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ANDALIEN
알렉스레니 _ 너의 어린, 08 본문
심장소리는 꽤나 규칙적으로, 하지만 빠르게 뛰고 있다. 지옥개는 조심스레 검은 고양이의 가슴팍에 제 얼굴을 부비었다. 하얗지만 풍성한 털은 닿는 감촉이 부드러워서 몇 번이고 볼과 입술을 그곳에 갖다댄다. 그러다 심장소리는 이제 규칙적인 다른 소리로 변하고 만다. 레널드는 그 소리를 알람삼으며 잠에서 깨어났다. 고작 3시간여의 수면이었지만, 긴장은 한층 풀린 것 같았다. 소파아래에서 알렉스가 양반다리를 하고는 열심히 무언가를 찾고 있다. 화면에는 지도가 커다랗게 펼쳐져 있었고, 꽤나 힘들었는지 평소에는 쓰지도 않을 안경까지 쓰고 있었다. 그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는 검은 고양이가 무언가를 찾는 모습을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알렉스가 저렇게 안경까지 쓰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은 어딘가 그를 흥분시키는 면이 있었다. 그는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다 삐죽 솟아오른 알렉스의 귀에 손가락을 갖다대었다. 그러자 검은 고양이는 뒤돌아보지도 않은 채 대답했다.
“일어났어? 엄청 피곤했던 모양이네, 아저씨 코까지 골았어.”
“...안경썼네?”
“계속 모니터만 보고 있으려니까 눈이 아파서. 일단 아이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찾았는데, 그 다음이 문제야. 혹시 전화번호 아는 거 있어? 휴대폰 GPS추적하면 나올지도 몰라.”
어디로 갔는지 찾았다는 말에 레널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안경을 쓰고선 급히 알렉스의 어깨에 턱을 기대고 화면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모니터 위에는 그로서는 알 수 없는 수많은 수식들만이 움직이고 있었다. 알렉스는 자기의 한쪽 어깨가 무겁다는 걸 괘념치 않으며 그가 발견했던 CCTV 영상을 보여주었다.
“계속 루트를 따라갔거든. 시외버스 터미널이야.”
시간은 새벽 5시였다. 출근을 하는 시민들도 몇 없는 한가한 버스터미널 안에서 스콧은 몸에 담요를 두르고는 의자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내 커다란 짐을 든 어린 늑대인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 몸집만한 짐을 간신히 끌고 온 헨리는 스콧을 보자마자 품에 안았다. 둘은 나란히 앉아서 지도를 펼쳐놓고 무어라 이야기를 했다. 알렉스는 그 광경을 보고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문이 열려 있을까... 열쇠... 안되면 창문을....”
헨리는 표를 사러가는지 스콧에게 목도리를 맡기고는 화면에서 사라졌다. 스콧은 제 털빛깔과 같은 색의 목도리를 두르고는 잠시 그 자리에서 잠을 잤다. 알렉스는 동영상을 빨리 돌렸다. 두 아이는 같이 짐을 들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아마도 버스를 타러 간 것이리라. 알렉스는 발권 데이터베이스에서 둘이 산 표의 행선지를 찾았다고 했다.
“인페르노 시티의 터미널로 가는 버스였어. 소민 2명이니까 아마 맞을거야. 그런데 터미널에서 모습을 찾을 수 없었어. 아마 중간에서 내린 것 같아.”
“...스콧군과 헨리군은 멀리 나갈 때는 아버지와 함께 다녔어. 어쩌면 시외버스를 타는게 처음인지도 모르지. 중간에 내렸다면 어디서 내렸는지는 알 것 같아?”
“그게 중간 정류소만 20개라고... 게다가 아직까지 CCTV를 설치하지 않은 곳도 있고. 그래서 휴대폰 GPS라도 찾으려고. 혹시 둘 중에 갖고 있는 애는 없어?”
“잠깐만, 헨리가 갖고 있다고 들었어.”
그는 급히 애머릿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전화를 받은 것은 그의 가정부인 롭이었다. 롭은 애머릿은 피로에 지쳐서 잠시 기절했다면서 용건이 있으면 전해주겠다고 말했다. 하긴, 새벽까지 깨어있는 것도 독감에 걸렸다 간신히 나은 몸에는 큰 무리였을 것이다. 물론 그 시간까지 전화를 받을 정도로 깨어 있는 롭도 대단했지만. 레널드는 혹시나 헨리의 전화번호를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네,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스콧 도련님이 전화를 하곤 했거든요.”
