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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WATCH _ 겐멜겐 _ Wings of the Phantom

rabbitvaseline 2016. 12. 23. 13:08


 

메시아가 태어났다는 날을 앞두고서도 총성은 그치지 않았다. 어쩌면 이쪽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단지 예언자중 한사람일테니, 혹은 적대하는 세력이기에 챙기지 않는 것 일수도 있었다. 하지만 연말을 앞두고 그녀가 머물고 있던 난민촌에도 살짝은 들뜬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모두들 돈을 각출해 낙타를 잡기도 했고, 아낙들은 간신히 물을 모아서는 아이들을 깨끗이 씻겼다. 그나마 모은 돈도 적었기에 늙은 낙타를 살 수 밖에 없었지만, 앙겔라로서는 그 질기고 냄새나는 낙타고기도 제법 먹을 만 했다. 그녀는 두어번으로는 씹혀지지도 않을 고기를 여러 번 씹고 또 씹었다. 이곳은 그녀가 그동안 돌아다녔던 난민촌들 중에서는 그나마 형편이 가장 나은 곳이었다. 살을 에일 것 같은 차가운 칼바람을 맞으며 고기를 씹을 동안, 그녀는 슬슬 자리를 옮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마 내년이 되자마자 다시 다른 곳으로, 마치 부평초처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천사처럼 날아가야 할 것이다.

국경없는 의사회의 도움을 받아, 이곳에도 곧 병원이 세워질 거라는 말에 난민촌의 촌장을 억지로 맡고 있던 노인네의 눈에도 화색이 돌았다. 끊이지 않는 내전속에서 손자들만 끌고 왔다는 노인은 세월에 거칠어진 손으로 몇 번이고 앙겔라의 손을 잡고 고맙다고 흔들어댔다. 그녀가 오고나서 모든 것이 변했다고, 아팠던 손자들과 다른 주민들까지 질병의 시름에서 벗어날 수 있었노라고 말이다.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부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차분하게 말했다. 그 말에 노인의 깊게 패인 눈가에서 눈물이 흘러나와 바닥에 한방울씩 떨어져내렸다. 그녀는 이토록 고마워하는 노인의 마음에 깊은 감명을 느끼며 조그맣게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노인에게 이별을 고하고 병상으로 돌아오자, 같이 일하던 간호사 매기가 갑자기 자신을 불렀다.

편지가 왔어요, 선생님.”

편지요?”

, 해외에서 온 건데요? 선생님 친구가 보낸 것 같아요.”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매기가 건네주는 봉투를 받아들었다. 분명 그녀에게 보내는 편지라면 스위스에 있는 집으로 갈 것이다. 그녀는 그녀의 친구 중 누구에게도 자신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리지 않았다. 동료였다면 오히려 이메일을 사용하지, 편지처럼 아날로그적인 방식을 사용하진 않았을 것이었다. 봉투는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길다랗고 하얀색 봉투였다. 그녀는 겉봉에 붙여진 이국의 우편에 한번 시선을 돌리고는 발신인을 확인하였다. 편지는 네팔에서 온 것이었다. 네팔의 샴발라 수도원, Genji Shimada. 그녀는 황급히 편지봉투를 뜯었다. 속에는 편지지와 함께 의뭉스러운 무언가가 들어있었다. 거꾸로 들어보니 무언가는 천천히 앙겔라의 손으로 떨어져 내렸다. 하얀, 날카롭게 깎인 깃대에 검은 무언가가 묻어있는 깃털이었다.

 

 

 

시마다 겐지, 겐지가 반주검 상태로 발견된 것은 시마다일족에서 내분이 일어났다는 첩보를 듣고 오버워치가 비밀리에 출동했을 때였다. 그들은 성밖에 버려져있는, 시체라고밖에 볼 수 없는 누군가를 발견했고, 초록색 머리와 그나마 남아있는 얼굴을 토대로 그가 시마다일족의 둘째아들인 시마다 겐지란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그를 처음에 발견했던 가브리엘 레예스는 앙겔라에게 고개를 내저었다. 이미 틀렸다, 숨만 간신히 내쉬고 있지만, 의학에 문외한인 그가 보기에도 그것이 그의 몸이 할 수 있는 전부라고. 그의 말대로 겐지의 상태는 처참했다. 골절이라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몸에 끊임없이 새겨진 자상들은 그의 신경과 근육들을 끊어놓았고, 이미 장기의 대부분이 제구실을 할 수 없었다. 레예스가 구해주지 않았다면 아마 내부출혈로, 그 더운 여름날에 시체로 썩어들어가 결국은 까마귀밥이 될 처지였을 것이었다. 만약 수족이 크게 다쳤다면 의수나 의족으로 대체도 무리는 없었다. 만약 장기 한두개가 문제가 생겨도 인공장기로 대체하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당시 시마다 겐지의 상태는 그런 인공물로 군데군데를 대체해도 될 정도가 아니었다.

