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ANDALIEN

알렉스레니 _ 너의 어린, 10 본문

기타/DOOMSDAY CITY

알렉스레니 _ 너의 어린, 10

rabbitvaseline 2017. 4. 24. 18:34



집에 들어가자마자 독한 담배냄새가 코를 찔러 상당히 신경질을 냈었댔다. 베란다를 열어 환기를 시키고, 짜증을 내며 냄새의 주인공에게 고개를 돌리고 나서야, 그의 모습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 챌 수 있었다. 그는 소파에 앉아서 테이블을 향해 몸을 기울이고 있었는데, 걸레로 제 이마 한편을 누르면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의 입에서 잿빛 연기가 흘러나왔다.

미안해, 사과하는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 가라앉아 있다. 원래부터 침울해보이던 표정이 더더욱 절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무슨 일 있었어, 아저씨? 걸레를 넘겨주지 않으려는 몸부림을 제압하고 나서야 그는 왜 지옥개가 형편없이 걸레로 제 이마를 누르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이마께 뒤엉켜버린 털속에서 상처가 형편없이 벌어져 있었다. 걸레의 시궁창냄새와 함께 익숙한 피비린내가 흘러나왔다. 아저씨, 이거 누가 그런거야? 병원은? 지옥개는 차마 검은 고양이에게 시선을 맞추지 못했다. 얕게 벌린 입가에서 말이 느리게 흘러나온다. 괜찮아, 어차피 지옥개잖아, 곧 나을거야. 그의 말에 날이 선다.

어떤 새끼냐니까? 지옥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아니, 할 수 없는 게 아닐까. 천하의 레널드 헬하우스가, 마음만 먹으면 지옥의 어떤 시민을 향해서건 소송을 걸 수 있는 변호사가, 그런 그가 보복할 생각도 하지 못하는 이라면-

못 본 척 해줘, 미안해. 이만 가볼게. 일어서려는 지옥개의 팔을 붙잡았다. 괜찮아, 여기 있어도 돼, 가지마 아저씨, 괜찮다니까, 그냥 내가 곁에 있을게. 말이 홍수처럼 터져나오면서 어떻게든 그를 붙잡아야겠다는 생각만이 흘러넘친다. 그는 억지로 지옥개를 품에 안았다. 소파 위에서 무릎을 세우면서 그의 길다란 귀가 정확히 제 가슴에 포개지도록 그의 머리를 안았다.

순간 그는 지옥개의 냄새에 빠져들었다. 미지근한 체온, 마치 물에 빠진 사람처럼 필사적으로 제 옷자락을 붙잡는 손, 바닥에 떨어져 결국 카페트에 화상만 남기고 꺼져버린 담배꽁초. 차마 바깥으로 빠져나가지 못한 연기가 흘러나가려고 아우성을 치는 소리에 규칙적인 소리가 덧붙여진다.

그건 그의 심장소리였다. 두근, 두근, 평소보다 빠른 템포로 레널드 헬하우스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고 있다. 들려, 아저씨? 그는 레널드의 정수리에 코를 문지르고는 다시 말했다. 괜찮을거야, 다 괜찮아질거야, 그러니까 여기 있어주라. 나지막히, 마치 아버지가 아이에게 자장가를 불러주는 것처럼 느리게, 하지만 그에 대한 사랑을 담아 그 어느때 보다도 애절하게 그는 송가를 읊었다. 소파는 너무 오래되어서인지 삐걱거리며 둘의 몸을 간신히 지탱해나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어째서일까,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에서야 지면이 자신의 몸을 강하게 끌어당기고 있었다.

