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ANDALIEN
Lullaby of Birdland 4. 본문
남자가 뒤집어쓴 모포는 흙투성이로 더러워져 있었다. 그는 그걸 아랑곳 않는다는듯, 그 속에 편안히 몸을 눕히고는 계속해서 헤드폰 너머의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굵직하게 자신의 사랑을 호소하는 목소리에 반쯤 취해있을 즈음, 그의 곁으로 누군가가 다가오더니 그 헤드폰을 뺏어 자신의 머리에 씌웠다.
“나타샤?”
여자는 음악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남자를 향해 어깨를 으쓱거렸다. 남자가 듣던 음악은 재즈음악으로, 아주 옛날에 임무로 잠입했던 바에서 들은 적이 있었다. 그 때는 이렇게 음반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바에서 제일 잘 나간다던 흑인 여자가 부른 것을 직접 들었는데 색소폰 소리와 여자의 허스키한 목소리만 생각났을 뿐, 자세한 가사는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제목조차 알지 못하는 노래는 어느새 클라이막스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남자는 바닥에 앉아 헤드폰을 빼앗아간 여자를 당황한 눈빛으로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석양을 닮은 머리카락은 흙으로 더럽혀져있는데다 상당히 헝클어져 있었다.
- because we're in love.
노래가 끝났는지 색소폰소리가 강렬하게 울리더니 이내 곧 끊기고 말았다. 그녀는 헤드폰을 돌려주려고 귀 부분에 손을 대다가 움직임을 멈추고 말았다. 익숙한 색소폰소리가 울리더니 똑같은 멜로디로 똑같은 여자의 목소리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 Lullaby of birdland, That's what I Always hear When you sigh.
“...노래 좋네요.”
여자는 당황해하며 성급히 남자의 머리에 헤드폰을 씌웠다. 그러자 남자는 흐뭇하게 미소를 짓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미소 어딘가에는 처연하다 못해 안타까운 슬픔마저 느껴져서, 여자는 급히 고개를 돌리고는 다른 곳으로 걸어갔다.
왕진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목에 배너는 메리켈에게 오늘이 무슨 요일이냐고 물어보았다. 수요일이라고 즐겁게 말하는 소년을 바라보며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날이냐는 에이프릴의 질문에, 그는 일단 메리켈의 집으로 가야한다고 말하며 앞서 걸었다. 메리켈은 이죽이죽 웃으며, 애써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분명 어제도 왔었건만, 어제와 비교해서 오늘은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의 수가 달라진 것이라 할 수 있었는데, 원래는 세 사람이서 살아야 할 집에 열댓명 정도의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대부분 마을의 아이들로 저마다 짧은 머리카락을 자랑하며 마당 한켠에 앉아있었다. 아이들은 배너가 대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서자마자 환호성을 지르며 그에게 달려 들어와서, 덕분에 그는 손에 쥐고 있던 과일 주머니를 떨어뜨릴 뻔 했다.
“얘들도 참, 어서 자리에 앉으렴.”
“선생님-!”
아이들은 하나같이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그의 품에 안겼다. 결국 배너는 에이프릴에게 과일바구니를 건네어줄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입가에 평소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환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녀는 아이들의 배너를 향한 사랑에 내심 불편해하면서, 메리켈의 어머니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녀는 바깥에서 펼쳐지고 있는 소란이 싫지는 않은지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에이프릴에게 차를 대접했다.
“선생님은 일주일에 한번씩 아이들의 공부를 봐줘요. 메리켈이 주도한거라 우리집에서 주로 하곤 하죠.”
“시끄럽진 않으세요?”
