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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완다+피에트로 _ 수없이 많은 나날들 속을 반짝이고 있어 항상 고마웠어

rabbitvaseline 2015. 8. 20. 04:14




비전은 격납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항상 훈련하던 사람들로 가득차던 어벤져스 훈련소가 오늘따라 을씨년스럽게 비어있었다. 몇몇 백업멤버들을 제외하고는 사람을 찾아보기도 힘들었고, 주요 멤버들은 머리카락 한올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내부를 몇번 산책하듯이 돌아다니니 어느새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혼자, 그는 이렇게 어벤져스에서 혼자로 남겨진 것이 처음이었다. 그에게는 항상 교육 명목이라고 동료들이 붙어다녔으며 그도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던 참이어서, 이렇게 말도 안되는 적적함을 느끼기는 처음이었다. 훈련소에서 머물던 멤버들이 시끄럽게 떠들어대던 홀에서 홀로 앉아있으니 무언가 말로 하기 어려운 감정이 스물스물 하고 제 속에서 올라왔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고, 그는 그 감정에 대해서 몇번 자문하다가 그것이 외로움이라는 것을 알았다.

세상에 그 혼자 남겨진 것 같아서 동료들이 보고 싶어하는 감정이 외로움이라면 분명 그는 외로운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처해서 이 곳에 남아있기로 모두에게 말했다. 가뜩이나 울트론으로 인해 PTSD에 시달리고 있는 소코비아 국민들에게 안드로이드인 모습으로 나타난다면 무슨 꼴을 당할지는 안봐도 뻔하다고, 그는 자조하면서 그렇게 모두에게 말했다. 그런 자신을 보는 완다의 눈빛이 어쩐지 슬퍼보여 무언가 말이라도 건네려 했지만, 그녀는 그 눈빛을 끝으로 곧바로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비전은 일주일동안 완다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더더욱 외로운 것인지도 모른다, 라고 생각하며 인터넷망을 돌아다녔다. 수많은 사진들과 텍스트들 중에서 소코비아 사태에 대한 것을 검색하니, 어벤져스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이 맨 먼저 올라왔다. 그리고 그 뒤로 내일 있을 위령회에 대한 뉴스 기사들이 여기저기서 보였다.



내일은 소코비아 참사 1주기였다. 현재 갈피도 잡히지 않는 브루스 배너와 자처해서 남겠다고 한 비전을 제외한, 그 당시에 있었던 어벤져스 멤버들은 소코비아로 향했다. 퀸젯을 타고 위령회에 참가는 멤버들의 표정은 상당히 침울해져 있었다. 그는 완다에게 무언가 말이라도 건네고 싶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말없이 손을 흔들 뿐이었다. 그것이 그가 홀로 남기 6시간전쯤의 일이었다. 벌써 시간은 12시를 향하고 있었고, 그에게는 나름 한가했던 하루도 저물어가고 있었다. 내일이면 아마 소코비아의 사람들은 잃었던 소중한 사람들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고, 그들 앞에서 죄책감을 떨치지 못하고 서 있는 영웅들에게 돌을 던지던가 할 것이다.



완다가 다치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 저장된 완다의 모습들을 꺼내보기 위해서였다. 사실은 오늘 하루만큼은 완다에게 무슨 말이라도 한마디 듣기를 원했다. 그에게 완다 막시모프라는 존재는 너무나도 그립고 신비로웠으며, 그런만큼 그는 그녀의 모든 것을 사랑했다. 그녀의 살짝은 허스키하다고까지 느낄 수 있는 목소리, 격한 훈련을 할때마다 머리를 묶으면 그 아래 드러나던 목덜미, 짙은 갈색의 머리카락은 관리가 힘들다며 매번 머리를 감은 후면 투덜거리곤 했다. 비전은 그런 그녀의 머리카락에 향유를 발라주곤 했었다. 기름을 먹은 머리카락에서는 짙은 장미향이 풍겨나왔다.


"비전-!"


