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ANDALIEN
Lullaby of Birdland. 1 본문
1.
메리켈은 20달러 지폐를 받자마자 행여나 빼앗길새라 급히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공항에서 만난 백인여자를 의사선생님 댁에 데려다주는 대가치고는 너무나 많았다. 그녀는 시골 공항에서 호객을 하던 메리켈을 발견하자마자 마을에서 유명하다는 의사선생님에게 데려다 달라고 말하였고, 마치 일출할 때의 햇빛을 닮은 금발을 양갈래로 묶고서 하얀색 밀짚모자를 쓴 모습은 여태껏 보았던 사람들 중 가장 아름다운데다 이미 돈도 주머니에 넣어버린 터라 그는 쉽사리 수락하였다.
“의사라면 호텔의 이스프와 선생님을 말하는거죠?”
메리켈은 호텔에서 애써서 기른 콧수염을 만지작거리며 손님들을 진찰하곤 하였던 의사를 떠올렸다. 그는 마을에 하나밖에 없는 호텔에서 달러로 진료비를 낼 수 있는 여행객들을 상대로 진찰을 해주곤 하였다. 하지만 여자는 그게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주머니에서 몇 번 접혀 구겨진 사진을 꺼내어 아이에게 보여주었다. 부리부리한 눈, 큰 코와 두터운 입술, 넓은 이마와 곱슬거리는 머리카락과 약간 피곤해보이는 인상은 어제까지도 아이의 집에서 어머니의 상태를 살피던 또 다른 의사의 모습과 유사했다. 호텔에서 머물며 여행객들을 주로 진찰하던 이스프와와는 달리 그 또 다른 의사는 마을에서 10분은 걸어가야 할 밀림 언저리에 살면서 왕진을 다니곤 했다.
“내가 듣기로는 마을에서 일을 잘한다고 들었어. 이 사람 본 적 있니?”
“네, 데이비드 선생님이죠? 그분이야 명의에다 하늘에서 온 천사죠. 호텔의 돌팔이와는 달리 돈을 안받는데다가 싼값에 봐주거든요.”
“사실 나는 호주에서 기자일을 하고 있어, 시드니 매거진이라는 잡지인데, 여기서 자원봉사에 가깝게 살고 있는 백인 의사가 있다길래 취재하러 온거야.”
보이는 바로는 전혀 기자처럼 보이지 않겠지만, 하고 여자는 미소를 지었다. 메리켈은 수줍게 미소짓는 그녀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긴장을 풀고선 밀림이 있는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여기서 걸어가려면 대략 1시간은 더 걸리겠는데 괜찮겠냐고 덧붙였다.
“이 짐을 들고는 무리겠는걸. 여기 호텔이 한군데밖에 없다던데.”
“그야 그렇죠. 리조트도 없으니 여행오는 사람들은 다 거기서 머무는 모양이에요. 하지만 그렇다고 거기의 시설이 좋을거라곤 생각하지 말아요.”
공항에서 마을내에 있다는 호텔까지는 걸어서 20분정도밖엔 걸리지 않아서, 그동안 여자는 메리켈에게 이런저런 마을의 상황을 물어보았다. 메리켈은 갱이 판을 치고 있다던지 외지인들이 늘어났긴 했지만, 그다지 달라진 것은 없다고 말하였다. 마을은 언제나 평온했고, 가끔씩 일어나는 소란을 제외하면 큰 분란도 없었다. 1년 전 데이비드 블레인이 해안가에 반라로 발견되었을 때에도 마찬가지로 마을은 평화로웠다.
“선생님을 발견한 건 나랑 엄마였어요. 둘이서 조개나 주울까 하고 있었는데, 백사장 한가운데에 사람이 누워있잖아요. 사실 시체인줄 알고 엄마는 내가 보지 못하게 했어요.”“그런데 살아있었다?”
여자는 언제 꺼냈는지 어느새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적도 근처 멜라네시아의 작은 섬에서, 게다가 아스팔트위를 걷고 있었기에 햇빛이 너무나도 따가웠다. 검은색 선글라스로 얼굴의 반을 가리자 더더욱 여자의 미모가 빛을 발하는 것 같았다. 어쩐지 옆에서 걷고 있는 자신도 잘생겨진 것 같다는 착각을 하며 메리켈은 말을 이었다.