이건 너라도 무리겠는걸. 우리야 살릴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인공호흡기에 의지하여 숨을 내쉴 때마다 폐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피가 통에 담겼다. 간신히 수혈팩으로 피를 보충해주어도 곧 내부에서 새어나가리라. 그녀는 몇 번 미간을 찌푸렸다. 분명 겐지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있었다. 하지만 그 방법은, 그녀로서도 그저 머릿속에서 실행만 했을 뿐,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시도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겐지의 손가락이 살짝 움찔거렸다. 그녀는 눈을 감고 결단을 내렸다.

 

그 이후로 겐지의 재활과정은 그야말로 지옥도를 걷는 나날이었다. 겐지는 그녀가 머릿속으로만 구상하던 계획의 프로토타입이나 마찬가지였다. 머리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전부 다 인간이 만든 것으로 대체되었다. 그는 처음에 목소리를 내는 것도 하지 못했다. 드디어 인공성대에 힘을 주어 목소리를 낼 수 있었을 때, 그가 처음으로 내뱉은 말은 죽여달라는 소리였다. 앙겔라는 그 말을 지겹도록 들으면서도 겐지의 재활을 도왔지만, 이미 기계로 변해버린 몸에 절망해버린 사내에게 할 수 있는 희망적인 말은 없었다. 단지 당신이 살아있었으면 했다, 라는 말은 스스로가 보기에도 위선적으로 들렸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레예스가 살릴 수만 있으면 좋겠다고 한 말의 저의를 알고 있었다. 겐지는 오버워치에 시마다일족에 대하여 정보를 줄, 최고의 정보원이었다.

그가 죽여달라는 말을 멈춘 것은 그가 간신히 손가락을 움직여 사과를 잡아 올렸을 즈음이었다. 되살아나기 전 그가 사과를 들어 올렸을 때와는 달리, 기계손은 뇌에서 보낸 전기신호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 날에는 그의 손에서 으깨졌으며, 어느 날에는 제대로 들어 올리지도 못했다. 그는 앙겔라를 만날 때마다 인사말처럼 언제 자신을 죽여줄거냐고 말했다. 그녀는 만약 그가 제대로 손을 제어할 수 있게 되는 날이면, 그래서 그가 팔이라도 움직일 수 있게 된다면 자살하지 않을까, 하고 걱정해야 했다. 그것을 강습사령관인 잭 모리슨에게 털어놓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잭은 겐지를 찾아왔다. 고작 10여분의 짧은 면담이었지만, 앙겔라는 그게 겐지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면담을 끝내고 겐지를 찾아갔을 때, 그는 평소처럼 죽여달라는 말이 아닌 다른 말을 꺼내었다.

선생님, 제 몸을 개조할 수 있습니까? 저에게 무기를 달아줄 수 있으신가요?”

무언가 독기가 어린 목소리, 눈동자가 이글거리며 멍하니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경악에 찬 표정으로 잭이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무엇을 한 것인가, 도대체 어떤 말을 하였기에 방금 전까지 죽여달라고 말하던, 살 의욕을 잃은 사람을 저렇게 귀신으로 만들어버린 것인가. 후에 겐지가 정식으로 오버워치에 입단하고나서 잭이 말하였다. 그저 레예스가 하던 방식을 빌려서, 분노를 집어넣었을 뿐이라고. 그 분노를 받아들인 것은 그의 선택이었다고. 앙겔라는 황망한 눈으로 잭을 바라보았다. 폭력은 또다른 폭력을 낳을 뿐이라는 말을 꺼내려다가 이내 말을 멈추고 술잔을 들이킬 수 밖에 없었다. 분노라 하더라도, 그게 겐지를 살리는 원동력이란걸 그녀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매우 빠르게 기계몸에 적응하였다. 토르비욘의 도움으로 표창을 날릴 수 있게 몸을 개조하고나서부터는 훈련을 받는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두각을 보였다. 이미 시마다일족에 있었을 때부터 받아온 훈련의 영향이었을까, 그는 재빠르고 날세게 움직여 상대방을 제압했다. 모든 행동에는 군더더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표창을 던지고 칼을 뽑는 모든 행동에 빈틈이 없었다. 임무를 수행함에 있어서는 실수하는 모습을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는 결국 오버워치 내에서는 빠지면 안 되는 인물이 되어버렸고, 결국 정식단원의 영예까지 손에 넣고 말았다.