그녀는 고개를 젓고서는 바깥에서 영어를 따라하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아이들 특유의 높은 목소리가 마당에서 울려 퍼져, 아마도 마을 전역에 퍼져갔을 것이다. 적막한 것보단 낫다고, 그녀는 마침 잠에서 깬 뤼미에를 달래며 말하였다. 별다른 큰 사건이 없는 마을은 상당히 조용하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활력도 좋다는 식이었다. 마을 사람들도 제법 좋아했는지, 담벽 너머로 보이는 어른들의 표정엔 웃음이 어려있었다. 에이프릴은 상당히 떫은 표정을 하며 배너가 땅바닥에 무언가를 쓰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녀로서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단순히 의사노릇이나 할 줄 알았는데 선생노릇까지 하고 있다니, 일이 왠지 복잡하게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수업은 대략 3시간이 지나서야 끝이 났다. 다음주에도 또 보자는 아이들의 말에 배너는 웃으며 수긍하였다. 메리켈의 어머니의 대접으로 간단한 저녁까지 먹은 에이프릴은, 또 아이들에게 받은 음식과 과일들로 가득 찬 바구니를 들고 있는 배너를 보며 한숨이라도 쉬고 싶었다. 메리켈은 집에 놔두고 둘이서 호텔로 가는 길에, 그녀는 불쾌함을 숨기지 않고 냉정하게 말했다.
“...다음주라니, 지키지도 못하는 약속을 하셨군요.”
"...실망은 시켜주고 싶지 않아서요."
"이제 6일이에요."
이제 호텔건물까지는 몇 미터 남지 않았다. 에이프릴은 일부러 걸음을 늦추며 다시 입을 열었다.
"내일은 5일이고요. 미안하지만 브루스, 당신에겐 이 곳에서의 일주일은 없어요. 정리해야할게 많다고 했죠? 기한 내에 정리할 수 있도록 노력해봐요, 필요하면 도와줄테니까."
그녀는 뒤돌아서면서 그를 향해 흐뭇하지만 차갑게 미소를 지었다. 배너는 그 미소에 어린 뜻을 차마 이해하지 못하는 척 하면서 표정을 굳힌 채 입을 열었다.
“...정말 날 도울 수 있을거라 생각해요?”
내뱉는 말에는 날카롭게 벼려진 날이 서 있었다. 당장에라도 자신을 향해 내려칠듯한 그 말에 에이프릴은 잠시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저런 식으로 말하던 것을 예전에도 들은 적이 있었다. 도와주겠다는 말에 정색을 하며 가능하지 않다는 식으로 ‘화’를 냈었다. 그때 그의 목소리에는 끝도 없이 나락으로 떨어져가는 분노와 함께 비웃음마저 서려있었는데, 그 때와 비교하자면 그나마 다행히도 분노는 느껴지지 않았다. 에이프릴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닫자, 배너는 다시금 거짓미소를 지었다.
“아녜요, 놀라지 말아요. 말은 고마워요, 하지만 당신은 일단 타지인이니 힘들거라고 생각한 것뿐이에요.”
거짓말. 그녀는 둘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높디 높은 벽을 깨달았다. 동료로 지내며 간신히 그 벽을 낮추었다고 생각했더니, 1년 동안의 시간이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려버린 것 같았다.
"그러는 당신도 1년여밖에 지내지 않았잖아요."
배너는 순순히 그렇다고 인정하였지만, 그 미소엔 어딘가 쓴 기색이 있었다. 에이프릴은 그 이유를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1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는 이 마을에선 없어선 안 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오히려 바깥세상과 반대로 말이다. 아주 잠깐, 그녀는 그가 이곳에서 아무도 그의 정체를 모른 채 살아가는 것이 좋은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가 다시 철회했다. 그의 거처는 이미 밝혀졌다. 아무리 브루스 배너가 이곳에서 행복한 나날을 지냈다 하더라도, 과거가 끊임없이 그의 발목을 붙잡는 한 이 섬마을의 행복한 생활도 언젠가는 종지부를 끊어야 할 터였다.
"...명심해요. 우리가 찾을 수 있었다는 건 다른 쪽에서도 찾을 수 있다는 거니까. 다른 쪽은 나랑은 달리 소란을 일으키길 좋아하죠."
