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ANDALIEN

냇배너 _ 삼각형을 그리는 잠버릇 본문

AVGS/HL

냇배너 _ 삼각형을 그리는 잠버릇

rabbitvaseline 2015. 8. 26. 23:50





냇배너의 연성용 문장은 '갑자기 너의 잠버릇이 궁금해졌다.' 입니다.

http://kr.shindanmaker.com/535395








브루스 배너가 짜증섞인 표정으로 잠에서 깬 것은 정확히 새벽 5시 35분이었다. 그는 약 3시간전에 잠에 들었고 일어날때까지 꿈하나 없는 단잠을 꾸고 있었다. 협탁위에 올려져있던 핸드폰에서는 그의 단잠을 깨운, 지겹다면 지겨울 수 있는 'Shoot to thrill'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는 거칠게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토니 스타크의 가증스러운 웃는 얼굴이 액정에 떠 있었다.

"지금 몇신지 시계를 쳐다보고 다시 거시지요."

배너는 퉁명스럽게 그 문장만을 내뱉고는 곧바로 종료버튼을 누르려고 했다. 그의 손가락 끝이 빨간색 동그라미에 닿기 직전이었을 것이다.

-"잠깐, 브루스! 내가 그쪽으로 자료보낼테니까 확인해줘. 저번에 했던 신체검사자료가 이제야 나왔어. 특히 내가 동그라미 친건 꼭 봐야돼!"

어두운 방안, 배너의 앞에 파란색 커다란 창이 띄워졌다. 그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협탁 위에 있던 안경을 제 눈가에 씌우고는 토니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며 문서를 확인했다. 위에 있던 자료들은 이미 전에도 검사한 항목들이라 대충 눈으로 훑어가며 변화치만 확인했다. 

"그다지 달라진건 없는걸."
-"Oh, My pal. 중요한건 내가 동그라미 쳤다고 했잖아."

과연 밑으로 내려보니 토니가 쳤을 것이 분명한 분홍색-어째서냐고 말하려 했지만- 동그라미와 각종 별들이 눈에 보였다. 하지만 배너는 그 동그라미 뒤에 있을 글자를 읽고는 순간 움직이던 손을 멈추었다. 생식능력 관련 항목? 그는 여태껏 저번 검사때 했었던 수상한 검사를 떠올렸다. 분명 그 때 토니는 전립선염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자신에게 전립선검사를 하게 한 적이 있었다. 물론 남자인 그로서는 상당히 굴욕적인 경험이었지만 토니가 걱정스럽다며 커다랗게 눈을 치떴던 터라 어쩔 수 없이 검사를 수락할 수 밖에 없었다. 망할 자식, 입에서 절로 나오는 욕에 수화기 너머로 토니가 혀를 찼다. 

-"캡틴이 말한거 듣지 않았어? 아, 그건 디아더가이로 변해있을때라 그런건가. 어쨌든 한번 자세히 봐, 닥터 헬렌이랑 같이 검토한거야. 아쉽게도 저번과 마찬가지로 정자들은 살아남지 못했어, 물론 정액도 방사능을 띄고 있지만 말야. 중요한건 제일 밑의 항목이야."

배너는 자신의 얼굴이 매우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을 애써 무시하고 밑으로 페이지를 내렸다. '이런' 일을 헬렌과 같이 검토하다니, 그는 며칠 뒤 헬렌을 볼 상황을 상상하며 매우 부끄러워했다. 맨 밑의 항목에서는 '브루스 배너'로서 생식능력, 즉 발기와 사정이 가능한지에 대해서 전문가의 소견이 담겨있었다. 쓰여있는 글씨체를 보건대 분명 헬렌이 아주 열심히 꼼꼼하게 적은 것이 분명했다. 그는 마른세수를 한 뒤, 헬렌과의 약속을 취소할까 하며 글에 시선을 돌렸다.

-"읽고 있어?"
"그래, 아주 잘 읽고 있어, 토니...... 젠장, 이걸 헬렌과 상의한거라고?"
-"그쪽 여왕님이 꽤나 불쌍해보여서 말이야."

