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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레니 _ 묘안석빛 숨결 본문

기타/DOOMSDAY CITY

알렉스레니 _ 묘안석빛 숨결

rabbitvaseline 2017. 4. 21. 14:40



육중한 현관문이 열리자마자 검은 고양이가 잽싸게 현관으로 들어왔다. 재빨리 신발을 슬리퍼로 갈아 신고 대리석바닥에 발바닥을 올리자마자, 그는 빠른 걸음으로 집안 구석구석을 샅샅이 살피고서는, 그다지 변한 게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의외로 실망한 기색을 내비쳤다.

어떻게 가구하나도 변한 게 없어?”

그나마 변한 게 있다면 책장의 책 배치일 것이다. 그것도 집주인이 사건해결을 위해 모아두었던 자료들이었다. 알렉스는 그나마 화분의 배치가 바뀌었다고 좋아하다가 거실 한복판에 위치한 소파에 앉았다. 여전히 먼지 한 톨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깔끔한 거실이었다. 공중파밖에 나오지 않는 대형 텔레비전도, 물소가죽으로 만든 소파도, 주방 쪽에 위치한 커다란 창문도 모두 자신이 죽기 전과 마찬가지였다.

그는 행여나 케이블이라도 설치되어있지 않을까, 하며 리모콘을 들어 올렸지만, 역시나 텔레비전을 즐기지 않는 지옥개답게 숫자는 두 자리수 초반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한낮의 공중파에서는 드라마 재방송이 나오고 있었는데, 이미 그가 예전에 본 작품이었다.

역시 케이블을 깔 생각은 없구나.”

보지도 않는데 깔 필요는 없으니까.”

언제 끓여왔는지 레널드는 커피를 들고 나타났다. 알렉스는 미지근한 커피를 마시며 다시 주변을 돌아보았다. 연인의 집은 그에겐 불편한 구석이 있었다. 정리정돈으로 한바탕 싸우고 난다음에는 그 기색이 더 강해졌는데, 지금도 그는 가방을 바닥에 던지지 못하는 것에 은근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 곳은 레널드 헬하우스의 집이었고, 각각의 집에는 각각의 규칙이 있기 마련이었다. 이곳에서의 규칙은 정돈이라도 제대로 하는 것이었다.

그런 규칙에 얽매여있으면 자연스레 몸도 따라가기 마련이었다. 알렉스는 당장에라도 소파에 드러눕고 싶었지만, 제 옆에 연인이 앉아있는 상황에서는 도저히 무리였다. 대신 그는 옆에 앉아 뉴스에 집중하는 연인의 어깨에 가볍게 몸을 기대었다. 레널드의 몸이 흠칫거리는 것이 느껴졌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는데, 어찌되었건 자신은 이제 막 퇴원한 환자니, 이 정도는 해도 괜찮다는 판단에서였다. 그의 예상대로 레널드는 몸을 피하거나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알렉스의 어깨를 붙잡고는 더 끌어당겼다. 어깨에 닿는 손가락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손가락 하나하나가 제 어깨에 닿은 느낌은 이상하게 낯설었기에, 알렉스도 아무 말도 못한 채 리모컨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화면에선 해골개가 주인에게 재롱을 떨고 있었다. 하지만 둘 다 정신은 다른 곳에 있었다.

맞닿아진 팔 너머로 제 심장이 미친 듯이 자맥질하는 것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알렉스는 연인도 본인과 같은 심정일거라는 생각에 절로 마른 침을 삼키다 이내 조심스레 연인을 품에 안았다. 어느새 해골개는 하울링을 하고 있었지만 둘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서로의 팔과 팔을 목과 등에 두르고, 서로의 가슴을 맞닿아 심장이 겹쳐지게 하고는 어깨에 턱을 올린다. 레널드는 부드럽게 흔들리는 알렉스의 꼬리를 붙잡았다. 반대로 알렉스는 등에 팔을 두르고는 움직이지 않았다. 부드러운 온기가 심장에서 스며나오고 있었다.

“...이러는 거 정말로 오랜만인거 알아? 병원에 입원하고나서는 손도 잡기 힘들었어.”

어깨에 턱이 움직이는 것이 느껴지자 레널드의 입에서 얕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는 빈 공간이 채워지는 느낌에 더욱 알렉스를 끌어안고는 답했다.

난 많이 잡았어. 다만 네가 죽어있었지.”

우와, 치사해. 난 하나도 기억 못하잖아.”