 

그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나면 얼마나 좋았을까.

 

정식단원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겐지의 파문 이후로 베일에 감춰졌던 시마다성의 소문이 블랙워치를 통해 오버워치 내에 전해졌다. 당주인 시마다 한조는 동생을 죽인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잠적해버렸다, 라는 말을 회의에서 들었을 때, 모두의 시선은 일제히 겐지에게 향했다. 바이저 너머로 보이는 초록색에는 아무런 떨림도 보이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도 전혀 이상이 없어서, 그렇군요, 라고 평소처럼 과묵한 말이 이어질 뿐이었다.

 

그날 밤, 겐지는 식은 땀을 흘리며 의무실을 찾아왔고 이내 쓰러졌다.

 

의무실 침대에 겐지를 눕히자마자 그는 기계손을 뻗고는 기계음섞인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몇 번 몸이 허우적거리다 침대의 프레임을 붙잡고는 다시 소리를 내질렀다. 앙겔라로서는 처음 보는 일이었다. 겐지! 그녀는 그의 몸을 억누르려 노력했다.

겐지, 무슨 일이에요? 겐지?”

아아악-! 하아... 하아! , 선생님... 팔이.... 다리가, 다리가... 으아아악!!!!”

환지통, 머릿속에서 그 세글자가 스쳐지나갔다. 어째서 몰랐을까, 어째서 그것을 신경쓰지 않았던걸까. 그녀는 속으로 자신에게 경악하면서도 간신히 겐지의 바이저를 벗겼다. 흉터가득한 얼굴에는 식은땀이 한가득이었다. 고통에 찬 눈가는 형편없이 일그러져 있었다. 겐지는 그 와중에도 몸부림을 쳤다. 결국 침대 프레임이 형편없이 구겨졌고 이불은 처참히 찢겨나갔다. 그녀는 몰핀을 생각했지만 그것을 어디에 주사할지 생각하니 형편없는 답이란걸 깨달았다. 겐지의 몸부림을 더 심해졌다. 비명소리를 내지르다 못해 성대가 고장이 났는지 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무언의 고통, 오직 쇠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가득한 곳에서 앙겔라는 저도 모르게 겁에 질려있었다. 겐지가 몇 번 머리를 베개가 있었던 자리에 부딪혔다. 무슨 생각을 하는걸까, 도대체 얼마나 괴로운걸까. 앙겔라의 머릿속에선 이 사라지지 않을 고통을 어떻게 지울 수 있을까, 하는 고민들로 가득찼지만 이내 다시 하얗게 점멸되었다. 정신을 차리고 카두세우스 지팡이의 광선을 그에게 씌우자, 그나마 발버둥치던 움직임이 조금은 잦아들었다. 그녀는 생체장까지 켜고서는 겐지에게 달려갔다. 통증에 아랫입술을 물었던 탓일까, 입가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는 몇 번 정제되지 않은, 그리고 그저 바람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은 말을 내뱉고는 정신을 놓아버렸다. 그녀는 하안, 하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누구를 의미하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다음날 정신을 차려보니 왼손의 손가락 하나가 골절되어 있었다. 그를 말리려다 휘말린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우선 검사가 급했다. 그녀는 겐지가 정신을 차리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설명하고나서는 검사를 진행했다. 애석하게도 아무 이상도 보이지 않았다. 그의 문제는 정말로 뇌의 착각인 모양이었다.

당신의 뇌는 당신이 몸이 없다는걸 받아들이지 못한 거에요. 그래서 원래는 없을 팔이나 다리에 신호를 보내죠. 원래 몸에 보내지는 신호에 우리는 반응을 하게 되어 있어요. 간지러우면 긁으면 되고 아프면 약을 바르거나 진통제를 먹죠.”