 

 

▒ ▒ ▒

 


알렉스는 하품을 하며 찬바람을 온 몸으로 느꼈다. 요툰호를 둘러싼 산책로에는 안개가 껴 있어서 10여미터 바깥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어린 웃는 소리만으로도 그는 앞에 먼저 가 있던 아이들이 장난을 치고 있단 것을 알 수 있었다. 곧 시각은 정오를 향해 가건만 호수 근처에는 햇빛보다는 안개가 가득했다. 따뜻해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공기에 그의 뼈가 쑤셨다. 알렉스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는 별장이 있을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밤새 서로를 껴안고 자다가 노크소리에 깨니 크리스로부터 손님이 왔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서 애플, 이라는 낯선 이름의 변호사였는데 그 소리를 듣자마자 레널드는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는 잘잤냐는 아침인사도 없이 곧장 거실로 나가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자신은, 어제 두 아이를 찾는데 큰 공헌을 했으며 덕분에 꼬리가 부러지지나 않았는가 걱정해야 했던 자신은 아이들의 손에 이끌려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어른들의 대화를 아이들이 듣지 못하게 밖으로 데리고 온 것이지만, 아마 큰 아이는 모든 것을 다 알아채고 있으리라. 하지만 그는 동생이 행여나 알아채지 못하게 어떻게든 즐거운 척을 하려고 했다.

형아-! 거기서!”

아이가 달음박질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작고 큰 발소리와 함께 인영이 보이다가 사라졌다. 겨울로 단장하는 호숫가에 시민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가로등에 달려있는 CCTV의 렌즈가 반짝일 뿐이었고, 스피커에서는 그 흔한 음악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래도 그나마 그게 나았을 수도 있었다. 알렉스는 호수에 대한 상념에 빠지다가 아이들의 손길에 끌려가고야 말았다. 아이들의 손은 늑대인간답게 길다란 털에 싸여있었다. 알렉스는 그들의 재촉에 장난기어린 표정을 지으면서도, 밤새 제 등허리를 쓸고 만지던 손가락을 떠올렸다.

아저씨, 아이스크림 사주세요!”

나 아저씨 아니야. 그리고 이 날씨에 아이스크림이라니. 근처에 가게도 없잖아.”

그러자 스콧이 그의 팔을 붙잡았다. 헨리는 여기서 30여분정도 걸어가면 편의점이 있다고, 자신을 흘겨보는 알렉스의 시선을 무시하면서 말했다. 아이들은 레널드와 있을 때와는 달리 이 검은 고양이에게는 잘도 달라붙었다. 결국 알렉스는 스콧에게 목마까지 태워줘야 했다.

어제랑 태도가 너무 다르잖아. 아빠한테 허락은 받고 먹는거지?”

알렉스는 어깨에 느껴지는 기묘한 무게감에 낯설어하며 걸음을 옮겼다. 양 손으로 아이의 다리를 붙잡고, 아이가 가자는 대로 움직이다니. 예전의 그라면 상상도 못할 장면이었다. 스콧은 계속해서 알렉스가 시원찮은 모습을 보이니 어쩔 수 없었는지, 고개를 숙여 그의 귀를 붙잡고는 자그맣게 속삭였다.

“..아침에 서로 껴안고 자고 있던거, 아버지에게 말할거에요.”

그 말에 알렉스의 몸이 순식간에 휘청거린다. 스콧은 비명을 지르다가 제대로 움직이라고 대꾸했다. 헨리마저 무어라 말을 하자, 다시 그의 표정이 썩어갔다. 영악하다고 말하려다 다시 방금전의 속삭임을 깨닫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는 자신이 애인이 생겼다는 점을 J에게 들키는 것은 그다지 상관없었지만, 문제는 그 애인이 레널드 헬하우스라는 점이었다.

그 약속 지키지 않으면 흰고양이한테 팔아버린다.”

대답 대신 스콧의 입에서 고급아이스크림 지옥사과맛이 튀어나왔다.

 

결국 비싼 아이스크림을 시민수대로-덧붙여 아서 애플의 몫까지- 사오니, 이미 어른들은 이야기를 끝마친 모양이었다. 스콧은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고르고 나서는 다시 알렉스의 어깨로 돌아갔다. 즐거워하는 모습이 꽤나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결국 헨리가 짐을 들고, 알렉스는 가벼워진 지갑으로 어깨에는 아이의 무게까지 짊어지고는 돌아왔다.