그러자 마치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 한쪽 손을 빼고는 깍지를 쥐었다. 손가락 사이사이가 강하게 옭아매어진 느낌이 나쁘지는 않아, 이번에는 알렉스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오히려 그는 묘하게 흥분하고 있었다. 박동 하나하나가 손가락 끝에서 전해져 올 때마다 그 자리가 마치 데인 것처럼 뜨거웠다. 그리고 그 열기는 점차 온 몸으로 퍼져나갔다. 몇 번 엄지 둔덕으로 손가락을 어루만지는 동작마저도 열이 올랐다.

입원한 동안에 난 항상 이러고 싶었어.”

그렇지만 병원에서는 어떤 스킨쉽도 할 수 없었다. 오히려 깨어나고부터는 요주의 시민이 되어버려서 단 둘이 있을 기회도 없었다. 알렉스는 그 2달여간의 금욕을 생각하며 레널드의 목에 뺨을 비볐다. 열기를 띈 털과 털이 뒤엉키며 마찰될 때마다 연인의 체취를 듬뿍 맡을 수 있었다.

그동안 어떻게 참았어.”

그러는 아저씨야말로 어떻게 참았어?”

알렉스는 조심스레 레널드의 꼬리를 건드렸다. 짧고도 뭉툭한 꼬리는 아주 천천히 흔들리고 있었는데, 몇 번 손가락으로 어루만지자 움찔거리며 움직임을 멈추었다. 레널드의 입에서 열기어린 숨이 터져나왔다. 샌디, 라고 몇 번 소리를 높이니, 그제야 검은 고양이는 손장난을 멈추었다.

정말 나쁜것만 배워서는-”

그리고 그 중 절반은 아저씨가 가르쳐준거지. 난 애초에 꼬리를 어떻게 만지는지도 몰랐다고. 어디가 좋은지, 어떻게 만져야 좋은지 가르쳐 준건 아저씨였어.”

애당초 만졌던 건 너였잖아.”

그러나 레널드의 힐난에도 불구하고 알렉스는 자유로운 손으로 레널드의 몸 이곳저곳을 만져댔다. 날개뼈가 움푹 튀어나온 곳, 척추가 들어간 선을 손가락으로 매만졌고, 다시 꼬리가 튀어나온 부분을 눌렀다. 손가락이 천위로 움직여지는 감각에 레널드는 몇 번이고 몸을 움찔거리며 팔에 힘을 주었다. 알렉스는 제 품에 안긴 연인이 당황해하는 느낌을 즐기다가 이내 품에서 떨어졌다.

포옹하던 동안 보이지 않았던 레널드의 얼굴은 심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귀 안쪽의 피부가 붉다 못해 검붉어져있었고, 턱 아래로 보이는 목 사이로도 붉어진 피부가 비쳤다. 알렉스는 몇 번 젖은 코를 비비고는 짧게나마 입까지 맞추었다.

“...샌디.”

침대로 가자, 아저씨.”

너 퇴원한지 몇 시간도 안지났어.”

그러니까 침대로 가자, ?”

게다가 아직 밖은 밝아.”

창문 너머로 태양은 슬슬 퇴장을 준비하긴 했지만, 아직까진 밝은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는지 그는 잽싸게 레널드의 넥타이를 끌어내렸다.

나도 소파에서 하는 건 싫단 말야. 침대로 가자, ? 아저씨.”

그렇게 말하면서도 이미 연인의 재킷을 벗긴 뒤였다. 베스트의 단추까지 순식간에 끌러내는걸 보면, 정말로 단단히 벼른 모양이었다. 결국 레널드는 셔츠의 단추가 끌려지기 전에 손을 들어야했다. 그도 소파에서 정사를 갖는 건 사양이었다. 그러자 알렉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재빨리 그의 손을 이끌고는 침실로 향했다. 햇빛이 가득한 거실에는, 주인이 잊고 간 텔레비전만이 광고를 방송하고 있었다.

 

 

 

레널드는 불연 듯 잠에서 깼다. 눈을 뜨자마자 허리와 아래쪽의 통증을 느꼈고, 그 다음에야 방안이 완전히 깜깜하단 걸 깨달았다. 이미 해마저 져버려 바깥에는 가로등과 주택에서 흘러나오는 불빛밖에 보이지 않았다.

알렉스는 그의 옆에서 모로 누워 잠들어있었다. 장기간의 병원생활이 피곤한건 레널드와 마찬가지였는지, 둘 다 정사가 끝나자마자 씻을 엄두도 내지 못한 채 골아떨어지고 말았다. 의외로 오랜만의 해후는 짧게 끝났다. 2달간의 금욕생활이 상당히 길었던지 절정이 상당히 빨리 찾아와버린 것이다. 하지만 레널드 스스로에겐 여태껏 가졌던 사랑 중에서는 손에 꼽을만한 경험이었다. 짧았지만 둘은 서로의 살갗을 맹렬히 물어뜯었고,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양 서로의 신음소리를 탐했다. 털과 털이 체액에 젖어 마찰되는, 그리고 축축하면서 끈적거리는 소리가 둘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오히려 짧은 게 다행이라고 여길 정도로 강렬한 열기와 쾌락에 둘 다 서로를 꽉 붙들고 있어야 했다.

