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냇배너 _ Pushing Lilly

rabbitvaseline 2015. 8. 20. 04:15




-"미안해요, 이게 마지막이 될 것 같네요."


무선 너머로 들리는 연인의 목소리는 매우 지직거렸지만, 그 부드러운 말씨 안에 들어있는 뜻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나타샤는 고개를 저었다. 이런 식으로 끝이 날줄은 그녀로서도 생각치 못했다.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아요."


퀸젯 내에서는 그녀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나타샤의 목소리는 한없이 가라앉아 있었고 그녀의 눈가에는 눈물이 어려 있었다. 하이드라는 핵실험을 비밀리에 하고 있었고, 어벤져스는 그것을 적발했다. 하지만 그걸 알아챈 일당들은 나라 하나를 말아먹을 정도로 큰 원자로를 폭주하게 내버려두고는 도피했다. 물론 그 일당들은 나오는 즉슨 사로잡았으나, 일당들로서도 이미 폭주하기 시작한 원자로를 제어할 수는 없었다. 이미 방사능이 제어실까지 가득찼기 때문이었다.

브루스 배너는 아무 자연스럽게 그 일에 자원했다. 토니의 아이언맨 수트는 방사능대비가 안되어있고, 자신의 몸은 이미 그 강한 감마선을 맞았으니 강한 방사선도 견딜 수 있을거라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그가 내부에 들어가자, 생각보다 폭주가 심하게 되어있었고, 그는 더욱 더 깊숙한 곳으로까지 들어가야 할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는 오히려 그 자신도 생명을 걸 수 밖에 없었다, 아니 그가 생각하기로는 오히려 지금이 죽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지도 몰랐다.


-"..모두에게 미안하고 고맙다고 전해줘요."

"브루스...난 당신을 ㅅ-"

-"사랑해요, 나타-"


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무선이 끊겼다. 카메라는 이미 방사선으로 인해 이상을 보인지 오래였다. 미친듯이 울려터지던 사이렌소리가 멈추고 멜트다운 직전에서야 원자로의 폭주가 멈추었을 때, 대원들의 환호소리를 들으며 나타샤의 몸이 휘청거렸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은 사랑고백은 너무나도 달콤하고 써서, 그녀는 눈물을 한방울 떨어뜨리고는 다시 무전기를 붙잡았다. 아직 일은 끝나지 않았으니까.

방사능 사고에 일반인이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한정되어 있다. 이번 사고는 다행히도 노심이 녹아내리지는 않았으나 콘트롤타워 인근은 이미 인간이 들어갈 수 없을 정도의 방사능에 피폭되어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하이드라의 연구소가 상당히 지하에 위치한 탓에 외부로 방사능이 유출되지 않았다는 점일 것이다. 결국 아이언리전들이 기타 해체작업을 벌인 뒤, 모든 흔적을 납과 콘크리트로 묻기로 결정했다.



생체반응은 발견되지 않았다. 나타샤는 브루스 배너가 자신의 목숨을 희생했다는 것을 참 빨리도 인정해버려야 했다.



"..아무 말 하지마, 캡. 나보단 네가 더 울상이잖아."


나타샤는 아이언 리전들이 보내주는 영상을 보며 혹여나 시신이라도 남아있을까, 하고 들여다보고 있었다. 옆에서 그것을 도우는 스티브와 토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로 영상을 보고 있었다. 폐허로 변한 내부속에서는 살아있는 그 무엇도 발견할 수 없었다. 젠장, 나지막하게 토니가 욕을 내뱉었다. 그는 마른 세수를 두어번 한뒤에 고개를 숙였다.


"차라리 기계들을 보낼걸 그랬어. 젠장..!"

"스타크, 방사능 수치가 너무 높았어. 아마 중간에 통신이 끊겼을거야. 빨리 고개를 들어, 지금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지."

"그쪽은 슬프지도 않아? 이럴 때도 일이 우선이라는건가?! 자기 애인이 죽었는데도?"

"...지금은 시신 수습이 우선이야."


