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ANDALIEN

알렉스레니 _ Holding Tight 본문

기타/DOOMSDAY CITY

알렉스레니 _ Holding Tight

rabbitvaseline 2017. 4. 3. 11:02


주 : 알렉스 과거 날조가 매우 심함

Fallen









몇 번 죽다 살아나면 그런 일이 있다고들 한다. 몇 번이고 영혼이 몸 안을 들락거리면, 그만큼 많은 주마등을 겪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잊었던 기억이 떠오른다거나 하는. 나는 그 말을 전혀 믿지 않았는데, 애당초 내 곁에 몇 번이나 죽고 살아난 검은 고양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작 몇 번을 죽다 살아나보니, 내 머릿속을 흐르는 필름조각들 속에서 그동안 계속해서 잊어놓고 있던 기억들이 튀어나왔다. 어느 날 맛있는 고기만두를 먹었을 때라던가 친구의 생일날 술을 마신 것 같이 쓰잘데기 없는 것들이 있는 반면, 왜 잊고 살았을까 하는 일들도 머리를 비집고 필름에 떠오르곤 한다.

그리고 그 중에는 도저히 잊어서는 안되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잊어야 할 기억이 있었다. 탄환이 내 머리를 꿰뚫는 소리와 함께, 천천히 내 손을 잡고 아래로 끌어당기는 일렁거리는 검은 수초들. 몇 번이고 숨이 막히고 심장이 멈출 때마다, 세차듯이 자맥질하다 이내 어둠속으로 가라앉는 끈과 추들. 온 몸에 경련이 일 때마다, 어떻게든 살아나려고 물을 찼던 발길질. 차가운 시멘트바닥에 누워있을 때, 너무나도 추워서 견디기 어려웠던 붉고 깊은 호수. 몇 번을 죽었을까, 갑작스레 그 필름은 내 머릿속에서 상연되다가 멈추고 다시 죽음의 순간과 섞여 상연되었다. 언제 막이 내리나 기대하지만 동시에 내리지 않기를 기대하는 아이러니한 감정속에서, 나는 몇 번이고 가라앉았고 몇 번이고 얼음장같은 물을 삼켰다. 차가운 겨울호수에 떨어졌던, 내 첫 죽음의 기억이었다.

아버지와 단둘이 놀러갔던 곳은 텔레비전 속에서나 봤던 휴양지로 유명한 호수였다. 처음으로 놀러가는 휴가라, 어렸던 나는 매우 기대에 찬 눈으로 주변을 돌아다녔다. 그날따라 아버지는 내 손을 잡아주려고 하지 않았고, 그걸 이상하게 여기면서도 생애 첫 휴가라는 생각에 매우 들떠 그걸 무시하고 말았다. 우리는 중류층이 자주 가는 작은 호텔에 묵었는데, 태어나서 호텔에 묵은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정리정돈마저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먼지투성이 집에서 지내다 모든 것이 깨끗하고 금이 가지 않은 호텔은 그야말로 신세계여서, 몇 번이고 침대에서 뛰었었다. 평소라면 그것을 말렸을법한 아버지도 그날따라 내 모든 행동을 관대하게 여겼다. 우리는 호텔에서 룸서비스로 평생 먹어보지도 못했을법한 호화찬란한 식사를 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나에게 밤산책을 가지 않겠느냐고 했다. 호수 근처에 전경이 좋기로 소문이 난 커다란 바위가 있는데, 가족끼리 온 기념으로 한번 가보자고. 어린 나는 그날따라 친절했던 아버지가 좋았기에 선뜻 따라나섰다. 바위로 가는 길목에 여러 시민들을 만나 인사도 했고 푸념도 들었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결국 바위에 이르자 호수의 주변에 둘러싼 빛의 장막에 크게 감탄하면서 아버지에게 또 오자고 말했었다. 그 때 아버지의 표정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아들과 같이 처음으로 휴가를 온 시민답게 웃고 있었는지, 아니면 아들을 죽이고 자신도 자살할 생각에 울고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갑자기 23각경기를 하자고 내 발목과 자신의 발목을 끈으로 연결했고, 조금 더 핸디캡이 필요하다고 주머니란 주머니에 낚시용추를 넣었었다. 그리고는 환하게 웃는 미소로 같이 가자, 고 말했었다.