그 몇 시간 전의 정사를 떠올리니 그는 부끄러웠다. 그렇게나 맹렬히 알렉스를 탐한 것도 꽤나 오랜만이었다. 그는 알렉스의 몸을 좋아했지만, 욕망을 가지기에는 너무나도 피곤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물론 연인도 그에 대해서는 불만을 가지지 않았기에 둘의 정사는 부담이 가지 않는 선에서 이뤄지곤 했었다. 그런데 몇 시간 전에는 어땠던가. 결국 키스하다가 알렉스의 뺨에 상처를 냈으며, 등에는 손톱자국이 심하게 남아 시트에 피가 떨어지지 않았던가. 그는 청소부가 피 묻은 시트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할지 고민해야 했다.

그리고는 멍하니 제 앞에 등을 보이고 누워있는 알렉스를 보았다. 다행히도 커다란 등은 위아래로 움직이며 이 몸이 시체가 아닌 살아있는 신체라고 알려주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알렉스의 귀가 움찔거리며 움직이는 것을 보아도, 그는 어딘가 가슴 한구석이 석연치 않았다.

그는 이대로 영영 연인이 깨어나지 않을까 두려웠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알렉스가 깨어나기 몇주 전부터 그를 괴롭혔었다. 숨을 쉬고 있다는 소리가, 잘게 움직이는 몸도, 방금 전까지 허리를 움직이던 몸짓도 그에게 확신을 주진 못했다. 레널드는 조심스레 손을 들어올리고는 알렉스의 코에 손가락을 갖다 대었다. 축축하면서도 따뜻한 날숨을 느끼고 나서야, 그는 자신이 품었던 불안에 안심할 수 있었다.

 

.”

고양이의 울음소리와 함께 손가락 끝에 미세한 통증이 인 것은 한순간이었다. 레널드는 당장 손을 빼려고 했지만 알렉스의 날카로운 송곳니는 제 입주변에서 서성거리던 물건을 놓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혀끝으로 조금씩 손가락을 간질이고 있었다. 다시 손끝에서 올라오는 열기에 그는 적잖이 당황했다.

샌디.”

이거 항냥히 마히는 혼가락이녜요.”

그렇게 농담을 끝내고나서야 알렉스는 입을 열었다.

정말!”

그러길래 고양이 앞에서 손가락을 갖다대면 어떻게 해. 잡아먹고 싶어지는걸.”

농담도 잘하긴....”

그러자 알렉스는 그의 손가락을 끌어당겨 핥기 시작했다. 혀로 손가락 하나하나, 손톱 하나하나까지 정성스레 핥는 모양새와 질척이는 소리에 다시 열기가 오르는 것 같았다. 결국 알렉스는 다섯 손가락 모두 정성스레 혀로 애무하고 나서야 원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역시 지옥개 손가락은 맛없는 것 같아. 돈만 만져서 그런건가.”

난 변호사잖아. 그리고 손가락이 맛있어봤자 뭐가 좋아.”

그러자 알렉스는 레널드를 향해 몸을 돌렸다. 어두운 방 안에서 노란 눈동자가 그를 맞이했다. 노랗고 동그란 눈동자 속에는 마치 달이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레널드는 그런 달빛을 마치 황홀하다는 듯 경탄에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아저씨.”

, 샌디.”

알렉스는 계속 뜸을 들이며 그의 푸른 눈동자만을 바라보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다신 죽지 않을게, 그러니까 걱정하지마.”

알렉스는 게슴츠레 눈을 감았다. 그 모습이 마치 초승달같아서 그는 또다시 눈을 뗄 수 없었다.

넌 언제나 날 걱정시키지. 그러니까 괜찮아.”

하하, 역시 그렇지?”

, 하지만 돌아와줘서 고마워.”

알렉스의 꼬리가 이불을 차는 소리가 들렸다. 어떻게든 표정을 숨기고는 있지만 분명 그도 부끄러워하는게 분명했다. 연거푸 샌디라고 불렀지만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꽤나 보기 드문 모습에 레널드는 다시 축 처진 귀를 쓰다듬었다. 부드러운 털이 손바닥에 감기자, 정말로 부끄러웠던지 눈가가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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