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ANDAL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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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방금이라도 날파리가 날아들 것 같은 하얀 조명을 자랑하는 심야의 대형편의점, 미국의 히어로인 캡틴 아메리카 스티브 로저스는 마치 지옥에 발이라도 하나 걸친듯 식은땀을 흘리며 매대 앞에 서 있었다. 행여 누군가 알아볼까 커다란 뿔테안경에 모자까지 깊게 눌러쓴 남자가 눈이 빠지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맹렬히 바라보고 있던 것은 바로 콘돔매대였다. 색색깔의 알록달록한 콘돔이 사랑을 나누려는 연인들에게 자신을 어서 사가라고, 빨리 너의 정욕을 분출하라고 저마다의 기능을 자랑하고 있었다. 어떤 것은 딸기향이 나고 어떤 것은 돌기가 있고, 어떤것은 초박형이라고 또 어떤 것은 너의 매그넘에서 연기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자랑하고 있었다. 몇개를 들어 뒤의 성분표시까지 다 읽어보자, 그의 어찌보면 순박한 청년이라고 할 수 있는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샘과의 내기에서 진 것이 화근이었다. 한번도 콘돔을 사 본적이 없다고 말하자-물론 군용 콘돔은 몇번 받아본 적이 있었지만 사용할 일은 없었다.- 친구는 제 배를 붙잡으며 웃어대다가 이내 어떤 내기를 제안했다.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여자에게 샘이 다가가 전화번호를 딸 수 있을건가, 하는 문제였다. 물론 스티브는 낯선 사람에게 쉽사리 개인정보를 넘겨줄리 없다는 생각에 No,라는 선택지를 골랐다. 하지만 3분 후, 샘이 스마트폰 액정에 띄어진 전화번호를 보여줬을 때 그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할 수 밖에 없었다.
키크고 안경 너머의 얼굴은 잘 생긴데다가 몸도 상당히 좋은 남자가 얼굴을 붉혀가며 콘돔을 바라보는, 보기 드문 광경에 손님 몇이 그를 힐끔거리며 쳐다보았다. 자신을 보는 시선을 눈치챘는지 그는 바로 제 눈앞에 있는, 포도향이 난다는 것을 상자에 어필하고 있는, 보라색 콘돔을 집어들어 바구니에 넣었다, 아니 넣으려 했다.
바구니 바닥에 닿기 전에 누군가의 손이 그 콘돔을 공중에서 가로챘다. 그는 곧바로 고개를 돌려 콘돔을 가로채간 사람을 확인하였다. 풍선껌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낯익은, 몇시간전에도 통화를 나누었던 목소리가 들렸다.
"안되지, 캡틴. 이건 너에게 맞지 않아."
후드를 눌러쓴 붉은 머리의 여자는 그렇게 말하더니 가로챈 콘돔을 자신의 바구니에 넣었다. 이미 그녀의 바구니에는 다양한 콘돔들이 십수여개정도 자리를 잡고 있었다. 순간 스티브의 얼굴에 화악 하고 열이 올랐다.
"그거헌, 아니 그것들은 다 뭔가?"
"뭐긴 뭐야, 당연한 소리잖아. 브루스는 이것들 없이는 옷을 벗기지도 못하게 한단 말야."
나타샤는 혀를 차며 태연하게 몇개의 콘돔을 다시 제 바구니에 집어넣었다. 어버버 거리며 서 있는 순박한 청년의 얼굴을 보고서는 코웃음을 지었다. 이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토니 스타크에게 보여주면, 분명 저번에 만들었다던 로봇의 도면을 순순히 넘길텐데, 라는 생각까지 들었지만, 애석하게도 그녀의 스마트폰은 연인의 방에 있었다.
"그리고 넌 아까 그건 맞지 않아, 정말 콘돔 처음 산다고 대놓고 자랑하는것도 아니고 말이야."
콘돔이라는 말에 스티브는 더욱 얼굴을 붉히고는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나타샤는 낄낄거리면서 매대 구석에서 두어개밖지 남지 않은 것을 집어들었다. 상자의 정면에는 XXL이라고 적혀져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아주 가볍게, 마치 농구공 던지는 마냥 스티브의 바구니에 집어넣었다.
"아까 네가 고른건 일반 사이즈야. 자신의 성기사이즈보다 작은 콘돔을 고를 경우 착용시 당사자에게는 큰 고통을, 피임확률도 낮추지. 네 사이즈를 생각해, 여기 있는 것들이 제대로 감당할 수 있겠냐고."
아마 그녀의 연인이 들었으면 성희롱이라고 타박할만한 말을 태연히 내뱉고는 나타샤는 음료 냉장고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불쌍한, 처음 콘돔을 구매하러 온 사내는 친구의 말에 다시금 얼굴을 붉히며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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