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ANDALIEN

비전완다 _ Orange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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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완다 _ Orange

rabbitvaseline 2015. 8. 23. 21:52



* Yellow에서 이어집니다.








비전이 알고 있기로 인간의 심장박동은 평균 분당 70~80회였다. 무릇 살아있는 생명체라면 존재한다는 생명의 정수는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피를 온 몸에 전달해주는 역할을 맡았다. 어떤 사람의 심박수는 제어하기도 힘들 정도로 빨랐고, 죽어가는 사람의 심박수는 너무나도 느려서 꼭 시체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그에 비하자면, 아마 심장이라 부를만한 기관도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 이 안드로이드의 심박수는 언제나 일정했다. 똑딱똑딱, 정확히 1분에 60번 진동하는 심장에서는 초침이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심장을 꺼내어 초침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마치 심장을 파내는 듯한 통증, 이라고 몇년 전 완다 막시모프가 자신에게 말해주었을 때 차마 이해하지도 못했던 그 말을, 그는 지금 너무나도 통감하고 있었다. 웃으며 자신을 올려다보던 눈동자가 증오와 경멸, 수치심으로 물들었을 때, 비전의 머릿속에서는 이 상황을 타개할만한 방법을 조립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어느 방법도 결국 결과는 그녀가 화를 낸다는 최악의 결과밖에 없었다. 어째서일까? 그는 초침소리에 청각을 기울이며 트러블의 원인을 곰곰이 생각해보았지만 커다란 무언가에 가로막혀 더이상 생각이 진행되지 않았다. 단순히 보호받는다는 그 사실만 싫었던 것은 아닐거라고, 여태껏 그녀를 바라보았던 과거의 자신이 판단하고 있었다. 그럼 어디서? 어디서부터 잘못되었고, 과연 이 상황을 어떻게 벗어나야하지? 어떻게하면 완다가 자신을 향해 웃어줄 수 있는 거지? 과열되기 직전까지 계속해서 뇌를 가동시켰지만, 결국 그 시계를 바라보고 있는 동안에는 얻을 수 있는 답이 아니었다.




"싸웠어?"

훈련을 마치고 검사를 맡았던 헬렌 조가 그런 이야기를 꺼낸 것은 단순히 평소에는 붙어다녔던 둘이 서로 말도 안나누면서 멀리 떨어져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우스갯소리로 비전의 엄마라면서 남들에게 말하곤 하였는데, 빈말은 아니었던지 자신이 관여한 인공물에 대해 다른 사람보다는 변화를 알아차리는 것이 빨랐다. 미묘한 근육운동의 지연, 뇌파의 끊김, 토니를 만나고나서부터 시작한 호흡운동의 변화 등을 토대로, 그녀는 나름 비전이 동요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헬렌의 대답에 비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순순히 완다를 감청한 것을 들켰고, 그로 인해 그녀가 심히 상처를 받았으며 관계가 돌이키기 힘들 정도로 악화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는 애써 표정을 유지하려고 하였지만 슬프다못해 곧 울것만 같은, 버림받은 강아지같은 표정은 감출 수 없었다.

"네가 잘못했네. 사과는?"
"했지만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녀는 제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이유는?"

헬렌은 등을 돌려 비전의 신체검사자료에 이상없음, 이라고 휘갈겼다.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핑계도 좋네. 남녀관계에서 그것만큼 좋은 핑계거리도 없으니까."
"완다도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만, 제가 말한 것에 다른 의견이 있습니까?"

그 말에 헬렌은 비전과 시선을 맞추었다. 그의 렌즈로 구성된 눈동자가 빠르게 수축되다 확장되었다. 그녀는 코웃음을 내뱉었다.

"상식적으로 누군가를 감시하고 감청하는 것의 이유를 보호라고 말하는 사람은 드물걸. 내가 핑계라고 말한건 그런 의미야. 너의 행동은 임무수행시에만 이뤄진건 아니지? 아마 CCTV나 핸드폰, 노트북 같이 네가 이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통해서 평상시의 완다를 봤을 가능성이 커."
"맞습니다, 그녀가 선호하는 것들을 알기 위해서였죠."
"보통 사람들은 그런걸 '감시'라고 불러."
"저는 그녀를 감시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 말에 헬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주위에 널려있는 보통의 연인이라면 아마 자신의 말을 듣고 조금은 생각을 해볼 터였다. 질투심은 연인관계에서는 흔한 감정이었고, 의심으로 인한 감시,는 그 흔한 질투심에서 생겨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비전은 달랐다. 그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 그에게는 완다를 의심할만한 이유는 없는 것 같았다. 비전은 헬렌의 말에 뜸을 들이지 않고 곧바로 대답했다.