그들이 대문까지 도착했을 때엔, 레널드와 애머릿이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심각한 이야기였는지 레널드의 손에는 담배까지 들려져있었고 표정도 심상치 않았다. 알렉스는 반사적으로 몸을 멈추고는 스콧에게 아빠에게 인사하라고 말했다. 적어도 레널드가 담배라도 끌 시간을 주려는 생각이었다.

아버지! 아이스크림 사왔어요!”

아이의 쾌활한 모습에 어둡던 아버지의 얼굴이 순간 밝아졌다. 그는 스콧을 향해 손을 흔들며 어서 오라고 소리쳤다. 알렉스는 마치 울먹거리는 것 같은 애머릿의 목소리에 웃음을 짓고는 레널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담배를 피고 있는 그의 표정이 알렉스를 확인한 순간 굳어버렸다. 하지만 연인을 보았다는 기쁨에 알렉스는 그걸 눈치채지도 못한 채, 스콧을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아이는 아버지에게 뛰어들었다. 레널드는 피우던 담배를 떨어뜨려 발로 비벼껐다.

아이스크림이라니, 오늘 얼마나 추운줄이나 아니?”

그럼 전 이만 들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일에 관해서는 내일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죠.”

애머릿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스콧과 헨리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기 전에 헨리는 알렉스와 레널드에게 아이스크림을 건네어줬는데, 추운 날씨엔 어울리지 않았지만 재촉을 이길 수는 없었다. 게다가 근처에선 그가 싫어하는 담배냄새가 났다. 알렉스는 아이스크림에서 풍겨나오는 합성사과향에 집중함으로서 그 냄새를 잊어보려 노력했다.

그럼 다 일단락 된거지?”

“...그래, 이제야 좀 여유로워지겠어. 고마워, 네가 아니었으면 늦어졌을거야.”

알렉스는 벽에 등을 기대고는 조금씩 하드를 갉아먹고 있는 레널드를 바라보았다. 커다란 입으로 겨우 몇센티미터 정도를 갉아먹는 모습이 제법 귀여웠다

대신 맛있는거나 사줘, 괜찮은데 봐뒀걸랑. 아니면 인간계에서도 좋고. 날잡아서 인간계로 여행이나 갈까?”

“...저번에 호텔 레스토랑에 간 적이 있었는데 꽤 괜찮았어.”

헤헤, 아저씨 덕에 맛있는 밥도 얻어먹네.... 얘네들은 이제 어떻게 되는거야? 역시 아버지들 따라서 가는거야?”

, 일단 정리할 일이 있거든. 나도 제머슨씨와 아서씨를 따라가야 돼. 가서 소송취하해야지.... 넌 일단 애머릿씨 차타고 가는게 좋겠어. 오토바이는 시민을 부를게.”

어느새 아이스크림을 다 먹었는지 알렉스는 빈 통을 들고 있었다. 그의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렸다.

그리고 병원부터 가.”

에이, 괜찮다니까.”

크리스씨 붙일거야.”

레널드의 단호한 말투에 알렉스는 마구 꼬리를 흔들었다. 나름 제법 괜찮다는 시늉이었지만 꼬리에 말려져있던 붕대가 그의 시선을 끌었는지, 더더욱 엄격한 표정으로 레널드는 그 정신없는 꼬리를 붙잡았다. 상처부위를 만지자마자 통증이 척추를 타고 올라와 자연스레 신음소리가 나왔다.

아윽!”

온 몸의 털이 곤두세워지는 느낌에 덩달아 꼬리의 털도 빳빳하게 섰다. 레널드는 그럼 그렇다는 표정으로 알렉스를 쳐다보았다.

“...이래도?”

“..아저씨!”

아프니까 병원가. 응급처치밖에 안했잖아.”

알렉스는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혀를 찼다. 치사하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다시 꼬리가 붙잡힐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레널드는 몇 번이고 병원에 가라고, 아예 주치의인 데이비드에게 연락을 하겠다고 엄포까지 놓을 정도였다. 그 말까지 듣자 알렉스도 두 손을 들 수 밖에 없었다. 도대체 어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사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은 행동들이었다. 적어도 살살 붙잡을 수는 없었던가.