나타샤는 건조하게 대답했다. 주먹을 쥔 왼쪽 손이 새하얗게 질러있었고, 그것을 눈치챈 스티브는 그저 토니의 등을 몇번 두들겨줄 수 밖에 없었다. 나타샤는 눈이 충혈되도록 아이언 리전들이 보내주는 영상을 보았다. 역시나, 기계들이 들어가지 못하는 영역으로까지 들어간 모양이었다. 무리인건가, 순간 욕지기가 턱 아래에까지 차올랐다. 무어라도 소리치고 싶었다. 제 옆에서 간신히 눈물을 참고 있는 토니처럼, 자신도 울면서 슬퍼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브루스가 원하지 않아.



나타샤를 고개를 돌렸다. 이제는 무리인가 하고 내뱉으려했던 순간이었다.




딱딱딱딱    딱딱따    딱따딱딱   따딱따   딱따따   딱따   따딱   따   딱따딱딱   딱 

딱따   따딱딱   따딱딱딱   따따따   따딱딱따




무언가가 벽을 두드리는 소리가 스피커를 통하여 들려왔다. 다시금 두드리는 소리가 났고 토니는 고개를 들었고, 나타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재빨리 납으로 만들어진 차폐막을 갖고 오도록 명령했다. 어느새 얼굴에는 화색이 돌고 있었다.




▒ ▒ ▒




브루스 배너가 눈을 떴을때 맨 처음 느꼈던 것은 코를 찌르는 납냄새였다. 그 이후로 느낀 것은 따끔거리는 통증이었는데, 팔을 들어보니 제 왼팔에 링거바늘이 꽂혀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마 자신이 있는 곳은 커다란 정육면체 상자 안인 것 같았고, 정면에 커다란 철문을 제외하고는 창문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아마 저 철문도 납으로 도금이 되어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는 곧 자신의 상황을 이해했다.

희미한 기억 너머로 헐크가 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행히도, 아니면 불행히도 자신은 죽지 않았던 모양이었고, 아마 헐크로 변한 자신을 여기까지 옮겨온 모양이었다. 그는 무전이 끊기기 직전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평생에 다시는 하지 못할 부끄러운 말이었다. 그는 슬슬 50을 향해가고 있는 자신의 나이를 잊고서는 덮고 있던 이불을 발로 차면서 얼굴을 붉혔다.

방 내부에는 심심하지 말라는 배려인지 텔레비전과 태블릿 피시, 스마트폰이 놓여져 있었다. 스마트폰은 자신이 평소 쓰던 것이 아니었고, 텔레비전에서는 넷플릭스가 가입되어있었다. 배너는 무심히 리모콘으로 영화를 고르다가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는 막연하게 깨달았다. 아마 자신은 엄청난 방사능에 피폭되었을 것이고, 사람 한명은 가볍게 죽일 수 있는 그 방사능을 온 몸으로 흡수했을 것이다. 죽지 않은 것은 초록색의 그 남자가 깨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예전에도 그랬듯 지금도 그는 온 몸으로 방사능을 내뿜고 있을 것이고, 그 양은 아마 납상자로 가둬야 할 정도일 것이다.

검사라도 가능하다면 그는 자신의 어디까지가 방사능을 내뿜는지 알고 싶었다. 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타액 중 일부분은 방사능이 검출되지 않았다. 아마 지금은 걸어다니는 감마선일까, 그는 스스로 자조하며 맥없이 다음 버튼만 계속해서 누르고 있었다. 어쩌면 이대로 사람들을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대로 햇빛도 못보고 갇혀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제서야 그는 마지막에나마 그녀에게 사랑을 말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역사물을 고르고 재생버튼을 누르고나자 스마트폰이 울렸다. 토니였다. 그는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고는 전화를 받았다.


-"아무리 그런 상황이라해도 클레오파트라라니, 너무 긴장푼거 아냐?

"저번에 클레오파트라 분장한 여자보고 좋아했던 사람이 할 소리는 아닌데?"


전화너머로 토니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안도의 한숨소리도 들렸다. 배너는 그의 목소리에서 걱정을 느꼈다.


"..걱정시켜서 미안해. 상황이 그렇게나 악화될줄은 몰랐어."

-"..알면 됐어. 나한테만 그렇게 말할 상황도 아니고 말이야. 거기는 어때?"

