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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백업 _ 이것저것 아무거나 잡다하게 ☆★☆ (진행중)

rabbitvaseline 2017. 4. 6. 23:51


2017.4.6 [알렉스레니]


밖에는 간만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밤의 비는 그동안 건조했던 지옥의 숨통을 약간은 틔어줄 것이었다. 비는 너무 세차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약하다고 하기는 어려울 정도로 내렸다. 기상예보에서는 내일 아침까지는 내릴 것이라고 잘생긴 기상캐스터가 말하였다. 레널드는 거기까지 보고나서는 채널을 돌렸다. 그는 소파 아래에 앉아서는 멍하니 텔레비전 채널들을 돌렸다.

밤시간대에는 드라마라던가 토크쇼나 리얼리티쇼밖에 보이지 않았다. 검은 고양이 형사가 범인을 향해 총을 쏘는 장면을 지나, 겜블러가 게임을 하는 장면이 지나갔고, 이윽고 요즘 지옥에서 잘 나간다는 스켈레톤 가수를 모셔놓고는 이상한 머리를 한 주황악마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중에도 이 지옥개의 마음을 끌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는지, 그는 10초동안 방송을 확인하고 넘기기를 수차례 반복하였다.

심심해, 아저씨? 계속 돌리기만 하고 말이야.

소파위에 누워있던 알렉스가 보다못해 결국 리모컨을 뺏어들었다. 그의 태블릿PC에선 한창 늑대인간 요리사가 바베큐를 하고 있었다. 레널드는 오랫만의 권태를 즐기며 알렉스가 뉴스채널의 번호를 누르는 것을 바라보았다.

오랫동안 그의 발목을 붙잡던 일이 너무 싱겁게도 끝나버렸다. 그리고 번아웃이 온건지, 하루종일 레널드는 갈피를 못잡고 있었다. 반쯤 멍해진 머리로 오늘 어느 집에서 화재가 일어났다는 뉴스를 보았다. 가스폭발에 집이 터지는 영상이 이어졌는데, 그러자 머리맡에 있던 검은 고양이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다행히도 사상자는 없었지만 재산피해가 있었다는 말이 이어지자, 다행이라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그리고 다른 사건 뉴스가 이어졌다. 레널드는 끊임없이 터져나오는 거기서 거기인 뉴스에 지겨워하다 알렉스가 보고있던 영상에 눈을 돌렸다. 알렉스는 무엇이 좋은지 바베큐가 익어가는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비는 계속해서 내렸고 덕분에 공기에도 약간 물기가 어렸다. 반쯤 열어놓은 창문에서는 비냄새가 흘러들어왔다. 뱀파이어가 덜익은 고기를 먹으려다 뱉어버리자 알렉스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레널드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검은 고양이의 뾰족한 귀가 이리저리 움찔거리는 것을 알아챘다. 그가 조심스레 손가락을 갖다대자, 다시 알렉스가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정말, 그렇게 심심하면 어떻게 해. 책이라도 갖다줄까? 저번에 새로 사온게 있는데.... 아니면 다큐멘터리나 볼래? 저번에 월정액으로 들어갔던거 다큐멘터리도 있는 모양이더라고. 뭐, 나야 지겨워서 안봤지만 우주 다큐멘터리도 있던걸.

그러고는 대답도 듣지 않은 채 리모컨으로 VOD서비스를 선택했다. 제법 좋아할거라며 찾아가는 폼이 어딘가 익숙해보였다. 레널드는 고개를 젖혀 검은 고양이의 턱을 올려다보았다. 하얀 물방울이 그의 코와 입을 덮고 있는 모양이 오늘따라 제법 마음에 들었다. 마치 그림에나 나올법한 빗방울같다는 생각을 하며, 손가락으로 수염자국을 건드리려는 찰나였다.


아?

아무런 전조증상도 없었다. 순식간에 형광등과 텔레비전의 화면이 꺼졌고, 방안은 어둠으로 가득 찼다. 그나마 알렉스가 켜놓은 태블릿PC에서 하얀 불빛만이 터져나올 뿐이었다. 이런, 알렉스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핸드폰을 들고는 분전함을 확인하더니 소리를 내질렀다.

무슨 일이야?