여자의 미소는 상당히 비렸다. 배너는 그러겠노라고 말하면서도 시선을 그녀에게 집중하지 못했다. 거짓말에 서툰 사람이라 생각하면서 에이프릴은 갑작스레 걸음을 멈추었다. 벨보이가 나름 깨끗하게 닦았을 호텔의 대문과 계단에 냄새나는 쓰레기가 올려져있었기 때문이었다. 올두르는 그녀와 배너를 발견하자마자 전에도 들은 적이 있던 휘파람을 불며 그들을 환영했다.
"여, 아가씨. 거기 의사선생도 오늘 아침에 보았지만 오랜만이야."
나름 정장이라고 챙겨 입은듯한 수트는 자줏빛으로 더더욱 붉은 그의 얼굴을 부각시켜주고 있었다. 게다가 소매엔 올이 풀렸고 얼룩이 이리저리 져 있어서, 한눈에 봐도 관리를 제대로 안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거기다 악취까지 얼마나 날지, 에이프릴은 얼굴을 찌푸리며 볼 일이 없으면 호텔로 돌아가겠노라고 배너에게 말하였다. 자신을 철저히 무시하는 태도에 올두르는 급속도로 노여움에 휩싸였다.
"야, 이 씨발년아!"
마을의 창녀에게나 통할 것 같은 말투에 에이프릴은 절로 비웃음을 흘겼다. 그 모습에 더더욱 화가 났던지 그의 손이 절로 올라갔다. 아무래도 그녀에게 손찌검이라도 하려는 투였다.
"선생님, 잠시만요."
쓰레기의 손을 멈춘 것은 배너였다. 그녀가 놀랐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자, 배너는 어쩔 수 없다는 투로 고개를 살짝 젓고는 올두르의 팔을 붙잡았다. 쩐내에 애써 평온한 표정을 유지한 채였다.
"선생님, 이 분은 외국인이고 제 손님이에요. 여기서 소란이 일면 경찰에도 알려질텐데요. 보세요, 저기 경관이 보이잖아요. 선생님의 누님에게 소문이 가는 건 선생님에게도 골치가 아픈 일일테죠. 게다가 외국인은 잘못 건드리면 정부에서 손이 갈지도 몰라요."
그는 어떻게든 올두르의 관심을 그녀에게서 돌리려 하고 있었다. 차분하고 나긋한 목소리로, 마치 어린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쳐주는 식으로 말을 이어가자 올두르의 표정도 어느새 풀려갔다. 그는 배너의 설명을 나름 이해했는지 알겠노라고 말을 하면서도 여자를 쏘아보았다.
"쳇, 선생덕분인줄 알아!"
그는 주저리 욕을 중얼거리다 시장통으로 사라졌다. 아무래도 오늘도 누군가를 살 생각이겠죠, 손수건으로 올두르의 팔을 붙잡았던 손을 연신 닦으며 배너가 말했다. 혐오스럽다는 표정이 절로 얼굴에 일었지만 그것을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이렇게 위험을 넘겼군요."
"말로 풀지 않으면 안되니까요. 말로 풀리기만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는 올두르가 사라진, 북적거리는 시장통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말로 풀리지 않던, 그동안 그를 괴롭혀왔던 사건들이 떠올라 에이프릴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 ▒
계속 그 노래만 듣네요. 언젠가, 평소처럼 힘들었던 전투 후에 여자가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그녀는 남자의 헤드폰을 장난스레 벗기고는 자신의 귀를 갖다 대었다. 이제는 노래 가사마저 다 외워버릴 정도로 닳고 또 닳게 들어버려서, 당장에라도 남자의 앞에서 노래를 흥얼거릴 수도 있었다.
"나타샤, 돌려줘요."
남자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전보다도 편안해진 분위기 속에서 여자는 다시 남자의 귀에 헤드폰을 씌워주웠다. 퀸젯 내부의 공기에는 전과 다르게 온기가 서려있어, 저절로 포근해졌다.
"젠장."