"내가 만성 납중독인걸 알면서도 여기다 가둬놓다니, 정말 기억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아냐, 좋은 선택이야. 괜찮다면 탭으로 검사결과좀 보내줘."

-"일단은 약도 넣어놨어, 그리고 그건 그쪽이 원한거라고. 나참, 디아더가이의 지능검사를 다시 해야하는거 아냐?"

"또 무어라 말을 했어?"

-"납상자를 달라고 했어, 모스로."

"그는 내가 아는 모든 것을 알고 있어. 그정도는 당연해.... 다른 사람들은 어때?"

-"보통 애인부터 찾는게 정상 아냐?"

"나타샤는 강하니까, 아마 내 신호가 끊기고나서도 계속 일을 했을걸."


솔직히 씁쓸한 일이긴 하지만 그녀의 성정을 생각해본다면 그것이 옳은 일이었다. 약간의 동요정도는 있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는 부러 말하지 않았다.


-"맞아. 음, 다행히도 일은 잘 마무리됐어. 노심융해 직전까지 갔었는데 그나마 수습한게 다행이지. 하지만 그쪽은 아냐."

"응, 대충 무슨 말인지 알겠어. 내가 봐도 이 수치는 심하네."


배너는 태블릿피씨로 토니가 보내준 검사결과를 확인했다. 그의 몸이 내뿜고 있는 방사능은 확실히 정상수치가 아니었다. 아마 살아있는 사람이 그의 곁에 있다면 분명 한달안에는 암에 걸릴 정도였다. 그나마 그것이 약해진 거라고, 처음 수습했을 때에는 보호복을 입고도 다가가기 힘들 정도였다고 토니는 말했다. 지금이라면 보호복을 입고 약간의 접촉이나 대화는 가능할 것이다.


"예상시간은 얼마나 잡고 있어?"

-"다행히도 사라지는 속도가 빨라. 한달정도 있으면 아무래도 원래대로 돌아올 것 같아."

"난 그 이상 줄어들었으면 싶은데."


배너는 쓴미소를 지었다. 말도 안되는 소리였고 이뤄지지 않으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제 몸에 그 남자를 품은 이상은 무리일 것이다.


-"맞아, 식사 말인데."

"제발 맛있는 걸로 갖다 줘. 쉴드에서 주는 것처럼 보기에만 좋은거 말고."

-"아 그거라면 걱정마."


문 너머에서 노크소리가 들렸다. 토니의 목소리가 익살스러워졌다.


-"환장할정도로 좋아할걸."


"나타샤?"


마치 우주인을 연상시킬 정도로 커다란 방사능보호복을 입고 식판이 올려져있는 트레이를 끌고오는 사람을, 배너는 알아차리지 못할 수가 없었다. 헬멧 너머로 보이는 나타샤의 모습은 놀랍게도 눈가가 조금 붉어져있어서, 그는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뭘 그리 놀래요? 나타샤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목소리가 잠겨있었다.


"어.. 그러니까.."


그는 차마 어떤 소리를 해야할지 갈피를 못잡고 있었다. 미안하다고 해야하나, 아니면 그냥 평소처럼 인사를 해야 할까? 다른 사람들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그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고 어떻게 행동해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굳어있는 연인을 앞두고 먼저 움직인 것은 나타샤였다. 그녀는 트레이에 담겨진 식판-에는 정말 토니의 말대로 환장할 정도로 싫어하는 유동식만이 가득했다-을 베드 트레이에다 올려놓았다. 뒤이어 500ml짜리 생수를 옆에 놓은 뒤에 먹지 않느냐고 말했다. 퉁명스러운 말투였다.


"..고마워요."


그는 행여나 베드트레이를 건드릴라 조심스럽게 침대속으로 들어갔다. 토니가 준비해주었다던 음식은 크루통을 얹은 양파수트였다. 그는 몇숟갈을 위에 집어넣고 나서야 연인이 곁에서 그저 가만히 서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타샤."


그의 목소리는 차분하게 가라앉아있었다. 그 말에 나타샤도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가까이서보니 코도 발개진 것이, 생각보다 동요를 많이 했던 것 같아 절로 쓴웃음이 지어졌다. 그리고 그제서야 자신이 얼마나 큰 짓을 저질렀는가도 깨달아버렸다. 그 스파이를, 전설이라 불리던 스파이를 동요시키다니 이 얼마나 무모한 짓이었던가.


