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ANDALIEN

비전완다 _ Yellow 본문

AVGS/HL

비전완다 _ Yellow

rabbitvaseline 2015. 8. 20. 04:15




순간 엄청난 격통이 척추를 타고 흘러들어왔다. 완다 막시모프는 급히 제 왼발을 덮친 철근콘크리트 조각을 들어올렸다. 자신이 입은 드레스처럼 검붉은 피가 부츠 사이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애써 신음을 참아내자 이어셋 너머로 나타샤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행히도 상황이 종결되었다는 말이었다. 그녀는 부츠를 벗고 엉망이 된 자신의 발을 내려보았다. 기묘한 모양으로 뒤틀린 것이 아무래도 뼈가 부러진 모양이었다. 부상을 당했다는 보고를 마친 뒤 몇초가 지났을까, 너무나도 익숙하다 못해 친숙한 목소리가 이어셋을 통해 귀로 전해졌다.


"완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지금 여기에 없어야 할 그를 찾아보았지만 예상대로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분명 어벤져스 훈련소에서 대기를 하고 있어야 마땅했다. 그런데 어떻게? 더군다나 그의 목소리는 아주 미묘하게-그녀만이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걱정하는 투였다. 그녀는 다시금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당연하게도 적의 몸뚱아리와 엉망진창이 된 건물 잔해밖에 보이지 않았다. 완다는 순간 의심에 휩싸이다가 등골이 오싹해져서는 신경질적으로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비전?"


나지막히 말한 목소리에는 당연하게도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나타샤의 무슨 일이냐는 말만 들렸을 뿐이었다. 그제서야 완다는 비전이 자신에게 무언가 술수를 썼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 ▒ ▒




헬렌 조에게 응급처치를 받은 뒤 훈련소에 도착하자마자 완다 막시모프가 찾은 것은 그녀와 마음을 통한 안드로이드였다. 스티브 로저스는 완다의 표정이 상당히-여태껏 보았던 것 중 가장- 포악해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재빨리 비전에게 어디있냐고 연락을 하였다. 그녀를 둘러싼 공기의 온도가 상당히 뜨거워져있어서, 샘 윌슨은 누군가 히터를 튼 것이 아니냐고 농을 던질 정도였다. 물론 그 농은 곧바로 나타샤가 회수하였다.


"완다."


자신을 부르는 대장의 목소리에 완다는 고개를 돌렸다. 나타샤는 팔짱을 낀 채로 자신만이 이 사내연애로 인해 조성된 괴악한 분위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식으로 입을 열었다.


"비전은 여기 없어."

"타워인가요?"

"아니."


최악의 경우라면 대답의 여하에 따라 훈련소가 마비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타샤로서도 이런 경우에는 오히려 숨기는 게 없어야 한다는걸 잘 알고 있었다. 분명 완다가 이렇게나 분노를 숨기지 않는 것은, 비전과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 분명했다. 섯불리 거짓말을 내뱉었다가는 오히려 후폭풍이 더 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토니 스타크가 제발 말하지 말라고 부탁과 당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을 말할 수 밖에 없었다.


"비전은 말리부에 있어, 토니 스타크의 집에. 반나절 전에 토니가 면담을 요청했거든. 오, 안돼. 퀸젯 지금 수리중이야."


그녀는 재빨리 퀸젯에 다시 올라타려는 완다를 제지하였다. 내일이야, 내일 곧바로 온댔어. 그녀는 어떻게든지 제 앞에서 분노에 휩싸여 사실은 작은 헐크로 변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화를 내고 있는 여자를 달래야 했다. 그녀가 책임져야 할 빅가이는 한사람으로 충분했고, 다른 남자들은 도저히 완다를 달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녀는 완다를 조심히 자신의 숙소로 인도했다. 이대로 상담을 한다면 어느정도 해소할 수 있을 거라는 전망에서였다.

한 시간 뒤, 나타샤는 날카로운 눈으로 완다와 함께 퀸젯에 올라갔다. 서슬퍼런 모습에 스티브는 재빨리 토니 스타크에게 코드 스칼렛, 이라고 외칠 수 밖에 없었다.


"브루스!"


토니 스타크는 무엇이 그리 바쁘다고 상당히 허둥지둥 하는 모양새로 배너에게 스마트폰을 건네었다. 그는 비전을 정비하던 손을 멈추고는 순순히 토니가 건네주는 스마트폰을 받았는데, 아무래도 토니의 얼굴이 창백한 것이 분명 큰 일이 터졌기 때문이라 짐작했기 때문이었다. 예상대로 스티브의 목소리는 상당히 낮으면서도 긴장에 떨고 있었다. 곧 로마노프와 완다가 그 쪽으로 갈걸세. 퀸젯을 타고 갔으니 3시간정도면 도착할거야. 그 말에 배너는 급히 자신이 수리하고 있던 비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의 표정에는 도저히 무슨 짓을 저질렀냐는, 경악에 찬 함의가 가득 차 있었다. 비전은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았다. 그는 안드로이드였고 거짓말을 하는 것은 성미에 맞지 않고 필요도 없었다.


