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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레니 _ When You Wish Upon A Star 본문

기타/DOOMSDAY CITY

알렉스레니 _ When You Wish Upon A Star

rabbitvaseline 2017. 1. 11. 16:40

 






눈을 실은 바람의 악마가 창문을 세차게 흔들고 지나갔다. 창문 틈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새어들어오고 있었고, 창틀에는 조그맣게 눈이 쌓여갔다. 창문에는 성에가 낀 탓에 하얗게 바깥풍경을 가리고 있었지만, 침대에 누워있는 지옥개는 바깥 풍경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 아마 바깥은 눈의 왕국으로 변해, 자동차와 시민들 모두가 쩔쩔매며 길거리를 나다니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중에는 분명 자신처럼 눈에 바퀴가 빠져서, 몇시간을 영하의 날씨에 얇은 코트차림으로 서 있을 시민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민도 감기에 걸려서 침대 안에서 호되게 고생하고 있을 터였다. 레널드는 이불을 제 목까지 끌어달올렸다. 방안에는 눈보라가 창문을 괴롭히는 소리와, 벽난로에서 장작이 타들어가는 소리밖에 울리지 않았다. 아니, 하나 더하자면 감기에 걸린 지옥개가 코를 훌쩍이는 소리일 것이다.

정말로 오랜만의 감기였다. 그는 어제 바깥에서 그 난리를 친 자신을 원망하며 이마에 올려져있던 얼음주머니에 손을 갖다대었다. 얼음주머니는 이미 녹아서 미지근해지려고 하고 있었다. 입에서 달뜬 숨이 올라왔다. 마치 얼음주머니속에 들어있던 얼음처럼 머리가 하얗게 녹아버린것만 같았다. 온 몸이 무거웠고, 관절이란 관절들이 쑤셔왔다. 그는 얼음주머니를 갈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이불 밖으로 발조차 꺼내지도 못하고는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도저히 다리를 움직일 수가 없었다.

-딸랑딸랑- 

양철종에서 나는 소리는 경박했고, 그때문에 그도 싫어했지만 이런 경우에는 어쩔 수 없었다. 그가 종을 울리고 얼마 지나지않아 미라 사용인이 방으로 들어왔다. 사용인은 집안에서도 하인을 부려먹지 않기로 소문난 레널드가 종을 울렸다는 것에 적잖이 놀라면서도, 아주 침착하게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도련님, 무엇이 필요하신지요?" 

레니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밤새 기침을 너무 많이 했던터라 목소리는 이미 심하게 갈라져있었다. 

"얼음주머니좀 갈아주시겠어요?" 

평소처럼 사용인에게 존댓말을 써가며 레널드는 부탁했다. 그 말에 사용인은 알았다고 대답하고서는 은쟁반에 얼음주머니를 올려놓고 문 저편으로 사라졌다. 그나마 머리를 식히던 것이 사라지자, 레널드의 이마에서 다시 열이 들끓어올랐다. 온 몸이 무겁게 침대 밑으로 꺼질것만 같이 가라앉았다. 당장에라도 목 아래의 몸을 잘라내고 싶을 정도였다. 

그렇게된다면 어떻게 될까. 갈기갈기 온 몸을 찢어버리면, 아마 자식이 100명은 넘게 자라나겠지. 아기 지옥개 100명이 자신을 향해 울어댄다면, 아무리 아이를 좋아하는 시민이라도 질겁을 하겠지. 그럼 그 속에 형들과 아버지를 놓고 자신은 알렉스의 품에 안겨 사라지는 것이다. 머리만 남아도 일단은 변호사니 일하고 먹고 살 수는 있을 것이다. 알렉스의 품에서, 그의 온기를 느끼며 살아가는 것도 제법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씩 그가 손으로 자신을 어루만져주고, 뉴스로 형들과 아버지가 아이들 때문에 괴로워하는 모습을 본다면- 그것만으로도- 계속해서 열이 온 몸을 공격해댄다. 그의 생각은 실타래처럼 계속해서 흘러나가다 점점 옅어져갔다. 시야는 모자이크처럼 점점이 변해간다. 뜨거운 푸딩이라도 속에 들었는지 내장까지 화끈거린다. 그는 눈을 감았다. 코가 막혀서 간신히 입으로 숨을 내쉰다. 온 몸이 어딘가로 떠내려가는 기분이다. 언젠가 알렉스와 보았던 은하수속을-

 

"!!!"

