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ANDALIEN

Lullaby of Birdland 2. 본문

AVGS/Lullaby of Birdland(完)

Lullaby of Birdland 2.

rabbitvaseline 2015. 9. 10. 16:45





2.



“젠장, 고작 20분이에요. 어떻게 알아차린거에요?”

엉망진창인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나타샤 로마노프는 말했다. 그녀로서는 유능한 스파이로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수까지 다 썼건만, 어째서인지 제 앞에 앉아있는 남자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처음 볼때부터 알아차렸다는 말을 듣자 가벼운 수치심이 들 정도였다. 배너는 빙긋 사람 좋아보이는 미소를 지은 뒤 나타샤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야 골격이 나타샤인걸요. 근육이 조금 붙은 것 말고는 그다지 달라지지도 않았고, 그런 얇은 옷을 입었으니 당연히 한번에 알아채죠.”

“..브루스, 사실은 변태죠?”

오랜만에 듣는 이름에 하하, 하고 배너는 웃었다. 나름 이름을 떨쳤던 스파이를 이겼다는 생각에서 터져나온 것인지는 몰라도, 나타샤는 남자의 웃음에 작은 패배감을 느꼈다. 웃음이 전염되었는지 아니면 허탈해서인지 그녀의 입가에서 웃음이 살짝 어렸다.

“이미 알아차렸다면 뜻을 더 쉽게 알겠죠. 돌아가요, 브루스 배너.”

“거절할게요.”

나타샤는 너무나도 빨리 터져나오는 거절의 말에 아연실색했다. 배너는 어깨를 끄덕인 뒤, 실망감에 젖은 그녀에게 말했다.

“나도 정보란게 있어요. 여긴 라디오도 통하니 내 신세가 어떻게 되었는지 정도는 알 수 있죠. 와칸다에서는 빈라덴으로 취급받고 있고, 험악한 살인마라는 것도요.”

배너는 살인마, 라는 말을 내뱉고는 고개를 숙였다. 그는 항상 어벤져스로서 적을 상대할 때에도 ‘살인’에는 꽤나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살인’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나마 그가 인간으로 존재하고 있다고 말해주는 것들중 하나였다.

“...그건 2차 사고에 의한-”

“나타샤.”

배너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역광에 서 있어서인지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나타샤는 그가 꽤나 슬픈 표정을 지었으리라는 것을 충분히 추측할 수 있었다.

“원인은 결국 나와 그 마녀에요, 아니 ‘그 남자’만 없었더라면 그런 일도 없었어요.”

“...브루스, 당신은 지금 당신이 얼마나 위험한지 몰라요. 전세계가 당신을 노리고 있어요.”

“네, 잘 알고 있어요. 날 죽이려는 사람들,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넘쳐난다는 것도, 내 목에 현상금이 붙었다는 것도 말이에요. 그래서 그렇게 말했던거에요, 도망쳐야 된다고.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고 있었으니까요. 난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있을 수 없어요, 모두가 내 정체를 알아버린 지금에 와서는 이렇게 숨어지내는 것 밖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배너는 몇 번 주위를 둘러보다 나타샤를 보았다. 그녀의 푸른 눈이 마치 상황을 직시하라는 듯 자신을 향하고 있었고, 그 푸른 눈이 너무나도 부셨기 때문에 그는 고개를 돌릴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자그맣게 나타샤에게 말했다.

“아무튼 난 여기가 편해요, 이렇게 숨어지내는 편이 모두를 위해서도 좋을거고요.”

“브루스, 당신은 잘못 알고 있어요.”

배너는 다시 나타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바닥에 내려놓았던 작은 백팩에서 태블릿을 꺼내어 전원을 켰다. 미약한 구동음이 방안을 채웠고 액정에서는 하얀 빛이 뿜어나와 그녀의 얼굴을 비추었다. 화면이 나타나자마자 그녀는 몇 번 손짓을 하더니 그에게 태블릿을 건네었다. 멜라네시아의 시골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장통의 풍경이었다. 대로를 사이에 두고 수많은 흑인들이 오가고 있었고, 짐을 실은 수레들과 과일, 공산품, 생선들이 빈자리를 채웠다. 배너는 나타샤로부터 건네받은 화면을 바라보다 순간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 모습에 그녀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우리가 어떻게 당신을 찾아 이곳까지 오게 되었을까요? 숨어지낸다고요? 브루스, 당신은 이 곳이 그래도 낙후된 곳인데다 핸드폰도 전화도 제대로 없고 카메라도 없으니 나름 괜찮겠다고 생각했겠죠. 하지만 알고 있잖아요.”