닥터 스턴스의 해독제를 맞기 전까지 그는 성행위, 즉 섹스라는 것을 상상도 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의 몸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극렬한 분노를 포함한 심박수를 올릴 수 있는 것, 모두였다. 그리고 그 심박수를 올리는 것중 하나가 연인과 나누는 성행위였다. 그는 그것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베티와 시도했을 때에도 그것때문에 발목이 잡혔으니까. 해독제를 맞고 난 뒤에는 그나마 심박수로 인한 변신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해서 '그것'을 시도한 적은 없었다. 나타샤 로마노프라는, 정말로 다른 남자들이 침을 흘리고 쳐다볼 정도로 섹시한 연인을 두고나서도 마찬가지였다.

"나타샤 이야기는 함부로 꺼내지마, 아... 망할, 망할 토니 스타크!"
-"나를 그렇게나 열심히 불러준다니 기분이 매우 좋군."
"..나타샤와 나는 이런거 없이도 만족하고 있다고..."

그의 얼굴은 정말 홍당무를 넘어 비트가 되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붉어졌다. 성관계를 치루는 데에는 이상이 없어보임. 아주 또박또박하게 적혀진 그 문장에 그는 차마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 다시금 온 몸에 열이 오르는 것 같았다.

-"마지막 글 읽으면 알겠지만 말이야, 헬렌과 내가 보증한거니까 틀림없어, 신부나으리."

토니의 말이 끝나자마자 배너는 종료버튼을 누르고는 다시금 얼굴을 제 손으로 감싼채 고개를 숙였다. 당장에라도 경악의 비명을 지르고 싶은 순간이었다. 헬렌이 얼마나 황홀한 표정으로-그녀는 박사 브루스 배너와는 별개로 그의 몸을 학술적으로 좋아했으니- 마지막 문장을 썼을지 상상까지 갔다. 그는 다시 손을 치워 글의 끄트머리를 읽었다. 애무와 삽입이 가능한 것으로- 그는 고개를 돌리고는 곧바로 화면을 껐다. 파란색 액정이 꺼지자 침대 머리맡에 켜져있던 오렌지색 베드라이트만이 그의 등을 비추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웃으면서 옷을 벗고 있는 연인의 모습이 떠오르자, 그는 결국 비명을 지르며 이불속으로 제 머리를 숨겼다.




▒ ▒ ▒




"무얼 그렇게 정신을 놓고 있어요?"

포크와 나이프를 든채 굳어있던 그를 깨운 것은 맞은 편에 앉아있던 연인의 목소리였다. 약간 짙은 주홍색 머리카락을 높게 끌어올려묶은 그녀의 모습은 여느때보다도 아름다웠다. 녹색 실크드레스가 그녀의 몸매를 부각시키면서도 우아함을 자아냈고 그녀의 목에 걸려진 목걸이마저 그녀의 외모를 찬양하는 것 같았다. 그는 포크와 나이프를 식탁위에 두고서는 심호흡을 연거푸 내뱉었다. 갑작스런 연인의 모습에 나타샤는 당황해하며 포크를 내려놓았다. 그녀는 오랜만에 이루어진 데이트에서 브루스가 보이는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다.

"브루스? 왜 그래요? 어디 안좋아요?"

그녀는 당장에라도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듯 의자를 뒤로 뺐다. 끼익, 거리는 마찰음이 들리자, 배너는 고개를 젓고서는 물을 들이켰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는 다시금 고개를 젓다가 마른세수를 했다. 나타샤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다리에 힘을 준 순간이었다.

"전에....."

배너는 자신의 얼굴이 분명 미친듯이 빨갛게 변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심장박동이 현재 정상수치는 아니라는 것까지. 심장이 미친듯이 뛰어서 마치 숨이 막힐것만 같았다. 브루스, 나타샤가 배너의 변화를 알아차리고는 다시금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그러자 배너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팔을 뻗어서는 나타샤를 만류했지만 여전히 입은 열지 않았다.

"괜찮아요... 그냥... 단지..."

