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냇배너 _The Naked Snow

rabbitvaseline 2015. 8. 20. 04:14




가까스로 발견한 동굴 안은 깜깜하고 적막만이 흐르고 있었다. 적발의 여자는 오른쪽 어깨로 남자를 짊어지고 있었고, 다른 손으로는 동굴 안을 손전등으로 비추고 있었다. 동굴 밖에는 눈보라가 치고 있었고 제 발도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남자는 정신을 잃은 채로 가까스로 여자의 왼팔에 붙잡혀져 있었다. 그녀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대로 다시 밖으로 나간다면 남자야 다시 초록색 거인으로 변해 피하면 되겠지만 어디까지나 일반인인 여자는 순식간에 얼어붙을 터였다. 이대로 동굴언저리에서 눈보라가 사라지길 기다리는 수밖에는 어쩔 방법이 없었다. 동료들도 이런 상황에서는 자신들을 도와주러 오기도 힘드니 말이다. 혹시 몰라 SOS 신호는 보냈으니, 아마 운이 좋다면 눈보라가 그치자마자 찾아올 가능성도 있었다.

어느정도 괜찮다 싶을 정도로 안에 들어오자 그녀는 남자를 한켠에 조심스레 눕혔다. 남자는 정신을 잃었는지 눈을 감고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물론 생명의 지장이 없음은 그녀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아마 여기서 자신이 죽는다 하더라도 남자만은 살아남을 것이었다. 그녀는 손전등을 세워 동굴안을 비추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쪽은 눈보라치는 설산, 한쪽은 끝도 보이지 않는 심연이었다. 심연속에서는 이상한 소리가 가끔씩 흘러나왔지만, 아무래도 단순히 동굴속 동물이 내는 소리가 울려퍼져 만들어진 것 같았다. 그녀는 남자가 온전히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제 손목에 달린 램프를 켰다. 동굴안은 바깥보다는 덜했지만 제법 서늘했고 둘다 장작이라느니 책같은 탈만한 물건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지금 할 일은 어떻게든 장작이라느니 나뭇가지를 모아서 불을 태우는 것이었다. 그녀는 조심스레 동굴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들이 낙오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하이드라의 잔당을 처리하는 일은 언제나처럼 순탄했지만 예상치 못한 것이 있었다면 이 산이 악마의 산으로 불릴 정도로 기후가 불안정했다는 것이었다. 헐크와 나타샤는 자신들이 맡은 잔병처리를 끝내자마자 퀸젯으로 복귀하려 했다. 나타샤는 차분히 헐크에게 자장가를 불러주었고, 여느때보다 피곤했던지 배너는 돌아오자마자 정신을 잃었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한쪽 어깨에 그의 팔을 두르고는 산을 내려와야 했다. 하지만 악마는 둘이 무사히 산을 빠져나가기를 원하지 않았다. 금새 눈보라가 불어 눈앞이 분간도 되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동굴옆에 있던 나무에 연결해놓은 로프를 허리에 매고, 간신히 지리를 파악하면서 나뭇가지를 줍던 나타샤는 차라리 자장가를 불러주지 말걸, 하고 후회하였다. 아마 그랬더라면 눈보라가 치던 순간 빠져나올 수도 있을 터였다. 하지만 이미 일은 터져버렸고, 배너가 기절해있는 지금으로서는 자신이 모든 일을 책임지고 행해야 했다. 그녀는 근처에서 하이드라의 잔당들이 막사로 썼을 텐트를 발견했다. 텐트의 천부분만을 해체하고 그 안에 상당량의 나뭇가지들을 모아 동굴로 돌아오니 배너가 동물 한켠에서 무릎을 모아 앉아있었다.


"나타샤."

"오, 일어났어요? 좀 더 자도 되는데."

"역시 날 데려온건 나타샤였군요."


나타샤는 절반정도의 나뭇가지들을 모았다. 그리고 그 위에 서바이벌 키트에서 마그네슘을 꺼내어 위에 뿌리고는 부싯돌로 불씨를 가했다. 연기가 몇번 일더니 이내 작은 불꽃이 나뭇가지 위에서부터 퍼져나오기 시작했다.


