피 학교가 시내와 가까이 있다보니 지옥개와 악마 학생들이 많거든요.. 그래도 주눅들지는 않았습니다. 수줍음도 많이 탔지만 자기 의견도 잘 표현했죠. 아직도 믿기지 않는군요, 가출이라니.”

혹시라도 스콧군과 가장 가까이 지냈던 친구는 없습니까? 어쩌면 행방을 찾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 말에 로날드는 진심으로 고민했다. 물론 스콧의 주변에 학생들이 없었다는건 아니었다. 다만, 그들은 어디까지나 스콧을 괴롭힐 목적으로 붙어있었고 친구로 자청하지도 않았다. 과연 누가 있을 것인가, 몇분을 생각하고나서 떠오른 시민은 꽤나 의외의 시민이었다.

친구라기는 뭐하지만 청소부인 그레이씨와는 잘 지냈던 것 같군요.”

자신이 스콧이 매고 있던 더러운 목도리를 버렸을 때, 그레이가 스콧을 위로해준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 뒤로도 가끔씩 스콧이 그레이와 이야기를 나눈 것을 본 적이 있었다. 물론 그레이는 그 이름답게 이미 늙고 병든 악마였기에 로날드는 별 신경을 쓰진 않았다. 목도리를 버렸을때도 결국 스콧은 아버지에게 알리진 않았는지, 별 다른 연락도 오지 않았다.

괜찮으시다면 그레이씨를 소개시켜드리죠.”

그 외에 친한 친구는 없었습니까? 그 또래라면 적어도 한두명은 있을텐데요?”

“..죄송하지만 스콧군이 워낙 조용한 성격이라서요... 게다가 전학을 온지라 아직까지도 낯설어하는 것 같고 말입니다.”

“..어쩔 수 없군요, 알았습니다.”

로날드는 안타까움을 표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곧 수업준비를 해야한다며 부디 스콧을 찾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레널드 헬하우스는 그런 그를 반쯤 냉담한 눈으로 바라보고는 어떻게든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했다.

 

청소부인 그레이 패디먼은 상당히 이상한 노인네였다. 이름답게 회색피부를 가진 5안마는 교장실에 들어가는 것을 거부하며, 이야기를 할거라면 자신이 있는 휴게실로 오라고 으름장을 놓기까지 했다. 휴게실은 학교건물 뒤편, 쓰레기 수거함 옆에 있는 자그마한 오두막이었다. 상당히 허름한데다 외벽에는 아이들이 할만한 이런저런 낙서가 적혀있었다. 레널드가 노크를 하자 노악마는 기꺼이 문을 열어주었다. 제대로 환기가 되지 않은 퀘퀘한 냄새에 커피냄새가 뒤섞여, 마치 처음 알렉스의 집에 갔을 때를 떠오르게 했다. 레널드가 찌푸리지도 않고 오두막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그레이는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의외군, 헬하우스의 나으리라길래 이런 곳은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방 한가운데에 석유난로가 있었고, 그 주변에 낡은 소파가 배치되어 있었다. 둘은 흔한 인사도 하지 않고 우선 소파에 앉았다.

친구네 집과 비슷해서요. 그레이 패디먼 씨 맞죠?”

그래, 그쪽이 스콧네 변호사로구만. 의외야, 헬하우스라면 남들도 다 알아주는 집안 아닌가? 그런데 늑대인간 밑에서 일한다니, 세상도 참 많이 변했어.”

저는 형들과는 달라서 말입니다. 레널드 헬하우스입니다, 현재 헬하우스 인더스트리의 법무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레널드는 명함을 꺼내 그레이에게 건네었다. 그는 명함에 적힌 이력을 바라보다가 주머니에 쓱 집어넣었다.

스콧이 가출했다고 들었는데... 내 언젠가 그런 일이 생길 줄 알았지.”

“...이미 알고 있었다고요?”

그래, 그쪽이 헬하우스라서 말하는거야. 사실 선생새끼가 아까 전화 걸었을 때, 내게 허튼 말은 하지 말라고 했었지만, 그래도 그쪽이 서열로는 더 높지 않겠는가.”

그레이는 커피를 한모금 마시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그 애는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했네, 털있는 종족은 괴롭힘 당할 때도 괴롭다지? 아무리 멍이 들어도 털에 다 가려지니까 말이야.”