물에 빠지는 것은 한순간이었고, 순식간에 어두운 호수에 집어삼켜졌다. 그 때 처음으로 죽었다. 그나마 운이 좋았던 것은, 그렇게나 자맥질을 했던 탓에 끈과 추가 내 몸에서 흘러 가라앉았다는 것이었다. 나는 한번을 죽고, 또 죽기 직전 경비대에 의해서 구조되었다. 같이 구조되었던 아버지는 살인죄로 기소가 되었으며 나의 양육권을 박탈당했다.

사실 여기까지는 이미 들은 바가 있어서 알고는 있던 사항이었다. 하지만 알고 있는 것과 기억해낸다는 것은 확연히 다른 일이다. 몇 번이고 머릿속으로 내가 죽었던 당시를 그려봤었기에 큰 충격은 받지 않았지만, 그 필름조각들과 나의 뇌가 이리저리 뒤섞일 때, 즉 내가 그 후로 더 죽었을 때 차가운 물은 몇 번이고 내 몸을 집어삼켰다. 그리고 내가 발버둥을 치는 순간마다, 코 끝에 닿는 비릿한 냄새를 맡으며 나는 수면 가까이에 있는 검고 길다란 무언가를 잡으러 손을 뻗었다.

 

 

 

병실에 앉아있던 레널드 헬하우스의 눈가는 퀭했다. 알렉스는 죽음에서 깨어나고나서, 둘이서 라진스키 사건의 범인들이 법정에 앉아있고, 죽은 아이의 아버지가 연설하는 것을 다 보고나서야 그걸 깨달았다. 에메랄드빛 눈동자 주변에 붉게 핏줄이 여러가닥으로 나 있었고, 눈은 피로로부터 벗어나려고 눈물을 뽑아내고 있었다. 즉 그의 눈동자는 붉고 축축한 모습으로 피로를 호소하고 있었다. 평상시 입곤 하던 가디건차림인걸 보면, 분명 일부러 자신이 깨어날 시간을 기다려 회사도 가지 않은 모양이었다. 알렉스는 움직이는 것도 낯선 손으로 레널드의 옷자락을 붙잡고는 나 때문에 회사는 버렸냐고 농을 던졌다. 그 말에 방금 전에도 지었던, 화가 났다는 표정으로 레널드는 수긍했다. 그 때, 잡은 옷자락의 감촉이 너무나도 생생했기에 알렉스는 재빨리 손을 떼고 말았다. 다시 머릿속에서 필름조각들이 단편적으로 재생되었다. 어떻게든 자신을 품에 안고 죽으려던 아버지를 떼어내려고, 어떻게든 살려고 그는 아버지의 옷자락을 붙잡았었다. 그때의 감촉처럼, 축축한 식은땀이 손가락 사이에서 배어나왔다. 레널드는 알렉스가 꽤나 당황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자마자 간호사를 부르겠다고 일어났다. 그러자 알렉스는 다시 레널드의 팔을 붙잡았다. 둘 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괜찮아, 아저씨, 괜찮아. 너 방금 죽었다 살아났어, 의사에겐 알려야 돼. 굳이 일어설 필요 없잖아, 너스콜을 부르자. 알렉스가 너스콜 버튼을 가까스로 잡아서 눌렀다. 그러자 스켈레톤 간호사가 곧바로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몸을 검사하는 와중에도, 그는 꽤나 생경한 느낌을 받았는데, 마치 없던 부위를 몸에 붙인 것만 같았다. 온 몸이 자신의 몸이 아닌 것 같은 감각에 그는 몇 번 관절을 구부려야 했다. 의사가 와서 이런저런 인지검사를 하고 났을 때엔, 레널드는 어느새 병실에서 사라져있었다. 알렉스의 손은 공중에서 머물 곳을 찾지 못하고 그대로 병실의 소독내나는 공기 속에 멈췄다.