"...미안해요."

"아니에요, 그건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요."


헬멧 너머로 나타샤의 서글픈 미소를 볼 수 있었다. 그는 절로 자신의 손목을 더듬거려 맥박을 확인하고는 그 전까지는 느끼지 못했던, 정말로 느끼지 못했던 감정에 속으로 희열했다. 손을 뻗어 얼굴을 쓰다듬으려하니 느껴진 것은 플라스틱의 차가운 감촉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브루스 배너는 엄청난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어째서일까요?"

"..네?"

"왜 지금에서야... 왜 이제서야 느낀걸까요. 언제나 난 스스로를 저주했는데.. 정말 죽기만을 원했는데."


나타샤가 두꺼운 장갑너머로 배너의 팔을 쓰다듬었다. 배너도 나타샤와 마찬가지로 살짝은 서글픈듯한 미소를 지었지만, 그 전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미안해요, 다시금 그가 사과했다.


"브루스, 당신이 돌아와서 기뻐요."

"나도 당신 곁으로 돌아와서 기뻐요. 정말로 살아있는게 이렇게 좋은거라고 생각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배너는 조심스레 나타샤의 몸을 껴안았다. 보호복의 차가운 감촉만이 느껴졌지만 마치 그녀의 몸을 직접 껴안는듯한 착각에 사로잡혔다. 나타샤도 그의 숨소리를 들으며 그의 몸에 팔을 둘렀다. 오로지 숨소리밖에 느낄 수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연인은 그렇게 짧은 포옹을 나누고서는 몸을 떼었다. 그는 근처에 있던 의자를 손으로 가리켰지만 나타샤를 고개를 저었다.


"이 옷을 입고 앉기는 힘들더라고요."

"당신이 그 옷을 벗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한겹만요?"


갑작스런 나타샤의 농담에 배너의 얼굴이 붉게 익었다. 나타샤는 몇번 낄낄대면서 웃다가 배너의 얼굴에 손을, 정확히는 장갑을 낀 손을 들이댔다.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배너의 뺨을 쓰다듬고나서야 웃음이 그칠 수 있었다.


"나도 빨리 당신을 만지고 싶어요, 브루스."

"...지금은 무리인거 알고 있잖아요."

"뭐, 난 지금도 나름 괜찮다고는 생각해요. 우리 처음에 사귀기로 했을때 기억해요?"

"아.. 그때는 정말로 조심했었죠."


스킨쉽은 매우 조심스러웠다. 처음에 배너는 연인에게 버드키스 이상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는 나타샤와 사귀기로 한 날부터, 자신의 체액이 어느정도의 감마선을 띄고 있는지를 검사하기 시작했다. 침은 괜찮다, 라는 결론이 나오고나서야 그는 나타샤의 입술을 깨물 수 있었다. 그러고나서도 스킨쉽은 진도를 나갈 생각을 보이지 않았다. 몸을 섞게 된 것은 그 행위로도 헐크로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내고나서였다. 그러기까지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그러니 그때까지 둘의 스킨쉽은 그저 서로에게 키스를 하거나 껴안는 정도였다. 나타샤는 아마 그때를 말하고 있는 것이리라.



"키스도 너무 깊어진다 싶으면 내가 안된다고 당신을 밀었죠."

"그 때 내가 얼마나 실망한줄 알아요? 그렇게 대놓고 싫다면서 밀줄은 몰랐어요."


나타샤는 조심스레 배너의 입술을 건드렸다. 살짝 눌리는 감각만이 느껴질 뿐, 그의 푸석거리는 입술은 느껴지지 않았다.


"고마워요, 돌아와줘서."

"나때문에 울어줘서 고마워요."

"역시 변태라니까."


둘은 동시에 웃음을 터뜨리고는 가볍게 키스를 나누었다. 한때 토니가 우스갯소리로 내뱉곤 했던 액정맛키스를 실감하며 눈을 감았다. 나타샤의 숨소리가 들렸다.







푸싱 데이지에서 스킨쉽하기 힘든 커플은 언제봐도 설정은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니 후르츠 바스켓에서도 그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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