“...교내폭력에 시달렸다는 말입니까?”

레널드는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음을 인지했다. 물론 전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애머릿의 집에 갔을 때, 이상하게도 스콧은 지옥개인 자신을 무서워하고 있었고, 손을 올리자 눈을 감기까지 했었다. 그래도 가족조차 모르고 있었는데, 제머슨이 한 무관심하다는 말이 다시 가슴 한편이 찔렀다.

“...그렇지. 역시 몰랐나보군, 아비도 몰랐겠군. 하긴 알았다면 그렇게 애를 방치했을리는 없지. 선생이란 작자는 그걸 방관했어, 주동자들이 꽤 높은 지옥개집안의 자제들이거든.... 역시 몰랐다는 눈치군, 이제야 알았다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래 가출했다고? 애석하게도 나도 아는게 없어. 그렇게 많이 이야기를 나눈 것도 아니었고.”

“..혹시 어느 장소를 언급했다던가 그런 적은 없습니까?”

“...글세... 이 나이되면 머리가 가물가물해서 말이야.”

그레이는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나 있는 머리를 긁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그는 정말로 안타깝다는 눈빛으로 표정을 차마 숨기지 못하는 지옥개를 바라보았다. 레널드는 정말로 충격받은 표정으로 앉아있었던 것이다. 그렇게나 착하던 아이가 학교폭력이라니, 만약 이 증언이 사실이었다면 스콧을 찾는 것만으로는 일이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군요.. 하지만 혹시라도 기억이 나는게 있다면 연락주시겠습니까? 부탁드립니다.”

“...나도 부탁이 있어.”

그레이는 들고 있던 종이컵의 끝부분을 엄지손가락으로 더듬었다.

그 아이를 찾거든 다시는 이 학교로 보내지 말게, 이 곳에선 적만 가득하거든.”

정말로 아이를 걱정하는 눈치였다. 레널드는 그 말에 무어라 대답할 수 없었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피해 전학가는 것은 보기 좋은 일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스콧이 원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 늙은 노악마에게 희망을 걸 수 밖에 없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러겠다고, 부탁을 들어주겠노라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였다. 노악마는 그게 반쯤은 거짓말이란 것을 알아채고도 이 선량해보이는 지옥개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였다.

의외의 성과라면 성과일까, 레널드는 한숨을 내쉬며 운동장으로 걸어나갔다. 애석하게도 학교안에서는 어떤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끔찍한 사실만을 알아내었을 뿐이었다. 그는 변호사로서, 그리고 아이를 사랑하는 시민으로서 이 일을 아버지에게 알릴 의무가 있었다. 그 말을 듣게 되면 분명 제랄드 애머릿은 자책하며 제머슨의 말을 다시 또 생각할 것이었다. 어쩌면 정말로 양육권을 넘겨버릴지도 몰랐다. 하지만 과연 그게 정답인걸까, 그는 그늘진 스탠드 아래에 서서 학생들이 축구를 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과연 로날드의 말대로 운동장에서 뛰고 있는 학생들의 대부분은 지옥개와 악마들이었고, 두어명의 덩치 큰 스켈레톤들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 외의 종족은 일부러 나오지 않는건지, 아니면 정말로 없는건지 보이지 않았다.

곧 열심히 공격을 하던 자줏빛 악마가 스탠드로 뛰어들어왔다. 숨을 마구 내쉬며 스탠드에 주저앉는 꼴이 꽤나 지친 것 같았다. 그는 숨을 고르다가 음료수를 벌컥 마셨다. 그리고는 스마트폰을 꺼내 자신에게 온 메시지가 있나 확인해보는 것이었다. 레널드는 그 학생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혹시 이 학교의 학생입니까?”

소년은 갑작스런 어른의 등장에 놀란 것 같았다. 게다가 레널드의 명함 속 헬하우스라는 이름을 보자 더욱 더 긴장한 것 같았다. 마시던 물도 엎지르게 냅두고는 당황한 표정으로 레널드를 바라보았다.

... 헬하우스의 변호사가 무슨 일인데요?”

마치 무언가가 찔린다는 눈치다. 레널드는 자연스레 이 학생이 스콧에 관한 일임을 알아챘다고 느꼈다. 제랄드 애머릿은 헬하우스의 이사로 유명했으니, 만약 스콧의 아버지를 알고 있다면 이 명함이 무엇을 뜻하는지도 알 것이었다.