레널드가 일어나서 핸드폰 불빛으로 그를 비추자, 다시 알렉스의 입에서 경악이 터져나왔다. 퓨즈도 아무 이상이 없는것 같다고 말하고나서는 급히 어딘가를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짧은 통화가 끝나자 그의 입에서, 정말로 오랜만에 듣는 한숨이 터져나왔다.

배전반이 나갔다네. 어떻게하지? 한 2시간은 걸릴거라는데? 일단 양초로 불을 켜볼텐데... 잠깐만 기다려...

냉장고엔?

냉장고는 괜찮아, 썩을거 별로 없어.

알렉스는 최근 냉장고를 비웠다고 말하며, 침실에서 양초를 꺼내왔다. 라이터로 불을 붙이자 심지 끝에 작은 불꽃들이 일렁이며 피어올라왔다. 레널드는  그 불빛들이 피어올라오는 모습을 보다가 빗소리가 넘쳐흐르는 창밖을 바라보았다.다행히도 날은 춥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전기가 통하지 않는 곳에서 있기도 힘든 노릇이었다. 두시간?  그는 방금전까지도 텔레비전의 여러 자극적인 방송들에도 지루해하던 시민이었다. 그는 문득 자신이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을까 걱정이 들었다.

어떻게 할래? 밖에 나갈까?

물론 둘이 갈만한 곳이 없는건 아니었다. 근처 카페는 24시간이었고, 30분정도를 운전하면 레널드의 집도 있었다. 정작 주인이 연인의 집에만 눌러있어서 전혀 생활감이란 느껴지지 않는 집이었지만, 그래도 전기가 통하지 않는 집보다는 나을지도 몰랐다. 정 안되면 영화관에라도 갈 수도 있었다. 오히려 2시간이라는 시간을 감안하면 그쪽이 더 나을수도 있었다.

하지만 바깥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고, 레널드는 비가 내리는 날은 왠지 바깥에는 나가기 싫어했다. 그가 망설이는것을 알아채자 알렉스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리고는 그를 끌어안고는 태블릿불빛도 꺼져버린 소파로 데리고 갔다. 간신히 휴대폰불빛으로 걸어가는 모양새는 어딘가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소파에 레널드를 앉히자마자 알렉스는 다시 그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리고는 서로 몸을 붙이고는 테이블에 태블릿을 올려놓았다.

답답해.

에이, 뭘 새삼스럽게 그래.

언제 재생버튼을 눌렀는지 이제 뱀파이어는 아주 맛있게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뱀파이어와 요리사 늑대인간은 장작불을 사이에 두고 음식을 즐기며 대화를 하고 있었다. 텔레비전방송보다는 화질이 좋지는 않은, 어느정도 아마추어 느낌이 나는 영상이었다. 하지만 그런것보단, 레널드는 알렉스의 꼬리가 제 다리를 건드리는 것에 더 집중했다. 그의 한쪽손은 레널드의 어깨를 몇번 더듬다가 그것도 힘들었는지,아니면 더 견디기 어려웠는지 연인의 손을 붙잡았다. 레널드는 손 끝에, 바닥에 전해지는 육구의 느낌에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알렉스의 육구는 도톰하면서도 그렇게 부드럽지는 않았다. 물론 분홍색이라는 점은 사랑스러웠지만, 어차피 정전아래서는 그 색도 잘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조심스레 알렉스의 손을 들고서는 손가락 마디마디마다 입을 맞추었다. 갑작스런 스킨쉽에 놀란건 의외로 알렉스였다. 꼬리가 세차게 흔들리며 레널드의 다리를 건드렸다. 간지러워 아저씨. 평소라면 레널드가 할법한 말을 하며, 알렉스는 맹렬히 부끄러워했다.

결국 영상속에서 식사를 다 마친 둘은 다음에 보자며 시청자들을 향해 인사를 했다. 화면이 어둠으로 물들었지만 알렉스는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대신 어둠속에서 느껴지는 숨소리와, 약간의 촛불 불빛과, 또 약간의 접촉을 즐기며 그대로 소파로 몸을 눕혔다.