 

이마에 무언가 차가운게 닿자 그는 급히 눈을 떴다. 제임스, 너무 갑작스운게 아니냐고 말하려다 이내 입만 멍하니 벌린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선명한 황금빛눈동자와 눈이 마주치자,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달콤한 목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아저씨, 일어났어?" 

"...네가... 어떻게...?"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심하게 잠겨있음을 눈치챈 알렉스가 혀를 찼다. 레널드의 직장동료에게 들었듯이 정말로 심한 감기인 모양이었다. 그와 만나왔던 몇백년의 세월동안, 레널드 헬하우스가 이렇게 아픈 것은 본 적이 없었다. 알렉스는 조심스레 레널드의 뺨을 쓰다듬었다. 체온이 높은 자신이 만져봐도 뜨거우니, 레널드에겐 얼마나 괴로웠을지 쉽게 짐작이 갔다. 

"연락도 안받고, 걱정되어서 직장에 연락했더니 감기때문에 못나온다면서." 

"...미안." 

힘겹게 내뱉는 사과가 어딘가 안쓰러워서 알렉스의 귀가 사정없이 내려갔다. 그는 몇번을 레널드의 뺨을 쓰다듬다가 코가 사정없이 헐은 것을 보고는 더욱 마음아파했다. 아저씨가 좋아할만한걸 갖고 왔어, 라면서 애써 종이가방을 뒤지는 모습을 보는 레널드도 가슴이 아팠다. 자신을 걱정해주는 알렉스가 못내 안타까웠기 때문이었다. 그에게만은 이런 꼴을 보이기 싫었다. 하지만 검은 고양이는 그것도 모른척한채, 가방안에서 커다란 상자를 꺼내었다. 

"기억나? 아저씨, 저번에 인간계에서 택배로 주문했었잖아. 별 투영해준다는거." 

그러고보니 며칠전에 한정판매를 한다길래 산 적이 있었다. 인간계의 천체를 투영해준다는 물건이었는데, 별자리나 별의 배치가 지옥에서와는 다르다길래 순전히 흥미를 채우려는 목적으로 주문했었다. 주소는 평소처럼 알렉스의 집으로 해놓았다. 이상하게 사용인들이나 형제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연락했더니 받지도 않고, 이렇게 아프기나 하고... 제임스씨에게 들었는데 5시간이나 밖에 있었다며? 모두들 감기때문에 난리인데 아저씨까지 이럴줄이야... 이래서는 뽀뽀도 못하잖아." 

결국 그거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알렉스는 상자속에서 동그랗고 꺼먼 플라스틱덩어리를 꺼내었다. 콘센트가 있는 자리를 찾아 꽂아넣고서는 방의 불을 껐다. 창문에서 새어나오는 흐린 햇빛과 벽난로에서 나오는 주홍빛 불빛이 방의 어두움을 그나마 가셔주고 있었다. 알렉스는 언젠가 같이 플라네타리움에 갔던 때를 떠올리며 너무 밝은게 아닌가, 하고 투덜거렸다. 

"...커텐... 그리고 벽난로... 덧문이 있어... 10분정도는 괜찮아.." 

과연, 커텐을 치고 벽난로의 덧문까지 닫자 방안은 겨우 물체의 식별만이 가능해질 정도로 어두워졌다. 이제 방안에는 벽난로에서 미세하게 새어나오는 불빛밖에 보이지 않았다. 마치 눈을 감은 것처럼 어두워서, 순간 레널드는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게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켠다. 하나, , !" 

 

딸칵,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눈앞은 어둠으로 가득했다. 알렉스는 당황해하며 소형 플라네타리움을 들어올렸다. 설마 고장아냐, 라고 다른 스위치를 건드리자, 그제야 투영기에서 세세한 빛들이 천장으로 쏘아졌다. 레널드는 순간 숨을 멈추었다. 마치 음악처럼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눈 앞에서 빛나는 별이 쏟아져내렸다. 

"우와!" 

알렉스의 입에서 감탄이 터져나왔다. 너무 대단하다고 말하자 레니도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히 필름을 통과해서 나오는 빛이건만, 비록 인간계의 별이라지만 진짜 별들이 눈앞에 떠있는 것 같았다. 별은 둘이 인식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천천히 돌아간다. 언젠가 인간계에서 보았던 북두칠성이 벽에 박혀있었다. 

"아저씨, 정말 예쁘다." 