머리카락에서 나는 향기가 좋다고 말하자 얼굴을 붉힌 완다의 모습이 일순간에 산산조각났다. 그는 자신을 향해 소리치는 허스키한 목소리에 집중했다. 아쉽게도 그가 바라던 완다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무슨 일입니까, 로마노프?"


로마노프의 목소리는 급박해보였다. 그는 곧 완다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퀸젯 내부의 영상에서 완다의 모습만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완다가 없군요."

"그래, 우리는 곧 소코비아에 도착해. 그런데 완다가 사라졌어."

"...사라진게 아닙니다, 지금 퀸젯에 연결된 카메라를 뒤져봤습니다만 처음부터 완다는 없었습니다."

"...능력을 쓴거야?"

"네, 아마도 자신이 있도록 만드는 환청을 만들었군요. 저도 감쪽같이 넘어갔습니다, 완다의 능력이 더 향상되었군요."


그 말에 나타샤가 헛웃음을 짓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 말도 없이 한쪽에 쭈그려앉아있던 것을 제대로 살폈어야 했다. 그녀는 어지러운 머리때문에 완다를 제대로 돌보지 않았던 것이 새삼 후회스러웠다.


"지금 어디있는지는 찾을 수 있어?"

"네, 찾았습니다."


그는 뉴욕의 모든 CCTV를 돌려 완다의 모습을 찾았다. 그녀가 좋아하던 디저트가게, 자주 옷을 사곤 했던 옷가게, 언젠가 같이 가자고 약속한 레스토랑, 가끔씩 밤에 산책을 즐기던 센트럴 파크, 그녀의 발걸음이 닿았던 곳은 하나도 빠짐없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모습이 보였던 곳은, 지난 1년 가까운 시간동안 그녀가 발걸음을 옮기지 않은 곳이었다.


"비전?"

"찾았습니다, 로마노프. 위령회는 몇시입니까?"

"어디서 찾았는데?"

"아, 정오부터군요. 시차를 따져도 여섯시간정도이니, 지금부터 제가 데려다주면 적어도 그 시간까지는 도착이 가능할겁니다, 걱정마십시오."

"어디냐니까?"

"죄송합니다."


그녀는 어두운 공원 앞에 서 있었다. 공원의 입구에는 고딕형식의 상당히 세세한 장식이 가해진 문이 자리잡고 있었다. 다 꺼져가는 가로등 불빛 아래에 완다는 하얀 꽃다발을 들고 문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비전이 자신의 말을 무시하자 나타샤는 완다가 어디에 있고, 왜 자신들을 향해 따라오지 않았는가를 눈치챌 수 있었다. 완다를 사랑하는 비전이 이토록 완다를 감추려고 한다면, 그리고 그 '날'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본다면...


"...늦지만 마."

"네, 감사합니다."


비전은 다시금 눈을 떴다. 밖은 이미 해가 저물어 깜깜해지고 있었고, 시간은 이제야 간신히 12시를 넘겼다. 위령회는 지금부터 6시간뒤면 시작할 터이니, 아마 전속력으로 날아간다면 시간을 맞출 수도 있을 터였다. 완다, 그는 CCTV에서 완다가 찍혔던 곳을 떠올렸다. 멀지않은 브룩클린 언저리에 있던 공원,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공동묘지였다. 그는 그곳이 어떤 곳인지 알고 있었고, 자신도 한번 그 곳에 간 적이 있어 낯선 곳은 아니었다.



피에트로 막시모프의 유골이 있는 곳이니까.




▒ ▒ ▒




"Ухватио сам, ванда."


완다 막시모프는 고개를 돌려 자신에게 그림자를 드리운 사람을 올려다보았다. 가로등을 등지고 서있어서 그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으나, 어쩐지 슬프다는 것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녀는 비석에 등을 맞대고는 차가운 땅바닥에 앉아있었다. 비석앞에는 하얀 장미꽃다발이 바쳐져있었다.


"곧 위령회가 시작될겁니다."

"알아."


일주일만에 듣는 그녀의 목소리는 상당히 퉁명스러웠다. 무언가 불만에 가득찬 목소리, 하지만 그것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비전은 비석앞에 무릎을 꿇고는 피에트로에게 인사를 청했다. 물론 비석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냇이 말했겠지? 날 잡아오라고."