롭은 아무 명확한 발음으로 헨리의 전화번호를 말했다. 레널드가 그것을 알렉스에게 알려주자마자 그는 다시 맹렬히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아마도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일이지만 그들에게는 그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물론 알렉스가 그런 말을 듣는다면 정보국의 이름 아래서 모든 일이 합법이라 대꾸했을테지만 말이다. 알렉스가 통신국기록을 뒤지는 사이에 레널드는 종이에 인페르노 시티로 향하는 시외버스의 정류장들을 적어 내려갔다. 그리고는 유통기한이 아슬아슬한 커피를 타와서는 알렉스에게 건네었다.
“...잡았어?”
“으음.... 버스 안에서 신호가 끊겼어. 아마 중간에 휴대폰을 꺼버린 것 같아.”
알렉스는 매우 고심해하며 머리를 내저었다. 버스가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곳이 마지막 기록이었다. 그는 일단 기지개를 편 뒤에 커피를 마셨다. 미지근하고 맛없는 커피였지만, 지금같은 상황에서는 그나마 먹을만 했다. 그는 낙담해있는 레널드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괜찮아, 아저씨. 버스에도 CCTV가 달려있고 블랙박스도 있으니까 그걸 찾으면 돼. 아까 데이터베이스에 찾아봤는데 없는걸 보면 아직 서버엔 올리지 않은 것 같아.”
“...응, 고마워 샌디. 그럼 난 버스 정류장들을 제머슨씨와 애머릿씨에게 보낼게, 아마 둘이 알고 있는 장소가 나올지도 몰라.”
그러자 알렉스는 안경을 벗고는 입을 벌리며 하품을 했다. 시간은 벌써 새벽 4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아무리 검은 고양이가 밤에 활동한다하더라도 늦은 시간이었다. 레널드는 다시 고맙다고 말한 뒤에 어서 자라고 알렉스의 등을 떠밀었다.
“하지만 더 찾아보면 나올지도 몰라.”
“그건 내일 해줘, 오늘 충분히 했잖아.”
“그럼 아저씨도 자고 가지 그래? 이 시간엔 택시도 안다닐텐데? 회사야 어차피 이런 상황이니 빠질 수밖에 없을테고. 잠옷도 꺼내줄게.”
“넌 내일 일 없어?”
그 말에 알렉스의 시선이 순간 이곳저곳으로 흩어졌다. 레널드는 확실한 불안감을 안고 검은 고양이의 대답을 기다렸다.
“으음.. 오전에 할 일만 끝내면 당분간은 없어.”
순간 레널드의 머릿속에서는 알렉스의 일로 푸념하는 페터의 모습이 떠올랐다. 하긴 푸념이라고해도 거의 절반정도는 자신에 대한 비난이다. 페터는 대놓고 알렉스가 너 때문에 일을 안한다고 말하곤 했다. 조만간 또 그런 자리가 생기겠거니, 그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받기만 하는 기분이라 미안해지기까지 했다.
“알았어. 괜찮으면 내일 같이 점심 먹을까? 난 오전에 CCTV를 확인하러 가볼게. 먹고 싶은거 있음 말해.”
그 말에 알렉스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동안 먹지 못했던 음식들을 떠올렸고, 결국 근처 레스토랑에서 나온 신메뉴를 읊자 레널드도 기꺼이 사주겠노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레널드는 허탈한 미소를 지으며 알렉스를 방으로 들이밀었다. 늦은 시간까지 함께 해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알렉스의 예상대로 시외버스에는 CCTV와 블랙박스가 남아있었다. 레널드는 자신을 수상하게 여기는 직원들에게 명함을 건네고서는 어떻게든 되지 않겠느냐며 넌지시 말했다. 물론 명함에 적힌 헬하우스라는 이름의 힘에 직원들은 기꺼이 그에게 영상을 보여주었다. 버스를 타고 2시간여쯤이 지났을까, 영상 속 스콧과 헨리는 어딘가에서 내리고 있었다. 작은 정류소로 아침시간에는 타는 사람만 있지, 내리는 사람은 없는 그런 동네였다. 아이들이 내리자마자 몇 안되는 시민들이 버스에 올라탔다. 직원들은 레널드의 부탁에 영상에 찍힌 시간과 시간표를 대조해서, 그곳이 인페르노 시티와 둠스데이 시티의 경계점에 위치한 나스트론드 정류소라는 것을 알아냈다. 레널드도 처음 듣는, 그야말로 시골이었다. 어째서 그곳까지 갔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나마 행선지를 알아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하지만 레널드의 입에서 나스트론드가 나왔을 때, 아들을 잃어버린 아버지들의 얼굴은 다시 어두워졌다.