 

알렉스는 총 17발을 피격당했고 4번을 죽었다. 그는 자신이 죽은 순간들을 기억한다. 처음은 가장 최근에 기억해낸 것으로, 동반자살 사건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중학교 언젠가, 그냥 뻘짓을 하다가 사고로 죽었고 그 이후로는 일부러 몸을 사려왔었다. 그는 내색하진 않아도상당히 죽는 감각을 싫어했다. 몸 속의 무언가가 계속해서 빠져나가는 느낌, 그게 피든 뇌수든 영혼이든 무언가가 자신의 손에 닿지 않을 어딘가로 사라져가는 느낌은 불쾌했다.

그는 그 사실을 굳이 의사에게는 숨기지 않았다. 레널드는 자신의 사랑스러운 친우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지원을 했고, 알렉스는 1인실에서 병원에서는 최고의 의사들의 케어를 받았다. 그가 일주일에 한 번씩 상담을 받으러 가는 상담의 또한 마찬가지였다. 붉은 얼굴에 큰 뿔을 가진 그 의사는 검은 고양이들에게 그런 생각은 흔하다고 설명했다. 그 말이 알렉스에게 안심을 주는 것은 아니었다. 알렉스는 가끔씩 자신의 팔이, 다리가, 온 감각이 자신의 것이 아닌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고, 꼭 무언가를 쥐고 싶어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강박에, 상담의는 주마등 속에 나왔던 아버지에 대한 심리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런 급박한 상황에서 그는 살기 위해 어떤 것이든 잡아야 했다고, 그리고 그 당시에는 아마도 아버지였을 거라고 말이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알렉스는 진심으로 레널드에게 이 대화가 전해지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다.

다행히도 상담의는 환자보호의 원칙은 잘 준수하는 것 같았다. 그는 환자가 아직까지 정신적으로 안정해야 한다며 퇴원을 미루게 도와주었다. 퇴원이 연기된 날에서야 알렉스는 레널드를 간신히 볼 수 있었다. 레널드는 알렉스가 깨어난 날 이후로는 거의 병원에 모습을 비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그걸 신경쓰면서도 일부러 쾌활하게 행동했다. 이미 퀭한 눈을 본 것만으로도 레널드에게 못할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페터는 일주일에 한번 씩 알렉스를 찾아와 몸상태에 일에 대한 자문을 구했다. 그는 레널드가 병원에 거의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쉽사리 믿지 못하다가 이내 수긍했다.

그렇지만 네가 죽었을 때, 그렇게나 힘들어했었는데?”

나 깨어날 때는 그냥 눈이 파리한 것 빼고는 멀쩡하던데요?”

“...넌 모르겠지만, 너 죽었을때 레니의 눈은... 누가 레니한테 그런 표정을 짓게 하겠어, 너 말고는. 그러니까 왜 그런 무모한 짓을 해갖고는-! 진작에 연락을 했으면 도와주기라도 했을텐데. 넌 모르겠지만 레니는 너 죽고난 이후로 거의 매일 병원에 왔었어. 네가 깨어나는 날까지 매일매일 네 시체를 보러 왔어. 요즘 얼굴 못보는 것도 그것 때문일지도 모르지, 그만큼 회사를 쉬었단 얘기니까. 너도 언제까지 쉴거냐? 요즘 너 때문에 내가 죽겠다.”

살아있지도 않은 시체를 보러 매일매일 병원에 들르는 레널드의 모습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도대체 무슨 표정을 짓고 무슨 생각으로 자신을 보러왔는지는 이해하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가끔씩 보내주곤 하던 메일과 전화속 피곤한 목소리, 의사와 간호사들의 말들은 얼마나 레널드가 그를 신경쓰고 있었는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그는 그게 몹시나 고마웠고, 그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레널드를 바라보며 무어라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역시나 레널드는 바쁜 모양인지 미안하다는 말만을 계속해서 꺼낼 뿐이었다.