어째서 40줄을 넘기고 이제 50줄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는데도, 어째서 자신이 이렇게 '그 일'에 대해 연인에게 말하는 것이 부끄러운지 배너는 도저히 짐작할 수 없었다. 예전에 베티와 함께 있었을 때는 나름 야한 농담도 나누고 그랬었는데, 어째서인지 나타샤 앞에서는 그런 이야기는 다 부끄럽고 숨기고 싶은 이야기로 바뀌었다. 아니면 당황해하는 건가? 그는 멋쩍은듯 제 입술을 몇번 만지다가 고개를 들었다. 

"...전에 당신이 내 잠버릇이 궁금했다고 했었죠?"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기 힘들었던 그가 꺼낸 말은 예전에 나타샤가 우스갯소리로 내뱉었던 것이었다. 그 때 둘은 키스하는 단계를 지나 같은 침대를 공유하는 단계로까지 나아갔었다. 침대에 누운 배너를 등 뒤에서 안았던 나타샤는 정말 긴장을 풀려는 목적으로 잠버릇이 궁금하다고 말했다. 그녀도 그 때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배너는 딱히 다른 버릇은 없지만, 간혹 주기율표를 소리내어 외운다고 말해 그녀의 웃음을 자아냈었다. 그 이후로 나타샤는 그가 때때로 코를 심하게 곤다는 것과 정말 힘든 연구를 끝내면 안경을 벗지 않고 잠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 배너가 말하고 있는 것은 그런 잠버릇들과는 무언가 방향이 다른 듯 했다. 어물쩡거리는 말투하며 귀엽게 눈을 살짝 내리깔고 얼굴을 저렇게 심하게 붉히는 경우라면...

"...이번에 그걸 확인할 수 있게 되었는데... 아직도 궁금하나요?"

탁, 하는 소리와 함께 테이블 위로 무언가가 나타샤의 손 근처에 떨궈졌다. 나타샤는 고개를 내려 제 손끝에 닿은 것을 확인하였다. 그들이 머물고 있는, 나름 근처에서는 잘 나간다하는 호텔의 카드키였다. 그녀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려고하자 배너는 재빠르게 자신의 손으로 카드키와 그녀의 손을 덮었다. 그의 손은 얼굴과 마찬가지로 붉었으며 식은땀이 삐져나오고 있었다. 그는 여태껏 그녀가 들었던 목소리보다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어때요?"

나타샤는 곧바로 그의 손을 붙잡았다.




최상층 스위트룸의 문이 닫히자마자 나타샤는 배너의 넥타이를 붙잡고 입을 맞추었다. 넘어지듯 신발을 벗자마자 배너도 그녀의 뺨과 목을 껴안고는 키스에 답하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절대로 하지 않을 질척거리는 소리를 내며 배너는 나타샤의 입속을 탐했다. 여린 잇몸과 잇천장을 쓰다듬자 넥타이를 끌어당기는 힘이 더욱 강해졌다. 조심스레 혀를 얽으니 그녀의 입 너머로 차마 나오지 못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녀의 신음소리는 생각보다 달콤했고 상큼한 그녀의 향기를 더욱 더 부각시켜주었다. 나타샤는 배너의 넥타이에 손을 걸어서는 밑으로 내렸다. 그리고는 재빨리 그의 재킷을 벗기고는 조끼의 버튼을 풀기 시작했다. 키스를 나누며 침실로 발걸음을 옮기기전에 그의 진회색 조끼가 바닥에 떨어졌다. 하지만 둘은 개의치않다는 듯, 마치 몇년만에 만난 연인처럼 서로를 탐했다. 

"하아..하.. 잠깐만, 잠깐만요, 나타샤."

그는 잠시 나타샤를 떨어뜨리고서는 숨을 골랐다. 이렇게 상대방을 잡아먹을 것 같은, 정념에 휩싸인 키스는 정말로 오랜만이었다. 그에게 나타샤와 나누는 입맞춤은 언제나 서로의 감정을 나누는 수단, 그 이상으로는 작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정말로 오랜만에 맛보는 뜨거움에 그는 자신의 한계심을 붙잡아야 했다. 

"..지쳐요?"