검은 고양이가 조심스레 이불속으로 손을 넣어왔다. 계속해서 이불속을 더듬다가 레널드의 손을 찾아내자 곧바로 잡아버렸다. 그날도 이랬던가, 그러고보면 둘이 처음으로 손을 잡았던 것도 별을 보고 있을 때였다. 여름밤, 호숫가로 캠핑을 가서 누워서는 별들을 바라보았다. 손만을 꼭 잡고서는, 차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긴장한 채로 차마 잠도 이루지 못했었다. 마치 그 때처럼, 레널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너무나도 쑥스러워서, 녹아버린 제 뇌 사이로 이상한 말이 터져나올지도 모른다는게 두려웠다. 

"저 별 기억나? 같이 인간계에 갔을때 저런 악세사리가 있었는데." 

유명한 별자리에는 아주 얇은 선이 그어져있었다. 알렉스가 가리킨건 작은 곰자리였다. 신의 노여움을 받아 곰이 되고, 결국 우주로 도망가버린 모자의 이야기를 듣고서는 애처롭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는 그 모자가 너무나도 부러웠다. 

"샌디." 

"? , 어디 아파? 어지러우면 이만 끌까?" 

알렉스가 자신을 향해 고개를 돌린 순간, 그는 정말로 아주 힘겹게 얼굴을 들이댔다. 코와 코와 서로 맞대어진다. 이미 헐어버린터라 살짝 아팠지만, 알렉스의 놀란 표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수확은 있었다.

 

"....고마워."

 

그 말만을 내뱉곤 몸을 반대로 돌려버렸다. 이런 애정표현을 먼저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는 지금 매우 부끄러웠고, 다시 머리에 열이 오르는 것 같았다. 분명 등 뒤에서 알렉스는 매우 횡설수설하며 당황해하고 있을 것이다. 코를 뗀 순간, 반쯤 눈이 가버린 것을 보면 확실했다. 

"아저씨, 돌아봐. 방금 나에게 뽀뽀한거지? 그렇지?"

 "...샌디." 

눈이 가버린건 당황해서가 아니라 기뻐서였던 모양이다. 알렉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반대편으로 누워있는 레널드를 향해 침대위로 올라갔다. 아마 사용인들이 본다면 기겁해하겠지만, 레널드가 부르지 않는한 그들도 이곳에 올일은 없었다. 한껏 부끄러워하는 지옥개를 향해 알렉스가 손을 뻗었다. 플라네타리움에서 뿜어져나오는 빛마저 가려버려서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저 알렉스가 매우 가쁘게 숨을 내쉬는 소리와 그의 손길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조심스레 손가락을 입가에 갖다대자, 지옥개는 마치 사탕처럼 그것들을 핥아댔다. 아저씨, 도리어 감기에 걸린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라앉은 알렉스의 목소리가 섹시했다. 

"...안돼, 샌디. 내려가, 나 감기걸렸어." 

"누가 그걸 모른대? 그냥 방금 전에 뽀뽀한거 맞지? 그런거지?" 

그 말에 검은 고양이의 손가락을 가볍게 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러다가 잘근잘근, 아프지는 않을 정도로 씹고서는 혀로 훑었다. 알렉스는 나지막히 욕을 내뱉었다. 이렇게 피곤해하고 이렇게 대놓고 유혹해오는데 건드릴 수가 없다니. 그의 짐작대로 레널드는 손가락들을 아주 겸손하게 밀어냈다. 그리고는 다시 플라네타리움이 있는 쪽으로 몸을 돌렸다.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별무더기들은 커다란 파란 구체로 변하였다. 영어로 누군가가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었다. 우리들의 푸른별, 나레이션은 너무 느긋하고 감성적인 단어들만을 내뱉었다. 

"저 별 색깔이랑 아저씨 눈색이랑 비슷하다." 

어느새 침대에서 내려온 검은 고양이가 침대를 향해 말하였다. 하지만 침대위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간신히 규칙적으로 내뱉는 숨소리가 들려올 뿐이었다. 

"...혹시 자? 자는거야? 말도 안돼, 그새 잠들었어?" 

방금 전에 뒤척거리느라 얼음주머니는 베개옆에 널부러져있었다. 레널드는 그것도 모른채, 나레이터의 알아듣지도 못할 영어를 자장가삼아 수마에 빠져들어갔다. 간간이 알렉스의 목소리가 조미료처럼 귀에 조금씩 들려왔다. 그 모습에 알렉스는 쓴웃음을 지었다. 정말로 피곤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별들이 축복해준 덕일까, 플라네타리움을 켜기 전보다는 열이 내려가있었다. 잘자, 아저씨. 알렉스는 행여나 그가 깰까, 아주 조심스레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방안에는 어느새 바뀌어버린 달님이 둘을 바라보며 천천히 자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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