“나스트론드라뇨...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지역입니다.”
제랄드 애머릿의 눈가는 붉어져있었고 눈은 심하게 충혈되어 있었다. 그는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던지 걷다가도 휘청거렸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폴 제머슨 또한 착잡한 심경을 숨기지 않은 채 레널드의 말을 들었다. 그는 몇 번 마른세수를 하다가 그래서 어떻게 해야겠냐는 표정으로 레널드를 바라보았다.
“일단은 마법을 쓰는 수밖에 없겠군요. 제가 아는 시민 중에 마법을 잘 쓰는 시민이 있습니다. 그 시민을 고용하도록 하죠.”
아마 크리스 루치아노 정도라면 기꺼이 그의 의뢰를 들어줄 것이었다. 그러자 제머슨의 입가가 한쪽으로 올라갔다. 마치 비아냥거리는 투다.
“정말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보는겁니까? 아이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데요?”
“제 친ㄱ.. 그러니까 알렉스의 말로는 둘은 아마 은신처에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화면을 통해 대화를 읽었을 때, 그 은신처에 침투할 계획까지 세웠던 걸로 추정됩니다. 아마 불법적인 방법이 쓰였을테지만, 아직 경찰에서 연락이 오지 않은 걸 보면 발각은 안 된 모양이군요. 걱정마세요, 이제 하루가 지났습니다. 게다가 헨리군도 곁에 있으니-”
“헨리가 몇 살이나 한다고!”
제머슨이 일어나 당장에라도 멱살을 잡을 듯한 눈으로 레널드를 노려보았다. 그는 몇 번 숨을 고르려다가 결국 안되겠다는 듯이 빠르게 말을 토해냈다.
“당신 자식이 없어서 모르는 모양인데, 우린 당신이 말하는 시간 일분 일초조차도 아까워! 헨리가 나이가 많으면 얼마나 많았다고, 그 애는 아직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어! 그런 애 둘이, 그 새벽에, 아니면 밤중에 어디에 있는지 당신이 어떻게 알아?! 내가 진작에 경찰에 연락해야 한다고 했잖아!”
당장에라도 레널드에게 달라붙으려는 것을 아서가 간신히 떨어뜨려놓았다. 아서는 밤새 제머슨의 곁을 지켰던지 상당히 초췌한 모습으로 곁에 붙어있었다. 레널드는 일단 한숨을 내쉬고는 제머슨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경찰에게 연락을 해도 마찬가지였을겁니다. 오히려 지금보다도 상황이 늦을 수도 있었겠군요, 합법적으로 나가면 시간이 걸리니까요.”
간신히 자리에 앉았던 제머슨이 다시 일어나려 했지만 이번에 제지한 것은 애머릿이었다. 그는 붉은 눈을 애써 감추지도 못하고 힘없는 눈으로 레널드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 시민을 소개시켜주세요, 레널드씨. P, 더 이상 화내지마. 어차피 지금까지 우리를 도와준 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겨야 돼. 정말로 감사합니다, 레널드씨도 애플씨도 피곤했을텐데요. 들어가서 편히들 쉬세요, 이제부터는 우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마치 지금부터 가족 일에 손을 떼라는 식이다. 애머릿은 고개를 숙이고는 눈가를 꾹 눌렀다. 더 이상 시끄러운 것은 싫다는 것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모습이 어딘가 처량했다. 여태껏 얼마나 이 집안의 일에 관여했던가, 레널드는 지금 이 상황에서 물러나는 것이 자신을 배척하려고 하는 것 같아 심히 불쾌했다. 하지만 지금은 애머릿도 제머슨도, 그리고 자신과 아서 애플마저도 상당히 지쳐 있었다. 아서는 눈치를 보며 제머슨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고개를 젓는 모습을 보면 아마 애머릿과 같은 생각인 것 같았다. 레널드는 메모지에 케르베로스의 전화번호와 ‘크리스 돈 루치아노’라는 이름을 적어주었다. 그리고는 직접 전화를 걸어 어서 크리스가 이쪽으로 올 수 있도록 조치까지 해 주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애머릿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갑작스런 제머슨의 분노에 본인까지 탈력해버린 것 같았다.
“애머릿씨, 무슨 일이 생긴다면 연락하세요.”