"제가 자청했습니다, 완다를 잡아가겠다고."


훗, 그 말에 완다는 웃음을 터뜨렸다. 잡아가겠다는 비전의 표정이 사뭇 진지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알아서 자수할텐데 말이야."

"완다."

"...Ти си ме ухватити."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몇시간동안 앉아있었는지 다리가 휘청거렸지만 이내 자신의 힘으로 자세를 바로 고쳤다.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늘은 오늘따라 높았기 때문에 이상하게도 별들이 보이지 않았다, 아니 미국의 중심인 뉴욕의 밤에 별을 찾는 것은 무리인지도 몰랐다. 여기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피에트로. 그녀는 속으로 제 쌍둥이형제를 불렀다.


여기는 우리의 고향과 달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소코비아에서 간략한 화장겸 장례식을 끝내자마자 완다는 도망치듯이 피에트로의 유골을 가지고 뉴욕으로 왔다. 토니의 도움으로 매장은 매우 비밀리에 조용히 이뤄졌으며, 아무도 브룩클린에서 가장 유명한 공동묘지에 어벤져스 멤버가 묻혀져있다는 것을 알 수 없었다. 그녀의 동생은 영웅이었지만 정반대로 울트론에게 가담한 반역자이기도 했다. 토니는 모든 내막-그들이 울트론을 도왔다는-을 숨기려하였지만 어디에서 정보가 퍼져나갔는지 그녀를 마녀라 매도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 곳은 그녀의 추억이 어린 고향이었지만 동시에 제 손으로 무너뜨릴뻔한 곳이기도 했고, 사람들이 저를 향해 돌을 던지는 곳이기도 했다. 그 곳에 피에트로의 유골을 둘 수는 없었다.


"На овом месту не могу да видим звезде."


비전은 저를 향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로등불빛에 반사되는 그의 피부가 어딘가 반짝여서 그녀는 쓴웃음을 지었다.


"동생분과의 시간은 즐겁게 보내셨습니까?"

"...그럭저럭. 그다지 즐겁게 지낸 기억이 없어서 그런지 서로 싸운 기억밖에 없더라고. 쌍둥이니까 상당히 투닥거렸었어."


그만큼 서로에게 붙어다녔지만, 이라는 말은 차마 내뱉을 수 없었다. 어딘가에서 피에트로가 자신을 향해 웃으면서 완다, 라고 부를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모두 다 잊었다고 생각했거늘, 그녀는 아직도 제 동생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녀가 다른 멤버들을 피해 홀로 이 곳에 왔던 것도, 사랑하던 동생의 첫 기일만큼은 어떻게든 자신이 맨 먼저 기억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저는 형제가 없고, 피에트로와도 만나본 시간이 적었지만 그래도 왠지 완다의 마음이 이해가 갈 것 같습니다."

"...정말?"

"믿기지는 않으실테지만, 만약 제 친구들을 오랜 세월동안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어쩐지 제 감정이 서글퍼지더군요. 머릿속에서는 기억이 아무런 손상없이 남아있겠지만, 직접 보지 못한다는 것은 꽤나 큰 슬픔입니다. 물론 완다보다는 덜 하겠지만요."

"То је као што си рекао."


완다는 비석아래에 시선을 옮기며 장례식에서의 피에트로를 생각했다. 처음 그의 죽음을 알았을때는 어떠했던가. 마치 심장을 빼앗긴 것처럼 매우 크나큰 고통이 그녀의 온 몸을 격렬하게 구타하고 지나갔다. 마치 몸의 절반이 찢겨진 것 같은 고통에 그녀는 절망했다, 도저히 믿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공중에 떠있던 도시 어디에서도 피에트로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내 몸의 절반이 마취도 하지 않은 채로 뜯겨지는 기분이었어. 정말로 난 내가 죽은 줄 알았지. 내 곁에서 농담이나 던지던 녀석이 갑작스레 죽은걸 알아차렸을때엔 정말..."

"완다."