어느새 나타샤는 자신의 스타킹을 벗어 한쪽에 던져놓은 채였다. 그녀의 치마자랏 밑에서 가터벨트 끈이 흔들렸다. 그는 순간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을 느꼈다.

"조금요."

그가 대답하자마자 나타샤는 배너의 셔츠를 끌어당기고는 재빨리 침실안으로 걸어갔다. 그의 가슴팍에 닿은 그녀의 손가락이 너무나도 뜨거워 그는 다시금 자신의 정신을 다잡을 수 밖에 없었다. 토니와 헬렌의 말로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았지만 만에 하나, 만에 하나라도 이상이 생긴다면 그녀에겐 큰 상처가 남을 것이 분명했다. 침대끝자락에 무릎이 닿아 그 위로 쓰러졌을 때에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그는 자신의 셔츠를 뜯으려던 나타샤를 잠시 말려야 했다.

"...만약에 말이죠... 조금이라도 내 목소리가 변한다던가 아님 내 눈동자에 초록색 기운이 번지면 그 자리에서 멈춰야 해요.... 미안해요, 마지막으로 한지 너무 오래되어서..."

배너는 고개를 약간 젖히고, 마치 처음으로 관계를 가진 소년처럼 다시금 얼굴을 붉히며 작게 속삭였다. 그는 마치 그녀의 손길을 기다린다는 듯 침대의 시트자락을 붙잡고는 벌개진 눈으로 연인을 바라보았다. 나타샤는 순간 제 앞에 무엇이 펼쳐졌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 브루스 배너가, 항상 키스가 진해지기만 해도 밀쳐내던 그 브루스 배너가 순순히 벌개진 눈을 하고는 셔츠는 살짝 풀린채로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는 그 투박하면서도 두꺼운 손으로 시트를 붙잡고 있었다.

"...젠장."

더럽게 섹시하잖아! 차마 내뱉지 못할 절규를 끝내자마자 그녀는 배너의 셔츠 단추에 손을 갖다대었다. 단추를 하나씩 풀때마다 배너는 몸을 움찔거리며 계속해서 그녀로부터 시선을 돌렸다. 두어개 풀었을까, 셔츠 사이로 그녀가 흠모해마지않았던 가슴털이 모습을 드러냈다. 구불거리는 털 몇가닥을 조심스레 손가락으로 쓰다듬자, 그가 울음섞인 목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순간 그녀는 숨이 멈추고는 제 밑에 누워있는 남자를 보았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고개를 돌렸다. 나타샤는 그 어느때보다도 빨리 배너의 남은 단추에 손을 댔다. 


그녀의 가방 안에서 갑자기 커다란 금관악기 소리가 울렸다.

[Who's strong and brave, here to save the American way? Who vows the fight like a man for what's right night and day? Who will-]
"망할 스팽글!"

그녀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빠른 걸음으로 제 가방이 쳐박혀있는 현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신경질적으로 통화버튼을 누르자 여성들이 부르는 유치한 노래가 끊겼다.

"응, 무슨 일이야?"

전화를 받은 목소리에는 방금전까지 정욕에 불타 흥분하였던 여자를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짜증이 약간 섞인 냉철한 목소리로 나타샤는 용건을 물었다. 상대방은 자신이 타이밍을 잘못 맟준 것을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알아차렸으나 생각보다 사단이 급하였다.

-"제모남작에 대한 실마리를 찾았어. 지금 배너와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단건 알고 있지만, 어떻게든 빨리 와줬으면 해."

그녀는 재빨리 침실에 있을 연인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는 어떻게 전화의 내용을 알아차렸는지 몰라도 이이상 나아가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서둘러 자신의 셔츠 단추를 잠그고 있었다. 젠장, 욕지거리를 간신히 참은 뒤, 나타샤는 알았다고 말하였다. 통화가 끝나마자 배너는 복도에 떨어져있던 나타샤의 스타킹을 주워 그녀에게 건넸다. 나타샤는 다시 넥타이를 매는 연인의 모습을 보며 실로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방금까지 제 밑에서 얼굴을 붉히며 잡아먹어달라고 말하였던-물론 어느정도 곡해되어있긴 하였지만- 남자는 이제 아무렇지도 않게 옷을 다 갖춰입으며 구두까지 갈아신고 있었다. 방을 나서 엘리베이터에 올라탈때까지 배너는 나타샤에게 아무 말도 건네지 않았다. 그저 평상시처럼 약간은 사람좋아보이는 미소를 얼굴에 깔고서는 로비가 있을 2층의 버튼을 눌렀다. 