"완다 막시모프양을 감청하던 것을 들켰습니다."


순간 유리잔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초록색 액체가 바닥에 퍼져나갔다. 이게 무슨 말도 안되냐는 표정으로 토니가 자신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나 순간 말도 안되는 걸 들은 것 같아, 브루스."

"오, 사실 나도 그래, 앤소니. 미안, 다시 말해봐. 뭘 하던걸 들켰다고?"

"어쩌면 CCTV를 봤던 것도 들켰는지도 모릅니다, 아니 아마 로마노프가 같이라면 그것도 눈치챌 수 있겠군요."

"오, 주니어. 왜 그런 짓을 한거야?"

"물론 완다 막시모프양의 보호와 경호를 위해서입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저런 대사를 날리는 아들 앞에서, 토니와 배너는 헛기침도 내뱉지 못하고 굳어버릴 수 밖에 없었다.

정신을 먼저 차린 것은 토니였다. 더미가 쏟아버린 녹즙을 치운다고 그의 다리를 건드렸기 때문이었다. 그제서야 토니는 재빨리 비전의 검사를 중단하고는 당장 뉴욕으로 돌아가라고 소리쳤다. 그 말에 반박한 것은 배너였다.


"비전이 돌아가면 나는 어떻게 하라고?"

"그게 그쪽이랑 무슨 상관이야? 봐, 원인은 저 녀석에게 있다고. 괜히 여기서 불똥떨어지는걸 고이 맞으라고? 지금 오는건 마녀랑 독거미야, 여기 새로 지은지 얼마 안됐단 말야."

"나타샤를 독거미라고 말하지마. 그리고 그들이 도착했는데 비전이 없다고 하면 너랑 내가 더 불똥을 맞을걸? 더군다나 나는? 나타샤가 날 그냥 두겠냐고?!"

"그럼 마녀아가씨랑 저 안드로이드랑 여기서 싸우게 하겠다고?!"

"최소한 디아더가이가 나와서 부수는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젠장, 지금 내 집에서 이 토니 스타크를 협박하는겁니까, 닥터 브루스 배너?"

"나타샤가 비전은 뉴욕으로 갔으니 다시 돌아가라고 하면 돌아갈 사람으로 보여? 토니, 이러지 말자. 차라리 부서질 거면 한곳만 부서지면 좋잖아? 이대로 비전이 돌아가면 훈련소가 부서질거라고."

"여기 지은지 얼마 안되었다고!"


토니와 배너의 말싸움은 배너의 심박수가 급히 올라갔다는 비전의 말에 일단락되었다. 배너는 그제서야 자신이 미치도록 화를 내며-심지어 눈동자가 녹색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싸웠다는 것을 깨닫고는 정말 땅바닥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부끄러운 심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토니도 까딱하면 다시 집을 무너뜨릴뻔했다는 생각에 아찔해했다.


"제가 어벤져스 훈련소로 돌아가고 그것을 완다와 로마노프에게 알리는 것이 제일 타당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것은 저와 완다의 일이니 저희들끼리 해결하는 것이 맞겠지요."


비전의 말에는 틀린 점이 하나도 없었다. 토니로서는 지은지 얼마 안된 집을 부수지 않아도 되었고 배너 입장에서도 나타샤에게 추궁을 당할 위험은 적어졌다. 비전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더미와 유에게 안부인사를 남겼다. 천정이 열리고 곧바로 뉴욕으로 날아오르려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보호목적으로 감시했다는게 진짜야?"

"네, 저는 완다양을 매우 아끼고 있으니까요."

"오, 그럼 아들아, 내가 한가지를 가르쳐주마."


토니는 긴장이 풀려서인지는 몰라도 자랑스레 가슴을 내밀고는 당당한 목소리로, 마치 아버지가 아들에게 훈계하듯 말했다.


"지금 네가 한게 변명이라는 거야."

"네?"

"좋아, 마녀아가씨랑 미스 로마노프에게는 내가 연락하도록 하지. 행운을 빌게, 아무리 마녀아가씨가 강하다 하더라도 설마 조각을 내겠어?"


토니는 프라이데이를 통해 퀸젯에 연락을 보내면서 턱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그 모습에 비전은 잘 있으라는 상투적인 인사를 보낸 뒤 천창 너머로 사라졌다. 메세지를 전송하고서도 배너와 토니는 비전이 사라진 자리를 보고 있었다.




▒ ▒ ▒




비전이 완다 마시모프의 숙소 문을 두드린 것은 그가 말리부를 떠난지 정확히 4시간 뒤였다. 노크소리가 채 멎기도 전에 자물쇠가 열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어느새 옷을 갈아입었는지 평상복 차림을 하고 있던 완다는 얼굴을 잔뜩 굳힌채, 언제나처럼 하던 잘 다녀왔냐는 이야기도 하지 않은 채 거실로 들어갔다. 비전은 아무 말도 아무 움직임도 보이지 않은 채, 열린 문을 붙잡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는 완다의 인사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그걸 알아챈 쪽도 쉽사리 말해줄 생각은 없었지만.