"상황이 많이 안좋은 모양이군요."

"네, 생각보다요. 아마 눈보라는 내일쯤이 되어서야 그칠것 같아요. 그때쯤이면 아이언맨이 알아서 찾아오겠죠."


나타샤는 제 머리위에 달라붙었던 눈을 털었다. 확실히 동굴내부는 외부보다는 온도가 높았는지 눈이 금방 녹았다. 머리카락이 축축해진 것이 생각보다 불쾌해서, 그녀는 감정을 숨기지 않고 얼굴을 찌푸린채 밖에서 가져온 천을 불길에 말리기 시작했다. 동굴안에서는 바깥과 달리 입김은 나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있으면 추워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무엇이든 덮을것이 필요하였다. 다행히도 천은 텐트에 사용되었기 때문인지 금방 말랐고 생각보다 두꺼웠다. 아마 둘이서라면 이 천을 두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뭔가 도울 것이 없을까요?"

"지금 상황에서는 딱히 할 일이 없어요. 혹시 배고픈건 아니죠? 내일까지 쫄딱 굶어야할지도 모르는데."

"굶는거야 이젠 익숙해요. 나타샤는요?"

"나도 굶는거는 괜찮아요. 며칠 굶는다고 죽는건 아니지만. 하지만 저 밖에 나가면 난 분명 죽고 말거에요."


불길이 어느정도 안정되어졌다. 작은 동굴의 울퉁불퉁한 벽에는 두 사람의 그림자가 마치 아지랑이처럼 불길에 따라서 일렁거리며 흔들렸다. 타닥타닥 거리며 나뭇가지가 타는 소리가 퍼져나갔다. 생각보다 불길이 오래갈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서는 고개를 돌려 배너를 본 순간, 그제서야 그녀는 오랜만에 둘만 있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거진 2주만이었다. 배너는 천을 담요처럼 두른 채로 벽에 기대어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무표정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그런 표정을 몇번인가 본 적이 있었다. 그녀가 차마 건드리기 힘든 기억속으로 도피하는 순간에 짓곤 하였던 표정이었다. 저 갈색 눈은 무엇을 보고 있을까, 가끔씩 그의 연인이라는 신분으로 묻고싶어지곤 했었지만, 어쩐지 역린을 건드리는 기분이 들어 몇번이고 직전에서 멈춰서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순간을 멈춰야 했다. 슬슬 몸이 추워지기 시작했다.


"브루스?"


그녀는 다정하게 연인의 이름을 불렀다. 그 말에 배너는 백일몽에서 깨어 나타샤를 바라보았다. 마치 그가 찬양해마지않았던 그녀의 머리카락같은 색깔의 불빛이 그녀의 얼굴에서 아른거리고 있었다.


"아, 나타샤. 미안해요, 뭐 할 일이 있나요?"

"춥지 않아요? 잠깐 바지좀 만져봐도 될까요?"


나타샤는 예, 라는 대답을 듣기도 전에 배너의 허벅지를 만졌다. 과연, 설산에서 그렇게 뒹굴었으니 옷이 젖지 않는 것도 무리였다. 배너의 팔과 가슴에도 소름이 돋아있는것을 보면, 그도 적잖이 추워하는 것 같았다. 이대로는 서로 무리가 될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자 그녀는 다시금 고개를 들어 배너와 눈을 맞추었다. 살짝 헝클어진 배너의 머리카락도 귀여워서, 그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역시 젖었군요. 미안해요, 나도 많이 추워서 그래요."

"네?"

"역시 옷을 벗어야겠어요. 바지좀 벗어요, 브루스."

"Sorry?"

"당신 그것밖에 안입었잖아요, 안에 속옷도 없으면서. 벗어요 브루스."