"제가 그녀에게 가지는 감정은 상당히 순수하고 정제되지 않은 감정입니다. 헬렌이 말하는 말의 의미는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완다와 저는 서로를 구속할만한 이유가 없습니다."
"넌 정말로 믿는거야? 그 아이의 마음도 마찬가지란걸?"
"네."

비전은 확답했다.

"완다양 또한 저와 마찬가지일겁니다."


 


검진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목에 완다와 나타샤가 서서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타샤는 그에게 인사를 했고, 완다는 그저 고개를 돌리고 그의 시선을 회피할 뿐이었다. 그는 나름대로 정중한 인사를 하였지만, 여전히 똑딱거리는 심장 한켠이 아리는 것 같았다.


 


"너무 오래가는거 아냐?"

그 말에 완다는 고개를 들어 도저히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나타샤를 올려다보았다. 나타샤는 어쩐지 힘이 없어보이는 비전의 뒷모습을 훑어본 뒤 다시 입을 열었다.

"벌써 3주째야, 너네들. 물론 너희들 관계에 대해서 되도록이면 신경쓰고 싶지 않았지만, 팀의 사기도 좀 생각해줘."
"임무나 훈련할 때에는 확실히 말하고 있어요."
"그게 정상적인 관계라고 생각하는건 아니지?"

그 말에 완다는 아니라며 말을 아꼈다. 비전에게 홧김에 목걸이를 던진지 벌써 3주가 넘었다. 그동안 그들은 공적인 자리에서는 상대방의 의견을 나누었지만 사적인 자리로 옮겨지면 말을 아꼈다. 예전에는 너무 붙어다녀서 오히려 경고를 주어야 할 정도였던 둘이 그런 모습을 보이니 어벤져스 내부에서도 동요가 생겨나곤 했다. 냉전은 일방적이었다. 완다는 사적인 자리에서 비전이 건네는 인사 한마디조차 철저히 무시했다. 하지만 그렇게 비전에게 자신의 분노를 드러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인지 그에 대한 분노만은 줄어들지 않았다.

"...변명만 해요. 나를 몰래서 봤던게 다 날 보호하기 위해서래요, 언니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 말에 나타샤는 고개를 저었다. 보통 연인에 대한 감시라면 의심이 수반되곤 하였으니까. 비전으로선 보호목적이라 하였지만, 사실 완다 막시모프는 그가 신경쓰지 않아도 제 몸만은 잘 간수할 수 있는 전사였고 그렇게 훈련시킨게 바로 비전, 자신이었다. 오히려 비전이 보였던 태도는 '연인'관계에서 한발자국 떨어져있는 무언가였다.

"난 보호만 받는건 싫어요. 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고요, 보호할 대상이라고."
"그건 널 좋아해서 그런걸거야."
"하지만 언니, 언니라면 어떻겠어요? 박사님이 언니를 몰래 감시하는거에요. 난 도저히 모르겠어요, 왜 내가 보호할 대상인지. 가끔씩... 가끔씩 그런 생각이 들어요. 왜 날 그렇게 보는지..."

나타샤는 완다의 말에 100% 공감할 수는 없었지만-오히려 배너가 자신을 감시해준다면 좋아할지도- 그녀의 괴로운 심경은 이해할 수 있었다. 나타샤 자신도 제 몸만은 확실히 지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자란 이유만으로 남자들에게 보호를 받아야 하는, 그야말로 굴욕적인 일을 당한 적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완다의 경우는 무언가 달랐다. 무엇보다도 비전은 남녀가리면서 사람을 대하는 안드로이드는 아니었다.

"남자들은 여자들을 뭐든 약해서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비전의 입장에서는 너나 다른 사람들이나 모든 인간들이 다 약해. 넌 어째서 비전이 널 '보호'해준다고 생각하는거야?"
"...처음부터 제 잘못이었던거에요. 처음부터 그에게 기대지 않았다면...."

완다는 고개를 숙이고 점점 말을 흐렸다. 그 모습에 나타샤가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는 괜찮다고 말했다. 의기소침해서는 더이상 말할 기력도 없다는 듯 입을 다물다가, 간신히 몇마디 말을 내뱉었다.

"...가끔 비전이 피에트로처럼 굴 때가 있어요."