대신에 오늘 올거야?”

그 말에 레널드는 은근히 알렉스를 노려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아저씨?”

“..알았어, 갈게. 대신 늦을거야.”

언제는 시간보고 왔었어?”

레널드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긴 그도 밤이든 낮이든 그가 내키는대로 알렉스의 집에 출입하곤 했었다. 그리고 주인이 있든 없든, 소파에서 텔레비전을 보던가 가벼운 식사를 할 때도 있었다. 레널드의 입가에 미소가 어리자, 덩달아 알렉스도 웃음을 터뜨렸다. 결국 레널드가 들고 있던 하드는 1/3을 남겨두고는 바닥으로 떨어져버렸다. 알렉스가 그 광경을 아쉬워했지만 지옥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집안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이제 이 안개 낀 호수에서 벗어나야 할 시간이었다.

알렉스는 개미들이 하드 녹은 물 사이로 몰려드는 것을 보다가 문득 주위를 둘러보았다. 헬하우스 산하의 별장이라고 하니, 어쩌면 나중에 다시 이 곳으로 올 수 있을지도 몰랐다. 물론 그 때엔 레널드와 자신, 오직 둘 뿐이겠지만, 가끔씩 세 명이 와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헛된 희망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 그는 웬일로 레널드가 챙기지 않은 담배꽁초를 발견하고는 들어올렸다. 온기를 잃은 꽁초는 이미 차갑게 식어있었다.

 

 

 

-뼈에 살짝 금이 갔대 。・゚・(ノД`)・゚・。 페터에게 말했더니 이번에야말로 골절을 시켜버리겠대

문자메시지 아래에는 꼬리에 초록색 깁스가 붙여진 사진이 함께였다. 그새를 못참았던지 깁스 위에는 하얀색으로 낙서가 되어있었다. 할로윈어로 바보라고 적혀져 있었는데, 글씨체로 보아 아무래도 페터가 적은 모양이었다.

-다행이네, 몸조심해.

그나마 꼬리가 잘리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만약 그랬다면 알렉스는 다시 죽을 때까진 짧은 꼬리로 지내야 할 것이다. 레널드는 짧은 꼬리를 가진 알렉스를 상상해보았다. 짧은 꼬리가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은 어딘가 귀엽기까지 했다. 하지만 분명 본인은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검은 고양이들은 길다란 꼬리를 자랑스럽게 여기니 말이다. 그들은 죽으면 사라진 부위가 원상복구되었다. 목숨을 대가로 그들은 온전한 몸을 약속받는다.

그에 비하자면 지옥개에게 온전한 몸이란 자식을 가지지 않았다는 걸 뜻했다. 보통은 발가락이나 손가락, 꼬리같이 신체에서 튀어나온 부위를 잘랐다. 귀를 자르는 지옥개도 있었는데, 레널드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그는 만약 자신이 자식을 가진다면, 정말로 만에 하나 그런 기회가 생긴다면 자신 또한 귀를 자를 것이라 확신했다.

레널드는 회장실 문을 열고 들어갈 때까지, 그리고 아버지를 정면에서 목도할 때까지 별장에서의 알렉스의 모습을 떠올렸다. 알렉스는 난처하지만 행복한 얼굴을 하고는 스콧을 목마태우고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일테지만, 이미 레널드는 그와 비슷한 광경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 동료인 맥의 아이를 품에 안고 길거리를 지나갈 때처럼, 알렉스는 도저히 알레르기가 있다고 자처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째서 그는 검은 고양이가 자신에게 사실대로 털어놓지 않는지 의심했다. 어린 아기를 품에 안고 웃을 수 있다는 것이, 그렇게나 숨겨야했던 일이었을까. 문득 부모자격증을 신청하려했던걸 떠오르며, 레널드는 혹여나 하는 상상을 또 했다.