스콧군의 일 때문에 왔습니다. 혹시 스콧 애머릿군을-”

난 아니에요!”

소년은 당황해하며 팔을 내밀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갑작스런 소란에 놀란 것은 레널드도 마찬가지였다.

“...무엇이 아니란거죠?”

... 그 주모자는 따로 있어요. 케이브 하운드라고 지옥개인데 걔네 패거리가 그런거라고요! 난 아니에요, 도와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도왔다가는 나도 당한단 말이에요...”

소년은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숙였다.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그리고 그 일이 얼마나 끔찍한지를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레널드는 이 아직은 어린 악마를 힐난할 생각은 없었다. 그는 다정한 말투로 자신은 그것 때문에 온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그건 스콧을 찾고 난 다음의 일이었다.

혹시 스콧군의 친구를 알고 있나요? 저는 스콧군의 친구를 찾고 있습니다.”

소년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없을거에요, 걔 거짓말쟁이로 유명했거든요. 그래서 모두들 피했어요.”

?”

그레이에게서도 나온 말이다.

“..걔가 맨날 하던 목도리가 있었는데, 그게 제 아빠 털로 만든거라잖아요! 아무리봐도 검은색인데, 걔 털은 파란색이고... 게다가 걔네 아빠가 그... 호모라고 하니까, 모두들 더러운 호모자식이라고.....”

레널드는 일단 소년이 하는 말을 멈추도록 했다. 그가 하는 말을 들으니 자신이 모욕을 당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속에서는 당장에라도 소리치고 싶은 욕구를 느꼈으나 지금은 화를 내서는 안되었다.

그렇군요. 그럼 친구가 아니더라도 스콧군과 이야기를 나눌만한 학생은 없었습니까?”

소년은 고개를 내저었다. 스콧 애머릿은 학교에서마저 외톨이였던 모양이었다. 레널드는 실망한 기색을 애써 숨기지도 않고선, 자신이 여기에 온 것을 비밀로 해달라고, 그렇게하면 나중에 다시 찾아오더라도 그쪽은 건드리지 않겠다고 명함을 건네었다. 물론 소년은 나중에 찾아오겠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알았기에 조금 겁에 질려서는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결국 진짜로 수확은 없었다. 다시 교장실과 담임교사를 찾았지만 그들도 스콧이 친하게 지냈다는, 심지어 말이라도 자주 나눴다는 친구를 발견할 수 없다고 할 뿐이었다. 물론 레널드는 그 말이 거짓말임을 이미 알아챘다. 분명 이 지옥개 둘은 유성애자이자 늑대인간의 자식에 대해 별 관심도 없었을 것이고, 오히려 사라진걸 기뻐하는건지도 모른다. 레널드는 자신에게 굽신거리며 악수를 하는 로날드를 바라보았다. 손이 맞닿아지자 금방이라도 구역질이 일것만 같았다. 선생이란 작자는 그걸 방관했어. 그레이의 말이 다시금 머릿속에서 되새겨졌다. 그는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을 달라고 말하고선 건물에서 나왔다. 속에 얹혀있던 무언가는 차가운 겨울 공기를 마시고나서 간신히 풀리는 것 같았다. 오후수업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고 이윽고 운동장은 텅 빈채 노랗게 죽어버린 잔디만이, 방금 전 축구화에 의해 짓밟혔던 것을 회상하고 있었다. 레널드는 그 죽어버린 잔디밭을 가로질러가며 언덕 아래에 주차해놓았던 자신의 자동차로 발걸음을 옮겼다. 과연 어떻게 애머릿에게 말할 것인가, 그는 아무런 수확이 없었다는 말과 함께 스콧이 학교에서 당했다는 따돌림에 대해 말해야할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Rrrrrrrrrr Rrrrrrrrrrr-

전화를 건 것은 뜻밖에도 집에서 대기하고 있겠다던 애머릿이었다. 전화를 받아들고보니 아쉽게도 아직 스콧에게선 연락이 없었는지 여전히 울음섞인 목소리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전화너머로 적나라하게 들려왔다.

-“레널드씨.. 흐윽... 헨리가... 헨리도 같이 사라졌다고....”