“네. 뭐 기억을 잃은 것도 없었고요. 선생님은 피지쪽 섬에서 휴가를 보내다 배를 잘못타서 조난을 당했더래요, 정말 천만다행이죠. 그 해안가가 은근히 악명이 높아서 가끔씩 시체가 발견되거든요. 아무튼 그래서 당분간 우리집에서 머물었는데, 마음에 들었는지 아예 정착을 하겠다는거에요. 물론 마을 사람들은 당연히 좋아했어요. 선생님은 공짜로 마을 사람들을 치료해주었거든요. 솔직히 이스프와는 타지인만 하는지 좀 비싸요. 선생님은 그 의사양반이랑 하누이, 그러니까 딸에게 공부를 가르쳐주는대신 약품을 받아서 마을 사람들을 치료해주고 있어요.”
“돈은 안받고?”
“여기선 돈은 그다지 필요없어요, 먹고 사는데엔 걱정은 없으니까요. 그래서 선생님은 돈대신 먹을걸 받아가요, 물론 돈을 준다면 받기야 하죠. 난 돈을 주거든요.”
그러더니 소년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일주일 전, 어머니가 여동생을 낳았는데 데이비드가 그것을 도와주었더라는 이야기였다. 솔직히 아슬아슬했죠, 10살짜리 소년의 목소리가 긴장에 잠겨있다가 이내 터지곤 하였다. 아이는 흥미롭게 그날의 상황에 대해서 말하였다.
“엄마 양수는 터지고, 산파를 해주기로 한 아줌마는 보이지도 않고. 너무 무서워서 울고 싶었는데, 선생님이 근처에 라브 아주머니네에 있다는 걸 떠올린거에요. 정말 많이 달렸어요, 원래 집에서 아줌마 댁까진 10분은 더 걸리는데, 5분만에 도착했다니까요.”
“정말 장하구나, 메리켈.”
아이는 가르쳐준 적도 없는 이름이 여자의 입에서 나온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오히려 기쁘다는 듯 더 시끄럽게, 마치 종달새가 울듯 종알대었다. 소년 특유의 높은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를 스쳐 도로 너머로 사라졌다.
마을에서 데이비드 블레인의 집까지는 1시간이 넘게 걸린다길래, 중간에 호텔에 들러 짐을 맡기기로 했다. 과연 호텔이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시설은 낙후되어있었고, 아무래도 벌레들과 쥐까지 보이는 것 같았다. 데스크에서 나란하게 낮잠을 즐기던 고양이의 이유를 깨닫고나니, 메리켈이 말한 시설이 좋지 않다는 말이 이해가 갔다. 그녀는 2층 구석에 자리잡고 있던 큰 방에 짐을 풀었다. 정면은 도로와 맞닿아있었고 후면에는 베란다가 설치되어 있었다. 베란다로 나가보니 숲과 맞닿아있어서 분명 바누아투의 자연을 느낄 수 있을테지만 덧붙여 벌레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벨보이에게 팁을 주고 작은 백팩을 짊어진 채 홀로 나가자 메리켈은 그렇죠, 하는 눈으로 여자를 바라보았다. 여자는 그 모습이 어딘지 천연덕스러워 다시금 미소를 지었다. 데이비드의 집은 마을에서 벗어나 밀림의 가장자리에 자리잡고 있었다. 마을을 가로질러 가는 길엔 작은 시장이 펼쳐져 있었는데, 모두들 의사선생에게 간다고 말하자 메리켈에게 자신들이 팔고 있는 물건 한두개씩을 건네주어서 결국 여자도 과일 몇 개를 들고가야 했다. 데이비드는 마을에선 상당히 명망이 높았던지, 만나는 사람들마다 의사의 칭찬을 하곤 하였다. 여자는 그런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자신의 발걸음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한시간여를 밀림의 가장자리를 따라가며 걸었을까, 메리켈은 이야기를 멈추고는 턱짓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분명 다 쓰러져가는 오두막을 임시방편으로 수리한 것이 틀림없을, 허름한 집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근처에 민가는 커녕 폐가도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그 집 한 채만이 밀림의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조금 더 걸어가자 작은 마당과 허물어져가는 울타리가 보였다. 메리켈은 그런 집이 익숙하다는 듯, 여자에게 자신이 갖고 있던 과일 전부를 넘기고는 끄응, 소리를 내며 문을 잡아당겼다. 문은 아귀가 맞지 않았는지 몇 번을 소년이 힘을 쓰고나서야 간신히 열렸다.