"미안해요."

나타샤는 차마 배너의 얼굴이 보기 무서워 고개를 돌리지 않고 말하였다. 배너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마치 이산화탄소를 풀어넣은 것만 같이 답답한 공기가 엘리베이터를 채웠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안에는 애매한 시간 탓인지 아무도 올라타지 않았다. 6층, 5층, 점점 떨어져가는 숫자를 보며 나타샤는 침을 삼켰다. 그녀는 이제 연인의 얼굴을 보고서 말하려 고개를 돌렸다.

"브루-"

배너는 고개를 돌리진 않았다. 다만 여전히 뜨겁고 축축한 손으로 그녀의 손을 조심스레 잡았을 뿐이었다. 아직 열기가 식지 않은 손의 감촉을 느끼며 나타샤는 고개를 다시 앞으로 돌렸다.




▒ ▒ ▒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스티브 로저스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갔다. 참 안타깝더라니, 하면서 옆에 앉아있던 배너는 애먼 콜라캔을 우그러뜨렸다. 그가 얌전히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동그랗게 말린 캔을 테이블에 올려놓자 토니의 웃음소리가 더 커졌다. 스티브는 어쩐지 그날따라 나타샤가의 살기가 형형했다면서 자신의 잘못을 순전히 인정했다.

"그래도 아쉽겠군, 그 뒤로 곧바로 임무를 맡겼으니. 그래도 오늘은 돌아왔으니 오랜만에 만나는 거겠군."
"그렇찮아도 이제 슬슬 여왕폐하의 처소에 들러야지."

 배너는 정말 보기 드물 정도로 환하게 웃으며 나름 염장이 섞인 말을 내뱉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토니의 부디 여왕님의 잠버릇을 알아내라는 살짝 화를 내며 숙소쪽으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남자 넷-애인경험이 없는 90대 남자, 현재 애인과 같이 살고 있는 40대 남자, 애인이 없지만 곧 만들 예정인 30대 남자, 넷째아이를 노리는 유부남-은 저마다 다양한 표정을 지으며 배너가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보니."

바튼은 셋째의 모습을 동료들에게 보여주다 갑작스레 떠올랐는지 핸드폰의 액정을 끈 뒤에 말했다. 

"저 치도 그런 말을 한다니, 예상도 못했는걸. 잠버릇이라니..."
"뭐, 그런 잠버릇은 실제로 겪어보지 않고는 모르는 거니까."
"냇에게도 특이한 잠버릇은 있어."

바튼은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스푼을 넣던 스티브를 바라보았다. 그 행동에 그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입을 열었다.

"...정말 끝내주는 잠버릇이었지. 나도 처음에 당했을때엔 얼마나 놀랐던지..."

스티브는 마치 옛날을 회상하는 것처럼 고개를 살짝 들고는 먼 곳을 쳐다보았다. 그에게는 정말로 잊혀지지 않을 기억으로 남아있던 모양이었다. 그 모습에 버드와이저를 마시고 있던 샘은 놀라며 도대체 그 새침데기의 잠버릇이 어떻길래 그렇냐며 물었다. 바튼과 스티브는 동시에 미소를 지으며 끝내주었다는 말만 되풀이하다가 토니의 투정에 그만 항복하고 말았다.

"냇에게는 아주 특이한 잠버릇이 있어. 특정 조건을 달성해야 하는데-"
"마치 게임같군."
"게임과는 다르지, 죽으려고 가는 게임은 없잖아."

죽는다는 말에 샘은 맥주병을 내려놓았다. 유리와 유리가 부딪히는 날카로운 음을 뚫고 스티브가 바튼의 말을 이었다.