하지만 그 상상도 아버지의 인사가 나오자마자 사그라들었다. 그는 아버지의 앞에서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점에 크게 놀라며 오늘 있었던 일들을 보고했다. 로날드 헬하우스는 상당히 심드렁한 표정으로 아들의 보고를 받아들였는데, 소송과 가출이 무사히 끝났다는 말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스콧이 학교폭력에 시달린다는 이야기에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는 피곤한지 미간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눈가의 주름이 더욱 깊어보였다.

일단은 교육청에 제소할 것을 권유하였습니다. 괜찮은 로펌의 변호사도 소개시켜주기로 했습니다. 물론 뒤에 제가 있다는 건 숨기지 않고요. 주모자가 하운드 식품의 막내아들이라 어떻게든 일을 무사히 끝내려면 그 수밖에는 보이지 않더군요.”

그쪽은 자식교육은 제대로 시키지 않았군.”

적어도 자신의 자식들은 그런 짓을 벌이지 않는다는 투였다. 레널드도 그 말에 절반은 수긍했다. 가족 중에서 종족차별이 심한 에드워드와 리바이도 차라리 무시를 했지, 할로윈들을 향해 폭력을 가해 구설수에 오를만한 짓은 하지 않았다. 레널드는 아버지가 심드렁하게 소송취하 서류를 확인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모든 면에서 매스컴을 지나치게 경계했다.

이건 또 매스컴에서 달라붙겠구나...”

, 하지만 오히려 묻으려 했다간 더 사건이 커지겠죠.”

로날드도 그 점은 잘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유성애자 차별건 뿐만이 아니라 종족 차별까지 연관되어 있는 사항이었다. 차별에 대해서는 강경한 태도를 보이던 회사로서는 좋게 넘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럴 때는 매스컴에서 물어 뜯는걸 방관해야 했다. 아버지는 그걸 골치아프게 여기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레널드, 잘 처리했구나.”

오랜만에 듣는 칭찬에 순간 그의 심장이 떨어질 뻔 했다. 그는 희열에 휩싸이면서도 작은 칭찬에 약해진 자신을 책망했다. 결국 아버지가 줄 수 있는 건 저런 말 한마디 뿐이란걸, 그는 다시 한번 자기 자신에게 상기시켰다.

아뇨, 제가 할 일이었는걸요.”

그래... 이 일은 여기서 일단락 짓는게 좋겠구나. , 애머릿도 당분간 고민할 일은 없겠지. 수고했다.”

레널드는 그 말에 고맙다는 말로 대답했다. 그리고는 흘낏거리며 로날드의 왼쪽 귀 언저리, 살점이 잘려나간 부분을 본 뒤, 털에 가려져있지만 상당히 말라있는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어렸을 때엔 그렇게나 잡고 싶던 손이건만, 간단한 인사까지 마치고 났을 때엔 이상하게도 그는 검은 고양이의 통통하면서도 바닥에는 육구가 있는 손가락이 그리웠다. 그는 여태껏 자신을 붙잡아온 무언가에서부터 벗어났다는, 홀가분해진 기분으로 문 손잡이를 열었다. 하지만 그가 손잡이를 돌리려는 찰나, 아버지의 말이 뒤통수에 꽂혔다.

그러고보니 지난번의 그 하얀 지옥개 말이다. 왜 레오와 같이 산다는.”

“...?”

언제 한번 식사를 할 수는 없겠니? 물론 괜찮다면 단둘이서 말이다.”

레널드는 뒤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이겨냈다. 이미 자신이 동요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아챘겠지만, 그 알아챘다는 표정을 보는 것이 두려웠다. 과연 아버지는 알고야 만걸까, 그 하얀 지옥개가 당신의 손자란 것을 알아내고 만 것인가. 하지만 그런 것 치고는 방금 전의 아버지의 표정은 매우 평온해보였다. 레널드는 얕은 한숨을 쉬고는 대답했다.

, 레오에게 연락해볼게요.”