고개를 든 완다의 눈에는 착잡한 심경이 담겨 있었다. 그제서야 나타샤는 둘 사이에 일어났던 일들의 진상을 얼추 파악할 수 있었다. 완다가 그렇게나 화를 냈던 것은 단순히 비전이 자신을 동격이 아닌 보호해야 할, 즉 아래로 봤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태어난지 몇살 되지도 않아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서툰 안드로이드, 평생을 같이 지낼거라 생각했던 쌍둥이, 즉 반쪽을 잃어버린 여자의 관계는 어쩌면 그들이 처음 대화를 나누었을 때부터 잘못 꿰어졌다는, 눈을 반쯤 뜨고 체념한 듯한 여자를 보며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 ▒ 




비전이 완다 막시모프를 소코비아 사태 이후로 다시 만난 것은 어벤져스 타워 내에 따로 마련된 상담실에서였다. 소코비아 사태를 두고 상황은 생각보다는 더욱 나쁘게 흘러갔다. 사람들은 와칸다에서 난동을 피운 헐크를 당장 내놓으라고, 소코비아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라며 스타크 타워 앞에서 계속해서 농성을 벌였다. 스티브 로저스와 나타샤 로마노프, 토니 스타크는 연신 청문회를 방문하며 갖은 질책과 비난을 받았다. 특히 비난의 화살은 울트론을 제작한 것으로 '알려진' 토니 스타크에게 많이 향하여, 그는 언제나 자정을 넘긴 시간이 지나서야 타워로 들어올 수 있었다. 그는 타워에 돌아오면 청문회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털 새도 없이 완다의 상태부터 살폈다. 그만큼 그녀의 상태는 심각했다.

"빈자리를 빨리 채워주었으면 해."

비전에게 그녀를 살펴주라고 일렀던 것도 토니였다. 그는 어벤져스 훈련소가 완공되는 즉시 어벤져스 일에서 손을 떼기로 하였지만, 그동안은 자신이 벌였던 수많은 일들을 갚기라도 할 듯 완다의 후견인을 자처했다. 완다에 대한 여론을 조작한 것도 토니였다. 그는 완다 막시모프가 자신에게 행하였던 정신조작을 페퍼를 비롯한 외부인들에게는 일언반구도 꺼내지 않았다. 울트론은 초능력을 가진 쌍둥이를 '협박'하여 부하로 삼았지만 결국 둘이 울트론에게 빠져나왔다, 라는 어느정도 거짓을 더한 이야기가 전세계에 퍼졌다. 비록 그녀에게 비난과 원망이 향하는 것은 막을 수 없었지만 -브루스 배너를 구하기 위해서는 그 이상 이야기를 조작할 수 없었다.- 어느정도 그 양을 줄일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상반되게 완다의 상태는 좋지 못했다. 그녀의 절반은 대비할 틈도 없이 갑작스레 떨어져나갔고 그 단면은 너무나도 처참했다. 토니는 비전에게 떨어져나간 반쪽의 자리 일부분을 채워줬으면 한다고, 그에게 술을 가르치며 말하였다. 술에 취하지도 않으면서 비전은 위스키를 마시며 그의 제안을 수락했다.

완다는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타워에서 그녀를 처음보았을 때엔 이유모를 호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녀는 남성체로 만들어진 '그'가 보았던 첫번째 여성이었다. 하지만 다시 보았던 그녀는 눈밑이 휑해져서는, 며칠새 잠도 제대로 들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거식증 증세가 동반된다면 상담가는 난색을 표했다. 모든 상황이 그녀를 눌러내리고 있었다. 피에트로 막시모프의 죽음, 소코비아 사태로 인한 수도 노비그라드 인구의 1/10 증발, 와칸다에서 일으킨 헐크의 난동으로 인한 사상자는 가뜩이나 약해진 그녀의 마음을 계속해서 짓누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미스 막시모프. 저는 비전이라고 합니다."
"...안녕."

제대로 먹지 못해 이미 앙상해진 팔은 그녀의 얇은 뼈를 보여주고 있었다. 몇달만 더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쇠약사될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그녀에게 얼마나 피에트로 막시모프가 중요했는지를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는 토니가 말한대로 완다의 빈자리를 채워나갔다. 그리고 그 빈자리의 원래 주인처럼 완다를 돌보기 시작했다.