“...메리켈?”
문 너머로 살짝은 끄는 듯 하면서도 우물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메리켈은 방안에 드리워진 발을 넘기고는 집안으로 들어갔다. 여자는 천천히 문 내부로 발걸음을 옮겼다. 발을 걷고 내부로 들어가자 이상한 약품 냄새가 그녀의 코를 습격했다. 그녀가 얼굴을 찡그리는 동시에 소년은 방 한켠에 있던 침대에 앉아있던 남자를 향해 토속어로 무어라무어라 소리쳤다. 집, 아니 큰 방 하나밖에 없는 공간은 퀘퀘한 약품냄새와는 나름 정리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침대 옆에는 커다란 테이블 두 개와 책장이 있었는데, 테이블 위엔 색색깔의 액체들이 여러 유리용기에 담겨져 있었고 책장은 온갖 책들과 서류들로 가득했다.
“...누구...세요?”
남자는 잽싸게 상반신을 목면으로 가리곤 안경을 썼다. 머리는 헝클어져있었지만 그다지 상관이 없을 정도로 짧았으며, 턱과 코 아래에는 짧게 정돈된 수염이 자리잡고 있었다. 여자는 갖고 온 과일들을 아마 식탁용으로 쓸 작은 원형 테이블에 올려놓고는 메리켈을 힐끔 쳐다보았다.
“Hola,”
여자의 말에 남자는 곧바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여자는 일부러 메리켈이 알아듣지 못하도록 스페인어로 말을 이었다.
“el Dr. Bruce Banner. Soy de los Vengadores.”
남자는 메리켈에 문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아무래도 나가라는 듯 문을 계속해서 가리키고 있는 모양새에 아이는 적잖이 당황해하고 있었다. 그로서도 평소엔 온화하던 의사선생님이 흥분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던 모양이었다. 남자는 계속해서 토속어로 무어라 말하였고, 급기야 소리를 지르려는 낌새까지 내비쳤다. 소년은 눈가에 눈물을 고인 채로 빠른 걸음으로 집에서 뛰어나갔다. 그는 방에서 나가자마자 가운을 차려입고는 문을 닫았다. 끼익, 거리며 아귀가 맞지 않는 문을 닫음과 동시에 그의 시선이 별안간 희번뜩해지며 표정이 날카롭게 변했다.
“....토니?”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메리켈이 들으면 어떻게 할거냐고 말하며 집안에 있던 창문이란 창문을 다 닫았다. 햇빛을 잃은 공기가 점점 미지근하게 식어갔다.
“대답해.”
여자는 원형테이블 근처에 있던 등없는 의자에 몸을 앉히고는 등에 매고 있던 백팩을 벗어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곤 남자를 향해 다리를 꼬면서 입가에 살짝 미소를 머금었다.
“우선 내 소개부터 하는게 옳겠군요, 난 에이프릴 린드만. 전에는 쉴드에서 일했지만 현재는로마노프 요원을 따라 어벤져스에서 백업 요원으로 일하고 있어요. 오, 당신 소개는 하지 않아도 돼요. 이미 말했잖아요, 브루스 배너 박사님? 상당히 오랜만에 들어보는 모양이네요, 뭐 여기선 데이비드 블레인인가요? 역시 박사님답게 평범하군요, 뭐 이해해요. 거의 1년이 지났네요. 브루스 배너란 이름을 꺼내지 않은 것도 그 정도 되었죠?”
남자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그는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은 채 여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여자는 남자의 서슬퍼런 눈초리에 소름이 돋는걸 느끼면서도 개의치 않다는 듯 말을 이어나갔다.