다만 그런 미안하다는 메일을 받고 며칠이 지났을 때, 알렉스는 레널드가 아닌 다른 것을 꿈에서 목도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놀랍게도 처음 죽었던 날의 기억이 순차적으로 눈앞에 펼쳐졌다. 그가 이 기억을 순차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필름조각들은 롤 하나로 감겨서, 끊임없이 그의 뇌속에서 재생되었다. 그는 아버지의 품에 안겨 물에 빠졌고, 한번 죽고나서는 어떻게든 발버둥을 쳐서 아버지의 품에서 벗어났다. 추와 발목을 묶었던 끈이 검은 구덩이속으로 가라앉는다. 그리고 어떻게든 위로 솟아오르려고 끊임없이 발을 움직였지만 몸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위에 있는 작은 빛을 향해 그는 끊임없이 손을 뻗었다. 폐속으로 물이 가득 차는 기분에, 온 피부가 차가운 강물에 얼어가도 아이는 어떻게든 살고 싶어 했다. 그리고 커다란 팔이 그의 옆구리를 그대로 낚아챘다. 파란색 작업복을 입은 검은 형상이었다.

그는 꿈에서 깨고나서야, 사실 그때 아버지는 이미 저 아래에 가라앉아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버지는 어떻게든 죽고 싶어했고, 실제로도 2번을 죽었다. 그럼 수면에서 자신을 부르던 그 검고 길다란 것은 무엇이었을까. 흘러나오는 식은 땀을 닦으며 시간을 확인하자 이미 자정을 넘어 새벽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는 멍하니 휴대폰의 액정을 바라보았다. 분명 이 시간에 자고 있을 것이 분명하지만, 어떻게든 레널드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연결음이 몇 번 지나고 들리는 목소리는 과연 잠에 반쯤 잠겨있었다.

, 그냥 아저씨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무사하면 됐어, 잘 자.”

-“...괜찮니?”

, 괜찮대. 그러니까-”

여러번 총알이 자신의 머리를 꿰뚫고, 첫 죽음의 순간과 4번의 죽음이 뒤섞였을 때, 그 때 보았던 검은 손은 무엇이었지? 알렉스는 순간 그게 이었던 것을 알아챘다. 가느다랗지는 않지만 섬세한, 그리고 길고 검은 손가락을 향해 자신은 끊임없이 손을 뻗었다. 그 손은 분명 너무나도 익숙하고 친근했다. 알렉스가 아무 말도 잇지 못하자 레널드의 걱정어린 목소리가 전해져왔다.

-“..샌디?”

아련히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알렉스는 저도 모르게 한쪽 손을 뻗었다. 그리고 동시에 휴대폰이 파열음을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액정에 금이 몇 개가기는 했으나 다행히 전화는 끊기지 않았다. 하지만 전화를 받고 있던 상대방의 목소리는 잘게 떨리고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휴대폰 속에서 레널드의 외침이 들려왔다.

-“샌디? 무슨 일이야? 괜찮은거야?”

알렉스는 급히 휴대폰을 들어올렸다. 괜찮다고 대답하니 숨을 참는 소리가 들려왔다. 몇십초 정도 정적이 흐르다가 이내 한숨소리와 함께 걱정했다는 말이 들려왔다. 형편없이 힘없는 목소리였다. 그 때도, 이렇게 형편없는 목소리로 자신을 보았을까, 알렉스의 목소리 또한 작아졌다.

아저씨도 참, 나 이제 거의 다 나았다고. 의사선생님도 조만간 퇴원해도 된댔고, 페터도 계속 보채고 있는걸.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지금 가도 돼?”

순간 알렉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검은 손이 순간 튀어나와 그의 목을 쥐어매고 있는 것 같았다. 그저 평소보다는 가쁜 숨소리만 내뱉을 뿐이었다. 하지만 레널드는 그것만으로도 알아들었다는 듯이, 곧 갈테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조금 있다가-”

목소리가 그를 끌어당겼다.

아냐, 끊지마! 아니, 끊지마, 아저씨. 제발 끊지마.”

마치 그 목소리를 잡아채듯, 알렉스는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무엇이 그리도 급한걸까, 무엇을 그리도 원했던걸까. 그는 도저히 전화를 끊을 수가 없었다. 그 목소리를, 그 손을 자신이 끌어 잡을 때까진 그의 곁에서 떠나게 할 수 없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