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ANDALIEN
비전완다 _ 당신의 알테어 나의 베가 그의 다비흐 본문
"Где је лето троугао?"
갈색머리를 질끈 높게 묶은 떨아이가 제 어머니에게 그렇게 물었다. 그 말에 아들에게 별자리 책을 보여주던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으며 레이저로 하늘 저편을 가리켰다.
"Погледајте! То је Алтаир."
아버지의 레이저가 닿은 밤하늘 옆에는 작은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것을 보더니 아들의 눈이 반짝반짝거리더니, 마치 그것을 잡으려는 듯 손을 뻗어 쥐려고 하였다. 그 모습을 보며 여자아이는 뭐하는 짓이냐고 웃었고 옆에 서 있던 어머니마저 웃음을 흘겼다.
"Али погледај звезде! Желим да имам једну."
아들은 마치 항변하려는 듯이 다시금 별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조그만 손가락 사이로 은하수가 펼쳐졌다.
▒ ▒ ▒
"아얏!"
완다 막시모프는 제 머리를 붙잡으며 바닥에서 일어났다. 꿈속에서 무엇을 보았는지는 몰라도 저도 모르게 손을 뻗다 침대 바깥으로 넘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헝클어진 머리를 대충 그러쥐어 묶고나서야 침대에 앉을 수 있었다. 시침은 5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이렇게나 일찍 일어난 적은 어벤져스 훈련소에 와서 처음있는 일이었다.
다시 잠에 들려고 했지만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일단 아침부터 먹고자 냉장고 문을 열었다. 하지만 그녀는 며칠전 출장을 앞두고 냉장고 정리를 했던 것을 그동안 까먹은 참이라, 덕분에 생수와 주스 몇병만이 그녀를 반기는 냉장실을 보고 그대로 문을 닫아버릴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공용주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직 5시도 되지 않은 훈련소 내부는 형광등마저 꺼져 있어 상당히 을씨년스러웠고 태양은 어딜갔다 이제야 오는지 느릿느릿하게 동쪽 밤하늘 한켠을 밝히고 있었다. 주방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여니 습하면서도 차가운 새벽공기가 그녀의 폐부를 지나갔다.
완다는 냉동실을 뒤지며 감자튀김이라느니 프라이드 칩스같은 냉동식품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보이는 것이라고는 헬렌과 동료들이 먹곤 하던 쌀밥들뿐이었다. 기름진게 먹고싶어, 아프리카에서의 소탕작전은 그야말로 극한 체험이었기 때문에, 딱딱한 전투식량만으로 끼니를 이어가야 했다.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싱싱한 야채가 아니라 기름진 음식이었다. 베이컨! 완다는 급히 베이컨을 찾아 냉장실 문을 열었다.
"베이컨은 왼쪽 하부칸에 있습니다."
갑작스런 목소리에 완다는 고개를 뒤로 돌려 갑작스런 손님을 확인하였다. 헬렌이 볼때마다 고구마가 먹고싶어진다고 우스갯소리로 말하곤 하였던 자줏빛 얼굴이 그나마 밝은 조명아래 빛나고 있었다. 완다는 냉장실 손잡이에서 손을 떼고는 그대로 비전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리고 비전이 무어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의 자줏빛 뺨에 입술을 맞추었다.
"그동안 잘 지냈어?"
완다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 모습을 천천히 바라보던 비전의 입가에도 은은한 미소가 지어졌다.
"잘 다녀오셨나요, 완다? 일이 상당히 고되었다고 들었습니다만, 오늘은 정말 일찍 일어났군요."
비전은 조심스레 완다의 입에 입술을 맞추었다. 일주일만에 만나는 연인의 달콤한 키스였다.
행여나 완다의 소중한 손이 다칠새라 비전은 능숙히 프라이팬에 핫케익 반죽을 부어넣고서는 다른 후라이팬에 그녀가 그렇게나 바랬던 베이컨을 굽기 시작했다. 베이컨냄새가 주방에 퍼지자마자 완다는 침을 삼키며 비전에게 계란과 함께 접시 두개를 건네었다. 비전은 능숙히 계란을 구웠고, 완다는 테이블에 두개씩 스푼과 포크, 나이프를 세팅했다. 연인과의 아침식사라니, 일주일만에 맛보는 식사중에서도 가장 완벽한 식사임이 틀림없었다.