“박사님도 알고 있다시피 현재 박사님은 준 수배상태에요. 물론 세계정부나 국가에서 수배령을 내리는건 당신의 친우이자 동료인 토니 스타크씨가 막아줬어요. 그가 그 과정에서 쏟아부었던 돈들이며 노력, 더러운 일이 얼마나 많았는지는 당신도 충분히 예상하겠죠. 하지만 아직도 아직도 일반인이나 이쪽 사람들은 수배령을 풀지 않고 있어요. 이유야 당신의 ‘또 다른 그’에 대한 증오심도 있을테고, 혹자는 당신을 무기로 이용하기 위해서이기도 해요.”
“말이 너무 길어지는건 아닌가? 요점만 말하지.”
“맞네요, 요점만 말할게요, 박사님. 어벤져스는 다시 박사님이 돌아왔으면 하고 바라고 있어요.”
그 말에 남자는 실소를 터뜨리며 침대에 주저앉았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는 계속해서 웃음을 이어나갔다. 여자는 그런 남자의 행동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듯, 그의 행동이 무섭지 않다는 듯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당신은 지금 상당히 위험에 처해 있어요. 우리가 먼저 찾아올 수 있었다는게 행운이었을 정도로. 다른 사람들이 먼저 찾아왔을 지도 모른다고요.”
“그래서 날 데려가겠다, 고작 그 이유 때문에? 오, 원래 그쪽에서는 그런 이유만으로 날 찾아오진 않을텐데? 혹시 와칸다에서 일어난 일들을 보상하라는게 아니고?”
“...토니 스타크씨는 매우 비정상적으로 보일만큼 당신을 매우 감싸고 있어요. 당신이 움직이면 행여나 박사님의 위치를 들킬까봐 날 대리로 보낸 것으로도 충분히 알아차리겠지만요. 말했잖아요, 그는 박사님을 위해 더러운 돈까지 썻어요. 그런 분의 호의를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싶네요.”
그는 고개를 들었다. 그는 매우 기묘하게 일그러진 얼굴을 하며 입가에 잔뜩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마치 억지로 지은 듯한 미소에 여자는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구금인가.”
“설마요. 우린 그런 일은 하지 않아요, 그저 당신이 돌아와 우리의 보호를 받으며 예전처럼 활동해주었으면 하는 바에요. 아시잖아요, 박사님의 편은 아무 데도 없어요, 어벤져스를 제외하고는.”
그 말에 남자의 웃음이 가셨다. 그는 천천히 여자가 앉아있는 테이블로 걸어갔다. 결국 여자의 눈 앞까지 당도했을 때, 마치 상처입은 맹수가 울부짖듯 낮고 느리게 말을 꺼냈다.
“...그걸 어떻게 믿지? 행여 그쪽이 어벤져스일거라는 보장은 또 뭐고? 오, 뭘 그리 부정하려고 해? 아닌 척 하지마, 당신들이 원하는건 따로 있잖아.”
여자는 똑바로 그의 갈색 눈을 쳐다보며 남자가 말한 것처럼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질문에 답했다. 결코 떨지도 않고 곧게 바라보며.
“우리가 원하는건 당신의 안전, 굳이 더한다면 당신의 머리정도일까요? 스타크 인더스트리에서도 상당한 공을 쌓은 걸로 알고 있는데.”
남자는 몸을 돌려 다시금 침대로 발길을 옮겼다. 이야기할 상대로 아니라는 걸까, 그녀는 내심 긴장하며 남자의 반응을 살폈다. 질질 끌듯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은 마치 사냥감을 노리는 퓨마와 비슷했다. 과연, 그는 여자가 깊은 숨을 내뱉자마자 갑자기 몸을 돌려선 테이블을 내리쳤다.
“거짓말하지마!”
그의 선명한 갈색눈에선 어느새 초록빛이 감돌고 있었다. 여자는 갑작스레 자신을 향해 분노를 내비친 남자의 선명한 초록색 눈동자를, 그저 아무 말도 아무 표정도 보이지 않은 채 바라보았다. 두근거리며 심장이 위험을 알렸지만 지금으로선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그녀는 속으로 하나, 둘, 셋 하며 시간을 세었다. 마치 숨을 쉬는 것도 힘들 정도로 공기가 가라앉고나서야 남자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하하하...”