왜 하필 그 때의 꿈이냐며, 나타샤는 불편한 침대에서 일어나며 중얼거렸다. 그녀는 붉은색 머리카락을 한데 묶고선 커튼 너머로 마을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전형적인 허름한 시골마을, 제대로 된 공공시설도 없고 촌장의 주도하에 삶을 꾸려간다. 시장이 있다는 것에서 어느 정도 경제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것도 현금이 아니라 물물거래 위주로 거래가 이어지고 있었다. 장점이라고 한다면 시골치고는 지나치게 순박한 사람들일까, 그녀는 방 한켠에 걸려있는 달력을 바라보았다. 이제 닷새, 만약 무슨 일이라도 없다면 그녀는 닷새 후에 배너와 함께 이곳을 떠날 것이다. 물론 그녀는 배너가 쉽사리 자신을 따라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알아차린다면 그가 불쾌해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안경과 옷에 위치추적장치를 붙인 것은 그것 때문이었다. 그녀는 그를 붙잡아서라도 데리고 갈 작정이었다.
그나마 선선한 아침공기에 정신을 붙잡고는 기지개를 폈다. 오늘 아침에는 꼬마 가이드와 함께 해변쪽을 가볼 예정이었다. 이 작은 섬마을을 일주일씩이나 머무는 것은 상당히 곤혹스러웠지만, 그나마 귀여운 가이드가 있어 버틸 수 있었다. 그녀는 안면인식필름을 얼굴에 붙이고 가발을 썼다. 관자머리근처의 스위치를 누르자 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얼굴이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짓는 여자로 바뀌었다. 금발은 멍청하다는 속설을 부정하듯 유능한 미소까지 지어보이는, 그녀의 또다른 신분이었다. 에이프릴, 만우절을 기념하자며 우스갯소리가 토니가 붙인 그 이름이 설마 다른 신분이 될 줄은 몰랐지만, 이미 전세계에 얼굴이 알려져있는 판에 이보다 좋은 방법은 찾을 수 없었다. 그녀는 배낭에서 가벼운 원피스와 가디건을 챙겨입고는 호텔 1층에 위치한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메리켈은 아직 잠에서 덜 깼는지 하품을 하며 에이프릴에게 손을 흔들었다. 아침의 시장통은 사람이 없어 상당히 한가하고 조용했는데, 오로지 그들의 목소리와 새 울음소리, 벌레소리만이 그 공간을 채울 뿐이었다. 아이는 배너의 교육이 상당히 재밌다며, 친구들은 모두 수업이 있는 날을 기다린다고 말하였다. 학교조차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작은 섬마을에 있어서 성당의 신부와 배너만이 유일한 선생노릇을 하고 있었다. 메리켈은 덕분에 신부님이 편해졌다고 좋아한다고 말하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에이프릴은 차마 쓴웃음을 내뱉을 수 없었다. 배너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는 더더욱 이 곳에 미련을 가질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애써 그 생각을 무시한 채, 환하게 웃는 아이의 뒤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메리켈은 마을 내에서도 배너와 자주 교류하는 아이였다. 아마 그가 갑작스레 모습을 감추면 제일 슬퍼할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얼굴을 찌뿌리며 우는 아이의 얼굴을 상상하다 이내 속으로 그 모습을 지워버렸다. 배너를 데려가는 것은 임무이며, 그 임무에 사적인 감정이 들어가면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온다는 것은 이미 예전에도 수차례 겪었기 때문이었다.
항구에 들어서자 바닷가 특유의 짭짤하면서도 눅눅한 공기가 그들을 맞이하였다. 부둣가 한켠에서는 여자들이 생선과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고, 아마 그들의 남편으로 보이는 남자들은 바다 너머로 배를 타고 나가 고기를 잡고 있을 터였다. 메리켈은 고기를 손질하고 있던 여자들에게 다가가 한명한명씩 인사를 나누었다. 그들은 에이프릴을 향해서도 인사를 했는데, 그녀는 생선비린내에 얼굴을 찌뿌리지 않게 노력하면서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그들은 그녀가 의사선생의 손님이란 소리에 저마다 웃음을 짓고 아우성을 내며 의사선생을 찬양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마을 처녀가 잡아야한다는 소리에서부터 너무 신비주의적이지 않느냐는 쓴소리도 있었지만 그녀가 듣기론 어찌되었거나 좋은 사람이라는 것이 결론이었다.