과연, 바삭한 베이컨과 달콤한 핫케이크, 베이컨기름을 듬뿍 머금은 반숙계란은 그야말로 환상이었고, 기름을 원하던 그녀의 위장에도 상당한 위로가 되었다. 완다는 급히 음식물들을 제 위속으로 집어넣기 시작했다. 비전도 완다의 속도에 맞추어 식사를 진행했다.
"잘 먹었어, 정말 비전은 못하는게 없어."
"그저 레시피대로 한 것 뿐입니다, 과한 칭찬이에요. 하지만 완다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저도 기쁩니다."
비전은 어느새 설거지마저 순식간에 해치우고서는 연인에게 오렌지주스를 건네었다.
"무사히 다녀오셨군요."
"내 걱정 많이 했어?"
"전 항상 완다를 믿습니다."
"빈말하기는."
말은 그렇게해도 완다는 지금 매우 기쁨에 잠겨 있었다. 마치 꿀로 만든 매트리스에 누워있는 달콤함이 그녀를 둘러싸고 있었다. 오랜만의 제대로 된 식사는 그야말로 완벽했고, 연인은 변함없는 모습으로 자신을 반겨주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아직 의자의 앉아있던 비전을 뒤에서 껴안았다. 그의 살짝 비린 체취도 그녀에게는 마치 장미향수를 뿌린 것 같았다. 완다는 비전의 귓가에-만약 귀라는 것이 있다면- 아침에 일어났던 일들을 나지막히 이야기하였다.
"손을 뻗다가 침대에서 넘어졌다고요?"
"혹이 생기지 않은게 그나마 다행이야."
그러고는 비전의 민둥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었다. 최근 비전이 좋아하던 스킨쉽 중 하나였다.
"도대체 무슨 꿈이었는지는 몰라도, 슬프면서도 너무 아름다웠어. 무언가 반짝이는걸 본것도 같았는데...."
완다는 입을 다물고는 다시금 아침에 꾸었던 꿈을 떠올렸다. 기억나는거라고는 반짝이는 것을 향해 작은 손을 뻗은 것 뿐, 그 이전의 일들은 도저히 기억나지 않았다. 괜시리 손을 뻗어 몇번 쥐었다 폈다 할 뿐이었다.
"흐음..."
"그러고보니 오전에 일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응. 다녀온걸로 회의할거라서.... 이번에는 몇시간 걸릴지 내기할래? 적어도 저녁전까지는 안 끝날것 같은데."
아프리카에서 얻은 것은 하이드라의 또다른 촉수의 행방이었다. 그것을 제 눈으로 확인하자마자 캡틴 아메리카와 블랙 위도우는 퀸젯으로 귀환중에도 계속해서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후방을 도왔던 완다로서는 둘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아무래도 하이드라 소탕에 있어서는 중요한 이야기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전에도 몇번 그런 일이 있었다. 그리고 그럴때마다 임무완료 다음날의 회의는 꽤나 장시간동안 이어지기 마련이었다. 아마 오늘 있을 회의도 마찬가지겠지, 장시간 이어지는 회의를 상상만 해도 완다는 머리가 아파왔다.
"그럼 저녁 이후에는 시간이 있다는 말이군요."
"응. 양심이 있다면 그 전에는 끝내주겠지."
"그렇다면 완다. 밤하늘을 보러가지 않겠습니까?"
▒ ▒ ▒
회의는 예상을 벗어나 저녁식사를 치를 6시를 넘어 8시까지 이어졌다. 그냥저냥한 피자를 점심 저녁 연속으로 먹으니, 기름있는 음식을 좋아한다던 완다의 속도 그다지 편한 상태는 아니었다. 그걸 알고 있는지 아니면 모르는지, 마당으로 나오라는 비전의 말에 나가보니 그는 어느새 정장까지 차려입은 채 반쪽밖에 없는 달을 등지고 서 있었다.
"어디로 가려고 그렇게 차려입은거야?"