사진 속에서 관광객으로 보이는 백인남자가 대로 한가운데에 서서 브이자를 내밀며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야말로 행복하다는 웃음을 짓고 있는 남자의 왼쪽 한켠, 정말로 남들이 본다면 그냥 넘어갔을 그 자그마한 공간에 아주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이 곳도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니 문명의 혜택을 피할 수는 없어요. 애초에 당신이 말한 숨어지낸다는건 말도 안된다고요.”

사진속의 남자는 흑인 꼬마아이를 앞세우고 어딘가로 급하게 걷고 있었다. 가방에는 청진기가 삐죽 튀어나와있다. 그는 경악에 가득 찬 눈으로 사진을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나타샤는 말을 이었다.

“내가 이걸 입수했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도 입수할 수 있다는 뜻이에요. 이게 무슨 뜻인지 알아요? 숨어지낸다? 정말로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숨어지내려면, 카메라도 아무것도 없는 원시인들에게 가던가 아니면 차라리 혼자서 숨어사는 편이 나았을 거에요. 물론 외로움을 많이 타는 당신이니 그런걸 견딜 수는 없었겠죠.”

나타샤는 배너의 손에서 태블릿을 빼앗은 뒤, 급히 액정의 화면을 껐다. 배너의 표정은 말도 못할 만큼 심히 일그러져있었다. 그로서는 전혀 예상치도 못한 일이었던 듯, 불안정한 걸음걸이로 방안을 마구 걷기 시작했다.

“여기서 어떻게 살았는지는 대충 알 수 있었어요. 당신은 이 마을에서 꽤나 유명하고 인망도 많더군요. 가난한 사람을 위해 자원봉사를 하는 의사선생님으로서, 어느 정도 사회지도층으로까지 행세할 수도 있었을테고. 인도에서도 똑같은 일을 했었죠? 선생님으로 불리우는 높은 자로서의 생활. 당신의 오만함이 결국 당신의 발목을 붙잡은걸 알겠어요?”

배너는 걸음을 멈추었다. 나타샤의 말이 정곡을 찌른 모양이었다.

“그 사진, 지금 어떻게 되었죠?”

“걱정말아요, 다행히도 토니가 먼저 발견해서 삭제했으니까.”

“...토니가?”

나타샤는 태블릿을 가방에 넣었다. 아마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브루스 배너가 넘어올거라는 판단에서였다.

“맞아요, 그래서 날 보낸거죠. 캡이나 토니는 직접 움직이기에는 너무 그렇고, 당신과는 생면부지인 인간을 보내는건 또 위험하죠.”

“하지만 나타샤, 당신의 얼굴도 나름 잘 알려졌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래서 이런 힘든 변장을 한거라고요.”

나타샤는 조심스레 벗어놓았던 가발을 들어올렸다. 이미 전세계에 얼굴이 팔린 자신이 남들의 이목을 끌지 않기 위해서는, 그리고 브루스 배너를 다시 되돌리기 위해서는 자신이 변장하는 수밖엔 없었다. 그녀는 침울한 표정으로 서 있던 배너를 올려보다가 다시 방안을 둘러보았다. 기초적인 기구밖에 없는 연구실-이라고 말해도 좋을까 싶지만-은 그의 명성과 지식에 비하자면 너무나도 열악했다.

"...어떻게 할거에요? 당신이 YES라고 말하면 곧바로 퀸젯을 부를 수 있어요. 그걸 타고 뉴욕으로 돌아가면 돼요. 안전가옥에서 지내면서 당신 연구를 계속하면 된다고요. 솔직히 여긴 타워만큼 시설이 좋은 것도 아니잖아요?"

"연구는 머릿속에서 진행해가면 되니까 괜찮아요."

"당신이 무슨 아인슈타인인줄 알아요? 말 돌리려고 하지 말아요, 그 소리 토니 스타크에게 말해주면 얼마나 비웃을지 알고 있으면서."

그 말에 배너는 침대로 걸음을 옮겼다. 한시간도 안되는 대화이건만 그에게는 적잖이 피곤한 상황이었다. 그는 천천히 침대에 몸을 앉히고는 몸을 앞으로 숙이고는 연거푸 마른세수를 해댔다. 그리고는 약간 짜증이 섞인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솔직히 너무 갑작스러워서 그래요. 나도 이곳의 생활이란게 있고, 또 정리해야할 상황이 많아요..."