“의사양반을 누가 잡아갈고, 하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말여. 설마 처자가 데려가려는건 아니지?”
그 말에 에이프릴은 고개를 저으며 이미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고 말하며, 다시금 미소를 지었다. 그 말에 다행이라면서 빨간 옷을 입은 여자가 메리켈과 에이프릴에게 종이에 싼 생선 세 마리를 품에 안겨주었다. 행여나 원피스에 묻을라, 메리켈은 급히 생선꾸러미들을 자기의 품에 안았다. 쿰쿰한 비린내를 풍기면서 그들은 서로에게 작별인사를 건네었다.
항구는 다른 곳보다 재미없다고 메리켈은 투덜거렸지만, 내심 즐거웠던 모양이었는지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디선가 멀리서 바다새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하늘과 바다밖에 보이지 않는, 섬조차도 보이지 않는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퀸젯은 이 근방에서 떨어졌다. 헐크는 이 따뜻한 바닷물을 헤엄쳐서 이 마을에 도달했다. 따뜻함이 지나쳐 덥기까지 한 마을에서, 그는 선생이라고 불리우며 지내고 있었다. 메리켈과 아이들에게 보였던 미소는, 그가 평소에 짓곤 하던 사람좋게 보이게 하는 미소가 아니었다. 그녀도 몇 번밖에 본 적이 없던 그 표정이 어쩐지 심장 한구석을 콕콕 찌르는 것만 같았다. 부둣가가 끝이 나자 백사장이 드러났다. 외지인들이 거의 드나들지 않는 시골 섬의 바닷물은 정말로 보석을 연상시키는 푸른 빛을 띄고 있었다. 그녀는 조심스레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는 마을의 전설을 소개해주는 메리켈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종알종알 떠들어대는 그 목소리가 너무나도 귀여워서, 그녀는 눈을 감고 말이 끝날때까지 기다렸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처럼 아이의 목소리가 해변가에 가득 찼다. 그녀의 감은 눈 속에서 처음으로 자장가에 대해 배너에게 말하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 때도 바다와 하늘 사이의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해의 마지막을 알리는 태양이 우아한 붉은색을 뽐내며 바다 아래로 가라앉고 있었고, 그녀는 꼬깔모자를 쓴 더미를 보고 웃으며 배너에게 말을 걸었다.
생선을 얻었기 때문에 점심은 메리켈의 집에서 먹기로 했다. 아이는 해변을 벗어나 마을로 돌아가는 와중에도 자신의 어머니가 생선요리를 잘한다고 몇 번이나 말하였다. 그 발걸음이 너무나도 가벼워서, 에이프릴도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그들이 해변가를 벗어나 마을 어귀로 들어서려는 찰나였다. 마을 입구에서 시장으로 통하는 대로의 한 구석에서 무언가 커다란 소란이 일고 있었다. 남녀노소 할것도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빙 둘러서는 중앙에서 벌어나는 일들을 보는 듯 했다. 몇몇 사람들이 힐끔거리며 주위를 둘러보다 막 마을로 들어서려는 둘을 발견하고는 곧바로 그들을 향해 뛰어왔다. 메리켈의 옆집에 사는 노인은 둘을 발견하자마자 큰 일이 일어났다고 소리쳤다.
“큰일이야, 큰일! 메리켈, 쓰레기가 일을 쳤어!”
그 말에 메리켈의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이윽고 그들의 앞에 도착한 중년 남성이 올두르가 메리켈의 엄마에게 손찌검을 했다는 말을 전했다. 아이는 품에 들고 있던 생선들을 떨어뜨리고는, 이내 에이프릴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곧바로 소란의 중심지를 향해 뛰어 들어갔다.
'AVGS > Lullaby of Birdland(完)'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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