2017. 2. 14 [알렉스레니]


예를 들면, 한창 시트를 판에 부어넣던 파티셰가 생각한다. 그는 시내에서도 가장 유명하다는 제과점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1년에 한번 이상하게도 초콜릿 관련 과자가 미친듯이 팔리는 때에는 정말이지 예약하는 시민들을 저주하고 싶을 정도였다. 예를 들면 먹자마자 손발이 오그라드는 그런 저주라던가, 먹으면 입안이 폭발하는 그런 사소한 저주들. 가뜩이나 힘든 제과일은 더욱 더 힘들어져서, 잠만 자고 케잌을 구웠고 밥을 먹고나서는 초콜릿만 만들었다. 때는 2월 14일을 하루 앞두고 있었고, 그가 일하는 제과점 앞에는 예약된 초콜릿 케이크 중 약 2/3 정도가 냉장고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유성애자들에 대해서는 그다지 큰 관심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이런 말도 안되는(그것도 천국에나 있는 성인이 관련된) 기념일을 챙기는 것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건 그냥 생일에만 챙기면 되는게 아닌가, 투덜거리면서 오븐으로 시트가 담긴 판을 넘겼다. 이제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초콜릿 향기는 제대로 맡아지지 않았다. 화장실에라도 가려고 밖으로 나가면 시민들이 저마다 그를 쳐다보며 초콜릿냄새가 난다고 키득댔다. 그는 어쩌면 자신의 하얀 뼈도 초콜릿범벅이 된게 아닌가, 하는 착각에 시달려야 했다.

화장실에 다녀오니 여전히 매장은 수많은 예약손님들과 초콜릿을 사러 온 손님들로 붐볐다. 이제 발렌타인데이는 유성애자들뿐만이 아닌 일반 시민들에게도 기념이 되어버렸다. 가족에게, 혹은 친구에게 주려고 많은 시민들이 초콜릿을 사댔고 덩달아 제과회사도 그 열풍에 가담해서 어서 존경하는 이에게 초콜릿을 바치라고 광고하고 있었다. 망할 것들, 하지만 그들은 1년 매출에서 큰 몫을 차지하는 대목을 장식해주는 손님들이었기에 그는 아무 소리도 못하며 다시 현장으로 들어가야 했다.

아주 늦은 점심을 먹으러 모두가 모였을 즈음에 판매아르바이트를 하던 악마 하나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그는 단골손님인 헬하우스씨가 왔다며, 혹시 괜찮은 초콜릿케이크가 없냐고 묻더라며 말하였다. 헬하우스씨는 그들 가게의 오랜 단골이었으며, 이런 발렌타인특수에 상관없이 케이크를 사들고가던 시민이었다.

"중요한건 그게 아니에요! 글쎄 문구까지 써달라고 했어요. 글쎄, 사랑하는 알렉스에게, 라는거에요. 깨는거 아녜요? 그 헬하우스씨가 유성애자였다니?!!"

물론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직원들은 묵묵히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사실 몇년 전부터 헬하우스씨는 이 발렌타인데이때마다 문구가 적힌 케이크를 사가곤 했던 것이다. 물론 친애하는,에서 시작된 문구는 결국 사랑하는,으로 발전되었지만 말이다. 악마는 더욱 더 시끄럽게 떠들어대며 기사감이 아니냐고 열을 올렸다. 목소리는 귀에 거슬릴 정도로 시끄러웠기에, 파티셰는 포크를 멈추고는 악마에게 말했다.

"헬하우스씨가 유능한 변호사란걸 알면 그런 생각은 하지도 못할걸. 실제로 취미가 소송이란다."

물론 취미가 소송이라는 말은 농담으로, 가끔씩 헬하우스씨가 꺼내곤 했던 말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걸 진짜처럼 부풀려말했고, 이내 악마는 시무룩해하며 다시는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파티셰는 그렇게 자신의 단골을 지켜냈다고 스스로를 칭찬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케이크위에 얹을 초콜릿장식들과 시트에 생크림을 쌓고 그 위에 초콜릿을 부을 때였다. 과연 오늘도 당일퇴근은 무리인가, 그는 절망에 가득 차면서도 가득 차오를 금고를 떠올리며 소매를 걷었다.



2017.1.28


문을 열려던 순간 바니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뒤에 있던 레오는 도대체 무슨 일이냐며 파란 악마를 채근했지만, 오히려 손잡이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서 풀리지 않을 정도였다. 아주 작은, 1센티미터도 되지 않을 정도로 열린 틈에서, 바니는 일종의 컬쳐쇼크를 받아야 했다.