▒ ▒ 




나타샤로부터 완다의 말을 전해들었을 때엔 천하의 안드로이드도 당황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나타샤는 꽤나 신선한 모습이라고 생각하며 조종간을 앞으로 당겼다. 도저히 박멸될 기세를 보이지 않는 하이드라 잔당의 비밀기지를 소탕하는 작전이었고 나타샤와 비전은 백업을 맡았다. 생각보다 수확이 별로라는 스팁의 말과 함께 작전은 끝났고, 이제 둘이 할 일이라고는 기지에서 열심히 전투를 치룬 전사들을 마중나가는 일이었다. 다행히도 부상멤버는 없다는 말에 안심하며 다시금 머리를 기지쪽으로 향하였다. 퀸젯의 입구가 열린 것은 그들이 약3분전 거리에 도착하기 전이었다. 완다가 아직 귀환포인트에 보이지 않는다는 스티브의 말이 들리자마자였다.

-"난 괜찮아요, 곧 갈게요. 녀석들이 생각보다 끈질겨서요."

완다는 기지 밖에서 대원들을 무력화하는 역할을 맡았다. 역시나 괴물같은 하이드라가 아니랄까, 대원들은 상당한 수를 자랑했고 그녀의 염동력만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그녀는 괜찮다고 말하였지만 계속해서 남자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완다, 도우러 가겠습니다."
-"...알았어."

완다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비전의 말을 수긍했다. 먼저 마중나가겠다는 말을 내뱉은 뒤 비전은 퀸젯 밖으로 몸을 날렸다. 나타샤가 뒤를 돌아 확인했을 때엔 이미 주홍색 망토 끝자락만이 눈에 들어올 따름이었다.




"완다!"

완다는 하늘로 고개를 올렸다. 팔락거리는 망토를 배경으로 자주색과 초록색이 기묘하게 섞인 안드로이드가 천천히 하늘에서 내려왔다. 그녀가 판단하기로 아직 적들은 10여명정도 남았고, 다들 하이드라의 첨단무기로 무장을 한 상태였다. 그녀가 고개를 돌려 비전을 확인하던 와중에도 총을 들고 있던 한명이 완다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었다가 비전의 공격으로 비명도 내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뒤를 조십하십시오."
"충고 알았어."

비전은 완다에게 등을 맡기고는 곧바로 근처지형을 스캔하였다. 그들의 근처에는 총 8명의 적들이 있었고, 그중 7명은 고출력에너지병기를 갖고 있는 것 같았다. 적들의 위치를 확인하자마자 그의 이마에서 빛이 뿜어져나왔다.

"총 8명중 3명이 전투불능입니다. 4시방향에 2명, 12시 방향에 1명, 15시 방향에 2명 있습니다, 완다."
"응."

완다는 비전이 말한 방향을 향해 손가락을 구부렸다. 붉은색 선이 그녀의 손과 몸주위에서 퍼져나가다니 손가락이 향한 방향으로 급속도로 내달렸다. 붉은 선에 홀린 남자 두명이 맨 손을 내보이며 팔을 들고 걸어오더니 이내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비전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빔공격을 망토로 막은 뒤, 공격을 퍼부은 인간을 한손으로 들어올리다 바닥으로 내쳤다.

"완다."
"응?"

완다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총알을 염동력으로 튕긴 뒤, 총을 쏜 장본인을 들어올렸다가 바닥으로 떨구었다. 공격을 받은 남자는 짧은 비명 한번 지르고 기절했다. 남자가 전투불능사태에 빠진 것을 확인한 완다는 다시금 비전을 쳐다보았다. 그는 전투중에 보이는 냉철한 전사가 아닌, 그저 그녀앞에서 사랑을 갈구하던 남자의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항상 전투중에는 사적인 일은 피하던 그가, 지금은 어쩐지 완다에게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 때, 내가 뭐라고 대답하면 되었던 겁니까?"

비전이 말을 꺼냄과 동시에 그의 망토가 사선으로 잘렸다. 그리고 망토가 땅에 떨어지자마자 붉은색 선이 빠른 속도로 비전의 곁을 스치고 지나가 나무에 꽂혔다.

"끄어억-!!"

완다의 손끝이 기묘하게 구부러졌다 퍼졌다. 비전은 자신의 등 뒤에서 누군가가 옆구리와 늑골이 뜯긴채 땅에 쓰러졌음을 알아차리고는 급히 완다의 눈을 가렸다. 하지만 완다의 몸은 비전의 심장박동보다도 더 빨리 떨리고 있었다.