내뱉는 것은 어딘지 서글픈 웃음소리였다. 몇 번 그런 맥빠진 웃음소리만 내뱉다 여자의 맞은 편에 있던 의자를 끌어당겨 앉고서는, 방금 전의 충격으로 떨어진 과일들을 주워다올렸다. 시콤한 과일냄새가 방안의 퀘퀘한 약품냄새를 어느정도 가려주었을 때에서야 남자의 표정이 풀어졌다. 그는 사람좋은 미소를 하고는 어느새 평소의 목소리로 돌아가 여자에게 말했다.
“캡틴은요? 토니가 무리라면 캡틴도 마찬가지겠군요, 그럼 클린트는요? 아, 새로 태어난 아이는 어떻던가요? 아들이랬으니 아마 이름은 나타니엘이 되었겠군요.”
여자가 아무 말도 하지 않지, 남자는 겸연쩍은 듯 마른 세수를 연거푸 했다.
“...다들 잘 지내고 있던가요?”
그녀는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마녀야 어떻게 지내든 내 상관은 아니고, 비전도 일단은 몸간수를 잘 할테고... 큰 탈은 없어보이던데. 좋아요, 다시 물을게요. 캡틴은 어떻죠? 적어도 난 캡틴이 올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소코비아 사태에 연루된 멤버들은 나름 잘 지내고 있어요. 다만 하이드라의 잔당은 아직도 남아있기 때문에, 잔당들을 추적하고 소탕하는 일을 하고 있죠. 캡틴 아메리카는 소코비아 사태로 인한 이미지 하락을 어떻게든 만회하려고 국가행사에 많이 불려가고 있어요. 그는 바빠요, 몸이 열 개라도 모자를 정도로 말이에요.”
“호오.. 그래서 내가 있는 집에 혼자 왔다고요? 10살짜리 꼬맹이를 앞세우고서? 너무 위험한 처사같은데요? 물론 쉴드의 요원이었다면 이런 늙은 남자 한명쯤은 괜찮겠지만.... 알잖아요, 나는 남자 ‘한’명이 아니에요.”
“박사님.”
여자의 목소리가 다시 낮아졌다. 그녀는 무언가를 입에 올리려고 했지만 남자의 태도가 이상했다. 그는 마치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목소리가 풀어지다못해 능글거리기까지 한것이, 마치 그의 친우를 따라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쪽은 평소에 어떻게 지내죠, 에이프릴?”
“그건 박사님과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에요.”
“미안, 말을 다시 하죠. 어떻게 지냈죠, 나타샤? 정말 혼자서 이 불편한 곳에 온거에요?”
여자의 얼굴이 찌뿌려졌다. 그녀로서는 남자가 무슨 헛소리를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다는 투였다. 남자는 그 얼굴에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렇게나 시침을 떼는 모습도 지극히 낯이 익었기 때문이었다.
“로마노프는 캡틴 아메리카가 대외활동으로 바쁜 가운데, 새로운 어벤져스의-”
“그만해요, 나타샤.”
남자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이 처음부터 에이프릴이라고 설명했을 때문에, 아니 처음에 문을 열고 나타났을 때부터 알아차렸어요. 게다가 에이프릴? 지금이 만우절도 아니고 너무 악취미 아니에요?
“나는 나타샤 로마노프가 아니에요, 에이프릴 린드만이라고요. 박사님이야말로 악취미군요.”
“나타샤, 당신이 무슨 마음으로 무슨 생각으로 이 곳에 왔는지는 모르지만, 나를 데리고 갈 생각으로 온 거라면 적어도 진짜 모습을 드러냈으면 좋겠어요.”
그 말에 그녀는 찌뿌린 얼굴을 펴고서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맞아요, 라며 남자의 귀엔 아주 익숙한, 살짝은 허스키하다고까지 할 수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의 관자머리를 살짝 어루만지자 목소리와 얼굴에 노이즈가 일었다. 그녀는 잽싸게 자신의 얼굴에서 얇은 필름을 떼내고는 머리에서 가발을 벗겨내었다. 가발속에서 선명한 붉은색 머리카락이 드러났다. 남자는 제 앞에 아주 익숙한 얼굴이 오랜만에 펼쳐지자, 저도 모르게 입을 열고는 끄응, 거리며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안녕하세요, 박사님. 난 어벤져스에서 왔어요." 제발 스페인어가 맞아야 할텐데
'AVGS > Lullaby of Birdland(完)'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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