지친 아버지의 고개가 아주 미약하게 위아래로 흔들렸다. 레널드는 이 착잡하고도 불편한 분위기에 결국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집에서 나와 아서 애플과 카페에서 몇 십분 정도 이야기를 마치니 벌써 시간은 약속했던 점심시간을 향하고 있었다. 아서는 이번 일이 무사히 해결되면 생길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잘 된다면 둘이 화해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물론 레널드도 그런 가능성을 조금씩 생각은 해보았으나, 사실은 그 뒤의 일이 더 걱정이었다. 소송이 취하가 된들 스콧이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집안 분위기가 분위기라 그 사실을 알려주지는 못했지만, 무사히 해결만 된다면 반드시 말해야 할 것이다. 그 다음은 아마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소송일 것이다. 물론 레널드의 일은 여기서 끝이다. 그 다음은 애머릿이 개인적으로 고용한 변호사가 할 일이었다.
알렉스는 또 어디서 뒹굴었는지 머리가 상당히 헝클어져 있었다. 재빨리 손톱을 세워 머리를 빗어넘기는 꼴이 꽤나 우스꽝스러웠지만 레널드는 웃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그의 표정은 매우 경직되어 있었다. 그렇게나 열과 성의를 보여줬건만 푸대접받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걸 알아챘는지 알렉스는 오히려 평소보다도 더 밝은 표정으로 그를 반겼다.
“일은 어떻게 되었어? 무사히 찾았어?”
“...내린 곳은 찾았어. 일단 크리스씨를 데리고 간댔어.”
“아저씨는?”
둘이서 평소에 자주 가던 레스토랑에 도착했지만 레널드의 표정은 풀어지지 않았다.
“알아서 하겠대. 난 손을 떼라는거지.”
“말도 안돼! 아저씨랑 내가 얼마나 도와줬는데?”
“그러니까 그런거야. 원래대로라면 우리가 도와주지 않아도 되었을 일이었잖아.”
레널드는 정말로 풀이 죽었던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둘은 예약했던 테이블에 앉을때까지도 아무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알렉스는 이 지옥개를 이곳이 아니라 곧바로 집으로 데리고 갔어야했나, 하고 생각할 정도였다.
지옥개의 얼굴이 환해진 것은 하느니만 못한 식사를 마치고 디저트를 기다리고 있던 때였다. 그의 주머니 안에서 진동소리가 울려왔다. 레널드는 급히 전화를 꺼내어 누구에게서 온 것인지 확인했는데 모르는 전화번호였다. 그는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는 심경으로 전화를 받았다.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늙은, 그러나 익숙한 악마의 목소리였다.
-“혹시 레널드 헬하우스씨 전화번호 아닙니까?”
“..그레이씨입니까?”
-“맞게 전화한 모양이네. 그래요, 뭐 찾은건 있나?”
“...밤새 어디로 갔는지만요. 그 이상은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레이씨는 왜 전화를?”
레널드의 목소리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걸 알아챈 알렉스도 그의 대화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맞아, 갑자기 오늘 생각난건데... 글쎄 스콧이 얼음낚시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냐고 물어서 말이야. 가출하기 전날에 그런 이야기를 했었는데, 혹시 도움이라도 될까 하고 말이야.”
“...얼음낚시요?”
레널드는 버스터미널에서의 영상에서 보았던 큰 가방을 떠올렸다. 낚시가방치고는 매우 큰 것 같긴 했지만 가능성은 있었다.
-“그래. 그래서 내가 여기는 얼음은 안 언다고 하니까 꽤나 실망했었어. 그러니까 괜찮다고, 대신 호수에서 낚시를 하면 된다고 하더군. 혹시 도움이 되었나?”
“네, 엄청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맞아, 낚시 하니까 옛날엔 형이랑 낚시를 했다고 했어. 별장 옆에 커다란 호수가 있다고 했었거든.”
레널드가 자그맣게 별장, 호수, 낚시 같은 단어들을 알렉스에게 내뱉었다. 그러자 알렉스는 재빨리 태블릿PC와 키보드를 테이블 위에 펼쳐놓고서는 성급히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전화를 끝냈을 무렵 웨이터는 당황한 눈으로 레널드와 알렉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점심식사를 하던 모든 시민들의 시선도 그 둘을 향해 돌아가고 있었는데, 레널드는 아무렇지도 않게 디저트를 받고서는 알렉스쪽으로 의자를 움직였다. 알렉스는 지도를 골몰히 바라보다가 커다란, 검은 구멍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나스트론드 근처의 커다란 호수라면 요툰호일 가능성이 커. 요툰호는 고급별장들이 즐비하니까 가족끼리 가봤을지도 몰라.”