스티브 로저스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그는 오늘 일어난 사태에 대해 분노와 놀라움을 멈출 수 없었다. 기지에서 이어링으로 들려오는 비전의 말이 이상하다고 느끼자마자 비전으로부터 전언이 도착했다. 상황종료, 7명 생포, 1명 사살. 완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완다는 비전의 부축을 받고 곧바로 기지로 귀환했고, 나타샤는 완다를 상담실에 억지로 집어넣었다. 그녀가 초능력으로 행한 첫 살인은 성인 남자의 옆구리를 마치 거대한 힘을 가진 무언가가 쥐어뜯은것 같은 상흔을 남겼다. 남자의 사인은 장기손상및 외상으로 인한 과다출혈이었다.  결국 완다를 제외한 나머지 인원만으로 간단히 브리핑을 하고나서 스티브는 비전을 자신의 사무실에 불러들었다. 스티브 로저스라는 인간은 철저히 군인으로 살아온 남자였다. 그 덕분에서인지 그가 비전에게 짧은 말만 내뱉었다. 적당한 사담은 괜찮으나 상대방을 건드리는 말은 하지 말것, 그리고 지금 완다와의 관계를 어떻게든 회복하라는 명령이었다.

그가 스티브의 사무실에서 나왔을 때엔 이미 날짜는 다음날로 바뀌어있었다. 사무실에서 그가 머무는 숙소까지 가는 길목에 있던 등이란 등이 다 꺼져있어, 결국 그는 달빛을 조명삼아 숙소로 향해야했다. 그는 일부러 천천히 걸어가며 현재 완다의 상태를 찾아보았다. 그녀는 억지로 상담을 마치고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 듯 했다. 숙소의 불이 그가 스티브의 사무실에서 나오기 전에 꺼진 것을 보면, 평소와 달리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고도 볼 수 있었다. 그는 오늘 있었던 사건을 떠올렸다. 확실히 완다에게 그 말을 꺼낸 것은 자신의 크나큰 실책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그 순간에 말을 꺼내고 싶을만큼 그는 대답이 궁금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제 품에서 계속해서 심호흡을 내뱉던 그녀를 떠올렸다. 괜찮은걸까, 기지에 도착하자마자 그녀는 비전의 품에서 달아났다. 회의에 참석한 나타샤의 말로는 생각보다 상태는 괜찮아보이지만, 당분간 훈련이나 임무에는 참석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완다.

그는 조심스레 완다의 이름을 소리내지 않고 말했다. 피에트로처럼 굴 때가 있다니, 그것은 그에게 당연한 일이었다. 토니 스타크가 그에게 맡긴 것은 완다의 빈자리를 채워달라는 것이었고, 그 빈자리의 원래 주인은 그녀의 쌍둥이 형제인 피에트로 막시모프였다. 그 빈자리를 채우려고 몇달의 시간을 그녀만 바라보았던가, 그녀가 자신을 향해 웃어주는 날이 오기까지를 얼마나 바라면서 그녀를 돌봤던가. 그는 그녀가 웃을 수만 있다면, 자신은 얼마던지 피에트로의 대용품이 되어도 좋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제와서 그런 반응이라니. 심장이 떨어져나갈듯이 아팠던 그 날, 완다는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냐며 물었고 비전은 상투적으로 동료로 여기고 있다고 말하였다. 그것은 단순히 표면적인 인식의 차원에서 나온 대답이었다. 그런 그녀는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길래, 피에트로처럼 대한다는 말을 하였는지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도 자신을 사랑하고 있을 것이 분명할텐데, 어째서.


정말 놀랍게도 비전은 자신의 숙소에 도착할때까지 그런 상념들을 머릿속에서 계속해서 교환해나갔다. 하지만 도저히 답은 나오지 않았다. 비전은 그가 사랑하는 여인의 의중을 알 수 없었다. 그것을 능숙히 알기에는 그는 사람간의 관계에 대한 경험이 부족했다. 숙소의 현관문에 도달했을 때, 그는 순간 움직임을 멈추고 주위를 돌아보았다. 너무나도 익숙하여 언제든지 떠올릴 수 있는 장미향유의 향기가 문 앞에 진하게 어려있었다. 그는 재빨리 손잡이를 만져보았다. 식어가고 있었지만 온기가 느껴졌다. 조심스레 손잡이를 돌렸더니 분명히 나갈때까지만해도 잠겨져있을 문이 쉽게 열렸다.   


현관문을 열고 거실로 들어섰을 때, 분명 굳게 닫혀져있을 커튼이 활짝 걷혀있었다. 커다란 창 사이로 달빛이 쏟아져내려왔고, 그 사이로 검은 인영이 서 있었다. 똑딱똑딱, 그의 심장이 규칙적으로 울렸다.





 



* Red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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