배너는 순간 나타샤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물론 나타샤의 말대로 현재 브루스 배너가 입고 있는 것은 최첨단 스판덱스-토니가 만들어준- 팬츠 한벌밖에 없었다. 즉 그녀가 하는 말은 지금 당장 옷을 벗고 '그녀 앞에서' 전라가 되라는 말인 것이다. 그는 아직 그녀의 앞에서 제 본 모습을 다 보여주지도 않았고 보여줄 생각도 없었다. 그녀의 고백을 받아주었을때부터 그는 나타샤에게 둘의 관계는 키스를 제외하고는 철저히 플라토닉적인 관계를 이어나가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물론 나타샤도 곧바로 수긍했다. 이유야 세상사람들도 다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제 전투복의 가운데에 달려있는 지퍼를 내리려는 손을 당장에 막은 것도 그러한 의미였다. 배너의 손은 매우 떨고 있었으며 얼굴과 온 몸이 붉어져있었다. 특히 얼굴은 마치 비전의 피부색처럼 검붉은 색으로까지 변해가고 있었다. 안돼요, 나타샤. 그는 마치 꼬리내린 강아지처럼 애처로운 눈을 하고서는 고개를 저었다. 이런 갑작스러운 관계진전은 처음 사귀었을때 나누었던 말과는 달랐으며, 또한 자신이 그 빌어먹을 디아더가이를 진정시킬 수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네? 브루스, 갑자기 무슨-"

"미안해요, 정말로 미안해요 나타샤. 하지만 이건 아니에요. 정말로 이건 아니에요. 당신이 그러고싶어할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하지만 나타샤. 나도 그렇고 헐크도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았어요, 게다가 난 그 상황에서 변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도 없고요. 또 알잖아요, 내 체액은 방사능덩어리라고요, 여긴 콘돔도 없는데 당신을 감마선에 피폭시킬 수도 없어요."


그는 조심스레 가슴중앙에까지 내려간 지퍼를 바로 목 아래까지 끌어올렸다. 제 심장이 정말로 미친듯이 뛰고 있었고, 만약 이대로 더 뛴다면 디아더가이가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나타샤는 배너의 말을 도대체 무슨 말인가 싶은 심경으로 듣다가 지퍼에서 손을 떼었다.


"내 몸이 이렇다는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난 그쪽으로 당신을 만족시킬 수 없고요, 하지만 그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잖아요. 나타샤, 난 할 수 없어요. 당신을 상처입힐지도 모르잖아요. 당신을 정말로 좋아해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난... 미안해요, 당신도 이런 고자와 사귀는게 힘들었겠죠.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요. 하지만 나타샤, 난 도저히-"



"지금 무슨 소리 하는거에요?!!!"



동굴 안으로 나타샤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가 다시금 되돌아왔다. 메아리치는 자신의 목소리 속에서 나타샤의 살짝은 상기된 얼굴이 배너의 눈에 들어왔다. 순간 그는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굳어버린 배너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 풋 하는 웃음소리가 나타샤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녀는 마치 어린아이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심정으로 간신히 웃음을 참은 채, 그가 방금까지 끌어올렸던 지퍼에 다시금 손을 댔다. 그가 다시 만류할새라 급히 지퍼를 제 허리까지 끌어내리고는 양팔을 전투복에서 빼내었다. 살짝은 창백하면서도 탄탄한 살이 차가운 공기에 드러났지만, 이미 젖은 전투복을 입고 있었기에 소름은 돋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지금이 더 따뜻하다고 느꼈다. 하얀색 스포츠 브래지어가 그녀의 글래머한 가슴을 단단히 받쳐주고 있었다.


"뭘 생각하고 있던거에요?"

"네?"

"설마 내가 이 추운 설산의 동굴에서, 이렇게 열악하고 침대도 없이 딱딱하고 돌들이 널려있는 바닥에서 당신을 덮칠거라고 생각했어요?"

"나타샤!"

"오, 당신이 이렇게나 순진할줄은 몰랐어요. 무슨 첫경험을 기다리는 순진무구한 소녀도 아니고... 미안해요, 말이 너무 심했네요. 브루스, 이런 상황에서 제일 중요한건 체온유지에요.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젖은 옷을 입으면 딱 저체온증 와서 죽기 좋죠, 그건 과학의 영역이니 당신도 잘 알잖아요."