1인용 병실의 커다란 침대 위에 반쯤 누워있는 것은 환자가 아니라 레널드 헬하우스였다. 정작 환자는 그런 레널드의 목에 팔을 두르고는 그의 허벅지위에 다리를 모아 앉아있었다. 레널드는 무겁다며 검은 고양이를 타박했지만 상당히 기쁜 모양인지 입가에는 미소가 어려 있었다. 알렉스는 그런 레널드의 입가와 얼굴 주변에 코를 부비다가 입술도 맞추고, 제 볼을 비비기도 했다. 무언가 기묘하면서도 이상한, 굳이 말로 나타내자면 부끄러운 감정이 바니의 머릿속에서 스물스물 새어나왔다. 알렉스의 꼬리가 허공에서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었고, 이제는 레널드가 알렉스의 정수리에 입을 맞추고 있었다.

응, 뭐야, 바니? 레오가 어서 열자고 문 손잡이에 손을 대자, 바니는 즉시, 정말로 엄청난 정밀도를 자랑하며 소리가 나지 않게 문을 닫았다. 제발 들키지만 말아라, 들키면 안된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점령했다. 그리고는 손잡이를 다시 원위치로 돌리고는 레오의 입을 틀어막아, 지옥개의 주둥아리에서 나올 온갖 시끄러운 소리들을 차단했다.

"알렉스씨 주무셔."

그 말에 레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입을 떼자 그럼 어쩔 수 없다면서, 그런데 왜 그렇게 난리냐는 말이 나왔다. 그 말에 바니의 머릿속이 순식간에 하얘졌다가 다시 무언가로 채워졌다. 바니는 몇번 생각을 하다가 답했다.

"행복한 꿈을 꾸는것 같았거든."




2017.1.25

알렉스레니의 구절은, 언젠가 날 울렸던 아름다운 모습으로/ 오늘 밤 꿈속에 다시 나를 찾아와


알렉산드로 토레스는 카페인 중독에 빠져있었다. 그는 요즘들어 잠을 제대로 이루지 않았기에 항상 눈은 퀭한 상태였다. 그 때문에 피해를 보는건 페터의 일이었다. 페터는 언젠가 저것이 쓰러질거라며 예의주시했지만, 체력단련의 공이었을까, 그가 페터의 앞에서 잠드는 일은 없었다. 다만 일이 끝나면 수면제를 먹곤 했다. 수면제와 카페인, 언제 심장마비로 죽을지도 모르는 조합이었지만 알렉스는 이 조합을 사랑했다. 카페인은 잠을 자지 않도록 해준다. 수면제는 꿈없는 잠을 약속한다.

꿈 속에서는 항상 같은 시민이 등장했다. 셔츠차림으로 이건 안된다고 말하는 지옥개다. 이이상은 견디기 힘들다고 토로하던 연인이다. 한달 전에 헤어졌던, 레널드 헬하우스였다. 레널드는 계속해서 그의 꿈속에 등장해서는, 피곤한 표정으로 헤어지자고 말했다. 처음 꿈은 개꿈이라 여겼다. 두번째로 꾸었을 때엔 너무 그리워서, 꿈속에서 그를 끌어안고 울었다. 세번째에서는 너무나도 기뻤다. 네번째에 이르자, 이것이 결국 벗어날 수 없는 악몽이란걸 깨달았다. 얼마나 달콤한 악몽인가. 하지만 이 반복되는 악몽속에서 레널드는 울고 있었다.

검은 고양이는 그 사실이 견디기 어려웠다.



2017.1.23

알렉스레니 의 연성 문장 그리운 당신을 찾습니다.


좀비레이디가 만든 나침반은 과연 효과가 있던 모양이었다. 빨간 바늘은 골목 한편에서 인형을 끌어안고 동생으로 보이는 아이와 놀고있는 여자애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이의 입에서는 높은 이탈리아어가 튀어나왔다. 아마 동생에게 무어라 말하는걸테다. 빨리, 엄마가, 약속을, 너도. 벼락치기로 배운 이탈리아 말은 조금밖에 알아듣지 못했지만, 아무래도 식사를 하러 가자고 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대로변에 서 있는, 이 더운 낮에 스리피스 수트를 입고있는 중년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아이는 의심스런 눈초리로 레널드를 바라보다가 재빨리 동생을 일으켜세웠다. 빨리, 보채는 목소리에는 공포마저 담겨있었다. 결국 아이는 동생을 반쯤 업은 자세로 골목에서 사라졌다. 동시에 나침반도 아이를 향해 움직였다. 레널드는 천천히 아이들이 놀고있던 자리로 걸어갔다 그 자리에는 주인을 잃은, 검은 고양이 인형이 있었다.