“하지만 애머릿씨나 제머슨씨는 떠오르지 못했는데?”
“여기서 요툰호까지는 승용차로 가면 나스트론드를 거치지 않아도 되니까 그런거야. 그나마 지금이 겨울이라 다행이야, 여긴 여름에나 시민들이 많거든. 애들이 갔다면 곧바로 CCTV에 잡힐거야.”
알렉스는 디저트로 나온 지옥사과 아이스크림이 녹는 것도 신경쓰지 않고 계속해서 키보드에 무언가를 쳤다. 다시 웨이터가 다가와 레널드에게 무어라 말하려고 했지만, 이내 지폐 몇장을 팁으로 받고는 다시 왔던 곳으로 돌아갔다. 레널드는 급히 애머릿에게 전화를 걸었다. 애머릿은 여전히 침울한 목소리로 레널드를 반겼다.
-“네, 레널드씨. 지금 나스트론드로 가고 있는 길입니다.”
“혹시 요툰호에 별장이 있나요? 아니면 언젠가 요툰호에 간 적이 있습니까?”
갑작스런 레널드의 말에 애머릿은 할말을 잃은 것 같았다. 그는 왜 변호사가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하는지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레널드의 채근에 그는 머릿속을 뒤져 한편에 남아있던 추억을 끌어올렸다.
-“...그러고보니 임원들에게 주는 별장이 그쪽에... 맞아요! 네, 간 적이 있습니다. 거의 10여년 전일 겁니다. 잠깐만요, 레널드씨. 요툰호라뇨?!”
“샌디!”
“찾았어! 근처에 CCTV가 있어서 다행이네. 아저씨, 이 꼬맹이들 여기 별장에 간 것 같아. 우와, 정말 맹랑하잖아. 정류장에서 여기까지 한시간은 걸렸을텐데.”
알렉스는 태블릿을 레널드에게 돌려 거기에 뜬 영상을 보여주었다. 커다란 호수가 영상의 반을 채우고 있었는데, 두 아이가 자전거를 탄 채로 그 주변을 돌고 있었다.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흑백화면속의 인상착의는 어제 새벽, 버스터미널에서의 모습과 일치했다. 아무래도 헨리가 들고 있던 커다란 가방은 낚시용품 뿐만이 아니라 자전거도 들어있던 모양이었다.
-“레널드씨?!”
“...요툰호입니다! 애머릿씨, 아이들은 요툰호에 있습니다. 네, 알렉스가 찾아줬어요. 저희도 그곳으로 가겠습니다.”
레널드가 급히 전화를 끊자마자 언제 짐을 정리했던지 알렉스도 가방을 들고 있었다. 손도 대지 않은 아이스크림은 이미 반쯤 녹아있었고, 다시 웨이터가 식사도 하지 않고 일을 해댄 손님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알렉스는 레널드의 가방까지 들고서는 어서 나가자고 목을 갸웃거렸다. 레널드는 그 행동에 쓴웃음을 짓고는 빠르게 걸어나갔다.
알렉스는 오토바이에 도착하자마자 눈을 감았다. 그는 자신의 검지를 자신의 이마에 대고서는 무언가를 골몰히 떠올리는 것 같았다. 이윽고 화려한 별가루들이 그들의 주변에 떨어지다 사그라들었고, 공중에서 무언가가 툭 떨어졌다. 레널드는 정말로 보기 힘든, 이 검은 고양이의 마법에 눈을 빼앗겼다가 이내 정신을 되찾았다. 손위에는 꽤 무거운, 길다랗고 짙푸른색의 무언가가 올려져 있었다. 그게 헬멧이란걸 깨달은 것은 알렉스가 어서 착용해보라고 말하고나서였다.
“빨리 가야 한다며. 어서, 헬멧없으면 경찰들한테 잡힌단 말이야.”
“...너, 이건 언제-”
“얼른얼른 타셔. 빨리 가야 하는거 아니었어?”