"...변명이 늘었군요. 인도에서는 안 그랬잖아요?"

나타샤는 인도에서 처음으로 브루스 배너를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쉴드의 무장요원들과 나타샤의 말에 넘어간 그는, 정말 칫솔 하나와 제 몸뚱아리 하나만을 챙기고는 퀸젯에 올랐다. 신변을 정리한다던가 하는 일은 없었다. 그는 도망자의 신분이었고 언제나 바람처럼 말없이 왔다가 바람처럼 말없이 사라졌다. 그가 머물던 동네에서도 몇 달간은 갑작스레 사라진 그의 이야기가 나오다가 종래에는 풍화되어 기억에서 사라져갔고, 그것을 그도 충분히 알고 있었고 그가 원했던 바였다. 그랬던 사람이 갑자기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니, 속으로 웃음이 터져나오려는 것을 나타샤는 막아야했다.

"...미안해요."

배너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나타샤는 자신의 앞에서 저리도 고심하고 있는 남자의 속내를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차피 이 승부는 나타샤의 승리임이 분명했고, 조금의 시간이 소요되는 것은 이미 예상한 일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기다리는 일은 너무나도 지겹도록 해와서, 이제 그녀에겐 신물이 날 정도였다. 타박, 하고 마치 소년이 걷는 것 같은 발소리가 희미하게 그녀의 귓가를 스쳤다. 나타샤는 재빨리 필름을 얼굴에 부착시키고 가발을 썼다. 노이즈와 함께 얼굴이 막 집안으로 들어왔을 때처럼, 시드니 매거진의 수습기자 에이프릴 린드만으로 변했다. 발소리가 점점 더 커지다가 문 앞에서 멈추고 이내 노크소리가 집 안에 퍼지자 배너도 고개를 올렸다.

"...선생님."

배너는 알았노라고 대답을 하며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울다가 그쳤는지 눈가가 심하게 붉어진 메리켈이 쭈뼘거리며 서 있었다. 미안해, 라며 배너가 소년을 집안에 들이자 나타샤, 아니 이제 에이프릴로 변한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소년을 품을 안았다. 메리켈은 갑작스런 스킨쉽에 얼굴을 붉히며 몸을 굳혔다.

"고마워, 메리켈. 덕분에 인터뷰 무사히 마쳤단다."

에이프릴은 소년의 한쪽 뺨에 쪽, 하고 입을 맞추었다. 입술이 떨어지자 가뜩이나 붉어졌던 소년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더 붉어졌다. 메리켈은 어버버 거리며 의자에 앉아서는, 에이프릴을 향해 시선을 돌리지도 못한 채 테이블위에 있던 망고를 한입 베어물었다. 에이프릴은 부끄러워하는 소년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배너는 착잡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 ▒ ▒




"선생님과 무슨 이야기 했어요?"

메리켈은 다시금 에이프릴이 건네준 20달러를 받자마자 제 주머니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녀는 다시금 소년에게 돈을 건네며 한 일주일정도 이 곳에 있을 것 같으니 그 동안 가이드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물론 어여쁜 누나의 제안을 거부할만한 이유도 없었기에, 메리켈도 흔쾌히 그러겠노라며 환하게 웃었다. 일주일, 배너는 그 말을 들으며 나타샤가 자신에게 꽤나 후하게 기간을 주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간단한 인사, 조만간 또 찾아뵙겠다는 경고를 남기고 에이프릴은 메리켈과 함께 배너의 오두막을 나왔다. 밖은 어느새 해가 저물어가고 있어 서쪽 하늘에는 붉은 기운이 서리고 있었다. 마을로 향하는 길을 걸으며 오두막이 시선에서 사라질 즈음에서 에이프릴은 소년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었다.

"그냥 선생님이 사는 이야기를 들었어."

"그것만요?"

소년은 어쩐지 비릿하게 입술 끝을 한껏 치올렸다. 무언가 장난거리를 잡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선생님 멋있지 않아요?"

그 말에 에이프릴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생각보다 잘생겼더라. 하지만 사진을 못 찍게 하던걸."