찾았다. 레널드는 자그맣게 속삭였다. 그렇게나 오랜 시간을 들여서, 금단의 주술까지 이용해가며, 어딘가에서 아무도 모르게 죽어갔을, 그리고 다시 태어났을 너를.

지금의 너는 그런 모습이구나,

지금의 너는 동생이 있구나, 지금의 너는 여자애로구나. 지금의, 현재의 알렉산드로 토레스는. 그는 인형의 먼지를 털었다.

결국 넌 죽어버린거구나.

너를 찾느라고, 네가 죽었을까봐 마음졸이던 시간들이 이제는 허무하게 무너져내리려고 하고 있었다. 샌디, 이렇게 침울해할때 왜 그러느냐고 말이라도 건네어줄것 같건만 너는 어째서,

레널드는 이미 자신도 알아보지 못할, 다시 태어나버린 알렉스를 원망했다. 그리고 다시 원망하다가 검은 고양이 인형을 품에 끌어안았다.

마치, 알렉스가 그 검은 고양이인 양.






2017.1.22


알렉스가 급하게 편의점에서 돌아왔을 때엔 레널드는 이미 제 배를 부여잡고 소파에 모로 누워있었다. 그의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비어나왔는데, 애써 괴로운 것을 참으려는 모습이 적잖이 안타까웠다. 부엌에서 미지근한 물을 가지고와서야 레널드는 집주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게 너무 많이 먹은것 같더라니, 치과치료를 하느라 한달가까이 디저트를 만나지 못했던 위장은 갑작스런 생크림에 놀란것 같았다. 게다가 레널드도 오랜만인데다가 알렉스의 앞이라는 사실에 긴장이 풀린 이유도 있었다. 하여간 그는 지금 속이 안 좋았고, 결국 소파에 앉아있다 더부룩함과 통증을 호소했다. 애석하게도 알렉스의 집에는 소화제는 없었다. 그는 워낙에 꿩강했고 체하면 아무것도 먹지 않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알렉스는 아저씨에게까지 그걸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 시간은 아쉽게도 새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결국 그는 상비약을 준비하지 않은걸 후회하며 편의점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레널드는 창백한 얼굴로 알렉스가 건네어주는 약과 물을 삼켰다. 하지만 약효는 금새 드러나지 않는 법이기에, 그는 다시 괴로워하며 소파에 누웠다. 

아저씨, 괜찮아? 그다지 보기 드문 레널드의 아픈 모습에 절로 눈꼬리와 귀가 내려갔다. 알렉스는 게슴츠레 뜬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지옥개의 이마와 귀를 쓰다듬었다. 애정섞인 타박이 함께하는건 당연했다. 그러게 무리하지 말랬잖아. 내가 이런 말을 하게 하다니, 정말 바보같아. 바보같다는 말에는 웃음이 섞여있었지만, 레널드는 이 검은 고양이가 얼마나 자신을 걱정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지 않으면 이런 밤중에 밖에 나갈리 없었으니까. 아예 토할래? 레널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연인의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중에선 가장 최악인것 같았다. 알렉스의 꼬리가 사납게 이곳저곳으로 흔들렸다. 그러다 무언가가 생각났는지, 갑작스레 침실로 사라져버렸다. 레널드는 가만히 눈을 감고 뱃속에서 꾸륵거리며 위가 무리하고 있는 소리를 들었다. 태어나서 몇번 없는 급체였다. 알렉스는 무슨 상자와 함께 방에서 나왔다. 옛날에 동양쪽에 갔다가 들은 방법이라고 운을 떼면서 다가오는게 적잖이 수상했다. 상자는 반짓고리였다. 두꺼운 무명실과 바늘이 테이블 위에 올라갔다. 알렉스는 괴로워하는 레널드를 일으켜 앉혔다.