어느새 오토바이에 올라탄 알렉스는 자신의 뒷좌석을 손바닥으로 팡팡 쳐댔다. 레널드는 당장에라도 이 헬멧을 언제 사놓았는가에 대해 묻고 싶었지만, 알렉스의 말대로 한시가 바쁜 상황이었다. 그가 검은 고양이의 뒤에 앉고 나서 이내 덜커덩 거리는 소리와 함께 시동이 걸렸다. 다시 별가루가 그들의 몸으로 쏟아져내려왔고, 이윽고 꼭 붙잡으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레널드는 헬멧을 쓴다는, 그로서는 상당히 낯설은 경험에 놀랐지만 알렉스의 말에 급히 그의 몸을 껴안았다. 검은 고양이의 근육이 움직이는 것이 그의 팔과 온 몸에 생생히 느껴졌다. 따뜻하다기보다는 뜨거운, 당장에라도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뛰었지만 레널드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 이윽고 오토바이는 커다란 엔진음과 함께 천천히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레널드는 헬멧 너머로 바람이 스치는 소리를 들으며 알렉스의 등에 더욱 몸을 기대었다.
마당에 쌓아놓은 장작더미에선 연기가 피어올라왔다. 검은 늑대인간 소년은 자신이 갖고 온 라이터로 열심히 불을 붙여보려 했지만 역시나 헛수고인 모양이었다. 그러자 그보다는 어린, 푸른 늑대인간 아이가 그에게 다가가 무작정 장작에 불을 지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우선 종이에 불을 붙이고 그 다음에는 나뭇가지부터 붙여야 한다고 친절하게 말해주었다. 과연 그가 한 대로 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 장작에 불이 붙었다. 둘은 재빨리 물고기를 꼬챙이에 꽂아서는 근처에 세워놓았다. 둘 다 별장에 도착하고나서는 간식으로 가져온 과자밖에 먹지 못했기에 상당히 허기에 져 있었다. 아마 이 생선구이가 그들이 이곳에 도착하고나서 먹는 첫 ‘식사’가 될 터였다.
겨울의 별장에는 관리인 몇몇을 제외하면 시민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와 있는 곳은 시 외곽에 위치한 요툰호수에 위치한 한 별장이었다. 여름 때만 되면 가끔씩 놀러오곤 하던 곳이었는데, 둘은 큰 형과 함께 이곳에서 낚시를 하곤 했다. 셋이 낚시를 하면 아버지들은 팔짱을 끼고는 주위를 산책하곤 했다. 그런, 아주 평범한 순간들이 지금에 와서는 꿈처럼 느껴진다니, 헨리는 눈가에 어린 눈물을 연기탓으로 돌리며 생선에 소금을 뿌렸다. 껍질이 타는 소리와 함께 표면으로 기름이 배어나왔고, 이윽고 고소한 냄새가 두 시민의 코를 찔렀다. 헨리는 부지깽이로 불을 뒤적거리며 반대편에 앉아있는 어린 동생을 바라보았다. 그가 큰 형인 톰에게 소중하듯, 피는 이어져 있지 않더라도 출생의 순간부터 지켜본 아주 소중한 동생이었다. 스콧은 무릎을 움켜잡고 꿇어앉아서는 불의 끝이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털빛깔과 꼭 닮은 색의 목도리를 목에 감은 스콧은 여느때보다도 편안해 보였다. 오히려 아버지와 형의 냄새가 나는 것 같다며 좋아했었다. 헨리는 아빠의 목도리는 어떻게 했냐며 물어보고 싶었지만, 이상하게도 그것을 대답해주지 않을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다행히도 며칠전 면담때 보였던 불안한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헨리는 정말로 가출이 아니라 둘이서 하룻밤 야영이라도 온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휴대폰을 켤 용기는 나지 않았다.
‘엄청 혼나겠지.’
기름이 튀면서 익는 소리와 장작 타는 소리가 둘 사이를 메꿨다. 스콧이 일어나면서 다 익지 않았냐고, 슬슬 먹어도 되지 않겠느냐고 제 형을 보챘다. 헨리는 미소를 지으며 불가에 세워놓았던 꼬챙이 하나를 동생에게 건네었다. 꺄르르 거리는 웃음소리가 아무도 없는 텅 빈 별장에 울렸다.
두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호숫가에는 다양한 별장들이 언덕에 줄지어 서 있었다. 호수를 향해 창문을 내고 있었는데, 휴가시즌이 아니라서 대부분의 별장은 비어있는 것 같았다. 요툰호 주변에선 시민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지만, 다행히도 레널드는 아이들이 어디로 향했는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헬하우스 인더스트리에서 운용하는, 복지정책의 일환으로 임원들에게 빌려주는 낡은 별장이 근처에 있었다. 애머릿의 말이 사실이라면 둘은 그 별장에 있을 가능성이 컸다. 레널드는 휴대폰으로 재빨리 별장의 위치를 찾고서는 멍하니 호수의 물결을 바라보던 알렉스에게 알려주었다. 겨울호수는 매우 처량해보였지만 알렉스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레널드의 설명을 들었다.