물론 잘 알다마다, 과학은 브루스 배너의 영역이었고 브루스 배너의 영역이 과학이었다. 그는 순식간에 나타샤가 하는 말을 알아들었다. 젖은 옷을 입고 있으면 수분이 기화함에 따라 체온을 빼앗기게 된다. 그것은 아주 기초적인 영역의 아주 기본적인 법칙이었다. 아주 기본적인 법칙이었다. 나타샤는 그 법칙에 따라 몸의 열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젖은 옷을 벗었다. 이미 몸을 덮을 두꺼운 천도 구해왔으니, 옷이 마르는 시간동안은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 터였다.

그제서야 그는 나타샤가 말했던 모든 것들이 이해가가 가기 시작했다. 순간 몸속의 모든 열이 오르는 듯한 기분이 들면서 그는 숨을 크게 참았다가 내쉬었다. 부끄러움, 수치심,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약간의 분노가 그를 순식간에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알아차렸고 그것을 빨리 받아들였으며 빨리 내보냈다. 실로 오랜세월동안 헐크를 몸에 달고 살았던 그가 가진 능력이었다.


"미안해요, 나타샤."


그래도 얼굴의 붉은 기운은 사라지지 않았다. 어지간히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라고 나타샤는 생각한뒤에 그것마저도 매우 귀여워졌다.


"알면 벗어요. 당신도 많이 추워하고 있잖아요. 아님 등이라도 돌릴까요, 서로 벗는걸 보지 못하게."

"아뇨, 괜찮아요. 하긴, 언젠가는 보게 될지도 모르고, 당신의 벗은 몸을 보지 않은 것도 아니니까요."

"언제요?"

"뒷모습만이었지만, 저번에 급하게 옷을 갈아입는다고 내 방에서 갈아입고 갔잖아요."


하긴, 나타샤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의 앞이라면 자신의 벌거벗을 몸을 보여주기도 했었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잘 알았고 어떻게 이용해먹는지도 잘 알고 있었으며 실제로 많이 보여주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임무에 관련된 일이라면 딱히 벗는다는 행위에 대해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장갑과 신발을 벗었고, 전투복을 다 벗어 불가에 말렸다. 그리고 그녀는 배너의 눈을 의식한 탓인지 뒤돌아서서 자신의 속옷을 벗었다. 그는 전에도 한번 보았던 그녀의 몸을 다시 한번 제 눈으로 확인했다. 옅은 복숭아빛을 띄고 있는 몸은 전보다도 더 근육이 붙어있었다. 허리 왼쪽 언저리와 팔 한쪽에는 총상으로 입은 흉터가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었다. 몸은 전체적으로 탄력이 있어보였으며 허리와 엉덩이, 가슴의 밸런스가 훌륭했다. 그는 자신의 연인이 상당한 미녀란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이제와서 벗은 몸을 보니 새삼스레 다시금 실감이 갔다.


"뭐해요? 나만 벗고 있기 뻘쭘하다고요."


그 말에 배너는 재빨리 자신의 팬츠를 벗어 나타샤에게 건네었다. 나타샤는 그 팬츠를 나뭇가지에 꿰어서는 불가 근처에 세워놓았다. 그리고는 뒤돌아서서 자신의 정면을 배너에게 보였다. 과연,


"해피가 말한대로... 음..."

"솔직히 말해도 되요."

"....밸런스가 좋군요."


그 말에 나타샤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평소에 전화를 할때에는 그야말로 입에 꿀이라도 바른듯 온갖 칭송을 다 하는 주제에 이럴때에는 이상하게 과학자의 눈으로 돌아가곤 했다. 하긴, 체격으로 사람을 알아보는 사람이니 당연한 것이려나. 하지만 자신의 눈에는 지금 배너의 벗은 몸이 마치 테디베어같아서 사랑스러운데 저런 말을 들으니 뭔가 기분이 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더 뭐라 하기 힘든 점은, 그는 그야말로 그녀의 몸에 감탄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뭐 더 말할건 없어요?"