헨리, 라는 말에 레널드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헨리 제머슨, 폴 제머슨의 아들이며 애머릿의 털로 만든 목도리를 갖고 있던 검은 늑대인간. 애머릿은 정말로 당황했는지 말을 제대로 못잇다가 간신히 말했다.

-“P가 헨리도 편지를 남겨놓았다고... 나한테 안갔느냐고... 그러더군요... 이젠 어떻게 해야하죠?”

레널드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애머릿씨. 진정하세요, 오히려 그게 스콧군에게는 더 좋은 일일수도 있습니다. 애머릿씨, 혹시 헨리군의 편지에 대해서, 그리고 언제 사라졌는지 들은 것이 있습니까?”

-“...그게... 헨리도 오늘 새벽이라 하더군요.”

그럼 다행입니다, 스콧군이 헨리군과 같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오히려 홀로 있지 않은게 그나마 다행이군요, 아직 스콧군은 어리니까. 제머슨씨는 어떻게 하기로 했죠? 제가 보기에는 두분이 같은 곳에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 일단은 모여서 앞으로의 일을 의논해봐야겠죠. 경찰에 신고도 그 뒤로 하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괜찮습니다, 헨리군은 상당히 컸잖아요? 분명 동생을 잘 돌보고 있을겁니다.”

간신히 애머릿을 진정시키고나서야 그도 전화를 끊을 수 있었다. 헨리도 가출을 했다, 정황상으로는 이 헤어진 두 형제가 같이 가출을 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만약 헨리의 행선지를 찾는다면 아마 둘을 찾는것도 시간문제일 것이다. 만약 찾지 못한다하더라도 경찰에 의뢰하면 어떻게든 될 것이었다. 문제라면 매스컴에서 달라붙는 것이지만 일단은 아이들부터 찾아야하지 않겠는가.

그럼 어떻게 되는걸까, 교문을 나서며 그는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보았다. 만약에 스콧이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다면 제머슨도 소송을 취하해줄 것인가. 물론 법정까지 간다고 하더라도 제머슨이 스콧을 데리고 갈 일은 없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 뒤는? 아마도 스콧이 겪는 학교폭력에 대해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관련자는 모두 경찰에 신고하고 방관한 교사들에게 소송을 걸면 이 일도 일단락될 것이었다. 하지만 그걸로 끝나는걸까. 레널드는 무언가가 아직 남아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딘가 한구석이 석연치 않았다.

하지만 그 의구심도 언덕을 내려가려는 와중에 사라지고 말았다. 검은색 중형차가 그의 옆을 지나 빠른 속도로 언덕을 내려갔다.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치 운전자가 브레이크밟는 방법을 모르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속도였다. 자동차는 급히 언덕을 내려가 레널드의 시선에서 사라졌고, 이윽고 커다란 굉음이 언덕 아래에서 들려왔다. 레널드는 결국 사고가 일어났구나 싶어 급히 아래로 뛰어갔다. 부디 다친 사람이 없어야 할텐데, 라고 빌며 휴대폰을 손에서 떼지 않았다. 사고가 난 현장에서는 결국 불이 났는지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근처에서 문구점을 하던 노악마가 낡아빠진 소화기를 꺼내와서는 불을 끄려고 했지만 소화기는 힘없이 아무 것도 뱉어내지 못했다. 시민들이 주변으로 몰려들었고, 다행히 근처 상가에서 일하던 시민 몇몇이 소화기를 들고 왔지만, 불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세를 늘리고 있었다. 레널드가 도착하니 누군가의 입에서 다행히 시민이 없다는 말이 나왔다.

그는 정말로 다행이라고 여기며 그제야 사고현장으로 눈을 돌릴 수 있었다. 중형차가 들이박은 것은 검은 세단으로, 이미 처참하게 변해버렸지만 레널드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순간 다리가 휘청거렸다. 온 몸의 힘이 빠지는 것 같아서, 그는 옆에 서있던 악마의 팔을 간신히 붙잡아야했다. 검은 뿔이 일그러져있다. 그의 자동차였다.