뇌가 받아들이지 못한다...”

원래 몸의 한 부위가 사라지면 그 부위에서 통증이 일어나는건 가끔씩 있는 일이에요. 물론 겐지처럼 그렇게 격렬한 반응을 보이는 경우도 있죠. 부위를 잃었을 때의 격통이 되살아나는 경우도 있어요.”

마치 당신처럼, 그녀는 발견당시 난자되어 형체를 알아보기도 힘들 정도였던 팔과 다리를 떠올렸다. 그때의 기억이 다시 되살아난거다. 그리고 뇌는 그때를 떠올리고는 어떻게든 살고싶어서 몸에 명령을 내린다. 살려달라고, 제발 이 통증을 없애달라고. 하지만 이미 몸이라고는 머리밖에 남지 않은 이 사이보그에게는 통증을 없앨 수 있는 수단이 없다. 그에게는 이미 팔과 다리는커녕, 목 아래로 인간의 몸이라고는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겐지는 자신의 상황을 수긍했다. 그리고 그 이유도 아주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밤중에 형을 떠올리다가 갑작스레 통증이 도졌다고 말하였다. 그게 트리거였나, 메르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서랍에서 약통을 꺼내어 그에게 전해주었다.

주사는 통하지 않아요. 만약 아플 것 같다, 싶으면 왼쪽의 약을 먹도록 하세요. 만약 너무 심해질 기미가 보인다하면 오른쪽의 약을 먹어요. 하지만 오른쪽은 마약성이니까 정말로 필요할 때만 먹도록 하세요.”

고맙습니다만 이 약은 돌려드리죠.”

겐지가 돌려준 약은 마약성 진통제였다. 혹시 모르니 일단 주기로 한 것이었다. 앙겔라는 의아한 눈으로 겐지를 바라보았다.

만약 어제처럼 발작이 일어나면-”

괜찮습니다. 한번 발작을 겪으니 어떻게 제어하는지 알겠더군요. 아마 이 약만으로도 충분하겠지요.”

하지만 겐지, 통증을 안고 산다는 건 무서운 일이에요. 일상적인 생활이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고요.”

하지만 이미 제 몸으로는 박사님이 말하시는 일상적인 생활이 가능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리고요?”

겐지의 눈이 상심한 듯 아래로 쳐진다. 하지만 입가에는 가느다란 미소가 어려있었다. 어딘가 처연한 표정에 앙겔라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나마 제가 사람이었단걸 상기시켜주더군요.”

그의 입가에 미소가 더 깊어졌다. 하지만 앙겔라는 그 미소에 화답할 수 없었다. 그녀의 눈빛은 경악에 가득 찼다가, 이내 동정심으로 변해버렸다. 골절된 손가락 부위의 통증이 화끈거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에게 동정심을 품었다는 데에서 부끄러움을 느꼈다. 겐지는 몇 번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다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의무실에서 나갔다. 앙겔라의 시선은 사라져가는 겐지의 뒤를, 그의 흔들리는 리본을 계속해서 따라갔다.

 

