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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로니 _ 도우와 소스와 치즈와 그 무언가

rabbitvaseline 2015. 8. 20. 04:15




그 날도 나는 배달주문이 없어 한가한 가게안 소파에 앉아 열심히 스마트폰게임을 하고 있었다. 내가 키운 21레벨 전사는 그 웅장한 몸매를 자랑하며-나도 이렇게 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열심히 쪼렙 13렙 마법사에게 대거를 휘두르고 있었다. 시간은 이미 마감시간인 새벽 2시를 달려가고 있었다. 주인아저씨-미묘하게 배달하면 맛없는 피자를 만들기로 유명한-는 식재료 뒷정리를 하느라 주방에서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아저씨가 정리를 끝내고 나오면 나도 홀청소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솔직히 이 가게의 피자맛은 괜찮았다. 정말로 괜찮다. 단골도 적은 편은 아니었으며, 가끔씩 유명한 사람들이 와서 먹곤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밤시간에, 모든 사람들이 야식으로 침흘리며 기다리고 있을 시간에 피자가 안팔리는 이유는 그저 식으면 미칠듯이 맛이 없어지기 때문이라는 이유 하나였다. 이상하게도 식은 피자를 데워도 맛이 없는건 마찬가지라, 모두들 무슨 약이라도 탄 것이 아니냐, 아니면 쓰여서는 안되는 화학용품을 쓴 것이 아니냐는 말을 하곤 했다. 뭐, 덕분에 일단은 배달부인 나는 요상하게 배달을 나가는 일이 없어서, 홀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서빙을 하는 일까지 동시에 맡고 있었다. 물론 몸은 바쁘고 힘들었지만 급료는 생각보다 괜찮았고, 또 좋아하는 피자를 원없이 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물론 집에 가져가면 식기 때문에 식당에서 해치워야 했지만- 그럭저럭 만족하고 다녔다.

밤에는 사람이 없고 애초에 배달주문은 거의 없는 곳이라-근처 상가를 제외하고는- 나는 언제나처럼 한량처럼 스마트폰 액정에 코를 들이댔다. 아, 이제 조금만 더 하면 더 하면 저 마법사의 치마를- 하고 여우귀를 단 마법사의 치맛자락에 손을 대려는 순간 땡땡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결국 나는 액정도 끄지 않은 채 바지주머니에 쑤셔넣을 수밖에 없었다.

들어온 손님은 커플이었는데 남자쪽은 짙은 회색후드티와 스냅백, 선글라스를 낀 중년의 남성이었고, 여자는 그보다는 젊었지만 적어도 30대는 되지 않았으려나 할 정도로 역시나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남자의 얼굴은 어디선가 본것처럼 상당히 익숙했다. 수염을 멋드러지게 깎은 것이 꼭-


"아이구 손님, 뭐하냐, 가서 주문 안받아?!"


주인아저씨가 홀에 나오자마자 나에게 호통을 쳐 생각은 깨지고 말았다. 분명 어디선가 본듯한 외모였지만, 손님이 손을 흔들어 날 부르자 대령할 수 밖에 없었다.


"네, 손님 뭘 주문하겠습니까?"


아무리봐도 친구들이 들으면 웨엑 하고 놀릴만한 목소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손님은 나의 미소도 본채만채 하면서 같이 온 여자친구-아마도 맞겠지-에게 뭘 먹겠냐고 물었다. 상당히 퉁명스러웠고 단답형인데다가 분위기도 무언가 살벌한 것이 꼭 싸우고 있는 사이 같았다. 가까이서보니 둘의 옷은 캐쥬얼하면서도 상당히 고급졌고, 그들의 몸들도 그 고급진 옷에 맞게 몸매가 좋은 것 같았다. 특히 여성쪽은 좋다못해 근육도 상당수 있는 것 같았다.


"페퍼로니, 큰걸로."

"네, 페퍼로니 큰걸로 하나요. 혹시 음료도 필요하신가요?"


남자는 콜라 2컵도 추가했다. 연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딴청을 피우거나 하면서 피자가 나올 시간을 기다리는 듯 했다. 내가 봐도 참으로 어색한 커플이라, 아무래도 곧 헤어지던가 조만간 헤어지던가 아니면 헤어졌던가 셋 중 하나였을 것같았다. 그나저나 늦은 시각에 피자가게에게서 이별이면, 정말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쁘겠구나, 주문을 전달하고 결국 내 캐릭터가 마법사에게 죽은 것을 확인하고나서야 나는 그 둘을 다시 볼 수 있었다.

결혼은... 하지 않은 것 같았다. 둘다 손에 반지는 보이지 않았고, 아마 부부면 저것보다 더 무심했겠지. 여자쪽은 정말 쿨하게 스마트폰 화면만 보고 있는데 남자쪽은 어딘지 안절부절해가며 여자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아마 주도권은 여자쪽에 있는 것 같아보였는데 남자는 계속해서 눈치를 봐가며 주위를 둘러보곤 했다. 여자쪽에서 점점 귀찮아하는것처럼 얼굴이 찡그려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여자가 입을 열었다.


"...계속 신경쓰이잖아요."

"아냐, 아무것도."