밖으로 나와 문을 닫고나서야 레널드는 숨을 고를 수 있었다. 아버지가 어디까지 알아냈는지는 짐작도 할 수 없었다. 어쩌면 당신의 손자가 있다는 사실까지 알아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신에게는 하등 쓸모없는 하얀 손자를 만나서 무엇을 할 셈이란 말인가. 레널드는 격한 두통을 느끼며 간신히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그리고는 다시 알렉스의 메시지를 확인하였다. 꼬리에 감겨있는 초록색 석고붕대 위에는 할로윈어로 글자가 적혀있다. 아저씨, 라는 단어에 안정을 느끼며, 그는 레오에게 무어라 둘러댈지 생각하고 있었다.

 

 

 

▒ ▒ ▒

 

 

로날드 캐머런은 자신의 은행잔고를 보고 기함했다. 그는 통장에 찍힌 숫자를 보고 말도 안된다고 소리를 치려다가 시민들의 시선에 급히 물러섰다. 원래부터 짜디짠 초등학교 교사 월급에 고등학생 아이 두 명을 기르는 것이 어려운 일이긴 했지만, 마이너스를 볼 정도로 궁한 적은 없었다. 통장에 파랗게 적힌 금액들은 아래로 갈수록 줄어들다가 다시 마이너스를 달고는 그 세를 늘려갔다. 그는 한참을 은행의 소파에 앉아있다가, 스켈레톤 아이가 제 옆에 앉으려하자 급히 가방을 그 위에 놓았다.

이틀 전에 일어난 사고가 치명타였다. 원래부터 삐걱거리던 낡은 자동차는 결국 고장을 일으켰고, 그 육중한 몸체는 잘 빠진 세단의 몸을 무참히 짓밟아버렸다. 짓밟아버렸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결국 폭발까지 일어나서 소방차가 출발했어야 할 정도였다. 세단의 주인은 한시간도 전에 자신을 방문한 지옥개 변호사였다. 그날은 그렇게나 꼴도 보기 싫어했던 스콧 애머릿이 학교에 나오지 않은 날이었다. 아예 가출을 했다고 해서, 이제 영영 얼굴을 보지 않겠구나 하면서 좋아했던 날이기도 했다. 그런 행복한 날이 그렇게나 무참히 사라지다니, 론은 이 순간이 꿈이었으면 하고 바랄 정도였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자동차보험에서 일정부분 보상을 해주었다는 점 일테다. 그렇다 하더라도 헬하우스가 몰고 있던 비싼 세단을 다 물어주는 것은 무리였지만 말이다. 그는 제 통장에서 빠져나간 액수를 생각하며 피눈물을 삼켰다. 운이 나빠도 이건 보통 나쁜 경우가 아닌가.

-Rrrrrrrrr Rrrrrrrrr-

앞으로의 일이 걱정이었다. 그는 당장에 몰고다닐 차를 장만해야하고, 변호사는 굳이 차에 대한 일이 아닌 스콧의 일로도 방문할지도 모른다. 어떻게든 그레이에게 입단속을 시키긴 했지만, 자신을 보기만 하면 얼굴을 찌푸리는 그 망할 악마가 언제 배신하지 않으리라는 장담도 없었다. 게다가 만약에 스콧이 가출한 게 그동안 케이브의 일당이 저지른 폭력때문이었다면 자신에게도 일정부분 책임을 물 가능성이 높았다. 자신을 향해 쏟아질 매스컴을 생각하니 머리가 아파올 지경이었다.

-Rrrrrrrr Rrrrrrrrr-

옆에 앉아있던 악마가 팔꿈치로 그를 건드렸다. 그제야 그는 여태껏 울린 벨소리의 주인을 알아채고는 전화를 받았다. 익숙한 전화번호 아래에는 그렇게나 자신을 괴롭히던 제랄드 애머릿이라는 글자가 적혀있었다. 그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시민들이 이렇게나 많은 곳에서 자신의 연기를 보이고 싶지 않았다.

, 아버님. 스콧군을 찾았다고요?! 정말로 다행입니다! , 그렇고말고요. 정말로 다행이군요.”