겐지의 발작은 첫날 이후로는 가라앉았다, 아니 가라앉은 것처럼 보였다. 앙겔라는 혹여나 겐지가 통증을 느끼지는 않을까, 그의 상황을 계속해서 주시했다. 일주일에 한번, 진료를 할 때 마다 진통제가 얼마나 남았는지를 확인하기도 했다. 그는 약을 먹지 않았으면서도 먹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온전히 그 고통을 모두 받아들이겠다는 양, 약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을 고작 두어개밖에 줄어들지 않은 약통을 보며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의 말대로 그는 이 상황을 반기고 있는 듯 했다. 임무를 나가 수송선 한편에서 움찔거리며 고통을 참아내고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그녀는 그가 기뻐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이 지독한 환지통은 불행이 아니라 축복이었다. 자신은 옴닉이 아니라는, 적어도 인간으로는 살아있다는 증거. 손가락 하나하나가 베이는 느낌이, 발등이 무언가로 내리쳐지는 격통이, 복부가 칼로 베일 순간의 절망 하나하나가 아이러니하게도 그에게는 살아갈 이유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그런 그를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나약함이 싫었다. 그저 그가 그런 불면의 밤을 보낼 때엔 생체장을 켜주어 통증을 완화시키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어쩌면 홀로그램이라면 치료가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그녀는 그 방법을 겐지에게 권한 적이 있었다. 신경학적인 치료방법이고 환지통에 관해서는 효과가 있다고, 당신이 통증을 느끼는 걸 좋아한다는 거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지만, 적어도 심한 통증만은 줄일 수 있지 않느냐고 말이다. 겐지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는 자신이 이 상황을 즐기고 있지는 않지만 싫지는 않다고 말했다. 게다가 이제 오버워치는 시마다일족 몰락작전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는 괜한 요소가 자신에게 끼어들어 일을 그르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녀는 괜한 요소가 아니라고 말하였지만, 그는 그 나이대의 남자들답게 고집이 셌던지 끝까지 치료에 대해서는 거절하였다. 그나마 약을 먹는 것으로 족하다며, 필요할 때 약을 처방해달라는 말을 하면서. 그녀는 그가 가져갔던 약통이 사실은 자신이 처음에 주었던 것이란 걸, 그는 약통 하나마저도 다 쓰지 않을 정도로 환지통을 즐겼다는 것을 말하려다 말았다. 그의 말대로 그는 곧 하나무라로 돌아갈 것이었다. 자신의 고향으로, 자신을 무참히 내버린 살육의 현장으로 다시.

의사로서 당신의 말은 수긍하기 어려워요, 겐지. 하지만 오버워치 요원으로서는 그 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요. 필요하면 이걸 먹도록 해요, 분명 당신에게 도움이 될거에요.”

어쩌면 자기만족인지도 몰랐다. 그녀는 그에게, 예전에 그가 거절했던 마약성 진통제통을 건네었다. 이건 의사로서는 실격인 행동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격통에 괴로워하는 그를 상상할 수밖에 없다는,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자신마저도 괴로워할 거라고 생각했다. 겐지는 순순히 약통을 받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가 영영 그 약을 먹지 않을 것을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다시 발작이 터진 것은 하나무라 원정을 얼마 앞둔 때였다. 그녀는 겐지가 보내는 응급사인에 급히 카두세우스 지팡이를 들고 그의 방으로 달려갔다. 그의 방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린 뒤였다. 마치 곧장 떠날 사람처럼 짐이 없던 방에는 약들이 널부러져있었고 가구들의 파편들이 가득했다. 벌써 기계성대가 고장났는지 아우성에는 소리가 없었다. 앙겔라는 급히 생체장을 켜고서는 카두세우스 지팡이를 겐지에게 들이댔다. 따뜻한 빛들이 자신을 비추자, 그제야 몸부림이 점차 잦아들었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고통스러운 듯 손가락을 이리저리 구부려댔다. 그녀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약들 중, 며칠전에 처방하였던 몰핀이 들어간 약을 찾고서는 바닥에서 마치 새우처럼 옆으로 누워 움찔거리는 겐지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급히 겐지의 바이저를 벗겼다. 그리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입술 주변에는 얼마나 물어뜯었는지 생채기와 멍자국이 가득했다. 통증에 생리적으로 흘린 눈물에 눈가가 발갛게 부어있었다. 겐지의 눈동자에는 초점이 없었다.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은 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얼마나, 그동안 얼마나 자주 이런 일이 있었으면- 그동안 겐지는 남들 앞에서 바이저를 벗는데에는 꽤나 예민했었다. 설마 이렇게 심각할 줄은 앙겔라도 전혀 상상하지 못하였다.

겐지, 앙겔라 치글러에요. 겐지.”

눈동자가 속삭이는 사람을 향해 돌아간다. 그는 몇 번 그 부은 눈을 깜빡이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바람이 빠지는 소리와 함께 혀어,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혀어- 하안- 앙겔라는 그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았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겐지. 난 메르시에요. 앙겔라 치글러, 당신의 주치의에요. 오버워치의 동료기도 하지요. 내가 누군지 기억안나나요?”

그녀는 조심스레 식은땀에 젖어있던 겐지의 얼굴에 손을 갖다대었다. 엄지손가락으로 몇 번 눈썹부근을 만졌을까, 순간 그녀의 손가락이 움찔거리다 움직임을 멈추었다.