"전보다 근육이 더 붙었나요? 요즘 체지방량 조절이 힘들다고 들었는데, 내 연인이 복근을 갖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순간 방금전 아무렇지도 않게 과학 이야기를 내놓은 것이 후회되기 시작했다. 배너는 진짜로 과학자의 눈으로 나타샤를 보고 있었다!


"지방을 늘리는데에는 탄수화물이 제일 좋다고 들었지만, 역시 운동스타일을 바꿔보는게 어떨까요? 요즘 훈련이 너무 고되다면 차라리 고칼로리 위주로 식단을 바꾸는 것도-"

"브루스."

"네?"


어느새 나타샤의 표정은 뾰루퉁해졌다. 그는 제 표정을 숨길 생각도 없는지 입술을 있는대로 툭 내밀고는 저가 가져왔던 천 안으로 쏙 들어갔다. 그 모습에 배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나타샤가 하는 말을 기다렸다.


"난 당신이 생각보다 몸이 다부지고 테디베어같아서 좋다고 말하려고 했어요."

"그렇지만 나타샤, 이건-"

"어서 들어와요. 난 춥단 말이에요."


그녀는 천을 들어올리고는 그 안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 말에 배너는 살짝 웃음을 흘기면서 아무 말 없이 나타샤와 천 사이로 들어갔다. 천은 텐트천답게 거칠었지만 두께감이 있어서인지 그렇게 춥지는 않았다. 나타샤의 몸은 차가웠다. 과연 춥다고 말한 것이 사실인 모양이었다. 나타샤는 배너의 어깨 위로 얼굴을 올리고는 팔을 그의 등에 둘렀다. 볼록한 가슴이 배너의 가슴에 맞닿아져서, 배너는 그 말캉한 감촉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부분은 오히려 근육이 많아서 자신의 피부보다 단단했다. 그는 조심스레 나타샤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는 손목을 짚어 제 박동수를 헤아렸다. 평소보다는 빨랐지만 위험수준은 아니었다.

벌거벗은 몸을 그대로 맞대고 서로의 체온을 나누자 확실히 몸이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긴장이 풀렸는지 배너의 목소리는 상당히 풀어져 있었다.


"효과좋네요, 이 방법."

"원래 추울때는 이렇게 하는게 제일 효율적이에요. 옷이 마를때까지는 서로의 체온을 보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죠."

"다른 사람하고 한 적 있어요?"

"어머, 설마 지금 질투하는거에요?"


나타샤는 고개를 들어 배너의 얼굴을 보았다. 배너는 시침뗀다는 듯 시선을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녀는 조심스레 배너의 턱에 입을 맞추었다. 쪽, 하고 입술을 떼자 배너가 다시 그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맞대었다. 그저 서로의 입술을 맞대기만 하는 단순한 키스였지만 어쩐지 그녀는 그것이 부끄러웠다.


"실은 나타샤의 몸 예뻤어요."

"내 몸은 원래부터 예뻤어요. 요즘따라 근육이 붙어서 문제지."

"확실히 식단을 좀 바꿔보는게 좋을것 같은데요."

"...고마워요."

"나타샤."


그는 특히 낮은 목소리로 다시금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나타샤는 고개를 들어 배너의 눈을 바라보았다. 저 갈색 눈, 자신이 사랑에 빠졌던 저 평범한 눈동자 속에 자신이 담겨 있었다.


"이것도 생각보다 괜찮네요."

"그러네요."


나타샤의 심장이 점점 거세게 박차를 가했다. 그녀는 그것을 애써 숨긴채로 다시금 배너의 어깨로 제 얼굴을 묻었다. 스킨냄새와 체취가 섞여서 그녀의 코를 타고 제 뇟속을 뒤집어헤아렸다. 두근, 두근, 두근. 그녀는 조심스레 손으로 제 연인의 어깨뼈를 더듬었다. 타닥타닥, 모닥불이 불타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두근대는 심장소리가 제 귓가를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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