완다의 복장은 그야말로 편한 트레이닝 복장이었다. 감색 반팔티셔츠에 무릎까지 내려오는, 그 나이대에는 어울리지 않는 펑퍼짐한 차림이었다. 머리또한 동그랗게 말아 위에 올려놓은 채였고, 화장도 제대로 한 상태가 아니었다. 둘 사이의 복장은 상당히 차이가 나 있었고, 얼른 갈아입고 오겠다며 숙소로 돌아가려던 완다를 붙잡은 것은 비전이었다.
"괜찮습니다, 남들의 눈은 신경쓸 필요는 없습니다."
비전은 완다의 손을 슬며시 잡다가, 갑자기 그녀의 어깨와 다리 아래를 붙잡았다. 졸지에 공주님포옹 자세를 취하게 된 완다는 부끄러워하며 무슨 짓이냐며 소리쳤다. 비전은 고개를 조그맣게 젓고서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당신은 데이트 신청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모양이군요."
그 말에 완다는 얼굴을 붉힌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는 비전의 품으로 얼굴을 묻었다. 그 모습도 귀여워 비전은 싱긋 미소를 지어 올렸다.
비전이 완다를 데리고 온 곳은 불빛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서부의 어느 언덕 위였다. 완다는 비전이 내려줄때까지 이 컴컴한 곳에서 무슨 생각이냐며 투덜거렸다.
"뉴욕에서는 보이지 않는다고 당신이 말했잖습니까. 위를 봐주세요, 완다."
완다는 투덜거리다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올려 비전이 가리키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
반짝이는 은빛 물결들이 순간 그녀의 눈동자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완다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지만, 그 입을 통해 소리가 나오는 일은 없었다. 당장에라도 빠져들것만 같은 반짝임의 향연속, 마치 작은 다이아몬드 수억개를 밤하늘에 그대로 쏟아버린 것만 광경이었다. 큰별 작은별 구분없이 저마다의 미모를 뽐내고 있었고, 그 중앙에는 마치 은발같은 반짝이는 강이 지나가고 있었다. 은하의 강 옆에는 북극성이 위풍당당하게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북극성 옆에는 익숙한 별자리가 눈에 띄었다. 저건 큰곰자리야, 그리스에는 제우스라는 신이 살고 있었는데, 칼리스토라는 요정을 사랑하게 되었어. 마치 꿈결에 듣는 것 같던, 들을때마다 포근해지는 낮고 굵은 목소리가 귓가에 어렸다.
"Где је лето троугао?"
완다는 저도 모르게 내뱉은 말에 당황했다. 비전의 앞에서는 아주 가끔씩 내뱉곤 했지만 갑작스레 소코비아어가 터져나오다니, 하지만 비전은 익숙하다는 듯 완다의 손을 잡고는 은하수 오른편에서 강하게 제 존재감을 발산하던 별을 가리켰다.
"베가입니다. 거문고자리의 알파성이죠. 태양계로부터는 약 25광년에 위치하고 있으며 겉보기등급에 따라 5번쨰로 밝은 별입니다. 청백색으로 빛나고, 1만 2000여년 전에는 저 별이 북극성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이번에는 베가보다는 위에 있고 은하수 중앙에서 헤엄쳐다니던 별을 가리켰다.
"데네브, 백조자리의 알파성입니다. 백조자리의 꼬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뜻도 새의 꼬리란 뜻이죠. 태양계로부터 3200광년 떨어져있고 흰색의 밝은 별입니다."
마지막으로 왼편에서 반짝이던 별을 가리켰다. 완다는 그 별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꿈속에서 그리운 목소리가 레이져로 가리켰던 별이었다.
"알테어."
"맞습니다, 알타이르라고도 하죠. 독수리자리의 알파성입니다. 태양계로부터는 16광년정도 떨어져있고 흰색의 휘성입니다. 각 자리에서 가장 빛나는 별들을 일컬어서 여름의 대삼각형이라고 합니다."
"나, 옛날에 본 적이 있어. 아빠차를 타고 천문대까지 갔는데 문이 닫혀있어서, 그래서 그냥 별들을 봐야했어."