메리켈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을에서 10년 넘게 지내던 신부는 축제 때나 행사를 치를 때마다 카메라로 기념사진을 찍곤 하였다. 그 때마다 선생님도 피사체가 될 뻔 한 적이 있었지만 자신은 괜찮다며 일부러 자리를 피하였다. 마을에서는 제법 잘 나가는 화가가 그의 얼굴을 그려주겠노라고 말했을 때에도 그는 괜찮다며 거절을 하였다. 본섬이나 해외에서 큰 손님이 올 때엔 아예 집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가끔씩 관광객들이 핸드폰이나 카메라를 보이면 곧바로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선생님은 그런 자리를 싫어해요.“

언제나 인화한 사진 속에는 배너의 모습은 없었다. 메리켈은 내심 그 점이 안타까웠고 아쉬웠다. 소년은 침울했던 표정을 순식간에 웃는 얼굴로 바꾸고는 에이프릴에게 이후의 일정에 대해서 물었다. 일주일, 중간에 간간히 배너를 만나는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은 가이드가 처리할 몫이었다. 소년이 사는 섬은 해양자원과 숲, 섬 중앙에 있는 성 로사의 나무를 제외하고는 그다지 볼만한 것이 없었다. 남자였다면 밤놀이에 대해서 가르쳐주었을지도 모르지만 에이프릴에게 그런 추잡한 것을 보여주기는 싫었다. 일주일, 여행계획을 짜기에는 너무나도 긴 시간이었다. 우선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것은 성녀 로사가 죽었다던 성 로사의 나무였다. 우선 내일은 그 곳에 가보는게 어떻겠냐는 말에 여행객은 고개를 끄덕이며 좋아했다.

"그 나무라면 들은 적이 있어."

이 섬으로 오기 전에 섬의 지리를 조사한 적이 있었다. 섬의 형태는 그야말로 부정형이었지만 원형에서 가지 여러개가 뻗쳐나간듯한 형태라고 말하면 쉬울 것이다. 멜라네시아의 섬 답게 숲으로 뒤덮여 있었지만 중앙에는 넓은 평원이 펼쳐져 있었다. 그 중앙에는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나무의 이름은 둥치에서 순교한 성인의 이름을 땄다.

"에이프릴도 좋아할거에요. 이 섬으로 놀러온 사람들은 다 그 나무를 좋아했거든요. 내일 신부님에게도 말해서 성물도 보여줄게요. 신부님도 보여달라고 하면 좋아하실거에요."

그러면서 소년은 숲 한가운데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3시 즈음에 호텔로 찾아가겠다는 말과 함께였다. 어차피 볼만한 것도 없는 동네라 여유롭게 돌아다니자는게 메리켈의 의견이었다.

그렇게 여행코스의 이야기를 나눌 즈음이었다. 소년의 배에서 꼬르륵, 하는 부끄러운 소리가 울렸다. 순간 소년의 얼굴은 심각하게 붉어졌고 에이프릴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보니 그녀도 과일 몇 개말고는 밥을 먹지 못한 참이어서 조만간 배가 고파지려고 하고 있었다. 마을에 식당이 있느냐는 질문에 메리켈은 고개를 저으며 자신은 집에 가서 먹겠다면서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 그녀에게 물었다. 당연히 에이프릴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메리켈의 집은 그나마 배너가 살고 있는 오두막보다는 나았다. 주방과 방이 구분되어 있으며 역시 나무로 지어져있었다. 마을 가장자리에 자리잡은 낡은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소년의 높은 목소리가 제 어미를 불러댔다. 방안에서 젋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오다 이내 바깥으로 퍼졌다. 메리켈의 어머니는 예상대로 2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흑인 여성이었는데, 시장에서 보아온 여성들보다는 이쁜 축에 속하는 것 같았다. 오똑한 콧매며 이목구비가 뚜렷한 얼굴, 균형잡힌 몸매는 아마 미국에 가서도 인기를 끌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여자의 품에는 무명천으로 둘러싸인 아기가 잠들고 있었다. 아직 태어난지 한달여밖에 안되어보이는 아기는 아기 특유의 귀여움으로 무장한 채 깊은 숨을 내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에이프릴은 아기와 어머니를 향해 인사했다. 어머니는 낯선 이와 마주칠 때마다 짓는 날선 표정으로 바라보다 메리켈의 소개에 이내 얼굴을 풀었다. 서툰 영어로 자신을 메리켈의 엄마라고 설명하자, 에이프릴도 호주에서 온 기자라고 자신을 설명했다. 데이비드 선생님을 취재하러 왔다는 말에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테라스에 있는 테이블로 그녀를 안내했다. 에이프릴이 의자에 앉자, 메리켈은 급히 주방으로 달려갔다.