"그나마 다행이었다면 피에트로가 스스로 몸을 바쳤다는거야. 물론 나는 그것도 마음에 들어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걔가 정한 죽음이니까... 그래서 나는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어."


완다는 조심스레 비석을 쓰다듬었다.


"우리는 태어날때도 함께였고 부모를 잃는 그 순간에도, 우리의 몸을 실험에 바치기로 했을때도 함께였지. 단순한 쌍둥이남매가 아니었다고 생각해."

"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다못해 첫 기일만큼은 내가 직접 챙겨주고 싶었어. 하지만 알고 있어, 내가 해야 할일이 따로 있다는걸. 그리고 그걸 기만하면 분명 피에트로도 좋아하진 않을거야."


다시금 비석을 쓰다듬는 완다의 표정은 어딘지 행복하면서도 멀리 잡히지 않는 무언가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분명 그녀는 동생의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천천히 절대로 잊지 않겠다는 듯이 그 차가운 비석을.


"...가자."


그녀는 천천히 허리를 펴고서는 비전에게 걸어갔다. 공동묘지에는 바람한점 불지 않았는지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망토도 전혀 펄럭이지 않았다. 어둠속에서 비전의 눈이 반짝였다. 그는 천천히 완다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비브라늄으로 이루어진 피부는 생각보다 따뜻해서, 완다도 그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는 그저 차갑게 식은 몸을 기댔다. 비전은 그녀의 어느때보다도 천천히 두근거리는 심장박동을 느낄 수 있었다.


"...한 5시간은 걸릴겁니다, 꽤 추울테니 일단 망토로 두르겠습니다. 그때까지는 편히 자고 계세요."


비전은 완다의 무릎과 허리 아래에 팔을 넣고서는 완다를 들어올렸다. 가끔씩 장거리를 이동할때마다 비전은 완다에게 공주님 포옹을 해주곤 했다. 그로서는 그녀에게 처음으로 닿았던 그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자세였는데, 그때마다 그는 자신이 부끄러워하고 있다고 느꼈다. 완다는 익숙하다는듯 그의 목에 팔을 둘렀다. 비전의 망토가 자신의 몸을 아주 조심스럽게 감싸는 것을 느꼈다.


"...완다, 곧 출발하겠습니다."

"응...... 저기 있잖아."


비전은 천천히 지면에서 떠올랐다. 천천히 천천히 그의 몸은 허무하게 스러져버린 육신들 위로 올라갔다. 완다는 불편한지 몸을 뒤척거리다가 이내 편한 자세를 잡고서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망토 안은 너무나도 따뜻해서, 마치 사람의 품속에 있는 것만 같았다.


"...있잖아, 비전."

"네, 말씀하세요, 완다."


어느정도 고도를 확보하자 그는 천천히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머릿속에서는 비행기들의 항로와 속도가 펼쳐졌고 어떻게 하면 가장 최선의 루트로 소코비아까지 갈 수 있는지를 계산했다. 잠이 오는지 완다의 목소리는 잠겨져있었다.


"...생일 축하한다고 말하지 못해서 미안해."


순간 그의 머릿속이 아주 잠깐, 정말로 찰나의 순간 머뭇거렸다가 다시 구동했다. 정말로 그 말을, 그 말 한마디를 얼마나 듣고 싶었던가. 물론 그도 현재 어벤져스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고, 오늘이 무슨 날인지도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생일축하를 받는다는게 말도 안된다는 사실도.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는 완다에게서 그 말은 꼭 듣고 싶었다. 자신의 첫 생일축하만큼은 사랑하는 존재에게서 받고 싶었다.


"내년에는 꼭 해줄게."


아쉽게도 올해는 그녀의 남동생에게 기회를 빼앗기고 말았던 모양이었다. 그는 딱히 질투는 느끼지 않았으나, 안타까웠고 또 슬프기도 했다. 완다는 어느새 잠이 들었는지 호흡이 규칙적으로 변해있었다. 그는 마하대까지 속도를 올리면서 아주 작게, 제 품속에 있는 완다가 들을 수도 없을 정도로 작게 속삭였다.




"그 때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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