비전은 조심스레 완다를 뒤에서 껴안았다. 비전의 품속에서 완다는 알테어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는 마치 갈퀴처럼 별들을 쓸어담으려듯 몇번이고 주먹을 쥐었다 폈다 했다. 손에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더운 밤공기가 손가락 사이를 지나다닐 뿐이었다. 어린 아이가 환히 웃으면서 하나정도는 가질 수 없는거 아니냐, 라고 하자 자신와 어머니가 웃는 장면이 떠올랐다.
"피에트로."
피에트로란 말에 순간 비전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물론 뉴욕에서는 별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한 것은 피에트로 막시모프의 무덤 앞이었지만, 그래도 연인끼리 즐거운 순간에 그의 이름이 튀어나올줄은 몰랐다는 반응이었다. 그는 더욱 깊이 완다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매번 머리에 바르는 장미향유와 달콤한 체취가 그의 후각세포를 자극했다.
"피에트로는 별들을 갖고 싶다고 했어. 하나라도 갖고 싶다면서... 바보같이 아무것도 잡지 못했지만."
완다는 뻗은 손을 거둬 자신의 몸을 안고 있는 팔을 잡고서는 고개를 숙였다. 비전은 안드로이드 주제에 피에트로가 대화에 나오면 유독 침묵을 고수하곤 하였다. 맥박조차 느껴지지 않는 몸의 체온을 느끼며 완다는 바보같다고 중얼거렸다. 그 말에 비전은 나지막히 연인의 귓가에 자신이 오늘을 택한 이유를 속삭였다.
"오늘은 음력으로 칠월 칠석, 노동을 등한시하여 왕의 분노를 사 헤어진 부부가 만나는 날이라고 합니다. 베가가 아내, 알테르가 남편이고 중간의 데네브는 둘을 이어주는 까마귀와 까치라고 하죠."
"까마귀?"
"네. 둘은 은하수에 가로막혀 서로를 만날 수 없었지만 딱 오늘 하루, 오늘 하루만큼은 까마귀와 까치의 도움으로 만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둘이 다리를 놓아주었죠. 그래서 남편과 아내는 까마귀와 까치의 머리를 밟아서 다리 한가운데에서 만났다고 합니다."
완다는 그 말에 킥킥거리며 작게 웃음을 흘겼다. 연인은 그녀를 더욱 더 세게 품을 안았다. 답답해, 완다가 작게 속삭였다.
"그럼 내가 베가고 비전은 알테어야? 딱 커플로 대입하면 그렇지 않아?"
그 말에 비전은 미소를 짓고서는 완다의 어깨에 입술을 눌렀다. 완다는 더욱 키득거리며 이상한 이야기라며 말하였다. 사랑하는데 일년에 하루밖에 보지 못한다니, 원하기만 한다면 도망이라도 치면 될텐데 말이다, 라면서.
"....만약에 내가 베가처럼 멀리, 1년에 한번밖에 만나지 못하는 곳에 가게 된다면 어떻게 할거야?"
그 말에 비전은 쪽 소리를 내며 어깨에 키스한 뒤 그녀를 품에서 놓아주었다. 간신히 자유로워진 완다는 다시금 암청색 하늘속에서 흘러다니는 은하수에 시선을 옮겼다.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아니 사실 대답이야 상당히 뻔한 것이었다. 방금 전 연인이 말한대로 도망이라도 치면 될테니까. 그걸 알아차렸는지 그녀도 별다른 대답을 요구하진 않았다. 서늘한 바람이 그녀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반밖에 떠 있지 않은 달빛과 무수히 많은 별빛더미 아래에서 완다는 연인을 향해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바보. 아냐, 고마워. 정말로 고마워."
완다는 비전의 손을 이끌어 다시금 여름의 대삼각형을 찾았다. 베가, 알테어, 데네브. 완다는 다시금 되뇌었다. Вега, Алтаир, Денеб. 마치 어린시절, 그 때로 되돌아간마냥 그녀는 다시금 이름들을 불렀다.
7월 7석 특집. 다비흐는 옛날의 견우성으로 현재는 알테어로 견우성의 입지가 옮겨갔죠. 그나저나 용두사미는 어떻게든 해결해야할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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