"몸을 격렬히 움직이는 임무 직후에, 긴장이 확실히 풀릴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장소에서 자는, 나타샤 로마노프의 어깨를 붙잡으면 되네. 어때, 한번 도전해보겠나?"

토니는 고개를 저으며 페퍼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하였다. 하지만 정작 그 잠버릇의 내용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타샤의 잠버릇이 뭔데?"
"트라이앵글 초크야."

바튼의 대답에 두 사람은 순간 트라이앵글 초크가 뭔지 머릿속을 검색했다. 어딘지 익숙하고 많이 본 듯한 이름에 이곳저곳 기억을 쑤셔대다가 먼저 깨달은 것은 샘 윌슨쪽이었다. 역시 어렸을적 프로레슬링에 미쳤던 평범한 미국남자답게 그는 아, 소리를 내다가 얼굴을 찌뿌렸다. 토니는 머릿속을 뒤져도 대답이 잘 나오지 않자-그의 어린시절은 기계와 도면과 기름투성이였기에- 곧바로 '트라이앵글 초크'를 검색했다. 그의 슈퍼컴퓨터는 과연 단어를 치자마자 곧바로 프로레슬링 경기의 영상을 편집하여 네 남자 앞에 띄웠다. 영상에서는 어느 헐벗은 남자가 육중한 다리로 상대방의 어깨와 목을 조르고 있었다. 자신의 신체를 삼각형으로 만들어 목을 조르는 기술, 이라는 설명이 옆에 붙여졌다. 남자의 공격을 당한 적은 몇번 버둥대다가 결국 실신하고 말았다.

토니는 열린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물론 그는 나타샤가 해피 호건을 상대로 관절기를 펼쳤던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움직이기 힘든 정장을 입었음에도 그녀는 아무 문제 없이, 너무나도 수월하게 해피를 무력화시켰다. 그때도 그녀는 해피의 목에 허벅지를 걸어 그를 넘어뜨렸었다.

"이거 당한 인간이 하도 많아서 결국 쉴드쪽에서도 통제령을 내렸지. 절대로 전투 직후에 편안히 자는 블랙 위도우를 건드리지 말라, 라고."
"잠깐, 캡이 알고 있다는건-"
"물론 나도 당해봤지. 나는 프로레슬링이란걸 어렸을때 버키와 함께 한 적이 현대에 와서도 기술은 익혔지만, 그렇게 깔끔하고 위협적인 기술은 처음이었네. 정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놀랐지."

스티브의 눈은 마치 보석을 경탄하듯 반짝거리며 허공을 보고 있었다. 끝내주는 기술이었지, 라며 바튼도 그 대열에 동참했다.

"그건 그야말로 생명을 끝내는 기술인걸."
"이 주체못할 전사들. 잠깐만-"

토니는 이미 반쯕 녹아 물반 술반이 되어버린 술잔을 찰랑거리며 말을 이었다.

"캡틴, 나타샤가 받은 임무가 뭐였지?"
"새로 발각된 하이드라 기지를 습격하는 일이었네만. 꽤나 힘든 전투였다고 들었네, 또 새로운 무기를 만든 모양이야."
"그럼 오늘 복귀한거고, 현재 여기, 즉 어벤져스 훈련소 숙소에서 자고 있다는 말이군. 집에서 '편안히' 말이야."
"당연하지, 여기의 보안레벨은 설계한 자네가 제일 잘 알지 않나?"
"...그럼 지금 딱 그 조건들 만족하고 있는거 아냐?"
"그렇군, 지금 나타샤에게 확실히 끝내주는 기술을 맛볼 수 있을거야."
"....그거 배너도 알고 있어?"

토니의 말에 남자 셋은 순간 움직임을 멈추었다. 입가에 미소가 어렸던 스티브의 입술이 경련을 일으켰고, 샘은 갑자기 얼어버린 분위기에 차마 맥주병을 내려놓지 못하였다. 제일 당황한 것은 바튼으로 그의 미간에 어린 주름은 그 어느때보다도 깊어졌다. 토니가 고개를 숙여 묵념을 하려고하자 스티브가 급히 그러면 안된다고 말렸다. 그제서야 긴장이 풀렸는지 샘은 웃음을 터뜨리고는 맥주병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 치도 결국 끝내주는 기술에 끝나겠구만."