갑작스레 겐지는 눈을 감고는 제 얼굴을 안겔라의 손에 비비기 시작했다.

“..겐지?”

그녀는 순간 당황해서 손을 떼려고 했다. 하지만 겐지의 손이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제발 이대로, 조금만 더 이대로 있어달라는 듯 간청하는 것처럼 약하게. 손가락 마디마디마다 그의 젖은 살결이 닿아와 화끈거렸다. 젖은, 하지만 차가운 숨이 겐지의 입가에서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이미 붉다못해 검붉게 된 입술이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게 앙겔라, 라고 부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정신이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그녀의 손에 눈가를, 뺨을, 입술을 부비었다. 그녀 자신은 매우 노골적인 상황에 당황해하고 있었지만, 그는 마치 생명줄을 붙잡는 듯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고개를 돌려가며 그녀의 손가락을 얼굴로 느꼈다. 겐지의 피부는 차가웠다. 뇌에 가는 부담을 덜하기위해 일부러 체온의 온도는 낮게 설정했다. 그래서였을까, 그녀는 자신의 손가락이 더 뜨겁다고 생각했다. 겐지는 그녀의 손등에 뺨을 부비었다. 하아, 마치 속에서 무언가 억누르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겐지.”

입을 굳게 다물고 턱에 힘이 들어간다. 그녀는 또다시 통증이 도졌는 줄 알고 얼른 그의 입에 약을 넣으려고 했다. 하지만 물을 찾는 동안 그녀는 그게 아니란걸 깨달았다. 가뜩이나 식은 땀으로 젖어있던 겐지의 눈가에서, 그렇게나 식어있던 그의 얼굴에서 무언가 따뜻한게 흘러나왔다. 그게 눈물이란걸 알아채기도 전에 다시 한번, 겐지는 마른 숨을 토해내었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곧 죽어버릴것처럼 메르시의 손바닥에 얼굴을 들이댔다. 손바닥의 민감한 부위와 눈물이 맞닿아 미끈거리면서도 뜨거웠을 때, 그녀는 자신의 심장이 터져버릴거라고 생각했다. 두근대는 심장이 미친 듯이 그녀의 온 몸에 피를 보내고, 열을 올리고 있었다. 겐지의 입술이 손가락 끝에 닿았을 때는 눈을 감고 자신도 숨을 참아야 했다. 그리고 이 순간에 흥분하고 있는 자신에게 자괴감을 느꼈다.

겐지는 몇 번이고 앙겔라로부터 체온을 갈구했다. 몸이 변하고나서부터 느끼지 못했던, 타인을 계속해서, 또 계속해서 요구했다.

 

 

 

남자친구에요? 왜 그리 얼굴을 붉혀요?”

매기의 말에 앙겔라는 제정신을 찾았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겐지의 방에 들어갔을 때를 생각하니 흥분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날 이후로 겐지는 더 이상 통증을 호소하지 않았다. 어쩌면 일부러 티를 내지 않은 건지도 몰랐다. 그는 무사히, 그리고 효과적으로 시마다일족을 궤멸시켰다. 주인 잃은 성에는 그나마 끄나풀들만이 남았고, 모든 일이 정리되자 그는 여행을 떠났다. 그녀는 그가 오버워치를 떠나기 전날,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그는 자신의 방에서 있었던, 차가웠지만 무엇보다도 뜨거웠던 그날 밤에 대해 사과했다. 앙겔라는 그가 사실은 부끄러워하는게 아닌가, 하고 생각하며 다시 그에게 진통제를 건네었다. 시마다성에는 다행인지 아니면 불행인지 그의 환지통을 일으키는 트리거였던 형제는 없었다. 어쩌면 더 이상은 통증이 당신을 괴롭히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이걸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는게 앙겔라로서는 편해서였을지도 몰랐다. 간단한 면담과 이별, 그는 환송회도 가지지 않고 오버워치를 떠났다. 앙겔라는 텅 빈, 마치 그가 있었다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방을 바라보며 그가 계속해서 얼굴을 비볐던 손가락을 몇 번 구부렸다. 마치 손만이 그때를 기억한다는 듯이.