마치 꼬리를 내린 개처럼 남자는 깨갱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이제는 점점 남자쪽이 불쌍해지려 해서, 나는 재빨리 콜라와 사이드메뉴를 긴장감이 뚝뚝 떨어지는 테이블 위에 놓았다. 냉장고속에서 차갑게 식혀진 피클과 할라피뇨 소스를 보자 남자의 표정이 밝아졌다. 하지만 정작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조그맣게 접은 팁을 건네준 것은 여자쪽이었다. 그러고보니 가방을 들고 있는 것은 여자쪽이었고 남자는 지갑 하나도 갖고 오지 않은 것 같았다. 경제권이 없는 남자인가, 아마 기둥서방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자 점점 더 남자가 불쌍하게 느껴졌다.


"뭐하냐? 피자 나왔어."


측은한 중년남성을 바라보던 나에게 사장님이 말을 걸었다. 과연, 이 가게에서 제일 잘 나가는 메뉴중 하나인 페퍼로니 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진짜 화덕에 굽는데다가 치즈와 페퍼로니, 도우의 조화가 그야말로 끝내줘서 나도 좋아하는 피자중 하나였다. 나는 행여나 식어버릴라 재빨리 피자를 불쌍한 중년남성이 있는 테이블에 갖다주고는, 이 피자는 식으면 정말로 맛이 없으니 빨리 해치우라고 경고까지 해주었다. 이정도 경고는 사장님이 직접 해주는 경고이니 내가 말하던 상관은 없었다.


"...뭐해요? 먹지 않고."


여자는 뜨거운 피자를 아무렇지도 않게 한조각 들어올려서 제 입안에 조심스럽게 넣었다. 치즈가 녹아내리며 돌판 위에 흘러내렸다. 남자는 그 모습을 보더니 자신도 피자를 해치우기 시작했다. 커플은 아주 빠른 속도로, 마치 걸신이라도 들린 냥 내가 보았던 그 어떤 사람들보다도 빨리 피자를 해치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큰걸 달라고 해서 괜찮을까 싶었는데 기우였던 모양이었다. 특히 여자쪽에서 먹는 양이 더 많았다. 둘은 재빨리 콜라와 사이드메뉴까지 다 해치웠다. 음식이 나오고나서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신기록이었다.


"그 일에 대해서는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펩."

"알고 있는걸로는 끝나지 않아요."


둘은 피자를 다 먹고나서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남자는 계속해서 여자에게 사과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미안하다는 말은 죽어도 내뱉지는 않았지만. 아마 그는 자존심이 꽤나 센 사람인 모양이었다.


"난 당신이 왜 내게 말해주지 않았는지... 솔직히 나한테 숨기는게 너무 많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전에 팔라듐때부터 시작해서... 난 그저 당신이 내게 말해주었으면 하는거에요. 당신만 힘들어하는건 보기 싫다고요."

"그건 당신이 걱정되니까...! 나때문에 네가 힘들어하는걸 보고 싶지 않았어."

"그걸 나중에 알아챌 나는 얼마나 힘든지 알아요?"


어쩌면 헤어질 예정이거나 헤어졌거나 하는 생각은 그야말로 기우였는지도 몰랐다. 아니, 피자를 다 먹으니까 배가 불러서 마음이 풀어졌는지 둘은 그야말로 눈에 애정이 뚝뚝 피자치즈 흘러내리듯 상대방을 바라보고 있었다.

결국 둘은 내가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가벼운 버드키스까지 나누면서 화해했다. 계산을 하러 다가오는 여자의 눈가에는 눈물이 살짝 어려 있었다. 망할 커퀴벌레들, 나는 그렇게 속으로 욕하면서 -여친없는 세월, 25년으로서- 여자가 건네는 카드를 받아들었다. 검정색바탕에 고급스러운 금색글씨로 VISA Infinite라고.... ?!!!!!! 순간 손이 떨려 카드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다행히도 탁자위에 떨어져 기스가 가지는 않았다. 죄송하다고 말한다음에 카드 번호 아래의 이름을 확인해보니 버지니아 포츠,라고 적혀져 있었다.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여자 CEO. 나는 차마 창밖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어벤져스 타워를 볼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재빨리 계산을 마쳤다. 내가 긴장한 것을 알아차렸는지 남자가 키득거리며 웃자 그 페퍼 포츠가 웃으면서 그러지 말라고 말하였다. 내가 고개를 들자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래, 저 수염모양과 선글라스. 어떻게 저걸 보고 알아차리지 못한거지? 페퍼 포츠의 연인이라면-


"어서 돌아가요, 토니. 시간이 많이 늦었어요."

"오, 그럼 돌아가야죠, 여왕님."


토니 스타크-바로 아이언맨-는 페퍼 포츠에게 팔짱을 낀 뒤, 잘 먹었다고 크게 소리치며 가게를 나갔다. 딸랑거리며 종소리가 멈추자마자 나는 다짜고짜 소리를 질렀다. 무슨 일이냐며 청소를 하고 있던 주인아저씨가 나왔고, 나는 방금 전 페퍼 포츠-바로 그 페퍼 포츠-가 팁으로 주웠던 지폐를 펼쳐보았다. 100달러 지폐속 벤저민 프랭클린의 모습에 주인아저씨와 나는 아연실색하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방금 손님 누구냐?"

"...저기 주인장들이요."


나는 창밖에서 빛나고 있는 어벤져스 타워를 가리켰다.  커다란 A가 한껏 빛을 발하며 타워를 빛내고 있었다.







항상 화해할때마다 페퍼로니 피자를 먹는다는건 친구와 잡담을 떨면서 나온 썰입니다. 이상하게 둘이 밥을 먹으면 계산은 페퍼가 할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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