일부러 기쁘다는 듯, 한층 올라간 목소리로 통화를 이어나간다. 애머릿은 아이가 충격을 받은 것 같으니 당분간 학교에는 나가지 못하겠다고 하였다. 론은 재빨리 아이가 가출한 이유를 물어보았다. 어떻게든 빠져나갈 구멍은 마련해야 했다.

-“제 집안에 일이 좀 있었습니다. 전남편과 다툼이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많이 괴로웠던 모양입니다.”

과연 알아챈걸까, 아니면 정말로 모르는걸까? 그는 당장에라도 스콧을 데려다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만약에 애머릿이 모른다면 스콧을 협박하던지 어떤 수를 써서든 사건을 묻어버려야했다. 하지만 정말로 만약에나, 여태껏 그를 괴롭힌 불행의 마왕이 다시 나타난다면? 그는 방금 전 제 통장에 찍힌 잔액들과 오늘 아침에도 용돈이 부족하다고 투덜거린 아들들을 떠올렸다. 안되었다, 이깟 더러운 늑대인간 때문에 제 모든 것이 망쳐져서는 안되었다.

그렇군요... 혹시 괜찮으면 집에 찾아가봐도 괜찮겠습니까? 스콧군을 만나서 위로하고 싶군요.”

-“그건 아이와 이야기해보고 대답을 드리겠습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아닙니다, 스콧군은 상당히 좋은 학생인걸요. 저도 스콧이 매우 보고 싶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위선적인 미소가 입가에 떠올랐다. 좋은 학생은 무슨, 그는 교실에 들어갈때마다 스콧을 주위로 형성된 이상한 기류를 불편히 여겼었다. 학급에서 유일한 할로윈출신 주민인데다 아버지는 유성애자였다. 그는 아이가 처음 학교에 왔을 때부터 큰 애정을 느끼지 못했었다.

, 정말로 다행입니다. 정말로 다행이고 말고요.”

전화를 끊자마자 그가 먼저 연락을 한 곳은 바로 교장이었다. 그는 교장에게 스콧이 무사히 돌아왔다고, 자애어린 교사의 목소리로 보고하였다. 그리고는 다시 그레이에게 전화를 걸어서 경고를 시키고-물론 그는 콧방귀도 끼지 않았지만-, 마지막으로 케이브 하운드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케이브의 목소리는 피로에 젖어 있었다. 그는 마침 바이올린 연습이 끝났노라며, 빨리 용건을 말하라며 론을 닦달했다. 그는 어째서 교사인 자신이 이렇게나 눈치를 봐야하는지 한심했지만, 식품업계에서 명성을 떨치는 하운드가의 자제에게 함부로 대할 수도 없었다. 그는 케이브에게 스콧이 가출을 했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그래서요?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요?”

이 어리석은 것은 지금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 인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만에 하나 그놈이 네가 한 짓을 다 말해버리면 너와 나 모두 끝이라는 얘기다.”

-“. 그자식 그럴 용기도 없을걸요, 내가 말해버리면 걔 형 찾아가서 죽일거라고 했거든요. 걱정마요, 한낱 늑대새끼 주제에 그럴 순 없을거에요.”

케이브는 정말로 아무 걱정도 안하는 것 같았다. 그러자 론은 스콧과 애머릿의 뒤에는 헬하우스가 있으며, 이 일에 헬하우스가 도와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소년은 헬하우스도 자기 집안을 이길 수는 없노라고 공언하며-불쌍하게도- 비아냥거렸다. 그는 귀찮은 일에 걸렸다고 생각하며, 일당들에게 이 사실을 전하고 대책을 강구해보라고 전했다. 선생님이 하면 안되냐는 말에는 어디까지 가해자는 그쪽이라고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수화기 너머로 크게 혀를 차는 소리가 울렸다. 론은 버릇없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차마 무어라 경고하지는 못했다. 전화가 끝나자마자 핸드폰을 차마 바닥에 던져버리지 못한 건 덤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하면, 전화가 끊기자마자 애머릿으로부터 온 문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내일이나 모레쯤 되어서, 라는 단서에 그는 흔쾌히 내일 찾아가 뵙겠노라고 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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