“그런데 너무 일찍 도착한 것 같은데. 아까 봤던 그 카키색 트럭, 아무리봐도 P의 차였던 것 같아서 말야.”
“일단은 아이들이 괜찮은지 확인해 봐야하니까.”
그 말에 알렉스는 다시 오토바이에 걸터앉았다. 이번에는 굳이 속도를 낼 필요가 없으니 아예 헬멧을 벗은 채다. 레널드도 그에 화답하듯 헬멧을 쓰지 않고 뒤에 앉았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었지만 그렇게 거세지는 않았다. 그들의 옆을 스쳐지나가는 풍경은 과연 별장을 지을만큼 훌륭해서, 만약 겨울이 아니었다면 꽤나 시선을 빼앗겼을만한 장관이었다. 옷을 벗은 나목들과 그나마 옷을 입고 있는 침엽수들이 뒤섞여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만약 여름에 왔더라면, 레널드는 알렉스의 옷자락을 부여잡으며 생각했다. 만약 여름이었다면 이런 별장을 예약했을지도 모르겠다고, 알렉스와 단 둘이서 커다란 별장에 묵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별장 정문에 도착했을 때, 우선 그들을 반긴 것은 연기냄새와 생선비린내였다. 알렉스가 적당한 곳에 주차하는 사이, 레널드는 냄새의 진원지로 다가갔다. 반쯤 불탄 장작더미와 먹다 만 생선 가시가 근처에 널려있었다. 아무래도 둘이 오는 것을 보고 급하게 대피했는지, 장작더미는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근처에는 작은 발자국들이 가득했다. 레널드는 급히 애머릿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는 주변을 둘러보며 아이들의 흔적이 있는지를 더 찾았다.
“아저씨, 정문은 잠겨있어. 뒷문 쪽으로 가봐야 할 거 같아. 오오, 다행이네, 잘 놀고 있었던 모양인데?”
알렉스는 이런저런 흔적이 가득한 자리를 보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레널드는 발로 생선가시들을 대충 묻은 다음에 정문으로 향했다. 다행히 전기는 들어오는 모양이었는지 초인종을 누르자 벨소리가 울려왔다. 하지만 어떠한 움직이는 낌새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문에 귀를 대고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려고 했지만, 들리는 것은 바람소리 뿐이었다.
“스콧군, 헨리군! 헬하우스입니다. 며칠 전에 면담일 때 봤었죠?!! 내 말이 들리면 대답하세요!”
레널드는 낯선 이의 등장에 겁에 질려있을 둘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하지만 여전히 별장은 조용했다. 그는 한숨을 내쉬고는 알렉스에게 들어가자고 턱짓을 했다. 부엌과 통하는 뒷문에 도착하자, 알렉스는 우선 가죽장갑부터 손에 꼈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문 손잡이를 돌렸다. 중간이 걸리면서 더는 돌아가지 않는다. 알렉스는 어떻게 해야하나, 하고 골몰히 생각하다가 옆에 있던 창문을 들어올리기로 했다. 하지만 역시나 창문마저도 잠겨 있었다.
“큰일났네, 급하게 온다고 문따기 키트도 안 갖고 왔는데... 아저씨, 이 건물 아저씨네 건물 맞지?”
“정확히 말하면 회사건물이야.”
“그럼 내가 조금 부수는건 괜찮겠지? 창문 한짝만 깨뜨릴게.”
레널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동시에 챙, 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부엌에 딸려있던 창문이 무참히 깨져버렸다. 레널드는 그 전문적인 솜씨에 감탄을 금치 못하면서도-동시에 그가 스파이라는게 다행이라 여기며- 알렉스가 창문을 타고 넘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이윽고 뒷문이 열렸다. 부엌 안은 어두운데다 불을 지피지 않았는지 냉기로 가득했고, 바닥 위에는 얕은 먼지가 쌓여있었다. 그리고 그 위엔 알렉스의 발자국과 함께, 아이들의 작은 발자국이 남겨져 있었다. 레널드는 알렉스가 신발을 벗으려는 것을 저지했다. 오히려 아이들에게 자신들은 위험한 시민이 아니란 걸 알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전등 스위치를 켜고서는 계단을 올라가는 알렉스의 뒤를 따랐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아이들을 향해 소리치곤 했다.
“스콧군! 헨리군! 아버지들이 오고 있습니다! 어서 나오세요!”