 

 

 

택시기사에게 잔금을 받아들고 알렉스의 맨션 앞에 선 것은 거의 자정이 다 되어가서였다. 세단을 폐차시키게 만든 중형차의 주인은 놀랍게도 스콧의 담임교사인 로날드 캐머런이었다. 그는 자신의 차가 저지른 짓을 보고 도저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지만, 그 모습을 보는 레널드의 마음도 불편했다. 사실 오히려 화를 내야 할 시민은 레널드였다. 만약 그가 스탠드에 앉아있던 악마에게 말을 걸지 않았더라면, 혹은 애머릿이 그에게 전화를 걸어 운동장 한가운데에 멈춰서게 하지 않았다면 그는 현재 시체안치소에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캐머런은 자신의 자동차가 사고를 일으켰다는 사실에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결국 레널드는 화도 내지 못한 채 보험회사를 불러야만 했다. 그리고 애머릿의 집으로 가니, 이번에는 제머슨이 애머릿에게 맹렬히 쏘아붙이는 것을 아서가 간신히 말리고 있었다. 격앙된 목소리에 애머릿은 더욱 더 풀이 죽어가고 있었다. 간신히 둘을 말리고나서는 경찰에 알릴 것인가를 논의하였다. 제머슨은 경찰에 신고하자고 주장했고, 애머릿과 그는 아직 더 두고보자고 했다. 헨리의 행선지만 알아낸다면 곧바로 찾을 수 있으리라 본 것이다. 그러자 제머슨은 이번에는 애머릿에게 주먹을 날리려 했고, 간신히 그의 변호사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레널드는 저도 모르게 두통이 일 것 같아서 한숨도 제대로 내쉬지 못했다.

알렉스의 집에 들른 이유는 간단했다. 그는 오늘 피곤한 하루를 보냈고, 이제는 밤새 아들을 기다리고 있을 애머릿의 곁을 지켜야 했다. 하지만 몸은 도저히 무리였는지 이제는 머리에서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쉬어야했다. 내일을 견디기 위해서라도 그는 어떻게든 몸과 마음을 안정시켜야 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그를 반긴 것은 우선 거실의 환한 불빛과 벽난로에서 풍겨나오는 희미한 연기냄새였다. 현관에 신발이 있는 것을 보면, 오늘 알렉스는 무사히 집에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는 차마 인사할 기운도 없이, 구두를 벗자마자 발을 반쯤 끌 듯이 거실로 걸어갔다. 과연 알렉스는 소파에 누워 인터넷을 하며 레널드를 반기고 있었다.

아저씨 왔어? 무슨 일 있었어? 오늘따라 더 피곤해보이네.”

레널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아챘는지 알렉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렇게 피곤한 모습은 너무나도 오랜만에 보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소파로 향할거라는 예상은 아주 간단히 벗어나고 말았다. 레널드는 알렉스를 지나치지 않고는 곧바로 그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정말로 쓰러지듯, 가볍게 어깨에 턱을 올리고는 그를 품에 안았다. 전혀 예상치못한 모습에 알렉스는 당황해하며 조심스레 레널드의 등을 토닥였다.

“...무슨 일 있었어? 안하던 짓을 다 하네.. 괜찮아? 설마 형들이 또 뭐라 그랬어? 또 나갖고 걸고넘어졌어?”

레널드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알렉스의 목에 귀를 갖다대고는 그의 맥박이 빨라지는 것을 즐겼다. 검은 고양이의 심장은 원래 빨리 뛰어, 언젠가 그의 고양이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조금 더 신경을 집중한다. 사실 그 말이 거짓말이란건 이미 알고 있었다.

“...괜찮아?”

아마 알렉스의 귀는 내려가서 레널드를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레널드는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였다. 옷 너머로 전해지는 이 온기가 얼마나 필요했던지 알렉스는 아마 알지 못할 것이다. 그의 숨소리가 귓가에 전해지는 것이 얼마나 안도감을 주는지 그는 모를 것이다. , 너는 살아있구나. 귀 너머로 생명이 뛰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는 이 넘치는 생명력에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는 저도 모르게 알렉스의 목에 얼굴을 비비고는 그의 몸에서 떨어졌다.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여러 생각들과 몸이 진정하고 있었다.

괜찮아, 미안. 오늘 일이 많아서...”

소파에 몸을 뉘이고 재킷을 벗고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고나서야 레널드는 질문에 답할 수 있었다. 알렉스는 아직도 귀를 세우지 못한 채로 레널드에게 차가운 우유와 담요를 건네어주었다.