"완다."


결국 비전은 자신이 먼저 말을 걸기로 했다. 이 이상 시간을 끌어봤자 오히려 상황이 나빠지리라 본 것이다. 관계를 개선시키려면 자신은 저기 서 있는 여자를 향해서 사과를 하면 된다. 자신의 행위를 설명하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다. 변명으로 보일 수 있는 이유는 되도록이면 대지 않는 것이 올바른 사과 방법이란 것을 비전은 알고 있었다.


"그 일은 죄송합니다. 제가 당신을 감시한 일 말입니다. 그것은 누구의 명령도 아니었고 정보는 오롯이 저만이 갖고 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완다는 비전을 등지고 서 있었다. 꽉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으로 보아 화가 나도 단단히 난 모양이었다. 으드득 하고 이를 가는 소리가 났다.


"당신이 화를 내는 이유는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저에게 공격을 가해도 좋습니다, 완다에게는 그만큼 화가 날만한 일이니까요."

"...알면서도 그런거야? 알면서도 그런 짓을 했다고?"


목소리는 가라앉아있었지만 속에 어려있는 분노만큼은 비전이라도 충분히 읽어낼 수 있었다. 여기서 한마디라도 변명을 내뱉으면 진짜 관계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전은 속으로는 자신의 그 '이유'를 완다가 알아챘을까 궁금해했다. 그 이유를 알고서 저리 분노하는것인지의 여부도.


"넌 나를 어떻게 보고 있어?"

"당신은 어벤져스의 멤버인 완다 막시모프입니다."

"그렇게만 보고 있었어?"


물론 그것은 표면적인 인식이었다. 그는 이미 완다를 동료 이상, 더 나아가 친한 친구 이상으로까지 보고 있었으니까. 그는 완다 막시모프를 사랑하고 있었다. 둘은 서로에게 자신의 마음을 공유했다. 애틋함이 간절함으로 번져나가는 시점에 이르고 있었고 실제로 마음을 담은 선물까지 교환했었다. 그는 아직도 제 심장 한켠에서 심장박동처럼 똑딱거리는 회중시계속 완다의 머리카락을 간직하고 있었고, 완다또한 비전의 심장조각으로 만든 목걸이를 단 한순간도 제 품에서 떼어놓은 적이 없었다. 서로가 서로를 원한다는 것을 상대방도 잘 알고 있는 상황에서, 비전의 대답은 어쩐지 거리를 두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완다, 나는-"

"네가 뭐때문에 그런 짓을 했는지 대충은 알겠어. 내가 걱정되었겠지, 내가 봐도 위태로웠으니. 하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 보호받아야할 어린애가 아냐."

"나는 그렇게 생각한 적 없습니다."


사실과 다르다. 비전의 최우선 보호대상은 그녀였으니까. 하지만 비전은 애써 자기 자신을 속여가며 그 답을 부정했다. 이 상황에서 그걸 인정해버리면 그녀와의 관계가 망가질 것 같다는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 대답을 들은 완다는 코웃음을 치고는 몸을 돌렸다. 어느새 손엔 비전이 그녀에게 주었던 목걸이가 들려있었다.


"너도 거짓말을 할 줄 아는구나?"


어쩐지 슬퍼보이는 미소였다. 그제서야 비전은 자신이 그녀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깨닫고서는 다시금 미안하다고 말하려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내뱉을 수 없었다. 완다의 눈가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녀를 속였다. 자신의 욕심으로 인해 완다를 속였다는 생각이 그의 회로 곳곳을 돌아다녔다.


"날 언제까지 어린애로 볼거야? 날 속이면서까지 뭘 원했던거야? 응? 말해봐."


완다는 조심스레 자신이 들고 있던 목걸이를 비전에게 던졌다. 천천히 던져진 목걸이는 비전의 왼쪽 가슴에 맞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마치 심장이 떨어지는듯한 기분이었다. 비전은 기계적인 동작으로 목걸이를 주웠다. 얼굴을 붉히고 제 볼에 입을 맞추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하지만 지금 제 앞에 있는 완다는 눈물을 흘리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었지만, 그 원인이 자신이었기에 그는 단 한발자국도 그녀를 향해 내딛을 수 없었다.


"미안합니다. 내가 당신을 괴롭게 했습니다."


비전이 건드린 것은 단순히 완다의 사생활만이 아니었다. 그가 건드린 것은 완다 막시모프를 피에트로의 부재에서 견디게 해주었던 자존심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비전'이 건드렸다는 점에서 그녀는 큰 수치심을 느꼈다.

완다는 그 말에 눈은 자뜩 찌푸린 것과는 반대되는 미소를 짓고서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곧바로 침실로 들어갔다. 문이 쾅, 하고 크게 닫히는 소리에 비전은 제 손안에 들려져있는 목걸이를 보았다. 자신의 심장조각에는 아직도 완다의 온기가 남아있어, 그는 그 자리에서 도저히 움직일 수 없었다.







싸우는 둘로.

*Orange로 이어집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