하지만 샘은 전혀 몰랐을 것이다. 그가 그 말을 끝내자마자 나머지 남자들은 말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배너가 사라졌던 쪽으로 급히 달려가기 시작하였다. 갑자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영문도 모른채 샘도 그들을 따라 달려갈 수 밖에 없었다. 무슨 일이냐, 라고 묻자 토니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로 소리쳤다.

"배너는 기절하지 않아. 
'그 남자'가 나온다고!"

나타샤의 숙소앞에 도착하자마자 열쇠를 꺼낼 겨를도 없이 스티브가 문을 부수었다. 우지끈거리며 현관안으로 쓰러진 문을 타고 집안으로 들어서자 침실쪽에서 남자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토니 스타크의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변해갔다. 

"나타샤!"

바튼이 소리를 치며 침실문을 열자 그 곳에는 깊은 호흡을 내쉬며 자고 있는 여자와 얼굴이 파랗게 변하면서 신음소리를 내뱉고 있는 남자가 차마 말로 하기 어려울 기괴한 모습을 하며 얽혀있었다. 나타샤는 정확히 배너의 왼쪽 겨드랑이는 나타샤의 다리 사이에 자리잡고 있었고, 그녀의 손은 그의 머리를 한쪽으로 짓누르고 있었다. 들어오는 남자 넷을 보았는지 배너는 애처로운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아니 그건 토니의 착각이었는지도 몰랐다. 토니는 자신과 같이 온 남자들을 보았다. 셋은 정말로 눈을 반짝이며 완벽한 기술이라며 경탄하고 있었다!

"이 미친놈들아!"

그는 급히 제 친우-이미 눈동자에 초록색이 어리기 시작한-의 목을 조르고 있는 허벅지를 풀어냈다. 무의식적으로 행한 공격임에도 나타샤의 다리를 푸는 것은 상당히 힘이 들었다. 그녀의 다리를 풀자마자 배너의 몸이 침대 밑으로 흘러내려왔고 그와 동시에 켁켁거리는 기침소리가 침실을 울렸다. 나타샤가 잠이 깬 것은 배너의 기침소리가 막 끝났을 무렵이었다. 그녀는 눈을 반쯤 뜨고 자신앞에 펼쳐진 상황을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침대밑에는 사색이 다 되어가는 연인과 역시 얼굴이 하얗게 질린 백만장자, 문 앞에는 자신의 동료 셋이 반짝거리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말도 안되는 상황에 무슨 일이냐고 말을 꺼내려 입을 연 순간, 그녀는 순간 자신의 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깨닫고 말았다.

"브루스!"

그녀는 급히 침대에서 내려와 배너를 끌어안으려고 했다. 하지만 배너는 마치 무서운 귀신이라도 본 듯 두려워하며, 그녀의 몸을 조심스레 밀어냈다. 나타샤는 거절당한 자세 그대로 잠시 몸을 굳혔다가, 자신들을 바라보는 남자들에게 험악한 표정으로 빨리 나가라며 고갯짓을 했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남자들이 배너를 부축하며 자신들이 부수어놓은 문을 타고 사라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결국 방안에 자신만이 남게되자 그녀의 머릿속에서 자신을 거절하던 연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는 소리없는 비명을 질렀다.


둘이 서로의 잠버릇을 확인한 것은 결국 한달 뒤의 일이었다.








나타샤가 시전한 트라이앵글 초크는 다리로 하는 기술입니다. 참고로 해피를 제압한 기술은 밑의 거. 일명 행복잡기라 하더군요. (1분 50초)








'AVGS > HL'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전완다 _ 갈색머리  (0) 2015.09.23
비전완다 _ Red  (2) 2015.09.13
비전완다 _ Orange  (0) 2015.08.23
냇배너+스티브 _ 올바른 구매법  (0) 2015.08.21
비전완다 _ 당신의 알테어 나의 베가 그의 다비흐  (0) 2015.08.20
Comments