정말 둘째형이 어떻게 한건 아니지?”

아니라니까.”

그는 한숨을 내쉬고는 오늘 있었던 교통사고에 대해 털어놓았다. 물론 스콧의 일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저 일이 있어서 학교에 들렀는데 교통사고가 났다고, 브레이크가 고장나서 비탈길에 주차되어있던 차가 자신의 세단을 박았다고, 자신은 운이 좋아서 그 사고현장을 눈앞에서 보게 되었다고 말이다. 마치 아이에게 이야기를 하듯, 조곤히 말하는 모양새였지만 정작 그걸 듣는 당사자는 경악에 찬 얼굴로 지옥개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일단 보험처리하기로-”

정말 괜찮아? 눈앞에서 본거잖아, 말도 안돼.... 차주인은? 뭐라고 하던데? 설마 뺑소니?”

레널드가 고개를 젓자 알렉스는 조심스레 그의 양손을 붙잡았다.

“...내 수염 뽑아주길 잘한 것 같아. 그거 확실히 차에 걸어놓은거 맞지?”

?!”

레널드는 갑작스레 튀어나온 말도 안되는 말에 황당해하며, 여전히 자신을 걱정에 찬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검은 고양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보니 예전에 차를 샀을 때 알렉스가 그런 선물을 준 적이 있었다. 걸리적거리긴 했지만 그래도 선물이란 생각에 고양이수염이 담긴 펜던트를 백미러에 걸어놓았었다. 설마 그게 그런 식으로 돌아가다니.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

검은 고양이의 말대로 자신이 살아남은 것이 마치 그의 가호인것만 같았다. 정말로 그 수염덕분에 가방도 무사한건지도 모른다. 그것마저 불타버렸다면 로날드에게 화를 냈을지도 모른다. 그는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는 깊게 심호흡을 했다. 운이 좋은 하루였다고 생각하니 그나마 기분이 나아졌다.

 

알렉스는 배가 고프지 않겠냐고, 오늘 먹을걸 잔뜩 사왔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어제 먹었던 크래커는 정말로 맛이 없었다고 투덜거리며 그가 주방에 들어갔을 때, 레널드의 핸드폰이 잘게 진동했다. 아서 애플에게서 온 전화였다. 그는 행여나 알렉스가 들을까, 베란다로 건너가 전화를 받았다. 베란다 문을 열자마자 차가운 공기가 그를 덮쳤지만 너무 피곤한지라 저항하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고것이... 역시 힘들당께요. 아 친구덜한테 계속 물어보고 다녔는디 글쎄 다 모른다고...”

이메일이나 전화같은 건요? 그것도 역시 힘듭니까?”

-“성님도 아 메일을 들쑤고 다니는 편은 아니고... 이번에 졸업한다고 휴대폰도 새로 하나 맹글었다는디, 그라서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아요.”

레널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입 너머에서 하얀 입김이 공중에서 흩어져갔다. 헨리는 친구들에게 어디에 간다거나 어느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틀전부터 이상하게 뭔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라고 말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그때부터 고민하고 있었을 것이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걸까, 그는 미간을 누르며 앞으로의 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생각했다. 이대로 경찰에 연락하는 수밖에 없는건가, 그럼 앰버경고가 뜰 것이고 이 집안의 일이 낱낱이 바깥으로 드러날 것이다. 하지만 별달리 선택의 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아이들의 안전을 장담하기는커녕 소재를 파악할 수도 없을 것이다.

-톡톡-

그는 옆에서 유리창을 두드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검은 고양이가 씩 웃어보이며 창에 입김을 분다. 하얗게 변한 그 자리에 검은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서투르게 써내려갔다.

-도와줘?-

아무래도 알렉스는 레널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파악한 모양이었다. 레널드는 그제서야 자신이 베란다 창에 등 돌아서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보같으니라고, 그는 자책하며 당황한 눈으로 알렉스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는 고개를 추욱 숙이고는 허탈한 웃음을 내뱉었다.

“....애플씨, 내가 도와줄만한 시민을 알고 있습니다. , 정보국에서 일하는 친구입니다. 아마 제머슨씨나 애머릿씨도 잘 알고 있는 시민입니다. , 신분은 보장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방안에서 자신을 보고 있는 검은 고양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알렉스는 여전히 씨익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알렉산드로 토레스, 알렉스라고 하면 제머슨씨도 알아들을겁니다.... 애머릿씨에겐 제가 전해주죠. , 연락주세요.”