"선생님은 좋은 분이에요. 이 아이를 낳을 때에도 선생님이 안계셨다면 우리 둘이 여기 있을수도 없었을 거에요."

어느새 잠에서 깼는지 아이의 갈색 눈이 커다랗게 뜨였다. 아기는 옹알이다가 에이프릴의 얼굴을 보고는 방긋 웃었다. 그녀의 입가에도 절로 미소가 번져나갔다. 뤼미에, 라고 어머니가 말하자 더욱 더 웃음이 커졌다.

"한번 안아봐도 될까요?"

에이프릴의 말에 그녀는 흔쾌히 그러라면서 조심스레 아기를 에이프릴에게 건네었다. 아기는 뜨거웠고 작았으며 분내가 났다. 어느새 준비를 다 마쳤는지 메리켈이 음식이 든 쟁반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숲 저편에서 새가 우는 소리가 울렸다. 에이프릴은 조심스레 천천히 아기를 품에 안고서는 작게 몸을 움직였다.

"이름이 뤼미에라고요?"

"아빠가 지어줬어요. 나는 기적, 이고 동생은 빛, 이라고요."

메리켈은 자신의 이름은 비슬라마로 기적, 에이프릴이 안고 있는 아기는 프랑스어로 빛이라고 말하였다. 과연 아기의 눈동자는 맑게 빛나고 있었다. 이름에 걸맞는 모습이었다. 그녀의 입에서 자연스레 무언가가 흘러나왔다. 에이프릴은 요람처럼 아기를 흔들고는 아주 작게 무언가를 흥얼거렸다. 그러 라라라, 거리면서 부를 뿐이었지만 뤼미에도 마음에 들었는지 더욱 더 웃으며 옹알거렸다. 메리켈도, 그의 어머니도 백인 여자가 흑인 아기를 흔드는 이질적인 모습을 아주 차분하고 평온하게 바라보았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와 함께 노래가 테라스를 거쳐 그들 사이를 메꾸었다.

아기가 잠이 들자 그녀는 다시금 어미에게 아기를 돌려주었다. 어머니가 아기를 품에 안고 방안으로 사라지자 메리켈은 에이프릴에게 음식을 권하고는 성호를 긋자마자 곧바로 식사를 시작했다. 바나나잎에 쌓여있던 진득한 덩어리를 입안에 가득 집어넣고는 곧바로 씹어넘긴다. 그러다 무언가 생각이 났다는 듯, 음식이 넘어가자마자 입을 열었다.

"그러고보니 아까 그 노래 뭐에요? 자장가?"

"..자장가라면 자장가겠지. 사실은 재즈인데,"

"재즈라면 들은 적 있어요. 라디오에서 가끔씩 들려주던걸요. 이상한 악기소리도 나고 노래도 부르고."

그 말에 덩어리를 손으로 작게 뜯어서 먹던 에이프릴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예전에 들은 적이 있던 노래라고, 자기가 제일 좋아하던 노래라고 말하였다.

"제목이 뭐에요?"

그 말에 에이프릴은 입에 맞지 않은 그 덩어리를 테이블에다 내려놓은 뒤 입을 열었다.










"제목이 뭐지?"

그 말에 나타샤는 고개를 돌렸다. 최근 그녀가 흥얼거리던 노래를 스티브는 꽤나 궁금해하던 차였다. 얼마나 많이 불러대던지 이제는 그마저 멜로디를 외울 정도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나타샤는 뚱한 표정을 지으며 그게 너랑은 무슨 상관이냐는 듯 한 얼굴을 지었지만, 이내 동료에게는 넓은 아량을 보이겠다는듯 흔쾌히 입을 열었다.

"한번도 들어본 적 없어? 왠지 옛날노래라면 다 알고 있을 것 같은데."

"네가 생각하는 옛날노래는 나보다는 이후겠지. 그래서?"

"...Lullaby of Birdland."

그 말에 스티브는 그렇군, 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장가라니, 꼭 배너에게 하는 말 같군."

그 말에 설마, 라면서 나타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스티브의 어깨를 쳤다.











개인적으로 메리켈은 귀엽다고 생각함. 비슬라마는 바누아투에서 쓰이는 말의 이름인데 영어를 변형한 형태. 하지만 영어, 비슬라마, 프랑스어가 골고루 쓰인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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