그거 믿어도 되는거니? 불안섞인 질문에 알렉스의 동공이 커진다. 레널드는 알렉스 자신도 이 방법을 시도하지 않았다고 직감적으로 확신했다. 하지만 알렉스는 괜찮노라고, 효능은 끝내준다고 '들었다'라면서 레널드를 안심시켰다. 그럼 , 아저씨 아파도 참아. 그 말과 동시에 등어리 중심에 강한 통증이 일었다. 샌디, 라고 소리지르기도 전에 알렉스는 연거푸 레널드의 등을 두들겼다. 통증은 척추를 따라 점차 올라갔다. 그러다 결국 멈추었는데, 이번에는 오른팔을 붙잡고 마치 손에 에너지를 모으려는 양 아래쪽으로 주물렀다. 이 기묘한 행동에 레널드는 크게 의구심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너무 많이 아팠고 너무 많이 지쳐있었다. 설마 죽이지는 않겠지, 라고 생각하며 그는 검은 고양이가 바늘을 라이터불로 지지는 것까지 담담하게 바라보았다. 

가르쳐준건 산군인데 말야, 체했을 때는 이 방법이 직빵이래. 이제는 엄지손가락 부위를 실로 칭칭 동여맨다. 레널드는 이제야 자신이 무슨 짓을 당하려는지 깨달았다. 알렉스는 이제 바늘을 레널드의 엄지손가락, 바로 발톱 위에 갖다대고 있었다. 아주 잠깐 따끔할테니까 참아. 이걸 하면 더러운 피를 빼준대. 언젯적 방혈법이냐고 말하고싶었지만, 실상 하고 싶었던 말은 그게 아니었다. 그는 자신에게 그 방법은 통하지 않는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이미 알렉스는 바늘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는 검은 손가락에 그것을 찔러넣고야 말았다. 그리고는 어서 더러운 피가 흘러나오기만을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피는 커녕 레널드의 따끔하다는 투정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한숨소리와 지친 목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지옥개한테 바늘로 찔러봤자... 톱도 간지럽다고 하는 종족에게 바늘은 그다지 큰 자극은 아닌 모양이었다. 이 피도 안나오는 짐승같으니라고. 맞아, 그러니까 이만 풀게. 알렉스는 매우 시무룩해하며 바늘을 상자에 집어넣었다. 도대체 뭘 기대하고 있었던 걸까, 더러운 피가 나와서 놀라길 기대했던걸까. 샌디. 레널드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알렉스를 붙잡았다. 고마워. 그러고는 시무룩한 얼굴 곳곳에 입술을 부비었다. 그러자 그나마 기운빠진 얼굴에 화색이 돋았다. 그러고보니 어느새 속이 더부룩해진것도 많이 가라앉았다. 어쩌면 정말로 효과가 있는것인지도 몰랐다.

속이 꽤 편해졌어. 정말이지? 그것봐, 꽤나 효과있다고 했잖아. 어쩌면 그냥 자극을 줘서 그런건지도 몰라. 알렉스의 목소리에 화색이 돈다. 레널드는 그 의기양양한 고양이의 모습이 꽤나 귀엽다고 느끼면서, 절대로 약에 대해서만은 꺼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2015.12.27 [냇배너]


바튼의 집 주방으로 향하는 문 아래엔 겨우살이 나뭇가지가 아주 얌전히 자신의 모습을 뽐내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만찬을 끝내고 가위바위보에서 진 손님 둘을 제외한 나머지는 거실에 있는 크리스마스 트리로 모여들었다. 나타샤와 배너가 뒷정리와 설거지를 마쳤을 때엔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나홀로집에 정신이 팔려 집안에는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손을 수건으로 닦은 배너와 나타샤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특별서비스로 팝콘이나 튀길까요? 배너의 말에 나타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옥수수가 위치해있을 찬장으로 발걸음을 돌리려는 찰나, 나타샤가 그의 목을 붙잡고는 가볍게 입술을 맞추었다. 배너는 정말로 놀랐다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음, 지금 겨우살이 키스를 한건가요?

겨우살이 밑에서 키스하면 영원히 행복해진다고 그러더라구요. 물론 난 영원을 믿지 않지만.
그들의 관계는 유한하다는 것을, 처음으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을 때부터 잘 알고 있었지만 직접 들으니 속이 쓰렸다. 하지만 배너도 그 말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애시당초 겨우살이 밑에서 입맞춤을 나눈 것이 처음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의 몸도 영원한 사랑이니 행복을 보장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랬기에, 그렇기 때문에 그는 제 앞에서 수줍게 웃는 연인의 뺨을 어루만졌다.

그래도 영원이 아니더라도 지금은 가능하겠네요.

나타샤가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그는 연인의 입술을 훔쳤다. 그 위에서 겨우살이는 전등빛에 반짝거리며 행복한 연인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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