알렉스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것 같은 어두운 집안에는 레널드의 목소리만이 계속해서 울렸다. 레널드는 혹여나 이 건물이 아닌 다른 건물로 도망간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만약 그렇다면 크리스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는 없었다.
-끼긱-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위에서였다. 알렉스는 입술에 검지손가락을 대고는 일부러 발소리가 들리게 조심스레 2층으로 올라갔다. 복도에 이르자, 이제는 아주 미약하게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햇빛도 제대로 들지 않는 복도는 차갑고 건조한 공기만 가득했고, 양 편으로 방 2개가 마주보고 있었다.
“여기 있는거 다 아니까 그만 나와! 아저씨들 나쁜 시민들 아니니까 괜찮아!”
오히려 더 수상해보이는 말투에 결국 레널드는 다시 입을 열었다.
“스콧군, 헨리군! 레널드 헬하우스입니다! 아버지가 곧 오실겁니다, 어서 나오세요!”
하지만 이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몹시 긴장스러운 상황에 레널드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설마 안 좋은 일이 벌어진건가? 하지만 그들이 오기 전까지 남아있던 발자국은 작은 시민 두 명 분의 발자국밖엔 보이지 않았다. 알렉스는 아이들이 나오지 않자 조심스레 한쪽 문에 귀를 갖다 대고는 반대쪽 문에도 귀를 대어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저은 뒤에, 왼쪽에 있는 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안나오면 우리가 갈거야!”
“샌디, 그냥 애머릿씨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게-”
“안 그럼 다시 도망간다고, 하나, 둘, 셋!”
알렉스는 매우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문을 열었다. 하지만 방안에는 정적과 어둠만이 가득할 뿐, 도무지 그 안에 살아있는 시민이 있다고 보이진 않았다. 알렉스는 반대쪽 문을 레널드가 감시하게 하고서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우선 커텐을 걷어 햇빛이 방안으로 들어오게 한 다음에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가 꼬리로 바닥을 쓸자 바닥에서 먼지가 일어 햇빛에 반짝였다. 레널드는 주의깊게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만약 저 방에 없으면, 자신이 등을 기대고 지키고 있는 이 방안에 두 아이가 있는 것이다.
“얘들아, 빨리 나와! 곧 너의 아빠들이 올거란 말야.”
그리고 그는 방 한편에 있는 침대로 다가갔다. 침대에는 하얀 광목천이 씌어져 있었다. 그는 그 주변을 둘러보고서는 이내 바닥까지 확인하려고 고개를 숙였-
“아야!”
레널드는 갑작스런 비명소리에 당장 방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다시 검은 고양이의 비명이 방안에 울렸다. 알렉스는 제 왼팔을 붙잡고는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그 앞에는 먼지투성이가 된 늑대인간 아이 둘이 서 있었다.
“샌디, 이게 대체 무슨-”
레널드는 차마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스콧은 제 형의 뒤에 서서 벌벌 떨고 있었으며, 헨리 또한 두려워하면서도 간신히 각목을 들고 제 동생을 지키고 있었다. 그는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깨달았다. 알렉스는 잇새로 새어나오는 신음을 간신히 참고 있었지만 꼬리는 이미 부풀어 있었다. 알렉스가 얼굴을 찌푸리며 아파하는 모습이 여과없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마치 온 몸의 피가 거꾸로 솟아오르는 것 같은 분노에 휩싸였다. 그의 시선은 각목을 들고 떨고 있는 헨리에게 향했다. 감히, 그리고 그는 벽난로 옆에 있던 부지깽이에 손을-
“안돼, 아저씨!!”
알렉스는 간신히 한쪽 팔을 내뻗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지깽이를 발로 차 넘어뜨리고는 괜찮다고, 다행히 뼈가 부러지지는 않았다고 연거푸, 힘겹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제야, 그제야 레널드는 자신이 하려던 짓을 깨달았다. 마치 온 몸의 피가 말라버릴 것 만 같은, 그런 수치심과 경악에 차마 입도 다물지 못했다.
“그러니까 너희도 그거 내려놔. 그걸로는 왠만한 시민도 제압못하니까. 말했잖아, 너희 아빠들이 올거라고.”
여전히 꼬리는 커다랗게 부풀어져선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지만 알렉스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 모습에 헨리도 각목을 떨어뜨리고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바깥에서 비탈길을 올라오는 자동차 소리가 창문을 건너 방안에 전해졌다.
나의 욕망 : 레니가 샌디 오토바이에 탔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가 한 짓 : 레니의 자동차를 불태우자!
나의 욕망 : 샌디가 안경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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