 

그리고 겐지가 어디로 갔는지는 알음알음 전해들었을 뿐이었다. 여타 옴닉과는 다른 생김새에 특이한 옴닉에 대한 이야기는 군데군데에서 가끔씩 터져나왔다. 어느날은 사막을 헤매고 있었고, 어느날은 영국에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일본의 어느 고성에서 모습이 관찰되기도 했다. 그러다 결국은 그가 스승을 만났다는 이야기까지 전해들었다. 네팔의 샴발라 수도원,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계속해서 부정해왔던 옴닉의 수도원이었다.

과연 그의 통증은 아직도 그를 괴롭히고 있을까. 아직도 그의 뇌는 사라져버린 육체를 그리워하고 있을까. 그녀는 깃털을 손에 쥔 채로 누런 편지지를 폈다. 진짜 이 깃털로 글을 썼는지 편지에는 날카로운 펜글씨로 쓰여져있었다.

 

 

앙겔라, 어떻게 지내시는지 안부인사 올립니다.

여기는 네팔의 샴발라로 저는 스승이신 젠야타 선생님의 비호아래 무사히 지내고 있습니다. 옴닉수도원으로 저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옴닉이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옴닉이란 것에 신경을 쓰지 않고 그저 인간들과의 조화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와 매우 어울리는 곳이죠.

저는 스승님을 만나고나서 마음의 안정을 얻었습니다. 그동안 저를 괴롭히던 형과 시마다일족에 대한 길잃은 분노도 결국 이곳에서 사그라들더군요. 물론 그럴 수 있을 때까지, 수많은 시간들을 필요로 했습니다.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저는 그 약을 단 한톨도 먹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동안 수많은 아픔들이 저를 괴롭혔습니다.

하지만 스승님을 만나고 깨달음을 얻자, 정말이지 놀랍게도 그 통증은 간지러움으로만 남아, 제가 그나마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줍니다. 저는 무사히 잘 지내고 있습니다. 선생님도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합니다, 괜찮으시다면 편지를 보내주세요.

 

추신. 이 근처에는 펜이 없습니다. 그나마 잉크가 있어 깃펜을 만들어 글을 씁니다.

 

 

과연 그래서였는가, 깃펜 끝에 어린 잉크는 정말 잉크였던 모양이었다. 게다가 종이도 옛날종이처럼 얇고 낡아있었다. 하긴 옴닉들이 가득한 곳에서 종이가 필요하리라고는 보지도 않았다.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그가- 그렇게나 괴로워하던 그가 평온을 손에 넣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기뻤다. 그를 괴롭히던 통증이 결국은 간지러움으로 전락해버렸다는 것이 너무나도 기뻤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도 못하던 일을 결국 해낸, 그 젠야타라는 수도승에게 질투도 느꼈다. 결국 자신은 의사로서밖에 일을 할 수 없었다. 그를 변하게 한건 앙겔라 그녀가 아닌 마음의 평온을 추구하던 수도승이었다.

그가 얼굴을 부비었던 손가락이 화끈거렸다. 그녀는 소리없는 아우성을 외치던 밤을 떠올렸다. 이제 더 이상은 그런 밤은 없을 것이다. 애석하게도 이제 그녀의 체온을 느끼려던 그 발악도 없어지겠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녀는 부디 그의 앞날이, 그 간지러움이 다시 격통으로 변하지 않기를, 제 형이 저를 베었을 때를 떠올리지 않기를 기원했다. 입가에 깊은 호선이 그려졌다. 오늘은 자기 전에 깃펜을 사용해봐야겠다. 분명 멋들어진 글씨로 그에게 편지를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선생님-! 텐트를 걷고 어린 아이가 자신을 불렀다. 머리를 짧게 깎은 남자아이는 동생인 것처럼 보이는 아이를 업고온 모양이었다. 예우가 다쳤어요. 아이의 목소리에는 간절함이 어려있었다. 그녀는 매기에게 얼른 예우를 침대에 눕힐 것을 명령하고는 편지와 깃털을 책상 위에 놓았다. 동생을 걱정하는 형의 다급한 목소리가 병원텐트 안에 가득 채워졌다. 그녀는 그 모습을 보고 쓴웃음을 삼켰다. 그리고 아이를 향해 걸어가는 순간에, 문득 크리스마스 트리라도 작게 꾸밀까, 하는 것이었다.











인생은 뽐뿌리라, 그것을 한시빨리 풀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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