 

베란다문을 열자마자 덥고 건조한 공기가 그에게 쏟아졌다. 그는 다시 한숨을 내쉬며 의기양양하게 소파에 앉아 랩탑을 무릎에 얹어놓은 알렉스를 발견할 수 있었다. 검은 고양이의 눈이 심하게, 보는 시민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반짝였다.

뭘 하면 돼?”

내가 입술 읽지 말랬잖아....”

레널드는 알렉스의 옆에 앉으면서도 한탄을 그치지 못했다. 왜 이리도 검은 고양이는 자신을 도와주는걸 즐기는걸까, 물론 반쯤 그것을 이용하는 자신에게도 문제는 있었다. 그래도 최근에는 자제하려고 노력했건만.

“JP에게 생긴 일이지? J는 뭐래?”

“....너에게 맡기겠대. 무슨 일인지는 알고 돕겠다는거야? 위험한 일일지도 모르는데?”

그야 진짜 위험한 일이면 아저씨는 경찰에 신고했겠지. 그리고 진짜로 위험한 일이면 이렇게 도와달라고 하진 않잖아. 걱정마, 나도 이제 몸 사릴테니까.”

레널드는 마지막 문장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도와주겠다는 이를 내칠 때가 아니었다. 알렉스의 능력이 매우 필요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는 가방속에서 애머릿에게 받은 가족사진을 꺼내었다. 그리고는 스콧과 그의 어깨에 팔을 두른 다른 늑대인간을 가리켰다.

스콧 애머릿과 헨리 제머슨, 애머릿씨와 제머슨씨의 아들이야. 스콧군은 이제야 갓 초등학교에 들어갔고 헨리군은 고학년이야. 둘이 오늘 아침에 가출을 했는데 도대체 어디로 갔는지 갈피를 못잡겠어.”

그럼 난 얘네들이 어디로 갔는지를 찾으면 되는 거네? 주소는? 집주소도 줘.”

어느새 알렉스는 화면을 보지도 않은채 무언가를 타이핑하고 있었다. 아마도 CCTV 회선을 찾고 있는 것이리라. 레널드가 서류를 건네어주자 슥 한번 보고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입력하고 있었다. 힘들겠다는 이야기도 없이, 묵묵히 화면에 시선을 집중하는 모습이 어딘가 낯설었다.

좀 쉬고 있어, 자리 비켜줄까? 회선 뚫는건 금방이니까 괜찮을거야.”

그 말에 레널드는 고개를 젓고는 옆으로 쓰러졌다. 이제야 간신히 온 몸의 긴장을 풀 수 있었다. 하루 동안에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났던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가출소식을 들었고, 애머릿 대신에 학교에 가서 사실은 학교폭력을 당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며, 자동차는 폭발해서 폐차시켜버렸고 제머슨이 애머릿을 패려는 것을 간신히 말려야 했다. 그야말로 피말리는 것 같은 하루였다. 하지만 그는 그렇다고 남들 앞에서 힘들다는 말을 쉽게 꺼내지는 못했다. 애머릿과 제머슨은 당장에라도 죽을 것 같이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아버지는 어땠었지? 푹신한 팔걸이에 머리를 뉘이자 갑작스레 죽을뻔 했던 날이 떠올랐다. 아주 오래전, 형들도 제대로 기억도 못하던 그 오래전에 있었던 그 사고 때, 아버지는 어떤 심경이었을까. 일에 치여서 죽을 뻔 했던 아들의 곁으로 오지도 못했던.... 레널드는 조그맣게 고개를 저었다. 못한 것이 아니란걸, 형들이 시험도 포기하고 찾아왔을 때 이미 깨달아버리지 않았던가. 그의 아버지는 일 때문에 못 간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제머슨이나 애머릿과는 다른 부류의 아버지였다. 그는 어쩐지 애머릿에게 미안해졌다. 당장에라도 오해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싶었지만, 그의 몸이 정신을 점점 아래로 끌어내리고 있었다. 머릿속을 뒤집어놓았던 여러 생각들과 불안들이 점점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다. 이윽고, 키보드 울리는 소리를 자장가삼아 레널드는 깊은 잠에 빠져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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